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리방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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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리빵즈(고려봉자, 중국어 정체: 高麗棒子, 병음: Gāolí bàngzi) 또는 차오센빵즈(조선봉자, 朝鮮棒子), 한빵즈(한봉자, 韓棒子)는 중국인한국인을 비하하여 부르는 비칭이다.

역사[편집]

이 말의 어원에 대해서는 고구려인들이 몽둥이로 침략한 수나라 군사를 폭행한 한 것에 대해 겁먹은 수나라 오랑캐들이 수나라에 돌아가서도 지속적으로 그 두려움을 얘기하고 전한 데서 유래했다는 설, 일제시대에 만주로 피난한 조선인들과의 갈등 과정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첫번째 설과 관련한 주장은 다음과 같다. 까오리빵즈의 '까오리'는 조선왕조 전의 고려가 아니라 '고구려'를 지칭 하므로, 고구려시대 전후에는 두려움의 상징이었으나 이 후 고구려가 없어지고 통일신라,고려 이 후 중원에서 일어난 왕조들이 힘이 커지면서 과거에는 두렵던 지역사람들(의 후손들)을 어느 순간 오히려 얕잡아 보는 말로 어의전성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하겠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이와 비슷한 말인 '차오센빵즈(조선봉자, 朝鮮棒子)', 한빵즈(한봉자, 韓棒子)이다. 고구려 이후에는 한반도를 기반으로 한 나라 중에 발해(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음은 <구당서>와 <속일본기>에 정확히 나와있음)를 제외하고는 중원에 있는 왕조를 위협할만큼의 세력을 가진 나라가 없었으므로, 당연히 조선봉자의 '조선'은 (우리가 이름이 같아서 '고'자를 붙여 구별하는)'고조선'으로, 그 때의 중원지역에 퍼져있던 고조선과 한민족/한겨레에 대한 두려움(한봉자, 韓棒子)이 이 후에 나타난 고구려로 이어졌고, 더 뒤에 일어난 나라로서 큰 위협을 주었던 고구려의 이름으로 후세에 전해진 것으로 보여진다.

두번째 설과 관련한 주장은 다음과 같다. 1931년 만주사변으로 만주국이란 괴뢰국을 세운 일제가 장농도전공사(長農稻田公司)를 세우고 자발적으로 이주한 내지인과 피난 또는 강제이주된 조선인에게 토지를 지급하는 과정에서 유래하였다. 중국인 지주와 조선인 소작인 사이 토지거래를 중개하는 과정에서 조선인들에게 몽둥이를 쥐어주고 꼬드겨 중국인들을 탄압하게 하였다. 이는 일본 입장에서 손 안대고 코 푸는 일이었으며, 일본은 1등민족 조선은 2등민족 중국인은 3등민족이라는 일본식 민족우열주의 등에 편승한 지각 없는 조선인들 혹은 살기 힘들어 어쩔 수 없이 참여한 피난민들이 토착민들을 공격하였는데 이것이 가오리빵즈의 어원이라는 설이다. 장농도전공사를 매개로 청국인 지주와 조선인 소작농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양국주민을 이간질하는 정책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가장 큰 사건은 만보산사건이다. 특히 이 사건은 일제에 의해 왜곡 보도되어 한국에서는 중국인 127명을 학살하였고, 중국에서는 일본의 앞잡이가 된 조선인을 물리치자며 만주 독립운동기지 13개소가 중국인에 의해 불타는 등 크게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