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토론:Cane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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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75(토론 · 기여) 2015년 4월 7일 (화) 18:18 (KST)

특정 종교에 치우친 편집 삭제[편집]

하나님, 하느님 등 여러 종교 관련 문서에서 Canendo 님의 편집을 되돌립니다. 특정 종교에 치우쳐 다른 종교의 교리나 일반적인 설명을 훼손하는 형태로 이루어진 금번 Canendo 님의 편집은 위키백과의 중립적 시각 원칙에 따라 금지되어 있습니다. 또한 공인된 출처가 없어 위키백과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주의 부탁드리며, 적절한 출처를 포함해서 기존의 내용을 건드리지 않고 특정 종교의 입장에서 보는 하나님, 하느님 등의 개념을 추가로 서술하시는 것이 위키백과에 어울리고 허용되는 것이니 참고 바랍니다.--Xakyntos (토론) 2015년 4월 8일 (수) 10:41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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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하나님 문서 되돌림[편집]

Information.svg 안녕하세요, Canendo님!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에 기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하께서 하느님, 하나님 문서에 해 주신 편집은 믿을 수 있는 출처가 없기 때문에 문서를 편집하시기 전의 상태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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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편집]

"xakyntos님이 관리하시는거 편집할때는 대립이 되는 내용 편집 해봐야. 돌려버리니 대립이 되지 않는 내용을 토대로만 편집해보도록 하죠. 님이 관리하시는 기자조선을 현재 한국 역사학계에서는 인정하고 있지 않은데 기자조선 관련해서 다 지워드릴까요?? 저는 그래도 번조선의 맥으로 보고 있기에. 기자 관련해서 그냥 놓아두고 있는데 말이죠.

1. 그렇다면 고조선 부분에. 단군세기 내용을 추가시킨 후, 님이 기자조선에서 취하는 방식처럼. 이 내용은 학계에서는 부정적으로 본다고 적으면 되겠네요?? 2. 삼국유사. 제왕운기는 엄연히 역사책인데 신화타령 그만하시죠?? 그런식으로면 사기를 바탕으로 한 년도수 모두 신화가 되는데요.

그렇다면 질문이 있습니다. BC2333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고고학적 발굴로 BC2333까지 증명되면 인정을 하신다는건가요?? 아니면 BC2333 가능성을 닫아두고, 고고학적 발굴이 되더라도 인정하지 않으신다는건가요?? (대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글 작성중이신가요??)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고)조선이 언급되어 있고. 그 지역으로 고고학적 발굴이 나타나고 있는데. 고조선의 실존을 인정하지 않는다는게 논리적으로 맞다고 생각하시나요??" --Canendo (토론) 2015년 4월 10일 (금) 12:52 (KST)

위서 《환단고기》는 기자조선을 기술하지 않고 있고, 단군조선이 2096년간 지속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규원사화》의 1195년과 901년의 차이가 난다. - 고조선#기타 자료
1. 보시다시피 이미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위서인 《환단고기》에서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가 말입니다.
2. 《일본서기》도 엄연히 역사책인데도 불구하고 기원전 660년 건국설은 아무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그리고 《사기》는 아예 본문 내에서 공화 원년(기원전 842년) 이전의 연도는 믿을 수 없다고 자체 폐기하고 있을만큼 엄정한 역사서입니다. 환단고기 같은 위서와는 비교가 불가능합니다.
3. 사람의 글을 좀 제대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고조선의 실존을 인정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단지 고조선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문헌사료가 적고, 그 한계도 명백해서 정확한 기년이나 왕계보를 알 수 없다는 것이죠. 기원전 2333년을 진실이라 믿으신다면 일본 천황도 기원전 660년부터 시작된 것이고 중국의 삼황오제도 진짜 역사적 사실이라 믿으셔야 할텐데 과연 그렇습니까?--Xakyntos (토론) 2015년 4월 10일 (금) 13:46 (KST)

답변에 대한 답변[편집]

우선 감사드립니다.

1. 환단고기 (2096년), 규원사화 (1195년) 그럼 규원사화는 인정하신다는 것인가요? 단군조선 년대기

단군조선의 일부는 인정한다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2. 일본서기 - 엄연한 역사책(???) 기원전 660년 건국설??? 이것은 해방후 우리의 개천절보고 건국절 기원전 660년 음 1월 1일로 인정할 수 없는 낭설이지요. 단군신화도 없는데, 책에. 단순 일본서기를 믿나요? <사기>가 국제적으로 인정된 사서입니까? 기원전 842년에. 그럼 왜 백제의 왕인박사가 겨우 천자문하고 논어를 전수했을까요? 그렇게 긴 역사인데...

- 질문1. 일본국호의 발음이 저팬입니까? 니혼인가요? 닛뽄인가요? 닛폰인가요? 일본은 일본어, 한문, 영어 등의 각종 언어로 불리는 여러가지 국호를 가지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저팬', '재팬'(Japan) 또는 '자퐁'(Japon)이 가장 많은 언어에서 사용되고 있다. 한편, 일본을 부르는 일본어 명칭은 ‘닛폰’(일본어: にっぽん, 듣기 (도움말·정보)), 그리고 ‘니혼’(일본어: にほん, 듣기 (도움말·정보))이 사용되고 있다. 닛폰과 니혼 모두 일본어의 한자로는 일본(日本)으로 표기된다. 닛폰과 니혼 중 관공서, 체육 행사, 우표 등의 공식적인 행사와 일본 엔에는 닛폰이라는 표기가 많이 사용되고, 니혼은 현대의 회화에서 자주 사용된다.[1]

일본국호 발음

언제부터 니혼이나 닛뽄으로 불리웠나요? 1934년?

저간의 사정을 지금의 <마이니치신문>의 전신인 <도쿄일일신문(東京日日新聞)> 1934년 3월 23일자(석간)에서는 "국호 호칭을 닛뽄으로 통일, 문부성 국어조사회에서 결정"이라는 머리글 아래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문부성 내의 국어조사회에서는 내각과 외무성 요청에 자문하기 위해 조사를 계속해왔는데, 니혼으로 발음하는 것이 문헌적으로 많고 또 (발음하기에도) 부드럽다는 이유로 (니혼으로 읽기를 주장하는) 반대론을 깨부수고 단연코 우리나라를 힘차게 인식하게 할 수 있는 '닛뽄'을 채용하기로 하고, 앞으로는 국호를 '닛뽄'으로 통일하기로 하였음을 내각과 외무성에도 보고했다. 따라서 앞으로는 외국에 발송하는 서류에는 국호를 '닛뽄'을 사용하고 '저팬'은 폐지하기로" 니혼(NIHON)인가? 닛뽄(NIPPON)인가? [권혁태의 일본 읽기] <18> 국호에 담긴 내셔널리즘

기원전 660년부터 일본서기 해서 일본을 국호로 했는데 저팬, 자퐁, 니혼, 닛뽄(뽕)이라고 이것저것 불리나요? 맞는 이야기에요? 국호가 기원전 660년, 아니 기원후 700년에 쓰여져도 자기 국호가 영어로 [지팡구]하는 좋아서 계속 저팬이라고 했을까요?

- 질문2. - 언제부터 왜가 [일본]을 국호로 사용했는가?

국호는 항상 외교적인면에서 문서에서 나타내는 것으로 조선사실록에는 구한말이전에는 왜[倭]를 썼습니다. 신식민주의 근대화론자들인 [임진왜란]을 [일본전쟁] [임진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일제식 사고입니다. 자국의 역사로 [왜란]으로 규정한 것을 굳이 바꾸어야할 이유가 없습니다.

국호의 제정[편집]

일본 제국 헌법 원본에 명시된 국호 정식 국호인 “대일본제국”은 1889년 2월 11일에 발포(發布)된 “일본 제국 헌법”에서 “대일본제국”이라고 칭하고 있는 것에 유래한다. 영어로는 ‘The Empire of Japan’(직역하면 ‘일본 제국’)을 사용했으며 ‘Great Japan’(직역하면 ‘대일본’)으로는 사용하지 않았다. 정부에서는 제국(구자체: 帝國, 신자체: 帝国 (ていこく) 또는 황국(구자체: 皇國, 신자체: 皇国 (こうこく))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당초 일본 제국 정부는 국호에 그리 연연하지 않았고 법률이나 공문서 등에서 일본(구자체: 日本, 신자체: 日本 (にほん)), 일본국(구자체: 日本國, 신자체: 日本国 (にほんこく)), 일본 제국(구자체: 日本帝國, 신자체: 日本帝国 (にっぽんていこく)), 일본국(구자체: 大日本國, 신자체: 大日本国 (だいにっぽんこく)) 등으로 표기했지만 1936년 일본 외무성은 외교 문서에 사용되는 자국의 국명 표기를 “대일본제국”으로 통일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한 뒤에도 “대일본제국”이라는 호칭은 계속 사용되었지만 1946년 2월 13일 연합군 최고사령부가 일본 제국 헌법 개정 초안을 제시한 뒤부터 헌법 초안에서의 국명은 ‘일본국’(구자체: 日本國, 신자체: 日本国 (にほんこく))이 되었다. 1947년 5월 3일에 시행된 일본국 헌법에서는 주권 재민을 명시했으므로 이후에는 일본 제국이 공식적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일본제국헌법에서 국호를 처음으로 "대일본제국" [일제]라고 했습니다. 1889년 2월 11일 반포. 문제는 영어로도 [The Empire of Japan]이라고 했습니다.

마로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및 잘 아시는 걸리버 여행기에는 [Zipangu, Jipangu]로 명기가 되어있어, 우리도 코리아와 같이 당시 불리던 대로, 즉 서구에 알려진 대로 현재 국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만세일계인 천황님께서, 아니 그래 왜를 재팬이라고 하는데, 일본하시지 왜 안 바꾸셨겠나요. 의문입니다. 아시면, 정확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Names of Japan

영어 위키로 보나, 사서로 보나, 어디에도 왜(倭)를 일본으로 국호로 정한 것은 일본제국헌법 1889년 2월 11일, 그리고 이에 대한 니혼에서 닛뽄(Nippon)으로 해도 그 어느나라도 영문으로 닛뽕이라고 바꾸어주지 않습니다. 한국만 예외로 한번씩 니혼 혹은 닛뽕이라고 하는데, 대세는 니혼고 때문에 니혼이 맍이 쓰이지요. 한국의 경우만 그렇고 영어권 및 세계 어느나라도, 니혼하면 모릅니다. [재팬] [저팬]해야 하지요. 즉 일본이라는 말은 1889년이전에는 국호가 아닌 지방의 명칭이었다 입니다. 백제의 담로국이 백제의 담로로 야마토라고 해서 일본의 이름으로 쓰였는지는 몰라도 국호로 정식제정된 것은 1889년이다. 천세일계라고 하는 것도 그 계보를 잘 모르겠고, 초기내용는 전부 백제왕들의 이야기를 일본말로 각색한 것이 맞지요.

大和 [다이와]라고 읽지요. 倭의 발음과 유사한 [와]를 찾아서 쓴 것이 和입니다. 그러므로, 일본서기는 위서다고 하는 것입니다.

3. 제대로 알아들으세요. 일본의 정상 명칭은요 [재팬]입니다. 일본이 아니고요. 왜냐고요? 우리나라는 외국국가 명칭을 영어식으로 발음을 적도록 수정하였답니다. 유독 일본에 대해서만 친한 척 [일본]이라고 하는데, 아시죠? 동해에 대한 명칭도 "Sea of Sun" or "Sea of Sun-Rising"이 아니고 "Sea of Japan"을 주장한다는 것을. "Sea of Sun, Sun-Rising Sea"는 인정이 될 수 있는 국제해에 관한 협정인데, 국제해역에 대한 명칭을 특정국가명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런데도 재팬은 어떻게 표기하고 있죠? "Sea of Japan"이에요. 그러니 국회에서 일본 국호 변경에 관한 법안을 제출하여 다른 나라와 같이 [재팬] [지팡] [저편] [저팬] 등을 정해서 발음이 어떤 것이 좋은지 정답을 내면 되지요. 절대 왜가 [일본]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아시죠.. 일본에서 일본은 진주만? 그래서.. 국토회복..

실존자체를 인정한다고 하시니 다행입니다. 그럼, 어디 있었는지도 확인하시고요. 일제침략으로 언제 연해주를 잃었는지, 러시아에게, 왜 두만강과 압록강이 거기에 붙어있는지? 알무르강의 이름은 어디인지? 왜 압록강인지.. 백두산이 현재의 백두산인지? 이순신장군이 백의종군한 녹둔도는 사할린 섬은 아닌지 등등이 의문투성이죠.. 간도는 언제부터 중국땅이었나요? 다 뺏겻으니 역사는 공부하면 안되나요? 해야겠지요.

중국의 삼황오제? 그게 중국제도에요? 우리나라 제도 아니에요? 나는 우리나라 제도로 알고 있는데. 물론 단서대강, 환단고기를 읽어보신 적이 없으니, 아니 자세히 연구를 해본 적이 없으니까 인정하지 못하겠지만, 삼황오제는요.. 우선 환역부터 한번 보세요.

환역 또는 한역(桓易)은 복희씨(伏羲氏,BC3528경 ~ BC3413경)가 만든 역이다. 희역(羲易)이라고 한다.

태호복희씨가 중국사람으로 알고 있지요. 아니지요. 환단고기에 나와요. 태호복희씨는 배달한국의 제5대 태우의천왕의 12번째 아들로 발귀리선인과 동문하였다.그가 만든 역을 희역이라고 한다. 음양오행의 주창자라고 나오는 사람이지요.

음양오행의 오행이 바로 오방제로, 5제를 뜻하는 것은 아니시요?

이 삼황오제는 본 뜻은 삼위일체에서 나와요. 하늘에 원래 천일, 지일, 태일의 삼위가 있는데, 이 위는 조화주, 교화주, 치화주라고 삼위가 있는데 모두 하나다. 하나님이다는 이야기로, 이는 우리는 하나로 하늘의 나로 중양지종으로 [북극성]안에 삼성이 있다. 뜻은요, 대덕, 대혜, 대지하신 3위입니다. 위는 하늘위 하늘의 하늘위로 상제라고 하지요, 상은 하늘의 하늘위고 제는 5제입니다. 즉 상제는 皇입니다. 천황할 때 그 황이지요. 삼위에서 삼황이라고 하는 천황,지황,인황이 나오지요...

다음이 천에는 삼황이계시고, 그 아래에 천하는 오제가 그리고 지하(땅)은 오령이 다스린다. 이건 신화이야기에요...

오제는 오방색으로 오방제지요. 흑제, 적제, 청제, 백제, 황제가 천하, 즉 우주공간의 우주의 별과 행성을 다스린다에요...

이 이론이 음양오행이고요.

이것은 마고시절부터 내려온 것을 발귀리선인이 7정이라고 해서 오령(오행)에 넣어(이유는 천하이니까 오령) 일월(음양) 수화목금토(오행)으로 7요일법이 7회제신력으로 우리가 현재 쓰는 태양력이 되었답니다.

3황5제를 이 지상에 내려오면서, 중국이야기를 하면 그 다음이고,

우리는 역사의 시대변화에 따라, 3황이 달라지는데, 단군조선전에는 안파견 환인, 거발환 환웅, 치우천왕을 3황이라고 했다가, 단군조선후에는 아버지 안파견 환인, 스승님 거발환 환웅, 임금님 왕검 단군이라고 삼성(삼황)으로 조화황, 교화황, 치화황이라고 했습니다. 5제의 제도는 지방관 제도로, 바로 5가 제도지요, 이는 윷놀이판에 도개걸윷모로 부족 5가를 넣었다는 것. 도야지, 개, 양, 소, 말. 그러니 모의 몽골은 우리부족이지요, 걸은 거란이고요...

즉 중국제도가 아니니니 티우를 넣었다가 말았다가 하고요. 우리는 3성각에 환인, 환웅, 단군 세분이 바로 천황, 지황, 인황으로 조화황,교화황, 치화황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군사부 일체, 삼황일체다는 내용이 정확하게 전합니다.

아 참.. 오제는 천하를 다스리는 임무가 있어서 천하대장군이라고 하고요, 오령은 지하대장군이라고 해서 장승제도가 마고시절, 즉 1만년전부터 있던 가장 오래된 장승문화입니다.

감사합니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0일 (금) 15:20 (KST)

토론은 이곳에서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쓸데없이 제 토론 문서까지 찾아오실 필요 없습니다.
1. 규원사화도 위서로 취급되고 있습니다만.
2. 일본서기를 믿지 않습니까? 그럼 환단고기도 믿지 마세요. 단군신화도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공정한 시각 아닙니까? 환단고기, 단군신화는 우리 역사니까 믿고 일본서기, 사기는 우리 것이 아니니 믿지 않는다는 건 어느 나라의 학문 연구 방법입니까? 똑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일본서기, 단군신화, 사기 어느 것이든 역사학적으로 사료 비판을 거쳐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는 것입니다. 단지 우리 민족을 위대하다 적었다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 민족의 적대국이기 때문에 못믿는 것이 아닙니다. 사료를 믿고 안믿고는 학문적 연구를 거쳐 판단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외국국가 명칭을 영어식으로 발음을 적도록 수정하였답니다.
3. 아이티라고 아세요? 요르단이라고 아십니까? 타이, 미얀마, 기니 등등, 공식 국명을 영어로 읽지 않는 예를 셀수도 없이 들어드릴 수 있습니다만.
4. 이런 터무니없는 괴설들을 아무리 써봤자 위키백과에서는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귀하께서 하실 일은 여기서 출처조차 알 수 없는 괴설들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역사학계에서 그런 주장들을 공인 받는 일입니다. 물론 그런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겠지만.--Xakyntos (토론) 2015년 4월 10일 (금) 15:35 (KST)
제 토론 문서로 찾아오실 필요 없습니다. 이곳에 쓰십시오.
왜국이 이름을 고쳐 일본(日本)이라 하였는데, 스스로 ‘해 뜨는 곳에 가깝기 때문에 그리 이름하였다.’고 말하였다. - 《삼국사기》〈문무왕 상〉10년 12월 기사
1. 증거는 이것이면 됩니까? 1889년이요? 나원참.
2. 솔직히 이런 것까지 아시길 바라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하도 괴설을 늘어놓으니 말씀드립니다. 왜, 아마토, 일본 등의 국명은 모두 같은 발음을 가진 일본 고유어를 음차한 것입니다. 과거 임나일본부를 비판할 때 사용했던 논거로서 일본이라는 국명이 670년에 처음 등장했으니 그 이전에 일본부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있는데, 현재 학계에서는 아무도 그런 식으로 비판하지 않습니다. 일본이라는 국명이 670년에 등장했든 아니든 상관이 없거든요. 고대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을 제외한 외국들은 모두 고유 문자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고유 명칭을 한자로 음차 혹은 훈차해서 사용했습니다. 마찬가지의 같은 비판을 적용하면 신라 역시 503년 지증왕이 신라라는 국호를 정하기 이전에 신라가 없었다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사로, 사라, 서라벌 신라 같이 모두 같은 고유 명칭을 음차한 국명이 혼용된 것이며, 일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일본이 왜국이라니 하는 망언은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3. 환단고기는 위서입니다. 삼신개벽기는 뭔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특정 종교의 경전이나 교리서 같군요. 역시 역사학적으로 전혀 인정되지 않는 괴설입니다. 물론 삼황오제 역시 신화일 뿐 역사가 아닙니다. 게다가 신화인 삼황오제를 위서인 환단고기 따위를 근거로 역사화하는데다 우리 민족 것이라 뒤바꿔 놓는 행동은 역사적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는 낭설입니다. 귀하가 그런 것을 믿고 계신 것은 알바 아니나 위키백과에서 그런 낭설이 용납되리라 생각하셨다면 큰 오산입니다. 귀하가 아무리 장광설을 늘어놓아봤자 위키백과에서는 하나도 인정되지 않습니다.--Xakyntos (토론) 2015년 4월 10일 (금) 16:33 (KST)

일본은 해를 모른다[편집]

천자문에 "천지현황"하니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고 해석이 되는데, 이게 오제에요. 북은 수로 현이고, 지는 중앙방위라 황제가 다스림하니 누를 황이에요. 천자문은 백제 왕인박사가 왜에 전해주었다는 것은 아시죠?

그런데, 과학적이지도 않고, 합리성도 없고 歪라서 倭라고 한 거예요..

우리는 다 아는 진리에 대한 이야기를 왜는 일본이라고 해나라 하고는 정작 해의 색을 몰라요.. 빨강이래요..

일장기: 아까이 히노마루 (빨간 해).. 마루(丸)은 다음에 이야기하고 저게 桓이라고 말하죠 요즘에. 함선에다가 이름에 전부. 웃기죠. 정로환(러시아를 정벌하는 환, 탄환).. "일본의 국기는 일장기(일본어: 日章旗 닛쇼키[*], 영어: Flag of Japan)를 의미하며, 히노마루(日の丸, '해의 원')라고 부른다. 일본의 국기 및 국가에 관한 법률의 규정에 의하면, 국기의 형태는 가로 세로 비가 3대 2인 직사각형이며, 가운데 동그라미의 지름은 세로의 5분의 3으로, 중심은 기의 중심에 위치한다. 바탕은 흰색, 가운데 원은 빨간색이다."

요즘에는 이상하게 제대로 교육을 안하고 있지요. 해의 색은 하양입니다. 다 아는 이야기. 우리는 태양의 자손으로 하늘의 자손으로 하양의 자손이다. 하양은 해의 색으로 백(白)이다 즉 삼황오제할 때 삼황일체는 하양입니다. 우리는 색상도 5방색이 고유어입니다. 하양-검점-파랑-빨강-노랑.. 색동저고리. 5방색에 5간색이 있지요. 무지개는 빛(태양)이 프리즘할 때, 즉 태양은 빛의 덩어리에요. 그래서 빛의 삼원색은 "하양"이고요, 색의 삼원색은 "검정"이에요. 하양과 검정이 바로 음양기에 들어가는 양과 음이기도 합니다. 하양은 공이라고 하고 검정은 색이라고 하지요. 공즉시색, 색즉시공.. 이런 도학도 아니 기본 과학을 우리는 아예 한문으로도 백(白)하면 천자문만 띄어도 아는 해(日)의 주인(主)-색은 "하양" 그래서 하양, 해의 양(색). 하늘색도 하양.. 누가 그러지요, 청전백일기 청나라기인데 청일전쟁에서 청은 해를 하양으로 그려서 왜넘 빨강 해한테 졌다고 맞아요. 전쟁, 피, 불의 색은 빨강이에요. 태야은 전쟁이 아닌 평화입니다... 그래서 항복기를 걸고 나갔으니 졋죠.. 아시죠? 우리는 무슨색을 입고 싸운다. 붉은 악마, 치우천왕기, 땅의 광명을 이야기한다. 혹은 검은 까마귀, 조의선인, 훈족의 검은 한기마대.. 검은 기사...

문제는 일본하고는 해라고 하고는 "아까이 히노마루" 하지요. 거짓이죠. 이것 왜마기라고 해요. 지옥의 표상이 빨강 탄환으로 탄환으로 피를 본다는 것이지요. 해는 햐양이에요. 과학이에요, 거짓이 아니고...

이것은 해방되고 바로 노래가 나왔어요. 얼마나 분하ㅗ 원통했으면, 제일 높은 산은 후지산이 아니고 백두산이다. 우리는 다 알지요. 말잇기 동요.. "원숭이 엉덩이"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빨가면 사과....

원숭이 엉덩이( 대한의 노래 )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

백두산 뻗어내려 반도 삼천리 무궁화 이강산에 역사 반만년, 대대로 이어 사는 우리 삼천만 복되도다. 그 이름 대한 이로세

삼천리 아름다운 이내 강산에 억만년 이어 나갈 배달의 자손 길러온 힘과 재주 모두 합하니 우리들의 앞길은 탄탄하도다.

보아라 이 강산에 날이 새나니 삼천만 너도 나도 함께 나가자 광명한 아침해가 솟아오르니 빛나도다 그 이름 대한이로세.

이 노래는 원래 왜를 빗대어 노래한 거에요. 해는 하양인데, 천자문이나 모든 과학책에 그리고 우리가 태양자손으로 백의 민족이라고.. 白 일장기라고 하고는 전쟁이다 모다 착취당하고 나서 보니, 저거 해가 아니다. 저건 왜마귀, 죽음의 상징.. 그런데, 원숭이 똥.. 아니 엉덩이는 빨갛더라. 그래 왜놈 엉덩이를 그렸구나.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높으면 백두산.. 백두산 뻗어내려...

자, 이게 일본이 왜인데 공부를 못해서인지, 아니면 천자문을 그리도 수도 없이 가르쳤는데도 모른다. 그래서 歪다. 아이들 교육에 정말 나쁜 거에요. 해가 빨강이면,사과가 빨강이지.. 어떻게 원숭이 엉덩이라고 해를 그리냐고요. 그것도 일본이라고 히노마루하면서.. 피바다 된 뒤에 어이 알겠나. 일장기 보면 원숭이 온다. 튀어라..

이게 일본은 한자도 모르고 철학도 없고, 하옇튼 그래요.. 원숭이 엉덩이가 빨개요. 해는 하양이에요.. 명심 명심 하세요. 말잇기 노래하고는 저게 왜 '대한의 노래'인지 가르치고 있나.. 요즘은 영.. 잘..

감사합니다. --Canendo (토론) 2015년 4월 10일 (금) 16:38 (KST)

답변 일본?[편집]

토론은 이곳에서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쓸데없이 제 토론 문서까지 찾아오실 필요 없습니다. 1. 규원사화도 위서로 취급되고 있습니다만. 2. 일본서기를 믿지 않습니까? 그럼 환단고기도 믿지 마세요. 단군신화도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공정한 시각 아닙니까? 환단고기, 단군신화는 우리 역사니까 믿고 일본서기, 사기는 우리 것이 아니니 믿지 않는다는 건 어느 나라의 학문 연구 방법입니까? 똑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일본서기, 단군신화, 사기 어느 것이든 역사학적으로 사료 비판을 거쳐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는 것입니다. 단지 우리 민족을 위대하다 적었다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 민족의 적대국이기 때문에 못믿는 것이 아닙니다. 사료를 믿고 안믿고는 학문적 연구를 거쳐 판단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외국국가 명칭을 영어식으로 발음을 적도록 수정하였답니다. 3. 아이티라고 아세요? 요르단이라고 아십니까? 타이, 미얀마, 기니 등등, 공식 국명을 영어로 읽지 않는 예를 셀수도 없이 들어드릴 수 있습니다만. 4. 이런 터무니없는 괴설들을 아무리 써봤자 위키백과에서는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귀하께서 하실 일은 여기서 출처조차 알 수 없는 괴설들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역사학계에서 그런 주장들을 공인 받는 일입니다. 물론 그런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겠지만.--Xakyntos (토론) 2015년 4월 10일 (금) 15:35 (KST)

1. 규원사화도 위서다.. 알겠습니다. 2. 일본서기가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지요? 일본 국호는 언제부터 사용했는가? 질문을 했습니다. 내가 알기로는 1889년이므로, 무슨 기원전 660년 건국하는 것은 일본이라는 국호를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려고 하는 것일 뿐으로, 국호를 왜[倭]에서 언제 일본이라고 썼느냐 입니다. 일본이라는 뜻도 모르면서. 단군신화라고 하는데 왜 왜의 왕이 천황을 쓰는가? 무슨 뜻인 줄을 아는가? 皇은 백왕으로 백의민족의 빛 왕이다, 당나라가 이세민이 도교를 자신의 선조 노자 이 이를 국교로 하고 그것을 가져다가 쓰면서, 여와신을 여왜[女倭]라고 했다. 그러니 당나라에서 왜로 간 백제귀족, 공주의 시가가 천황으로 무당왕이 되었다. 그러나 집권왕이 되지 못하다가 미국의 강화조약으로 에도막부가 무너지고 메이지 유신으로 득세하면서 일본이라는 말이 좋아보여서 쓰기 시작했다. 아니면 증거를 가져다가 내라는 것을 질문으로 드렸습니다. 단순 위대하다 아니다를 말한 것이 아니지요. 3. 국명. 이전에는요. 덕국, 미국, 불국, 등 한자로 국명을 쓰다가 현재는 가능하면 국제통용 영어로 물론 외국말로 다른 언어의 발음나는 대로 적는 방식을 쓴다입니다.

나라 이름의 한자 표기 목록

현재 외무부 통상국 등 외국국명은 가능하면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발음나는대로. 그러나 영국, 독일, 미국, 중국, 왜만은 일본으로.. 몇 나라만 과거 한자표기를 병용사용하고 있습니다.

나라 목록

왜[倭]라고 한 이유는 영어표기는 Japan이고 일본의 영어표기는 "Japan"입니다. 재팬의 원 뜻이 왜[倭]기에 왜라고 하지 않으므로, 그리고 일본은 해가 아니므로, 일이라고 해줄 이유가 없다입니다. 하도 장난질을 많이하니까.. 동해도 지네 바다, 독도도 지네 섬이라고 하니까. 아니되겠다는 것이지요. 원래 왜를 왜로 환원 그러나 국가간 도모해야 할 일도 있으니, 점잖게 [재팬] [저편]으로 해서 불러주면 된다이지요. 다른 뜻은 없습니다. 뭐 그렇게 왜역사를 외울 필요는 없으니까요. 다 아는데 뭐.. 니혼고. 아까이 히노마루.

4. 뭐가 괴설? 삼위일체 상제설? 음양오행설? 오방설? 누구처럼, 천지현황, 하늘의 검지 않고 푸르다고 한 것이 아닌데, 더 물어볼 것이 있으면 물어보세요. 삼황오제는 우리나라 삼신의 이론이지요. 그건 환단고기, 삼신개벽기 등에 다 나오는 이야기지, 실제 무슨 오방제가 있다고 한 것이 아니에요. 우리나라 윷놀이에 나온 "도개걸윷모"가 5제랍니다. 오방제, 오방색.. 이게 무슨 공인 받을 것도 아닌데, 다 알던데. 오행색, 오방색.. 천하대장군은 오제다, 흑제, 적제, 청제, 백제, 황제다.. 불교에도 황(부처님), 4천왕상. 5대천왕상.. 다 있는데, 뭐 이걸 꼭 중국애들 황제로 외워야 하나요? 내용이 나와 관련된 사항이 아니니, 위키백과의 토론과정을 위해서..감사합니다. --Canendo (토론) 2015년 4월 10일 (금) 16:09 (KST)

왜는 왜지 무슨 일본[편집]

제 토론 문서로 찾아오실 필요 없습니다. 이곳에 쓰십시오. 왜국이 이름을 고쳐 일본(日本)이라 하였는데, 스스로 ‘해 뜨는 곳에 가깝기 때문에 그리 이름하였다.’고 말하였다. - 《삼국사기》〈문무왕 상〉10년 12월 기사 1. 증거는 이것이면 됩니까? 1889년이요? 나원참. 2. 솔직히 이런 것까지 아시길 바라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하도 괴설을 늘어놓으니 말씀드립니다. 왜, 아마토, 일본 등의 국명은 모두 같은 발음을 가진 일본 고유어를 음차한 것입니다. 과거 임나일본부를 비판할 때 사용했던 논거로서 일본이라는 국명이 670년에 처음 등장했으니 그 이전에 일본부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있는데, 현재 학계에서는 아무도 그런 식으로 비판하지 않습니다. 일본이라는 국명이 670년에 등장했든 아니든 상관이 없거든요. 고대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을 제외한 외국들은 모두 고유 문자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고유 명칭을 한자로 음차 혹은 훈차해서 사용했습니다. 마찬가지의 같은 비판을 적용하면 신라 역시 503년 지증왕이 신라라는 국호를 정하기 이전에 신라가 없었다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사로, 사라, 서라벌 신라 같이 모두 같은 고유 명칭을 음차한 국명이 혼용된 것이며, 일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일본이 왜국이라니 하는 망언은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3. 환단고기는 위서입니다. 삼신개벽기는 뭔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특정 종교의 경전이나 교리서 같군요. 역시 역사학적으로 전혀 인정되지 않는 괴설입니다. 물론 삼황오제 역시 신화일 뿐 역사가 아닙니다. 게다가 신화인 삼황오제를 위서인 환단고기 따위를 근거로 역사화하는데다 우리 민족 것이라 뒤바꿔 놓는 행동은 역사적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는 낭설입니다. 귀하가 그런 것을 믿고 계신 것은 알바 아니나 위키백과에서 그런 낭설이 용납되리라 생각하셨다면 큰 오산입니다. 귀하가 아무리 장광설을 늘어놓아봤자 위키백과에서는 하나도 인정되지 않습니다.--Xakyntos (토론) 2015년 4월 10일 (금) 16:33 (KST)

왜국이 이름을 고쳐 일본(日本)이라 하였는데, 스스로 ‘해 뜨는 곳에 가깝기 때문에 그리 이름하였다.’고 말하였다. - 《삼국사기》〈문무왕 상〉10년 12월 기사 1. 증거는 이것이면 됩니까? 1889년이요? 나원참. 삼국사기 이병도가 다 고쳐놓지 않았어요? 삼국사기에 문무왕 상 10년이면, 백제가 패망하고 백제황족이 일본에 도착했다. 그리고 스스로 일본이라고 불렀다. 그 이야기 하는 것이네요. 그러니 일본은 백제의 담로국이었다고 하잖아요. 담로국의 한 속국. 그거 아니에요? 삼국사기 문무왕시절에, 백강전투에서 왜함선 400척이 백강에서 몰살당했다. 다시는 백제부흥운동에 참여할 여력이 없었다. 그리고 당에 볼모로 잡혀간 귀족 목씨는 소가씨고, 이들이 왜에 가서 왜 천황(당나라 문물)과 신교에 도교를 합쳐 신도교를 만들었다. 이 때부터 정한론이라고 해서, 이빨을 뽀두둑 갈았다.. 그런 이야기네요..

자, 일본의 역사에 일본이 나오는 것은 1889년이고 메이지유신부터 부르기 시작했다.

일본의 역사 구석기 시대 35,000~14,000 BC 조몬 시대 14,000~300 BC 야요이 시대 300 BC~250 AD 고훈 시대 250~538 아스카 시대 538~710 나라 시대 710~794 헤이안 시대 794~1185 가마쿠라 시대 1185~1333 겐무 신정 1333~1336 무로마치 시대 1336~1573 난보쿠초 시대 1336~1392 센고쿠 시대 1467~1573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1568~1603 에도 시대 1603~1868 막부 말기 1853~1868 메이지 시대 1868~1912 메이지 유신 다이쇼 시대 1912~1926 쇼와 시대 1927~1947 군정기 1945~1952 헤이세이 시대 1989~현재 잃어버린 10년 1991~2000 일본 제국 (전쟁 전) 1868~1947 일본 (전쟁 후) 1945~현재 일본의 과학사 일본의 경제사 일본의 정치사 일본의 대외 관계사


일본제국 (1868-1947) : 메이지 유신까지 포함. 그전에 언제 일본을 썼나요..

영문판

History of Japan

어디에도 없는 국호라고. 그냥 국가가 아니니, 시대라고 했나? 전국시대. 왜 춘추전국시대. 에도막부라고 하니 일본이라고 하지 않았는데, 16세기 임란때 기독교선교사들이 조총되었을 때도 한번도 니혼이나 닛뽕이라고 한 적이 없이 재팬, 다이와라고 했지요.

참고로,

진단] ‘일본(日本)’이라는 국호, 백제와 왜(倭) 중 누가 먼저 사용했을까? 처음 사용 시는 ‘해 뜨는 동쪽의 나라’라는 방위 개념!

내참? 무슨 소리하고 있는지? 일제, 일본제국이 위대하다고 하는 이야기는 오늘 처음 듣네. 다들 왜지 일본은 무슨.. 이라고 하는데. 참으로 이상하네. 오늘 정말 이상하네. 치과문 닫았지.. 아마..

2. 솔직히 이런 것까지 아시길 바라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하도 괴설을 늘어놓으니 말씀드립니다. 왜, 아마토, 일본 등의 국명은 모두 같은 발음을 가진 일본 고유어를 음차한 것입니다. 과거 임나일본부를 비판할 때 사용했던 논거로서 일본이라는 국명이 670년에 처음 등장했으니 그 이전에 일본부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있는데, 현재 학계에서는 아무도 그런 식으로 비판하지 않습니다. 일본이라는 국명이 670년에 등장했든 아니든 상관이 없거든요. 고대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을 제외한 외국들은 모두 고유 문자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고유 명칭을 한자로 음차 혹은 훈차해서 사용했습니다. 마찬가지의 같은 비판을 적용하면 신라 역시 503년 지증왕이 신라라는 국호를 정하기 이전에 신라가 없었다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사로, 사라, 서라벌 신라 같이 모두 같은 고유 명칭을 음차한 국명이 혼용된 것이며, 일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일본이 왜국이라니 하는 망언은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망언? 뭐가 망언이에요. 왜국을 왜국이라고 하는데, 지금 왜식으로 하자고 말하는 것인지. 이야기 했지요. 670년에 왜가 갑자기 일본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백제왕족과 귀족이 당의 장안에서 왜로 도착하면서라고. 이 때 일본이라는 말을 쓴 것은 그곳이 백제의 담로국이었기 때문이라고. 즉 담로국이므로 백제에서는 일본, 해가 뜨는 곳이라고, 왜 일본이라고 쓰지 못하느냐? 일본은 일을 히라고 해요. 본은 토고요. 혼이 아니고 히토라고 하면 덴노하고 같은 말이되고 덴노는 흉노하고 같지요. 야마토, 대화(大和) 이걸 자꾸 일본이다고 하는데 이것은 大倭와 같은데, 발음만 음차로 [와]라고 나는 和로 바꾼 것이라고.. 야마토는 일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야마는 이마, 머리, 태양이라고 하고 토는 본의 원 왜의 발음가에요. 그러나 이를 山本(야마토)로 셋본, 즉 세본으로 사람의 중심으로 원래는 백제가 아니고 신라의 중심지였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백제 귀족이 가자마자 정권을 잡았다고 하는 속설이 있는데, 그건 아니고요, 왜땅에는 고구려/신라가 더 강력하고, 백제도 담로국이 있어서 좋았는데, 전체를 다 장악하지 못해요. 그래서 왜 전국시대로 각지방 호족이 있다가 토요도미 히데요시(풍신수길)이 전국통일하고, 십자가전쟁이라고 해서 기독교 기리사단 이 앞장서서 조선을 침략했고요. 이 기리사단 기독교 앞잡이는 얼마나 악랄했는지, 귀를 베어오라고 했는데, 그럼 살게 되니까 코를 베어간 것이죠. 그래서 어비. 코비어간다고 해요. 잔인하기ㅣ 그지 없어요. 근데 힘을 못 길러서 병자호란후.. 흐지부지하다가 왜땅에 관심이 없었던 조선은 미국이 왜[재팬이라고 명기가 되어있다]를 압박해서 강화조약을 맺으면서 왜에 일본천황가가 등장했지 무슨 맹목적으로 맹주는 아니다. 지금 조금 이상해요. 알고 있지요? 신라는 당신이 생각하듯이 백제 왜한테 꼼작 못하던 나라가 아니에요. 신라의 神羅로 원 진한조선이에요. 우리말에는 전 아버지 이름을 밟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어요. 그래서 후금의 신라자손들은 청(靑)이라고 했다가 배달천왕 치우천왕이 산동에 [청구 -푸른 언덕, 이 땅의 하늘]을 쓰셔서, 바로 맑을 淸(청)을 썼다는 청사에도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왜가 독도는 자기 땅하고 교과서에도 실고 있으므로 당연히 재팬이라고 국호를 표기를 바꾸어야 전쟁광 빨간 해가 돌아다니지 못합니다. 지팡이 후지가 휘어져서 후지후지 Cane (藤)이 뿌러집니다. 자팡아 자팡아.. 뿌러질래 휠래. 휜다고 해서 등나무 후지.. 후지다. 우리말이 먼저인데.. 내 참.. 일본부는 백제에 보고소가 설치되어 있었겠지.. 그래야 왔다갔다하고. 백제는 호남이 아니에요. 아시죠..산동 제남위가 백제에요.. 마치 동네전쟁하든 한달에 28개성을 함락했다. 그럼 하루면 말달려서 가서. 신라를 깨부수지.. 삼국사기에도 나와요.. 백제 최강시 100만군대라고.. 그럼 신라가 경상도에서 오골오골 살면서.. 야호 했나.. 그리고 왜 천황가의 핏즐이 백제라면서 "오소 오소 어서 오소 아재 아재 어서 오소'라고 신라말을 쓰남.. 내 참. 무슨 아는 애하고 이야기해야지, 무슨 임나일본부 이야기를 들고 나오니. 정말.. 내 참.. 정말, 왜는 왜야.. 왜...

3. 환단고기는 위서입니다. 삼신개벽기는 뭔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특정 종교의 경전이나 교리서 같군요. 역시 역사학적으로 전혀 인정되지 않는 괴설입니다. 물론 삼황오제 역시 신화일 뿐 역사가 아닙니다. 게다가 신화인 삼황오제를 위서인 환단고기 따위를 근거로 역사화하는데다 우리 민족 것이라 뒤바꿔 놓는 행동은 역사적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는 낭설입니다. 귀하가 그런 것을 믿고 계신 것은 알바 아니나 위키백과에서 그런 낭설이 용납되리라 생각하셨다면 큰 오산입니다. 귀하가 아무리 장광설을 늘어놓아봤자 위키백과에서는 하나도 인정되지 않습니다. --

황당하구만, 정말, 노자의 도덕경도 공자의 주역도 못 읽었다는 이야기.. 맞지요. 유교의 경전이지 참.. 주역이.. 아니 살면서 왜넘처럼 오방색도 모르고 삼황오제의 오행색도 모르고 이걸 특정 종교의 경전이나 교리서라고. 누구 닮았나? 천자문, 천지현황하니까 왜 하늘의 검소.. 파랗지? 왜넘 선생한테 따졌다고 1천년래 최대의 창조인 탄생이라고.. 나중에 알고보니 그게 삼황오제의 명칭 흑제, 적제, 청제, 백제, 황제라고 진짜, 오제가 사람이름으로 중국애들이 넣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요?

삼황오제

"삼황오제 신화의 기본 틀이 되는 상고대 시조 설화의 원형은 상나라 무렵부터 이어져 왔다. 그리고 춘추 전국 시대에 제자백가가 각종 사상을 주창하고 제후들에게 유세하면서 삼황오제 신화가 창조되어 틀을 갖추어 나갔다. 오제 신화의 경우 음양오행설이 유행한 이후에 5명의 제왕이 신화로서 정립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후대에 재창조된 신화이기 때문에 삼황과 오제의 구성원은 제자백가의 주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춘추 전국 시대에서 위진남북조 시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삼황오제 신화는 계속 재창조되었다"

내가 만들어냈다고 하네. 음양오행, 삼황오제이야기를. 오방제라고 해서 하늘의 신화이야기. 그리고 재창조되기에 천차만별로 이는 5가제도로 우리 상고사에서는 5가의 부족간의 지방행정조직, 호족이라고 하는데 5가, 7가, 9가로 늘어나요. 뭐 상고사의 실력을 알만 하네요. 그래가지고 어떻게 위키백과에서 인정, 불인정을 말하나.. 삼황오제 치기만 해도 되는데.. 유세를 떨기는..

그게 경전이나 교리가 아니고, 주역, 역법이라고 몇 번을 이야기해도 모르네. 환역도 모를 것이고, 이순지의 칠정산 내외편도 모르고,아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즉 역사서에서.. 신라의 국학.. 그래서 우리나라 국학원, 민족교육단체, 전통 민속과 나라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국학원.. 모르네.. 믿고 안믿고가 아니고 고대사, 상고사에서는 신화와 역법, 4서3경(혹은 5경)정도는 알아야지.. 도덕경에 왜 무위자연해놓고는 헛소리했는지? 당나라-왜로 이어지는 여왜 ,신또교도 알 수 있고.. 아닌가? 요즘에는 대충 인터넷으로 써치해서 논문쓰면 되나보네요. 참 좋은 세상이다. 쓸데없는 역사책 읽고 음양오행 알고, 명리학 사주팔자까지 배운 나도 모르긴 마찬가지지만, 이건 뭘 말하는지. 일본이라고 하지 말고, 왜도 아니고 재팬[Japan]이라고 하자고 했더니 망발이래네.. 허 참.--Canendo (토론) 2015년 4월 10일 (금) 17:51 (KST)

삼국사기가 무슨 옆집 순이가 쓴 일기장인줄 아시나요? 이병도한테 맨인블랙의 기억력 제거장치라도 있지 않는 한 삼국사기를 고쳐쓰진 못합니다. 증거를 제시했더니 이병도가 고친 거냐니... 하다못해 《일본서기》만 해도 720년에 편찬된 것입니다. 일본서기도 이병도가 조작한 건가요? 1889년이요? 이거야 정말 상대할 힘이 쫙 빠지게 만드는군요. 나머지 내용도 상대할 가치가 없습니다. 저야 말로 귀하께 말씀드리고 싶네요. 이건 대체 뭘 말하는 것인지.--Xakyntos (토론) 2015년 4월 10일 (금) 20:11 (KST)

삼국사기가 무슨 옆집 옆구리 터진 소리했나요? 해석을 그렇게 했다는 것이지. 지명도 모르는 곳이 그리 많고, 아니 일본자국 및 영어판에도 역사시대구분에도 일본이라고 한 적이 없는데 문무왕때면 백제패망후 부흥운동하고 백제 유민이 왜에 도착했을 때, 일본서기에는 지명으로 일본에 도착했다고 나오는데, 그게 무슨 국호라고 하느냐는 것이지요. 그리고 천황가가 세워지고 무당천황이긴 하지만 단군임금은 아니지 않았나요? 마치 천황하니까 임금이라고 하는데, 천황은 제천장이라는 의미지 임금이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제정일치 우리 상고사에서는 그렇게 나와도, 천황가가 언제 군왕이 되었느냐?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막부대신, 왕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국호를 일본으로 하자 해서 1889년 헌법을 반포한 것이지요. 삼국사기 한 도막으로 지방 군수가 일본이요 한 것이나, 백제의 원 지명이 일본인 것이나 '국호'는 나라로 인정하고 그 국가가 제대로 굴러가서 외교문서나 역사서(외국)문서에 일본으로 나와야지 인정합니다. 조선사실록에는 1868년이전에는 왜를 왜라고 했지 일본(지명빼고)이라고 국호로 인정한 적이 없고 나와 있지 않습니다. 상대는 봐가면서 해야지 어린 사람이 무슨 강단교수라고 무슨 역사학회에서 대단한 자리에 있는지는 몰라도, 문제가 심각합니다. 일본 국호도 좋지만, 취지는 그러한 것이 아닌데 마치 일본이라고 하든 말든, 영어로 재팬[Japan]으로 해야, 무슨 태양도 아닌 빨강기가 태양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고 야릇하고 정말 싫습니다. 이 민족사에 치욕이고 최대의 적은 무쓰히토 천하에 역천자로 우리역사서에 써놓아야 하고, 히로히토 전범자에 대해서도 우리의 역적으로 명시를 해서 가르쳐야 제3의 전범자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 한국국사교과서에 대한민국의 주적은 무쓰히토, 히로히토라고 명시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상대를 하든 말든 어린 선생과 말싸움할 생각이 없습니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0일 (금) 20:29 (KST)

별로 상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하도 파천황적인 낭설 속에서 살고 계신 것 같아 간단하게 하나만 반박해 드리겠습니다. 조선왕조 실록에 나온 일본 기사만 해도 5,556건이나 되는데 이건 국호가 아니고 뭐란 말입니까? 《신당서》〈동이전〉 일본 條에도 똑같은 기사가 있습니다. “惡倭名, 更號日本. 使者自言, 國近日所出, 以爲名.”해석은 하실 수 있으시겠죠? 대체 어떤 식으로 공부를 하면 1889년에 일본 국호가 처음 생겼다는 낭설을 믿을 수 있는 거죠?--Xakyntos (토론) 2015년 4월 10일 (금) 20:41 (KST)
뉴라이트 사관이군요. 왜 말고 재팬으로 하란 말을 이해하지 못하세요. 日과 日本은 다른 말인 건 아시죠. 우리나라 이름이 동국, 동방, 동이 등으로 국호가 아니 일반적으로 사용되어 왔다는 것은 인정하시죠. 東 동녁 동이 무슨 뜻이지도 아시지요. 동은 日木입니다. 사람들은 이게 해가 나무에 걸린 모양이다하지만, 원래 동녁 동이라고 정한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북방(북극성)에서 온 수정자, 즉 북에서 천신강림하시고 천손자손강림한 민족이다. 우리는 태양을 숭배하는 태양족이다. 그래서 옳은 쪽은 동쪽이다 동은 북극성을 향해 (해가 아니고) 해가 뜨는 쪽이 읋은 쪽이다, 오른쪽의 어원이고요, 이 때 이미 우리가 쓰고 있던 일목(즉 일본)이라는 한문 東이 된 것입니다. -東의 유래, 즉 日이면 日이라고 하지 日本이라고 구태여 말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즉 東하면 일본인데 무엇때문에 일본이라고 쓰느냐하는 것이지요. 일본하면 우리민족의 동방으로 본 뜻은 방향이 아니고 해의 본이라는 뜻이고 이를 모르는 재팬은 일의 환(알) 태양의 자손이라고 해서 환(桓)에서 그 자손이라는 환(丸)이라고 했습니다.

1. 조선왕조실록에 나온 일본기사는 현재 번역본을 말씀하신 것이고, 그 내용에는 倭, 倭寇 왜국이 나오고, 일본이라고 하는 말은 지명 혹은 군사를 말합니다. 일본郡, 일본軍이라고 임진왜란 때 일본이라는 군현에서 왔다 물자수송이 되고 있다는 등의 표현이지 국호로 쓰인 경우가 없습니다.

임진왜란을 임진전쟁으로 바꾼 뉴라이트 역사학계 당시는 침략해온 왜적일 뿐, 일본이란 표현은 적절치 않다.

