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녀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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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표: 북위 41° 19′ 41″ 동경 125° 25′ 03″ / 북위 41.328002° 동경 125.417417°  / 41.328002; 125.417417

오녀산성

오녀산성(五女山城)은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번시 시(本溪市) 환인현(桓仁縣) 오녀산(五女山)에 위치한 산성(山城)이다. 해발 800미터 높이에 이르는 절벽의 천연 지세를 그대로 이용하여 쌓은 고구려 특유의 테뫼식 축성 양식을 보여준다.

개요[편집]

오녀산성은 대체로 직사각형 모양으로, 남북 길이 1500m, 동서 너비 300m이고, 전체 약 8km이다. 압록강(鴨綠江)의 지류로 비류수(沸流水)로 비정되는 혼 강(渾江, zh:浑江) 유역에 위치하고 있다.

산성은 200m 높이의 절벽 위에 위치하고 있어 천연의 요새가 되어 왔다. 동쪽과 남쪽의 경사가 완만한 곳에는 성벽을 설치하였다. 고구려 멸망 이전에 한 번도 함락된 적이 없는 성이다.

상세[편집]

오녀산성은 고구려의 첫 도읍지인 홀본성(忽本城) 또는 졸본성(卒本城)으로 비정된다. 중국의 《위서》(魏書) 동이전에 흘승골성(紇升骨城)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언급되었다. 『광개토대왕비』에는 홀본성(忽本城)이라고 하고, 삼국 시대 관련 다른 기록들은 대체로 졸본성(卒本城)이라 쓰고 있다. 《삼국유사》에서는 해모수가 건국한 북부여의 수도를 홀승골성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고려사》 공민왕조에는 오로산성(五老山城) 또는 우라산성(于羅山城)으로 쓰여 있다.

조선 후기의 학자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오녀산성의 옛 이름인 우라산성의 발음이 위나암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고구려의 국내성은 이곳에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노태돈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11년(서기 28년) 7월조에 기록된 을두지의 발언에서 묘사되는 위나암성의 지형이 오늘날 오녀산성의 모습과 부합해 오녀산성이 졸본성이 아닌 서기 3년(유리왕 22년)에 천도한 국내 위나암성(尉那巖城)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고구려의 집안 지역 천도를 산상왕 재위기로 보며, 졸본성을 환인댐에 의해 수몰된 나합성(喇哈城)으로 비정하였다.[1]

각주[편집]

  1. 노태돈, 「고구려 초기의 천도에 관한 약간의 논의」 (한국고대사학회,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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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