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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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상(酈商, ? ~ 기원전 180년)은 진나라 말기, 전한의 인물로, 전한 고조의 공신들 중 제6위이다. 진류군 고양현 사람으로, 역이기의 아우다.

사적[편집]

진 이세황제 원년(기원전 209년) 진승 · 오광이 봉기[1] 당시에 수천 명의 무리를 모아 거느리고 있다가, 형 역이기유방에게 속해 진류를 함락하자 자신도 유방에게 귀순했다. 장사(長社) 공격에서 가장 먼저 성에 올라 신성군(信成君)의 작호를 받았고, 유방을 따라 관중에 들어가기 전까지 전공을 세웠으며 별군을 거느리고 한중을 평정했다.[2]

기원전 206년, 항우진나라를 멸하고 패공 유방을 한왕으로 봉하자 신성군 · 농서도위를 맡았다. 삼진 침공에서는 옹나라의 북지군[3]과 새나라의 상군[3]을 평정했고, 옹나라의 군대를 몇 차례 무찔러 무성에 식읍 6천 호를 받았다. 이후 항우의 군대를 공격해 종리말과의 싸움에서 공을 세워 양나라 상국이 됐으며 식읍 4천 호를 더 받았다. 한왕 2년(기원전 205년)에는 호릉을 공격했다.[2]

한왕 5년(기원전 202년) 항우가 죽고 한왕이 황제가 되고서 7월에 연왕 장도가 모반하자 진압군에 종군해 전공을 세우고 우승상이 됐으며 탁에 식읍 5천 호를 받았다. 우승상으로서 상곡군을 평정하고 대를 공격해 조나라 상국이 됐다. 이 권한으로 강후 주발 등과 함께 안문을 평정하고 대의 승상 정종(程縱) · 수상 곽동(郭同) 등 고관 여럿을 사로잡았다. 태상황을 숙위했고 진희의 난 진압에서는 동원을 잔멸했다. 회남왕 영포의 난에서는 고제의 친정군에 속해 회남왕의 진형을 쳐 무너뜨렸다. 식읍 5천 1백호를 받는 곡주후가 됐고 이전의 봉읍은 모두 제했다.[2]

고조 12년(기원전 195년), 고조가 죽자 황후 여후심이기와 상의하고 공신들을 전부 주멸하고자 고조의 상을 숨겼다. 이를 알게 된 역상은 심이기를 찾아가 진평관영은 형양에 주둔하고 번쾌주발이 노관의 난을 평정하러 또 대군을 끌고 나간 점을 상기시켜 이들이 위협이 될 것이니 천하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했다. 심이기는 곧 발상했다.[4] 전한 혜제와 고황후의 통치기에는 병이 들어 정무를 보지 못했다. 고황후가 죽자, 주발 · 진평 · 관영 등 대신들이 모의해 여씨들을 제거하고 정권을 황실에 돌리려 했으나 여씨 일족인 여산여록이 각각 남북군을 통솔하고 있어 태위인 주발로서도 군사를 지휘할 수 없었다. 역상의 아들 역기(酈寄)는 여록과 친했는데, 주발은 역상을 협박했고 역상은 역기에게 여록을 속여 주발이 북군을 여록에게서 빼앗아 여씨를 주멸하게 만들었다. 역상은 이 무렵에 죽었다.[2]

가계[편집]

역이기.png

역상이 죽은 후, 아들 역기가 뒤를 이었다. 31년 후 법을 어겨 작위를 빼앗겼고, 역상의 다른 아들 역견이 뒤를 이었다.[2]

원광(元光) 4년(기원전 131), 역수성이 뒤를 이었고, 이후 역세종이 이어받았다.[2]

원정(元鼎) 2년(기원전 115), 역종근이 뒤를 이었으나 훗날 저주를 퍼부은 일 때문에 요참형에 처하였다.[5]

원강(元康) 4년(기원전 62), 역상의 현손의 아들 역공이 집안을 다시 일으켰다.[5]

원시(元始) 2년(2), 역상의 후손 역맹우 · 현손 역명우가 관내후(關內侯)에 봉해졌다.[5]

관련 인물[편집]

역이기

옛 제나라 왕 전횡이 고조에게 귀순하려 했으나 역이기를 죽인 일 때문에 머뭇거리자, 고조에게서 전횡에게 형의 원수 보복하려는 행동을 금지당했다. 그러나 결국 전횡은 역상에 대한 부끄러움을 품은 채로 자결했다.[6]

각주[편집]

  1. 사마천: 《사기》 진섭세가
  2. 위와 같음, 권95 번역등관열전35 중 역상열전
  3. 위와 같음, 권7 항우본기제7
  4. 반고: 《한서》 권1하 고제본기하
  5. 위와 같음, 고혜고후문공신표제4
  6. 위와 같음, 권33 열전 위표전담한왕신전제3
전한위위
기원전 201년 ~ 기원전 196년?
후임
왕위위
제1대 전한의 곡주후
기원전 200년 음력 1월 병오일 ~ 기원전 180년
후임
아들 역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