왜가 자기자신을 일본(일)이라고 표현해도 조선의 입장에서 왜를 일본이라고 받아준 적이 없다는 내용입니다. 비록 역사란 아와 피아의 관계를 기록하나, 무릇 아의 역사를 위주로 해야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일본은 왜가 자신들을 높이기 위함이지 외교관계상 일본이라고 국호를 인정해주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다. 즉 [임진왜란]이라고 이름한 것을 [임진전쟁]이라든지 [임진일란]으로 바꾸자는 것은 뉴라이트 일설이지 정사가 될 수 없습니다. 조선왕조실록 등 조선정부에 의한 기록을 토대로 역사를 본 다음, 이에 대한 비평과 비판을 정사와 야사로 나누어 쓸 수는 있어도 모든 이가 알고 있는 [임진왜란]을 겨우 몇번에 걸쳐 나온다고 해서 해국이나 태양국으로 불러줄 수 없슴은 일본은 바로 동국이기 때문입니다. 東의 본 뜻이 일본으로 해의 본은 동이라는 개념도 없이 일본을 태양이라고 하는 것은 빨강이 해다, 해의 색상은 빨강이라고 알리는 것은 진리, 세상의 모든 과학과 이성을 歪曲하는 것으로 빨강해가 일본이라고 한다면, 日은 하양이므로 일본은 倭라는 지명의 지칭으로 日이라는 말과는 다르다는 것을 정해야 합니다. 이에 일과 일본, 동의 관계가 정립이 안된 관계로, 일본이라는 의미가 빨강해라는 의미라면, 矮小星(dwarf star, 마지막 불꽃-빨강색-을 뿜어내는 별)을 숭배하는 일의 뽕이라면 그리 정하여 알리라고 하면 됩니다. 빨간 해는 태양의 마지막이라는 뜻으로 가장 높이 뜨고 강렬한 해는 "하양"입니다. 빨강은 지는 해의 색상이고, 저녁노을에서는 노랑색으로 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양에 대한 정의도 없이 재팬이 해달라는 방식으로 한.일, 이것은 물론 한이 더 높기에 해와는 비교가 안되기에 재팬의 착각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태양은 북극성, 은하계의 중심태양을 의미하는 것으로 日 나 일입니다. 즉 나는 이 땅의 하나사람도 "나"이기에 1인칭을 말하고 국본과 같이 일본은 바로 東을 뜻합니다. 그러나 재팬이 말하는 해는 빨강 해로, 왜소성을 의미한다면 재팬이 맞는 말이고, 북극성이 아니고 해(Sun)을 의미한다면 日이라고 해야한다는 뜻입니다. 일본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해의 옳은 쪽으로 일의 동쪽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혀 의미가 다른 한문의 의미입니다. 국호논란전에 일과 일본의 의미해석이 전혀 다르기에 조정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2. 일제(일본제국, 1889년, 일본제국헌법)은 왜 한국이라는 명칭을 없애려고 하였나?

일본은 왜 국호 '한국'을 없애버렸나? [역사탐험] 대한민국 국호의 비밀을 찾아서

이 이야기는 한[韓]이라는 이야기로 고래로 조선을 국호로 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檀國 조선이고 桓國이라는 말이 삼국유사에도 나오는 말인데, 이를 단군조선이다고 합니다. 단군은 檀國의 天君으로 임금님을 줄여서 단군이라고 하지 국호는 檀입니다. 桓은 하늘의 광명(하늘로부터의 광명)이라는 뜻이고, 檀은 땅의 광명(땅으로부터의 광명)입니다. 환단은 바로 이를 아울러서 한[韓]으로 하늘로부터의 광명과 땅으로부터의 광명을 천왕으로 사람의 광명까지라는 천지인삼재의 광명으로 환국이든 단국이든 모두 한[韓]이라는 말이고 이는 중앙에서 서 중앙, 진한의 의미로 쓸일 때는 가한, 칸, 간으로 바로 임금님 칭호이면서 나라칭으로 쓰이던 우리를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桓韓檀은 모두 하나(하늘의 광명) 한[韓]이다. 이 뜻을 알고는 일제는 이를 없애려고 한 이유입니다. 대한(大韓)은 아무나 쓰는 말이 아니고 한의 제후들이 대칸으로 위대한 하나의 한이시여라는 의미로 대한은 바로 칸[큰한]으로 대웅(大雄)으로 환웅 천왕을 이름하는 배달의 대외적인 이름이 대한입니다. 그러나 칸을 의미하는 것은 한[한]입니다.

조선의 朝는 十日十月 한국말로 풀자면 "해를 품은 달"입니다. 즉 천군, 왕도 그냥 왕이 아니고 열개의 해와 열개의 달로 열은 최고, 하늘, 큰 大로 바로 온천하의 태양을 품은 달(땅 혹은 사람, 임금)을 의미하는 우리나라 조상이 만든 한문입니다. 특히 이 글자는 저 하늘의 북극성 십일십의 땅으로 제천-하늘에 제사-을 지내는 곳(땅)이라는 뜻으로 소도에 해당하는 가장 중심이 된다는 소도가 있는 곳으로 국호가 아니 수도, 제천을 하는 사람으로 천왕, 천군의 의미기 때문에 일본을 하나의 해로 그 본은 동쪽, 옳은 쪽에 있는 지명이름야.

3. “ 일본 국호의 유래 ”

日本이란 한자표기고,순우리말로 '해'고, 지나인들이 발음하면 '왜'가 되는 것이다.일본열도에 사는 사람들이 한반도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러한 용어는 북방의 진번한 유민들과 부여세력이 이주하기 전부터 일본열도에 거주하며 살고 있었던 마한인들을 의미하며, 영산강지역을 日本의 중심으로 문화네트워크가 연결되었기 때문에 日本이란 사실 한반도 마조선인들을 의미한다.그리고 신라에게 멸망하여 이주한 가야인들과 백제인들이 한자로 고상하게 日本이라고 정했다고 봐야 한다.

요시다도고(吉田東伍)가 펴 낸 ‘대일본지명사서’(大日本地名辭書)의 (국호론(國號論))과 명치(明治) 33년 1월에 발간된 역사잡지(歷史雜誌)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 ‘日本’이라는 국호는 원래 한국인들이 일찍부터 써온 것인데, 우리나라가 그 이름이 아름답기 때문에 국호로 정했다. (伴信友)
  • <日本>이라는 문자(文字)는 상고(上古)로 부터 사용해온 (히노모도)라는 말에 한자를 충당해서 쓴 것이며 <日本>이라는 이름 그 자체는 삼한(三韓)사람들이 쓰기 시작한 것이다. (星野恒)
  • <日本>이라는 국호는 원래 한국인들이 쓰던 것이다. 그것이 우리나라 국호로 더욱 적당하기 때문에 만세불변(萬世不變)의 호칭이 됐다. (木村正辭)

이러한 것을 다 열거할 수 없고 참고하면 되고, 아무리 주장해도 왜를 왜라고 함은 일본이 왜가 아니기 때문이다.

4. 백제와 왜 :누가 먼저 사용한 것인가? 이 이야기는 당에서 유민생활을 하고 왜로 망명한 백제유민들이 백제대신 백제의 동쪽 일본땅을 일본이라고 했다고 하니, 그럼 과연 백제패망전에는 왜가 일본이라는 말을 국호로 썼는가? 백제부흥운동에 400척의 함선을 보냈다가 백강, 발해만 백강에 도착하기 전에 몰살을 당한 대참패는 신라해군에 의한 완벽한 승리로, 육상전만이 아닌 해상전에서도 대단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이야기입니다. 일제 조선사편찬회의 반도사관에서는 이 백강전투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었다는 이야기. 이후에 백제의 정권이 왜에 들어서나 완전 장악을 하지 못한 신교에 도교(당나라국교)를 수입하여 천황(신도교의 수장, 교황에 해당)이 그 신도교의 수장이라는 뜻이지 왜전체의 집권자 왕이라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단] ‘일본(日本)’이라는 국호, 백제와 왜(倭) 중 누가 먼저 사용했을까? 처음 사용 시는 ‘해 뜨는 동쪽의 나라’라는 방위 개념!

당나라 노새 노새 오합지졸 모여라. 당나라군대냐? 는 바로 7년간의 신라와 당나라와의 전투에서 신라가 100전 100승으로 당나라가 조의선인, 흉노군단의 흉내를 내서 병사들에게 까만 옷을 입혀내보냈으나, 그들은 화랑도 조의선인도 아니기에 군기도 없고 싸움에 대한 기본기가 없는 군대로 백전백패로 이 이후 당나라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것이 신라가 한 일로, 당나라를 직접 치지는 않았지만, 수십년에 걸친 통일전투에서 마지막으로 삼한의 땅을 당에게서 지켜내기 위한 노력으로 전력을 다했다. 당은 패망했고 신라는 기운이 없어, 발해와는 같은 동족으로 싸움을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 삼국사기

당의 문물을 가져간 것은 위대한 천자문의 나라 왜가 아니고, 왕인박사의 백제인들이 왜에 전한 것이다. 그래서 기원후 700년전후로 왜에 [일본]이란 말이 사용되었으나, 이는 지명 혹은 방향으로 해의 옳은 쪽, 본으로 동쪽을 가르키는 말로 사용되다 명치유신후 일본제국에서 명문화하여 쓴 것이 [일본]이다. 그러니 빨강과 해의 기본개념도 없이, 빨강은 피고 전쟁이다 식민제국주의의 표상으로 [빨강]해를 그린 것이다. 해는 평화고 생명인데 왜는 이를 歪曲하여 이 땅에서의 지존, 하늘의 명에 의한 빨강군대라는 의미이나, 이는 성경적으로나 개념적으로 적 그리스도로, 빨강해를 상징하는 것은 악마의 부대, 사탄이라는 의미다. 해를 상징했으면 빨강해가 없는 하양기, 백기를 썼어야 한다. 고로 일본은 해를 모르고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의 상징으로 히틀러의 하켄크로츠(갈고기 십자가)에 빨강 바탕을 칠한 것과 같은 제국주의 표상일 뿐 그것은 해가 아니다. 교육이 필요한 점. 자라나는 애들에게 이 히노마루 깃발은 해가 아니고 "원숭이 엉덩이"다를 알려주려고 [대한의 노래]가 나온 것이다.

5. 8세기 이후 백제도래후 백제대신 일본을 썼다.. 이것은 백제인들이 왜에 도착한 땅을 백제의 일본(동쪽)이라는 의미로 쓰인 것으로 백제인들은 이 뜻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아무리 간 큰 동이족이라도 동방예의지국의 후손이 자신이 태양 그 자체로 원 지하를 다스리겠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고로 일의 본은 東으로 태양의 본은 바로 百(濟)로 백제의 후손이 일본이라는 말로 썼으나, 국호로 책정된 것은 수백년, 1천년후의 일이다. 쓰여왔다와 국호다는 것은 재팬의 역사서에 공식화 되지 않은 국호를 우리가 사용해주어야 한다는 것은 사대주의가 아니고 패배주의적 식민사관이다.

일본의 역사

그 어디에도 일본을 국호로 사용했다는 것은 없다. 명치유신(1868년) 정식국호 반포 (1889년)으로 일본이 국호로 정해진 것은 공식헌법을 기준으로는 1889년이고 이때 국호는 [대일본제국]으로 [일제]라고 우리가 근현대사를 서술할 때 사용하는 용어이고, 명치유신까지 포함하더라도 1868년이 재팬이 인정하는 일본 국호다. 일본이 국호가 아니라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으면서, 조선왕조실록에도 분명 [임진왜란]으로 되어 있는 것을 부정하고 이를 [일본전쟁] [동북아 일본의 십자군전쟁]등으로 서구의 기독교 신자(그리사탄)의 전방부대 수만명이 들어와 조선의 양민의 코를 베어갔는데 그것은 일본, 일(동국)의 본으로 조선의 본은 일본이었다고 강요하는 신식민지 사관이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로, 정사에 나온대로 [임진왜란]이고, 자주적인 아의 역사를 쓴다면 을사늑약은 무효이기에 [경술왜란]으로 한국의 역사를 쓰는 자주적인 역사관이 필요한 시점이지 일본의 국호가 기원전 660년부터 사용된 천황 만세의 일가의 적통이 아니다. 역사는 무릇 나의 입장에서 반성할 점은 반성하고, 고쳐야 할 점을 찾아 다시는 그러한 치욕이 없도록 준비하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나라혼의 받침이 되는 민족혼의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일개 뉴 라이트가 말한다고 신식민주의 역사관이 신문명 신문화의 주류라고 하는 것은 자가당착으로 신사대주의로 제국주의론이나, 우리나라가 제국화하겠다고 한 적이 없다. 고로 신식민사관의 개념은 재팬의 극우파논리로 정한론이 우리의 역사기준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므로 주류 강단의 역사학자라면, 정확한 의미와 뜻을 전해, 필히 우리의 역사는 우리의 정신과 피로 적어야 함을 알려야 한다.

감사합니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1일 (토) 03:16 (KST)

조선왕조 실록에 나온 일본 기사 저기요. 이거 원문 검색 결과입니다요. 번역 말고요. 번역은 5268건으로 따로 검색되요. 하 참... 이거 상대하는 내가 더 힘이 빠지네.--Xakyntos (토론) 2015년 4월 11일 (토) 07:52 (KST)

알았습니다.열심히 일본 하세요. 일본은 해의 본이니 빨강이지요. 빨강 해.. 나는 빨강을 해라고 하는 아이들이 일본이라고 한다고 해도 그게 어떻게 해냐고 한 것이고, 왜는 왜로 Japan [재팬]이라고 해야지, [니혼] [닛뽕]으로 써주면 안되지요. 제들은 [간고꾸]라고 왜어로 쓰지 않나요. 맛이 [간] 고꾸.. 한신[韓神]은 [가라가미]지요. 가라는 가야지요. 가는 하늘 가고 라는 땅이지요. 그럼 가라고꾸라고 읽어야지요? 안 그래요.. 아무리 떠들어도 [임진왜란]이 [임진전쟁]으로 승격될 수 없음은 코베인 저 기리사탄의 십자가 부대에 대한 검은 까마귀, 조의선인들이 나올 것임을 알리는 것이지요. 너무 아베가 설치니, 설치지 못하게 해야지요.. 아무리 원숭이 엉덩이가 불에 타서 샛빨개져도, 독섬, 뚝섬, 치우천왕 도깨비섬을 다케시마. 대죽? 하면 안되지요. 그건 역사를 호도하는 것이 아니고 세뇌시켜 식민지가 좋았다. 좋을 것이다고 하는 뉴라이트 신식민지사관이라고 합니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1일 (토) 08:16 (KST)

잠깐만요. 위키백과의 정책과 지침은 알고 계십니까?[편집]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위키백과는 많은 사용자들의 자발적 참여로 풍성해지는 시스템이긴 합니다만 필연적으로 그에 따른 정책과 지침들이 있습니다. 뭐... 전부 정독하기에는 시간도 없고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으니 차차 보시고 일단은 백:독자 연구 금지, 백:신뢰할 수 있는 출처, 백:확인 가능, 백:중립, 백:비주류 이론, 백:인신 공격의 6가지부터 숙지해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귀하의 열의는 매우 고무적입니다만, 이상의 정책과 지침을 준수하지 않으신다면 그 기여가 모두 되돌려질 수밖에 없으며 너 나아가 차단조치 될 수 있습니다. 하시는 일이 잘되시기를 바라며 또한 감사합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4월 11일 (토) 21:40 (KST)

일본의 국호는 일본입니다.[편집]

마음대로 국명을 바꾸지마세요.--Iroiromo (토론) 2015년 4월 12일 (일) 14:34 (KST) 지금현재 국호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일본서기]의 위서와 정서냐에 대한 토론입니다. 즉 기원전 660년, 혹은 기원후 2세기 고분문화부터 일본이라는 국호가 있었다고 한 것에 대해 아니다는 것을 설명한 것입니다. 왜[Japan]으로 임진왜란이지, 임진일란, 임진전쟁 등은 당시의 국호를 그대로 사용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2일 (일) 15:23 (KST)

단순히 그것만 가지고 얘기한다면 동의합니다. 그런데 토론중인 주제가 그것뿐인가요?-Iroiromo (토론) 2015년 4월 12일 (일) 16:16 (KST)

본 일본은 백제라는 의미로, [재팬]은 영어로 다른 나라도 다 [재팬] 영어발음으로 합니다. 굳이 태양이라고 해줄 이유기 있는가입니다. 일제때야 [아까이 히노마루]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했다고 하지만, 실제 해의 색은 하양이기에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히노마루의 원 뜻은 해의 흑점으로 까맣게 그려야하고요. 태양의 본 색은 하양[白]으로 백제의 동쪽이라는 뜻이기에 [일본서기]가 정사라는 이야기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욱일승천기라고 하지만, 전혀 해가 아닌 빨간 깃발로 전쟁깃발로 일일이 빨간 해는 일본이 아니다고 해 줄 이유도 없지 않으까 합니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2일 (일) 18:22 (KST)

일본의 국기를 가지고 그렇게 얘기하시는 것은 조금 억지라고생각합니다. 그런 식이라면 팔라우의 노란 원은 달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달은 본래 노랑색이 아닙니다. 중국의 오성홍기 역시 노란 별이 그려져 있으나 별은 원래 노랑색이 아니죠. 미국의 성조기도 하얀 별이있으며 마찬가지로 별은 하얀색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태극기는 어떤가요? 음과 양을 상징하는 태극무늬가 그려져 있는 데 음과 양을 과연 빨간색과 파란색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억지입니다. 단지 그것들은 상징일 뿐입니다.-Iroiromo (토론) 2015년 4월 12일 (일) 22:28 (KST)

그건 그렇지 않다고 한 것은 국기에 빨강을 썼다고 나쁠 것은 없습니다. 의미가 빨강을 그리고 그것은 힘이다하면 되는데, 하도 일제시대때 [아까이 히노마루]라고 하니, 어느 어른이 아이들에게 아느냐고? 해는 빨강이라고 하고 떠들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아니다고 하니까 아까이 히노마루.. 충성해.. 해에게.. 하니 그것은 해가 아니다고 아이가 울고 나갑니다. 그건 해가 아니에요.. 그게 맞아요. 청일전쟁때, 청나라의 청천백일기는 오행색이에요. 그런데 일제가 그랬답니다.해를 하양으로 그렀다. 그래서 아까이히노마루가 이겼다는 해는 빨강이다. 그건 아니다는 것이지요. 청천백일은 청제인 창공과 하양 해로 삼화오제의 오제 오방색이지 국가의 표상이지, 전쟁의 이기고 지는 것인 빨강 해다, 그건 아니다에요.해는 하양이 맞아요. 각국가 민족마다, 전통색이 다르고 그것을 쓰는 것은 자유입니다.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아까이 히노마루] 빨강해가 일장기고 해다. 그러니, 해는 바로 니혼이다. 그리고는 동해에다가는 [Sea of Sun]이 아니고 영문으로는 [Sea of Japan]이라고 했지요. 그래서 재팬이라고 읽자고. 아니 그렇게 하면 니혼 정부에게 직접 [Sea of Nippon]으로 하자고 하세요. 왜 한국에서 [니혼],[닛폰]이 어떻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네요. 아니 내가 지금 틀린 말 한 것이 아니잖아요? 해는 하양이다, 그러니 해를 빨강으로 하는 것은 재팬밖에 없다. 그러니 그 말은 믿으면 안되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재패니즈다. 그것을 이야기하는데, 무슨 국기를 어떻네. 않네. 음양은 반극이에요.반대되는 색으로 하양과 검점, 그리고 빨강과 파랑이 맞아요. 그런데 재팬때문에 꺼꾸로 그려놨죠. 아세요? 해가 빨강이라고 하니까 위에다 그리고, 아래를 파랑으로 했지요. 박영효가 그랬어요. 재팬 아까이 히노마루 때문에, 원래는 음양할 때 하늘이 파랑이고 땅이 빨강이에요. 그걸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맞아요, 반으로 중앙으로 반극을 그려야 하는데, 멍청하게 해가 빵강이니 위에 있고 그 아래 하늘이 있다고 그려놔서 우리는 아직 빨간해를 넘지 못했나봐요. 그래서 색깔도 원 우리의 정신으로 바꾸어 나가자 하고 공부하고 가르쳐야 한다는 이야기에요. 아이들은 어릴 때 잘못 알면 평생을 [아까이 히노마루]로 빨강이 해인 줄 알고 살아요. 그게 식민지교육의 악영향이지요. 이제는 고쳐야 하지 않겠나요? 안 그래요. 아무리 무작정 니혼이 좋아도, 진리, 상식은 지켜야지요. --Canend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09:30 (KST)


[재팬]의 국호는 재패니즈로 [日本]입니다. 우리는 한문으로 쓰지 않기에 [일본]이라고 정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일부 언론사나 기사는 왜가 아니고 일본이라고 씁니다. 구분이 필요하기에,임진왜란때 쳐들어온 기리시단 등은 일본이 아니고 [왜]라고 해야합니다. [일제]가 1889년-1945년까지고 그 이후가 [일본]이라는 구분은 해야합니다. 마치 기원전 660년에 일본이 현재까지 천황가로 지속되었다 천세일가로 장손국가다는 것을 믿으라고 믿는 것은 안된다입니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2일 (일) 18:22 (KST)

그리고 일본을 자꾸 재팬이라고 부르시는데, 재팬은 영어입니다. 국가를 부르는 명칭에 대해서는 미국,영국,그 국가에서 부르는 발음대로 부르는 것이 명칭입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한자로 日本이며 이걸 한국식 발음으로 일본이라고 부를 뿐입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에도 일본의 국호는 '일본'이었습니다. 8세기경 나라시대 때부터 일본 이라는 명칭을 사용해왔습니다. 그러니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또한 조선에서 왜라고 부른 것이지 일본 자국내에서 왜라고 부른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일본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습니다.-Iroiromo (토론) 2015년 4월 12일 (일) 22:41 (KST)

그 국가에서 부르는 발음대로 부르는 것이 명칭입니다 : 네 잘 알겠습니다. 그 나라에서 발음하는대로 표기하고 있습니다만, 잘 모르겠다고 위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니혼/닛폰] 혹은 [니혼코쿠/닛폰코쿠]라고 해야한다고 하는데, 니혼과 닛폰 혹은 닛뽕인지 정부가 정할 문제이라서 한번 물어 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서 말한다고 다 들어주나요? 우리는 우리자국의 땅으로 [독도]라고 하는데 이를 굳이 [다케시마]라고 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쓰시마]도 [대마도]가 한문이름인데, [마산]은 어디가고 [쓰]만 있는지요? 닛뽕에서는 영어발음 표기는 안하나보죠. 우리는 영어로도 유나이티드 어메리카, 혹은 [유에스에이]라고 적어도 다 알아듣고 사용이 가능한 것으로 아는데,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줄여서 중국하는데, 일본국[발음: 닛뽕고꾸]을 해도 아닌데 일국으로 해라? 왜요. 일본과 일은 다르다고 했지요. 동과 해가 같다는 것은 이해가 안됩니다. 그리고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 또한 [조선]에서 왜라고 부른 것이지 [왜]에서 일본이라고 불렀다고 역사의 기록을 바꿔라 마라할 권한이 있으세요? 부른 적이 없건 있건간에 베어간 코들은 어떻게 할 거에요? 그걸 이야기해야지 무슨 [임진왜란]으로 왜놈 이야기를 왜놈 이야기했다고, 침략전쟁을 한 톨의 양심도 없이 왜에서는 일본이라고 했다. 그러니 그렇게 불러라. 왜 그래야 하는지를 이유를 이야기해야지요? 토요토미 히데요시 기리사탄이 닛뽕[일본]이라고 건방지게 한 편지요. 그거 웃기지 말라고 했다가 침략한 거 아니에요? 왜 정명가도면 배타고 가지 맨날 조선에 대한민국에 침을 질질 흘려요? 독도가 왜 닛뽕 땅이니?--Canend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01:46 (KST)

정확하게 알려주면 (영어로), 고려하도록 하지요. 개인적으로는 [니혼]이 나은데 [닛폰? 닛뽕]으로 하라고 하니까, [닛뽕 Nippon]으로 하라는 이야기네요. 안배는 [아베]라고 하고 있고 동경도 [도쿄]라고 기사에는 다 적는데 관습적으로 닛뽕을 일본으로 말하고 적고 있습니다. [닛뽕]으로 써라고 하니... 발음이 이랬다 저랬다.. [니혼]고라고 하니 [니혼]이 발음하기는 좋은데.. 이건 내가 말할 사항이 아닌데.. 대한민국 정부에서 정할 문제고 국가 발음 통일안을 정해야, 우리식 표기는 [일본]이고 발음나는대로 적으면 [니혼], [닛폰]이고 영어국명은 [Japan]이니 이를 [재팬]이라고 하는 것은 안 좋다? 그럼 [저팬] 아니면 Zippangu 외국에서는 지팡구 레스토랑, 지팡구가 뭐에요 물어보니, 그거 예전 20세기에 닛폰에서 불렀던 자국명칭이라고 하던데.. 내가 알아야 할 사항은 아니니, 앞으로는 [닛폰, 닛뽕]으로 말하겠습니다. 되었지요. 그리고 닛뽕 사회과부도에는 현계탄(玄界灘)이 대마도와 닛뽕열도사이라고 나와 있는데, 일제시대때 한국 지리과부도에 대마도와 한반도라고 했지요. 대마도가 마치 닛뽕 땅처럼, 우리나라 지리과부도는 고쳐야 하는데.. 언제 돌려줄지 대마도를 그거는 알려주셔요. 독도의 원 한문은 [毒島]로 독섬, 뚝섬으로 도깨비섬이에요. 다케가 시마라는 곳은 없어요. 그리고 류구국은 독립시켜주셔야죠.. 그 아이들이 얼마나 상심이 크겠어요? 안그래요..해방된 지 70년이 지났는데..--Canend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02:08 (KST)

재팬 -니혼, 닛폰으로 해달라? 정리[편집]

어이가 없네요. 그냥 평생 재팬이라고 부르세요. 물론 혼자 그렇게 불러야겠죠? 여기서 반달하지 마시고. -Iroirom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02:09 (KST)

[재팬]이라고요. 네.. 재팬이 좋지요.. 그래도 조선인민공화국에서 재팬을 왜라고 재팬 킹을 왜[倭]나라, 왜왕[倭王]이라고 하는데, 그게 좀 더 민망하네요.. 그래도 영어로 [재팬]하면 더 좋지요. 외국인과 만나서 이야기할 때도 [닛뽕]보다는 [재팬]하면 다 알아들으니까요. 세계공용국가명칭이라.. [재팬] ? 발음이 나쁜가.. [저팬]으로 하는건가>> 내 발음문제니 [재팬]으로 하겠습니다. 아리가 또우....--Canend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02:21 (KST)

일본의 자국발음대로 표기하라는 의견 정리. 원 발음은 [니혼, Nihon]이고, 니혼정부의 입장은 [닛폰,닛뽕 Nippon]으로 전세계에 자국발음으로 표기해달라고 했으나, 별 반응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니혼/닛폰]으로 정리하고 [니혼코쿠/닛폰코쿠]라고 통일하려고 했으나 정부의 결정은 없다.

일본 – 일본국

일본어: 日本 – 日本国 니혼/닛폰 - 니혼코쿠/닛폰코쿠[34]

니혼의 영어국가명칭을 공식적으로 [Japan]으로 영어발음, 세계화를 위해 영어국명을 발음나는대로 하는 것이 현 국가명칭 표기법으로 정한 바, [저팬] 혹은 [재팬]으로 불리우나, 활음조법칙에 따라 같은 모음으로 발음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임. [재팬]

교육의 문제, 현 일본의 뜻은 동(東)쪽, 혹은 동쪽땅이라는 의미로 원래 사용한 사람들은 중국대륙에 있던 백제에서 불렀던 지명이름으로 추정됨. 즉 백제의 일본으로 백제속 지방명칭이나 그 명칭자체의 의미가 좋아 국호로 1889년 정식 국호로 [대일본제국]으로 정하고 현재는 [일본국]이라고 하고 있음. 일본의 다른 뜻은 해의 본이라는 뜻으로 해의 본체는 하양으로 백(白)으로 百濟의 일백의 하나로 백제를 지칭하는 말로, 하양임. 그런데, 일장기에서는 빨강의 원을 표시하여 태양이 아닌 다른 의미로 사용중. 치우천왕의 빨간 도깨비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듯함. 日의 丸, 일명 일장기의 명칭으로 이는 태양의 흑점이라는 원말로, 이 태양의 흑점은 말 그대로 흑(黑)으로 검정색이어야 하나, 마루를 桓으로 생각하여 쓴 듯하지만, 확실한 내용이 없슴. 맞지 않는 뜻으로 대동아전쟁중 총탄, 가미(신)가 되자는 의미로 쓴 것으로 현재는 [히노마루]라고 부르지만 [日章旗]로 법제화함. 교육상 해의 본(해의 색)은 하양으로 우리나라 경우, 해를 빨강이라고 하는 것은 감정적인 시각적 작품에서 사용하나, 과학시간에서는 진리가 아니므로 주의가 요망됨. 과거 '대한의 노래' 일명 '원숭이 엉덩이'에 후렴부를 넣어 그 뜻을 알려야 할 것으로 보임. 해를 빨강이라함은 해가 떠오르는 모양이 아니고 해가 익어 지는 모습으로 노을이 지면 노랗게 변하는 해가 중천에서 반정도 기울어졋을 때의 색이 '빨간 해'임. 교육상 주의가 필요함. --Canend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02:47 (KST)

참 국기 가지고 교육상 주의가 필요하다고 하는 분은 처음이네요. 그럼 부탄 국기는 존재하지도 않는 용이 그려져 있으니 주의가 필요한가요?-Iroirom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08:29 (KST)

빨강이 해라는 것은 없다입니다. 해가 빨강이라고하는 국기는 [재팬]밖에 없어요. 그리고 나치기하고. 다른 터기 등의 국기는 땅의 신을 상징하기에 문제가 없어요. 그러나 [히노마루]는 해의 흑점이면 흑(검정)이고 해라고 표상을 하면 빛으로 하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진리요 과학입니다. 의미를 아무리 자기 마음대로 가져다 붙인다고 되는 것이 진리는 아니라는 말씀. 애들이 보고 [아까이 히노마루]하는 것을 제국주의 전쟁찬양을 위한 놀이이니 주의를 해야한다는 것. 동양의 기본철학을 모르면 그것이 [재팬]이다는 뜻이 됩니다. 빨강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쁘다가 아니고 해라고 하면서 [빨강]을 그렸으니 그것이 문제다. 즉 해는 빨강이 아니다 죽임과 전쟁, 피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는 그러한 죽음, 피, 전쟁의 빨강을 해로 표상하는 국기는 없다. 다른 말로 힘의 상징이다고 하면 모르지만 [니혼]이 [아까이]하면 서로 맞지 않는 말이므로 이제는 속지 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셨습니까? 태극의 이론은 조화고 평화지, 무슨 독도는 [재팬]땅하는 것이 아까이 히노마루로 해가 빨강이 아닌데, 빨강이야. 알았어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국기 상징이나, 디자인, 색체학은 전문기관에 알아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과학선생한테 해(빛)의 색은 무엇입니까? 물어보고 [빨강]이다고 하면 그 이유를 가지고 와서 질문하세요. 힘듭니다. 무슨 색체학 선생도 아니고, 해가 빨강이 아니고 [하양]이라고 하는데도 무슨 말이 그리도 많은지.. 白 해의 본(日本)은 하양(White)다. 이는 과학이고 진리입니다. --Canend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09:06 (KST)

우리 하나 태극기[편집]

우리 하나 태극기를 빨강 파랑으로 음양을 표시한 것이 잘못이 아닌가. 잘못 된 것일 수도 있으나, 이는 태극의 이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늘은 좌선이고 일월은 우선이며 지구는 좌선이다.

태극의 원 뜻은 천일(하늘의 뜻)은 하나고 물의 도이며 파랑이다. 지일(땅의 뜻)은 둘이고 불의 도이며 빨강이다. 인일(사람의 뜻)은 셋이고 목의 도이며, 노랑이다.

이게 삼극 즉 이 모든 것이 하나로 태극이다. 무한창조다.

이것은 한번에 나오는 것이 아니고 파랑-빨강-노랑의 순서대로 나와 안정을 취하고 다음 태극이 나오는 우주의 이치인 순환을 의미하고 하늘의 뜻에 따라 사람이 하늘과 땅의 도에 합치한다는 인중천지 일, 즉 사람은 천지중에 하나가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는 무극이고 둘은 반극(음양극)이고 셋은 태극(삼극)이다.

자 단순하게 정지된 상태에서는 태극기는 잘못이다고 볼 수 있지만, 현재 진행중이다. 즉 현재 하늘이 나오고 땅이 나와 위로 덮었다고 보면, 다음에 노랑이 나오는 진짜 태극을 이룬다. 이것은 아마도 통일기가 될 수 있는 우리나라 통일의 염원이 담겨있다고 보면 됩니다. 하나둘셋, 지금은 하나둘, 하늘땅. 그리고 사람이 합일 통일하자는 태극의 원리로 인류평화와 사랑의 하나가 되자.

그것이 홍익인간이므로 현재는 하늘이 나오고 땅이 나오고 아직 통일이 아니되었기에 하늘땅이 있고, 사람이 태극이 나와야 우리 하나 태극, 무한창조기가 그려진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독도기로, 뚝섬의 좌독기, 좌선기는 치우천왕의 표상입니다. 잘못 알고 있는 독섬,독도의 한자 獨島는 뜻이 무릉도이고 이는 바로 도깨비섬으로 독섬이라는 뜻입니다. 이유는 병풍으로 울릉도가 무릉을 감싸앉은 형태의 우리나라 동해의 해, 태양신의 성지로 천독(신불)의 섬으로 바로 독도(毒島) -조선천독의 그 독으로 독하다가 아니고 主母로 이 땅의 신, 치우천왕의 독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도깨비 천왕의 지킴섬입니다. 아무리 다케가 어떻다고 해도, 다케는 다케지 시마는 없다는 것을 태극이 보장하는 진정한 하나의 표상 독섬이 동해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게 하나요, 태극이고 독도의 의지입니다. 아무 뜻도 없이 해는 빨강이다. 그러니, 빨강앞에 이길 자 있느냐, 내놔! 그것은 빨강해의 의지로 절대로 고분고분 내 주어야 할 우리 영토, 우리의 정신, 우리의 역사임을 알자는 뜻입니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09:51 (KST)

달은 노란색이 아닌데 노란색으로 그려놓은 팔라우의 국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프랑스의 국기는요? 파란색 하얀색 빨간색이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한다는 근거가 있나요? 국기는 그냥 상징일 뿐이에요.-Iroirom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13:48 (KST)

당연한 걸 자꾸 물어요 왜? 국기는 그냥 상징이에요. 맞아요. 근데 왜 강요하냐고요. 왜? 해가 빨강이면 [닛뽕]으로 하든지 말든지, 그러나 [아까이 히노마루]가 어떻네 저떻네 자랑하지 말아요. 지겨워요. 지발. 뭔 좋은 상징도 아닌 빨강으로 욱일승천기(Sun-Rising Flag)라고 내걸고, 731에 욱일승천기 달면 그게 욱일이냐고요. 강일이지.. 그걸 강요하고 보라고 유튜브나 그런데 올리고 홍보하니까 아니라고 한 것이지.. 속지말라고. 어떻게 해냐고.. 닛뽕 해만 빨강이라고, 왜 강요하냐고요. 애들이 보면 해는 빵강.. 아니 80먹은 노인네들이 해는 빨강으로 알고, 왜 해가 빨강이에요? 하니 어린 시절 [아까이 히노마루]해서 매일 외워서 그렇다고 하잖아요. 반복 세뇌 안시켜도 아니까 그만 해요. 지발. 어떻게 [다케시마]가 닛뽕꺼냐고요. 닛뽕이 왜 서쪽에 있냐고요. 알아들어요? 닛뽕의 닛뽕은 진주만이지, 왜 자꾸 서쪽이 닛뽕이라고 하냐고요. 핵심을 이야기하지 않고 전 세계 깃빨 연구하라고 하니. 참. --Canend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13:58 (KST)

색상은 각 민족 지역에 따라 달리 생각해요. 그래서 파랑하더라도 다르고요. 검정은 서양에서는 죽음의 색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태양족이기에 태양에서 오니 까만 까마귀, 즉 태양에 타서 까망으로 온다. 북수는 흑이지만 바로 고마와 같이 신의 색이라고 해요. 즉 죽음은 새로운 삶의 씨앗이라는 뜻이고요, 그래서 그 색을 괘에다가 넣은 것이고요. 그런데, 자유, 평등, 박애라는 의미로 빨간색을 넣었다. 얼마나 좋아요. 적십자에 현혈은 전쟁, 불, 화재 그러한 상징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닛뽕기는 아예 대놓고 해는 빵강이다고 하니, 닛뽕애들에게 해를 그리라면 아주 쌧빨깐 해를 그려요.. 그럼 인성도 안좋고요, 또 과학적인 진리와는 정반대되는 색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에요. 그게 좋은 뜻으로 열정이라고 하면 해는 아니잖아요. 그럼 괜찮은데, 의미를 주어, 대동아를 닛뽕으로 뻣어나가자하면 이야기는 영 다른 이야기에요. 아셨어요? 의미를 무엇에 두었느냐?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무엇인가? 그것이 중요하다고요. 백제 왕인박사가 아무리 천자문을 제대로 가르쳐도 천지현황했는데 천지청적.. 하면 무엇을 아는거에요. 안그래요. --Canend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14:09 (KST)

예 다 알겠지만 님의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위키백과 수정하지 마시고 블로그에나 올려보세요.-Iroirom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14:24 (KST)

토론 예절[편집]

토론:고조선 등에 아주 긴 글을 남기셨더군요. 솔직히 너무 길어서 내용을 다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앞으로 토론 페이지에는 쟁점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서, 간략하게 자기 주장만 쓰는 것이 어떨까요? 위키백과의 토론 페이지는 특정한 신념이나 신앙 또는 역사관을 홍보하기 위한 공간은 아닙니다. 실제 문서 편집 과정에서 쟁점이 생긴 경우에 토론 페이지에 간략히 자신의 주장을 적는 것이 좋겠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5년 4월 12일 (일) 16:21 (KST)

네 잘 알겠습니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2일 (일) 17:20 (KST)

위키백과를 자신의 독자연구를 발표하는 공간으로 삼지 마세요[편집]

백:독자 연구 금지, 백:오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독자연구가 아니라 전문가 ― 이 경우는 관련 학과 교수 ― 들의 자료를 출처로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4월 15일 (수) 06:25 (KST) 네. 잘 알겠습니다. 독자연구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출처를 올려도 모두 재야사학이다, 환빠다하니 올려도 인정이 안되어 그렇게 했습니다. 반드시ㅣ 출처를 제시하도록 주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Canendo (토론) 2015년 4월 15일 (수) 11:09 (KST)

.............. 역사계열 같은 경우의 출처는 보통 1차 사료나 ‘관련학과 교수의 연구’로 합니다. 인터넷 신문의 칼럼이나 위키백과 문서, 사적인 홈페이지는 백:신뢰할 수 있는 출처가 아닙니다. 1차 사료조차 그대로 인용하지 않고 이를 가공해서 주장했을 시 역시 독자연구라고 합니다. 님께서 제시하셨었고, 또 지금 제시하신 것들은 모두;; 신뢰할 수 있는 출처들이 아닙니다. 이 경우를 백:독자연구라고 합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4월 15일 (수) 12:55 (KST)

네, 예를 들어 설명한다는 것이 그만..삭제했습니다. --Canendo (토론) 2015년 4월 15일 (수) 21:09 (KST)

귀하의 개인적인 연구를 토론페이지에 발표하지 마세요. 몇 번 말씀드립니까? 백:오해백:토론지침 숙지하시기를 바랍니다. 토론 문서는 게시판이나 발표장이 아닙니다. 특정 주제에 관한 개인 견해를 발표하는 용도로 토론 문서를 이용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토론 페이지 역시 위키백과의 일부입니다. 제가 드리는 마지막 주의일 것 같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4월 16일 (목) 13:34 (KST)

위키백과는 개인의 의견이나 생각을 발표하는 곳이 아닙니다.[편집]

사랑방에 일방적인 주장을 올리시는 것을 중단해 주세요. 위키백과는 개인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곳이 아니고, 자신의 주장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광고하는 곳이 아닙니다. 위키백과의 토론 문서와 사랑방은 위키백과를 편집하기 위한 토론 공간입니다. '위키백과:위키백과에_대한_오해#위키백과는 개인의 의견이나 생각을 발표하는 곳이 아닙니다.'와 그 밑의 '광고하는 곳이 아닙니다' 문단을 숙독해 주시기 바랍니다. 중지하지 않으시면 편집 중단을 강제할 수 밖에 없습니다. --케골 2015년 4월 15일 (수) 09:14 (KST)

네 중단하겠습니다. 사랑방이 있는 줄도 모른 사람인데, 이곳저곳에 계속 문제를 던져서 그에 대한 답변으로 올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랑방에 개인의견은 올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부르지 않았으면 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5일 (수) 11:11 (KST)
부른 적 없습니다. 귀하가 독자연구로 토론 문서를 너무 만들어대니까 다른 사용자에게 의견을 구한 겁니다.--Xakyntos (토론) 2015년 4월 15일 (수) 12:47 (KST)

네 귀하는 귀하일 하세요. 송호정 교수 "단군은 만들어진 신화"날조다!!!! 네 알았습니다.이 내용이 뭔지 애들에게 분석하라고 시켰으니까 다른 일 없을 겁니다. --Canendo (토론) 2015년 4월 15일 (수) 13:51 (KST)

기자조선의 삭제[편집]

기자 조선은 삭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자 조선'이 나타나는 사서史書는 차이나의 '상서대전尙書大典'에만 서술되어 있는데, 이 책은 차이나 민족이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민족이라는 인식을 대표하는 글입니다. 다시 말해, 기자가 조선으로 갔다는 기록은 이 기록 이외에 어느 곳에서도 나타나지 않으며, 현 한일 사학계에서는 '기자동래설은 허구'라고 결론 지은 상태입니다(고구려연구재단/조법종 논문). 이런 상태에서 우리 스스로 중국 측이 동북공정의 한 근거로 삼고 있는 '기자동래설'을 마치 사실인 양 서술하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의견을 쓴 사용자는 사람살이(토론 | 기여)이나, 서명을 하지 않아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1. 이곳은 한국 위키백과가 아니라 "한국어"위키백과입니다. "우리 스스로"라는 표현은 맞지 않습니다. 이곳은 한국인이 다수가 되어 운영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국어를 외국어로 배운 외국인들도 얼마든지 참여하고 있습니다. 2. 기자조선의 존재는 이미 여러 현대의 사서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상태에서 아예 빼버리는 건 적절하지 않습니다. 위키백과:위키백과에 대한 오해를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위키백과는 사적인 연구성과를 발표하는 곳이 아닙니다." Caffelice 2006년 12월 23일 (토) 01:01 (KST)
1. 아 '우리 스스로'라는 부분과 서명을 달지 않은 부분은 앞으로 정정하겠습니다. 2.'기자동래설은 허구'라는 연구결과를 단지 '사적 연구성과'라고 폄하하시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미 한국과 일본의 역사학계에서 인정한 내용입니다. 언급하신 '여러 현대의 사서'가 어떤 것인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살이 2006년 12월 23일 (토) 02:02 (KST)

기자동래설을 인정하는 학파가 존재함은 사실입니다. 그것이 중국이든 한국이든. 그런 의미에서 기자조선을 완전히 위키백과에서 제거하는 것은 중립적 시각에 어긋납니다. 이 문서에는 "기자조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정도의 코멘트가 붙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이미 기자조선의 진위 논란에 대한 양쪽의 주장이 기자조선에 실려 있습니다. Caffelice 2006년 12월 23일 (토) 02:21 (KST)

규원사화 인용 관련[편집]

규원사화에서 남국이 중국에 진출했다는 내용과, 기자조선은 대체 무슨 관계입니까 ... 그 내용은 차라리 '열국시대'라는 항목을 만들어 따로 기술되어야 할 내용입니다. 그리고, 규원사화의 내용을 긍정하더라도, 중국의 동이족은 후에 서국에 의해 관리되었고, 서국도 춘추시대 중반에 주나라에 멸망했습니다. 규원사화의 내용을 신뢰한다면, 북애자가 남긴 '만설'에 기자조선의 기록이 남아있으므로, 이러한 주장은 불가합니다. jtm71 2006년 12월 31일 (일) 14:06 (KST)

전조선, 후조선 명칭 관련[편집]

전조선, 후조선은 기자를 칭하기 위해 임금과 신하가 의논하여 정한 것입니다. 김종서와 정인지는 그에 따랐을 뿐입니다.jtm71 2006년 12월 31일 (월) 18:28 (KST)

제왕운기의 원문을 확인한 바 없으니 엠파스한국학백과사전에 근거하여 제왕운기에 전조선과 후조선으로 나눈다고 나오는군요.[1]

이의가 있으면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따져야 한다는 이야기이네요. 어쨌거나, 이승휴가 그렇게 분류했다고 해서 그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의견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jtm71 2007년 1월 1일 (화) 22:32 (KST)

공식적으로 그렇게 불렀는지는 모르죠.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서 세종대왕과의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후조선이라고 부르는것을 보면 오래전부터 후조선이라고 불렀을것이라고는 짐작이 됩니다. --Breathejustice 2007년 1월 3일 (목) 18:33 (KST)

직접 확인해 보세요. '전조선'이라는 내용은 없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라는 것은 개인적인 견해일 뿐입니다. jtm71 2007년 1월 3일 (목) 21:29 (KST)

북애노인의 생각 ...[편집]

당사자가 아닌 이상 북애노인의 생각을 알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정확한 근거가 없는 이상 추측성 내용은 자제합시다. jtm71 2007년 1월 3일 (목) 21:19 (KST)

근거가 제시되지 않는 내용 관련 ...[편집]

출처가 제시되지 않는 내용들이 몇 가지 있는데, 당분간 지켜보다가 삭제하겠습니다. jtm71 2007년 4월 17일 (화) 11:48 (KST)

저작권 관련[편집]

변경 내용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인데,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의 저작권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인용에 문제가 없습니까 ... jtm71 2007년 7월 20일 (금) 21:01 (KST)

그리고, 중요성에 비해 자료가 너무 길어서 굳이 인용해야 한다면 위키인용집이나 위키자료집을 이용하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jtm71 2007년 7월 20일 (금) 21:08 (KST)

저작권에 대한 소명이 없어 해당 내용을 삭제했습니다. jtm71 2007년 7월 25일 (수) 05:14 (KST)

'쥬신'이라는 표현...[편집]

'쥬신'이라는 표현은 대쥬신제국사라는 소설에서 처음 나온 말이기에 삭제합니다.

황윤석의 주장에 대한 출처[편집]

출처는 현재의 주석 3번째입니다.

[2]을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뭉게구름 2007년 12월 18일 (화) 08:09 (KST)

주석 3번째를 참고문헌 1번째 항목으로 이동했습니다. 해당 항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뭉게구름 2007년 12월 18일 (화) 08:16 (KST)

참고문헌으로 뭉뚱그려 표시하면, 개별 문장에 대한 출처가 궁금할 때 찾기가 힘들어집니다. 어떤 내용을 참고해서 글을 썼다면 해당 문장 바로 옆에 ref로 출처를 밝히는 편이 낫습니다. :) --정안영민 2007년 12월 18일 (화) 08:20 (KST)


[3]에서는 ref를 붙일 수 있었습니다.
이후 편집이 되면서 분할되고 다른 내용들이 추가되었으니 ref로 명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황윤석의 주장 부분은 삭제하셔도 이의 없습니다. --뭉게구름 2007년 12월 18일 (화) 08:44 (KST)

출처 없는 문장 삭제[편집]

{{출처}}가 달린 채로 오랬동안 방치된 출처가 없는 아래 문장

  • 기타 자료《태원선우씨세보》에서는 기자조선의 36세 가덕왕 이전의 왕은 실제로 왕이 아니었으며 가덕왕의 조상을 왕으로 지칭한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를 삭제합니다. 위 문장에 출처를 제시하면 언제든지 저 문장을 다시 추가할 수 있습니다. -- 66 Quotation Marks. 99 2008년 2월 10일 (일) 13:53 (KST)

출처가 제시되지 않은 다음의 문장들을 토론란으로 옮깁니다. jtm71 (토론) 2008년 6월 28일 (토) 11:05 (KST)

'*조선이 순수한 음차라면, 당시 중국사람들은 "뎨욱디엔" (한자상고음, *dieugdien) 또는 "닥단" 비슷한 소리를 적었던 것으로 볼 수 있고, 이 소리값이 조선(중세, 됴션) 또는 숙신이 된 것으로, "달단" 또는 "타타르"의 소리값과도 이론상 관련지을 수 있다. 肅愼 또는 朝鮮 등의 명칭은 춘추나 산해경 또는 사기에 나오지만, 女眞의 중고한자음에서 나온 珠申이라는 명칭은 滿洲源流考 등의 후대문헌에서야 찾아볼 수 있다.[출처 필요]'
'*조선의 朝와 "아사달"의 아사가 훈차로 설정되면, 조선은 당시의 중국인들이 아침녘의 땅/사람 등등을 가리킨 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면 조선은 중국인들이 당시의 동이족의 나라중 한 세력(아사달)을 가리킨 것이 될 수도 있다. [출처 필요]'
이때 1048년은 《제왕운기》의 1028년이 오류임을 밝힌다는 의견이 있다.[출처 필요]

글로벌 세계대백과 내용.[편집]

글로벌 세계대백과 틀이 삭제된 적이 있어서 글 남깁니다.

