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보이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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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이 왕가(이탈리아어: Casa di Savoia) 또는 사보이 왕조는 지금의 이탈리아에스파냐 등에서 군주를 배출한 가문이다. 사보이 정통 왕가는 1831년에 단절되었고, 분가인 사보이카리냥 가문(이탈리아어: 사보이카리냐뇨 가문)이 사르데냐의 왕위를 계승하였다.

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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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이 왕가가 다스리는 영토는 1023년 움베르토 비안카마노 백작사보이아오스타 등지에 봉토를 획득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사보이 왕가는 1251년까지 토리노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고,1416년 아메데오 8세피에몬테의 내부 지역과 니스 항구를 끼고,서쪽 알프스의 영토를 통일하여 공작의 칭호를 수여받았다. 이탈리아 전쟁 도중 1536년에 프랑스에 의해 점령을 당했고,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1559년 영토를 되찾아오는 데 성공했다. 이후 1563년 수도를 토리노로 옮기면서 사보이 공국은 이탈리아의 한 나라로 자리잡게 되었고, 1714년 에스파냐 왕위 계승 전쟁에서 승전하여 시칠리아 섬을 양도받았다. 그러나, 신성로마황제이자 오스트리아의 대공, 헝가리의 왕, 사르데냐의 왕이었던 카를로 황제가 시칠리아와 사르데냐를 바꾸자고 제안하였고, 그 제안을 받아들여 사르데냐 섬을 얻은 후 국호를 사르데냐 왕국으로 개칭하였다. 사르데냐 왕국나폴레옹 전쟁 중 정치의 중심이었던 피에몬테를 잠시 잃어버린 후, 빈 회의에서 피에몬테를 되찾고 나서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으로 국호를 개칭하였다. 이후 리소르지멘토의 중심이 되어 이탈리아 왕국을 건국하게 된다.

사보이 왕가[편집]

사보이의 백작[편집]

사보이의 공작[편집]

시칠리아의 왕[편집]

사르데냐의 왕[편집]

사르데냐의 왕[편집]

이탈리아의 왕[편집]

에스파냐의 왕[편집]

에티오피아의 황제[편집]

알바니아의 왕[편집]

사보이 왕가의 수장[편집]

그의 사후 사보이 왕가 수장 지위를 둘러싸고 두 파로 분열되었다.

사보이카리냐뇨 가문[편집]

분가. 작위는 공작. 프랑스어로는 사보이카리냥 가문이라 부른다. 1831년 사보이 왕가의 본가가 되었다.

사보이제노바 가문[편집]

분가. 작위는 공작. 카를로 알베르토의 차남 페르디난도를 시조로 하여 5대 165년간 지속되었다.

사보이아오스타 가문[편집]

분가. 작위는 공작.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차남 아메데오를 시조로 5대째 이어진다.

몰락[편집]

1946년, 이탈리아에서는 군주제 유지 찬반 투표의 결과로 왕정이 폐지되고, 이탈리아 공화국이 선포된다. 사보이 왕가의 국왕 및 그 남자 후손들은 국외로 추방당하였으나, 이탈리아 공화국은 1997년부터 왕가 후손들의 입국을 허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