공상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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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불해(公上不害, ? ~ 기원전 194년)는 전한 초기의 관료이다. 개국공신 서열 123위로 (汲侯)에 봉해졌다.

행적[편집]

고제 6년(기원전 201년), 태복에 임명되었다.

고제 10년(기원전 197년) 8월 경신일, 태복 겸 행정위사(行廷尉事) 공상불해는 (胡令) 상(狀)·호승(胡丞) 희(憙)로부터 보고받은 임치의 옥사(獄史) 난(闌)에 대한 논죄를 심리하여, 난을 경형·성단용에 처하고, 나머지는 보고서대로 치죄하라고 호색부(胡嗇夫)를 통해 명하였다.[1]

고제 11년(기원전 196년), 진희의 반란 진압에 종군하였고, 그 동안의 공적을 인정받아 급후에 봉해지고 식읍 1,200호를 받았으며, 이후 조나라태부[2]가 되었다.

혜제 원년(기원전 194년)에 죽으니 시호(終)[3]이라 하였고, 아들 공상무가 작위를 이었다.

출전[편집]

각주[편집]

  1. 《장가산한간》(張家山漢簡) 주언서(奏讞書) 3
  2. 사기에서는 태부, 한서에서는 태복이라고 한다.
  3. 사기에서는 , 한서에서는 (紹)라고 한다.
전임
하후영
전한태복
기원전 201년 ~ ?
후임
하후영
전임
의거
전한정위 (대행)
(기원전 197년 8월 당시)
후임
선의
선대
(첫 봉건)
전한의 급후
기원전 196년 2월 기사일 ~ 기원전 194년
후대
아들 급이후 공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