참고하여 {{글로벌세계대백과}} 틀이 삭제되지 않게 해 주세요. --Knight2000 (토론) 2008년 11월 22일 (토) 20:07 (KST)

211.48.25.169의 편집 취소[편집]

목적을 알 수 없는 기이한 편집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편집이 필요한 이유도 알 수 없고 편집된 후의 모양도 기이하여 편집을 모두 취소하였습니다. 혹시 편집의 이유와, 필요성을 말씀해 주신다면 다른 방향으로 편집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겠습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3월 16일 (화) 20:37 (KST)

사용자:Dkssuddksgody의 편집 되돌림[편집]

해당 편집은 명확한 근거가 없이 주요 내용을 삭제한 것으로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현재 한국사학계의 일반적인 의견과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등, 중립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되돌렸습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3월 17일 (수) 16:08 (KST)

진개 인용문 삭제 요청[편집]

Xakyntos님 안녕하세요. 편집을 한다는게 그만 실수로 본문을 직접 편집해 버렸네요. 위키피디아 원칙을 잘 이해 못해서 죄송합니다. 우선 진개와 관련해선 사마천 사기 흉노열전에 연나라 명장 진개 가 동호의 땅을 2000리 빼앗앗다라는 기록이 있는데요. 실제 전국시대 연, 조, 제 나라의 역사서에는 진개의 동호[고조선]에 대한 전투기록이 단 한건도 기록되어 있질 않습니다. 김종서 저서 [단군조선영토연구] 를 인용했습니다. 해당 책에도 진개와 관련된 내용이 왜곡되어 기록된것임을 중국의 역사서를 통해 증명하고 있습니다. 꼭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물찾기 2010년 12월 16일 (목) 17:04 (KST)

다른 사서에 안나왔다고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있을지요^^.. 위키백과의 원칙상 흉노열전에 이러이러하다~ 라고만 쓰면 되지 왜곡이라고 생각한다라는식으로 쓰시면 독자연구가 됩니다. 위키백과는 의견을 발표하는 장이 아니라 사실을 집적하는 백과사전이라는 점을 양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adidas (토론) 2010년 12월 16일 (목) 17:12 (KST)
넵 충분히 숙지했습니다 ^^. 단어 선별을 제가 잘못한것 같습니다. 왜곡보단 '그에 대한 반론' 이란 단어를 채택했어야 했는데, 실수 했습니다. 하지만 사소한 전투도 기록되어 있는 당시 역사서에 '진개의 위대한 업적 및 전투' 기록이 없는건 한번 고찰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저작권 침해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독립된 주제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만... 현행 국사책 및 국사편찬위원회에서도 고조선에 대한 '특히 연나라에게 광활한 영토를 빼앗겼다' 기록은 전무합니다. 현행 국사책엔 '중국 한나라가 고조선 영토의 일부에 군현을 설치했었다' 정도로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행 국사책 및 국사편찬위원회에서도 정론화 되어 있지 않은 내용이 '위키백과 원칙'을 근거로 적혀져 있어서, 잠시 제가 실수를 범한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은 현행 국사책에 적혀 있는 내용 그대로 적는것이 맞지 않나 합니다. 제 의견에 잘못된점 있으면 언제든지 지적해 주시고요, 감사합니다. --우물찾기 2010년 12월 16일 (목) 17:27 (KST)
김종서 박사의 주장을 비롯하여 진개 관련 내용에 대한 일부 반론은 말 그대로 소수설입니다. 위키백과는 소수설과 정설에 대해서 명백하게 선을 긋도록 하고 있으며, 소수설은 정설을 모두 소개한 뒤에, 이러이러한 소수설도 있다는 식으로 언급하는 것 이상의 편집은 불가합니다. 관련 소수설이 정설을 확실하게 무너뜨리고, 정설의 지위를 획득한 뒤에야 비로소 그 자세한 사항을 서술할 가치가 부여됩니다. 소수설의 증명 과정을 모두 서술함으로써 정설의 가치를 약화시키는 것은 명백한 중립성 위반이기 때문에, 소수설은 소수설로서 언급만 될뿐 직접적인 증명은 출처를 통해 궁금한 사람이라면 직접 찾아보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편집입니다. 이를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12월 16일 (목) 17:29 (KST)
참고로, 교과서는 일부 참고할만한 저서에 불과합니다. 역사학은 그보다 훨씬 방대하고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고 있으며, 관련 논문이나 저서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심지어 국사편찬위원회에도 해당 내용은 모두 서술되고 공론화되어 있습니다. 본인이 찾지 못하셨다고 해서 정론화되지 않은 내용인 것은 아닙니다. 하다못해 네이버나 다음의 백과사전에만 보아도 모두 나타나는 내용입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12월 16일 (목) 17:32 (KST)
제 요점을 논리정련하게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좀 난해하네요 ^^;.. 정설이 외국의 백과사전에 '독도가 다케시마'라고 표기되어 있고, '동해가 일본해'식으로 이미 구축되어버린 현황에서의 반론을 말씀드릴려고 한건데요. 저도 일목요연하게 전달해 드릴려면 좀 정리를 해야될것 같습니다. 여러 의견 감사합니다 ^^.
정설이 독도가 다케시마라고 되어 있다면, 위키백과는 원칙상 그에 따라야 합니다. 이에 대한 반론은 어디까지나 소수설일 뿐입니다. 게다가, 우물찾기 님은 모르시겠지만, 김종서 박사의 주장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많은 비판이 이루어져 대부분 잘못되었음이 밝혀진지 오래입니다. 즉, 반론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단지 김종서 박사가 자신이 맞다고 주장하고 있을 뿐이죠. 그렇기에 소수설의 하나로 다뤄줄 뿐, 아마도 영원히 정설이 될 수는 없을 겁니다.
한마디로, 여기서 우물찾기 님이 아무리 김종서 박사의 주장을 가져와서 말씀하셔도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그것은 김종서 박사 혼자만의 주장이며, 소수설의 하나로 언급은 될 수 있어도, 그 증명과정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위키백과에 실릴 수 없습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12월 16일 (목) 17:51 (KST)
넵!!! 조언 감사합니다. 위키백과서 소수설에 대한 주제 다루는 부분을 좀더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 --우물찾기 2010년 12월 16일 (목) 17:59 (KST)

단군의 연도에 대한 반론[편집]

1. 《일본서기》에 따르면 일본의 천황은 기원전 660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대의 역사학자들 가운데 그 누구도 그것을 사실이라 인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일본에 나라다운 나라가 들어선 것은 2세기 무렵에 고분시대가 되어서부터이며, 그 이전의 기록은 그저 신화로 치부할 뿐입니다. 일본 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수많은 고대 국가들의 기원이라는 기록들에서 그 연대가 사실로 인정되는 경우는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저 중국에서조차도 공화 원년(기원전 842년) 이전의 연도는 부정확하다고 하여 그저 추정의 영역에 머무르고 있으며, 은나라 이전의 역사는 아예 그냥 신화로만 보고 있을 뿐입니다. (참고로, 최근에 중국 정부가 이를 부정하고 신화 수준의 기록들에 대해 연대를 비정하는 공정을 수행하였으며, 그 덕분에 역사학계에서 엄청난 비판을 받은 바 있습니다.)

2. 《삼국유사》에 기록된 단군 이야기와 대체 차이가 뭡니까? 애초에 단군신화에서 연도를 추산하는 기준이 되는 요임금조차도 신화 속의 인물입니다. 이미 여러차례 말씀드렸다시피, 헤라클레스가 하늘의 별이 된지 50년 후에 즉위했다는 말과 눈꼽만큼도 차이가 없습니다. 단군 기원인 기원전 2333년을 사실, 혹은 추정의 영역이라도 해당한다면 일본 천황의 시점도 기원전 6세기가 되는 것이고, 중국의 역사도 삼황오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 역사학에서는 아무도 그런 신화에 불과한 기록들에 근거한 연도를 고려하지 않습니다. 단군신화도 마찬가지입니다.

3. 역사는 책에 써 있는 것을 그대로 읽고 외우는 학문이 아닙니다. 역사책이라고 해도 얼마든지 부정확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전근대 사람들이 그 역사책의 기록을 그대로 믿었다한들, 현대의 역사학자들도 믿어야 한다는 근거는 되지 못합니다. 일개 역사학자보다 역사책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까? 일개 과학자보다 성경에 기록된 창조설이 옳다고 주장하는 이들과 대체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Xakyntos (토론) 2014년 5월 19일 (월) 10:05 (KST)


[제왕운기는 국조 단군을 사실로 기록해 최초로 우리 역사의 시작을 밝혔고, 발해를 우리 역사에 최초로 포함시켰으며 고조선 이래 영토 분단 등과 관계 없이 한 핏줄 민족으로 구성돼 중국의 역사와는 다른 우리 민족사의 정통성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님의 주장과 전면 반대를 보입니다.]

고기, 위서, 삼국유사와 제왕운기, 동국통감 등 역사서들에서 고조선의 연도가 충돌하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약간씩 다른 내용이 있다 하더라도 건국 시기는 기원전 24세기~ 23세기 입니다.--182.212.6.95 (토론) 2014년 5월 19일 (월) 16:29 (KST)

역사책들이 서로 충돌하건 말건 그것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물론 제가 귀하의 토론 문서에 써 놓았듯이 일본서기 자체로도 충돌은 없고, 귀하가 한 말 그 자체가 현대 역사학자들의 연구 결과라는 점에서 귀하의 이중잣대는 명확해집니다. 역사책에 써 있는 것이 모두 사실이라면 곰이 사람으로 변신하고 사람이 알에서 태어나야 합니다. 하지만 귀하도 그것을 사실이라 믿지는 않고 있지 않습니까? 곰이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 사실이 아닌 신화적인 코드라면, 요임금 제위 25년 무진년은 대체 왜 사실이 아니라는 말이 문제가 됩니까? 귀하야말로 해당 연도가 정확한 사실이라 주장하는 역사학계의 공인된 출처를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는 한, 귀하의 편집은 반달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5월 19일 (월) 16:42 (KST)


오히려, 해당 연도가 부정확한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역사학계의 출처를 가져오시고, 그에 따라 증명하십시오. 저는 대한민국 국사교과서와 고기, 위서를 인용한 삼국유사, 동국통감을 기반하여 수정하는 것으로, 한낱 역사학계 특정 학자들의 주장을 초월합니다. 또 저는 단군 시조 설화 모든 것을 역사라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연도를 명확하게 표기했음으로, 고려, 조선시대 사관은 우리 민족의 기원은 '단군조선'이며, 이 단군조선은 '기원전 24세기에 건국되었다'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토론할 여지가 없습니다.--182.212.6.95 (토론) 2014년 5월 20일 (화) 19:35 (KST)


송호정 한국교원대 교수 : "많은 사람들은 고조선을 단군조선으로 알고, 교과서에까지 버젓이 기록하고 있지만 이는 부정확한 기록과 상상에 의거한 몰상식이자 소설이다. 게다가 고대국가 성립시기는 청동기시대 (서기전 10세기) 들어서라고 보는 것이 정설인데, 그보다 훨씬 전에 국가가 등장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어 고조선의 실제 성립시기는 선진의 문헌인 관자의 기록에 나오는 서기전 8~7세기로 봐야 한다. 단군조선은 신화의 영역일 뿐 역사 연구의 대상은 아니다." (한국일보)

→ 만주 지역에서 가장 이른 청동기문화는 요서지역의 하가점하층문화이다. 내몽골자치구 적봉시 지주산 유적은 서기전 2015+(-)90년으로, 교정연대는 2410+(-)140년으로서 이 연대는 지금까지 확인된 하가점하층문화 연대 가운데 가장 이른 것이다. 이 문화가 실제로 개시된 것은 유적의 연대보다는 다소 앞설 것이므로 서기전 2500년 경으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가점하층문화 유적은 길림성 서부에도 많이 분포되어 있는데 이 지역은 아직 발굴되지 않았다. 한반도에서도 서기전 25세기로 올라가는 청동기 유적이 두 곳이나 발굴되었다.

  • 문화재관리국 발굴단에 의하여 발굴된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의 고인돌 유적

다섯 기의 고인돌이 발견된 이 유적에서 채집한 숯에 대한 방사성탄소연대 측정결과는 서기전 1950+(-)200년으로 나왔는데 교정연대는 서기전 2325년경이 된다. 이 유적에서 청동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유물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므로, 이 연대를 청동기시대 연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 목포대학교 박물관에 의해서 발굴된 전남 영암군 장천리 주거지 유적

이 청동기시대 유적은 수집된 숯에 대한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결과 서기전 2190+(-)120년으로 나왔고 교정연대는 2630~2364년 경이 된다.

고조선 지역의 청동기 개시가 황하유역보다 앞섰다면 다른 문화수준도 그만큼 앞섰을 가능성이 있으며, 국가사회로의 진입도 그만큼 빨랐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윤내현, 고조선 연구, 일지사, 1993, 29쪽)

과연 청동기가 나와야 국가가 성립하는 건가요? 아닙니다.

이집트의 고대왕국과 잉카, 마야, 아즈텍 문명은 청동기 시대에 성립한 국가가 아님에도 국가로서 인정받습니다. 중남미의 경우도 석기시대였고, 고대 이집트에서 발견된 청동제품도 북방에서 온 교역품으로 분석됩니다. 인도 문명도 청동기의 영향으로 번성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청동기가 나와야 국가가 성립한다는 학설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학설입니다.

제대로 된 학설을 들고와서 위에 대한 반박을 해 보십시오. 고고학적 지식도 필요할 것입니다. Xakyntos 님의 주장은 논파된 송호정 교수의 논문과 일치합니다. 실제로 송호정 교수의 틀린 주장은 학계에서 정설로 취급하는 주장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역사학계가 항상 정확하고 옳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며, "학계의 정설은 수많은 학자들과 토론과 반박을 이겨내고 난 뒤에야 확립되는 것입니다. 반발하는 학자들까지도 모두 인정하게 된 이후에야 정설이라는 지위를 획득하는 것입니다. 즉, 학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학계의 교수들이 정설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학문의 세계에서 아예 일어날 수도 없는, 자칭 재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허구 속의 강단사학일 뿐입니다." 라고 주장한 Xakyntos 사용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위 내용은 고조선의 연대 뿐만 아니라 고조선의 청동기 문화에 관한 언급을 모조리 수정해야 한다는 것을 논증하며, 여러분들께서는 '정설'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재고해 보셔야 할 것입니다.--182.212.6.95 (토론) 2014년 5월 20일 (화) 20:25 (KST)

  • 참고로, 한국에 있어 '고조선'은 고고학·역사적인 면과 신화·설화적인 면이 혼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고조선'에 대한 인식은 삼국시대로부터 고려, 조선, 일제 강점기, 그 이후에서도 변화를 겪어 왔다고 여겨집니다. 실증적으로 검증된 정치 세력으로서의 고조선은 점차 그 연대가 당겨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기원전 2,333년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상태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신화나 설화, 조선 시대 이전의 고조선에 대한 설명에서는 해당 연도를 언급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다양한 출처에서 비롯된 고조선의 건국 연대들은 고조선#건국 연대 및 치세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jtm71 (토론) 2014년 5월 20일 (화) 21:32 (KST)

'건국 연도 미상'과 '역사서의 건국 연도' 병기 제안[편집]

가장 먼저 이것은 독자 연구가 아님을 말씀드리며, 저는 다음을 고려하여 두 가지 주장의 병기를 제안합니다.

  • 현행 대한민국 국사교과서에서는 고조선이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되었다고 서술되어 있음
  • 고조선이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되었다는 대한민국 국민의 일반적인 상식
  • (고기,위서) 를 참고한 《삼국유사》, 《동국통감》과 《제왕운기》등의 역사서에도 서기전 24~23세기에 건국되었다고 표기
- 학계에서 논의되거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 주제가 반드시 거부되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 다른 정책과 지침을 충족하여 기술하였더라도 일부의 시각만이 과도하게 반영된 경우에는 다른 방향의 관점의 내용이 균형있게 보태지기 전에는 중립적 시각의 위배가 될 수 있습니다.

라는 위키백과 : 비주류 이론의 내용과 위키백과 : 중립성의 요건에 근거하여, 일부의 시각만이 반영된 '건국 연도 미상'만을 표기하는 것은 중립적 시각에 위배가 될 수 있습니다.

주류 학설을 존중하여, 아래와 같이 건국 연도 미상을 가장 먼저 표기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고조선 ?(기원전 24세기) ~ 기원전 108년

이 토론에서 절충안을 낼 때까지 편집을 하지 않을 것이라 약속합니다. 이에 대한 의견 부탁드립니다.--182.212.6.95 (토론) 2014년 5월 20일 (화) 23:06 (KST)

1. 귀하는 윤내현을 비롯한 소수설을 근거로 주류학설이 틀렸다는 증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귀하의 그 발언은 완벽하게 틀렸습니다. 윤내현을 비롯한 소수설은 주류학설이 틀렸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주장은 공인된 출처를 통해 검토를 받아야 하며 그러한 검토를 할 수 있는 곳은 역사학계라고 하는 학문의 전당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윤내현의 주장은 역사학계의 검토를 통과하지 못하여 전혀 인정받지 않고 있습니다. 귀하의 머리 속에서는 윤내현의 주장이 옳고 주류학설이 잘못된 것일지 몰라도, 학문의 세계에서는 윤내현의 주장이 틀렸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즉, 귀하가 인용한 윤내현의 주장은 주류 학설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근거가 아니라 주류학설에 대항하는 소수설일 뿐입니다.
2. 이에 대해서 귀하는 아마도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것은 주류학설이 단합해서 윤내현의 주장을 묵살하고 있는 것이라고. 아니, 식민사학의 후계자들이 민족사학을 하는 윤내현을 탄압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죠. 물론 윤내현 본인도 그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위키백과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지침으로서 바로 위와 같은 주장을 경계하고 철저하게 검증해야 할 사안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미 제가 수차례나 인용한 바로 이 구절 말입니다.
'지지를 얻지 못하는 주장이나, 관련 학계의 주요 관점과 대치되는 주장. 지지자들이 그들을 침묵하게 하려는 음모가 있다고 주장할 때에는 특별히 주의할 것
3. 즉, 귀하나 윤내현이 아무리 자신들이 옳고 식민사학계가 밥그릇 뺏길까 두려워 자신들을 탄압한다고 외쳐봤자 위키백과는 물론이고 학문의 세계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을 음모론으로 취급될 뿐입니다. 그리고 그런 음모론을 근거로 주류 학설을 삭제하거나 수정할 것을 주장하고 강행하는 귀하의 행동은 명명백백한 위키백과의 원칙 위반이며, 차단 대상입니다.
4. 위키백과의 중립성의 원칙은 존재하는 모든 주장을 동등하게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문서의 구성이나 설명에서 소수 의견이 다수 의견보다 두드러져서는 안 됩니다.라는 조항을 보시기 바랍니다. 위키백과에서 말하는 중립은 다수 의견, 즉 정설을 중심으로 삼고, 소수 의견을 비중에 따라 서술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귀하의 위 제안은 인정될 수 없습니다. 정설은 기원전 2333년이라는 연도가 사실이 아닌 신화이며, 고조선의 정확한 건국 연대는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에 대항하는 소수설은 고조선#건국 연대 및 치세 같은 항목에서 별도로 서술되어야 하는 것이 위키백과의 원칙에 부합합니다.
5. 정리하겠습니다. 귀하의 제안은 인정될 수 없습니다. 기원전 2333년 혹은 기원전 24세기가 실제 건국 연도라는 주장은 명백한 소수설이며, 이러한 소수설을 위키백과의 메인 표제에 싣는 것은 명백한 중립성 위반입니다. 귀하가 이러한 주장을 싣고 싶으시다면, 본문 중에 별도로 서술하십시오. 아니, 이미 그렇게 서술되어 있습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5월 21일 (수) 00:19 (KST)
음모론을 근거로 주류 학설을 삭제하거나 수정할 것을 주장하고 강행하는 귀하의 행동은 명명백백한 위키백과의 원칙 위반이며, 차단 대상입니다.

→저는 음모론을 근거로 하지 않았습니다. 논파된 주장을 옹호하면서 논파한 주장을 '음모론'으로 매도하는 짓 좀 그만하시죠. 위에 국사 교과서, 사람들의 상식, 역사서 등 납득할 만한 근거를 담았습니다. 소수설이 주류설의 의견보다 두드러지지는 않습니다. 괄호 안에 한해서 부속되니까요. 제가 두 내용을 동등하게 다루었다는 주장을 논증하십시오.

학계에서 논의되거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 주제가 반드시 거부되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이 부분에서 해명을 해 보시죠.

그리고 고고학적 증거가 역사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게 아니라, 인정을 안하는 건뎁쇼? 말 그대로 '고고학적 증거'입니다. 그렇게 정확하다고 주장하는 역사학계가 윤내현 학설의 근간이 되는 고고학적 증거을 무시하고, 청동기 문화가 되어야 국가를 형성할 수 있다는 송호정의 궤변을 세계 여러 나라를 예로 논파하였는데

인정받지 못한다 = 틀렸다? 아닙니다. 인정하지 않는다 = 맞았다 라는 불문율이 역사학계에서 만연하죠.

님이 그렇게 완벽하다고 한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정설 (송호정이 주장하면 주위 교수들이 복창하는)은 한낱 윤내현의 소수설에 논파되었으며, 그것은 결코 음모론이 아님이 드러났습니다.

음모론에 근거하여 수정한 것이 아니고, 적절한 근거를 위에서 제시하였으므로, 음모론과는 거리가 멉니다. '매도' 좀 그만하세요.그리고 틀린 학설에 순응해야 한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이제는 고고학적 기록에 의존할테니.

논파된 학설을 아직도 맞다고 주장하시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는 고고학적 증거에 따라 잘못된 내용을 수정합니다. 비주류 이론이 아니라, '고고학적 증거'니까요. 역시, 애초에 님은 토론할 의지조차 없고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만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토론을 악용한 것입니다.

--182.212.6.95 (토론) 2014년 5월 21일 (수) 06:33 (KST)

1. 귀하가 하는 행동 그 자체가 이미 음모론인데 말입니다. 대체 몇 번이나 이 위키백과의 정책을 보여드려야 합니까? '지지를 얻지 못하는 주장이나, 관련 학계의 주요 관점과 대치되는 주장. 지지자들이 그들을 침묵하게 하려는 음모가 있다고 주장할 때에는 특별히 주의할 것 귀하가 주류사학계가 식민사학이라 말씀한 것만 해도 수차례이며, 귀하가 신봉하는 윤내현을 비롯한 소수설의 주장 그 자체에도 이미 “식민사학계가 자신들의 주장을 묵살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음모론이 아니면 무엇이 음모론입니까? 귀하 혼자서 이런 주장을 믿는다고 해서 그것이 음모론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위키백과의 지침 그 자체를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는 이런 주장을 지금 논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부터가 웃기는 일입니다.
2. 마찬가지로, 귀하가 혼자서 주류학설이 논파되었다 생각하는 것은 아무 상관 없습니다만, 이렇게 위키백과에서 논파되었다 주장하는 것은 엄연히 귀하에게 거증의 의무가 있는 사항입니다. 귀하가 아무리 역사서니 뭐니 가져와도 그것이 학계의 연구를 능가할 수는 없습니다. 일본서기나 삼황오제를 대체 몇 번이나 말씀드려야 합니까? 귀하가 윤내현을 비롯한 소수설의 주장을 가져와도 역시 전혀 거증이 되지 않습니다. 윤내현의 주장은 그 자체로 음모론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제하더라도 주류 학계에서 반박을 받고 폐기처분된 것이라고 이미 수차례나 말씀드렸습니다. 귀하 혼자 해당 주장이 주류 학설을 논파했다고 생각해봤자 아무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귀하가 가져와야할 증거는 주류 학계의 학설이 확실하게 틀렸고 윤내현이 옳다는 신뢰할 수 있는 근거입니다. 윤내현의 주장은 주장이지 사실이 아닙니다.
3. 고고학을 말씀하셨습니까? 윤내현이 감추고 있는 사실을 한 번 보여드릴까요?
첫째, 고인돌이 모두 청동기시대 유물이라는 것 자체가 학계의 정설이 아니라는 것. 고인돌에 부장된 유물 및 수습된 탄화물 등을 분석해보면 신석기 시대 말기부터 초기 철기시대까지 폭넓게 분포하고 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입니다. 물론 청동기시대에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긴 하지만. 애초에 양평 양수리 고인돌 자체가 고인돌이 신석기 시대 말기에도 축조되었다는 증거로 언급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한국박물관연구회, 1999.7.5, 문예마당)
둘째, 영암 장천리 유적의 편년. 장천리에서 출토된 목탄의 연대 분석 결과가 BP4140년(기원전 2100년대)으로 나온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작 발굴을 직접 진행한 목포대학교박물관(물론 고고학과)에서는 이 목탄의 연대는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공반 유물들의 양식과 분포가 모두 송국리 유적으로 대표되는 기원전 5~3세기와 일치하기 때문이죠. 발굴된 유물, 특히 탄화물과 같은 종류는 외부 혼입을 비롯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그 단독으로는 신뢰성을 판단하기 어렵고 공반 유물이나 기타 다른 연대 측정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은 고고학의 상식입니다.(목포대학교박물관, 《영암 장천리 주거지 Ⅱ》, 1986, 보고서 링크이니 직접 확인하시길)
윤내현이라는 학자가 얼마나 형편없는 사기꾼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로군요. 고고학을 말씀하셨으니 고고학계의 정설 및 실제 발굴을 진행한 당사자의 보고서를 찾아 봤습니다. 그러니 이런 결과가 나오는군요. 자, 과연 학계의 정설이 논파되었습니까? 고고학 운운하려거든 윤내현 같은 이의 책 말고 실제 고고학 저서나 발굴 보고서를 보십시오. 그럼 이렇게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4. 이상과 같이 귀하가 논파되었다는 증거로 가져온 내용 그 자체가 거짓임을 명백한 증거를 통해 밝혔습니다. 사실 제가 이렇게 일일히 찾아서 밝히지 않아도 귀하가 가져온 내용은 정설을 논파한 것이 아니라 논파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소수설일 뿐이라는 것은 명백합니다만, 귀하가 하도 강짜를 부리니 한 번 확인해봤습니다. 이제 뭐라고 반박하실 것입니까?--Xakyntos (토론) 2014년 5월 21일 (수) 10:53 (KST)

단군 왕검을 고조선 왕 재위 목록에 추가[편집]

추가합니다. 이것은 토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고조선이라는 국가는 관자와 사기 등의 문헌과 한사군이라는 존재를 통해 실존하였음이 입증되었고, 그 고조선이라는 나라는 단군이라는 사람에 의해 건국되었다고 우리나라 역사서에서 말하고 있죠. 이것을 부정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단군 신화를 부정한다는 것에 이의를 달지는 않습니다만 단군의 실존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묵과할 수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단군의 존재에 대해서 학계에서 왈가왈부하여도 단군이 실존하지 않는다는 증거를 댈 수 없습니다. 단군이 실존하지 않았다는 근거를 대지 못하는 한 단군은 실존한 인물로 취급되어야죠.

삼국사기에서도 단군은 '선인 왕검'으로, 고기, 삼국유사, 동국통감, 제왕운기 등에서도 단군이 등장하며 강화도에서도 삼랑산성은 단군의 아들과 관련된 설화가 있으며 조선시대 때도 단군과 관련된 기록이 넘쳐나며 단군의 제사까지 지냈다고 하죠.

  • 위키백과 : 고조선의 내용입니다.

단군왕검은 고조선 사회의 제주이자 군장으로, 단군은 대제사장적인 성격을 많이 담고 있으며 왕검은 국가를 통치하는 대군주의 의미를 띠고 있다고 해석한다. 즉 제정일치의 지도자이다. 방언의 분포와 비교언어학적으로 살펴볼 때에도 제사장과 정치적 지도자를 함께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 위키백과 : 고조선의 내용입니다.

단군(檀君 또는 壇君) 또는 단군왕검(檀君王儉)은 한민족의 신화적인 시조이자 '고조선의 건국자'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역사서에 등장하는 인물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그를 한민족의 조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제, 기대합니다. 조선사편수회가 악의적으로 훼손한 역사와 그것을 거리낌 없이 그대로 계승한 학설을. 그리고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겠습니다. 토론을 한다기 보다는 생각을 정당화시키는 자리가 되어버리니까요.

--182.212.6.95 (토론) 2014년 6월 4일 (수) 15:37 (KST)

바로 여기서 단군은 신화 속에 등장하는 하나의 상징적인 표현이라는 기존 학계의 입장 (후략) - 118p

단군조선시대에 단군이라는 고유한 인물이 존재했다고 보기 어렵다. 단지 여러 명의 단군(제사장)이 여러 지역에서 부족 국가를 이끌었던 것이 초기 국가를 형성하던 단계의 우리 역사 모습인 것이다. - 125p
송호정, 《단군, 만들어진 신화》, 도서출판 산처럼, 2004

1. 원하시는 기존 학계의 입장입니다. 됐습니까? 토론의 여지가 없는 것은 귀하의 주장이 아니라 제 편집입니다.
2. “조선사편수회가 악의적으로 훼손한 역사와 그것을 거리낌 없이 그대로 계승한 학설을”이라 쓰셨군요. 귀하는 또 다시 인신공격을 하셨습니다. 차단을 신청하겠습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6월 4일 (수) 21:12 (KST)

누가 기존 학계의 입장입니까? 송호정이? 2004년에??? 딴나라에서 사는 것은 아니고요?

이병도는 이렇게 말년에 참회하였지만

역사를 이야기하려면 용어의 뜻부터 알자. 1. 단군 : 檀君의 뜻이 무엇인지 서술하시오. 모르면 이야기 하지 말 것. 2. 신화라고 하는 정의가 무엇인가? 삼국유사 및 제왕운기는 신화집인가? 3.인간을 널리 이롭게(홍익인간[弘益人間])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며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太白山) 꼭대기 신단수(神壇樹) 밑에 내려와 여기를 신시(神市)라고 하니 이로부터 환웅천왕이라 불렀다.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 명(命), 병(病), 형(刑), 선(善), 악(惡) 등 무릇 인간의 3백 60여 가지의 일을 주관하고 인간세상에 살며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 홍익인간은 "인간을 널리 이롭게하라"는 뜻이 아니다. 어디에서 왔으며, 무슨 뜻인가? 弘

4.천부인이 없는 사람은 한국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단군조선을 부정한다면, 단군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 것. 안다면 서술하시오. 5. 신단수는 기독경의 생명수, 석가모니의 보리수, 미륵의 용화수와 같은 뜻이라고 한다. 신단수는 무슨 뜻인가? 6. 신시(신불)은 천독이라고 하는 신선들이 사는 곳이라고 한다. 신시에 대해 서술하시오. 단군조선과는 다른 아사달인가? 7. 환웅은 우리나라 절에 대웅전에 모셔져 있었다고 하는 환웅은 단군전의 임금님으로 아는데 환웅은 환국의 서자로 단국을 설립했다고 하는데,부정하면? 단군은 사생아가 된다 .맞는지 확인요망. 8. 환웅을 모시는 신사가 일본에는 많다고 한다. 과연 일본의 신교는 믿을 수 있고 우리나라 고대사는 부정하는 이유는? 그리고 일본의 신교의 신은 가리가미인데 이 천신은 어디에서 갔나? 천손강림은 단군신화고, 천신강림은 환웅신화다. 서로의 연관성을 서술하시오. 9. 환웅이래 단국까지 전부 하늘에 천제를 모셨다는데, 천제를 모시면, 샤머니즘인가? 종교인가? 왜 천왕이 천제를 지낸다는 것은 종교가 되지 못하는가? 10. 환웅천왕이라고 했다. 왜 이렇게 환웅에 천왕이라고 했나? 이름은 빼고 호칭이라고 하였다. 제천장이면 사제? 그럼 종교가 아닌가? 11. 풍백, 운사, 우사는 파람, 구름, 비로 삼국사시 풍류도와 관련이 있는데, 불교, 유교, 도교와의 관계를 설명하시오. 12. 풍백, 운사, 우사는 삼황오제의 삼황과 관련이 있는데 관계를 설명하시오. 13. 풍백, 운사, 우사가 삼정승제도와 같고, 현대의 입법, 행정, 사법제도와 같은 정치제도라고 하는데, 그럼 고등 정치가 아닌가? 14. 곡, 명, 병, 형, 선악. 이것은 3황5제의 5제에 대한 것인데, 아는데도 무슨 제도인지 설명하시오. 참고 윷놀이 도개걸윷모. 5, 참고, 세속오계, 오상 등도 관련이 있슴. 15. 인간의 360가지의 일을 주관했다는데 무엇을 의미하는지 서술하시오. (예, 8리훈) 16. 인간세상에 살며(??? 천신인가.. 천신이라고 나온다, 인정하지 않는 곳에서)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어떤 방법으로 단군전 즉 기원전 2,333년전의 일인데, 이렇게 이야기할까? 17. 일본의 천손강림사상은 인정하는가? 천신강림과 천손강림사상, 왜 난생설화가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많은가? 서술하시오.

등등등... 삼국유사의 내용이니,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송호정이 단순하게 단군을 제사장. 부족사회로 만들어진 신화라고 하는데, 내용이 너무 많다. 과연 알고 떠드는지 설명하시오. --Canendo (토론) 2015년 4월 11일 (토) 14:19 (KST)

문헌 상의 기록에 따라 실존했던 국가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기록의 신뢰도가 낮다?[편집]

'문헌 상의 기록에 따라 실존했던 국가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기록의 신뢰도가 낮고'라는 표현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왜냐하면 고기, 삼국유사와 동국통감 등의 우리나라 역사서에서도 고조선의 실존을 기록하였고 관자, 산해경, 사기,한서 지리지 등의 중국 사서에서 이 부분은 고조선의 실존을 사실대로 기재하는 것 외에는 왜곡할 가능성이 적은데 '신뢰도'가 낮다 라고 표현한 근거는 무엇인지요? 학계에서 검토되고 수용된 정설이 있다면 알려주십시오.

'고조선사 전공이며 고조선의 건국연대를 기원전 7세기로 축소시켜버린 송호정 한국교원대 교수도 “학계 시대사 구분에 역사적 실체로 판명된 고조선을 넣어야 한다”라고 하였죠.

고조선이 없었으면 연나라에서 온 위만이 왕위를 빼앗을 수 없었으며 한사군이 생기지도 못했을 겁니다.--182.212.6.95 (토론) 2014년 6월 4일 (수) 16:06 (KST)

1. 고조선을 기록한 사료에 대해서 좀 공부라도 하고 오시지요. 현재 학술적으로 인정되는 고조선의 역사 대부분은 《위략》이라는 단 1가지 사료에 근거합니다. 그리고 이 《위략》에 기록된 고조선은 철저하게 기자조선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기자조선이 현재 학계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는 아실런지 모르겠군요. 물론 기자조선을 제외하더라도 《위략》의 문제점은 많죠. 만리장성이 건설되자 부왕이 이를 두려워해서 진나라에 복속했고, 그로부터 적어도 20년 이상이 지난 뒤에 진승-오광의 난이 일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만리장성은 기원전 214년에 건설되었고, 진승 오광의 난은 기원전 209년의 일입니다. 20년?? 애초에 이렇게 신뢰성이 극도로 낮기 때문에 《위략》을 비롯한 고조선 관계 사료는 철저한 사료비판을 통해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제발 이런 기초적인 것은 좀 공부라도 하고 오십시오.
2. “고조선의 건국연대를 기원전 7세기로 축소시켜버린 송호정 한국교원대 교수” 허위사실 유포 및 인신 공격입니다. 차단을 요청하겠습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6월 4일 (수) 21:20 (KST)

고조선은 어느나라입니까? 처음 듣는 古씨조선인데도 그런데도 있나요? 이씨조선은 아는데 고씨조선은? 기자조선은 기자의 조선이고... 그렇지 않나요? 단군조선을 부정하면 고대사를 할 이유가 없죠. 아는게 없는데. 1. 기자는 은나라에서 왔습니다. 은나라에는 소호금천이 있었고 伊尹은 현재 윤씨의 선조라고 합니다. 이윤은 자부선인의 제자라고 해서 아주 영특하고 대단했다고 하는데요. 소호금천의 한 핏줄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 중국이야긴데, 왜 이야기하나요? 내가 알기에는 은나라는 동이족이라, 모두 동이의 제후국으로 아는데 단군조선이 부족국이라고 하면서 이야기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요? 2. 은나라의 문자체는 주나라와 다릅니다. 1899년 발견된 금문과 갑골문이 있는데, 금문/갑골문에 대해 해석이 가능하시면, 기자조선의 기자는 어느나라 사람이고 왜 번한조선의 왕이 되었을까요? 3. 아참 번한조선 자체를 부정하시는군요. 번한조선은 위만에게 속아 꼭 왜넘처럼 들어가 번한조선이 위만에게 그리고 한에게 패망했지요? 기자의 성은 무엇이었나요? 상관없는 원시부족국가와 은나라와 더 상관이 없는데, 기자조선을 의미하는 이유는? 삼한조선인데, 마한조선, 진한조선, 번한조선.. 삼한조선이네요. 그럼 하나(한)조선 아닌가요? 조선의 뜻은? 왜 -조선이 이렇게 많은지.. 일일이 관계 자료는 첨부하지 않겠습니다. --Canendo (토론) 2015년 4월 11일 (토) 14:38 (KST)

보호 기간 종료 후 수정할 내용입니다.[편집]

  • 고조선(古朝鮮, (?{기원전 2333년} ~ 기원전 108년)은 한국의 역사상 최초의 국가로 일컬어지는 고대 국가이다.
→ 고조선(古朝鮮, (?{기원전 2333년} ~ 기원전 108년)은 대한민국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의 역사상 최초의 고대 국가이다.
→ 고조선(古朝鮮, (?{기원전 2333년} ~ 기원전 108년)은 대한민국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고대 국가이다.
수정 근거 : [고조선,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62323&cid=40942&categoryId=33374]에서 한국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국가 라는 표현을 인용.[네이버 지식백과] 고조선 [古朝鮮]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보시는 분들의 견해는 어떠신지요?--Aubelumiere (토론) 2014년 7월 25일 (금) 20:18 (KST)
이렇게 논쟁 여부도 없는 단순하고 당연한 내용에는 아무런 이의가 없습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7월 25일 (금) 22:09 (KST)

"대한민국과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의 역사"라고 나눠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나요? -- ChongDae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3:55 (KST)

국사교과서 문제[편집]

대한민국의 국사 교과서는 고조선의 강역으로 추측되는 랴오닝 성 및 한반도의 고고학 발굴 결과를 토대로 기원전 2000년경에서 기원전 1500년경에 청동기 시대가 본격화된다고 서술하고 있으며[6][7] 이에 따라 고조선의 건국 시기도 기원전 2333년으로 단정하였다.

강조한 부분은 사용자:Lhrdrth가 추가한 문장으로, 해당 문장대로 국사교과서가 연대를 단정하였는지 여부에 대하여 심각한 문제가 존재합니다.

첫째로 해당 문장의 실제 변화 사항은 아래와 같습니다.
  • 2007년 이전 :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고 한다(기원전 2333년)
  • 2007년 개정 :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기원전 2333년)
보시다시피 핵심적인 개정 부분인 “하였다고 한다”라는 서술어가 목적어로 삼는 부분은 건국 주체(단군왕검이 건국)에 대한 내용이며, 연도는 서술어와 무관하게 괄호를 통해 제시되고 있습니다. 물론 신문기사 역시 건국 시기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습니다. 즉, 사용자:Lhrdrth는 교과서 본문은 물론이고 신문기사에서조차 전혀 제시되어 있지 않은 자의적인 해석을 통해 교과서 개정의 중심을 건국 연대로 맞추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둘째, 현재 대한민국의 주류 역사학계에서 고조선의 건국 연대를 기원전 2333년을 정확하게 명시하여 사실이라 말하는 학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해당 연대는 신화적인 연대로, 성경이 말하는 6000년 전에 천지창조가 있었다는 말과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국사교과서의 집필진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에 따르면”이라는 단서를 달아 건국 주체나 건국 연대가 확실한 사실인지 아닌지를 모호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실제 사실이라고 명시하면 국내외 학자들의 거센 비판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를 모호하게 서술하여 넘어가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점은 해당 개정에 대한 학계의 비판에서도 여실하게 제시되고 있는 부분입니다. “송호정 한국교원대 교수(역사교육)는 “기원전 2333년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했다고 확정지을 수 없다”며 “사료에 바탕해 엄밀해야 써야 할 교과서를 이렇게 서술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말했다.”이처럼 학자들이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는 부분을 실제 교과서 원문에서도 유추가 불가능한 자의적인 해석으로 단정했다라고 서술하는 것은 명백한 독자연구에 해당합니다.

이상과 같은 근거로 사용자:Lhrdrth의 해당 편집은 명백한 오류임을 밝히는 바입니다. 그러나 저는 사용자:Lhrdrth가 이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논쟁의 여지가 있을지도 모를 해당 표현 대신 신문기사에 직접적으로 명시된 표현으로 바꾸어 수정한 바 있습니다.

새 교과서는 단군의 고조선 건국과 관련해 ‘~ 건국하였다고 한다’를 ‘건국하였다’로 더 확정적으로 썼다. - 한겨레 신문 기사 중

보시다시피 단순히 단정하였다는 표현이 아닌 이전보다는 더 확정적으로 썼다는 표현으로써 해당 교과서 개정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표현입니다. 참고로 한겨레의 기사 역시 해당 개정의 목적 대상이 건국 연대가 아닌 건국 사실 및 주체임을 확실하게 표기하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해당 편집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에 대해 근거를 들어 제시하였습니다. 사용자:Lhrdrth는 이에 대해 해명하십시오.--Xakyntos (토론) 2014년 7월 25일 (금) 22:29 (KST)

귀하의 문장 분석 부분은 제가 되도록 잘 이해하려고 자세히 정독했지만 죄송스럽지만 이해할 수가 없군요. 귀하의 일방적인 주장보다는 이렇게 서술 방식을 변경한 국사편찬위원회의 입장을 들어봅시다.
이같은 수정에 대해 <국사편찬위원회>의 설명은 당당하다. 장득진은 "그 동안 사서에는 나오지만 고고학적 증거가 불충분했던 고조선 건국 시기가 최근 연구 성과로 근거가 뚜렷해짐에 따라 서술 방식을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이종호 이형석 저, '고조선, 신화에서 역사로" 28쪽
보셨습니까? 분명히 "고조선 건국 시기"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장득진이라는 분은 국사편찬위원회 소속으로 "교육과학기술부"가 발간하고 "국사편찬위원회"와 "국정도서편찬위원회"가 편찬한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의 연구진입니다. 귀하가 무슨 자료로서 주장하고 논리를 펼치든 그렇게 직접 내용을 수정한 측에서 이렇게 밝힌 이상 귀하의 주장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청동기 유물 발굴 연대가 올라가서 고조선 건국 시기를 기원전 2333년으로 확정하였으므로 "대한민국의 국사 교과서는 고조선의 강역으로 추측되는 랴오닝 성 및 한반도의 고고학 발굴 결과를 토대로 기원전 2000년경에서 기원전 1500년경에 청동기 시대가 본격화된다고 서술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고조선의 건국 시기도 기원전 2333년으로 단정하였다."라는 저의 편집은 아무런 오류가 없습니다. 또한 국사편찬위원회에서도 밝혔듯이 엄연히 명백한 고고학적 성과, 연구 결과로 단정한 부분을 무슨 신화적인 연대, 성경 운운하시는데 이것은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명백한 사실 호도입니다. 한번만 더 이렇게 주장하시면 제재를 요청하겠습니다. 또 자꾸 "단정" 부분을 가지고 말씀하시는데 앞에서 말한대로 국사편찬위원회는 "근거가 뚜렷"하다고 했습니다. 이는 단정하고 다를바가 없는 말입니다. 귀하가 제시한 자료에서도 "확정적으로 썼다"라고 했습니다. 확정이 뭡니까? 단정하고 다를바가 없는 말입니다. 제가 제시한 자료는 "공식 편입했다"라고 했습니다. 이도 단정하고 다를바가 없습니다. 귀하가 정 불만이면 "단정했다"대신에 "확정했다",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정도로는 수정에 찬성하지만 귀하의 주장대로 "더 확정적으로 썼다."는 불가합니다. 더라는 수식어때문에 "아직까지 확정적이지는 않지만 약간 더 진전하여 확정적인 것인 마냥 인정했다"라는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꾸 송호정같은 일부 소고조선론자들의 주장으로 "대한민국의 주류 역사학계"운운하시면서 압도적인 다수설로 자꾸 몰아가시는데 일단 국사 교과서 서술을 얘기하는데 송호정같은 제3자의 견해가 끼어들 여지도 없고 제가 예를 든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는 "국사편찬위원회"와 "국정도서편찬위원회"가 편찬한 것입니다. 이런 국가적 공식 기관의 견해야말로 진정한 현재 주류, 다수설입니다. 또한 시기도 가장 최근입니다.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국사 교과서는 2012년 판입니다. 과거에 뭐라고 했던 현재는 고조선의 건국시기를 기원전 2333년으로 확정적으로 보는 것이 엄연히 주류, 다수설입니다. 국사교과서 연구진과 집필진을 보면 국사편찬위원회, 서울대학교, 한국학 중앙연구원, 교육과학기술원, 과학기술부 그외 연세, 전남, 목포, 이화대학교 교수등등 국가적 공식 기관에서 오신 분들입니다. 송호정같은 몇몇 소고조선론자의 주장으로 마치 소수설인양 몰아가는 것은 명백한 귀하의 오류입니다. 주의하십시오.
이에 한가지 더 입장을 밝히자면 국사 교과서가 "낙랑군 평양설"을 사실상 부정하는 입장으로 서술한 것은 귀하도 잘아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방금 위에서 언급한 이유로 귀하가 주장하는 "낙랑군 평양설"이 이론의 여지가 없는 압도적 주류 다수설이라는 주장에 이제는 명백히 반대함을 밝힙니다. "국사편찬위원회"와 "국정도서편찬위원회"가 인정하고 앞서 밝힌 수많은 국가적 공식 기관의 견해야말로 진정한 다수설이고 주류설입니다. 그러므로 1달 후 낙랑군 문서가 보호에서 풀리면 낙랑군 토론 문서에 이런 입장을 밝혀 공식적인 근거 자료를 만든 후 낙랑군 문서에 대폭 손질을 가할 것임을 알려드립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27일 (일) 16:25 (KST)
현행 국사 교과서가 낙랑군=평양을 일절 언급도 하지않지만 이를 부인한다는 명백한 자료는 아래의, 국사 교과서에 삽입된 지도입니다. 위만조선 멸망 후의 각 세력권 지도인데 국내성, 졸본까지 구체적으로 위치를 언급하지만 대동강, 평양 지역에는 낙랑군의 그림자조차도 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http://histopia.net/kh/data/038.jpg
국사 교과서가 일반적인 주류, 다수설이 아니라고 하면 국가가 앞장서서 학생들에게 거짓을 가르친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이며 적어도 국사 교과서가 이렇게 낙랑군 평양설을 부인하는 이상 사용자:Xakyntos가 창조론, 진화론에 비유하면서까지 낙랑군 평양설을 반박하는 이론을 터무니없이 폄하하는 것은 위키백과의 원칙에도 어긋나는 사실 왜곡이므로 앞으로는 주의하시기를 당부드립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27일 (일) 17:33 (KST)
교과서명 심사본 내용 수정·보완 권고사항 수정·보완 결과 미반영 사유
(주)금성출판사 29 실제로 고조선은 청동기 문화가 상당히 발달한 기원전 10세기 이후에 성립되었을 것이다. 관련 문장 재검토 요망 (보완하지 않음) 고조선이 기원전 7세기 전후에 성립되었다는 명확한 논거도 없으며, 특정 견해에 치우칠 우려가 있음. 현재의 문장은 기원전 7세기 전후 성립설까지 아우를 수 있는 포괄적인 표현임.
(주)리베르스쿨 24 중국에서 수 많은 나라가 명멸하는 가운데 고조선은 2,000년 넘게 존속하였다 재검토 요망 중국에서 수 많은 나라가 명멸하는 가운데 고조선은 2,000년 넘게 존속하였다.’ 삭제

1. 위 표는 2013년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검정에서 각 출판사에 하달된 수정·보완 사항 중 고조선 건국 연대와 관련된 항목들입니다. 이 두 출판사를 제외하면 건국 연대와 관련된 수정 사항은 없습니다. (출처) 보시다시피 두 교과서 모두 기원전 2333년이 실제 연도가 아님을 명백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금성 교과서는 기원전 10세기로 이후로 명시하고 있으며, 리베르스쿨은 2000년이라는 존속 기간을 삭제하여 역시 건국 연대가 불분명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금성교과서의 수정 사항에는 더욱 특기할 사항이 있는데, 해당 문장을 수정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기원전 7세기설이 명확하지 않다고 들고 있지요. 즉, 2013년도 한국사 교과서의 편집 지침으로 수정하라 하달된 내용이 기원전 7세기경이 실제 성립 연대라는 내용이라는 의미입니다. 2012년 교과서요? 어느 쪽이 최신입니까?

종래 우리 학계에서는 구체적 정치체가 등장하기 위한 전제요소인 農耕 및 靑銅器의 출현, 즉 청동기문화의 개시연대와 연결시켜≪삼국유사≫등에 나타나 있는 단군 관련 연대를 신화적 성격의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런데 이를 보다 면밀히 검토하면 단군 관련 연대는 단순히 신화 차원의 그것이 아니라 보다 실제적인 내용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즉 단군신화의 내용은 한반도의 신석기문화를 담당한 고아시아족의 문화양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곰숭배적 요소와 아울러 샤먼적 성격을 갖고 있는 단군의 존재는 고아시아족의 문화내용을 대표하는 것으로서, 비록 구체적 정치체로 등장한 단계는 아니지만 단군 관련 연대는 결코 신화적 성격의 그것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고 하겠다.

2. 국편위의 역사 편찬 사업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도 및 대표성이 있는 통사인 《한국사》 신편의 내용입니다. 고조선의 건국 연대에 대한 항목으로서 보시다시피 정치체(=국가)가 실제로 등장한 연도는 아니다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2333년에 대해서 그나마 가장 우호적으로 해석한 것이 이 정도입니다. 장득진 실장의 발언 역시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장 실장은 "이전 역사교과서에서는 고조선을 비롯한 한반도의 국가는 청동기시대부터 존재했다고 밝히면서도 청동기 보급시기를 최고 기원전 15세기로 잡았다"며 "이 탓에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됐다는 고조선의 역사와 맞지 않아 배우는 학생들이 의아해 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교과서에서 고조선이 기원전 2333년에 단군왕검에 의해 건국됐다고 적극적으로 서술되지 못한 이유는 이 시기에 청동기가 보급됐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연구성과가 충분하지 못한 탓이 크다.

