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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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그룹기아자동차를 모기업으로 한 자동차 산업 중심의 기업집단으로 1999년까지 존재하였다.

연혁[편집]

  • 1997년 당시 기아는 대한민국의 30대 기업 집단 중 재계서열 8위의 기업군이었으며 28개의 계열회사가 존재하였다.

기아그룹 해체[편집]

기아자동차는 1997년 경영여건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기아그룹의 28개 계열사가 부도를 낸다.

1997년 7월 15일 자금난에 휘청이던 기아는 대한민국의 IMF 구제금융 요청을 맞아 28개 계열사가 부도유예협약적용을 받게 된다. 이는 사실상의 부도이며, 대한민국의 IMF 구제금융 요청으로 인하여 기아그룹의 28개 계열사가 부도를 내면서, 모체인 기아자동차, 아주금속공업(현 메티아), 카스코, 본텍(현대오토넷으로 합병), 위아, 위스코(현대모비스로 합병), 세아베스틸 등 6개 계열사만 남게 되었으며, 아시아자동차기아자동차와 합병되었고, 나머지 기아그룹 22개 계열사들은 대부분 청산, 합병, 법정관리, 화의신청 등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1997년 7월 15일부터 IMF 구제금융사건 때 28개 계열사가 부도유예협약적용을 받아 1997년 9월 24일 기아자동차의 화의 신청과 1997년 10월 22일에 기아자동차가 법정관리를 시작하였다.

1998년 4월 15일 기아자동차가 회사 정리 절차를 끝냈다. 1998년 5월 15일 우선 협상 대상자에 현대자동차가 선정되어 매매 계약을 체결해 인수협약을 맺어 우선 협상 대상자로 하고, 1998년 9월 10일 우선 협상 대상자인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인수 우선 대상 협상자를 매각 공매로 국제 선정 입찰에서 낙찰해 자금난을 체결해 선정하였다. 1998년 10월 7일 기아자동차가 인수 우선 대상 협상자으로 선정한 현대그룹에 모체인 현대자동차로 낙찰, 인수 계약 양해 각서를 체결하고 국제 입찰하였다. 1999년 3월 기아그룹 부도유예협약적용 1년 18개월 뒤에 국제 입찰을 통해 현대그룹에 모체인 기아자동차아시아자동차와 함께 편입되고, 이후 기아그룹의 김선홍 회장은 이른바 '기아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구속, 서울교도소에 수감되며 퇴임하였다. 기아그룹 김선홍 회장은 고소를 당해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기아그룹은 현대그룹, 대우그룹 등과는 달리 주식이 어느 개인이나 단체에 집중되어 있지 않아 국민그룹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래서 기아살리기 운동이 범국민적으로 펼쳐졌다.

1999년 기아자동차가 회사정리계획 변경계획안 인가 결정을 하였고, 1999년에는 기아자동차판매, 아시아자동차, 아시아자동차판매, 기아대전판매 등 4개사가 모두 기아자동차에 흡수 합병된다. 현대에 인수된 기아는 이같은 노력으로 2000년 1월 17일에 기아자동차가 회사정리 절차 종결을 신청하여 2000년 2월 17일 대한민국에서 최단 기간에 법정 관리를 마무리지었다. 한편 기아자동차는 현대그룹의 경영권 분쟁, 즉 소위 '왕자의 난'과 맞물려 2000년 8월 31일 계열분리되며, 현대자동차와 함께 현대자동차그룹을 형성하였다.

2001년 4월 1일 당시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는 대한민국 30대 대규모 기업 집단 중 재계서열 5위인 현대자동차그룹에 속하였다. 2001년에서 해태제과으로부터 해태 타이거즈 프로야구단을 인수하고, KIA 타이거즈으로 사명을 바꿨다. 기아자동차를 제외하고 2000년 기아중공업이 위아(현 현대위아)로, 기아전자가 본텍이 현대모비스로, 2001년 창원공업이 위스코로, 아주금속공업을 메티아로, 기아정기를 카스코(현 현대모비스)와 합병으로, 2003년 기아특수강이 세아그룹에 편입되고, 2004년 세아베스틸으로 옛 기아그룹을 여러가지 계열사으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현재 기아자동차, 아주금속공업(메티아), 카스코, 본텍, 위아, 위스코, 세아베스틸 등을 제외하고 나머지 아시아자동차기아자동차와 합병되었으며, 나머지 기아그룹 22개 계열사들은 대부분 청산, 합병, 법정관리, 화의신청 등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계열사[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