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민공화국
| 조선인민공화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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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 | 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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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용어 | 한국어 | |||
| 정부 형태
주석, 부주석,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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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민주주의 공화제 여운형, 허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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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수립 • 성립 |
1945년 9월 6일 1946년 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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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적 • 면적 |
220,951 km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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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 • 1945년 어림 |
약 2천만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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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화 | 원 | |||
| 정부로서의 인정은 받지 못하였다. | ||||
조선인민공화국(朝鮮人民共和國, 약칭 "조선", "인공")은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미군정기가 시작되기 직전인 1945년 9월 6일 전국인민대표자회의에서 여운형의 중심으로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선포했다. 이들을 정치적 성향별로 분류하면 민족주의자 9명, 여운형계의 중도좌파가 10명, 그리고 3분의 2 가량이 공산주의자였다. 이 단체는 남북, 미국, 소련에게 소외되어 흐지부지되면서 1946년에 민주주의민족전선으로 집결되었다. [1]
목차 |
설립 과정 [편집]
설립의 준비 [편집]
해방 이전부터 건국동맹이라는 비밀 결사를 조직하여 활동하던 여운형 등은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건국준비위원회를 발족하였다. 건국준비위원회는 주로 민간인들이 주도하여 치안대를 구성하였고, 이들은 어떠한 이념대립없이 민족주의계와 사회주의계열이 순수 자발적인 단체로 어울렸었다. 이어 건준은 8월말까지 전국에 지부 145개가 세워졌으며, 당시 민중들의 지지를 받는 유일한 전국적 규모의 정치세력이었다. 그러나 이후 건국준비위원회는 박헌영의 공산주의계열이 주도권 잡아가면서 중도적인 성향이 변질되어갔다.
설립 참여자 [편집]
선포 [편집]
1945년 9월 6일, 건준이 "인민대표자대회"를 열고, 당시 국호로 조선과 한국을 놓고 수많은 논의를 거친후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을 잇는다는 차원에서 "조선인민공화국"을 결정·선포하였다. 중앙인민위원 55명과 후보위원 20명, 고문 12명을 선출하였으며, 군정기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남북의 전 도,군,면에 인민위원회를 설립하고 당시 행정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던 조선총독부를 대신해 사실상 치안 행정 등 자치정부의 기능을 수행했다.
1945년 9월 7일 인공 내각이 발표되었는데, 인공 내각 부서 인선은 여운형이 아닌 박헌영이 주로 관여했다.[2] 인공 내각에는 주석 이승만, 부주석 여운형, 국무총리 허헌, 내무부장 김구, 외무부장 김규식, 재정부장 조만식, 군사부장 김원봉, 사법부장 김병로, 문교부장 김성수, 경제부장 하필원, 체신부장 신익희, 노동부장 이주하, 보안부장 최용달 등 국내외, 좌우를 망라한 인사들이 선임되었다. [3] 이승만을 인공의 주석으로 삼은 것에 대해선 지금까지도 설이 분분하다. 장차 남한에서 공산당의 최대 적(敵)이 될 이승만을 인공의 테두리에 묶어 놓음으로써 무력화(無力化)시키려는 것과 미군정을 의식한 것이며, 동시에 이승만과 김구 등 우익인사들을 인공 명단에 기입함으로써 우익진영의 혼선과 무력화를 유도하면서 임시정부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시각도 있다. [4]
조선인민공화국의 정강내용은 다음과 같다.
- 정치, 경제적으로 완전한 자주적 독립 국가의 건설을 기함
- 일본 제국주의와 봉건 잔재 세력을 일소하고 전 민족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기본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진정한 민주주의에 충실하기를 기함
- 노동자, 농민 기타 일체 대중 생활의 급진적 향상을 기함
- 세계 민주주의 제국의 일원으로서 상호 제휴하여 세계 평화의 확보를 기함
정통성 논란 [편집]
조선인민공화국은 건국준비위원회의 활동을 계승하고 일재 잔재 청산을 담은 시정 방침을 채택하였으나, 곧이어 한반도 남쪽에 미군이 입성하면서 미군정은 '맥아더 포고령 9호'를 통해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해외의 독립운동가들과도 협의를 거치지 못하였다. 여운형과 박헌영은 이승만과 김구에게 통합을 제안하였으나, 이승만은 친일파 처벌을 비판하였고 김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인공 내각을 부정, 통합은 이루어지지 못했다.[5]
1946년 1월 다시 인공측과 임정측의 교섭이 있었으나 견해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실패했다. 이후 1946년 2월 인공 내각은 미군정에 의해 와해되고 2월 14일 좌파 세력은 박헌영, 여운형, 허헌 주도로 민주주의민족전선을 결성했다. 여기에는 임시정부를 탈퇴한 김원봉, 성주식, 장건상 등이 참여했다.
역대 수반 [편집]
주석 [편집]
기타 지도자 [편집]
기타 [편집]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성과 상충되어 대한민국에서는 법통성이 부정되고 있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박헌영에 의해 날조된 친미, 부르주아 정권[6]이라며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함께 읽기 [편집]
- 여운형
- 허헌
- 박헌영
- 건국준비위원회(약칭 건준)
- 국민대회준비위원회(약칭 국준)
- 대한민국 임시정부
- 민주주의 민족전선
- 민주주의 독립전선
- 조선인민당
- 조선공산당
- 인민위원회
- 국군준비대
- 미군정
주석 [편집]
- ↑ 박명림,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 89쪽
- ↑ <<여운형 평전>>, 이기형 지음. p407
- ↑ 허은, 〈8·15직후 민족국가 건설운동〉,강만길 외, 《통일지향 우리 민족해방운동사》(역사비평사,2000)307~308쪽.
- ↑ 이승만을 인공의 주석으로~: 서중석,《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해방후 민족국가 건설운동과 통일전선》(역사비평사, 1991),221쪽.
- ↑ 근현대사 네트워크, 《우리현대사노트》(서해문집,2007)21쪽.
- ↑ http://www.uriminzokkiri.com/Newspaper/doso/books/htm/2007-08-29-minjok/htm/4.htm
바깥 고리 [편집]
| 한국의 역사 | ||
|---|---|---|
| 이전 시대 | 조선인민공화국 1945년 9월 ~ 1946년 2월 (군정기 1945년 9월 ~ 1948년) 대한민국 임시정부(1919년 9월 ~ 1948년 8월 15일) |
다음 시대 |
|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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