장 실장은 "우리가 만주 등의 유적들에 접근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동안 청동기문화를 토대로 세워진 고조선의 존재를 뒷받침할 만한 실증적인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았다"며 "그러나 최근 들어 관련 연구성과들이 속속 발표되면서 이번 교과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한반도 청동기 보급시기를 기원전 2000년쯤까지 앞당겼다"고 분석했다.

세계일보 기사에 훨씬 더 자세한 인터뷰 내용이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청동기 보급 시기를 앞당긴 것이며 기원전 2333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서술이라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앞서 말한 한겨레 기사 그대로 조금 더 확정적으로 썼다는 것이 본질에 훨씬 가깝습니다. 게다가 한국사학계 일반에서 거세게 반발하였던 사실까지 생각하면 답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송호정:고고학계에서도 전형적인 청동기 유물은 기원전 10세기 위로 안 올라가는 게 주류입니다. 은·주 시대로 올려볼 수 있는 유적들이 있긴 하지만, 더 많은 학계의 논의를 반영하지 않고, 한두 유적만 근거로 교과서를 수정하는 것은 안 됩니다. 단군신화와 고조선 서술 문제는 내용 수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원래 어법에 맞는 문장을 틀리게 고친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교과서 편찬 수준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죠. ‘…고 한다’를 빼고 그냥 ‘건국하였다’로 했다고 해서 신화를 역사로 만들었다고까지 보는 언론의 호들갑도 사실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3. 경향신문 기사의 관련 대담. 공식편입했다는 문장 자체가 허구인 것을 어쩌란 말입니까? 애초에 학계의 연구 흐름 자체가 단군신화를 역사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며, 그 결과로 단군신화에 고조선의 건국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이 신화적 코드로 들어 있다고 보는 것이 원래부터 공식적인 견해입니다. 애초에 신화를 신화로만 본 것도 아니요 신화를 그대로 역사라고 보는 것도 아닐진대 이를 두고 전에는 공식이 아니었다는 것처럼 공식편입했다라고 쓰는 언론의 행태는 황색언론이라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4. 정리하죠. 귀하야말로 단정했다라고 할 수 있는 근거를 가져오십시오. 저는 적어도 더 확정적으로 썼다는 명확한 소스를 가져왔으며, 귀하가 단정했다는 근거로 가져온 것의 더 자세한 내용을 비롯해서 역사학계 일반의 반박까지 제시했습니다. 국사 교과서 집필진이 미치지 않는 이상 기원전 2333년을 실제 건국 연도로 단정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해당 내용은 어디까지나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의 기록에 그렇게 적혀있다는 말일 뿐입니다.

5. 귀하가 링크한 지도의 캡션은 이렇습니다. “여러 나라의 성장” 한국사에 해당하는 국가들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죠. 그렇기에 한국사라고 보기 어려운 읍루(함경북도 및 연해주 지방)가 없군요. 한국사에 해당하는 국가가 아닌 낙랑군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만. 낙랑군은 말할것도 없고 요동군을 비롯해서 아예 중국에 대한 흔적이라고는 전혀 없는 지도에서 낙랑군이 없으니 이게 평양에 낙랑군이 없다는 증거라구요? 그럼 이 지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은 중국과 일본도 없는 국가겠군요.

6. 불행히도 귀하가 아무리 외쳐봤자 국사 교과서에는 멀쩡히 낙랑군(한군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단지 민족주의적인 이유로 낙랑군의 역사와 의의를 축소해서 기록하고 위치를 명확하게 표기하지 않으려 했을 뿐, 없다고 명시하지도 않았고 위치가 어디인지 확인 가능한 내용은 아래처럼 멀쩡하게 들어 있습니다. 결국 귀하가 위에 써 놓은 행동을 하는 것은 그저 반달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7월 28일 (월) 17:07 (KST)

교과서명 관련 내용 비고
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정교과서 47 백제는 한강 유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려던 한의 군현을 막아 내면서 성장하였다. 한강으로 세력을 확장하려면 한강에 인접해야 한다.
49 미천왕 때에 낙랑군을 완전히 몰아 낸 고구려는 압록강 중류 지역을 벗어나 남쪽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낙랑군이 요서에 있었다면 낙랑군을 몰아 낸 것이 남쪽으로 진출할 발판이 될 수 없다.
7차 교육과정 중학교 국정교과서 36 백제는 성장 과정에서 중국 군현의 압력을 받아 어려움을 겪었다. 백제가 중국 세력의 간섭과 침략을 물리치면서 나라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3세기 중엽 고이왕 때였다. 초기 백제에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중국 군현은 낙랑군 밖에 없다.
2013년 금성교과서 32, 36 직접 지도에 낙랑군 위치가 명시 출처는 보완사항에 첨부파일로 들어 있음
교학사 교과서 21 낙랑군은 주변에서 성장한 동예, 삼한 등의 나라들을 통제하여 그 성장을 억제하려고 하였으나, 동예, 삼한 등을 주변으로 둘 수 있는 낙랑군의 위치는 평양 밖에 없다. 출처 상동
천재교육 교과서 22 백제는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려던 낙랑군을 몰아내고 한강으로 진출하려면 한강에 인접해야 한다.
귀하가 지금 근거라고 제시한 자료들은 각 출판사가 자신들이 임의로 선정한 사람들에게 집필을 의뢰하여 발간한 각 출판사별 검정 사설 국사 교과서의 내용입니다. 제가 근거로 제시한 것은 국가 공인 역사 편찬 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가 편찬하고 국가 기관인 교육과학기술부가 발간한 공식 국찬 국사 교과서입니다. 귀하도 잘아시겠지만 이런 각 출판사들이 만든 교과서가 좌편향이니 우편향이니 하여 내용의 신빙성에 문제가 되어 각 학교에서 채택을 두고 실로 엄청난 시비가 일기도 했습니다. 귀하의 말대로라면 금성출판사와 리베르스쿨이 우리나라 국사학설의 주류입니까? 당연하지만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따라서 귀하가 제시한 저런 검정 사설 국사 교과서 따위는 아무런 논박 자료가 될 수 없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이름으로 편찬하고 교육과학기술부가 발간한 공식 국찬 국사 교과서가 당연히 주류 이론입니다. 당연히 이런 검정 사설 국사 교과서 따위가 아닌 공식 국찬 국사 교과서가 인정받는 주류고 따라서 고조선 문서에는 바로 이 공식 국찬 국사 교과서의 내용에 따라 편집되어 있는 것입니다.
제가 가지고있는 (주)지학사가 발간한 검정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를 보면 지학사라는 곳이 특정 학자들에게 집필을 의뢰하고 그 내용을 교육과학기술부도 아니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라는 곳이 검정심사를 해서 나온 것입니다. 이는 당연히 국사편찬위원회같은 국가 공식 기관도 아니고 그냥 내용을 보고 심사해서 출판한 것입니다. 이러다보니 이런 사설 교과서 따위는 그 내용의 신빙성 여부에 앞서 제가 말씀드린대로 전혀 보장이 되지않아 채택 여부를 놓고 그렇게 말이 많은 것입니다.
이런 검정 사설 국사 교과서가 아닌 국사편찬위원회의 이름으로 편찬하고 교육과학기술부가 발간한 공식 국찬 국사 교과서에 고조선의 건국시기를 기원전 2333년으로 보는 것은 틀렸다라고 나온다면 당연히 귀하의 주장에 수긍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출판 시기가 앞선다는 귀하의 주장도 전혀 설득력이 없으며 이런 여러 검정 사설 국가 교과서 중에는 귀하의 주장에 반대되는 논지로 서술하는 교과서도 있습니다. 하나도 아니고 각 출판사별로 다양한 여러개의 검정 사설 국사 교과서가 판을 치는 판국에 그중 귀하의 입맛에 맞는 특정 검정 사설 교과서 2개를 선정해서 이것이 주류 이론이니 수정하라? 전혀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귀하가 제시한 "고조선이 기원전 7세기 전후에 성립되었다는 명확한 논거도 없으며, 특정 견해에 치우칠 우려가 있음. 현재의 문장은 기원전 7세기 전후 성립설까지 아우를 수 있는 포괄적인 표현임." 이 자료를 근거라고 내세우시는 이유를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고조선이 기원전 7세기 전후에 성립되었다"는 것이 근거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게 고조선이 기원전 2333년에 세워졌다는 주제와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그리고 "중국에서 수 많은 나라가 명멸하는 가운데 고조선은 2,000년 넘게 존속하였다."를 왜 삭제시켰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고조선은 길게 존속했는데 중국은 그렇지 않고 수많은 나라가 난립했다라"는 내용이 검정 교과서에 실리기에는 별 효용이 없는 내용이라 삭제된 것이지 고조선의 건국 시기가 기원전 2333년임을 부정하는 내용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한국사신편의 내용이 언제 발간된 것인지는 모르겠고 그것보다는 국사편찬위원회가 2012년에 발간한 국사교과서에 실린 사항이 더 영향력이 큽니다. 그 신편이 2012년 이전에 발간된 것이라면 귀하는 그것을 논박 자료로 제출하는데 시기의 오류를 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귀하가 장득진 실장의 견해를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내세운 것은 그야말로 완벽한 자충수입니다. "청동기 보급 시기가 기원전 2333년이라는 시기에 미치지못해서 그동안 고조선의 건국 시기를 단정하지 못했는데 기원전 2333년에 육박하는 기원전 2000년까지 청동기 보급 시기가 올라가는 연구 성과를 근거로 건국 시기를 확정했다는 말입니다." 이해가 안가시면 장실장의 말을 다시한번 읽어보시기를 권유드립니다. "적극적으로 서술"은 사실로서 확실하게 서술한다는 의미이고 따라서 단정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송호정과 이형구같은 그야말로 대표적인 소고조론자들간의 대담을 가지고 이것이 학계의 공식적인 견해라고 주장하시는데 송호정과 이형구의 주장이 무조건 학계의 공식적인 견해입니까? 이들보다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의견이 지극히 당연하지만 더 공식적이고 인정받는 주류 견해입니다.
그리고 자꾸 제가 알아들으실만큼 자세히 설명을 해드려도 자꾸 "단정"이라는 표현에 이의를 제기하시는데 "~ 건국하였다고 한다"를 "건국하였다"로 한 것이 단정이 아니면 뭡니까? 그리고 귀하가 제시한 낙랑군 문제 역시 잘못된 주장입니다. 제가 지금 시간이 없어서 이문제는 곧 차후에 반박하도록 하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29일 (화) 14:42 (KST)
다음은 낙랑군 문제에 있어서 귀하에 대한 반박입니다. 귀하는 부정하실지 모르겠지만 공식 국찬 국사 교과서에서 한사군을 비롯한 낙랑군 문제는 아래와 같이 계속 일관적으로 부정하는 쪽으로 개정되어 왔습니다.
  1. 한은 고조선을 넘어뜨린 후 4군을 두어 식민지로 만들었다. 이 4군의 위치는 ...중략... 고조선의 옛 지역에는 낙랑군을, 그 남쪽 한강 이북 지역에는 진번군을, 그리고 원산만 일대에는 임둔군을 설치하였다.- 1976년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2. 한은 고조선의 일부 지역에 낙랑, 진번, 임둔, 현도의 4군을 두었다.- 1982년도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3. 한은 고조선의 일부 지역에 군현을 설치하여 지배하려 하였으나,- 1990년도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보시는 바와 같이 애초에는 4군이 식민지라고 명시하고 구체적 군현의 이름은 물론 그 구체적 위치까지 명시하다가 1982년도에는 4군의 이름만 적고 그 위치는 생략했고 1990년도에 이르러서는 아예 이름도 사라지고 거기에다가 "지배하려 하였으나(2012년 판은 "지배하고자 하였으나")"라고 하여 과연 설치가 확실히 됐는지조차 모호하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는 갈수록 한사군 한반도설, 낙랑군 평양설이 근거가 없음이 밝혀지고 이에 국사 교과서에 싣는 것이 옳지 못하다는 판단하에 이뤄진 개정들입니다.
이는 국사편찬위원회 연구관과 교육부 역사 담당 편수관을 지낸 윤종영씨가 지은 "국사 교과서 파동"이라는 책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해당 책에 보면 각 대학교의 교수들이 모여서 국사 교과서 편찬 준거안을 1986년에 만들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일단 한사군과 낙랑군에 대해서는 아래의 문제들이 제기되었습니다.(해당 책 116 페이지)
`한사군의 국내 위치를 인정해야 하는가
`낙랑군의 평양 설치를 인정해야 하는가(왕검성의 위치)
그래서 국사편찬 위원회에서 위촉된 교수들이 격렬한 토론을 거친 끝에 1986년 6월5일 국사 교과서 편찬 준거안이 확정 발표되었는데 한사군에 대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해당 책 172 페이지)
`한군현에 대해서는 근래의 학문적 성과를 유의하여 서술하되 그것이 한국사의 주류가 아님을 명확히 한다.
제가 이 과정을 굳이 일일히 설명하는 것은 한사군과 낙랑군이 국사편찬위원회에서의 토론 결과 국사 교과서에서 부인되는 방향으로 실린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정도면 국사 교과서에서 한사군이 부정되는 방향으로 서술되었음은 귀하도 인정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면 앞서 귀하가 제시한 그 내용들은 왜 국사 교과서에 남아있느냐?(물론 검정 사설 국사 교과서의 내용은 다룰 가치가 없으므로 제외합니다.) 일단 아래의 내용을 보시기 바랍니다.
한사군의 기술을 본문에서 삭제키로 했던 시안을 수정, 다시 본문에서 다루기로 한 것은 역시 한사군이 한국사의 주류가 아니었음을 명확히 한다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학계의 강력한 반발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윤종영 저, "국사 교과서 파동" 해당 책 177 페이지
아시겠습니까? 애당초 한사군에 관련된 서술은 일절 모두 삭제하기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합의했다가 일부 학계의 반발로 몇구절을 넣었다는 것입니다. 귀하가 제시한 그내용들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그리고 이런 서술에서조차 그 어디서도 낙랑군=평양이라는 직접적인 문구는 당연히 하나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사라졌어야할 잔재들이 마지못해 들어 있는 것으로 국사 교과서가 낙랑군 평양설을 인정하는 증거로는 당연히 성립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분명히 국사 교과서는 아예 한사군 자체에 엄청 부정적입니다. 상황이 이럴진대 귀하의 주장처럼 낙랑군 평양설이 아무런 이의가 없는 압도적 다수설입니까?--Lhrdrth (토론) 2014년 7월 29일 (화) 17:20 (KST)
1. 이 출처를 보시지요. 국사편찬위원회가 직접 심의한 것이 7종의 한국사 교과서입니다만. 교과서의 내용에서 국편위의 심의 기준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해 수정하라고 하달한 것이 바로 위 출처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에 고조선의 건국 연대에 대한 내용이 이렇게 들어 있는 것이 실상입니다. 금성교과서의 수정 사항은 기원전 2333년이 실제 고조선의 건국 연대가 아니라는 서술이 명백하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공식적인 입장이라는 것은 귀하 본인도 잘 알고 있을텐데 말입니다.
2. 적어도 한국사에 있어서 국사 교과서는 국편위의 《한국사》신편과는 공신력 면에서 비교조차 불가능합니다. 1권 짜리 국사 교과서와 국편위에서 핵심 사업 중 하나로 수십 년에 걸쳐 편찬되는 《한국사》(전 52권)를 비교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국사 교과서를 만들고 그 검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사편찬위원회가 직접 학계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하여 편찬한 《한국사》의 공식 서술에서조차 고조선의 건국 연대에 대해서 가장 우호적으로 서술한 것이 구체적 정치체로 등장한 단계는 아니다라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편찬 연대를 말씀하셔봤자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한국사 연구자들의 공통된 의견 역시 현재까지도 기원전 2333년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으니까요.
또한 송호정과 이형구같은 그야말로 대표적인 소고조론자들간의 대담을 가지고 이것이 학계의 공식적인 견해라고 주장하시는데 송호정과 이형구의 주장이 무조건 학계의 공식적인 견해입니까? 이들보다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의견이 지극히 당연하지만 더 공식적이고 인정받는 주류 견해입니다.
3.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소고조선론자라는 허구의 집단을 설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적어도 학계 일반의 여러 반박 견해를 제시라도 했지요. 물론 국편위의 공식 견해 역시 전혀 다름은 위의 《한국사》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아래 내용을 보시면 더더욱 확실하지지요.국편위에 지금 현재도 올라와 있는 자주 묻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질문자께서는 상당히 예리한 시각을 가지고 계시는 듯합니다. 사실 한국고대사를 전공하고 있는 답변자로서도 현재의 국사책을 볼 때마다 이 부분이 마음에 걸리곤 했습니다. 자칫 모순으로 보여질 수도 있고, 또한 오해의 소지도 있기 때문입니다. 질문자께서는 이 부분을 바로 정확하게 지적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국사 교과서의 이와 같은 기술은 현재 학계가 안고 있는 딜레마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즉, 세계사적으로 볼 때 국가의 형성은 신석기 시대 이후 즉, 청동기 시대에 들어서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고고학적 연구 성과에 따르면, 우리 나라에서 청동기 시대는 BC 1000년을 올라가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건국은 아무리 빨라도 그 시기가 BC 1000년을 넘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고조선의 건국 사실을 전하는 단군신화에는 그 건국 연대가 BC 2333년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과연 이 기록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가 현재 학계의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증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이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이고, 또한 그 기록을 전혀 무시할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게다가 고고학적 발굴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진전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며, 이 경우 청동기 시대의 상한은 더욱 올라갈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고조선사와 관련하여 현재 학계가 안고 있는 하나의 큰 딜레마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국사 교과서는 서술되었습니다. 때문에 두 가지 가능성 모두를 제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즉, 청동기 시대에 들어와 국가가 형성되게 된다는 것과, BC 2333년의 고조선 건국설 모두를 소개하게 된 것입니다. 두 가지 견해는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국사 교과서의 내용을 잘 살펴보십시오. 고조선의 건국연대와 관련하여 "고조선은 단군왕검에 의하여 건국되었다고 한다(BC 2333)"라고 하여, 단지 단군신화의 기록을 소개하고 있을 뿐, 그것을 단정짓지는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러했을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이며, 그 실제 여부는 향후의 연구성과에 맡기겠다는 뜻을 내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귀하는 여전히 국사 교과서, 그리고 학계에서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소수설 주장자를 제외하면 어떠한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귀하의 사실상 유일한 근거인 국사 교과서조차도 위에 써 있다시피 단정짓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귀하 혼자서 단정했다라고 주장해봤자 이를 지지하는 견해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위 인용문이 2007년 이전의 교과서에 대한 것이라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에 따르면”이라는 문장 자체가 사실 여부의 판단을 배제한 채 여기에 이렇게 써 있다는 조건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건문에 대해서 하였다고 한다를 하였다로 바꾼다고 해서 조건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사실 여부를 갑자기 판가름 내리는 것 또한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송호정 교수의 말마따나 문법상으로 틀린 개정일 뿐입니다.
3. 귀하와 저의 기나긴 분쟁 중에 개입하셨던 분들은 귀하가 주장하는 교과서와 국편위의 《한국사》 가운데 어느 쪽이 더 공신력이 높은 자료인가에 대해서 이미 교과서가 아닌 국편위의 공식 견해를 선택한 바 있습니다. 관련 토론 참조(Jjw 님, 팝저씨 님의 견해) 일개 교과서와 솔직히 이미 수차례나 귀하와 분쟁을 했던 주제 - 교과서의 낙랑군 문제 - 가 여기서 또 언급되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입니다. 낙랑군과 관련해서 귀하가 교과서를 근거로 어떤 편집을 하건 그것은 명백한 반달 행위일 뿐입니다. 그나마 가능한 편집이라면 낙랑군#성격에 교과서가 이러이러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수준이겠지요.--Xakyntos (토론) 2014년 7월 30일 (수) 16:20 (KST)
귀하가 보여준 그 출처에서 다운받을 수 있는 자료 그 어디에서 "기원전 2333년이 실제 고조선의 건국 연대가 아니라는 서술이 명백하게 포함되어 있습니다."입니까? 제가 아무리 금성출판사 관련 자료를 찾아봐도 관련해서 나오는 것은 귀하가 앞서 언급한 "고조선이 기원전 7세기 전후에 성립되었다는 명확한 논거도 없으며, 특정 견해에 치우칠 우려가 있음. 현재의 문장은 기원전 7세기 전후 성립설까지 아우를 수 있는 포괄적인 표현임." 이부분인데 이부분은 제가 앞서 지적한대로 이것은 "고조선이 기원전 7세기 전후에 성립되었다"는 것이 근거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게 고조선이 기원전 2333년에 세워졌다는 주제와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그리고 귀하가 올려준 그 국편위 질문은 말입니다, 최소한 2001년 이전에 올라온 자료입니다. 그 질문 답변들이 책으로 묶여서 나온 것이 아래의 링크에서 보듯이 2001년입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0314
최소한 2001년 이전에 올라온 자료를 가지고 2007년에 새롭게 반영된 자료를 논박하겠다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앞서도 그렇고 지금 귀하가 반박 자료라고 올리는 것들이 죄다 이런 식의 터무니없는 것들입니다. 한번만 더 이런 식으로 토론에 임하신다면 부적절한 토론 태도로 제재를 요청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국사 교과서 서술 문제에 관해서는 이제는 솔직히 귀하가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이같은 수정에 대해 <국사편찬위원회>의 설명은 당당하다. 장득진은 "그 동안 사서에는 나오지만 고고학적 증거가 불충분했던 고조선 건국 시기가 최근 연구 성과로 근거가 뚜렷해짐에 따라 서술 방식을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이종호 이형석 저, '고조선, 신화에서 역사로" 28쪽
장 실장은 "이전 역사교과서에서는 고조선을 비롯한 한반도의 국가는 청동기시대부터 존재했다고 밝히면서도 청동기 보급시기를 최고 기원전 15세기로 잡았다"며 "이 탓에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됐다는 고조선의 역사와 맞지 않아 배우는 학생들이 의아해 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교과서에서 고조선이 기원전 2333년에 단군왕검에 의해 건국됐다고 적극적으로 서술되지 못한 이유는 이 시기에 청동기가 보급됐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연구성과가 충분하지 못한 탓이 크다. 장 실장은 "우리가 만주 등의 유적들에 접근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동안 청동기문화를 토대로 세워진 고조선의 존재를 뒷받침할 만한 실증적인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았다"며 "그러나 최근 들어 관련 연구성과들이 속속 발표되면서 이번 교과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한반도 청동기 보급시기를 기원전 2000년쯤까지 앞당겼다"고 분석했다.
앞서서도 제시된 그렇게 수정한 것에 대한 국편위의 입장입니다. 모두 기원전 2333년 고조선 건국시기가 그 주된 핵심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다시한번 설명해드리죠. 저것은 "청동기 보급 시기가 기원전 2333년이라는 시기에 미치지못해서 그동안 고조선의 건국 시기를 단정하지 못했는데 기원전 2333년에 육박하는 기원전 2000년까지 청동기 보급 시기가 올라가는 연구 성과를 근거로 건국 시기를 기원전 2333년으로 확정했다"는 말입니다. 자 분명히 이런 근거 자료가 있는데 "대한민국의 국사 교과서는 고조선의 강역으로 추측되는 랴오닝 성 및 한반도의 고고학 발굴 결과를 토대로 기원전 2000년경에서 기원전 1500년경에 청동기 시대가 본격화된다고 서술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고조선의 건국 시기도 기원전 2333년으로 단정하였다."다는 제 편집에 도대체 무슨 오류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리고 남겨주신 답변을 보니 국사 교과서가 낙랑군을 비롯한 한사군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서술됐다는 것은 이제 부인을 못하시는군요.그리고 같은 국사편찬위원회의 편찬물인데 귀하의 입맛에 따라 "국사 교과서"는 믿을 수 없는데 "한국사"는 믿을 수 있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궤변인지 저는 납득이 안갑니다. 국사교과서가 그 한국사보다 더 신간이므로 전자가 더 신빙성있는 국편위의 입장임이 순리아닙니까? 그리고 귀하가 링크한 토론에서 팝저씨님도 "국사편찬위원회는 국가가 세운, 한국사에 있어서는 가장 믿을만하고 권위있는 곳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국사 교과서도 바로 그 국사편찬위원회가 편찬한 것입니다. 아마도 팝저씨님은 그 사실을 모르고 그런 말씀을 하신 것 같은데 팝저씨님의 논리대로라면 국사 교과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낙랑군 문서에서 귀하의 주장처럼 낙랑군 평양설이 아무런 이의가 없는 압도적 다수설이라는 주장은 더이상은 통용될 수 없고 앞으로는 그에 적합한 수준의 수정 편집이 이뤄져야만 할 것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30일 (수) 19:33 (KST)

위키백과는 인터넷 공개백과입니다. 따라서 신속한 최신 학설의 반영 또한 위키백과의 가장 큰 장점이자 이점입니다. 귀하는 지금 새로운 최신 학설의 반영을 명백히 방해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2007년 개정된 국사 교과서는 고조선의 건국 시기를 기원전 2333년으로 단정하였습니다. 이는 위키백과의 원칙에도 어긋나고 발전에도 저해되는 행위입니다. 삼가해주시기를 바랍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30일 (수) 19:53 (KST)

토론 중에 제가 언급되어 몇 말씀 남깁니다. 우선, 위키백과 내에서 검인정 이전의 국정교과서와 현재의 여러 가지 검인정 교과서 사이에 출처의 권위에 대한 우열은 인정되지 않습니다. 백:출처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를 두고 출처의 우위를 따지는 논쟁은 소모적일 뿐 별다른 실익이 없습니다. 제 생각엔 교과서 원문에 “~임이 확실하다”등의 표현이 없다면 단정하였다는 용어보다는 설명하였다거나 서술하였다는 용어를 사용하였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기원전 2333년을 단군 조선 건국의 해로 보는 것은 모두 《고기》(古記)에 근거한 것입니다. 《고기》 자체는 현존하지 않고 이를 인용한 《삼국유사》와 《제왕운기》 등이 전할 뿐입니다. 현재 국사교과서의 서술은 대체로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중국의 요임금이 즉위한 지 50년이 되는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을 두고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웠다”는 기사를 근거로 이를 서기로 환산하여 단군 조선의 건국을 기원전 2333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출처를 막론하고 모두 동일한 사료를 바탕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외에는 다른 사료가 없으니까요. 백과사전의 역사 서술에서는 되도록 다수가 인정할 수 있는 출처와 근거를 가지고 객관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바, 현재로서는 삼국사기에 요임금 50년 단군 조선을 건국하였다는 기사가 나오며 이를 서기로 환산하면 기원전 2333년이 된다는 설명이 최선입니다. 이것을 특성 교과서가 단정하였다고 설명하는 것은 백과사전의 취지에도 맞지 않고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 Jjw (토론) 2014년 7월 30일 (수) 20:06 (KST)
국사편찬위원회가 출판한 공식 국찬 국사 교과서와 개별 출판사가 출판한 검정 사설 교과서는 분명히 전자가 더 명백한 신뢰성과 우위가 있습니다. 팝저씨님의 ""국사편찬위원회는 국가가 세운, 한국사에 있어서는 가장 믿을만하고 권위있는 곳입니다." 라는 의견에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리고 지금 문제가 되는 부분은 공식 국찬 국사 교과서에 그렇게 내용이 개정되었으므로 추가된 부분입니다. 국사 교과서의 해당 내용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국사편찬위원회가 무작정 건국 시기를 기원전 2333년으로 단정한 것도 아니고 해당 토론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청동기 발굴 연대의 최신의 고고학적 성과를 반영한 근거가 분명한 개정입니다. 오해없으시기 바랍니다. 이는 제 개인의 일방적 주장이 아니라 확인해보시면 아시겠지만 국사편찬위원회의 개정 자료를 가지고 추가한, 근거가 분명한 편집임을 알려드립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30일 (수) 20:15 (KST)
현행 교육과정에서 국사 교과서는 모두 검인정 교과서이고 이는 모두 동일하게 동등한 지위를 갖습니다. 이전의 국정 교과서가 이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검인정이든 국정이든 사료가 하나 뿐이니 이를 어찌 해석하느냐의 차이가 약간 있을 뿐 사료에 따라 서기로 환산하면 기원전 2333년이 된다고 설명하는 것도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역사 학자마다 이에 대한 해석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요임금 자체가 신화적 인물인지 실존 인물인지가 논란이 있는 마당에 요 임금 즉위 50년이란 사료가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것인지는 서로 해석이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좀 더 덧붙이면 에드워드 핼릿 카가 그의 저서에서 말하듯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부단한 대화이며 이 대화는 일률적일 수 없습니다. 어떤 하나의 권위만이 절대적이라는 주장은 현대 역사학 일반에서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당장에 고조선기의 국가 기원에 대해서는 읍락국가설, 군장국가설 등 이론이 있고, 고조선의 강역과 역사에 대해서도 사료 자체가 매우 부실하여 다수의 이견이 존재합니다. 또한 최신 고고학적 성과에 따르면 요동반도에는 이미 신석기 시대에 복합적 문화가 존재하였습니다. 단군에 관한 기사에 거울이 등장하는 것을 근거로 하면 단군은 명백히 청동기 문화에 속하기 때문에 신석기 문화와 청도기 문화의 이전에 대한 논의도 복잡하게 진행중입니다. 하나의 것만을 절대적이라고 주장하지 말아주세요. 제 의견은 오늘은 여기까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하나도 오해하는 것 없으니 제 의견을 부디 경청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Jjw (토론) 2014년 7월 30일 (수) 20:26 (KST)
죄송하지만 저로서는 각 출판사별로 발간하는 검정 사설 국사 교과서들보다는 우리나라의 여러 학자들이 모여서 연구하여 국사를 편찬하는, 국가 공식 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가 편찬하는 공식 국찬 국사 교과서가 당연히 주류 이론이고 준거가 됨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듯이 지금 논쟁이 되는 부분은 제 개인적 주장이 아니라 2007년에 국사편찬위원회가 최신 고고학 발굴 성과를 근거로 고조선 건국시기를 기원전 2333년으로 단정했으므로 저는 그러한 최신 학설을 반영하여 국사 교과서가 그렇게 개정되었다는 부분을 거기에 적합하게 편집한 것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30일 (수) 20:36 (KST)
1. 수없이 말씀드렸다시피, 교과서 그 어디에도 확정했다거나 단정했다는 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Lhrdrth 사용자가 가져온 장득진 실장의 발언을 귀하가 혼자 해석한 내용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혀 그렇게 해석하지 않으며, 그에 대한 충분한 근거까지 들어 보여드렸습니다. 현재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은 오히려 귀하입니다.
2. 역시 셀수도 없이 말씀드렸습니다만, 저는 물론이고 송호정, 이형구를 비롯한 수많은 대한민국의 역사학자들 그 누구도 기원전 2333년을 실제 건국 연도라고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물론 국사교과서의 내용도 위에 인용한 국편위 질문답변란의 답변처럼 단지 단군신화의 기록을 소개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문장을 하였다고 한다에서 하였다라고 바꾼다고 해서 그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귀하 혼자서 달라졌다고 주장해봤자 그걸 입증하지 못하는 한 아무 쓸모 없는 일입니다. 즉, 단정하였다는 말 그 자체가 오류입니다.
3. “국사 교과서가 낙랑군을 비롯한 한사군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서술됐다는 것”은 부정할 이유가 없죠. 하지만 그 방향은 귀하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대체 몇 번을 말씀드려야 합니까? 국사 교과서는 민족주의적인 경향으로 인해 낙랑군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사실이 국민 교육에 부정적이라고 판단, 그 사실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서술한 것입니다. 결단코 없었다고 서술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귀하 혼자서 없다고 주장해봤자 교과서 본문 어디에도 낙랑군이 평양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는 말은 흔적조차 없습니다. 아니면 귀하께서 찾아와 보시죠. 교과서 어디에 낙랑군의 위치가 다른 곳이라고 써 있는지.
ps. 낙랑군 이야기를 대체 왜 고조선 문서에서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추후 낙랑군 관련 내용이 필요하다면 토론:낙랑군을 이용하십시오.--Xakyntos (토론) 2014년 7월 30일 (수) 20:29 (KST)
저는 2007년에 국사편찬위원회가 최신 고고학 발굴 성과를 근거로 고조선 건국시기를 기원전 2333년으로 단정했으므로 그렇게 편집했고 이 부분을 그렇게 Xakyntos 귀하에게 지금까지 설명했는데도 귀하께서 제가 억지를 부린다식으로 주장하시는 대해서는 정말 어이가 없을 뿐입니다.
그리고 국사편찬위원회가 그렇게 판단하는데 대한민국의 역사학자들이 뭐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않는다는 것입니까? 국사편찬위원회는 엄연히 대한민국의 역사학자들로 이뤄진 기관입니다. 그리고 귀하가 올린 그 국편위 질문은 최소한 2001년 이전의 국편위 입장이고 2007년에 국편위가 입장을 변경한 부분이라고 설명드렸는데 또 이렇게 언급하시니 도대체가 제 답변을 제대로 읽기는 하시는지 의문이 듭니다.
국사 교과서는 민족주의 성향으로 한사군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앞서 제가 자료를 제시한대로 여러 학자들이 모여서 토론을 하고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거기에 대한 준거안을 마련해서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낙랑군 문제는 말씀하신대로 해당 문서에서 토론을 하도록 하지요. 낙랑군 문서 보호가 풀릴 즈음에 여기서 토론된 내용을 옮기고 해당 문제에 대한 공식적인 문제 제기를 낙랑군 토론 문서에서 하도록 하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30일 (수) 20:47 (KST)
1. 2007년에 편찬된 국사 교과서가 해당 내용을 단정했다는 근거를 가져오시면 됩니다.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이 현재 상황인 것을 어쩌란 말입니까? 귀하가 가져온 근거라고는 장득진 실장의 발언 뿐이고, 그 발언조차도 귀하의 해석과 달리 볼 수 있다는 근거를 저는 이미 제시했습니다. 물론 교과서가 단정한 것이 아니라는 근거 또한 《한국사》, 국편위의 Q&A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를 든 바 있습니다. 물론 교과서 본문 어디에도 단정했다라고 볼 수 있는 내용은 없습니다. 근거라고는 전혀 없는 상황인데 대체 누가 억지를 쓰고 있는 겁니까? 어이가 없는 것은 오히려 저입니다만.
2. 저는 적어도 바로 그 국편위가 국사 교과서를 개정한 2006년 당시 송호정을 비롯한 한국사학계의 반대 목소리를 근거로 들었습니다만? 국사 교과서가 잘못된 방향으로 서술되었다는 학계 일반의 반대 목소리가 명백한데 대체 국사 교과서가 한국사학계의 정설이라는 말이 가당키나 합니까? 이 점부터 해명해 보시지요.--Xakyntos (토론) 2014년 7월 30일 (수) 23:21 (KST)

근거는 위에서 질리도록 들어드렸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근거를 가져오라고 하시면 도대체 저보고 뭘 어쩌라는 말입니까? 그리고 송호정만 한국 사학계고 국사편찬위원회는 한국 사학계가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십시오. 송호정이 주류인지 국사편찬위원회가 주류인지. 뭘 해명을 해야될지 모르겠습니다. 도대체가 국사편찬위원회의 의견도 못믿겠다는데 무슨 말이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국편위의 Q&A 예를 든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2번이나 지적했는데 또 그걸 근거라고 내세우니 도대체 정상적인 토론의 의지 자체가 있으신지 솔직히 의문이 갑니다. 그리고 귀하와 그동안 숱한 논쟁을 했지만 일리가 있고 타당하다면 제가 양보도 서슴치않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은 귀하의 의견이 명백히 틀렸습니다. 저로서는 도무지 타협의 여지는 없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30일 (수) 23:42 (KST)

귀하가 질리도록 가져왔다는 근거라고는 장득진 실장 딱 한 사람의 발언 밖에 없습니다. 그것 말고 대체 무슨 근거를 가져오셨습니까?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 한 가지 말고 근거라고는 없습니다. 다른 근거를 제발 좀 보여라도 주십시오.
반면 저는 적어도 송호정, 이형구의 대담(경향신문 기사)을 비롯한 각계 각층의 학자들이 한 반박(한겨레 기사), 국편위의 핵심 사업으로서 교과서 따위와는 권위 면에서 비교조차 불가능한 《한국사》신편, 국편위의 Q&A, 2013년 현재의 검인정 교과서의 내용까지 수많은 자료를 제시했습니다. 지금 현재 국편위의 의견 자체가 청동기 시대 편년을 기원전 2000년 경까지 끌어올렸다는 것 뿐입니다. 기원전 2000년은 기원전 2333년보다 300년 뒤입니다. 위에 인용한 국편위 Q&A의 상황과 대체 무슨 차이입니까? 연대가 800년 정도 앞당겨졌을 뿐 여전히 300년이나 모자랍니다. 상황이 이럴진대 교과서가 2333년을 공식 인정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지는 자명합니다.
정리하겠습니다. 귀하는 국편위가 기원전 2333년을 공식적인 건국 연도로 확정했다는 근거를 제시하십시오. 현재 귀하가 제시한 그거라고는 장득진 실장의 발언 하나 밖에 없으며, 그 발언조차도 그렇게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많은 실례를 들어 설명해드렸습니다. 근거라고는 하나도 대지 못하면서 정상적인 반박에 억지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귀하입니다. 타협의 여지가 없다고 하셨습니까? 그렇다면 귀하는 토론을 할 자격도 없는 겁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7월 31일 (목) 09:56 (KST)
지난 토론들을 살펴보니 두 사용자 분 모두 오래 전부터 이 문제로 토론을 하였고 사용자 관리와 문서 관리 요청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단은 두 분 모두 다른 사용자들의 의견을 기다려 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지금 당장에는 Lhrdrth님께서 과거 국정으로 사용하였던 국사 교과서가 단군 조선의 건국시기를 단정하였다고 주장하시고 이 문서 본문에 그렇게 편집하신 것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두 분 사이의 오랜 토론과 이 토론란에서 제출된 모든 자료를 살펴보아도 국정교과서가 그렇게 단정하였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상식적으로 상고시대의 역사에 있어서 사료가 불충분할 경우 그것이 무엇이건 단정한다고 판단하는 학자는 없습니다. 위에 국사편찬위의 답변도 결코 단정하였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Lhrdrth 님께 제안드리고 싶은 바는 상대가 지적하는 합리적 부분에 대해서는 수긍을 해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국정교과서를 그냥 출처로 사용하느니 다른 여러 출처를 병행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하는 것이 객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요임금 즉위 50년에 단군이 평양성을 도읍으로 정하고 조선을 건국하였다고 한다. 이를 서기로 환산하면 기원전 2333년이 된다. 대한민국의 국사 교과서에서는 이를 근거로 고조선 건국 년도를 산정하고 있다. ”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여기까지 하시길 부탁드립니다. 동의하신다면 출처와 함께 제안드린 바와 같이 문서의 내용을 편집해 넣겠습니다. 부디 이런 지엽적인 것으로 격한 토론을 계속하지 마시고 문서 자체가 부실한 부분에 눈을 돌려 주시길 바랍니다. -- Jjw (토론) 2014년 7월 31일 (목) 14:13 (KST)
Xakyntos 귀하의 지금까지의 주장의 요지는 2007년 국사 교과서 고조선 건국 시기 개정 부분이 기원전 2333년이라고 건국시기를 단정한 것이 아니고 고조선이 건국된 사실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라는 것인데 그게 도대체 말이나 됩니까? 귀하의 주장대로라면 고조선이라는 나라가 세워졌는지조차 불명확한데 어떻게 세워지지도 않은 나라가 연나라와 전쟁을 하고 한나라와 전쟁을 합니까? 해당 개정의 요지는 당연한 말이지만 고조선은 당연히 실존한 나라였고 다만 문제되는 부분이 과연 기록대로 기원전 2333년에 세워진 것이 진짜였는가 아니였는가 하는 문제인데 최근의 청동기 발굴 연대의 고고학적 성과로 기원전 2333년에 세워진 것을 확실하게 단정했는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제 편집이 틀린 부분이 뭐가 있습니까? 아래 그렇게 수정한 국편위의 입장을 다시한번 올려드리니 자세히 살펴보시란 말입니다. 그렇게 직접 수정한 국편위의 설명만큼 확실한 근거가 도대체 뭐가 있단 말입니까? 자꾸 이런 명백한 근거를 두고 일방적 주장으로 근거가 없다고 하시는데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이같은 수정에 대해 <국사편찬위원회>의 설명은 당당하다. 장득진은 "그 동안 사서에는 나오지만 고고학적 증거가 불충분했던 고조선 건국 시기가 최근 연구 성과로 근거가 뚜렷해짐에 따라 서술 방식을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이종호 이형석 저, '고조선, 신화에서 역사로" 28쪽
장 실장은 "이전 역사교과서에서는 고조선을 비롯한 한반도의 국가는 청동기시대부터 존재했다고 밝히면서도 청동기 보급시기를 최고 기원전 15세기로 잡았다"며 "이 탓에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됐다는 고조선의 역사와 맞지 않아 배우는 학생들이 의아해 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교과서에서 고조선이 기원전 2333년에 단군왕검에 의해 건국됐다고 적극적으로 서술되지 못한 이유는 이 시기에 청동기가 보급됐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연구성과가 충분하지 못한 탓이 크다. 장 실장은 "우리가 만주 등의 유적들에 접근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동안 청동기문화를 토대로 세워진 고조선의 존재를 뒷받침할 만한 실증적인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았다"며 "그러나 최근 들어 관련 연구성과들이 속속 발표되면서 이번 교과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한반도 청동기 보급시기를 기원전 2000년쯤까지 앞당겼다"고 분석했다.
--Lhrdrth (토론) 2014년 7월 31일 (목) 18:49 (KST)
그리고 Jjw님의 제안은 감사드립니다. 그렇지만 국사편찬위원회가 최신의 연구 성과로 고조선 건국시기를 기원전 2333년으로 단정한 부분은 매우 중요한 학술적 성과로서 고조선 문서나 토론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언론에서도 핫이슈로서 대대적으로 보도한 사안입니댜. 위키백과라는 공개백과의 특성상 이런 중요한 최신 학술적 성과의 반영은 필수적입니다. 따라서 국사교과서가 고조선 건국시기와 관련하여 2007년에 개정된 부분은 삭제될 수 없는 내용이고 그부분은 저와 사용자 Xakyntos와의 편집분쟁 이전에도 이미 올라와있던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그 부분을 삭제하자는 의견은 무리라고 생각됩니다. 죄송합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31일 (목) 18:57 (KST)

제가 또 위에 올려드린 국사 교과서를 그렇게 개편한 국편위 장득진 실장의 의견을 보십시오. "고조선 건국 시기가 최근 연구 성과로 근거가 뚜렷해짐"이라고 했습니다. Xakyntos 귀하의 주장대로 건국 사실이나 주체가 아니라 분명히 건국 시기 즉 고조선이 건국됐다는, 기록에 나오는 기원전 2333년에 관련된 문제란 말입니다. 두번째도 "이 탓에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됐다는 고조선의 역사와 맞지 않아 배우는 학생들이 의아해 했다고 말했다."라고 하여 분명히 기원전 2333년 건국 시기 확정과 관련된 문제라고 설명하고 있지않습니까? 그래서 최근의 고고학적 연구 성과가 한반도 청동기 보급시기를 기원전 2000년쯤까지 앞당겼으므로 그런 연구 성과에 맞춰서 고조선의 건국 시기를 기원전 2333년으로 확정했다는 설명입니다. 저기 어디에 귀하의 주장처럼 건국 사실이나 주체를 단정했다는 말이 나옵니까? 귀하가 올린 대담 기사에서도 이형구는 " 기원전 2333년의 선입견에 맞춰 청동기 상한선도 기원전 20세기까지 올라간 게 아니냐고 하는데"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까지 말씀을 드렸는데도 이해를 못하시고 계속 근거가 없다고 하면 저로서는 정말 방법이 없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31일 (목) 19:23 (KST)

