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카쿠 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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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카쿠 열도
다른이름: 댜오위다오, 댜오위타이, 피너클 제도
지리
위치 동중국해
좌표 북위 25° 44′ 23.12″ 동경 123° 27′ 52.21″ / 북위 25.7397556° 동경 123.4645028°  / 25.7397556; 123.4645028

면적 7 km²

실효 지배
일본의 기 일본
오키나와 현
이시가키 시

영유권 주장
중화민국의 기 중화민국
타이완 성
현·진 이란 현 터우청 진
중화인민공화국의 기 중화인민공화국
타이완 성

일본의 기 일본
오키나와 현
이시가키 시

인구 통계
인구 0명

센카쿠 열도
일본어식 한자尖閣列島
가나 표기せんかくれっとう
국립국어원 표준센카쿠 렛토
통용 표기셍카쿠 렛토우
한국어 한자 발음첨각열도
로마자Senkaku-rettō

센카쿠 열도(일본어: 尖閣列島)는 동중국해 남서부에 위치한 다섯 개의 무인도와 세 개의 암초로 구성된 군도로, 타이완류큐 제도 사이에 있다. 현재 일본이 실효 지배하고 있으나, 중화인민공화국중화민국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 군도를 센카쿠 제도(틀:Ja-y) 또는 센카쿠 열도(틀:Ja-y)라고 지칭하며,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댜오위다오 열서(중국어 간체자: 钓鱼台列嶼, 병음: Diàoyúdǎo) 또는 댜오위다오 및 부속 도서(중국어 간체자: 钓鱼岛及其附属岛屿, 병음: Diàoyúdǎo jí qí fù →댜오위 섬 및 부속 도서), 중화민국에서는 댜오위타이 군도(중국어 정체자: 釣魚台群島, 병음: Diàoyútái Qúndǎo)라고 부른다.

영어권에서는 1884년 영국 해군이 명명한 피너클 제도(Pinnacle Islands →뾰족한 섬들)라고 부르는데, 센카쿠(尖閣 →첨각)라는 명칭은 여기서 유래하였다.

개요

이 군도는 북위 25°58' ~ 25°41'45", 동경 123°27'45" ~ 124°41'30" 부근에 위치해 있다. 전체 면적은 7km²로, 모두 무인도이다.

일본의 행정 구역상 이 군도는 오키나와 현 이시가키 시(틀:Ja-y)에 속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타이완 성에, 중화민국타이완 성 이란 현에 속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장 큰 섬은 우오쓰리 섬(魚釣島, 어조도)으로, 동서 약 3.5km, 남북 약 2km에 이르는 섬이다. 이 섬의 최고점은 해발 362m이다. 이 군도의 주요 섬과 암초는 다음과 같다.

일본어 이름 중국어 이름 면적 최고점
우오쓰리 섬(틀:Ja-y) 댜오위 섬(釣魚島) 4.32km² 362m
구바 섬(틀:Ja-y) 황웨이 섬(黄尾嶼) 1.08km² 117m
다이쇼 섬(틀:Ja-y) 츠웨이 섬(赤尾嶼) 0.0609km² 75m
미나미코 섬(틀:Ja-y) 난샤오 섬(南小島) 0.4592km² 149m
기타코 섬(틀:Ja-y) 베이샤오 섬(北小島) 0.3267km² 135m
오키노키타 암(틀:Ja-y) 베이얀(北岩)[1] 0.0183km²
오키노미나미 암(틀:Ja-y) 난얀(南岩)[1] 0.0048km²
도비세(틀:Ja-y) 페이자오얀(飛礁岩)[1] 0.0008km²

역사

명나라 초기 영락(永樂) 원년(1403년)에 출판된 <순풍상송(順風相送)>이란 책에 '조어서'(釣魚嶼)란 이름으로 역사에 처음 등장하였고, 1863년에 작성된 세계지도(중국어 정체자: 皇朝一统舆地全图)에는 이 군도가 푸젠 성(福建省)에 부속한 댜오위타이 군도(釣魚台群島)로 표시되어 있다.

1895년 청일 전쟁 와중에 일본 제국은 이 군도를 무주지(無主地)라며 일방적으로 자국 영토로 편입시켰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미국은 이 군도를 자국이 위임통치하는 오키나와의 관할 안에 두었고, 1972년 오키나와의 반환 이후 일본이 실효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중화민국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어서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1969년 유엔의 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에서 이 군도 부근 해역에 천연가스와 석유가 대규모로 매장되어 있다고 발표하면서 분쟁 지역으로 급부상했다. 1996년 일본의 우익 단체가 우오쓰리 섬에 등대를 세웠으며, 2005년부터 일본 정부는 이 등대를 지도에 실어 관리하고 있다. 2012년 7월, 일본이 이 군도를 국유화할 방침을 세우자 중국과 타이완이 반발하고 있다.[2]

일본측 주장

이 군도는 1885년 오키나와에 살던 후쿠오카 현 출신 사업가 고가 다쓰시로(古賀辰四郞)가 발견한 뒤 일본 정부가 무주지(無主地)임을 확인하고 1895년 1월 14일 오키나와 현에 정식 편입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일본 정부가 타이완펑후 제도(澎湖諸島)를 포기하였음에도 이 군도를 미국이 오키나와의 관할 안에 두고 통치한 것은 이 군도가 타이완이 아닌 류큐 제도의 부속 도서이기 때문이다.

1972년 오키나와 현이 미국으로부터 반환될 때 이 섬들도 류큐 제도와 같이 반환되었으므로, 이 군도는 일본 영토이다.

중국측 주장

1863년에 작성된 지도(皇朝一统舆地全图)에 이미 이 군도는 중국 푸젠 성(福建省)에 부속한 댜오위타이 군도(釣魚台群島)로 표시되어 있던 중국 영토이다.

중국 영토였던 이 군도를 1895년 청일 전쟁 와중에 일본 제국이 무주지(無主地)라며 자국 영토로 강제편입시킨 것은 불법이며, 당연 무효다.

이 군도는 과거 푸젠 성에 속했던 타이완 성의 부속도서이다. 타이완 섬 반환 이후에도 미국이 이 군도를 중국측에 반환하지 않고 오키나와의 관할 안에 두고 통치한 것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회의에 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이 모두 초청받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진 일로, 중국측은 이 섬들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점거를 승인한 적이 없다.

일본이 이 군도를 첨각 열도(尖閣列島, 센카쿠 열도)라고 표기하기 시작한 것은 청일 전쟁이 종결된 이후이며, 그 이름 역시 1884년 영국 해군이 붙인 '피너클 아일랜드'에서 본뜬 것이다. 군도 중 가장 큰 섬의 이름을 어조도(魚釣島)로 한 것도 중국명 조어도(釣魚島)의 앞뒤만 바꾼 것에 불과하다.

석유

이 군도의 분쟁은 막대한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는 시라카바 가스전‎과 관련되어 있다. 이 지역 동중국해에는 흑해 유전만큼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중국과 일본 양국이 다투고 있는 시라카바 가스전과 대한민국과 일본 양국이 다투고 있는 7광구가 모두 여기에 있다. 일본이 실효 지배 중인 이 군도의 앞바다에는 중국이 실효 지배중인 시라카바 가스전이 위치해 있으며, 그 북쪽에는 대한민국과 일본이 다투는 7광구가 위치해 있다. 모두 단일한 유전으로 알려져 있어서 각 국의 분쟁 대상이다.

중국 어선 충돌 사건

관련 항목

주석

외부 연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