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 (보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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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大文, ?~ 684년)은 고구려보덕국의 왕족이자 군인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권8의 주석에 의하면 다른 이름은 실복(悉伏)이라 한다. 안승의 친족 또는 조카이다.[1][2] 683년 안승신라에 귀순하자 신라에 대항하여 익산 토성(보덕성)에서 거병해 '대문의 난'[3]을 일으켜 신라에 항전해 신라 장군 핍실(逼實)·김영윤(金令胤)를 죽이는 살해하는 등의 신라에 큰 피해를 줬으나 684년 끝내 붙잡혀 금마저(金馬渚 :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처형당하였다.

직위[편집]

대문(大文)은 본래 고구려의 유민으로 보덕국의 군주 안승(高安勝)의 아들 혹은 조카라 전해지며 횡성 고씨(橫城 高氏)로 추정된다. 보덕국태대형이었던 고연무(高延武)와 함께 보덕국의 최상위 권력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활동[편집]

신문왕대에 신라는 귀족세력을 억누르고 전국을 군현으로 편성한 일원적인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해나갔다. 그 일환으로 683년 10월 번속국(藩屬國)이었던 보덕국의 왕 안승을 수도로 불러 신라의 소판(蘇判) 관등을 부여하고 김씨성을 내리고 집과 토지를 주며 수도에 거주하게 하였다. 즉 금마저에 있는 보덕국과 격리시켰다.

이러한 조처에 대한 불만으로 684년 11월 보덕왕 안승의 조카(族子)인 고구려와 보덕국의 왕족이자 보덕국의 장군인 대문(大文)[4] 이 모반을 기도하다 처형되니, 이를 계기로 보덕국민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 때 격렬한 전투가 벌어져 토벌군인 신라 장군 핍실(逼實)·김영윤(金令胤) 등이 전사하였다.[5]

기타[편집]

실복(悉伏)이 대문(大文)과 동일인물이라는 설이 있다.[6]

관련항목[편집]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