고조선의 건국연대와 관련하여 "고조선은 단군왕검에 의하여 건국되었다고 한다(BC 2333)"라고 하여, 단지 단군신화의 기록을 소개하고 있을 뿐, 그것을 단정짓지는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건국 사실이나 주체 문제는 별개로 친지가 오래인데 말입니다. 지금 논의는 모두 건국 연대만 놓고 벌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귀하의 말씀은 전혀 아니라고 대체 몇 번을 말씀드려야 하는지 모르겠군요. 국편위 Q&A의 저 한 문장으로 끝나는 문제입니다. 교과서는 하늘이 두쪽이 나도 학계에서 논란이 있는 내용을 단정하지 않습니다. 귀하는 단정했다는 근거를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이미 다른 여러 근거와 해석을 통해 장득진 실장의 발언은 단정했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미 위에 Jjw 님께서도 귀하의 해석이 옳지 않다고 판단하신 바 있습니다.
아주 간단한 문제입니다. 귀하가 가져온 증거가 틀렸으니 다른 증거를 가져오라는 말입니다. 근거라고는 하나 뿐인데 그 하나의 근거조차도 틀렸다는 반박이 나왔으면, 다른 근거를 가져오던가 근거가 틀리지 않았다고 증명하시면 되는 일입니다. 지금처럼 자신의 해석만을 근거로 억지 주장을 펼치는 것을 가리켜 독자연구라고 합니다. 위키백과에서 금지되어 있는 행위죠. 확실한 근거를 들어 증명하지 않는 한 지금 귀하의 행동은 차단 대상일 뿐입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7월 31일 (목) 19:35 (KST)
제가 도대체 몇번이나 지적해드렸습니까? 귀하가 올린 그 국편위 Q&A는 2001년에 올라온 것입니다. 최소한 2001년 이전에 올라온 자료를 근거랍시고 2007년에 새롭게 국편위가 입장을 변경한 부분을 반박한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제가 벌써 이 부분을 몇번이나 지적했습니까? 한번만 더 이걸 근거랍시고 인용하면 고의적인 토론 훼방으로 제재를 요청하겠습니다. 다시한번 알아들기 쉽게 풀어드릴까요? 귀하가 지금 근거로 든 국편위 Q&A는 최소한 2001년 이전의 것이고 이후 2007년에 장득진 실장의 말처럼 국편위는 "그 동안 사서에는 나오지만 고고학적 증거가 불충분했던 고조선 건국 시기가 최근 연구 성과로 근거가 뚜렷해짐에 따라 서술 방식을 변경했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고조선 건국 시기 이 부분이 안보이십니까? 귀하의 이런 행위는 엄연히 2007년에 개정판이 나온 책을 가지고 2001년 이전에 나온 판을 보고 2001년판이 2007년판보다 더 최신판이라고 우기는 행위입니다. 우습지않습니까?
그리고 Jjw님께서도 "대한민국의 국사 교과서에서는 이를 근거로 고조선 건국 년도를 산정하고 있다."라고 하셔서 기원전 2333년 문제를 분명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귀하가 편집분쟁을 유발한 해당 편집을 볼까요? "기존 교과서의 건국하였다고 한다는 문장을 건국하였다라고 조금 더 확정적으로 서술하였다."고 하여 건국 시기 즉, 기원전 2333년을 쏙 빼먹었습니다. 왜 엄연히 국사 교과서에 기원전 2333년에 건국하였다라고 단정적으로 서술했는데 그 부분을 생략합니까? 이거야말로 명백한 고의적인 사실왜곡아닙니까? 귀하의 이런 편집태도야말로 차단 대상임을 명백히 인지하십시오. 그리고 자꾸 근거가 없다고 하는데 제가 벌써 몇번이나 국편위 의견으로 입증을 했습니까? 근거없다고만 하지말고 제가 앞서 든 국편위 입장으로 내세운 논리에 대해서 왜 근거가 없는지 구체적으로 반박이나 한번 해보십시오.--Lhrdrth (토론) 2014년 7월 31일 (목) 21:01 (KST)
또한 지금 당장에는 Lhrdrth님께서 과거 국정으로 사용하였던 국사 교과서가 단군 조선의 건국시기를 단정하였다고 주장하시고 이 문서 본문에 그렇게 편집하신 것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두 분 사이의 오랜 토론과 이 토론란에서 제출된 모든 자료를 살펴보아도 국정교과서가 그렇게 단정하였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문장은 읽지 못하신 겁니까? 핵심은 이것입니다. 건국 연도가 기원전 2333년이라는 기록으로서의 사실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귀하가 저 기원전 2333년이 실제 건국 연도라고 국사 교과서가 단정했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대체 몇 번을 말씀드려야 합니까? 2007년에 국사 교과서는 청동기 시대의 편년을 상향 조정했을 뿐입니다. 그나마 그렇게 상향 조정한 편년도 기원전 2000년 경입니다. 기원전 2333년보다 300년이나 모자라요. 애초에 편년 자체가 맞지 않는데 대체 누가 어떻게 기원전 2333년을 단정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까?
Jjw 님도, 저도 이 토론에 제시된 모든 자료에서 교과서가 건국시기를 단정했다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모든 근거가 그렇다는 Jjw 님의 말씀 안보이십니까? 귀하 혼자 연도가 다르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해봤자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2001년의 답변과 2007년 국사 교과서의 입장에는 전혀 변화가 없습니다. 단지 편년이 조금 더 가까워졌다고 보는 것이 변했을 뿐,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2001년의 답변만으로도 귀하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서 충분합니다.
귀하는 국편위 의견으로 입증이라는 것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몇 번을 말씀드렸습니다. 귀하 혼자 국편위 실장의 발언을 단정이라 해석하고 있을 뿐이죠. 제3자인 Jjw 님도 귀하의 생각과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건만, 귀하 혼자 “내 생각에 국편위 실장은 단정이라 말했다”라고 해봤자 그건 독자연구에 불과합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립니다. 국사교과서가 고조선 건국 연대를 단정했다라는 근거를 가져오십시오. 현재까지 모든 근거는 귀하의 주장이 틀렸음을 입증하고 있습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7월 31일 (목) 22:20 (KST)
우선, 현재의 검인정 국사 교과서의 검정 역시 국사편찬위원회가 행정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검인정 국사 교과서의 기술 내용이 국사편찬위원회의 것과 아주 다를 수 있다는 해석은 곤란합니다. 그리고, 국사편찬위원회가 운영하는 한국사데이터 베이스에서 단군 조선의 건국년도를 기원전 2333년으로 산정하고 있는 것은 《삼국유사》〈기이1 고조선〉을 출처로 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단군 조선의 건국년도를 서술하고 있는 사료는 이게 유일하거든요. 그러니 그것이 국정이 되었든 검인정이 되었든 원 사료는 모두 같습니다. 이것은 앞서도 말씀 드린 바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Xakyntos님의 말과 같이 “단정하고 있다”는 것은 서술에 대한 평가 또는 해석이지 서술 자체를 인용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시 한 번 이 문제는 이쯤에서 정리하기를 희망합니다. 정히 두 분과 제가 토론을 마무리짓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겠지만, 제 판단엔 백:불보듯 이거든요. -- Jjw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0:18 (KST)
저는 도대체 이문제로 이렇게 지루하고 소모적인 논쟁으로 이어지는 이유를 정말 이해할 수 없습니다. 2007년 개정 국사 교과서는 분명히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기원전 2333)."이라고 서술했습니다. Xakyntos 사용자는 연도를 뒤에 괄호로 표시한 부분을 문제삼는데 원래 국사 교과서가 연도를 표현하는 방식이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이성계와 급진 개혁파 사대부 세력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였다(1392).
`국호를 청이라 고친 다음 다시 대군을 이끌고 침입해 왔다(1636).
이런 식입니다. 그러니까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기원전 2333)."라는 서술은 "단군왕검이 기원전 2333에 고조선을 건국하였다."와 동치어입니다. 이렇게 국사 교과서에 명백히 기원전 2333년에 건국하였다고 단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왜 이문제를 자꾸 트집잡고 소모적인 논쟁으로 이어지게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Xakyntos 사용자의 말대로 국사 교과서가 기원전 2333년 건국을 신화라고해서 인정하지 않았으면 당연히 기원전 2333년 부분이 보시다시피 빠져야하지만 엄연히 들어가 있습니다. 제 편집에 정 불만이면 고조선 문서 보호가 풀리면 국사 교과서에 표기된 그대로 "단군왕검이 기원전 2333에 고조선을 건국하였다.라고 확정적으로 서술하였다."라고 수정할테니 Xakyntos 사용자는 더이상은 왈가왈부하지 마십시오. 교과서의 서술 그대로 표시하는 것도 문제삼는다면 귀하와 더이상의 토론의 여지는 없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3:23 (KST)
귀하야말로 논점을 계속 흐리지 마십시오. 현재 논점은 귀하 혼자 주장하고 있는 단정했다는 문장 뿐입니다. 연도가 괄호에 있건 말건 그것은 현재 논점에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이 토론의 첫머리에 잠시 언급되었을 뿐, 지금까지 한 번도 말한 적도 없는 것을 본인이 불리한 것 같으니까 뒤늦게 끄집어 내는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입니까? 게다가 국사교과서 어디에도 “라고 확정적으로 서술하였다”라는 문구는 없습니다. 그것은 귀하 혼자만의 해석일 뿐이라고 대체 몇 번을 말씀드려야 합니까? 단정이건 확정이건 국사 교과서는 그런 것을 한 적이 없다고 수없이 말씀드렸습니다. 귀하는 지금 위증을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을 국사 교과서에 표기된 그대로라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편집을 하려면 하십시오. 그럼 귀하는 차단될테니까요.--Xakyntos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3:32 (KST)
"~하였다고 한다"를 "하였다"라고 바꿨는데 이게 단정적, 확정적 서술 아닙니까? 그리고 국사 교과서가 분명히 기원전 2333년 부분을 넣어서 "단군왕검이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을 건국하였다."라고 분명히 적고 있는데 무슨 딴 말씀입니까? 위증이라니요? 정말 너무도 어이가 없습니다. 국사 교과서에 수록된 그대로의 내용도 거부한다면 귀하야말로 차단 대상입니다. 얼마든지 차단 신청해보십시오. 귀하는 분란조장에 의한 차단 남발의 이유로 차단 대상이 될 것이니까요.--Lhrdrth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3:51 (KST)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기원전 2333).
위증이지요. 위증이고 말고요. 국사교과서의 문장은 위 인용문에서 끝이니까요. 귀하는 교과서에 수록된 그대로의 내용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직접 보십시오. 바로 위 교과서 어디에 “라고 확정적으로 서술하였다”는 말이 있습니까? 귀하는 또다시 상대 토론자가 명백하게 지적한 논점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토론이 제대로 성립될 수 없도록 방해했습니다. 방해 편집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기에 충분합니다. 경고합니다. 또 다시 이렇게 토론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논점을 흐리면 합당한 징계를 요청하겠습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3:58 (KST)
정말 도대체 왜이런 말도 안되는 주장을 거듭하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하였다고 한다"를 "하였다"라고 바꿨는데 이게 단정적, 확정적 서술 아닙니까? 그리고 국사 교과서가 분명히 기원전 2333년 부분을 넣어서 "단군왕검이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을 건국하였다."라고 분명히 적고 있는데 무슨 딴 말씀입니까? 여러번 지적했듯이 근거로서 가치가 없는 자료를 거듭된 지적에도 불구하고 계속 제시하는 등 지적한 논점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토론이 제대로 성립될 수 없도록 방해한 쪽은 엄연히 귀하입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국사 교과서에 수록된 그대로의 내용도 거부한다면 귀하야말로 차단 대상입니다. 얼마든지 차단 신청해보십시오. 귀하는 분란조장에 의한 차단 남발의 이유로 차단 대상이 될 것이니까요.--Lhrdrth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4:08 (KST)
이미 위에서 수도 없이 말씀드렸습니다. 해당 서술을 가지고 단정했다라고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입니다. 귀하는 이번에도 논점 이탈을 하며 방해 편집을 하였습니다. 또한 교과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내용을 교과서에 존재한다고 근거로 제시하면서 허위 사실을 유포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징계를 요청하겠습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5:00 (KST)
"~하였다고 한다"를 "하였다"라고 바꿨는데 이게 단정적, 확정적 서술이 아니라고 끝까지 부인하고 다른 신문 기사 등에서도 "공식 편입" 등으로 표현하는데 이를 방해 편집이라고 하다니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차단 신청까지 하다니 정말 할말이 없습니다. 따라서 귀하를 명백히 허위 사실에 의한 불순한 목적의, 즉 분란 조장을 목적으로 하는 차단 남발 행위로 차단을 요청하였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5:30 (KST)

논문이나 학술 단행본도 아니고 "교과서"가 합당한 근거로 제시될 수 있나요? 그것도 대학 교과서도 아니고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가요.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14년 8월 1일 (금) 15:33 (KST)

국사편찬위원회라는 최고의 공식 국가 국사 연구 기관에서 편찬한 국사 교과서보다 한국사 해석에 있어서 더한 신뢰있는 자료는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지금 논의되는 문제는 2007년에 고조선 건국시기에 대하여 국사 교과서가 개정된 부분을 싣는 문제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5:41 (KST)
단정적, 확정적인 서술이라 보기 어렵다는 견해는 저뿐만 아니라 Jjw 님께서도 공통된 의견인데 말입니다. 왜 아니인지에 대해서 여러 근거와 해석을 통해 제시해 드렸고, 해당 근거들로 볼 때 Jjw 님께서도 귀하의 서술이 문제가 있다고까지 하는데 이를 끝까지 부인한다고 표현하는 것은 명백한 방해 편집에 해당합니다. 합당한 근거를 무시하고 근거와 논리도 없이 자신의 주장만 강요하며 공동체의 합의 과정을 모독하는 행동이니까요. 엄연한 징계 사유입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5:42 (KST)
“국사편찬위원회라는 최고의 공식 국가 국사 연구 기관에서 편찬한 국사 교과서보다 한국사 해석에 있어서 더한 신뢰있는 자료는 없다고 보는 것”은 귀하 혼자만의 생각일 뿐입니다. 그보다 몇 배는 더 공신력있는 자료를 제시했고, 제3자인 Jjw님과 이번에 샐러맨더 님께서도 의문을 표하는데 귀하는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그렇게 단정을 하십니까?
ps. 그렇게 귀하가 신뢰하시는 국사 교과서에는 고구려의 수도가 평양이라는 사실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귀하가 과거 주장하던 사항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인데, 이건 어떻게 해결하시렵니까?--Xakyntos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5:47 (KST)
설사 단정했다고 해도, 그것은 "삼국유사에서 기원전 2333년이라고 했다"는 것을 단정한 것이지, "고조선은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되었다" 는 것을 단정한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삼국유사는 역사책도 아니고 설화집이에요. 그것은 "삼국유사의 서술"에 관한 정보는 될 수 있어도, "고조선이라는 실존했던 정치체의 건국 시기"에 관한 정보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14년 8월 1일 (금) 15:48 (KST)
그리고 일연이 예수가 언제 태어났는지를 알아서 "기원전 2333년" 이라는 연도를 배정했겠습니까. 기원전 2333년이라는 건 단군이 중국 요임금과 같은 시기에 즉위했다는 기록을 역산해서 짜맞춘 결과물입니다. 애초에 신화의 영역이지, 역사가 아니라고요.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14년 8월 1일 (금) 15:50 (KST)
또한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라는 물건은 애초에 목적이 "역사적 사실의 전달"보다 "국민 정체성 형성"에 그 기능의 방점이 찍힌 물건입니다만, 그 얘기까지 하는 건 지나치게 삼천포로 새는 것 같으니 그점은 언급만 해두겠습니다.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14년 8월 1일 (금) 15:53 (KST)
Salamander724님께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토론의 논지를 잘못 이해하시는 것 같은데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청동기 보급 연대의 1000년 상승이라는 최신 고고학적 성과 발굴이라는 명백한 연구 성과를 근거로 국사 교과서가 "단군왕검이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고 한다"를 2007년 개정으로 "단군왕검이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을 건국하였다."라고 단정적으로 변경하여 서술한 부분을 싣는 문제입니다. 지금까지의 토론 내용을 한번 자세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5:56 (KST)
아니오. 아주 정확하게 이해하고 계십니다. 셀수도 없이 말씀드렸습니다. 해당 서술을 단정했다라고 해석할 수 없다고. 수많은 근거를 들어 드렸고, Jjw 님께서도 직접적으로 귀하의 해석이 무리하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지금 논지를 고의로 흐리고 있는 것은 귀하입니다. 명백한 방해 편집입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5:59 (KST)
Xakyntos 사용자는 앞서도 지적했듯이 의도적으로 "기원전 2333년"이라는 부분을 생략한 편집을 강행하여 편집 분쟁을 야기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저 혼자만이 아니고 Aubelumiere님도 함께 지적한 문제입니다. 저 혼자만이 지적한 문제가 아닙니다. 애당초 "기원전 2333년"이라는 부분을 의도적으로 삭제하지만 않았다면 토론이 이렇게 길어지지도 않았을 문제입니다. 국사 교과서에 분명히 실려있는데도 이 부분을 계속 의도적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따라서 방해 편집은 바로 귀하가 행하고 있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6:19 (KST)
그리고 "단정" 부분에 대해서는 하도 지루하고 소모적인 논쟁이 벌어지고 있고 Jjw 님께서도 중재안을 제안해주셔서 저는 "단정"이라는 표현 대신에 분명히 "국사 교과서에 표기된 그대로 "단군왕검이 기원전 2333에 고조선을 건국하였다.라고 확정적으로 서술하였다."라는 객관적인 변경안을 제시했는데도 Xakyntos 사용자는 거부했습니다. 도대체 방해편집은 누가 하고 있는 것입니까? 기원전 2333년이라는 부분을 삭제하는 것은 절대로 인정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애당초 Xakyntos 사용자도 "확정적으로 서술하였다."라고 표시한 부분을 그대로 수용하여 변경안을 제시했는데도 거부하니 도대체 무슨 타협의 여지가 있겠습니까?--Lhrdrth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6:26 (KST)
또다시 논점을 회피하는 방해 편집을 하셨습니다. 이미 연도 표기 문제는 이 토론의 시작 단계부터 논점에서 제외되었다고 바로 위에서 몇 번이나 말했습니다. 토론 상대방이 명확하게 지적하고 명시한 사실을 이렇게 계속 무시하고 논점과 관계 없는 것만 공격하는 것이 방해 편집이 아니면 무엇이 방해 편집입니까? 또한 귀하는 Jjw님의 중재안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본인의 주장에 따른 허구의 서술을 하고 있다고 벌써 몇 번이나 말씀드렸습니다. “라고 확정적으로 서술하였다.”라는 문장이 교과서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대체 몇 번을 말씀드려야 합니까? 귀하는 해당 문장을 국사 교과서에 표기된 그대로라고 말하였는데, 국사 교과서에는 저런 표기 따위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를 수없이 지적했건만, 귀하는 계속해서 토론 상대방의 논점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이런 행동들이 바로 방해 편집입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6:48 (KST)

끝도 없는 지루하고 소모적인 토론에 지치기도 하고 국사 교과서의 서술 그대로 표현해서 저는 아래와 같은 변경안을 제시합니다.

대한민국의 국사 교과서는 2007년 개정을 통해 고조선의 강역으로 추측되는 랴오닝 성 및 한반도의 고고학 발굴 결과를 토대로 기원전 2000년경에서 기원전 1500년경에 청동기 시대가 본격화된다고 서술하였으며 이에 따라 기존 교과서의 "건국하였다고 한다"는 문장을 "건국하였다"라고 변경하여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기원전 2333년에 건국하였다.'라고 확정적으로 서술하였다.

확정적으로 서술이라는 부분은 Xakyntos 사용자도 그렇게 이미 표시한 부분이니 이의가 없으시리라 봅니다. 이 변경안마저도 거부한다면 정말이지 귀하와는 그 어떠한 합의의 여지도 없음을 밝혀드리는 바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6:53 (KST)

샐러맨더입니다. 학교 구내 서점의 컴퓨터로 의견 씁니다.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서 삼국유사를 근거로 하여 고조선의 건국이 기원전 2333년이라고 했다고 한들, 그것을 액면 그대로 위키백과에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사료(애초에 교과서가 무슨 사료씩이나 되겠습니까마는) 해석의 기본은 교차검증입니다. "교과서에 아무개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다"는 것은 쓸만한 정보가 되지 못합니다. "아무개 이야기는 이러저러하여 참 또는 거짓으로 생각할 수 있다" 정도는 되어야 쓸만한 정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즉, 교과서에 그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며, 그 이야기 자체의 진위를 생각해 보는 것이 백과사전의 컨텐츠 기여를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기원전 2333년이라는 숫자는 신화의 영역입니다. 아니, 사실 따져보면 자생적 신화조차도 아닙니다. 이것은 고려 ~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다수의 저자들(삼국유사, 제왕운기, 동국통감 등)에 의해, 중국의 신화인 요임금과 끼워맞추는 식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61.75.1.138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7:02 (KST)
삼국유사를 근거로 하여 고조선의 건국이 기원전 2333년이라고 했다고 한 것이 아니고 아래 기사에서도 보듯이 청동기 보급 연대의 1000년 상승이라는 최신 고고학적 성과 발굴이라는 명백한 연구 성과를 근거로 내용을 변경한 것입니다. 말씀하신 신화적 영역과는 관계가 없는 문제입니다.
http://news.donga.com/3/all/20070223/8410706/1
그리고 지금 주된 논제는 바로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2007년 고조선 건국에 대한 표현이 개정되었다는 점입니다. 삼국유사가 신화다, 고조선이 신화다라는 주제가 아닙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7:09 (KST)
논문도 아니고 신문기사 가지고 와서 아전인수 하시네요. 심지어 그 신문기사조차도 "기원전 2333년이 맞다"는 얘기만 하고 있는 기사가 아닙니다. “기원전 15세기에 한반도 청동기 시대가 본격화된다는 이야기는 학계에서 합의된 내용은 아니다. 이 시기에 나타나는 청동기 유물은 극소수 장신구에 불과하다.” “고조선 편입 문제는 선뜻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적지 않다.”면서 “위만 조선이 과연 정치적 실체로서 얼마만큼 영향력을 행사하고 실체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었나를 생각하면 상당히 회의적”이라는 한국교원대와 서울대 교수들의 코멘트는 싹 빼놓으셨군요? 61.75.1.138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7:18 (KST)
기원전 2333년이요? 그리고 출처가 한국사 교과서라.... 삼국유사는 설화집입니다. 단군의 나이가 1908세였다 이런걸 믿으라는 말씀인가요? 이게 역사입니까? 신화입니까? 미국의 한국사 책에서는 이러한 단군 조선 시대를 부정합니다. 한국사 5000년이 아니고 한국사 2000년으로 불러야 한다고요. 교차검증도 불가능하고 한쪽만 일방적으로 기원전 2333년에 건국했다는 기록을 신뢰하기 매우 힘듭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4년 8월 1일 (금) 17:14 (KST)
애초에 기원전 2333년라는 숫자 자체가 신화의 인물인 요임금의 즉위년을 근거로 한 역사서가 아닌 설화집 삼국유사와 제왕운기를 근거로 하여 서거정이 동국통감에서 억지로 끼워맞춰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숫자가 무의미하다는 걸 공공연히 얘기하지 못하는 건 어디까지나 국민 감정을 눈치봐서 그런 것일 뿐입니다. 국사 교과서는 교과서 이전에 프로파간다 도구니까요(개천절 날짜인 10월 3일도 마찬가지죠. 근거가 무려 대종교 경전입니다). 61.75.1.138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7:22 (KST)
신문기사가 아니라 아래와 같은 국사 편찬 위원회의 설명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같은 수정에 대해 <국사편찬위원회>의 설명은 당당하다. 장득진은 "그 동안 사서에는 나오지만 고고학적 증거가 불충분했던 고조선 건국 시기가 최근 연구 성과로 근거가 뚜렷해짐에 따라 서술 방식을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이종호 이형석 저, '고조선, 신화에서 역사로" 28쪽
장 실장은 "이전 역사교과서에서는 고조선을 비롯한 한반도의 국가는 청동기시대부터 존재했다고 밝히면서도 청동기 보급시기를 최고 기원전 15세기로 잡았다"며 "이 탓에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됐다는 고조선의 역사와 맞지 않아 배우는 학생들이 의아해 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교과서에서 고조선이 기원전 2333년에 단군왕검에 의해 건국됐다고 적극적으로 서술되지 못한 이유는 이 시기에 청동기가 보급됐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연구성과가 충분하지 못한 탓이 크다. 장 실장은 "우리가 만주 등의 유적들에 접근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동안 청동기문화를 토대로 세워진 고조선의 존재를 뒷받침할 만한 실증적인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았다"며 "그러나 최근 들어 관련 연구성과들이 속속 발표되면서 이번 교과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한반도 청동기 보급시기를 기원전 2000년쯤까지 앞당겼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듯이 지금 주된 논제는 바로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국사 교과서에서 2007년 고조선 건국에 대한 표현이 개정되었다는 점입니다. 삼국유사가 신화다, 고조선이 신화다라는 주제가 아닙니다. 어쨌든 3분이나 저의 의견에 반대하는 상황에 직면하니 저로서는 매우 당황스럽습니다. 그렇다면 일단 고조선 건국 문제에 대한 해당 국사 교과서 변경 표현에 대한 중재안을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Lhrdrth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7:26 (KST)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아래와 같은 변경안을 제시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의 국사 교과서는 2007년 개정을 통해 고조선의 강역으로 추측되는 랴오닝 성 및 한반도의 고고학 발굴 결과를 토대로 기원전 2000년경에서 기원전 1500년경에 청동기 시대가 본격화된다고 서술하였으며 이에 따라 기존 교과서의 "건국하였다고 한다"는 문장을 "건국하였다"라고 변경하여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기원전 2333년에 건국하였다.'라고 확정적으로 서술하였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7:32 (KST)
3명이 아니라 4명입니다. 그리고 "고조선의 건국 시기도 기원전 2333년으로 단정하였다"라는 서술은 전형적인 호도 서술입니다. BC 2333이라는 숫자가 신화에 의거한 것임은 누차 말씀드렸고, 이것을 "단정하였다"는 둥 하는 것은 마치 "성경에 따르면 지구 나이가 4000년"이라고 하는 것과 똑같은 아전인수입니다. 그리고 청동기 유적 발굴 결과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해석은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으며, 설사 합의에 이른다 하더라도 역사서 독해도 아니고 유물 발굴을 통해 BC 2333이라는 숫자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계속해서 "그것이 주제가 아니다" 라고 주장하고 계시는데, 반박을 하지 못하니까 그렇게 주장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61.75.1.138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7:33 (KST)
다시 말씀드리지만, "교과서에 이렇게 나왔다" 는 것은 백과사전에 실릴 만한 영양가 있는 정보가 아닙니다. 교과서에 나왔다는 "이렇게" 가 참인지 거짓인지를 따져야죠. BC 2333이라는 숫자는 애초에 엉터리로 도출된 숫자입니다. 61.75.1.138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7:35 (KST)
하나 더 주장하죠. 미국에서 한국사를 다룬 책에서 나온 구절입니다. Micheal J. Seth가 쓴 The History of Korea라는 책에 나와있는 내용입니다.
How Old is Korea? The question cannot be answered because it supposes that the modern concept of Korea, of a nation of people with a common heritage and a common destiny living as an autonomous unit within a global community of nations can be connected back in time in linear fashion.
그럼 한국은 얼마나 오래 되었는가? 이 질문에 답은 정해져있지 않다. 왜냐하면 이러한 발상은 공동의 문화와 공동의 운명체를 누리며 지구촌의 틀 안에서 독자적인 국가를 형성한 한국이란 나라의 현대적 개념을 오래전부터 수직적으로 내려왔다고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말이 좀 엇나갑니다만 확실한 것은 과연 기원전 2333년에 현대에나 구성될 수 있는 그런 국가적 체계를 완성할 수 있냐고 반문하는 것입니다. 기록도 미진하고, 요라는 인물도 일단 반실존, 반허구로 모아지고 있는 상황에다가 하다못해 기원전 660년에 일본을 세웠다는 진무 천황도 허구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학자들도 이렇게 고조선의 존립 날짜에 대해 상당한 의구심을 품고 있는데 이걸 굳이 그대로 믿고 쓰기엔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여기 사람들은 고조선이 존재하지 않은 허구의 나라라고 단언하는 것이 아니라, 과연 고조선의 존립 날짜가 신뢰가 가능한가 이걸 묻고 있는겁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4년 8월 1일 (금) 17:46 (KST)

그렇다면 교과서 개정 문제에 대한 편집을 고조선 토론 문서에서 아예 삭제하자는 이야기이신가요? 이 문제는 Xakyntos 사용자와의 편집 분쟁이전에도 이미 실려있었던 문제이고 토론 중에 아예 이 부분을 삭제하자는 것은 샐러맨더 귀하가 처음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결단으로 교과서 개정으로 고조선 건국에 대한 일련의 서술 방식 변경이 있었던 부분은 분명히 실릴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데요? 그리고 4분이나 저의 의견에 반대하므로 저로서는 그점을 존중하여 다시 확실히 변경안을 제시한 것입니다. 거기에 대한 의견을 바랍니다. 그런데 아예 이부분을 삭제하자는 것은 좀 무리한 주장같습니다만? 완전히 삭제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도 다른 분들의 의견을 듣고싶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7:47 (KST)

어려울 것 없습니다." 삼국유사 등에서의 기록을 따라 기원전 2333년 10월 3일로 정하고 이를 기념하여 대한민국에선 개천절로 쇠지만, 고조선이 건국된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다."라는 식으로 정하면 될것입니다. 어쨌든 일본의 건국기념일 예도 있고 하니 아예 지울 수는 없습니다만 공식적으로 고조선의 존망 시기를 논하자면 ? ~ 기원전 108년이 맞다고 봅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4년 8월 1일 (금) 17:49 (KST)
더 나아가서 BC 2333이 왜 엉터리 숫자인지 서술해 주면 더 좋겠지요. 61.75.1.138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7:51 (KST)
저와 이렇게 토론을 벌인 Xakyntos 사용자도 "대한민국의 국사 교과서는 2007년 개정을 통해 고조선의 강역으로 추측되는 랴오닝 성 및 한반도의 고고학 발굴 결과를 토대로 기원전 2000년경에서 기원전 1500년경에 청동기 시대가 본격화된다고 서술하였으며 기존 교과서의 건국하였다고 한다는 문장을 건국하였다라고 조금 더 확정적으로 서술하였다." 이렇게 편집을 했자 삭제하자고까지는 주장하지 않은 사항인데 아예 그냥 삭제하자는 주장을 하시는 분까지 나오니 저로서는 정말로 심히 당황스럽네요.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있었던 사항입니다. 그리고 그 부분은 제가 처음 편집한 것도 아닙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7:53 (KST)
제가 언제 삭제하자고 했나요. BC 2333이라는 숫자는 역사가 아니라 신화라고 했을 뿐입니다. "BC 2333이 교과서에 실려 있다~" 는 건 백과사전에 서술될 가치가 없는 정보이지만, "BC 2333은 이러저러해서 역사가 아니라 신화다" 는 서술은 가치가 있는 정보겠죠. 왜 남이 하지도 않은 말을 지어내고 그러세요? 61.75.1.138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7:56 (KST)

저로서는 해당 교과서 개정 문제에 대한 언급을 아예 삭제하자는 의견으로 보여서 드린 말씀입니다. 본의가 그렇지않으셨다면 사과드립니다. 그렇다면 해당 교과서 개정 문제에 대한 서술은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의견 주시기 바랍니다. 저의 의견은 이미 위에서 올려드렸고 주된 논쟁의 상대인 Xakyntos 사용자는 위에서 말씀드렷듯이 아래와 같이 편집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사 교과서는 2007년 개정을 통해 고조선의 강역으로 추측되는 랴오닝 성 및 한반도의 고고학 발굴 결과를 토대로 기원전 2000년경에서 기원전 1500년경에 청동기 시대가 본격화된다고 서술하였으며 기존 교과서의 건국하였다고 한다는 문장을 건국하였다라고 조금 더 확정적으로 서술하였다. --Lhrdrth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8:00 (KST)

1. 청동기시대가 본격화된다는 것이 곧 국가가 만들어졌다는 것으로 연결되지 않으며, 2. 설사 국가가 그때 만들어졌다고 해도 기원전 2333이라는 숫자가 정확히 배정될 이유는 없고, 3. 이러나저러나 BC 2333이라는 숫자의 진위여부는 말하지 않은 채 "교과서에서 BC 2333이라더라~" 라고만 써 놓은 귀하의 편집 내용은 호도 편집입니다. 61.75.1.138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8:03 (KST)
위의 내용은 제 의견이 아니고 저와 반론중인 Xakyntos 사용자의 의견이라니까요? 그리고 청동기시대가 본격화된다는 것이 곧 국가가 만들어졌다는 것으로 연결되는 것이 국사편찬위원회를 비롯한 주류 학설입니다. 그러니까 귀하께서는 국사 교과서 서술 부분을 어떻게 변경하는 것이 좋은지 일단 그 중재안을 제시해주십시오.--Lhrdrth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8:08 (KST)
주류 학계에서는 BC 2333을 오히려 부정합니다. 은근슬쩍 주객을 전도시키지 마세요. 61.75.1.138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8:10 (KST)
셀레맨더 귀하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신문기사 가지고 와서 아전인수한 것이 아니라 이런 이슈가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그 신문기사를 링크한 것입니다. 또한 저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의견이 그랬다는 것이지 그런 식으로 주객을 전도시킨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역사에 있어서 귀하의 개인적인 의견을 듣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올린 편집 내용인지도 구분 못하고 일방적인 주장으로 편집 호도라는 식으로 말씀하시는데 솔직히 상당히 불쾌합니다. 앞으로는 토론시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9:18 (KST)

퇴근하는 길이라 간단하게만 언급하겠습니다. 기원전 2333년이라는 연도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고조선 문서 본문에 밝혀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국사 교과서에 이러이러하게 실렸다는 내용이 서술되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될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교과서의 언급이 어떤 평가를 받는지에 대해서도 서술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그리고 엄밀히 말해 샐러맨더 님의 말씀처럼, 국사 교과서의 내용은 본문 상단에 중요도를 가지고 실릴 가치가 없는 내용으로, 뒷부분 연도 관련 내용이나 기타 소소한 항목으로나 서술될 가치가 있을 뿐입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8:13 (KST)

이 답변은 셀러맨더 귀하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2007년 국사 교과서 개정에 있어서의 국사편찬위원회의 견해를 말씀드린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어쨌든 다시 말씀드려서 귀하는 저와 Xakyntos 사용자의 편집 내용 중 어떤 쪽에 찬성하느냐? 둘다에도 찬성하지 못한다면 귀하는 과연 어떤 내용을 주장하는지 그 편집 내용을 밝히시라는 겁니다. 이제는 이문제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든 합의를 도출해야하므로 드리는 말씀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8:16 (KST)
국사 교과서 개정에 따른 고조선에 대한 서술 변경 부분은 당시에 언론 보도로도 핫이슈가 되었고 그러므로 그 변경 내용이 고조선 문서에 실리는 것은 제가 생각하기에는 분명히 필요한 사항입니다. 애당초 이런 부분에 대한 고조선 문서에서의 서술은 제가 처음 한 것도 아니고 이미 오래전부터 언급되었던 부분이고 다만 그 표현의 수위의 차이에서 편집 분쟁이 발생한 사항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8:25 (KST)
먼저 고조선의 존망 시기를 논하자면 이미 수 차례의 논쟁이 있었고 결국 사회적 저명성을 고려하여 ?(기원전 2333년) ~ 기원전 108년으로 편집함에 Xakyntos 사용자도 동의한 바가 있습니다.
유물 발굴을 통해 BC 2333이라는 숫자가 나올 수가 없다, 이는 억지로 끼워맞춰 만들어진 것, BC 2333이라는 숫자는 애초에 엉터리로 도출된 숫자이며 위키백과에 왜 엉터리인지를 설명해야한다고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행해진 토론 중 일부분을 다루겠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족 사학자와, 재야 사학자, 심지어 북한에서는 이러한 기록을 무조건 신화로만 취급할 수는 없다고도 하며, 혹은 사실이라 주장하기도 합니다.
국사 교과서의 내용을 잘 살펴보십시오. 고조선의 건국연대와 관련하여 "고조선은 단군왕검에 의하여 건국되었다고 한다(BC 2333)"라고 하여, 단지 단군신화의 기록을 소개하고 있을 뿐, 그것을 단정짓지는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러했을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이며, 그 실제 여부는 향후의 연구성과에 맡기겠다는 뜻을 내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 확실한 것은 과연 기원전 2333년에 현대에나 구성될 수 있는 그런 국가적 체계를 완성할 수 있냐고 반문하는 것입니다.
→윤내현 교수는 '고조선 연구'등에서 석기를 기반으로 한 마야 문명, 아즈텍 문명의 실례를 들어 꼭 청동기 시대가 되어야 국가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라 언급하였습니다.
  • BC 2333은 이러저러해서 역사가 아니라 신화다" 는 서술은 가치가 있는 정보겠죠.
→ 서술할 가치가 없는 정보가 될 것입니다. 이하가 근거입니다.
위키백과의 본문과 백과사전적인 콘텐츠는 모두 중립적 시각을 따라야 하며, 신뢰할 만한 출처에 의해 뒷받침되는 모든 의미 있는 시각들이 공정하고 치우침 없이 표현되어야 합니다. 이는 모든 문서와 편집자에게 해당합니다. 중립적 시각의 준수를 위한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의견 자체를 피력하지 말고 사실과 의견에 대한 사실을 기술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망각하신 것 같아 상기시켜 드립니다. 상황이 이럴진대 이 기록은 엉터리이며, 엉터리인 이유를 위키백과에 서술해야 한다는 식의 말씀은 위키백과에서 백:중립성의 지침을 위반한 것이 되겠지요.--Aubelumiere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9:07 (KST)
Aubelumiere님의 말씀에 적극 동의합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9:13 (KST)
엉터리를 엉터리라 하는 것 뿐입니다. 백:비주류 이론이나 보고 오시죠.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14년 8월 1일 (금) 19:34 (KST)
일방적으로 이를 비주류 이론이라고 주장하심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됩니다. 저로서는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이 건국되었다는 것이 무조건 사실이라 주장하지 않습니다만 이미 밝혔듯이 국사편찬위원회가 최신의 고고학적 발굴 성과를 근거로 2007년에 고조선 기원전 2333년 건국에 상당히 찬성하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래서 국사 교과서 개정도 있었고요. "국사편찬위원회는 국가가 세운, 한국사에 있어서는 가장 믿을만하고 권위있는 곳입니다." 이런 곳의 의견을 무시한다면 도대체 무슨 의견을 따를 수 있습니까? 샐러맨더 귀하가 기원전 2333년에 회의적인 입장인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지만 이런 최신 학술적 성과가 나왔다면 무조건 부인하지말고 일단 그 내용을 살펴보는 것도 객관적 시각을 확보하는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귀하께서는 앞서서 교과서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식으로 말씀하셨지만 적어도 국사 부분에서 국사편찬위원회가 편찬하는 국사 교과서의 내용을 무조건 부인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9:59 (KST)

셀레멘더 귀하와 S.H.Yoon님께서는 지금 토론의 논지를 헛갈리시는 것 같아서 따로 말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저는 두분이 주장하시는 바와 같이 고조선 건국 기원전 2333년이 반드시 사실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분께서 기원전 2333년에 대한 회의적인 의견을 내놓으시는데 반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 논의되고 있는 주제는 누누히 말씀드리지만 2007년 국사 교과서 개정에 따른 고조선에 대한 서술 변경 부분입니다. 분명히 국사편찬 위원회가 최신 고고학적 발굴 성과를 근거로 해당 부분에서 여러 부분의 서술을 변경하였으므로 그 부분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것입니다. 중도에 논쟁에 끼어드실 것이라면 최소한 확실한 논지 파악을 해주시고 개입해주십사 부탁드립니다. 만약 이후 이 토론에 개입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점만은 분명히 구분해주시기 바랍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9:30 (KST)

귀하의 서술 변경은 마치 BC 2333년이 정설인 양 독해될 소지가 다분한 호도적 서술이라고 누차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정보상자에 존속기간이 왜 "? (기원전 2333년) ~ 기원전 108년" 이라고 되어 있나요? 하다못해 "기원전 4세기 이전 ~ 기원전 108년" 이면 이해는 합니다.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14년 8월 1일 (금) 19:37 (KST)
지금까지 있어왔던 토론을 제대로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저는 2007년에 대한민국 최고 권위의 공식 국사 연구 편찬 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가 최신 고고학 발굴 성과를 근거로 단군이 고조선을 기원전 2333년에 "건국하였다고 한다"라는 표현을 "건국하였다"로 수정하였기에 제가 생각하기에는 "~ 건국하였다고 한다"를 "건국하였다"고 바꿨기 때문에 그래서 단정했다고 표현한 것이지 사실을 호도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이 단정이라는 부분에 이견이 있으므로 저는 이에 반대하는 Xakyntos 사용자의 의견을 존중하여 해당 사용자가 애초에 "확정적으로 서술"이라는 표현을 썼으므로 그렇게 바꾸자고 변경 제안을 했습니다. 그런데 애초에 자기가 그렇게 주장하고도 지금와서 못받아들인다니 전들 뭘 어떡하겠습니까?--Lhrdrth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9:46 (KST)
백:비주류 이론에 의거하여 백:중립성을 무시한 채 '엉터리'라 멋대로 규정하여 문서를 편향적으로 편집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시나 봅니다? 그리고 해당 내용은 사회적 저명성을 고려하여 건국 연도 미상과 기원전 2333년을 병기하여 표기하였다고 말씀드렸습니다.Xakyntos 사용자와의 토론을 거치기도 했고요. 아니면 기원전 2333년? 이라 표기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군요. 중국어 위키백과도 그러하니까요. --Aubelumiere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9:58 (KST)
기원전 2333이라는 숫자가 실제의 역사적 정보로서 정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근거는 무엇이구요?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14년 8월 1일 (금) 20:04 (KST)
그것에 대해서는 위키백과에서 제가 판단 및 언급할 사안이 아닌 듯 합니다만.--Aubelumiere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20:07 (KST)
일단 국사편찬위원회는 최신 고고학 연구 성과에 근거 청동기 보급 연대를 기원전 2000년까지로 상향시킴으로서 기원전 2333이라는 숫자가 실제의 역사적 정보라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이는 위에서 누차 제가 자료로 제사하였으니 샐러맨더 귀하께서는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귀하의 주장대로 삼국유사에 근거한 신화가 아니고 이런 구체적인 고고학적 성과로 국편위가 기존의 입장을 변경한 부분입니다. 분명히 구분하시기 바랍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20:10 (KST)
맙소사. 서지학도 아니고 고고학이 1자리수 단위까지의 연도를 "실제의 역사적 정보"로 밝혀낸다고요? 진심이십니까?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14년 8월 1일 (금) 20:11 (KST)
지금 이해를 잘못하시는데 제가 또 이 부분을 설명드리면 도대체 몇번을 언급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은 "이같은 수정에 대해 <국사편찬위원회>의 설명은 당당하다. 장득진은 "그 동안 사서에는 나오지만 고고학적 증거가 불충분했던 고조선 건국 시기가 최근 연구 성과로 근거가 뚜렷해짐에 따라 서술 방식을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이종호 이형석 저, '고조선, 신화에서 역사로" 28쪽"라고 입장을 밝혔고 저는 그 부분을 지적한 것입니다. 제가 일방적으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20:15 (KST)

너무 토론이 소모적이고 길어지고 솔직히 저로서도 이제는 정말 피곤하여 지금까지 저와 주로 논쟁한 Xakyntos 사용자의 입장도 충분히 고려하여 아래와 같이 문제가 되는 편집 부분을 개정하자고 제안합니다.

대한민국의 국사 교과서는 2007년 개정을 통해 고조선의 강역으로 추측되는 랴오닝 성 및 한반도의 고고학 발굴 결과를 토대로 기원전 2000년경에서 기원전 1500년경에 청동기 시대가 본격화된다고 서술하였으며 이에 따라 기존 교과서의 "건국하였다고 한다"는 문장을 "건국하였다"라고 변경하여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기원전 2333년에 건국하였다.'라고 확정적으로 서술하였다.

이는 가감없이 국사 교과서 서술 그대로 표현한 것이므로 향후 별다른 시비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그리고 "확정적 서술"이라는 부분은 애당초 Xakyntos 사용자가 표현한 부분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20:33 (KST)

맨 뒤에 “확정적으로”라는 말만 빼면 됩니다. 모든 논쟁이 그것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데, 그걸 고집하시면서 다른 시비가 없을 것이라 자신하시진 마시죠. 다른 사람의 의견을 필요한대로 잘라서 인용하시는 것도 좋은 토론 태도는 아닙니다. 다시 한 번 지적해 둡니다만, 교과서가 서술하고 있는 것은 삼국유사에 의해 서기로 환산하면 기원전 2333년이 된다는 것 뿐이고 그것을 확정하였다거나 단정하였다는 표현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앞에 샐러맨더님도 말씀하셨지만 서지학적인 자료를 출처로 하는 서술에 있어서 그 이상의 해석을 덧붙이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백:출처백:독자 정책을 명백히 위반하는 서술이고요. -- Jjw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22:22 (KST)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확정적 서술"은 제가 붙인 것이 아니고 저와 주로 논쟁을 하던 Xakyntos 사용자가 표현한 부분입니다. 저는 나름대로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해서 내놓은 변경안입니다. 그리고 누누히 말씀드리지만 교과서의 서술 변경은 최신 고고학적 성과에 기초한 서술 변경임을 알려드립니다. 어쨌든 이 문제로 너무 많은 지루한 소모적 논쟁이 이어지고 있고해서 그러면 Jjw님의 의견을 반영하여 다음과 같이 변경을 제안합니다. 의견 주십시오.
대한민국의 국사 교과서는 2007년 개정을 통해 고조선의 강역으로 추측되는 랴오닝 성 및 한반도의 고고학 발굴 결과를 토대로 기원전 2000년경에서 기원전 1500년경에 청동기 시대가 본격화된다고 서술하였으며 이에 따라 기존 교과서의 "건국하였다고 한다"는 문장을 "건국하였다"라고 변경하여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기원전 2333년에 건국하였다.'라고 서술하였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2일 (토) 00:37 (KST)
이처럼 학자들이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는 부분을 실제 교과서 원문에서도 유추가 불가능한 자의적인 해석으로 단정했다라고 서술하는 것은 명백한 독자연구에 해당합니다.(중략)
보시다시피 단순히 단정하였다는 표현이 아닌 이전보다는 더 확정적으로 썼다는 표현으로써 해당 교과서 개정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표현입니다.
1. 또 다시 거짓말을 하는군요. 제가 “확정적 서술”이라는 말을 했다고 하셨습니까? 지금까지 이 논쟁을 한 이유 자체가 단정, 확정 같은 용어를 쓴 Lhrdrth 때문입니다. 하지만 귀하가 방해 편집이나 마찬가지의 억지를 부릴 것이 분명하기에 그나마 서술 방향을 유보해서 제가 제시한 것이 신문기사에서 서술된 표현 그대로 더 확정적으로 썼다는 서술이었습니다. 애초에 확정이라는 말 자체가 써서는 안되는 것인데도 귀하에게 최대한 양보해서 한 서술이 저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마저도 왜곡해서 귀하 멋대로 써먹는군요. 이렇게 뻔히 바로 위에 써 있는 사람의 말마저 왜곡해서 써먹는 귀하에게 이제 더이상 양보 따위는 없습니다.
2. 이제 상황은 바뀌었습니다. 확정이라는 말 자체가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귀하가 억지를 부리다가 일을 크게 만들었고, 결국 본전도 못찾게 된 겁니다. 이미 위에 수없이 말씀드렸고, 다른 사용자들도 이미 귀하의 주장이 절대 무용함에 대해 사실상의 총의를 모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확정이요? 확정은 커녕 이제 교과서의 서술과 더불어 해당 서술이 학계에서 어떻게 반박을 받았는지까지 서술해야만 형평성에 맞으니까요. 이렇게 말입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8월 2일 (토) 08:17 (KST)
중국에서 동북공정을 비롯한 각종 역사 공정으로 역사에 대한 국민 의식이 강해지면서, 2007년 7차 교과서 개정을 통해 고조선의 건국에 대한 서술이 변화되었다. 청동기 시대의 편년을 기원전 2000년~1500년 경까지 상향 조정하고 고조선의 건국 사실에 대한 서술도 건국하였다고 한다에서 건국하였다라고 개정하였다. 그러나 역사학계는 교과서의 개정에 대해 확정되지 않은 사실을 민족주의적인 태도로 교과서에 싣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 비판하였다.
뭐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입니까? "기존 교과서의 건국하였다고 한다는 문장을 건국하였다라고 조금 더 확정적으로 서술하였다."라고 해서 "확정적으로 서술'이라는 표현을 한 것은 엄연히 귀하아닙니까? 이게 왜곡입니까? 그리고 뭐가 총의가 모아졌다는 말입니까? 이런 토론에서 사실과 관련없이 단순히 수위상의 우위로 판가름하자는 주장도 우습지만 숫자 상으로 봐도 2대4의 의견에서 Jjw님도 "확정적"이라는 말만 빼면 저의 의견에 동의하신다고 했으니 총의가 모아졌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귀하의 이런 행위야말로 명백한 방해 편집입니다. 저는 보다시피 이제는 합의를 하려고 제안을 했고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면서 다시 토론을 소모적으로 이끌고 가는 것은 귀하입니다. 분명히 방해편집은 귀하가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원인을 저에게로 몰아가시는데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애당초 귀하가 의도적으로 "기원전 2333년"이라는 부분만 삭제하지 않았어도 토론이 이렇게까지 소모적으로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꾸 역사학계라는데 교과서를 그렇게 개정한 "국사편찬위원회"는 역사학계가 아니란 말입니까?--Lhrdrth (토론) 2014년 8월 2일 (토) 09:16 (KST)
그리고 귀하가 인용문에서 주장하는 역사학계는 송호정같은 극단 소고소선론자들의 일부 의견아닙니까? 그것을 가지고 전체 역사학계의 의견인양 호도하는 것도 우습지만 국사 교과서의 수정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찬성하는 입장도 많습니다.
이에 따라 서강대의 이종욱 교수는 "중국이 고조선 건국 장소인 중국 요동 지역 청동기 도입 시기를 앞당기고 있는데, 한반도 청동기 도입 시기를 앞당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이종호 이형석 저, '고조선, 신화에서 역사로" 29쪽
재야 사학계에서는 즉각적으로 정부의 정책 변경에 찬성을 표명하고 일부 강단 사학계에서도 '고조선건국 기사 개선과 국사 교육 강화'를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고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 답사하고 정립하기 위해 강단과 재야를 아우른 <고조선유적답사회> 등이 발족되기도 하였다. -이종호 이형석 저, '고조선, 신화에서 역사로" 29쪽
이런 역사학계의 입장은 무시하시는 것입니까? 귀하의 주장대로 형평성 운운하면서 찬성하는 기사까지 그럼 고조선 문서에 넣을까요? 도대체 정상적인 문서 편집을 하자는 의지 자체가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2일 (토) 10:46 (KST)
반대합니다. 위의 주장은 사실상 기원전 2333년을 정설로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4년 8월 2일 (토) 13:08 (KST)

위의 토론을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이 부분은 기원전 2333년을 정설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고 2007년 국사 교과서 개정에 따른 고조선에 대한 서술 변경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핫이슈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으며 따라서 지금 편집분쟁 이전에 이미 고조선 문서에 실려있었습니다. 어쨌든 국사 교과서에는 이전의 "건국하였다고 한다"는 문장을 "건국하였다"라고 변경하여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기원전 2333년에 건국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명백한 객관적인 사실입니다. 다만 단정이니 확정적 서술이니 하는 표현에서 이견이 나오고 있으므로 저는 시비의 여지를 없애려고 단정, 확정적 서술이라는 표현 자체를 없애고 교과서 표현 그대로 싣자고 변경안을 제시한 것입니다. 확인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애당초 반대의견을 주시던 Jjw님께서도 저의 변경 제안에 "맨 뒤에 “확정적으로”라는 말만 빼면 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표현을 뺀 변경안을 제시한 것입니다. 2007년 국사 교과서 개정에 따른 고조선에 대한 서술 변경 부분은 고조선 문서에 실릴 가치가 충분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당 부분을 편집하자는 것인지 의견을 주시기 바랍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2일 (토) 13:22 (KST)

대한민국의 국사 교과서는 2007년 개정을 통해 고조선의 강역으로 추측되는 랴오닝 성 및 한반도의 고고학 발굴 결과를 토대로 기원전 2000년경에서 기원전 1500년경에 청동기 시대가 본격화된다고 서술하였으며 이에 따라 기존 교과서의 "건국하였다고 한다"는 문장을 "건국하였다"라고 변경하여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기원전 2333년에 건국하였다.'라고 서술하였다.
이렇게 쓴다고 치지요. 근데 왜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다라는 부분은 삭제합니까? 그리고 "고조선의 강역으로 추측되는 랴오닝 성 및 한반도의 고고학 발굴 결과를 토대로 기원전 2000년경에서 기원전 1500년경에 청동기 시대가 본격화된다고 서술하였으며" 이렇게 된다면 고조선의 건국 시기는 기원전 2000년 내지 1500년이 되어야지 이러한 설명 이후 기원전 2333년이 나오는 건 매우 엉뚱합니다. 그리고 국사 교과서가 과연 제대로 된 출처인지도 판가름하기 힘듭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4년 8월 2일 (토) 13:26 (KST)
애당초 귀하가 의도적으로 "기원전 2333년"이라는 부분만 삭제하지 않았어도 토론이 이렇게까지 소모적으로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을 삭제한 것이 방해편집이다… 이건 정책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상황입니다. 근거라고는 삼국유사와 이를 근거로 편찬된 동국통감, 국사교과서인거 같은데, 애초에 삼국유사를 신뢰할 수 있는 사료라고 할 수 있나요? 요임금도 마찬가지죠. 이양반도 반은 신화적인 인물인데, 이양반과 비슷하게 나라를 세웠다, 이거 신뢰할 수 있는건가요?
사료는 절대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죠. 사료가 진짜냐 가짜냐부터 시작해서 사료가 진짜라면 이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어도 되냐의 문제도 남아있는겁니다. 애시당초 삼국유사가 실증주의적인 입장에서 서술된 것도 아니고, 유물로도 증명이 안되고, 대체 뭘 근거로 기원전 2333년이라고 확신에 차서 얘기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삼국유사를 그렇게 곧이곧대로 믿어도 되면, 지증왕의 성기에 맞는 여자를 찾기 어려워서 왕이 돌아다니다가 어느 마을에 가봤더니 엄청 큰 똥을 양쪽에서 똥개가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것을 보고 그 여자를 찾아 배우자로 삼았다는 말도 어서 지증왕 문서에 삽입해야겠군요. 물론 항문의 크기랑 질의 신축성등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료에 실렸잖아요? --Neoalpha (토론) 2014년 8월 2일 (토) 13:35 (KST)
Neoalpha님께서도 오해를 하고 계는데 앞에서도 분명히 제가 논지를 정확히 밝히지않았습니까? 지금 저는 고조선 건국 기원전 2333년이 반드시 사실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귀하께서 기원전 2333년에 대한 회의적인 의견을 내놓으시는데 절대로 반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 논의되고 있는 주제는 누누히 말씀드리지만 2007년 국사 교과서 개정에 따른 고조선에 대한 서술 변경 부분입니다. 분명히 국사편찬 위원회가 최신 고고학적 발굴 성과를 근거로 해당 부분에서 여러 부분의 서술을 변경하였으므로 그 부분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것입니다.

