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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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수 전쟁
날짜7세기 초
장소
요하, 요동, 황해 일대
결과 고구려의 승리, 수나라의 멸망
교전국
고구려
백산말갈
속말말갈
수나라
거란
동돌궐
이연 반란군 왕세충 반란군 양현감 반란군
지휘관
고구려
영양왕
고건무
고보장
연태조 
이리거세사
을지문덕
강이식
고승
고정의
고연수
고돌발
고원
문달 
고죽리
온사문
양만춘
검모잠
뇌음신
손대음
선도해
걸걸중상
연정토
용수
술탈
백산말갈
아소친
속말말갈
걸사지추
수나라
수 문제 
수 양제 
귀비 오씨 
양량 
장형
태자 양소 
수 공제
양소 
왕세적 
주라후 
배구
유사룡 
굴돌통 
우중문 
우문술 
우문화급
우문지급
내호아 
곡사정 
맥철장 
토만서 
단문진 
신세웅 
주법상 
거란
대하돌라
동돌궐
야미 카간 
시피 카간
아시나 일테베르
아시나 토피
아사나사이
글필하력
글필사문
이연 군사
이연
이건성
이세민
이원길
장손무기
서세적
울지경덕
진대덕
심숙안
위징
이사마
조삼량
장량
방효태
부복애
왕세충 군사
왕세충 항복[1]
두건덕 항복[2]
양현감 군사
양현감 
이밀 항복[3] 
연개소문 [4]
생해 [5]
연남생 [6]

고구려-수 전쟁(高句麗-隋 戰爭) 또는 여수전쟁(麗隋戰爭)은 598년, 612년, 613년, 614년고구려수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이 전쟁으로 수나라는 많은 국력을 소진하였고, 이것이 지방에서의 반란과 중앙 세력의 약화로 이어져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 고구려 또한 흐트러진 국내 사정을 바로잡기 위해 남쪽의 신라와 백제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수나라 이후 중국을 통일한 당나라에 호의적인 행동을 취하였다. 당나라 또한 피폐해진 국내를 바로 잡아야 했기에 고구려와 친선 관계를 유지하였다. 고구려가 당나라의 요청에 따라 경관(京觀)을 허문일은 이러한 상황 때문이었다. 그러나 중화 제국하의 질서를 원했던 당 태종이 황제에 즉위하면서 상황은 달라지게 되었다.

당 태종은 진대덕(陳大德)을 고구려에 보내 첩보 활동을 명령하였다. 이처럼 당나라의 침략 의도가 분명해졌음에도 느슨한 태도를 보이는 영류왕의 태도와 그의 지나친 친당 정책에 반발한 연개소문(淵蓋蘇文)은 영류왕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눈치채자, 영류왕을 시해한 뒤 보장왕을 옹립하였다. 연개소문은 대당강경책을 주장해 고구려와 당 사이의 관계는 다시 험악해졌고, 결국 고구려-수 전쟁이 끝난 지 30여 년 만에 다시 고구려-당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같이 보기[편집]

  1. 이연에게 항복하였다.
  2. 이연에게 항복하였다.
  3. 이연에게 항복하였다.
  4. 고구려의 밀정에 의해 고구려에 갔다.
  5. 고구려의 밀정에 의해 고구려에 갔다.
  6. 고구려의 밀정에 의해 고구려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