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당대교
팔당대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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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시설 | 국도 제45호선 (창우로) |
횡단 | 하남시와 남양주시 사이의 한강 |
국적 | 대한민국 |
관리 | 서울지방국토관리청 |
구조 | 거더교 |
최대경간장 | 52m |
길이 | 935m |
폭 | 24m |
착공일 | 1986년 5월 10일 |
완공일 | 1995년 4월 25일 |
개통일 | 1995년 4월 25일 |
위치 | 하남시 창우동 ~ 남양주시 와부읍 |
팔당대교(八堂大橋)는 경기도 하남시 창우동과 남양주시 와부읍 팔당리를 잇는 다리로 총 연장 935m이다. 팔당댐 관리교를 제외한 한강 본류에서 첫번째 다리이며 한강에 18번째로 건설된 다리이다. 국도 제45호선의 일환으로, 남북으로 입체교차로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그 중 북단교차로 (팔당대교 나들목)는 국도 제6호선과 국도 제45호선이 분기된다.
역사
[편집]1986년 5월 3일에 유원건설에서[1] 착공하였으며 당시 올림픽대교에 이어 대한민국 두번째의 콘크리트 사장교로 건설해[2] 1991년 10월에 완공될 예정이었다.[3]
그러나 1991년 3월 26일 강풍으로 인해 교량이 붕괴되어 공사가 전면 중단되었다.[4] 조사 결과 건설 공법에 문제가 있어 1991년 10월 12일부터 공법을 바꿔 재공사에 들어갔지만[5] 1992년 5월 5일 중앙탑을 지탱하는 교각에서 심각한 균열이 발견되어 공사가 다시 중단되었다.[6] 결국 1992년 9월 9일 팔당대교의 설계를 일반 거더교로 설계를 변경해 공사에 다시 들어갔다.[7] 그리고 문제가 된 사장교 부분과 주탑을 철거한 뒤 교각 6개를 다시 세워[8] 1995년 4월 25일 오전 10시에 착공 8년 11개월만에 완공되었다.[9]
효과
[편집]팔당대교의 건설로 서울 동부지역과 수원, 안양, 성남 등의 경기도 남동부 지역이 직접 연결되는 효과가 발생해 서울 청량리와 구리시에서 발생하던 만성 교통체증이 해소되었으며, 경부고속도로와 중부고속도로 등과도 연계할 수 있어 수도권의 교통난 해결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했다.[10] 이 때문에 다리가 개통되자마자 하루 평균 4만여대가 통행하기 시작했으며 덕소에서 양평 방면으로 이어지는 국도 제6호선과 하남시 일대 도로가 극심한 교통체증이 발생했다.[11]
팔당대교 붕괴사고
[편집]1991년 3월 26일 오전에 강풍이 불면서 교량의 196m가 붕괴[12]해 1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13]
조사 결과 시공 회사인 유원건설이 풍압을 고려하지 않은 공법으로 공기에 쫓겨 무리하게 시공하고 공사에 안전조치를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건설현장소장을 구속했다.[14] 또한 조달청 조사 결과 직접공사비에도 못미치는 절반 수준의 가격으로 공사를 수주하는 덤핑 수주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15] 또한 6개월 후 10월에는 당시 건설공법이었던 사인장교(斜引張橋)로 가설하는 바리공법(FSM 공법)이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16]
이 때문에 공법을 자유돌출공법(FCM)으로 바꿔 10월 12일부터 다시 공사에 들어갔다.[17] 그러나 1992년 5월 5일 중앙탑을 지탱하는 교각에서 심각한 균열이 발견되어 공사가 다시 중단되었고,[18] 조사 결과 규정량 이상의 콘크리트를 타설해 시멘트와 골재의 화학반응에 의한 열이 배출되지 못하고 기포가 발생하는 수화 반응이 생긴 것으로 드러나[19] 설계를 일반 철제상자방식으로 건설하는 것으로 공법을 바꿔 1992년 9월 9일부터 재착공에 들어갔다.[20]
한편 시공사인 유원건설은 이 사고로 30억원 정도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으며,[21] 건설부가 부실시공의 책임을 물어 2,25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22]
각주
[편집]- ↑ "韓國民(한국민)친절 報恩(보은)", 경향신문, 1986년 9월 5일 작성 기사에서 언급.
- ↑ 漢江(한강)의 새 名物(명물) 올림픽大橋(대교) 工事(공사)한창, 경향신문, 1987년 10월 1일 작성.
- ↑ 팔당대교 건설공사 한창, 한겨레, 1990년 6월 29일 작성.
- ↑ 「팔당」시공 有元建設(유원건설) 작업중지 처분, 매일경제, 1991년 3월 27일 작성.
- ↑ 팔당대교 再(재)공사, 경향신문, 1991년 10월 12일 작성.
- ↑ 팔당대교橋脚(교각)균열 또 공사중단, 경향신문, 1992년 5월 5일 작성.
- ↑ 斜張橋(사장교) 건설중 붕괴 八堂(팔당)대교 일반 평다리로 再施工(재시공), 동아일보, 1992년 9월 9일 작성.
- ↑ 94 현장 (13) 팔당대교 교량접속 한창…연말開通(개통), 동아일보, 1994년 2월 13일 작성.
- ↑ 팔당대교 개통, 동아일보, 1995년 4월 25일 작성.
- ↑ 팔당대교 어제 개통 수도권 교통량 분산효과, 경향신문, 1995년 4월 26일 작성.
- ↑ 팔당대교 교통체증"몸살", 동아일보, 1995년 4월 30일 작성.
- ↑ 무너진'1백96m', 한겨레, 1991년 3월 27일 작성.
- ↑ 신축 八堂(팔당)대교 붕괴 철제빔에 1명 壓死(압사), 경향신문, 1991년 3월 26일 작성.
- ↑ 八堂(팔당)대교 "不實(부실)공사", 동아일보, 1991년 3월 28일 작성.
- ↑ "「팔당」사고 덤핑受注(수주)탓", 매일경제, 1991년 3월 29일 작성.
- ↑ 八堂(팔당)대교 붕괴"시공-설계 잘못탓", 동아일보, 1991년 10월 3일 작성.
- ↑ 팔당대교 공법바꿔 공사, 한겨레, 1991년 10월 12일 작성.
- ↑ 팔당대교橋脚(교각)균열 또 공사중단, 경향신문, 1992년 5월 5일 작성.
- ↑ 팔당대교 主塔(주탑)균열 不實(부실)시공 철거마땅, 동아일보, 1992년 8월 11일 작성.
- ↑ 팔당대교 공법바꿔 공사재개, 한겨레, 1992년 9월 9일 작성.
- ↑ 政府(정부)발주 大型(대형)공사 事故(사고) 責任(책임)못가려「國民(국민)부담」태반, 매일경제, 1992년 8월 3일 작성.
- ↑ 부실시공 8개사 과징금, 한겨레, 1993년 11월 10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