국사 교과서 어디에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다"라는 부분이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지적해주신 부분에서는 국사편찬위원회가 기원전 2000년까지 청동기 발굴 연대가 최근에 올라갔으므로 그에 육박하는 기원전 2333년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가진 것입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위의 토론 자료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것은 저의 일방적 주장이 아니라 국사편찬위원회의 입장입니다. 그리고 국사 교과서는 국사편찬위원회가 편찬했고 국사편찬위원회는 국가가 세운, 한국사에 있어서는 가장 믿을만하고 권위있는 곳입니다. 충분히 출처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출처의 신뢰여부를 떠나 앞서서 말씀드린대로 2007년 국사 교과서 개정에 따른 고조선에 대한 서술 변경 부분을 객관적 그대로 고조선 문서에 싣자는 문제입니다. 기원전 2333년이 정설이냐 아니냐, 국사 교과서가 신뢰할 수 있는 출처냐 아니냐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하여간 이부분을 삭제하지 않고 싣는다면, 표현 수위에 있어서 시비가 있으므로 아예 그냥 객관적으로 국사 교과서의 서술 그대로 편집하자는 것이 제 변경안의 요지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2일 (토) 13:37 (KST)

대체 Shyoon1님이 제시한 근거는 읽어보신겁니까? 안읽어보셨다면, 아래에 인용문으로 다시 남겨드리죠.
How Old is Korea? The question cannot be answered because it supposes that the modern concept of Korea, of a nation of people with a common heritage and a common destiny living as an autonomous unit within a global community of nations can be connected back in time in linear fashion.
그럼 한국은 얼마나 오래 되었는가? 이 질문에 답은 정해져있지 않다. 왜냐하면 이러한 발상은 공동의 문화와 공동의 운명체를 누리며 지구촌의 틀 안에서 독자적인 국가를 형성한 한국이란 나라의 현대적 개념을 오래전부터 수직적으로 내려왔다고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국사교과서만 출처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저도 국사편찬위원회가 권위가 있다는 말을 제가 했으니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인건 아닙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논지가 항상 옳은가요? --Neoalpha (토론) 2014년 8월 2일 (토) 13:46 (KST)
그렇다면 아예 해당 편집 부분을 삭제하자는 말씀이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저도 너무 소모적인 논쟁에 시달렸고 고조선 건국 기원전 2333년이 반드시 사실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2007년 국사 교과서 개정에 따른 고조선에 대한 서술 변경 부분에 대한 표현 수위를 논하는 것이었는데 자꾸 의견을 주시는 분들이 오해를 하시고 따라서 저는 계속 해명을 해야되고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므로 상당히 당황스럽습니다. 하여간 저로서는 위키백과의 발전을 위해 이런 국사 교과서 개정 부분이 있었다고 고조선 문서에 싣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고 더구나 이부분은 제가 아니라 이미 예전부터 추가되어 있었던 부분입니다. 만약 삭제해야된다고 하면 삭제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어떤 표현을 싣는 것이 타당한가 이제 확실히 결론을 내려야할 것 같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2일 (토) 13:48 (KST)
우선 문제가 되는 부분을 삭제했다고 방해편집이라고 매도한 행위에 대해 사과부터 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 이후에 제안하겠습니다. --Neoalpha (토론) 2014년 8월 2일 (토) 13:49 (KST)
그 부분은 귀하가 방금 한 저의 차단 요청에서 이미 밝혔습니다. 매도한 적도 없고 따라서 사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무작정 반대만 하지마시고 제안을 주십시오. 삭제하자는 것인지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인지, 아니면 계속 싣되 표현을 수위를 조정하자는 것인지 그렇다면 어떻게 조정하자는 것인지.--Lhrdrth (토론) 2014년 8월 2일 (토) 13:58 (KST)
아예 삭제하자는 게 아닙니다. 다만 지금 확실한 것은 건국 날짜는 사실상 미상으로 놔둬야 옳다는 것입니다. 다만 건국 날짜에 관해선 "사실상 미상이나, 삼국유사 등의 일부 기록에 따라 기원전 2333년 10월 3일을 건국한 날짜로도 본며 대한민국에선 이 날을 개천절로 지정하여 기념한다."라는 식으로 해야지 저건 사실상 앞의 장황한 설명을 깔기 때문에 마치 정말로 고조선이 기원전 2333년 10월 3일에 건국되었다라는 것으로 착각, 내지는 호도할 수 있습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4년 8월 2일 (토) 14:03 (KST)
삭제하자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서술해야 옳을지 S.H.Yoon님께서 직접 문장을 제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로서도 이문제는 이제 더이상 끌지말고 총의에 의한 합의하에 결론을 내리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2일 (토) 14:23 (KST)

확정적이다라는 문구는 넣지 않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진 것 같으니 내용을 출처와 연결하여 다듬으면 될 것 같습니다. 아래와 같이 제안하여 봅니다.

《삼국유사》에서는 단군이 요임금 즉위 50년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일연은 요임금은 무진년에 즉위하였으므로 즉위 50년은 정사년이 되므로 정확한 시기가 의심스럽다는 주석을 함께 실었다.[* 1] 《동국통감》〈외기〉에서는 “동방에는 애초에 군장이 없었는데 신인이 박달나무 아래로 내려오니 나라 사람들이 임금으로 모셔 단군이라 하고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으니 요임금 무진년이다. 처음엔 평양에 도읍하였고 나중엔 백악으로 옮겼다.”[* 2]라고 기록되어 있다. 《제왕운기》나 《삼국사기》에도 단군의 건국을 다루고 있으나 즉위 연도를 밝히고 있지는 않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삼국유사를 근거로 단군 조선의 설립을 기원전 2333년으로 보고 있고[* 3] 대한민국의 국사 교과서 역시[주해 1] 이를 바탕으로 기원전 2333년을 단군 조선의 건국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다. 한편, 한국의 청동기 시대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부터 시점을 잡아도 기원전 2000년 무렵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역사서의 건국 시점에 대한 서술이 실재와 부합하는 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4]

  1. 《삼국유사》〈기이제일〉 - 壇君王倹以唐髙即位五十年庚寅(唐堯即位元年戊辰則五十年丁巳非庚寅也疑其未實)都平壤城(今西亰)始稱朝鮮. 한글 해석: 단군왕검이 당고(요임금) 50년 경인년에 즉위하여(당요즉위는 무진년으로 50년은 정사년이지 경인년이 아니다 실제를 알기 어렵다) 평양성(지금의 서경)에 도읍하고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다.
  2. 《동국통감》〈외기〉- 東方初無君長有神人降于檀木下國人立爲君是爲檀君國號朝鮮是唐堯戊辰歲也. 初都平壤後徒都白岳
  3.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4. 국사편찬위원 한영우는 자신 개인의 저서에서는 고서의 기록을 그대로 수용하여 사실이라 판단하고 있으나(한영우, 《다시 찾는 우리역사》, 경세원), 공동집필에서는 늦어도 기원전 4세기 이전에는 고조선이 성립되었을 것으로 본다(한영우 외, 《한국사특강》, 서울대학교출판부)

주해

  1. 2007년의 국정교과서와 그 이후의 검인정 교과서 모두 동일한 사료를 쓰고 있으므로 국정인지 검인정인지를 가리는 것은 무의미 합니다. 지금 이 주해의 설명은 본문에선 삽입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 Jjw (토론) 2014년 8월 2일 (토) 16:33 (KST)

대부분의 내용에 찬성합니다. 다만 "국사편찬위원회는 삼국유사를 근거로" 부분에서 위의 토론을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최신 고고학 발굴 성과를 근거로도 하였으므로 "국사편찬위원회는 삼국유사와 한반도 청동기 보급 시기가 기원전 2000년으로 상향된 것을 근거로" 이렇게 수정하면 어떨지 제안드립니다. 그에 대한 출처는 http://news.donga.com/3/all/20070223/8410706/1 이 기사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2일 (토) 16:47 (KST)
흠, 제시하신 출처를 사용하고 싶다면, 뒤쪽의 시점 논란에 덧붙이는 게 좋겠습니다. 맨 뒤를 이렇게 바꾸어보죠. “한편, 한국의 청동기 시대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부터 시점을 잡아도 기원전 2000년 무렵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역사서의 건국 시점에 대한 서술이 실재와 부합하는 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제가 제시한 출처) 2007년 교육부는 최근의 청동기 유물 발굴 결과 《삼국유사》의 건국 기록이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 부합한다고 보고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고 한다’라는 기술을 ' ~ 건국하였다'로 바꾸기로 한바 있다.(동아일보의 기사)” -- Jjw (토론) 2014년 8월 2일 (토) 17:12 (KST)
찬성합니다. 매우 합리적으로 모든 내용이 무리없이 소개되었다고 봅니다. 저는 Jjw님께서 제안하신 내용에 대해서 적극 찬성합니다. 다른분들께서도 특별한 이의가 없으시다면 이 내용으로 새롭게 편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2일 (토) 17:21 (KST)
BC 2333 이라는 숫자 배정에 인용되는 문헌들 사이에서도 모순이 발생하고 있음을 밝혀야 합니다. 삼국유사에서는 요임금이 무진년에 즉위했고 단군은 50년 뒤인 정사년에 즉위했다고 합니다. 제왕운기에서는 요와 똑같이 무진년에 건국했다고 합니다. 동국통감에서는 요임금이 갑진년에 즉위했고 단군은 25년 뒤인 무진년에 즉위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최신 고고학으로 밝혀진 것"에 대한 완전한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Lhrdrth씨가 제공한 기사만 보더라도 서울대 교수와 한국교원대 교수가 회의적인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설사 고고학적 발견 성과가 모두 사실이라 가정한다 하더라도 고고학으로는 BC 2333이라는 숫자를 집어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청동기 시대가 BC 2000까지 앞당겨질 수 있다" 는 것은 "고조선은 BC 2333년에 건국되었다"는 명제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14년 8월 2일 (토) 20:02 (KST)
그래서 귀하가 언급한 고고학적 성과에 대한 합의가 완벽히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은 "한편, 한국의 청동기 시대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부터 시점을 잡아도 기원전 2000년 무렵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역사서의 건국 시점에 대한 서술이 실재와 부합하는 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이 부분에서 언급되고 있고 귀하가 기원전 2333년에 회의적인 입장인 것은 충분히 알겠는데 국사편찬 위원회가 최근의 고고학적 성과로 고조선의 건국을 기원전 2333년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 긍정적인 시각인 것은 엄연한 객관적인 사실인데 그부분을 넣지말자는 것은 너무 무리한 주장아닙니까?--Lhrdrth (토론) 2014년 8월 2일 (토) 20:27 (KST)
연대 배정에 인용되는 문서들이 역사서도 아니고 설화집, 서사시인데다가 그마저도 서로 모순된다는 건 또 은근슬쩍 언급조차 않고 넘어가려 하시네요. 그러면서 토론 상대측에게만 토론 태도가 불량하니 하는 잣대를 들이미십니까?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14년 8월 2일 (토) 20:31 (KST)
넘어가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모순점이 있다면 얼마든지 반영하십시오.--Lhrdrth (토론) 2014년 8월 2일 (토) 20:40 (KST)
별다른 이견이 없다면 제가 제안한 것을 토대로 내일 중 문서를 수정 보강하겠습니다. 또한, 고조선의 건국 연대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소문단에 별도로 두어 다음의 내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 “중·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서 단군을 실제 인물로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1988년 5차 교육과정 개편을 위한 〈교과서개편준거안〉 작성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1987년 확정된 이 준거안에서는 상고사에 관한 지침으로 단군을 역사적 사실로서 반영토록 하였고, 고조선은 중심지가 계속 이동함에 따라 영역도 바뀌는 ‘이동국가’가 아니라 확정된 넓은 강역을 유지하는 ‘영역국가’로 기술하며 한사군의 존재는 본문에서 다루지 않고 각주로 처리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이 결정 과정에는 정치권 및 언론계의 압력이 심하게 작용한 것으로 현대적 학문에 입각한 결정이 아니라 전통적 상식에 입각한 결정이었다. 제대로 밝히기 어려운 불확실한 신화적 사실을 섣불리 실재화하거나 신비화 할 경우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국수주의자 또는 복고주의자를 대량 생산할 위험성이 상존한다. ”(박광용, 〈단군, 신화에서 역사로〉, 강만길 외, 《우리 역사를 의심한다》, 서해문집, 2003년, ISBN 89-7483-165-1) -- Jjw (토론) 2014년 8월 2일 (토) 21:42 (KST)
알겠습니다. 저는 Jjw님의 편집에 찬성합니다. 수고해주시기 바랍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2일 (토) 21:54 (KST)

이와 별개로, 정보상자 틀에 있는 존속기간에서는 "기원전 2333년"을 빼야 할 것입니다. "기원전 7세기 이전 ~ 기원전 108년"이라고 해야겠지요.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14년 8월 3일 (일) 22:56 (KST)

이는 이미 Xakyntos 사용자와 토론을 거쳐 합의점에 도달한 후 수정한 내용입니다. 사회적 저명성과 대한민국 국민의 일반적인 상식 등을 고려해서 추가하였습니다.--Aubelumiere (토론) 2014년 8월 3일 (일) 23:05 (KST)
합의에 이른 내용이 어느 지점인지 좀 찾아서 제시해 주십시오. 읽어보고 납득할 수 있다면 납득하고, 그렇지 않다면 이의를 제기하겠습니다.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14년 8월 3일 (일) 23:13 (KST)
그리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사회적 저명성"이라는 개념은 애매하고, "대한민국 국민의 상식"은 KPOV입니다.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14년 8월 3일 (일) 23:14 (KST)

새롭게 편집하였습니다. -- Jjw (토론) 2014년 8월 3일 (일) 23:51 (KST)

수고 많으셨습니다. 해당 토론은 종결된 것이므로 의견요청 틀도 제거하였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4일 (월) 00:13 (KST)
그런데 고조선 문서에 보니 "제왕운기"가 연도를 밝히고 있지않다고 하셨는데 제가 알기로는 "요제(堯帝)와 같은 해 무진년(戊辰年)에 나라 세워 순(舜)을 지나 하국(夏國)까지 왕위(王位)에 계셨도다."라고 하여 기원전 23333년으로 연도를 밝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번 검토해주십사 부탁드립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4일 (월) 01:49 (KST)
네, 수정하겠습니다. -- Jjw (토론) 2014년 8월 4일 (월) 02:47 (KST)
수정했습니다. 그런데, 무진년은 셈하면 기원전 2333년이 아니라 요임금이 즉위하였다는 해로 하면기원전 2283년 또는 즉위 60년이 되는 기원전 2323년 입니다. -- Jjw (토론) 2014년 8월 4일 (월) 02:53 (KST)
저도 다시 살펴보니 그 동안 알고 있던 것 가운데 틀린 게 있네요. 다시 살펴 보아 정리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밑에 기원전 2333년 관련 논의에 정리했습니다. 이후 논의는 밑의 주제에서 하기로 해요. -- Jjw (토론) 2014년 8월 4일 (월) 21:02 (KST)

정보상자의 "기원전 2333년"[편집]

기원전 2333년(또는 다른 기원전 2XXX년들)은 동국통감, 삼국유사, 제왕운기 등의 2차, 3차 기록에 의거한 것이며, 직접적인 실증 근거는 없습니다. 또한 고고학적 발굴로 인해 한국의 청동기 시대가 기원전 2000년대까지 확장되었다 해도, 청동기 시대의 시작이 곧 고조선의 시작이라 할 수 없으며, 고고학은 본래 범위를 얻어내는 것이지 정확한 연도를 얻어낼 수 있는 수단이 아닙니다. Lhrdrth 씨는 줄곧 "사회적 저명성"이나 "대한민국 국민의 상식"을 논하시는데, 이것은 정책 위반(KPOV)에 해당합니다. 더구나 위에서 보호가 풀린 이후 편집하기로 하신 jjw님의 편집 예정안에서도 "현대적 학문에 입각한 결정이 아니라 전통적 상식에 입각한 결정이었다"는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때문에 정보상자의 "기원전 2333년"은 삭제하고,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뜻의 "?" 또는 1차 사료에 고조선이 최초로 등장하는 "기원전 7세기 이전"으로 수정할 것을 제안합니다.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14년 8월 3일 (일) 23:27 (KST)

앞에 ? 가 붙어있으니 그냥 두어도 되지 않을까요? 어차피 사료에 의한 것인데요. -- Jjw (토론) 2014년 8월 3일 (일) 23:50 (KST)
Jjw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위키백과의 원칙에 어긋나지않는 신뢰할 수 있는 출처가 얼마든지 있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4일 (월) 00:09 (KST)
그것이 "제대로 밝히기 어려운 불확실한 신화적 사실"이라고 서술된 상기 출처는 학자들의 단행본으로, 2차, 3차 자료인 동국통감 등을 문자주의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출처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14년 8월 4일 (월) 00:16 (KST)
기원전 2333년이 건국 연대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원전 2333년이 건국 연대다" 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삼국유사나 동국통감에서 언급되는 고조선 건국연대는 어디까지나 2차, 3차 서술일 뿐입니다. 1차 사료에 해당하는 자료들은 실전되어 전하지 않고, 2차, 3차 서술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실증적 근거 역시 없습니다.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14년 8월 4일 (월) 00:12 (KST)
?도 달았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4일 (월) 00:15 (KST)
무엇보다 기원전 7세기에는 고조선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은 1차 사료에 나타나는 사실입니다. 때문에 "기원전 7세기 이전" 언젠가 고조선이 건국되었다고 하는 것은 "기원전 2333년?" 이라고 하는 것보다 더 확실한 서술인 것입니다.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14년 8월 4일 (월) 00:17 (KST)
이미 널리 통용되는 중요 사료인데, 이를 우리가 2차, 3차 서술인지 판단할 권한이 있나요? 외부에서 그렇게 적혔다면 적는 거 아닌지요. 사실 이번 토론을 보면서 저런 내용을 과연 토론자들이 판단할 내용인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RedMosQ (토론) 2014년 8월 4일 (월) 00:16 (KST)
그 사료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것이 사학자들의 일이고, 그 사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인용하는 것이지, 위키백과 사용자들이 독자연구를 한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도 "박광용은 단군 신화가 우리 역사의 귀중한 사료임에는 틀림없으나 고조선의 지배층이 자신들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단군을 시조신으로 모신 이래 구전되어 오면서 수 많은 변형이 있었던 불확실한 사료로서, 제대로 밝히기 어려운 불확실한 신화적 사실을 섣불리 실재화하거나 신비화 할 경우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국수주의자 또는 복고주의자를 대량 생산할 위험성이 상존한다고 지적한다" 라고 되어 있네요.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14년 8월 4일 (월) 00:18 (KST)
기원전 2333년이 확실하지 않다는 내용은 ?를 앞에 표기하고, 주해를 붙이는 것이 어떤가요? --RedMosQ (토론) 2014년 8월 4일 (월) 00:22 (KST)
기원전 2333년이 확실하지 않다는 것은 본문에 이미 충분히 서술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정보상자에는 기원전 2333년을 유지하는 것은 서술상의 모순입니다.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14년 8월 4일 (월) 00:23 (KST)
그리고 불확실한 사료라고 해도 사료는 사료죠.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불확실하다는 표시의 ?를 다는 의견이 나왔는데, 아예 서술하지 말자는 것인가요? --RedMosQ (토론) 2014년 8월 4일 (월) 00:26 (KST)
"기원전 7세기 이전"에 고조선이 건국되었다는 건 "기원전 2333년" 보다는 확실하지요.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14년 8월 4일 (월) 00:31 (KST)
?, 즉 미상으로 하는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기원전 7세기 이전이라고 물증이 나오지만, 어쨌든 개천절을 쇠는 단기의 예도 있는 만큼 기원전 2333년도 아니고, 기원전 7세기라고 마찬가지로 단정할 수 없는, 미상으로 냅두는게 옳다고 봅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4년 8월 4일 (월) 02:44 (KST)

샐러맨더 귀하께서 2,3차 사료라고 주장하셔도 동국통감, 제왕운기, 응제시주, 세종실록지리지 등에 그런 기록이 있습니다. 확실치는 않다는 의미에서 ?를 붙인 것으로 충분합니다. 정그러시면 2333? 이라고 하시던지요.--Lhrdrth (토론) 2014년 8월 4일 (월) 00:28 (KST)

제 주장이 아니고 역사학자들의 연구를 인용한 거래도요. 그리고 "2, 3차 자료"의 개념을 잘 모르시는 거 같은데, 삼국유사가 근거로 삼고 있다는 "고기"와 세종실록지리지가 근거로 삼고 있다는 "단군고기"가 현대에 남아있지 않으니 이것들이 2차 또는 3차 자료인 것입니다. 제 "주장" 이 아니구요.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14년 8월 4일 (월) 00:32 (KST)
이에 반하는 학자들도 있으며, 주제는 연도 표기로 알고 있습니다.--Aubelumiere (토론) 2014년 8월 4일 (월) 00:33 (KST)
모든 역사학자들이 2333년이라고 적으면 안된다고 하나요? 기원전 2333년도 정확한 년도는 아니지만 꽤 통용이 많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아예 실으면 안된다는 입장이신지 다시 묻습니다. --RedMosQ (토론) 2014년 8월 4일 (월) 00:35 (KST)
"기원전 2333년"보다 "기원전 7세기 이전"이 더 "확실"하다. 그리고 기원전 2333년은 신화 내지 민족기원의 상징적 의미로서의 연대이지, 실증적으로 밝혀낸 것이 아니다는 것이 학계의 다수설이다. 이상이 제 입장입니다.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14년 8월 4일 (월) 00:37 (KST)
샐러맨더 귀하께서 말씀하시는 논지는 충분히 이해를 합니다만은 그래도 사료상 그런 기록이 있으니 ?를 붙인 것으로 충분하다고 저는 판단합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4일 (월) 00:39 (KST)

그리고 그것이 학계의 다수설이다? 저는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현재 국사편찬위원회는 최근 고고학적 성과도 반영하여 기원전 2333년에 상당히 긍정적인 입장입니다. 저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의견이 학계의 다수설이라고 생각합니다. http://db.history.go.kr/item/level.do?levelId=tcko_-2333_99_99_0010 --Lhrdrth (토론) 2014년 8월 4일 (월) 00:47 (KST)

고고학은 범위를 잡는 수단이지 특정 연도를 정확하게 알아낼 수 없다고 몇번을 말씀드립니까...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14년 8월 4일 (월) 00:50 (KST)
국사편찬위원회의 의견도 특정 단체의 의견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요. 학계의 다수설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원전 2333년이 통용되고 있는 현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예 틀렸다고 하기도 어려우니까요. --RedMosQ (토론) 2014년 8월 4일 (월) 00:56 (KST)

고조선이 실재로 언제 건국되었는가 하는 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제가 본문 편집에도 밝혔듯이 원 사료인 일연도 요임금이 무진년에 즉위하였으니 50년은 경인년이 아니고 정사년인데? 하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고조선의 건국연도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은 여러 차례 말씀 드렸지만 삼국유사가 유일하고 그것을 조선시대에 연표를 만들면서 단기로 서술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니, 확실치는 않으나 사료에서는 기원전 2333년이라고 표기하고 있고, 우리는 그것이 확실하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백과사전에 수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른 근거가 아무 것도 없으니까요. 그리고 기원전 7세기라는 것은 제나라와 교역 기록이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최소한 그 때에는 이미 국가로서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지 그 때 건국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기원전 2333년 (출처: 삼국유사, 실재인지는 의문이 있음) 이라고 표기하는 게 현재로서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표기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러니 이 논란은 이 쯤에서 마쳤으면 좋겠습니다. -- Jjw (토론) 2014년 8월 4일 (월) 01:40 (KST)

백:과감의 정신으로 일단 표의 기원전 2333년에 출처를 삼국유사로 달고 많은 이견이 있음을 밝혔습니다. 만일 논의 결과가 제 편집과 달라진다면 그 때 다시 수정하지요. -- Jjw (토론) 2014년 8월 4일 (월) 01:53 (KST)
기원전 2333년은 삼국유사가 아니라 동국통감입니다.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14년 8월 4일 (월) 10:11 (KST)
http://db.history.go.kr/item/level.do?levelId=tcko_-2333_99_99_0010 에 따른 것 입니다. -- Jjw (토론) 2014년 8월 4일 (월) 13:26 (KST)
"현전하지 않는 미상의 문헌을 인용하여 당요 50년 경인년(기원전 2311년)을 단군의 원년이라 기록하고 있으나, 일연이 직접 주석을 통해 당요 50년은 경인년이 아니라 정사년(기원전 2284년)이라 정정하고 있다." 라는 본문 내용과 모순됩니다만.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14년 8월 4일 (월) 13:33 (KST)
현전하지 않는 《고기》(古記)를 인용한 것이니 미상의 문헌을 인용한 것은 아닙니다. 일연이 문제 삼은 것은 간지가 맞지 않는다는 점이고요. 그러나, 서기 기원전 2333년을 비정할 수 있도록 연표를 정리한 것은 조선 시대의 일이기 때문에, 이 문제는 조선 시대에 연표를 정한 사료를 보충해 넣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있다가 밤에 정리할께요. 시간이 있으면 직접 해주시면 더 고맙고요. :) -- Jjw (토론) 2014년 8월 4일 (월) 14:47 (KST)

집에 와서 책과 온라인을 뒤져 확인해 보니 지금의 단기 기원은 서거정이 《동국통감》에서 산정한 것으로 원문은 동국통감 외기 단군조선 영인본 이미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이 가운데 (臣等按) 古記云, 檀君與堯竝立於戊辰, 虞夏至商武丁八年乙未, 入阿斯達山爲神, 享壽千四百十八年. 此說可疑今按, 堯之立在上元甲子甲辰之歲, 而檀君之立在後二十五年戊辰, 則曰與堯竝立者非也. 가 출전으로 이를 한글로 풀어 쓴 해석은 네이버 지식백과 국역 동국통감(국역: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 있습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요 임금의 원래 즉위년은 갑진년이고, 무진년은 즉위 후 25년으로 보아, 단기 원년은 요 즉위 25년으로 산정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국학원의 자료가 뒷받침하고 있네요. 이상의 내용을 바탕으로 다시 정리합니다. 이번 토론으로 그 동안 적당히 알고 지나가던 것을 정확히 알게 된 기회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감사해요. -- Jjw (토론)

이왕 손 댄 것, 위의 내용을 바탕으로 주석을 달아 넣었습니다. 모자란 부분은 계속해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문서의 내용 가운데 대부분이 아직도 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의 것으로 검증과 보충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의견 주세요.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직접 편집해 주시는 것입니다 :) -- Jjw (토론) 2014년 8월 4일 (월) 21:01 (KST)

비파형동검[편집]

비파형동검과 탁자식 고인돌, 미송리형토기를 고조선의 세력 범위를 입증하는 고조선의 유물로 보고 있으나, 비파형동검만이 발견되는 경우에는 고조선이 아닌 동호의 문화에 속하는 영역이었을 수 있다.[1]
  1. 송호정, 〈중국 내몽고 및 요서 지역 답사를 통해 본 한국 고대문화〉, 청람사학 제6집, 2002
제 관점에서 볼 때 해당 내용은 문맥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해당 내용을 삭제하거나 다른 위치로 옮기는 것을 제안합니다. 만약 추가할 적당한 위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고고학으로 바라보는 고조선' 과 같은 새로운 토막글을 생성하여 이 부분에 알려진 여러 고고학적 연구와 함께 추가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어떠십니까?--Aubelumiere (토론) 2014년 8월 4일 (월) 22:17 (KST)
저 역시 현재 문장이 있는 부분은 첫머리 소개 부분이고 현재 고조선 문서에 고고학에 관한 단락이 없다고 보여지므로 고고학에 관련된 단락을 하나 따로 만들어서 해당 내용을 수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4일 (월) 23:47 (KST)
@Lhrdrth: 해당 내용은 고조선의 영토 범위를 어떻게 비정하는가에 관한 것으로서, 충분히 중요한 내용이니 초록에 서술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14년 9월 13일 (토) 00:10 (KST)

한국언어도 남퉁구스어의 흉노족 고립어다. 부여어-고구려/백제-일본이라고 하는 이기문. 돟호? "동호(중국어 간체 : 东胡, 정체자 : 東胡, 병음 : DōngHú)는 춘추 시대부터 내몽골의 동부지역에 거주했던 민족이다. 이들은 유목과 수렵생활을 기반으로 살았다.

'동호'의 어원이 '퉁구스'라는 설이 있으며, 선비족, 거란족과 현재의 몽골족, 다우르족, 부랴트족 등이 동호의 후예이다."

뭐만 말하면 단군조선이 대강역이 대제국이 아닌, 소수 원시부족국가로 부족국가형태의 제사장들의 연합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 무슨.. 부리아트족은 부여와 같고, 흉노/선비도 단군조선이고, 몽골도 마가고.. 거란은 걸족이고.. 다 아우르던 형제부족인데, 그속으로 떼어주면 좋겠네. 그랬으면 좋겠네로 들리니.. 내 참.. 주류 아닙니다. 어울리지 않는게 아니고, 저런 학설을 학설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 속에 동호는 몰라도, 민족이든 역사든 갈라놓으려는 것은 주류 사학도 아니고 인정될 수 없는 사론입니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1일 (토) 17:05 (KST)

고조선(古조선)은 어디 조선이에요?[편집]

"고조선의 건국 신화는 한국 최초의 나라인 고조선의 건국에 대한 이야기이다. 흔히 단군 신화(檀君神話)라고 한다."

古 조선?

고조선 위키백과

"국호는 조선(朝鮮)이나, 일반적으로 14세기 말 이성계(李成桂)가 건국한 같은 이름의 왕조(조선)와의 구분을 위해 '고조선'이라 부른다."

이씨조선(李氏조선, 李조선)은 알겠고.. 삼한조선의 마한조선, 진한조선, 번한조선, 한조선.. 도 알겠고..

그런데 고씨조선은 어디에 있는 조선인가요? 조선은 나라라는 하나, 천군이 있는 곳인데.. 명조, 명조선, 청조, 청조선, 만조선, 만주조선 등은 다 알겠는데, 고조선은 영.. 어디에 나온 조선인지? 아시는 분 알려주세요.--Canendo (토론) 2015년 4월 11일 (토) 13:09 (KST)

"《삼국유사》〈기이〉고조선" 에 나옵니다만. 귀하가 모른다고 다 거짓이라는 생각은 버리시죠. 이곳에서 이렇게 장광설을 늘어놓는다고 귀하의 주장이 인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곳은 위키백과이며 위키백과는 확실한 출처, 근거를 갖춘 사실만 인정됩니다. 귀하가 여기서 쓰는 내용은 출처 하나 없는 독자연구일 뿐입니다. 귀하가 환단고기니 신시 뭐시기니 하는 걸 근거랍시고 들어도 소용 없습니다. 위키에서는 그런 위서는 취급 안하니까요. 그러니 여기서 장광설로 위키 트래픽을 늘리지 마시고 차라리 대학 강단을 통해 귀하가 믿는 주장이 위키에서 인정되는 근거를 갖추도록 노력하시는게 나을겁니다.--Xakyntos (토론) 2015년 4월 11일 (토) 15:13 (KST)

송호정 한국교원대 교수 : "많은 사람들은 고조선을 단군조선으로 알고, 교과서에까지 버젓이 기록하고 있지만 이는 부정확한 기록과 상상에 의거한 몰상식이자 소설이다. 게다가 고대국가 성립시기는 청동기시대 (서기전 10세기) 들어서라고 보는 것이 정설인데, 그보다 훨씬 전에 국가가 등장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어 고조선의 실제 성립시기는 선진의 문헌인 관자의 기록에 나오는 서기전 8~7세기로 봐야 한다. 단군조선은 신화의 영역일 뿐 역사 연구의 대상은 아니다." (한국일보)

이건 기만이라는 것은 인정하세요. 교과서에 단군조선이라고 했는데, "고조선"??? 이라고 해야한다. 상상에 의거한 몰상식이자 소설이다?? 진짜 이런사람이 역사학자에요??? 해도 해도 너무한다..

원문사료

魏書云 乃往二千載有壇君王儉 立都阿斯達 開國號朝鮮 與高同時 古記云 昔有桓因庶子桓雄 數意天下 貪求人世 父知子意 下視三危太伯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 遣往理之 雄率徒三千 降於太伯山頂神壇樹下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將風伯雨師雲師 而主穀主命主病主刑主善惡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在世理化 時有一熊一虎 同穴而居 常祈于神雄 願化爲人 時神遺靈艾一炷 蒜二十枚曰 爾輩食之 不見日光百日 便得人形 熊虎得而食之忌三七日 熊得女身 虎不能忌 而不得人身 熊女者無與爲婚 故每於壇樹下 呪願有孕 雄乃假化而婚之 孕生子 號曰壇君王儉 以唐高卽位五十年庚寅 都平壤城 始稱朝鮮 又移都於白岳山阿斯達 又名弓忽山 又今彌達 御國一千五百年 周虎王卽位己卯 封箕子於朝鮮 壇君乃移於藏唐京 後還隱於阿斯達爲山神 壽一千九百八歲.

지금 내가 고조선이라고 한 것이 삼국유사 기이편에 "고조선"이라고 나온 걸 물어봤냐고요? 눈으로 보고 아니면..

이병도는 이렇게 말년에 참회하였지만

역대왕조의 단군제사 일제때 끊겼다"

대체 천이란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지만 그중에서 천을 군장의 뜻으로 해석할 때에는 개천절은 즉 「군장을 개설한다」는 것이 되므로 개국, 건국의 뜻이 된다.

그러면 우리의 이른바 개천은 즉 최고 시조인 단군의 즉위와 개국을 의미하는 개천이라고 보아야 하겠다.

그런데 삼국유사 기이 제1권의 「고조선(왕검조선)」조에 의하면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도읍하고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다』고 했다.

단군의 아버지 환웅이 「홍익인간」의 이념을 가히 실현할 만하므로 하늘이 그를 인간세계에 내려보내 다스리게 하니 환웅이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정 신단수하에 내려와 이곳을 신시라 하고 그를 환웅천왕이라고 하게 되었는데, 그는 풍백(풍신) 우사(우신) 운사(운신)의 삼신을 거느리고 주곡 주명 주형 주선악등 무릇 인간삼백육십여사를 주관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일견 지상국가를 천상국가의 한 연장으로 관념한데서 생긴 신화와 같이 보이나 이 신화를 검토하면 환웅천왕의 존재는 실상 지상국가를 개창한 군장이라기 보다는 인간사회의 백사를 주관하는 수호신적 성격을 가진 존재임을 알 수 있다.

배달신시도 인정했지만 단군왕검 아버지라고 하고. 근데 참 이상한 것은 왜넘이 말하면, 무슨 신사에 거발환환웅을 모시고 해도 좋다고 하고. 우리는 인정도 하지 않고..

환 단 한

종합 한조선.

고조선은 그렇게 역사를 전공하는 쓰는 것이 아니다는 것.. 고조선이라고 하는 것은 단군조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인정도 하지 않는 사람이 상고사에 대한 전문가처럼 이야기하는가? 입니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1일 (토) 15:45 (KST)

바로 본인의 토론 문서에서는 일본, 중국의 역사에 국호까지 부정하시는 분께서 단군조선을 학술적으로 부정하는 것에는 핏대를 올리시는 모습은 참 형용모순입니다. 자기 입맛에 맞으면 삼키고 안맞으면 뱉어내는 완벽한 이중잣대 아닙니까? 최소한의 공정한 태도조차 없는 모습을 보니 귀하가 신봉하시는 종교의 앞날도 참으로 까마득할 것 같습니다.--Xakyntos (토론) 2015년 4월 11일 (토) 16:03 (KST)

중국역사 및 국호는 부정한 적 없습니다. [지팡]이 [재팬서기]는 위서인데, 계속 들이대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고조선라고 하는 것은 단군조선을 부정하려고 사용하는 용어로 자제하기 바랍니다. 종교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러한 종교가 아니고 한국의 일반사람이고, 원숭이 엉덩이 종교는 믿은 바도 없습니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1일 (토) 16:08 (KST)

단군조선 학술적 부정[편집]

단군조선을 학술적으로 부정하는 것에는 핏대를 올리시는 모습은 참 형용모순입니다. 자기 입맛에 맞으면 삼키고 안맞으면 뱉어내는 완벽한 이중잣대 아닙니까? 최소한의 공정한 태도조차 없는 모습을 보니 귀하가 신봉하시는 종교의 앞날도 참으로 까마득할 것 같습니다.--Xakyntos (토론) 2015년 4월 11일 (토) 16:03 (KST

"송호정 한국교원대 교수 : "많은 사람들은 고조선을 단군조선으로 알고, 교과서에까지 버젓이 기록하고 있지만 이는 부정확한 기록과 상상에 의거한 몰상식이자 소설이다. 게다가 고대국가 성립시기는 청동기시대 (서기전 10세기) 들어서라고 보는 것이 정설인데, 그보다 훨씬 전에 국가가 등장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어 고조선의 실제 성립시기는 선진의 문헌인 관자의 기록에 나오는 서기전 8~7세기로 봐야 한다. 단군조선은 신화의 영역일 뿐 역사 연구의 대상은 아니다." (한국일보)"

"많은 사람들이 고조선을 단군조선으로 알고, 교과서에까지 버젓이 기록하고 있지만" 현 국사교과서에 "단군조선"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몰상식하고 소설을 쓰는 일 개인이, 아니다 부정한다고 그것이 "자기 입맛에 맞으면 삼키고 안맞으면 밷어내는 완벽한 이중잣대가아니냐고 하는 것은 편향된 사고로, 도리어, 고조선이 아니고, "단군조선"이 맞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귀하가 신봉하는 종교의 앞날도 참으로 까마득할 것 같습니다"는 대단히 유감스러운 인신공격성 멘트입니다. 삼가해주시기 바랍니다.

한국의 나라 이름 문헌상 나타난 한국의 첫 이름은 조선(朝鮮)이다. 조선을 흔히 고조선(古朝鮮)이라고도 하나, 이는 후에 이성계가 세운 조선과 구별하기 위해 잘못 알려진 것이다[1]. 《삼국사기》의 위만조선조와 고조선조가 나뉜 것으로 보아 일연은 위만조선과 단군조선을 구분키 위해 고조선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2] 이 조선(朝鮮)이라는 이름은 한국 고유어에 한자를 갖다 붙인 취음어(取音語)로 보인다.

위키백과에도 한국의 나라 이름에 조선을 흔히 고조선이라도도 하나 이는 후에 이성계가 세운 조선과 구별하기 위해 잘못 알여진 것이다. - 분명하게 근거 제시도 하였습니다. 이에 고(古)조선은 "옛 조선"이라는 말로, 옛날 [무슨] 조선인가하는 일제 조선사편찬위원회의 조선사의 고대조선에 대한 신화 및 설화로 이야기하려고 이씨조선(일제시 구분)과 고조선으로 구별하였는데 이는 잘못된 국가의 호칭이다고 명백하게 밝혔습니다. <삼국사기>의 위서의 고조선이라고 한 것은 위만조선단군조선을 구분키 위해 "고"-위만조선의 전조선이라는 뜻으로 조선시대에 이를 "전조선"과 "후조선"으로 나누어 설명하였으나 이 또한 잘못된 국가의 지칭이다. 고로 국호가 둘인 경우, 이를 [단군]의 조선으로 "단군조선'으로 하자고 학계에서 공론화하여 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국사교과서에도 [고조선]대신 [단군조선]이라고 하는 공용국가명칭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개 역사학자가 자신의 주장으로 단군조선이라고 하는 것은 "선진의 문헌인 관자의 기록(?)에 나오는 서기전 8-7세기로 봐야한다" 선진문헌이 화하족의 사서로 본다는 것자체가 문제가 있고, 자국의 사서는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했습니다. 고조선은 인정하되, "단군조선'은 신화의 영역일 뿐 역사연구의 대상은 아니다. 일제때 조선사편찬위원들의 말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즉 단군조선의 건국에 관한 이야기는 설화다. 곰탱이 설화다. 곰족과 천족의 원시부족의 결합을 의미한다고 해서 단국천군(단군)은 무당이다하여 현재도 [[[고조선의 건국 신화|단군조선의 건국신화]] - 단군신화]라고 하고 있습니다. 역사가 높아서 상고치 못한다는 것과 역사서에 나온 사실을 인정치 않겠다와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조선에 대한 이름은 한국 고유어에 한자를 갖다 붙인 취음어로 보인다고 하지만, 일반적으로 조정[朝廷]하면 천군이 계신 곳, 크게는 [나라]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일반 국칭(나라를 칭)명사로 쓰입니다. 朝는 곳 아침(旦)을 의미하지만, 글자꼴의 모양은 十日十月로 우리말로는 '[천군]이라는 뜻으로 일반적인 한자에서는 [황제]라는 뜻으로 황제가 계신 나라로 쓰인다는 것을 명시하였습니다. 이씨왕조하면 조는 바로 임금의 조상, 가계라는 뜻이 됩니다. 대명조선(명조)는 바로 대명의 천제가 있는 나라라는 뜻이고 청조(대청조선), 만조(대만조선, 만주조선)으로 쓰이는 일반명사, 나라의 뜻으로 쓰입니다, 나라의 한문이 國이나 이 뜻은 나는 나 日이고 라는 十方網羅의 라로 태양이 온누리에 비치는 울타리, 즉 나라는 빛의 광명이 빛추이는 터로 황제(혹은 천제)의 나라라는 뜻으로 해석이 되나, 일반적으로 황제칭을 할 수 없는 나라에 그 나라의 속됨, 즉 일 제후국을 표시하는 일반 나라라고 하고 한문으로는 朝鮮으로 볼 수 있다는 것으로, 이에 단순 조선하면 상당한 혼선을 가져오므로 이씨, 왕씨 등으로 씨의 호칭이나 그 부분의 이름을 앞에 붙인다는 것이 바로 황제국은 한 글자로 그 아래 속국이나 제후국은 두글자를 쓴다는 원칙이 세워진 것입니다. 이에 단군조선의 삼한관경에 의해 통치지배구조를 [마한조선] [진한조선] [번한조선]으로 천지인 삼조선으로 나뉘어 관리했다고 하는데, (이는 위서냐 아니냐가 아니고 예시입니다. 출처를 인정하지 않으시니) 이 때 바로 마한, 진한, 번한은 바로 한조선이라는 의미로 [조선]으로 한(韓)조선의 세 조선은 마한, 진한, 번한이다. 그래서 조선하지 않고 [한후-韓候]라고 중국사서 등에 적힌 것은 [조선후]가 아니고 [한후]라고 적은 것입니다. 따라서 많은 조선이 있는데, 이는 원래 조선이라는 나라를 처음 쓴 나라가 단군[조선]이다, 그것이 삼국유사에 처음으로 나라를 [조선]이라고 한다는 삼국유사 고조선에 조선의 명칭유래를 설명한 것입니다. 처음으로 우리나라 나라라고 해서 [조선]이라는 한문으로 적은 나라입니다. 기원전 2,333년이면 상고하기 어렵다, 사서가 부족하다고 하나, 삼국유사제왕운기 및 위서로 간주되는 상고사 모든 부분에 단군(단국 천군, 단국 천제 천왕의 아들)이 국호를 처음으로 [조선]이라고 하고, [아사달]에 도읍을 정했다고 모든 역사서가 단군[조선]의 시원을 알리는 조선이라는 용어를 씁니다. 조천[朝天]하면 뵙는다. 하늘을 뵙는다. 천제를 지낸다는 뜻으로 朝는 아침 조가 아니고 천황/천왕/천군 등 하늘에 제사권이 이는 천제장(물론 송호정의 이야기는 무당,사제들의 연합이라고 하나, 연합이 아니고 한명으로 천군하면 천제 제사권을 갖는 하늘사람 임금이다는 뜻)이다. 이에 조[朝]는 見 (뵙다)는 훈으로 뵐 조, 누구를 '천군'(天君)을, 정(廷)은 천군지소(天君之所)라고 한 바, 조정이라는 말은 천군을 뵐 수 있는 곳, 천군지소라는 의미와 크게는 [국가]를 칭한다고 '훈몽자회'의 새김편에는 나와 있습니다. 이를 한문의 능력이 아니고, 뜻(의미)에 천군, 임금이 아니고 무당이라고 하니 대무당장으로 대사제장으로 하늘에 제사지낼 권한이 있는 [천군]으로 제천 소도의 의미도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 마한조선, 번한조선, 진한조선을 [한]을 빼고도 마조선, 번조선, 진조선하기도 하고 그 왕조의 이름 한조선의 韓(조선)의 아래 3국으로 마한, 변한, 진한으로 나누어 불렀다. 이 마한조선, 번한조선, 진한조선은 단군조선을 인정해야 가능한 분류로 진조선,번조선, 마조선을 각각이 조선이 되므로 아니되고, 즉 천군이라는 뜻이 되므로, 대신 한(조선)을 제후국(관리, 관경국)으로, 마한, 변한, 진한으로 한(韓)이라고 했다. 즉 단군조선의 임금 혹은 칭은 칸[韓 ㅎ한, 칸]으로 그 아래는 ㅎ한이 아닌 가한등으로 두글자로 썼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것은 믿고 안믿고 하자 말자가 아닌, 이러한 구조로 나라칭이 구성되었다는 것. 왜 황제국은 하나의 글자로 쓰고,제후국은 두글자로 쓰인다는 것. 그런데 중국애들의 습성이고 우리는 모두 韓(삼한통일)으로 한 [조선]후 한[칸]의 후손으로 두글자 혹은 세글자로 나라칭을 하여 그 정통성이 한[韓]이다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구리(고리)는 마한(마한조선), 신라는 진한(진한조선)으로, 백제는 번한(번한조선)으로 우리의 나라칭구조를 그대로 잇고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래도 다 황제국으로 그 연원이 깊음을 강조하고 자부심을 느꼈다는 것이 사서에 나옵니다. 이에 조선은 명에 의해 낙점을 받은 나라이름이나, 이는 앞에 [李 혹은 李氏] 조선으로 고대의 한 조선이 아닌, 일반 나라칭으로 [아침해의 선명함]으로 해석한 단군 韓 조선과는 다른 뜻으로 명의 국호에 대한 윤허를 받는 촌극이 벌어진 것입니다. 조선을 [이씨]왕가 [이씨]왕조, [이씨]조선하는 것은 조선을 구분하기 위함도 있지만 그 본을 나타내는 [이씨]의 나라로 오얏 리를 강조한 것입니다. 만약 황제국으로 이를 한 글자로 표기한다면 [朝]한다고 생각하나, 아니고, 이씨조선의 한 글자 국호는 [李]입니다. 이에 찾아낸 대한제국의 이름은 바로 [韓]입니다. 사람들이 한문의 작명을 잘 몰라서 大, 그 다음이 太입니다. [이씨]조선의 왕의 시호가 마치 태조, 고종, 순종이라고 알고 있으나, 그 시호의 칭호는 바로 대왕[大王]입니다.

개인의견이라고 하지만, 왜 단군조선이라고 정했는가에 대한 답으로, 일개 학자가 古 조선이 국호였다고 하는 것은 재팬이 왜가 아니고 일본이었다.. 그것도 기원전 660년이라고 기어코, 어떻게 하든 한국인에게 왜를 일본[일, 태양]으로 태양민족의 오리지날 韓을 일본이 더 깊고 오래되고 천세일계의 2,700년 세상에서 가장 긴 왕조다. 그 이름도 모르면서, 일본 일본하는 것이지, 우리나라 韓 [조선]은 그리 역사가 짧은 나라가 아니다. 모든 이가 문명의 시원지고 동방의 횃불이라고 하는데는 그만한 이유, 문명은 글로 밝힘으로 이는 글자창제국이라는 대단한 사실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한글이라고 하는 한국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글자창제국 동방(오리엔탈, 아시아)로 문명의 발상지가 바로 대한, 즉 한의 전, 檀국이다. 단국의 천군이 韓인데 단제가 아니고 단군이라고 한 것은 천왕 다음의 아들나라는 천군이라 하는 동방예의지국으로 바로 단국(배달신시)의 후손으로 단국의 천군이라는 뜻으로 "단군'으로 칭한 것이므로, 이는 필히 고가 아니고 구분을 위한 것이라면 [단군조선]으로 학계에서도 여러차례 논의가 되어 확정한 것으로 [단군조선]으로 정한 사항입니다. 이에 반론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주류인 양 하는 것은 국사학계에 정식으로 의견을 제출하여 주류가 된 후에, [단군조선]의 명칭은 "부정확한 기록과 상상에 의거한 몰상식이자 소설" - 송호정-이다라고 해야 합니다. 이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로 절대 대한민국 역사학회나 어디에서도 주류다? 정통이다? 다른 역사학자들은 전부 몰상식하고 소설이나 쓰고 있다고 하는 것을 주류로 받아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에 시정을 촉구합니다. 주석으로라도 송호정의 모든 내용은 주류가 아니고 개인의 사견이라고 명시해야 합니다. --Canendo (토론) 2015년 4월 12일 (일) 03:45 (KST)

단군기원 확정된 일입니다[편집]

5. 정리하겠습니다. 귀하의 제안은 인정될 수 없습니다. 기원전 2333년 혹은 기원전 24세기가 실제 건국 연도라는 주장은 명백한 소수설이며, 이러한 소수설을 위키백과의 메인 표제에 싣는 것은 명백한 중립성 위반입니다. 귀하가 이러한 주장을 싣고 싶으시다면, 본문 중에 별도로 서술하십시오. 아니, 이미 그렇게 서술되어 있습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5월 21일 (수) 00:19 (KST)

사실이 아닙니다. 무슨 이유로 이러한 소수/다수라고 독단적으로 말하는지? 위키백과의 메인 표제에 싣는 것은 중립성위반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의 목록으로 되어있습니다.

