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 섬 전투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이오지마 전투
(제2차 세계 대전, 태평양 전쟁의 일부)
Stars and Stripes on Mount Suribachi (Iwo Jima).jpg
날짜 1945년 2월 19일 ~ 1945년 3월 26일
장소 일본 제국 일본 제국 이오 섬

(지금의 일본 일본국 도쿄 도 오가사와라 촌 이오 섬)

결과 미국의 승리, 미 공군의 일본 본토 공습기지 확보.
교전국
미국 미국 일본 제국 일본 제국
지휘관
홀랜드 스미스
레이먼드 A. 스프루언스
체스터 니미츠
구리바야시 다다미치
니시 다케이치
병력
110,000명 21,000명
피해 규모
전사 - 6,821명
부상 - 19,189명
실종 - 494명
전사 - 20,703명
포로 - 216명

이오 섬 전투 또는 이오지마 전투(영어: Battle of Iwo Jima, 일본어: 硫黄島 (いおうじま) (たたか)い, 1945년 2월 16일~1945년 3월 26일)는 태평양 전쟁 말기, 오가사와라 제도이오 섬에서 벌어진 미군일본군 간의 전투를 말한다. 미군의 작전명은 디태치먼트 작전(Operation Detachment)이었다.

개요[편집]

태평양 전쟁이 말기로 치닫던 1945년 2월 19일, 미군 해병대가 이오지마에 상륙하기 시작했다. 3월 17일에 미군은 섬을 장악했으며, 거의 모든 일본군 부대가 전멸했다. 3월 21일일본 제국 대본영은 3월 17일에 이오지마 섬에 있던 일본군이 '옥쇄'(玉砕)했다고 발표했다. 3월 26일, 구리바야시 다다미치 대장 이하 남은 300명의 일본군이 마지막 돌격을 했으나 전멸했다. 이것으로 인해 조직적인 전투는 종결되었다.

2만 933명의 일본군 수비 병력 중, 2만 129명이 전사했다. 피해율은 96%였다.

한편, 미군은 전사자가 6821명, 부상자가 2만 1865명으로 집계되었다. 태평양 전쟁 말기에 일본군과 미군은 수백 개의 섬에서 전투가 있었는데, 유일하게 미군의 손해가 일본군의 피해를 넘어선 전투이다(단, 미군의 전사자와 부상자의 합계). 다만 피해율은 약 40%이다. [출처 필요]

배경[편집]

이오 섬도쿄 남쪽의 1,080킬로미터에, 북쪽 1,130킬로미터에 위치하고 있다. 가잔 열도에 속하는 화산섬으로, 섬의 표면이 대부분 유황의 축적물로 뒤덮여 있어 '이오 섬'(硫黄島 이오지마[*], 유황 섬)으로 불렸다. 토양은 화산재라 보수성이 없었고, 식수나 용수는 짠 우물물이나 빗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태평양 전쟁 전에는 유황의 채굴이나 사탕수수 재배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주민이 1,000명 정도 거주하고 있었다.

일본군1941년 개전 당시, 해군 전투대 약 1,200명과 육군 병력 3,700명 내지 3,800명을 인근 지치지마 섬에 배지하고 있었는데, 이 부대가 이오지마를 관할하고 있었다. 개전 후에 남방 전선과 일본 본토를 묶는 항공 수송의 중계지점으로서 이오지마의 중요성이 인식되어 해군이 이오지마에 비행장을 건설하고 있었다. 당시 항공병 1,500명과 항공기 20기를 배치하고 있었다.

이오지마의 성조기

1944년 2월, 미군은 마셜 제도를 점령하면서 추크 제도(Chuuk Islands)에 대규모 공습을 실시했다. 이에 대항해 일본 대본영은 캐롤라인 제도마리아나 제도, 오가사와라 제도를 묶는 방어선을 '절대 국방권'으로 지정해 사수를 결정한다. 방위선 수비 병력으로서 오바타 히데요시(小畑英良)가 지휘하는 제31군이 편성되었다. 그 밑에 오가사와라 지구 집단 사령관에 쿠리바야시 타다미치 중장이 취임했다. 이오지마에는 3월부터 시작해 4월까지 증원부대가 도착해 총병력은 5,000명을 헤아리고 있었다.

1944년 여름, 미군은 마리아나 제도를 공격해 점령했으며, 마리아나 제도의 비행장을 거점으로 같은해 11월부터는 B-29 폭격기를 이용해 일본 본토 각지를 폭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리아나 제도에서 일본 본토까지는 거리가 상당했으며 일본군이 마리아나 제도에서 일본 본토로 이어지는 중간 지점에 있는 이오 섬에서 미군 폭격기 무리의 이동을 미리 예측하고 저지했기 때문에, B-29 폭격기들과는 달리 먼 거리를 비행하지 못하는 호위 전투기들이 곧바로 비행장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일이 잦았다. 결국 호위 전투기들을 잃은 B-29 폭격기들이 일본군의 요격을 받는 일이 잦았다. 반대로, 일본군은 이오 섬을 근거지로 하여 가까운 마리아나 제도로 내려가 미군의 비행장을 자주 공격했다. 이 결과, 일본군은 12월에만 11기의 B-29를 파괴했다.

따라서 미군 태평양 통합작전본주는 이오 섬을 점령하고, 일본군의 항공기지를 파괴한 뒤 미군의 전진 항공기지를 마련하기 위해 이오 섬 공격을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