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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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성(國內城)은 고구려 제2대 유리왕 22년(서기 3년)부터 장수왕 15년(427년) 평양성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고구려의 수도였으며, 고구려는 이곳을 중심으로 영토를 넓히고 강력한 중앙집권적 고대국가의 틀을 갖추어 나갔다.

국내에 이미 위치하고 있으나 굳이 성채의 이름에 국내라는 표현이 적용된 이유는 고구려의 국가 방어 전략과 관련이 깊을 것이다. 고구려는 국토가 넓어서 국경도 길고 인접한 나라들도 많았다. 국경 전체를 강화시켜 유지하는 사실상 국경 방어는 힘든 실정이었던 것이다. 국내성이라는 이름은 이러한 이유로 해외에 국가 방어 자산을 미리 비축하고 상시 운영하며 유사시에 활용한다는 국가 비젼이 들어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1]

졸본성(卒本城)에 이어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였던 국내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는데, 중국 지린성 지안에 있는 통구성(通溝城)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국내성 성벽의 전체 길이는 2,686m이며 동서가 남북에 비해 약간 길며, 현재 성벽이 상당 부분 훼손되어 있다. 지안 서북쪽 2.5km 지점의 해발 676m 환도산에는 위나암성(尉那巖城)이 있는데, 이 때부터 평지성과 산성이 한 조(組)를 이루어 조성되어 평지에 있는 국내성이 공격 받을 경우에 산성인 위나암성에 피난해 적과 싸웠던 것으로 보인다.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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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美 "亞 동맹 방어ㆍ침략 억지 미군 계속 유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