단군기원

건국절을 만들기 위해 개천절을 없애자는 것은 알겠는데, 단기연호가 사용폐지되었다는 것이지 단군기원이 틀리다가 아닙니다. 당신의 주장은 명백한 소수설로 이를 바꾸려면, 국회에서 의결을 할 문제지, 마치 확정된 단기년호에 대해, 대다수가 원하지 않는다, 아니라고 한다는 것은 전혀 논리성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보다는 재팬의 재팬건국절이 인정할 수 없는 년도로 기원전 660년으로 놀고 있습니다.이것은 명백한 중립성 위반으로 위키에서 재팬 건국절에 대한 년수를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재팬 개국신 신무(神武)천황이 재팬을 세우고 즉위란 게 기원전 660년 음력 1월 1일이었다는군요. 그걸 이토 히로부미가 양력으로 계산하니까 2월 11일이 되었고, 그 후 2.11을 건국기념일로 정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원전 660년에 재팬에 체제가 갖춰진 국가가 생겼을 리가 없다는 게 역사학자들의 중론이랍니다. 그럼에도 자기네 역사를 유구하게 만들기 위해 재팬 위정자들은 대대로 저렇게 지켜오고 있다는 거죠. 이토 히로부미가 했다고 우리나라 단군조선 건국은 기원전 2,333년으로 옛날 옛날 옛적에 법으로 확정되어 사용된 것이지, 역사학자 한 사람이 이래라 저래라 할 문제가 아닙니다. 송호정이 이야기한다고 들어주어야 할 문제가 절대 아닙니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1일 (토) 16:32 (KST)

동이의 역사는 어디가고?[편집]

"송호정 한국교원대 교수 : "많은 사람들은 고조선을 단군조선으로 알고, 교과서에까지 버젓이 기록하고 있지만 이는 부정확한 기록과 상상에 의거한 몰상식이자 소설이다. 게다가 고대국가 성립시기는 청동기시대 (서기전 10세기) 들어서라고 보는 것이 정설인데, 그보다 훨씬 전에 국가가 등장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어 고조선의 실제 성립시기는 선진의 문헌인 관자의 기록에 나오는 서기전 8~7세기로 봐야 한다. 단군조선은 신화의 영역일 뿐 역사 연구의 대상은 아니다." (한국일보)

고조선이라고 하니, 조선만 찾고 있는데, 우리는 고래로 동방, 동국, 동이라고 불리워졌기에 동방 (Oriental -문명의 시원지, 아사달) 등으로 불리워진 민족입니다. 기자는 은나라 사람이나 소호금천, 이윤 등 모두 동이사람으로 나오고 역사가 기원전 2,333년이면 요나라 시절로, 그 시절의 역사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동이입니다. 한반도나 요동에서만 볼 것이 아니고 중국대륙 전체에서 동이를 봐야하는데, 치우천왕의 탁록전투 등은 북방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너무 소극적인 연구자세입니다.

이밖에 《설문해자》에 보면 철(鐵)은 흑금(黑金)이라하고 철(鐵)자의 故字(고자)를「철(銕)」라고 했다. 이를 직역하면 곧「夷(이)의 쇠(金)」이라는 뜻으로 쇠는 이(夷)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夷)는 ‘쇠붙이를 처음 만들었다’고 하여 쇠 금(鐵)의 고어에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설문해자》에서는 이와는 다른 뜻으로 “오직 동이만이 대의를 따른다. 이의 풍속은 어질다. 어진 이는 장수한다. 군자들이 죽지 않는 나라다(惟 東夷從大從弓 夷俗仁 仁者壽 有君子不死之國)”라는 풀이가 나온다.

이러한 내용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동이의 이의 뜻으로 종대종궁의 大는 하나사람 ㅎ한, 하늘의 천손자손이라는 뜻이고 궁은 穹에서 보듯이 하늘의 뜻(弘)의 하늘로 하늘과 하나를 따르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는 리로 현재 우리는 구이, 구리, 구려, 구환이라고 하는 역사서에 나오는 리로 인=이라고 함은 바로 환仁=夷로 인은 하늘로부터 맡다, 천하제천권과 다스림을 받은 이로 '오랑캐가 아닌, 철기시대에는 철기를 만들었고, 단순 단군조선이 아닌 단국인 배달신시의 이야기도 환웅천왕시절도 있는데, 이들의 활동은 꼭 요동에서만 찾을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진시황분서갱유는 동이서적과 동이의 선비들로, 진과 한의 등장으로 고조선이 붕괴되었다는 내용은 바로 단순 고조선하여 나라명찾기가 아닌 동이족의 흐름을 봐야 단군조선 (한)의 이동이 확인될 것인데, 전혀 동이는 없고 조선을 찾는 것 같습니다. 조선은 나라의 소도라고 할 수 있고. 동이의 제후국으로 은나라에서 동이족이기에 패망후 번한조선의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동이계는 단순 흉노와 선비가 아니므로, 고조선이라고 함은 단군조선이전의 배달신시에 대한 고찰도 있어야 합니다.

중국사료에 나타난 동이 고조선의 실체--Canendo (토론) 2015년 4월 12일 (일) 20:31 (KST)

숙신만을 고조선으로 본다는 것은 쥬신론보다 못하다.[편집]

"고조선이 최초로 기록에 등장하는 시기는 기원전 7세기로, 이 무렵의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보이는 《관자(管子)》에 제나라와 교역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송호정의 일관된 주장으로, "송호정 한국교원대 교수 : "많은 사람들은 고조선을 단군조선으로 알고, 교과서에까지 버젓이 기록하고 있지만 이는 부정확한 기록과 상상에 의거한 몰상식이자 소설이다. 게다가 고대국가 성립시기는 청동기시대 (서기전 10세기) 들어서라고 보는 것이 정설인데, 그보다 훨씬 전에 국가가 등장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어 고조선의 실제 성립시기는 선진의 문헌인 관자의 기록에 나오는 서기전 8~7세기로 봐야 한다. 단군조선은 신화의 영역일 뿐 역사 연구의 대상은 아니다." (한국일보)

관자의 기록이 선진의 문헌이라고 하나, 이 숙신이 발조선으로 전 고조선을 의미한다고 함은 고조선을 북방국가형성으로 보는 것으로, 이는 (주신)론으로 한편으로는 숙신, 읍루, 여진의 고구려, 발해의 여진(려진)으로 본다함은 이씨조선(고조선과 구분)의 형성에서 숙신(여진)이 함께 조선정부를 수립했다는 것으로 국가형성의 주체로 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진과 신라의 후손이 세운 청나라도 고조선의 후예국으로 인정하자는 의견으로 먼저 금과 후금(청)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진 후에 숙신을 다루어야 합니다.

관자에 나오는 최초의 조선 언급인 발조선(“發朝鮮文皮”:管子 卷23)이어서 발조선은 발식신의 전음(轉音)으로 추정된다. 즉 ‘식신=숙신=직신 =조선'으로 추정되는 바, 숙신(쥬신)론으로 물론 고조선의 한 조선으로는 볼 수 있으나, 타 상고사에 의한 내용에서는 은나라와의 관계 - 기자조선 - 번한조선의 관계가 나오므로, 동이족중에 일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사료됨.

대쥬신제국사》는 김산호가 그린 만화로, 고조선을 가리키는 쥬신이라는 단어의 출처로도 유명하다.- 쥬신 고조선, 대쥬신제국사는 이를 소재로 만화이나, 그 가치가 없다할 수 없지만, 이는 만화일 뿐, 역사가 아니다. 쥬신론은 하나의 소수설로 다수설이 아닙니다.

숙신(肅愼)은 고대 만주(중국 동북 지방 및 러시아 연해 지방)에 살았던 퉁구스계 민족을 말한다.[1] 식신(息愼), 직신(稷愼) 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주나라 때는 숙신으로 불렸고, 한나라 때는 읍루라고 불렸다. 6세기부터 물길 및 말갈로 불렸다. 이후 12세기에 금나라를 세운 여진족과 17세기에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으로 이어졌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03:37 (KST)

시조와 국조[편집]

"박광용은 단군 신화가 우리 역사의 귀중한 사료임에는 틀림없으나 고조선의 지배층이 자신들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단군을 시조신으로 모신 이래 구전되어 오면서 수 많은 변형이 있었던 불확실한 사료로서, 제대로 밝히기 어려운 불확실한 신화적 사실을 섣불리 실재화하거나 신비화 할 경우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국수주의자 또는 복고주의자를 대량 생산할 위험성이 상존한다고 지적하였다.[14]"

박광용의 의견은 위험성이 상존한다는 지적을 한 것으로 신화적 사실에 근거한 사견으로 이를 고조선 역사의 일부분으로 역사적인 시점으로 보기 어렵다. 구전되어 온 것이 아닌 사실을 적은 정사를 마치 신화라고 단정함은 어리석음을 보이는 단편으로 신화적인 요소가 있다고 하더라고 정사 혹은 역사적인 사실로 기록되어 있는 사실을 부정함은 개인 사견으로 이를 주류 정당한 의견으로 볼 수 없다. 삭제함이 중립적인 것으로 보임.

'단군을 시조신으로 모신 이래" 전혀, 역사서에 대한 해석이 안된 바, 삼국유사, 제왕운기, 동사 등 모든 역사서를 부정한 것을 올바른 의견으로 인정되어서는 안된다. 시조(始祖)라 함은 민족(현대적인 개념이나)의 아버지로, 국조(건국의 아버지)와는 다른 민족의 정통성에 대한 문제가 있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즉 단군신화에 나오는 환국, 단국은 신화라고 하더라도, 그 족보는 제대로 나와 있다. 단군왕검의 탄생설화라고 치부하더라도 단군신화는 천신강림신화와 천손탄강신화가 함께 있다. 이에 시조라고 하면, 환인이 시조고, 환웅이 아버지고, 단군이 조선을 건국한 건국의 아버지 (국조)로 하고 있음에도 신화론이라고 하는 "신비주의"론을 말하나, 용어의 선택이 극히 잘못된 것이다. 시조신이라고 신화학에서 이야기하더라도 역사서에는 분명 단군이 아닌 환인으로 이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개인 사견으로 편향된 시각의 신화역사론 창조로, 비록 신화라고 하더라도 얼마든지 그 역사의 정체성을 역사화한 경우가 그리스 로마 신화 역사에서 볼 수 있으므로, 단정적으로 신화다. 고로 국수주의자 또는 복고주의자를 대량 생산할 위험성이 상존한다고 하는 조선사편찬위원회의 의견과 같은 의견을 현대 역사학회에서 주류로 받아들일 수 없다. --Canend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03:50 (KST)

"단군신화는 고조선을 통합한 집단의 시조설화(始祖說話)로 형성되었던 것이다."

부족연맹국가로 고조선을 평가하는 것은 좋으나, 단일민족이라고 하는 혹은 여러부족이 함께 한다는 천신족과 지신족의 결합국가가 단군신화라고 하더라도, 시조설화는 환웅-환인이라고 분명 족보를 말하는데 무엇을 보고 시조설화라고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대한민국의 시조가 환인이고 국조가 단군이라고 하니, 아니라고 대한민국의 시조는 아브라함이라고 하는 망극한 일이 있는데, 역사학을 전공했다고 하는 사람이 어찌 용어를 사용함에 있어 다양한 부족의 족들을 모아 단군을 "시조"로 한 설화라고 단군신화를 볼까? 국가 건국의 아버지로 국조(건국의 아버지, 나라의 아버지)라는 용어의 사용이 그리도 어려운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04:30 (KST)

소설은 역사가 아니다.[편집]

고조선의 건국을 다루는 단군 신화는 환웅으로 대표되는 청동기 문명을 가진 외래 세력과 웅녀로 대표되는 토착 세력의 결합을 통해 건국된 것으로 이해된다.[15] -- 이해된다와 건국했다와는 다르다. 사견으로 역사를 말함은 소설이라고 한다. 1. 아무리 환단고기, 단서대강, 규원사화 등등 모든 고대사가 '위서"라고 해도 소설을 쓸 때, 신화를 쓸 때는 좋은 자료가 된다. 전혀 역사학의 기본이 안된 상태로, 신화론 창조를 위해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환웅은 삼국유사에 단군의 아버지로 나오나, 환웅(桓雄)은 이병도가 말했듯이 천왕당의 천왕의 임금님칭호다. 대통령하면 이미 그 나라가 있다는 전제를 함에도 불구하고 왕검의 이름으로 족을 대신했다. 족으로 볼 경우, 환족이라고 하여야 한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신화의 환웅은 위서에서는 "거불단 환웅"으로 "단웅"이라고 한다. 그래서 단을 이은 단국의 천군이라고 단군이라고 역시 임금님 칭호다. 외래세력으로 환족이라고 하나, 실제는 단족으로 단족의 임금 거불단 환웅 혹은 "단웅"으로 고쳐서 말해야 하고, 이 단웅족이 웅녀로 대표되는 토착세력이라함은 웅족으로 확인이 안된 사실을 소설화하고 있다. 천왕이 할 일이 없어, 세력결탁용으로 아이의 생산을 한 것이 아니다.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려면 천신도 지신과 합일하여야 아라리가 난다는 아리랑조로 소설을 쓰는 것이 낫다. 소설을 역사라고 하지 않는다.


"또한, 문동석은 청동기 시대에 시작된 고조선을 신석기 시대인 기원전 24세기로 올려 잡는 것은 민족의 기원을 올려잡으려는 의도가 드러나 있다고 평가하였다.[17]"

의도가 있든 저도가 있든간에 이러한 말은 고증으로 증거가 없다. 그러니, 이것을 신화(Myth)라고 하였고, 신화의 역사화는 역사학자의 연구결과에서 평가해야지, 문동석이 민족의 기원을 올려잡으려는 의도가 드러나 있다고 해도 평가는 개인 평가지 역사적인 증거가 없는 개인평론이다. 민족의 기원을 올려잡으려는 의도는 그 단군 국조가 아닌 환웅시대와 그 이전 환국(환인)으로 의도는 분명하게 드러내 놓고 있는 것이 모든 인정된 역사서에 일관되게 말하고 있다. 국가의 기원을 올리려는 의도는 일연이 한 것이 아니고 [고기]의 내용을 적은 것으로 누군가 조작했다는 의견은 사견이지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사실로 확인안된 당시의 의도를 지금 민족의 기원이 겨우 기원전 2,333년이라고 하는 것은 민족의 기원을 너무 낮게 잡으려는 의도적 폄훼다. 한민족의 기원이 그리 낮다면 민족의 기원이 높은 나라로 가서 살면된다. 역사는 사실이지 용어를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 역사학이 아니다.

신화책도 제대로 읽어야[편집]

"또한 춘추전국시대에 성립된 기록인 《산해경(山海經)》에는 조선이 연나라의 동쪽, 바다의 북쪽에 있다고 나타난다." 마치

"산해경(山海經)은 중국 선진(先秦) 시대에 저술되었다고 추정되는 대표적인 신화집 및 지리서이다. 우(禹)의 협력자 백익(伯益)의 저서라고도 전하나 이것은 가설이고, 춘추 시대부터 한대(漢代) 초기까지 걸쳐서 호기심 많은 학자들이 한 가지씩 첨가한 것인데, 남산경(南山經)에서 시작하여 해내경(海內經)으로 끝나는 총 18권으로 이루어져 있다.[1] 진(晋)나라(265-420)의 곽박(郭璞)이 기존의 자료를 모아 편찬하여 주(註)를 달았다.[1] 본래 《산해경》은 인문지리지로 분류되었으나, 현대 신화학의 발전과 함께 신화집의 하나로 인식되고 연구되기도 한다. 《초사》의 <천문>과 함께 중국 신화를 기록한 귀한 고전이다.[1] 고대 천문학의 개론서이라고 한다."

진나라 사람 곽박이 지었다고 하니, 겨우 기원전 4세기라고 하는 말을 갖다 붙였다. 이것은 중국 신화서적으로 고대 천문학의 개론서 및 신화학의 보고라고 하는 것이다. 산해경은 치우천왕시 자부선인이 지리서로 천문을 곁들여 놓은 것을 곽박이 편찬하여 주를 달아놓은 신화서적이다. 내용이 전혀 다른 것으로,

산해경에는 중국의 역사로서 포함되기도 하는 황제 (전설), 치우, 소호, 전욱, 고신씨, 예, 요임금, 순임금이나, 조선, 청구, 천독 등의 실제로 있었던 지명이 등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며, 다음과 같은 신화적 · 지리적 · 백과사전적인 내용들이 있다. "동쪽 끝 탕곡(湯谷)에 부상(扶桑)의 나무가 있다. 10일간 햇빛을 받는데, 9일은 하지(下枝)에 받고 1일은 상지에 받는다."(<해외동경>)란 태양에 관한 이야기이고, "서쪽에 왕모(王母)의 산이 있어… 봉황의 알을 먹고, 감로(甘露)를 마시고"(<대황동경>)란 서왕모에 대한 이야기이다.[1] "황제(黃帝)가 치우(蚩尤)와 싸웠을 때, 풍우를 진압하기 위해서 왕녀인 발(魃)을 하계에 내려 보냈는데, 전후(戰後)에 발이 있기 때문에 비가 오지 않는다. 그래서 전조(田祖)인 숙균(叔均)의 권유로, 발을 적수(赤水)의 북쪽으로 쫓았다"(<대황북경>)라고 한 것은, 한발(旱魃)이란 말의 유래를 설명한 것이다.[1] 또한 곤륜(崑崙)의 위치나 약수(弱水)의 원류(源流) 등을 설명한 점은 《우공(禹貢)》과 비슷한 지리(地理) 서적이며, 순초(荀草)가 미인이 되는 약이라는 등 많은 약초를 소개하는 것은, 후세의 《본초(本草)》(한방의 약학)의 원류를 이루는 것이다.[1]

요임금-순임금 조선, 청구, 천독 등의 실제로 있었던 지명이 등장한다. 치우천왕(단국 제14대천왕)- 위서로 인정되지 않으므로 출처 미기재- 즉 이 이야기는 기원전 2707년의 일을 적은 것으로, 고조선의 전신 배달신시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내용이 어째서 단군조선의 이야기인지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

<산해경>의 조선천독(朝鮮天毒) 배달신시의 이야기로 우리에게 중요한 국어학적 지식을 주고 있다. 천독은 바로 신불(神市)로 바로 산높이 뚝을 쌓아 있는 하늘독으로 독은 바로 主母로 이 땅의 주인이라는 의미로 신들이 사는 곳, 신불(신시)와 같다. 그래서 치우천왕을 독아비, 도깨비의 원조라고 하는 이유고, 서울 뚝섬은 바로 독섬으로 치우신사가 있던 곳이다. 이는 바로 독도와도 관련이 있는 말로 신선인 천독 도깨비가 있는 무릉도원을 독도라고 했다는 국어학적 어원의 근거를 주는 좋은 자료다. 즉 고조선의 선대 배달신시 환웅(천왕)의 신화가 펼쳐지는 신화집으로 중국내 동이족의 활약상과 당시의 꿈, 신화가 있는 책이지, 고조선 이야기가 아니다. --Canend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05:01 (KST)

역사의 연결고리가 빠졌다.[편집]

"기원전 4세기 중반에는 연나라와 관련된 사료인 《전국책》에서 조선이 연나라 동쪽의 유력한 세력으로 언급된다. 적어도 이 무렵에 고조선이 고대 국가로 성장하여 전국 시대(戰國時代) 중국의 국가와 대등한 외교 관계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4세기 말에는 연나라와 분쟁이 일어나 고조선 측이 선제 공격을 꾀하였다가 중단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중국은 종주국인 주나라가 쇠퇴하고 각 지의 제후들이 왕을 칭하고 있었는데 연나라가 기원전 323년에 왕을 칭하자 고조선의 군주도 ‘왕’이라 칭했다고 한다."

역사를 아예 깡그리 어떻게 하든 기원전 7-8세기 원시부족집단으로 하려고 별 일을 다한다. 4세기 이야기로. 아니 당시 종주국인 주나라 이야기를 하면 주나라 건설이야기에 고조선이 있나 없나를 먼저 확인하고 점프를 해도 가능한 이야기지 기자조선이라고 번한조선의 왕이 되어 기자조선이라고 하였다. 고조선의 삼한조선으로 한 조선안에, 삼한으로 마한조선, 진한조선, 번한조선이 삼한으로 관경을 통치했다. 즉 칸은 천제장이고 직접 나라를 다스린 것은 풍백, 운사, 우사의 삼사, 이를 삼한(나라)로 나누어 관리하는 정치조직이 있었다고 삼국유사 단군신화에도 나오는 이야기를 전부 무시하고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주나라 문왕이 "기명유신" 그 명은 바로 천명으로 유신 - 역성혁명을 하였다. 이 때 패망한 나라가 은나라(상나라)다. 이 은에 대한 이야기는 "동이족"이라 인정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확인을 해야 하지 않을까? 기자조선의 기자는 은나라 사람으로 은나라 패망후 그 후손이 번한조선으로 가서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이 번한조선의 칸이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맞는가? 아니지 않을까? 기자는 동이족이라고 중국 사이트에는 전부 자세히 기록이 나와 있고, 은의 주세력을 그렇게 싫어하는 신라 금씨의 금천의 소호금천씨가 있고, 이윤(자부선인의 제자)이 있고, 기자씨가 있고.. 다 동이족, 고조선의 나라로 알고 있는데, 갑골문, 금문의 내용이 전부 동이족의 단군과 곰녀의 탄생을 축하하는 문으로 쓰여있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기자 기자(箕子, ?~?)는 은나라 말기 주왕(紂王)의 폭정(暴政)에 대해 간언(諫言)을 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운둔 하였다. 상(商)이 멸망한 뒤 유민(遺民)을 데리고 북(北)으로 이거하였다. 기자(箕子)가 상(商)의 멸망을 슬퍼하며 지었다는 ‘맥수지시(麥秀之詩)’에서 ‘맥수지탄(麥秀之嘆)’이라는 말이 유래되었다. 기자(箕子)는 주나라 무왕(武王)에게 하(夏)나라 시조 우(禹) 임금이 정했다는 9 가지 정치 원칙을 전했는데, 이를 홍범구주(洪範九疇)라고 한다. 주왕이 달기의 간교에 빠져 주지육림을 벌이고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자, 낭비가 망국(亡國)의 사치로 이어진다는 상저옥배(象箸玉杯)라는 말이 남겼다. 기자(箕子)의 기(箕)는 봉해진 섬서성(산시성) 지역의 이름이다. 봉분 지역 산시성 태곡은 춘추시대 진나라가 있었던 지역으로, 토방(土方), 귀방(鬼方) 등으로 불리는 북방(北方) 이민족(異民族)이 출몰하는 지역이었다고 한다. 기자가 봉분된 산시성 태곡은 현재 태원 주변으로 전한다. 한서(漢書)에 기자가 봉분된 지역을 조선 지역으로 비정하였으나, 한(漢) 이전의 기록들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기자동래설은 조선 시대 후기 몇몇 야사에서 주장되었으나, 현재에는 실제 역사로 인정하지 않는 이론이 많다.

홍범구주는 제2대 단군 부루가 태자시절, 우임금에게 전한 오행치수 및 조선의 9주로 홍범(弘範)은 홍익으로 하늘의 이치를, 홍범(洪範)은 이 땅의 도리를 전한 것으로 이는 노아의 홍수와 같은 시기, 동양의 대홍수 9년 홍수시 오행상극법으로 자부선인의 오행상생과 함께 오행삼극법으로 역법을 이용한 치수와 지세를 적은 것이다.- 물론 환단고기의 이야기. 그러나, 이 은나라는 주에게 멸하였으나, 그 은나라의 주 세력은 진한조선으로 그리고 기자는 번한조선으로 가서 각각 왕이 도었다. 고조선의 천왕은 "왕"이라고 칭하지 않고 칸[韓]으로 단씨조선을 이었으므로 단제(檀帝)로 은은 조선의 하국으로 이들 유민들을 다 받아들였다. 이게 역사지. 무슨 4세기 운운하면 기자는? 기자조선은 우리나라 역사도 아니고.. 그럼 아무것도 아니면, 무에 이렇게 열심히 갖다가 붙여 놓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주나라의 역법은 태호복희씨의 환역(桓易)- 환하면 벌써 우리나라 선조가 한 것이다는 것을 알아야 함-을 가져다 64효로 절름발이 만든 역법을 공자가 경이라고 해서 역경하였다는 소설을 쓰더라도 일관성이 있어야지. 다 필요없고 중국의 종주국(???) 주나라가...주는 은을 멸하였기에, 은의 유민중 소호금천의 금씨는주나라를 역적의 나라로 친다. 각설이가 각간 아니던가? 각설이가 밥빌어먹으면서 한자를 적어주었다고 한다.

주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중국에서 찾으려 한다.. 삼국사기에도 나온다.


난랑비 서문 (鸞郞碑 序文) 國有 玄妙之道 曰風流 국유 현묘지도 왈풍유 說敎之源 備詳仙史 實乃包含 三敎 接化群生 설교지원 비상선사 실내포함 삼교 접화군생 이 종교를 일으킨 연원은 선사[仙家史書]에 상세히 실려 있거니와, 근본적으로 유 불 선 삼교를 이미 자체 내에 지니어, 모든 생명을 접하여 저절로 감화시킨다. 且如入則 孝於家 出則忠於國 魯司寇之旨也 차여입즉 효어가 출즉충어국 노사구지지야 집에 들어온 즉 효도하고 나아간 즉 나라에 충성하니, 그것은 노사구-魯司寇(공자)의 교지(敎旨)와 같다.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처무위지사 행불언지교 주주사지종야 하염없는 일에 머무르고, 말없이 가르침을 실행하는 것은, 주주사-周柱史(노자)의 교지와 같다. 諸惡莫作 諸善奉行 竺乾太子之化也 제악막작 제선봉행 축건태자지화야 모든 악한 일을 짓지 않고 모든 선한 일을 받들어 실행함은 축건태자-竺乾太子(석가)의 교화(敎化)와 같다.

이 비는 삼국사기 진흥왕조의 난랑이 쓴 서문으로 본문이 전하지 않아 안타까우나, 무위지사하고, 말없이 가르침을 실행하는 것을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주주사, 주나라 사관의 마루라고 했느냐? 가소롭다. 그게 어찌 무위자연 무위도식한다고 도라고 하느냐.. 니네집 마루바닥이라고 하여라. 얼마나 속쉬원한 한필인가.. 노자가 무슨 노자라고 주주사(주나라 사관주제에) 그것은 주주사의 마루라고 해라. 그건 종이 아니다.

유교도교불교를 아우르는 도가 우리나라에 있는데 그 연원은 선사에 상세히 나와있다. 즉 연원이 이 세종교를 다 합친 원래의 도가 바로 풍류도다. 단군시절부터 있던 천왕랑으로 선사, 선인들의 이야기가 있었다는 이야기.. 무위자연? 그래 유유자적하고 신선놀이 하니 좋더냐고, 이는 선사의 이야기중 유위자선인, 즉 무위가 아니고 유위에 대한 핵심을 말씀하신 선인의 이야기를 베껴쓴 것으로, 유위는 없고 무위만 이야기하니 그건 사관이나 베껴 쓸 마루니라.. 무위는 하나로 바로 하늘이 하는 일로 천공자연 하늘의 도라..고.. 하나.

이 예는 바로 연원이 있다.. 어디에 신라전 선사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무엇이? 고조선의 상세한 선인들, 그전의 배달신시의 선인들의 이야기가 신화집처럼 되어 내려오고 있었다를 알리는 고조선이 실재했다는 내용을 증빙하는 자료입니다. 현재는 소실되었다고 하나, 이러한 사서의 자료에서도 충분히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기자는 번한조선에 유입된 은나라 동이의 하나다. 그래서 번한조선의 왕이 될 수 있었다. 기자씨로 기자의 후손으로 전한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05:56 (KST)

위만조선이 왜 고조선?[편집]

고조선이 윗대 古조선이라고 하면서, 숙신에 쥬신까지 발조선, 위만조선.. 조선은 나라왕조로 쓰인것으로 명조선하면 명조, 청조선하면 청나라와 왕조라는 의미인데, 왜 년대도 맞지 않는 위만조선이 고조선을 이었다고 하는지요?

삼국유사 기이편에 그 수가 1,908년이면 기원전 2,333년 - 1,908 = 기원전 425년으로 이미 그 수를 다했다. 물론 다른 위서에는 대부여 등으로 이어졋다고 하지만, 어쨋든 환단고기는 인정을 하지 않는 것이 정통이라고 하는데, 어째서 위만조선은 고조선의 정통을 이었다고 할 수 있는가? 참으로 기이한 위서와 주류의 기준입니다. 어디에서 위만조선이 우리나라 사람인가? 아니지 않는가? 우리에게는 족보도 없는가? 위만조선이 속여 강탈한 왕의 족보는 청주 한씨로 알고 있는데, 이러한 것을 어떻게 고조선이 아무리 신화라고 하지만 년대기를 엉뚱한 년대의 위만조선으로 이어졌다고 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고조선 건국시대 기원전 2,333년 - 기원전 425년. 위서라고 하는 환단고기에는 번조선의 기준으로 나옵니다. 어쨋든 이 번조선은 고조선이 망한 후로 보면, 후대조선으로 현재 우리가 말하는 고조선의 수가 1,908년 끝난 다음의 이야기입니다. 즉 고조선의 정의가 어디까지냐. 단군조선이냐 아니면 번조선, 발조선, 마조선, 위만조선이냐는 구분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고조선의 년수를 기원전 108년 위만조선까지 하면 고조선의 년수는 2,225년으로 늘려잡고 할 문제가 아니다입니다. 즉 삼국유사에 1,908년이면 그러하지, 다른 이유에서 이를 기원전 108년까지 잡는 것은 고조선 폐관후, 진조선, 막조선, 번조선, 발조선, 위만조선, 등등의 후세의 모든 조선들을 다 넣어서 늘리자. 늘려서 무엇하는가? 그것은 역사의 고증방법이 아닙니다. 고조선 폐, 산신령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을 늘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위만조선과 고조선은 상관이 없는 시대로, 이는 고조선 패망후 우후죽순으로 나온 조선들의 아류이고, 그 기원전 108년에 다시 마한, 진한, 변한의 3한으로 정착되는 것은 고조선이 아닌 삼한시대로 들어가는 격동기다고 해야 합니다. 진나라에 의해 완전 분서갱유로 초토화가 된 동이, 그리고 한의 등장에 대해 이미 폐관한 고조선을 연장하여 위만조선에 꿰맞추어야 할 이유가 없다. 고로 위만조선은 고조선이 아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위만이 공격하여 정권을 빼앗자 (기준은) 장수들과 그 좌우 궁인들과 海(해)로 가서 한의 땅(韓地)에 살았고 스스로 한왕(韓王)이라 칭하였다. 그 후 왕계는 끊어졌지만 지금도 한 땅의 사람들은 그를 받들어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 (衛滿所攻奪, 將其左右宮人走入海居韓地自稱韓王 其後絶滅, 今韓人猶有奉其祭祀者.)”고 기록돼 있다.

<후한서 동이전>에는 “처음에 조선왕 기준이 위만에게 패해 남은 군사 수천 명을 데리고 海로 가서 마한을 공격해 깨고 자립해 한왕이 되었고 준 이후에 멸망해 마한인이 다시 진왕이 되었다.(初朝鮮王準爲衛滿所破乃將其餘衆數千人走入海攻馬韓破之自立爲韓王準後滅絶馬韓人復自立爲辰王)”는 기록이 있다.

기준조선-번조선.. 마한을 공격.. 등 전혀 고조선의 하부 나라인 삼한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시기는 이미 고조선의 중앙 단제는 없고, 삼한이 존재했다고 하더라도 번조선 기준왕(단군이 아니다는 것으로) 위만이 공격하여 정권을 빼앗았다. 그리고 이름을 위만조선이라고 했다. 전혀 동이족이 아니고 이를 우리의 역사에 굳이 넣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으로 이 위만은 동이족이 아닌 한나라 유방의 하수인으로 대표되는 사람으로 나와 있습니다. "기원전 194년 연나라에서 이주한 위만(衛滿)이 고조선의 왕인 준왕(準王)의 왕위를 찬탈하고," 고조선 패망후(?) 번조선 등의 조선들 중에 하나에 기준왕에게 쳐들어간 왕위를 찬탈한 것을 가지고 전 고조선의 패망이 위만이라는 대역죄인을 청주 한씨의 역적을 우리나라 역사에 넣는 것은 수치입니다. 아예 빼도 됩니다. 기준이 번조선으로 고조선을 이었고 위만에게 속았건 어쨋건 위만조선이 들어서므로써 기준조선 (번조선으로 알고 있는)은 망했다고 하는 것이 역사입니다. 위만조선후 다른 조선으로 동이족 혹은 우리민족의 정통을 인정할 수 없는 정부로 외래 침탈정권으로 우리의 역사가 아닌 수치의 역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위만(재위 BCE 194~BCE 180)은 본래 중국 한족 출신으로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죽마고우였던 노관의 부하이다. 중원을 평정한 한 고조는 여태후와 더불어 개국공신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였다. 이 때 연나라 왕 노관은 흉노로 달아나고, 위만은 조선인으로 변장한 뒤 부하 1천 명과 함께 왕검성에 와서 번조선의 준왕에게 거짓 투항을 했다. 이에 준왕은 덕으로써 그를 받아주고 서쪽 변경을 지키는 수비대 책임자로 임명까지 했다. 그러나 그 곳에서 한족 망명 집단을 이끌고 몰래 세력을 기른 위만은 이듬해 준왕을 배반하고 왕검성을 쳤다. 그리고 나라 이름은 그대로 둔 채 스스로 왕이 되었다(BCE 194). 준왕이 하루아침에 쫓겨나 황해바다를 건너 지금의 금강하구 지역으로 내려왔는데, 그곳에 어래산(御來山)이 있다. 이 분이 지금의 청주 한씨의 시조다."

신채호(1880∼1936) 선생은 ‘그것은 우리의 변방 침략사로 다루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현 역사학계에서는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준왕을 잡아먹은 위만 같은 배은망덕한 자가 고조선의 정통을 계승하였다는 것이다. 즉 첫번째가 고조선의 1,908년의 년수에서 이는 상관없는 역사로 우리가 고조선할 경우, 시대를 고조선과 후기조선으로 이와같은 여러조선들의 열강시대를 우리의 정통성을 이었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아니다입니다. 번조선 패망(한씨조선) 위만에게 속아서 패망, 간악한 한나라 출신 화하족의 농락이었다로 기준까지의 번조선은 열강조선의 하나로 인정하고 위만조선은 고조선사가 아닌 전조선사에서도 빼야합니다. 고조선사는 아니므로, 이 장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입니다. 위만조선은 별도로 다루고 있으므로 고조선이 아니다입니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11:13 (KST)

초기 고조선은 고조선이 아니다.[편집]

기원전 4세기 중반에는 연나라와 관련된 사료인 《전국책》에서 조선이 연나라 동쪽의 유력한 세력으로 언급된다. 적어도 이 무렵에 고조선이 고대 국가로 성장하여 전국 시대(戰國時代) 중국의 국가와 대등한 외교 관계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4세기 말에는 연나라와 분쟁이 일어나 고조선 측이 선제 공격을 꾀하였다가 중단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중국은 종주국인 주나라가 쇠퇴하고 각 지의 제후들이 왕을 칭하고 있었는데 연나라가 기원전 323년에 왕을 칭하자 고조선의 군주도 ‘왕’이라 칭했다고 한다.

기원전 4세기 말에서 3세기 초, 연나라가 세력을 확대하면서 고조선은 연나라의 공격을 받아 광대한 영토를 상실하고 세력이 크게 위축되었다. 사료적 가치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을 받았던 위략에 따르면 연나라의 장수 진개(秦開)의 침입으로 고조선은 2,000여 리의 땅을 빼앗겼으며, 만번한(滿潘汗)을 경계로 하게 되었고, 연나라가 고조선으로부터 빼앗은 지역에는 요동군(遼東郡)이 설치되었고 장성도 쌓았다고 한다. 이때 고조선이 상실하였다는 지역은 랴오닝 성 일대로 보이며, 일반적으로 대한민국의 역사학계에서는 이 패배로 고조선이 요동 지방을 상실하였다고 본다.

1,908년 년수로 기원전 2,333년에서 기원전 425년 사이 물론 오차는 있을 수 있지만, 기원전 4세기-3세기는 고조선의 이야기가 아닌 열강조선. 위서인 환단고기에서는 대부여로 분류가 된 조선으로 삼국유사를 기준으로 한 고조선사에서는 이들 열강의 조선들은 그 자체로 마번한 조선, 번한조선으로 알고 있는 조선열강들의 전쟁기라고 해야 합니다. 전혀 상관이 없는 내용을 마치 고조선 패망후에 열강조선이 고조선이라는 내용으로 이는 고조선사를 부정하는데, 이 고조선은 열강조선, 막조선, 번한조선, 진한조선, 발조선, 등등의 중국에 나오는 조선사를 모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위서라고 하는 환단고기에서는 고조선후를 대부여-북부여로 북쪽으로 이동한 조선의 이야기를 고조선을 이은 정통이라고 합니다만, 이들 연나라(선비족)과 번한조선의 이야기와 번한조선이 위만에게 패망한 이야기가 실제의 고조선 역사가 될 수 없습니다. 폐하고 없는 고조선을 3-4세기로 낮추어 고조선이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습니다. 이것이 초기 고조선이다고 하는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즉 삼국유사를 부정하고 역사를 부정하면서 열강 조선을 이야기하는 것이 창조적인 역사관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로 이는 시대구분을 명확히하고 이 시기의 역사는 고조선후로 해야 합니다. 다른 시대구분. 위서 환단고기는 이 시대를 대부여-북부여라고 하여 부여시대로 나누고 있는 점을 보아, 이 시대구분은 전혀 고조선사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삭제하는 것이 맞는 이야기입니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11:35 (KST)

대부여는 본 고조선사가 아닌 후기조선[편집]

기원전 221년에 진(秦)이 중국을 통일하고 기원전 214년에 만리장성을 건설하자 고조선의 부왕(否王)은 진의 침입을 두려워하여 복속하였다. 그러나 직접 조회(朝會)하는 것은 거부한 것으로 보아 표면적인 복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왕의 뒤를 이은 준왕(準王) 시기 진나라에 내란이 발생하고 뒤이어 유방과 항우가 전쟁을 벌이는 등 중국이 혼란에 빠지자 중국 유민들이 대거 고조선으로 이주하였다. 기원전 202년에 중국을 통일한 전한은 연·진 시기의 장성이 멀어서 지키기 어려웠기 때문에 이를 포기하고 요동의 옛 장성을 수리하고 패수(浿水)를 경계로 삼았다고 한다.

기원전 221년이면 위서인 환단고기에 의하면 대부여 폐관 기원전 238년후의 일로 이는 북부여의 시작 기원전 239년의 일로, 전혀 고조선사의 1,908년의 년수의 고조선사와는 상관 없는 후기 고조선, 조선열강들의 혼란기와 삼한의 유입과 재건설의 가장 어려웠던 시기입니다. 이에 한의 공격으로 삼한조선이 위협당했다는 한군현도 번한조선 패망 - 위만에게, 진한조선 패망 - 흉노라고 하는 김일제 태자의 한으로의 유배생활 시작, 그러나 마한조선, 막조선이 있었다. 고두막한, 이 내용은 위서 환단고기의 삼한조선의 북부여기로 우리가 현재 논하고 있는 고조선사와는 무관한 시대가 다른 이야기를 마치 고조선의 초기역사다고 하는 것은 시대착오로 년대의 올바른 계산후에 어떤 내용이 들어와야하는지를 재검토해야합니다. 비록 역사서가 적어, 신화시기라면 신화라고 하여 신화에 대한 이야기 혹은 동이족의 이동을 기원전 2,333년 시작으로 한 1,908년동안의 일을 사료로 찾고 고증하는 것이 고조선사이지, 고조선패망후의 대부여-북부여기의 시대가 틀린 이야기가 마치 고조선사의 초기역사라고 하는 것은 년대의 계산착오입니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11:44 (KST)

고조선 도읍지[편집]

고조선의 마지막 왕조인 위만조선의 도읍지는 왕검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왕검성은 오늘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평양시라는 견해가 많으나, 중국의 랴오닝 성 지역에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기원전 108년 전한 무제의 공격을 받아 왕검성이 함락됨으로써 고조선이 멸망했다.

고조선 마지막 왕조는 위만조선이 아니고 기원전 425년에 폐관하였다. 대부여-북부여로 나뉘는데, 이는 위서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실입니다. 이에 비록 조선이라는 번조선에서 위만조선은 이미 고조선(단군조선)이 없어진 다음의 이야기로 이를 서로 비교하려면 대부여-북부여를 인정하는 것으로 이는 고조선의 마지막 왕조라고 정한 것은 시대착오에 의한 마지막 왕조라고 한 것입니다. 전혀 위만조선이 패망하고 한이 군현을 설치했다고 해도, 마한조선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에 번한-위만조선의 고조선후 대부여-북부여의 삼한조선시대와 연대가 맞는 이야기를 고조선 초기 3-4세기경, 이미 없어진 고조선으로 부여시대라고 하는 대부여-북부여시대를 초기라고 하고 말기로 위만조선이라고 하는 것은 고조선 폐관후의 부여조선의 이야기입니다.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로 고조선의 정통성은 번조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유는 고조선 체계는 삼한조선관경제도, 마한, 진한, 번한의 삼한조선으로 되어 있어, 한 조선이 망했다고 전체가 망한 것은 아닌 3한일체 구조로, 상호 좌우현 중앙의 지방 조선의 체계였기 때문입니다. 즉 번한조선이 망했다고 진한, 마한 조선이 항복하고 위만조선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없기 때문에 고조선 후기 열강조선시대에도 전혀 위만조선을 "마지막왕조"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진한조선은? 마한조선은? 어디 있는가. 위만패망후 진한조선으로 쳐들어간 한군에 의해 흉노의 태자 김일제가 한나라에 잡혀갔다. 이 사람이 신라 김씨와 왕씨의 조상이다, 맞는 이야기지요, 흉노는 匈으로 금(알타이)로 금신, 금천(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하양왕으로 제천장이라는 뜻이므로 진한조선을 한/훈/흉이라고 흉한 사람은 한의 사마천이지 우리의 조선사람이 이름한 것은 아닙니다. 훈족이 바로 흉노라고 하는 진한조선의 사람들임을 익히 알려져 있는 사항이고, 다음이 마한은? 고두막칸의 이야기는 위서이야기이므로. 생략합니다만 년대가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 어디에 맞추어도 1,908년의 고조선의 이야기를 해야지 고조선 폐관후의 이야기를 고조선이라고 하는 것은 사서에 입각한 년대표가 아닙니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12:11 (KST)

단군왕검[편집]

단군왕검은 고조선 사회의 제주이자 군장으로, 단군은 대제사장적인 성격을 많이 담고 있으며 왕검은 국가를 통치하는 대군주의 의미를 띠고 있다고 해석한다.[19] 즉 제정일치의 지도자이다.[20] 방언의 분포와 비교언어학적으로 살펴볼 때에도 제사장과 정치적 지도자를 함께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21]

환인 - 환웅 - 단군

이것은 성이면서 임금님을 의미하는 제천장과 임금님의 시대적인 의미의 변천입니다.

환웅이 환인의 아들이다. 성은 "환"씨다. 단군은 환웅의 아들이다. 그런데 왜? 18대 환웅인 거불단 환웅이 하늘에서 땅으로 단이라고 ㄷ한으로 단으로 시대를 구분하는 사람의 총칭으로 단하였다. 단웅이라고 하셨다. 그러니 그 아들은 단군이라고 한다.

우리가 알듯이 조선인데 어느 조선하면 고조선이 아니다는 것. 환조선에서 단조선으로 그런데 삼국유사에 처음으로 국호를 '조선"이라고 하였다 그전에는 배달신시 등으로 나라국호를 썼다.

그래도 환인 나라 환국(천국) - 환웅 배달신시 - 단군 조선.. 즉 고조선은 단군(단씨) 조선이라고 한다. 환단한은 시대적 구분으로 쓰는 하늘의 광명, 땅의 광명, 인간의 광명이라고 하나, 전부, 후세에 한[韓]의 나라 한조선이라고 한다.

단군은 단국(단씨) 천군을 이는 이병도가 참회하면서 말한 "서낭당은 천왕당"이다 이는 거발환 환웅으로 환웅은 바로 천왕이라는 뜻. 제천장,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사람. 환仁으로 쓴다. 因 인할 인이라고 쓰나, 이 인은 大國으로 夷(=仁)은 대인지국이라고 하는 나라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래서 仁은 하늘로 부터 받은 印 (천부), 일제는 이미 알고 천황가의 마지막 글자는 성과 같이 전부 仁 [히토]를 쓰고 있다. 정작 우리나라 역사를 모르고, 일제가 다 가져가서 쓰고 있는데도 왜 仁을 쓸까 생각해 보지 않고 있습니다. 仁은 바로 사람 [히토]로 해사람, 태양사람으로 皇이기 때문입니다. 환족(환씨)가의 천황은 바로 환인이다는 천황이기 때문입니다.

환인을 제천장으로 천황 환웅을 제천장으로 천왕 단군을 제천장으로 천군 다 천(天)을 쓰면, 이 세상에 하늘에 제사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제천장 - 천황-천왕-천군이다는 뜻입니다. 이에 일반 호칭에도 단군은 단제라고 합니다. 단황으로 하지 않은 이유는 황은 하늘의 황익기 때문. 상제는 위에 있는 제이나, 제위의 분으로 황입니다. 옥황상제 옥황=상제라는 뜻이 됩니다.

즉 어렵지 않은 것을 어렵게 어원공부할 필요가 없이 환은 하늘 환으로 ㅍ한, 단은 땅에 내려왔기에 ㄷ한, 그리고 단군시절 및 그후로는 한 (인한)을 쓴 것으로 우리나라 하면 "우리"라고 하듯이 환단을 한 글자로 하면 한 즉 발음은 다 [한]이다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쓰고 있는 한[韓] 시대를 구분한 것은 삼신일체 하나다는 생각으로 천황-천왕-천군은 아버지, 스승님, 임금님의 군사부는 일체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12:37 (KST)

단군, 만들어진 신화 - 송호정 출처 16 전면 삭제필요[편집]

한편으로는 조선으로 지칭되는 불특정한 소규모 지역 집단의 집합체가 초기 고조선의 사회모습이었다고 보기도 한다.[16]

송호정, 《한국고대사 속의 고조선사》, 푸른역사, 2003

이 내용을 가지고 고조선 [초기]라고 서술하였는데, 년대가 맞지 않습니다. 고조선 : 기원전 2,333년 - 기원전 425년 (1,908년 수) 따라서 전혀 고조선사가 아닌 고조선 후기사로, 늘려서 108년 위만조선까지로 늘릴 근거가 없습니다. 이에 삭제가 타당합니다.

송호정, 「단군, 만들어진 신화」(산처럼刊)

2003년 한국고대사 속의 고조선사에 이어, [단군, 만들어진 신화]의 내용은 동일한 고조선 후기 위만조선사를 주로 다루고 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출처:김상태 저술『한국 고대사와 그 역적들』「고조선 연구와 상식의 몰락 그리고 역사의 상실」책보세 편찬(2013년 6월 3일 발행)제1장 ‘고조선 연구 그리고 상식의 몰락’

송호정 교수 "단군은 만들어진 신화"날조다!!!! 반론:

본론 내용에 배달신시에 대한 내용을 전혀 파악하지도 못한 단군조선전의 배달신시에 대한 논지도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로 단군, 및 천왕의 신시이야기도 날조다로 못박아 버렸습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치우천황은 황제(黃帝)의 자손이라고 자부한 중국인들의 조상으로 황제, 염제와 같이 민족 시조로서 상징적 인식을 한 것이지 실재했다고 믿는 사람은 적어도 학자들 사이에는 없다"면서, 그럼에도 이런 치우를 한민족의 조상으로 간주 하는 것은 "신화와 전설을 실제 역사로 믿고 싶은 이들의 환상이요, 집착일 뿐이다."

1. 치우천황이 아니고 환웅시대의 칭호는 [천왕]입니다. 황은 빛왕으로 돌아가신 후, 우리가 빛이 되신 皇, 하늘위 상제가 황이 됩니다. 치우천왕으로 황제, 염제의 제가 아니고, 천왕입니다. 하늘의 왕이 더 높은 제천장으로 황제, 염제는 삼황오제론의 아래 오제급입니다. 따라서 중국이 주장하는 근거는 없다. 삼황오제론은 사람이야기가 아닌 신화로 정치체제이론으로 한 분의 천왕은 셋으로 나뉜다. 현대말로 삼권분립입니다. 입법, 사법, 행정의 삼황이 하나다는 정치이론이고 우주의 운행이치라고 합니다. 전혀 고대사에 대한 이론부분이 없기에 그냥 신화다하는데, 삼황오제는 삼권분립, 그리고 중앙과 지방 행정조직으로 5가로 알려진 오제로 방위 동서남북중, 그리고 행정각부, 윤리로는 5상으로 나뉘는 윷놀이판의 중앙 황극을 놓고, 3의 숫자가 황을 포함한 3황이고 5제는 중앙, 4방이고, 그 각 부는 5가로 '도개걸윷모'의 지방행정조직의 실체를 의미합니다. 한국 고대사를 읽는데, 3황오제론, 삼위일체론을 모르고 한국역사를 논하는 것은 고대사 전반의 내용을 모른다고 봅니다.

2. 삼국유사 기이편 고조선사의 배달신시,

환웅이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太白山) 꼭대기 신단수(神壇樹) 밑에 내려와 여기를 신시(神市)라고 하니 이로부터 환웅천왕이라 불렀다.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 명(命), 병(病), 형(刑), 선(善), 악(惡) 등 무릇 인간의 3백 60여 가지의 일을 주관하고 인간세상에 살며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환웅천왕 - 천왕이라고 나옵니다. 따라서 그 후손 제14대 천왕은 치우(일명 티우)천왕이라고 하여야 합니다. 그 전 환국의 환인천황입니다. 정치이념과 체계 : 하나 - 홍익인간 삼사(삼황)체계 풍백 (일신강충, 천리, 입법), 운사 (성통광명, 지리, 사법) 그리고 우사 (재세이화, 인리, 행정) 삼권분립의 기초로 홍익인간의 이념아래, 3황 일신강충(풍백), 성통광명(운사), 재세이화(우사) 중앙정치조직. 곡(穀), 명(命), 병(病), 형(刑), 선(善), 악(惡) 6부제로 알고 있으나, 한국 고대사의 중심은 오제사상으로

곡, 명, 병, 형, 선악으로 5제.

수화목금토의 오령의 사상과 흑제, 적제, 청제, 백제, 황제의 5방, 지역행정조직으로 5가 제도를 운영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뭣도 모르고 마치 신화이야기로 황제, 헌원, 염제, 치우천왕이 천왕이니 제와 같다고 서열을 놓는 것은 중국이야기일 뿐 우리이야기는 아닙니다.

하늘의 별이 되신분도 삼황으로 대입합니다. 하늘의 삼황은 초기에는 안파견 환인, 거발환 환움, 치우천왕이 조교치황으로 추후 삼황으로 모셨고 단군 왕검이후에는 환단한의 삼한시대로 안파견 환인, 거발환 환웅, 왕검 단군의 삼황이 삼聖으로 삼성각에 모시는 이유입니다. 조화신, 교화신, 치화신이나 이 삼신은 하나다. 삼신일체, 군사부 일체로 일제는 이를 내선일체다고 하는 짝다리 정치이론으로 내와 선(공물, 노예)라는 음양일체론으로 당나라 도교이론입니다. 전혀 사상이 짝발입니다.

단군건국 신화에도 삼황오제가 실려있으므로 실재했건 안했건간에, 존재의 가능성은 신화적 역사로 인정가치가 매우 높은 고대 상고사의 정치행정시스템이 삼국유사에 그대로 나오므로, 단군조선이 아닌 그 이전 배달신시로 티우천왕은 거발환 환웅이후 14번째 천왕입니다.

3. 칠정운천도

치우천왕시의 가장 놀라운 일은 칠정운천도로 이는 15세기 이순지의 칠정산내외편의 기초로 기원전 2707년경에 제작된 7요일제, 일월수화목금토가 현대에도 일월화수목금토로 수화가 바뀐 것이나, 이는 우리사상과 서양사상, 즉 제우스신이 불의 신으로 신중의 신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수는 하늘이기에 우리는 하늘이 먼저 나오는 도입니다. 상당히 재미있는 역법으로 태양력입니다. 태호복희씨의 환역과는 비슷하나, 이는 발귀리선인의 7회제신력을 치우천왕시 자부선인이 윷놀이와 함께 전한 칠정운천도로 7개의 움직이는 행성(일월 오행, 음양오행)으로 천문과 지리, 태양의 움직임으로 주역(환역이 모태)와는 다른 태양의 움직임 관찰 역법입니다. 신라의 첨성대는 천문대가 아닌 바로 역문대로, 易, 태양의 움직임, 변화를 관찰하는 365.25의 벽돌로 쌓은 우리나라 고대 천문중에 태양력의 시작입니다. 이것이 치우천왕시의 유산으로 티우라고 해서 현재도 영어에 튜즈데이의 티우(게르만의 화신)이 바로 치우천왕입니다. 독섬(毒섬)이 바로 산해경에 나오는 조선천독으로 독은 독 독이 아니고 主母로 이 땅의 주인 독의 아비로 도깨비가 된 어원입니다. 뚝섬은 바로 [치우천왕사}로 사당입니다. 좌독기가 치우천왕기로 삼극기의 8괘가 그려진 현 태극기의 모체로, 음양기는 잘못이고 태극은 삼극이고, 8괘대신 4괘를 넣습니다.

이러한 내용이 바로 치우천왕시 자부선인의 이야기로 신들의 이야기가 펼쳐진 신화역사입니다, 실증은 유물이고, 화투 (24절기, 4시4철, 알짜 2, 쭉대기 2)로 꽃의 놀이가 아니고 불의 전쟁으로 화투는 뒤의 색이 항상 빨강이어야 재미를 더하는 이유입니다. 일제는 이러한 역법을 모르기에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말하면 다 일제것이라고 하니.. 윷놀이, 천문 28수 3과 5의 삼황오제의 하늘의 별의 움직임으로 이것을 그대로 이 땅의 조직으로 합니다. 이러한 것은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고 환웅천왕후 14새 치우천왕시의 역법의 발전입니다. 즉 주역은 절름발이 역으로 주나라가 은을 쳐서 갖기는 했어도 64효만을 상징하고 있으나, 실 수는 99 = 81효의 하늘운행도가 나와야 합니다. 이것이 역사지, 신화다 날조다는 이상한 나라의 이야기입니다. --Canendo (토론) 2015년 4월 15일 (수) 15:44 (KST)

현대 역사학에서 고조선의 건국 연대 기원전 2333년은 신화적 과장일 뿐 사실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저 연도를 사실로 인정하는 전문 학자들의 연구를 근거로 제시하고, 그것이 널리 인정되는 다수설임을 입증하십시오. 그렇지 않는 한 귀하의 삭제 요구는 인정될 수 없습니다. 참고로 김상태는 전문 학자로 분류되지 않습니다. 김상태의 주장은 위키백과의 아래 지침에 완벽하게 부합되는 확실한 음모론입니다.--Xakyntos (토론) 2015년 4월 15일 (수) 15:57 (KST)
편집자들은 다음과 같은 주장에 대한 출처를 점검할 때 주의해야 합니다.
(중략)
  • 비인간적이거나, 당황스럽거나, 논쟁을 일으킬 여지가 있거나, 이전에 지지를 얻었던 내용과 반대되는 주장을 담은 보고서
  • 지지를 얻지 못하는 주장이나, 관련 학계의 주요 관점과 대치되는 주장. 지지자들이 그들을 침묵하게 하려는 음모가 있다고 주장할 때에는 특별히 주의.

단군기원 단군기원이 신화적 과장일 뿐이라고 한 점에 대해, 상기 단군기원을 뒤집을 수 있는 연도를 제시하십시오. 단순 유물론적 실증주의로는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단군기원 기원전 2,333년은 학술적인 면에서 확정한 것입니다. 다른 기원을 이야기하시려면 확실한 근거와 논리를 제시하고, 국회에서 단군기원 [단기], 국가의 기원으로 이미 법적으로 통과하여, 단 1961년 단기사용폐지이지, 단기의 기원의 변경에 대한 법률 확정은 없는 상태입니다. 고로, 교과서에도 단기연호를 그대로 사용함을 원칙으로 합니다. 귀하의 신화적 과장이라고 하는 논리는 아무러한 실증적 근거가 없기에 주장일 뿐, 법적인 효력이 전혀 없는 무의미한 단군을 소설로 상상의 사실로 하려는 것으로 근거가 없습니다. 도리어 귀하가 주장하는 신화라는 것으로 그 기원이 7-8세기라면, 그 근거를 정식제출하고 국회에 통과후 정당성을 확보하셔야 인정이 됩니다. 전혀 송호정의 가설을 단군기원으로 한다는 내용은 확정된 바도 없으며, 가설일 뿐, 확정된 바 없습니다. --Canendo (토론) 2015년 4월 15일 (수) 16:10 (KST)

말마다 현대 역사학, 한국역사학 주류라고 하는데, 참으로 거북합니다. 현대 역사학에 법정화된 연도까지 바꾸고 말고 하는 것을 현대 역사학이고 한국주류역사학이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Canendo (토론) 2015년 4월 15일 (수) 16:13 (KST)

[신화]로써의 가치는 인정해야 합니다. 기(忌)[5]하였는데 삼칠일(三七日 : 21일) 만 = 이 내용은 삼신 (삼위일체 우리나라 신은 삼신으로 삼성입니다.) 7일은 칠성님이 아니고 바로 자부선인의 칠정운천도의 1주(7일)로 발귀리선인의 환역에 의거한 7신에 대한 제신, 신께 제사하여 천신, 지신, 인신 각 3주를 忌해야 온전한 사람으로 삼진으로 사람이 된다. 홍익인간에 대한 3진은 7일(7회제신)하는 것으로 그래서 아이가 태어나면 삼신점지로 37일 금줄을 달아놓은 유풍이 현재도 있습니다. 그냥 37일 곰탱이들이 하는 놀이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의미가 있는 말로 매우 중요한 사실이 삼국유사의 단군신화에 있기에, 년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하시려면, 왜, 어디에서 무엇때문에, 그리고 그리하면 무엇이 좋은 것인지를 논리적으로 학회에 제출하시고 먼저 학회승인을 받으신 다음에 현대 건 미래 역사학에서 결정했다고 그 결정서를 확인하고 확인번호를 알려주셔야 다시 확인이 가능합니다. 아직까지는 송교수의 의견을 들어본 바 없습니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5일 (수) 16:29 (KST)


단군기원 년도에 대하여,

단기인 기원전 2333년을 확정적으로 서술한 것은 조선 세종 때 서거정이 만든 《동국통감》이 최초이다. 이가 단군(檀君)이며 국호(國號)는 조선(朝鮮)이었는데, 바로 당요(唐堯) 무진년(戊辰年: 기원전 2333년)이었다.

이 내용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생략합니다. 천문역법의 계산법이기에 전문가의 해석이 필요합니다. 이에 따라 현재까지 단군기원은 당요 무진년(무진은 60갑자로 60진법이기에 역산이 가능합니다.)이에 현재 당요시절의 무진년 기원전 2,333년으로 확정한 것입니다. 이 논리에 대한 반박자료 및 근거, 그리고 이를 뒤집을만한 증빙 물건이나 서류 등이 있으면 정식적으로 논문화하여 제출하도록 하십시오. 편집하거나 막는 분은 없습니다.

이에 위서인 단군세기에 나오는 오성취루내용을 천문학적인 계산법으로 "기원전 1,734년"으로 확인된 바 있습니다. "<단기고사>나 <단군세기> 기록에 따르면, 제13대 단군인 홀달단제 50년, 즉 BC 1733 년에 다섯 개의 별이 서로 한군데에 모인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돼 있다. 즉 '무진 오십년 오성취루(戊辰 五十年 五星聚婁)' 라는 한 줄의 글귀로, 무진 50년에 다섯개 별이 루성(婁星) 근처에 모였다는 뜻이다. "단군세기’에 등장하는 ‘오성취루(五星聚婁)’가 BC 1734년 실제 있었던 천문현상

기록과는 1년 차이로 그 오차는 0.007%로 과학적인 계산법으로 천문학의 기법을 활용하여 천문의 현상으로 역산한 것입니다. 이 단기고사는 [위서]라고 잘 알고 있으니, 다른 뜻이 아니고 이러한 과학적인 천문기법을 이용한 새로운 단군기원을 제시하시기 바랍니다. 단순 유물을 못찾았기에 소설이다는 말은 정서로, 과거의 모든 역사해설이나 삼국유사 등 모든 역사서를 부정한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필히 과학적인 근거에 의해 수리적이든, 천문학이든, 역법이든, 그 어떠한 과학기법을 활용하여 유물이 없으니까 아니다가 아닌 실증(과학적인 물증)을 제시하셔야 송박사의 새로운 단군기원을 인정하게 됩니다. 위서라고 해도 해석이나, 정의 등은 참고가 가능한 부분이 많은 것이 [신화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5일 (수) 17:04 (KST)

도리어 귀하가 주장하는 신화라는 것으로 그 기원이 7-8세기라면, 그 근거를 정식제출하고 국회에 통과후 정당성을 확보하셔야 인정이 됩니다. 전혀 송호정의 가설을 단군기원으로 한다는 내용은 확정된 바도 없으며, 가설일 뿐, 확정된 바 없습니다.
틀렸습니다. 근거를 제시하여야 할 분은 귀하십니다. 위키백과는 공인된 출처를 통해 보증되는 주류 학설을 중심으로 할 것을 원칙으로 천명하고 있습니다. 이미 대한민국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으며 과학적·역사적인 연구 방법에 따른 송호정의 견해는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정설로서 인정되며, 이에 대한 증명이 필요하시면 송호정의 책을 직접 읽으십시오. 위의 인용문이야말로 귀하가 주류 학설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다는 증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귀하의 주장이야말로 가설일 뿐, 전문가의 검토를 거친 바 없습니다.
위키백과의 원칙상 예외적인 주장은 예외적인 출처를 요구합니다. 주류 학설은 일반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저서로서 출처의 격을 모두 갖추지만, 귀하가 주장하는 소수설은 학술적으로 상호 검토된 출처를 요구합니다. 학술적으로 검토되었다는 것은 적어도 박사학위 소지자 이상의 검토를 받고 논문, 학술발표 등의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물론 귀하의 주장은 저런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은, 독자연구일 뿐입니다. 즉, 귀하가 아무리 여기서 장광설을 늘어놓아봤자 모두 출처 부족으로 기각됩니다. 그러니 이렇게 길게 쓰실 필요 없습니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으니까요.--Xakyntos (토론) 2015년 4월 15일 (수) 17:43 (KST)
1. ... 라는 건 공식적인 답변이고, 귀하의 주장 자체를 분쇄하자면 단군기원의 실체 이 글을 참조하십시오.
2. 송호정 교수는 물론이고 대한민국 역사학자들 가운데 그 누구도 단기를 부정한 적 없습니다. 단기가 신화적인 한민족의 기원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 연도가 정말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귀하가 여기서 국회에 가니 마니 이야기하는 것은 논점이 무엇인지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계시다는 자백일 뿐입니다.
3. 오성취루가 컴퓨터로만 계산 가능하다는 주장에 대한 가장 확실한 답변은 《자치통감》 원가 16년조 기록을 제시할 수 있겠습니다. 북위 태무제 때의 명신 최호와 고윤의 대화 기록인데, 고윤이 한고조 원년에 기록된 오성취동정(東井에 오성이 모임)의 날짜가 틀렸다고 지적하고 최호가 직접 계산 해본 결과 10월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사실은 그 3개월 전이었다는 내용입니다. 컴퓨터 없어도 고대 사람들, 잘만 계산하고 다녔습니다. 참고로 오성취루에 해당하는 천문현상은 사실 원본 기록이 있어요. 《죽서기년》 제계 10년조에 오성취루가 기록되어 있답니다. 한마디로, 환단고기에 적힌 오성취루는 죽서기년 보고 베낀 거라는 의미죠.--Xakyntos (토론) 2015년 4월 15일 (수) 17:58 (KST)

뭐 그리 어려워요. 1. 단군신화는 소설이다. 없애자. 2. 삼국유사는 위서이르로 송호정의 이야기대로 기원전 425년을 기점으로 고조선은 시작되었다. 3. 아예 없는 것인데, 신화로 민족의 정기를 위해 후세에 만들어낸 것이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우리나라 역사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최태영박사의 47대 단군을 훈몽섭습 등에 언급되어 있고 외우고 다녔다. 100년전에는.. 그리고 아무도 이를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일제 가이넘들이 단군을 없앴다. 그게 중요한 것이지. "공인된 출처를 통해 보증되는 주류 학설"

이게 언제냐고요? "일본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고사기와 일본서기에는 임나일본부가 기록돼있는데, 특히 일본서기에 따르면 고대 야마토(大和)조정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한 군사적 지배기구로 이해할 수 있다. 임나일본부의 일본서기 기록을 맹신함과 함께 일본을 한국보다 우월하게 인식한 일본의 한국사를 연구자들이 바로 국학파였으며, 일본의 한국사 연구 전통에서 다수를 이루었다. 국학파에 의해 19세기 중후반에 잃어버린 임나일본부 지역의 고토(古土)를 회복하고 한국을 정벌해야 한다는 정한론이 대두되었고, 이러한 국학파의 주장은 메이지 유신에 반영된다."

이거 확인하려고 해요? 지금, 또.. 알겠고요.. 언제요? 언제? 기원전 3세기? 아니면 송호정이야기로, 없다. 소설이다. 신화로서의 가치는 민족구심점이다.. 그거 아니에요. 지금. 그럼 고조선는 신화역사라고 고치면 되잖아요. 왜 귀찮게 기원전 108년에 가요.알았어요. 그냥 "소설이다" 신화로 설화다. 신화가 아니고 썰화아니에요. 신화도 아니고. 그렇죠? 근데 말이요? 한문도 모르고, 한글도 모르면서, 어떻게 년도를 따져요? 하나라는 뜻도 모르던데.. 알면 이야기나 해봐요? 韓은 무슨 뜻이에요?

소설이다가 공인된 출처를 통해, [단군, 지어낸 소설]이거 아니에요? 맞아요. 그럼 공부 때려치워요. 신화학인데, 왜 이래라 저래라 말이 많아요.. 무슨 독립운동해서 기원전 2,333년으로 올릴 것도 아니면서, 무슨 학문의 정의파라고, 양심은? 내가 이야기했죠, 일본서기는 안된다고, 위서라고. 한문을 모르는데 어떻게 기록을 해요? 기록이 문자가 있어야 기록하지.. 안그래요? 뜻도 모르면서 쓰면 그게 기록이 되냐고요?

내가 이사람 불러서 뭘 물어봐줄까요?

이병도 죽기전에 참회했지만?

주 포인트는 나는 재팬 역사 자체의 허구는 못믿어요.. 만들어진 신화 사무라이정신

이래저래, 똑같은 이야기니까? 그래서 없다. 소설이 맞다죠? 그렇죠.. 그럼 태글걸지 말고요.. 소설이다, 왜 없는지나 열심히 실증하면 되잖아요. 남들 수업하는데, 계속, 송호정, 송호정. 송호정.. 알았어요. 언제요? 없다? 알겠어요.. 귀하의 답은 없고 내가 기원전 1세기 든 24세기든 타임머신가서 유물 한조각이도 가져와봐. 그럼 믿을께.. 되어써요. 언제에요. 그걸 말해야 절충이든, 없었다고 인정하지.. 단군은 소설.. 딩동? 혹은 기원전 198년? 혹은 번한조선까지.. 언제요? 이야기하세요.. 그래야 확인을 해보지.. 퍼즐해요? 지금.. --Canendo (토론) 2015년 4월 15일 (수) 19:14 (KST)

어휴. 제 답변이 어려워서 이해조차 못하십니까? 다시 말씀드리죠. 여기서 이렇게 장광설을 늘어놓지 말고 송호정 교수의 책부터 읽으십시오. 귀하가 요청하신 근거가 모조리 다 있습니다. 물론 그 근거를 귀하는 전혀 이해하시지 못하겠지만, 상관없습니다. 귀하가 이해하지 못해도 대한민국의 역사학자들은 모두 이해하고 주류 학설로서 인정하고 있으니까요. 귀하가 할 일은 귀하의 이해력을 높이고 주류 학설이 무엇인지부터 아는 것이지, 여기서 아무도 인정하지도 않는 장광설을 늘어놓는 것이 아닙니다.--Xakyntos (토론) 2015년 4월 16일 (목) 10:11 (KST)

논리적인 답변을 요구 단군조선신화 기원[편집]

1. ... 라는 건 공식적인 답변이고, 귀하의 주장 자체를 분쇄하자면 “단군기원의 실체” 이 글을 참조하십시오. 2. 송호정 교수는 물론이고 대한민국 역사학자들 가운데 그 누구도 단기를 부정한 적 없습니다. 단기가 신화적인 한민족의 기원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 연도가 정말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귀하가 여기서 국회에 가니 마니 이야기하는 것은 논점이 무엇인지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계시다는 자백일 뿐입니다. 3. 오성취루가 컴퓨터로만 계산 가능하다는 주장에 대한 가장 확실한 답변은 《자치통감》 원가 16년조 기록을 제시할 수 있겠습니다. 북위 태무제 때의 명신 최호와 고윤의 대화 기록인데, 고윤이 한고조 원년에 기록된 오성취동정(東井에 오성이 모임)의 날짜가 틀렸다고 지적하고 최호가 직접 계산 해본 결과 10월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사실은 그 3개월 전이었다는 내용입니다. 컴퓨터 없어도 고대 사람들, 잘만 계산하고 다녔습니다. 참고로 오성취루에 해당하는 천문현상은 사실 원본 기록이 있어요. 《죽서기년》 제계 10년조에 오성취루가 기록되어 있답니다. 한마디로, 환단고기에 적힌 오성취루는 죽서기년 보고 베낀 거라는 의미죠.--Xakyntos (토론) 2015년 4월 15일 (수) 17:58 (KST)

1. 공식적인 답변이라고 해서 귀하의 주장 자체를 분쇄? 우선 송호정교수의 이야기 "단군과 단군신화는 실재가 아니라 만들어졌다는 것" 단군조선은 소설이고 설화(신화라는 것은 신들의 이야기로 신화적 역사가 되므로)라고 설했습니다. 이에 고조선이라는 내용에 대해 "삼국유사" 기이 [[[고조선]]] 즉 [[[위만조선]]]과 구분하기 위한 시대구분이라고 명확하게 했습니다. 따라서 고조선은 고조선 건국 신화 (단군조선의 건국신화)라고 분명하게 "신화" - 실증이 안된 역사 - 조작일 수도 있고 사실이 아닐 수도 있고, 어쨋든 민족의 구심점을 위해서든 확인이 되지 않고 있는 시대- 그래서 단기연호에 대한 것도 조선시대에 정한 대로 [기원전 2,333년]으로 하였습니다. 맞죠. 년대기록을 기준으로 고조선은 기원전 2,333년 - 기원전 425년 (1,908년의 년수의 신화- 신들의 이야기다). 맞죠. 그리고 기원전 425년 - 기원전 194년 (위만조선) - 기원전 108년 (위만조선 패망) - 한군현 - 삼국시대로 이어진다. 맞죠?

그럼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고조선]은 신화시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단 신화이기에 역사적인 사실로 인정하지 못한다. 버려야 한다. 그러나 말씀하시듯이 그 누구도 단기를 부정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선 고조선[단군조선]의 기간은 삼국유사에 의해 기원전 2,333년 - 기원전 425년 - 신화시대로 구분하자고 했고 [고조선 건국 신화]로 해서 [신화]라고 했습니다. 이걸 부정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2. 그럼 고조선후기 조선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송호정교수의 이야기는 고조선[단군조선 신화]자체를 부정하겠다. 그러나 가설로 만들어낸 [단기]는 인정하고 이는 상징적인 의미로 우리나라 건국[신화]다. 구심점의 정치 이데로올기적인 이야기다. 그렇죠? 기원전 425년 - 기원전 194년 사이의 기자조선이 있었는데, 기자조선 역시 [ 기원전 1122년부터 기원전 195년 경까지 존속하였다고 한다.] ~한다로 이것 또한 신화다. 고로 [위만조선]위만조선(衛滿朝鮮: 기원전 194년 ~ 기원전 108년) 또는 위씨조선(衛氏朝鮮) 신채호선생의 이야기를 안해도, 이 위만조선은 번한조선을 패망케 한 더러운 오랑캐(변방)의 이야기를 우리나라 조선의 역사로 쓴다는 것, -정통성문제-은 안된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현재 송교수의 이야기는 [고조선-단군조선]은 신화다. 그리고 위만조선은 신화가 아닌 역사다. 그 전에 기자든, 번한이든 이것은 선진 문화의 중국 [관자]에 따라 위만조선 전조선이 있었다. 그리고 후조선으로 [위만조선]이다. 이 논리 맞습니까?

3. 고로, 단군신화의 년대기는 기원전 2,333년 - 기원전 425년의 신화고 소설이고 조작이다 조작이든 말든 이것은 대한민국의 유구한 역사에 빛나는의 우리역사로 하고자 하는 모든 대한국민의 자랑으로 여긴다. 이것은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없는 역사다. - 고로 신화시대다. 신화시대-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 : 이것은 인정하시죠.

그럼 송호정 교수의 이야기는 전면 빼야 한다는 논리 이해하세요. 고조선의 신화기간안에 있지도 않은 내용을 넣으면 안된다. 동이의 이야기도 인정못한다. 단군조선 자체의 신화도 인정 못하겠다. 기자조선도 인정할 수가 없다. 그래서 [[[위만조선]]]이 우리나라 민족의 정통 조선[나라]다. 그럼 고조선 신화이야기가 아니지 않느냐? 고로 삭제하고, 이 이야기는 고조선이 아니고 [진짜조선]이라고 하든 시대 역사시대로 보든 안보든 분리해야한다. 신화이야기에 왜 역사소설이 들어가는가? 아니지 않는가? 이해되세요? 그래서 삭제가 필요합니다. 소설이라고 신화라고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왜 기원전 2,333년에서 낮추고 할 이유가 뭐냐고 물어본 것이지요. 단기를 부정하지 않는다 함은 [신화]로 역사적 가치가 있다. 그것이 비록 대한민국의 정치적 민족신념를 위한 민족구심점의 [홍익인간]을 국가의 이념, 혹은 교육의 이념이라는 구호를 위해서라도 필요하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고조선의 시기구분 : 삼국유사의 고조선과 위만조선을 구분하기 위함이다. 그럼, 고조선은 [신화역사- 아직 검증안된 신화적 역사]로 [고조선 건국 신화]로 했습니다. 기원전 2,333년 - 기원전 425년. 고로 이 기원에 대한 이야기는 신화이므로 물증이 없는 한, 그대로 단기는 기원전 2,333년으로 하고 이 시대는 [신화]시대로 송교수의 위만조선 분야가 아니다. 고로 신화를 가지고 [소설, 날조]되었다고 하더라고 [신화역사]임에는 틀림없다.

위만조선을 고조선이라고 함은 시대구분도 못한 사람으로 이 [위만조선]과 기원전 4-3세기의 이야기는 [고조선 신화]의 시대구분에 들어가지 않고 [위만조선]란에 넣어야 한다. 이를 전조선, 후조선으로 구분하는 것은 송교수 전문분야다. 즉 [고조선]에 대한 전문지식이 전혀 없으므로, 본 사항들은 위만조선 혹은 위만조선전 기원전 425년 이후 조선으로 아니면 다른 이름으로 위만조선전후기로 하든지 하여 삭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4. 신화의 건국년대..

"단군신화는 청동기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정 치세력이 여러 부족을 통합하고 고조선을 일으키면서 자신들의 집권이 정당하고 합 법적인 절차에 의한 것이었음을 뒷받침하기 위한 사상으로 제시된 것"

이미 단군신화 [고조선]은 신화라고 했는데, 그 년대가 기원전 2,333년이건 2,440년이건 상관없는 분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화]로서의 가치는 있기에 기원전 2,333년-기원전 425년사이의 내용은 전면 송교수의 어떠한 내용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 고조선 역사연구는 재야건 강단이건간에 [신화역사]로 인정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꾸며져야 한다는 것으로 신화이므로 이를 더 이상 "우리 역사를 오래되고 우월한 것으로 보고 싶어하는 국수주의적 역사인식"에서 초래된 결과" - 송호정..라고 해서 국수주의적 국민이라고 낮추지 말고, [위만조선기]로 해서 그 분야나 똑바로 실증하고 검증하여, 과연 위만조선이 우리나라 역사인지에 대한 좋은 논문과 소설이 나오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기자조선도 부정하였으므로, 이에 대한 동이의 역사, [상/은]나라의 동이의 소호금천, 이윤, 기자 등의 동이전은 전면 연구분야에 빠진 교수가 왜 [고조선]신화대에 대해 그 기원이 어떻다 저떻다 할 이유가 없다. 즉 신화라고 규정했으므로 신화가 6,000년전이건, 1만년이건 [신화]의 년대를 가지고 신화인데, 왜 신화냐, 그것도 없다고 하면 민족을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재팬] 덴노사관일 뿐 [재팬서기]는 위서로, 조작된 역사다. 즉 신화도 아닌 백제 왕인박사가 천자문을 겨우 가져다 가르친 것이 백제시대라고 나와 있는데, 마치 기원전 660년하고자 하는 것이 국수주의적 금서룡과 일제의 왜곡된 실증주의 사관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될 폐악의 역사관으로 이들 왜의 역사관이다. 답변으로 확실하지요. 고로 송교수 이야기는 [고조선신화] 역사란에서 빠져야 합니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6일 (목) 03:13 (KST)

주류학설의 정의 그리고 주류학파의 인물리스트[편집]

"공인된 출처를 통해 보증되는 주류 학설을 중심으로 할 것을 원칙으로 천명하고 있습니다. 이미 대한민국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으며 과학적·역사적인 연구 방법에 따른 송호정의 견해는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정설로서 인정되며, 이에 대한 증명이 필요하시면 송호정의 책을 직접 읽으십시오. 위의 인용문이야말로 귀하가 주류 학설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다는 증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귀하의 주장이야말로 가설일 뿐, 전문가의 검토를 거친 바 없습니다."

공인된 출처를 통해 보증된, 그럼 위키백과에 등재된 사실은 위키백과의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지요.

과연 주류학설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말하는 현 한국역사의 주류는 식민사관을 배척하고 자주적인 역사관을 주장하는 학설입니다. 물론 맞는 부분은 인정합니다.

1.타율적 역사인식 - 자주적이지 못하다.

"단군조선 부정 타율성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단군조선을 부정한다. 기자와 위만은 중국인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므로, 단군조선을 부정해야 기자조선과 위만 조선으로부터 한국사가 시작되어 한국사가 처음부터 타율성을 띤다는 것을 뒷받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타율성론은 위만조선이 멸망한 뒤에 고조선 땅에 세워진 한사군의 지배를 강조한다. 한사군(또는 한군현)은 중국 고대 국가인 한(漢)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세웠다는 식민통치기구의 중심지이다."

단군조선[고조선]을 전면 부정한다. 송호정교수의 [단군, 날조된 설화]와 같습니다. 이것이 주류입니까?

2. 고대 한반도 남부의 백제, 신라, 가야 지역이 일본에 약 200년 동안 간접적, 직접적 지배를 받았다는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을 실제 역사라고 주장한다. "일본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고사기와 일본서기에는 임나일본부가 기록돼있는데, 특히 일본서기에 따르면 고대 야마토(大和)조정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한 군사적 지배기구로 이해할 수 있다. 임나일본부의 일본서기 기록을 맹신함과 함께 일본을 한국보다 우월하게 인식한 일본의 한국사를 연구자들이 바로 국학파였으며, 일본의 한국사 연구 전통에서 다수를 이루었다. 국학파에 의해 19세기 중후반에 잃어버린 임나일본부 지역의 고토(古土)를 회복하고 한국을 정벌해야 한다는 정한론이 대두되었고, 이러한 국학파의 주장은 메이지 유신에 반영된다."

한국역사학의 주류, [재팬서기]는 전면 부정한다. 위서이기 때문이다. 야마토라는 말은 대왜[大倭]로 이에 의해 정한론[征韓論]의 빌미를 준다는 것은 어처구니가 아닌 제노포비아 세작전략이다. 제노포비아란 [외국인 공포증]으로 즉 노예로 끌려간 사람은 그 노예로 만든 외국인을 보면 공포에 떠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남의 땅을 자기땅이고 조센진은 바퀴벌레라고 하는데 대해 재팬에 대한 분노는 제노포비아가 아닌 인간의 최소한의 분노로 이러한 분노도 못느끼게 한, [히로히토]의 제노포비아, 아시아의 아돌프 히틀러가 버젓이 살아서 전범도 아니라고 하는 것에 제노포비아를 느끼지 않는다. [분노, 憤奴] - 덴노에 대한 분노이지, 제노포비아는 아니다. 제노포비아는 식민지정책의 일환으로 세작의 이간질을 이야기한다. 일제의 침략에 대해 마치 한국이 전범국인 것처럼 해서 [남북]으로 나눈 것은 전형적인 제노포비아 전략으로 당연히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전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일제경제부흥을 위해 대한민국을 남북으로 하여 대한민국의 주적은 [히로히토와 그 일당]임을 현대역사서에 기재도 못했다. 일제의 간악한 제노포비아 이간질전략이다. 지금이라도 사실이라면, 남일/북일로 나누어 통치해야 함이 우리 대한민국의 억울한 일제의 침략전쟁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답이어야 한다. 백제(=일본의 상국)이 마치 한반도에 있다고 하여, 전혀 대성팔족이 호남에 없는데도 계속 백제의 도읍이 충청도와 전라도의 지배자였다, 고로 백제의 후손인 재팬이 다시 정한론을 말해도 들어라. 조센진아! 그게 제노포비아다.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영어로 쏼라쏼라해도 그 정도 영어실력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재팬서기는 위작으로 그 진위야 재팬은 재팬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해석하면 되지, 절대 재팬서기가 정사로 우리역사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반민족적인 행위로, 국사학의 주류의 류라고 하지도 않는다. 즉 이것을 현 젊은 한국사학의 주류라고 하는가?

3. 신라정벌설

신라정벌설은 바로 정한론(征韓論)의 근거로, 백제가 660년 패망하고 다시 백제부흥운동을 당나라 유배된 시점에서 왜가 400여척의 함선을 백강으로 출격하였다가 백강어구에서 전멸당했다. 당이 아닌 신라수군에게. 이는 현 경상도, 전라도가 아닌 것으로 현 경주가 도읍이면 직선으로 가지, 돌아서 백마강에 갈 이유가 전혀없다. 이해가 되는가? 전멸되고 당의 백제귀족들이 왜섬으로 들어가서 백제, 즉 일본의 태양의 자손이라는 이름을 쓰게 된다. 기원후 8세기다. 이에 대륙 산동반도에 있던 제를 패망시킨 신라는 이 한국역사에서는 없었어야 한다고 일제식 식민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아직도 떠든다. [현대판 신라인들]이라고 자신이 신라의 후손임을 모르고. 백제 대성이 없다. 호남에는, 중국대륙의 호남성 신라/고려인이 유민으로 호남에 유입되었기에 호남이라고 한다. 영남은 태행산맥 남쪽 사람들이 정착한 곳이 영남이다. 중국의 중원지역의 사람들이 온 곳이 충청도다. 이는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으로 쿠테타로 인해 주원장 명의 지시로 명의 토속안에 있는 모든 동이족을 몰아내라는 명에 의해 민족의 대이동이 려말/선초에 [왜구]라는 이름으로 1년에 3,000척의 왜구출몰이라고 하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 때 알 수 있는 것은 왜[倭]夷란 바로 섬사람이라는 뜻이다. 대륙에 밀려 섬으로 이주했다가 다시 섬사람으로 밀려 유입된 것을 의미한다. 고로 현재 한반도내의 사람들은 90%이상이 고려유민이고 고려는 신라를 이은 백성들로 신라-고려-조선으로 이어지는 정통성을 말한다. 있지도 않은 백제설로 호남은 백제, 영남은 신라, 정확하게 세작에 의한 제노포비아 전술로, 이를 유포하는 것은 바로 정치적 야심이 있는 침략의지가 있는 재팬의 세작들의 이간질(제노포비아)다. 이에 용어를 사용함에 있어 정치적인 용어를 사용시에도 전략과 전술 그리고 혐한 왜넘은 무작정 노예였던 조센진들을 바퀴벌레로 보는 것은 원숭이의 깍깍이다. 아무리 해를 빨강이라고 해서 흔들어도 해는 되지 못한다. 이에 반해 독도를 지네땅이라고 하는 것을 보고, 제노포비아로 교육한다, 그건 말이 아니다. 왜 왜가 무서워서 벌벌 떠냐말이다. 일제 식민사관 교육으로 "아이 무서워.. 일제 아베 아저씨 잘못했어요. 우리 미개한 한국인들을 내선일체 하셔서 다스려주세요?" 이게 제노포비아 전술이다. 정치적 술수란 말이다. 이것은 극도로 나쁜 정치술수로, 관동대지진이 났는데, 자국민의 공포증을 조선인들에게 넘기는 정치술수용어가 [제노포비아]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은 제노포비아-일제 공포증-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당연히 원숭이 엉덩이의 전술에 넘어가지 않는다. 이를 민족의 분노라고 칭한다. 사람은 당연히 자신과 자신의 가족, 자신의 땅, 자신의 국가를 빼앗아가려는 도독놈을 보고 무서워하고 가져가라는 병신들이 아니다. 지금은 21세기다. 시대착오로 신라-백제로 영남-호남으로 이간질한 일제 조선사편찬위원들의 작태는 두고 두고 민족을 팔아먹고 민족혼을 팔아먹은 반민족주의자들이라고 명명될 것이다.

이에 신라혐오증에 걸린 사람들이 한국 주류학파인가?

어떤 1, 2, 3 혹은 일부인가? 아니면 무엇이 주류학파의 한국학 역사관인가? 예를 들어놨으니, 해당사항에 공표하고 이에 대해 아니면 "주류"의 정의를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또한 주류라는 학파의 명단, 즉 이들의 출처를 가지고 논하라고 하니, 어떤 사람들의 주류학파 서책을 주로 위키백과에서는 사용하여야 인정이 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서들]로 모든 송호정이외의 학자는 재야고 강단의 비주류라는 내용은 너무 소수설로, 이에 어떤 학자들의 책과 주장을 인용해야 하는지? 그 인물의 리스트라도 알려주어야 현 한국역사학의 태두이신 송호정박사님 이하, 주류를 주류로 알 수 있습니다. 우리와는 딴 세상이라서 그런지, 송박사를 주류의 대부라고 한 적도 없고, 소설로 소설을 쓰는 것은 치우천왕의 불의 신화, 너무나도 재미있는 신화이야기, 자부선인의 윷놀이, 화전목, 그 뒤에 숨겨진 음양오행이 아닌 진실 37일 북두 칠성의 북두(북극성)의 일위변칠의 너무나도 멋진 이야기가 [[[고조선의 건국 신화|단군 건국의 신화]]]에도 여려차례 소개가 되고 있는 바, 삼황으로 풍백, 운사, 우사의 대륙치세의 이야기. 배달 제5대 태우의 천왕의 12번째 아들 태호복희씨가 우사로 있다가 람족에 가서 그 람국의 제가 되었다. 이 얼마나 멋진 이야기인가? 그 여동생 여와를 람국에서는 진흙으로 병사를 만들어 나라를 수비케했다고 하니, 일제 신또교의 도교가 바로 여와와 당나라 이씨의 선조 이 이, 노자의 이야기 합성설화로 종교가 되었다.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지, 무슨 중국이야기라고.. 신화보다 더 재미있는 소설의 소재는 없다.

과연 무엇이 주류고 주류파? 주류라고 하니 술 주로 읽지 말고 메인 정통학파이니, 이를 왜곡하지 말고 정확한 정의와 리스트를 간략히 적어주기 바랍니다. --Canendo (토론) 2015년 4월 16일 (목) 04:27 (KST)

1. 간단합니다. 귀하가 역사학계에 논문을 제출해서 역사학계가 식민사학이라는 것을 정식으로 발표하고 학자들의 검토를 받으며 학자들과 토론을 벌이십시오. 그렇게 해서 공식적으로 역사학계가 식민사학이라고 인정을 받아 오십시오. 그렇지 않는 한, 역사학계가 식민사학이라는 귀하의 주장은 음모론입니다. 위키백과의 원칙을 다시 보여드릴까요?
지지를 얻지 못하는 주장이나, 관련 학계의 주요 관점과 대치되는 주장. 지지자들이 그들을 침묵하게 하려는 음모가 있다고 주장할 때에는 특별히 주의.
지금 귀하가 위에 장황하게 써 놓은 내용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바로 이 인용문입니다. 공식적·학술적으로 인정받는 근거라고는 하나도 없이 “주류사학은 식민사학이니 틀렸다”고 주장해봤자 그건 음모론일 뿐입니다. 이런 것이 위키백과에서 받아들여질 날은 아마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는 없을 겁니다.
2. 이토록 광범위하게 수많은 역사학자들을 공개적으로 인신공격하고 명예를 훼손한 바, 귀하의 차단을 요청하도록 하겠습니다.--Xakyntos (토론) 2015년 4월 16일 (목) 10:18 (KST)

누구냐고 물었는데? 어떤 것이 주류사학이냐고요? 확인하니, 송교수는 동문후배라고 하는데, 나는 모르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무슨 고대사를 했는지는 몰라도, 주류사학이 식민사학이에요? 아니잖아요? 내가 아는 주류사학은 식민사학을 배척하고 자주적인 한민족역사관을 설정하려고 노력한 분들이 더 많은데요? 이거 인정하시는 거에요? 1? 2? 3? 아니잖아요. 지금 전부다 아니다고 해놓고, 그럼, 무엇이냐고요? 주류사학파란 것이.. 그걸 이야기하고 어떤 분들이 이에 함께 하니, 이런 아이들이 집중해서 백과라고 하는 곳에 올리는 지식 컨텐츠를 엣날 사관으로 도배를 해놓났고요? 그걸 재정립하려면 어떤 사람의 저작을 인용해야 고칠 수 있는지 물어봤지, 무슨 벌끈해서는.. 예시로 1, 2, 3 했다고 자인해버리면 안되지요. 어떤 학파의 어떤 논리인지를 정의내려주셔야 주류인지 아닌지도 알 수 있지요? 한국 역사학에는 40대가 전부 태두님들인가요? 내 주위에는 전혀 이런 말을 안하던데.. 아니면 아것이 주류? - Canendo(토론) 2015년 4월 16일 (목) 11:03 (KST)

"이것이야말로 귀하의 희망사항과 전혀 관련이 없는 역사학계의 실상입니다. 

하여간 소위 재야사학을 한다는 사람치고 이런 기초조사도 제대로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한숨만 나오네요. 귀하께서 열심히 찾으셔봤자 저는 이미 다 본 것들이랍니다. 그리고 하나 같이 다 사실을 곡해하고 비틀어서 본인들의 입맛에 맛게 왜곡해 놓은 것들이라는 사실도 아주 잘 알고 있지요. 이런 사기 행각이나 하면서 무슨 민족의 역사를 밝힌다고 하십니까? 이런 사상누각으로 만든 것으로는 민족의 역사를 밝히긴 거녕 민족을 시궁창에 처박는 짓입니다. 그저 가련하기만 합니다."--Xakyntos (토론) 2013년 2월 20일 (수) 18:09 (KST)"

소설이 주류역사란 있을 수 없습니다.[편집]

식민사관 : 일왕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는 황국사관과 맥을 같이 한다 재팬에서 재패니즈로 써달라고 하는 요청이 있으니, 정확하게 [덴노]라고 명칭을 통일하라고 합니다. [재패니즈가 좋은지 모르지만?] 일왕, 왜왕보다는 [덴노]로 재패니즈 발음으로.. [아베]와 같이? 천황의 호칭은 한국에서는 [하느님]이라는 종교적인 명칭으로 사용에 주의를 요합니다. 전문용어를 쓸 경우에도, 필히 그 용어의 적합성을 검토하고 써야 합니다.

송호정(宋鎬晸.41) 한국교원대 교수는 최근 펴낸 단행본 「단군, 만들어진 신화」(산처럼刊)

"단군신화는 청동기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정 치세력이 여러 부족을 통합하고 고조선을 일으키면서 자신들의 집권이 정당하고 합 법적인 절차에 의한 것이었음을 뒷받침하기 위한 사상으로 제시된 것"

어디에도 근거가 없는 소설을 썼습니다. 즉 전문 주류학자의 인용도 출처도 없이 [단군, 만들어진 신화]라고 하면서도 단군신화 자체를 마음대로 정의했습니다. 청동기 문화를 기반(?) - 기록이 없습니다. 청동기, 철기는 근대적인 시대구분으로 전혀 상식에 맞지 않는 용어입니다. 정치세력이 여러부족을 통합하고(?) - 여러부족, 어느 부족들인가? 단일민족이라고 함은 환국-환웅-단군(환군)의 환씨 족보를 이야기하는데, 마치 환웅-곰녀의 자손이라고 해서 단군이라고 했더라도, 환웅, 즉 환씨집 이야기입니다. 송씨집이 아니라서 환-송결합이라는 소설인지? 어느 부족인지 통합에 대한 근거가 없습니다. 집권을 정당하고 합법적인 절차에 의한 것이었슴을 뒷받침하기 위한 사상으로 제시(???) -위서들의 인용으로 기원전 2,333년 단군 왕검, 나라(조선)의 법으로 [단군8조교] -3황5제론의 이야기로 속담이라고 알고 있는 '하늘이 무너져도 살 길이 있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 헌 짚신도 제짝이 있다.. 등등" 삼황의 3조와 5상(세속오계 등)의 법전으로 이는 물론 함무라비법전보다 앞선 것이나, 그 자체가 위서이기 때문에 인정이 안됩니다. 비록 주류라 마음대로 이야기하면 주류가 되지 않으므로, 이 또한 위서의 내용을 인용한 소설입니다.

삼국유사 고조선편의 고조선 건국 신화 첫 2줄, 배달신시신화에도 저러한 소설이야기는 없습니다.

"옛날에 환인(桓因)의 서자[3] 환웅(桓雄)이 천하에 자주 뜻을 두어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伯)[4]을 내려다 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홍익인간[弘益人間])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며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太白山) 꼭대기 신단수(神壇樹) 밑에 내려와 여기를 신시(神市)라고 하니 이로부터 환웅천왕이라 불렀다.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 명(命), 병(病), 형(刑), 선(善), 악(惡) 등 무릇 인간의 3백 60여 가지의 일을 주관하고 인간세상에 살며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1. 환인-환웅-단군의 족보가 그대로 나와 있는데 왜곡하면 안됩니다.(무당이라고 하고, 제주?라고 하는 마음대로 제천장의 이름을 정하고 있습니다. 천황은 무당이라고 했다?) 2. 중생구제-목적 3. 지역 : 삼위태백 4. 홍익인간 : 종(마루) 5. 천부인 3개 : 홍익인간의 3인 - 일신강충, 성통광명, 재세이화 6. 무리 (부족연합이 아니고 단일 선인) : 3천 7. 어디에: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 8. 이를 뭐라 했나? : 신시 9. 칭호는 : 환웅천왕 10. 중앙정치기구는? 삼사제도, 풍백, 운사, 우사 11. 중앙행정기구는: 오가, 오제제도, 곡, 명, 병, 형, 선악 12. 교화하여 다스림하는 원리는? 360여가지 일을 주관, 현재의 참전계경, (기자조선본이라고 하나, 위서의 일부분으로 매김함)

경주 대학교에 이강식 교수가 환국 배달 조선의 조직사에 대해서 평생을 공부하고 출판한『한국 고대조직사』와『신교 조직사』가 있다.

즉 송호정의 소설은 역사책이 아니고, 삼국유사의 기본내용도 부정하면서 만들어낸 소설로, 전혀 그 진위가 없는 내용으로 고조선 혹은 배달신화의 내용도 아닙니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6일 (목) 05:00 (KST)

창피해서 고개를 숙인다.[편집]

쑥쓰럽고 미안한 마음을 금할 길 없습니다. 민족앞에 어찌 이런 일이... 아무리 당나라에서 귀화한 집안이라도 그래도 동이족인데.. 木씨? 재팬의 소가.. 모르겟다. 진정 모르겠다. 이병도-이기백.. 그리고 이들..

"고조선이 최초로 기록에 등장하는 시기는 기원전 7세기로, 이 무렵의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보이는 《관자(管子)》에 제나라와 교역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춘추전국시대에 성립된 기록인 《산해경(山海經)》에는 조선이 연나라의 동쪽, 바다의 북쪽에 있다고 나타난다. 이들 기록에 나타난 조선은 대체로 특정한 국가를 지칭한다기보다는 요동지방에서 한반도 서북지방에 걸쳐 성장한 여러 지역 집단을 통칭한 것으로 본다. 당시 이 일대에는 비파형 동검(琵琶形銅劍)문화를 공동기반으로 하는 여러 지역 집단이 존재하였는데, 이들이 큰 세력으로 통합되면서 고조선이라는 고대 국가가 성립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단군신화는 고조선을 통합한 집단의 시조설화(始祖說話)로 형성되었던 것이다."

<산해경>에 대해서는 이미 "신화책도 제대로 읽어야"라고 적었다. 치우천왕에 관한 이야기다. 이 단군신화는 시조설화가 아닌, 국조신화고, 시조라 함은 [[[환인]]]천황을 말한다. 고도 전부 틀렸다..

사람이 낮술을 먹으면, 지 애미, 애비도 못 알아본다고 한다. 우리야 동이족, 하나사람이니까 그렇지만 당나라에서 귀화한 자손은 21세기가 되어도 아닌가 보다. 역으로 당나라 이씨가 좋다고 중국에서 왔다고 하는 사람들. 그런데, 이 세상에서 동이족이 뿌리야라고 되어 있는 동이족에 대한 사서들은 한결같이 부정을 받는다. 왜 일까? 특히 신라-고려-조선으로 내려온 신라는 반신라로 [흉노]의 자손이다라고. ㅎㅎㅎ 한다. 흉노가 진한조선 태자라고 금일제가 삼한조선의 단군의 태자위치인 진한조선의 금신이라고 해도 비웃는다. 소호금천 은나라의 銀의 의미가 알타이 (金)의 뿌리(根)이다고 해도 비웃는다. 왜냐 각설이타령 때문이다. 주나라에게 은나라를 빼앗긴 소호금천의 각간들이 그냥 밥빌어먹을 수 없어서 타령한조 하고 밥을 빌어먹었다. 주개씨끼들 하면서 말이다. 주의 역성혁명은 기명유신(維新)으로 유명한 말이다.

여기 그런 사람이 또 있다. 아니 단군신화가 신화고 날조되었으니, 신화라고 했는데도, 무엇을 위해 저리도 지 조상을 중국으로 송나라 송씨도 아닌데, 저 야단을 떠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무엇을 위해 천황을 위해? 누구도 [덴노]라고 하지 우리나라 시조할아버지 함자를 밟지 않는다. 어디서 굴러왔는지는 몰라도, 참으로 대단한 배짱과 철면피다. 이는 자신의 조상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만이 할 소리다. 즉 한국사람이 아닌 경우에 할 소리를 단하나 이 나라 최고학부의 박사학위자라 어깨에 별이라도 딴 줄 아나보다. 한문실력도 없고, 독해능력도 없으면서 말이다. 어디서 왜국의 사관을 가져다가 대국의 역사앞에 콧물을 빠뜨린단 말인가? 다른 학설의 틀림, 년도의 차이 등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으나, 우리나라 제1의 근본은 조상께 효도하고 공경을 다함이 인간의 도로 인륜인데, 모르면 조용히 있으면 되는데, 뭐가 그리 제노포비아가 좋은지 조상의 무덤을 건드리고 있다. 기원후 3-4세기 훈족(알타이족, 금씨)의 까마귀부대가 죽음을 무릎쓰고 서진했다. 죽으러 간 것이다. 게르만이 알타이 조상의 무덤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조상을 욕했기 때문에 태양의 까마귀(신조, 神鳥, Phoenix)들이 날라갔다. 로마제국을 붕괴시켜 버렸다. 그리고 그곳에 산다. 그게 匈(알타이)족이다. 무슨 한반도에서 오골오골 산 반도민족이라고 저리 침을 튕길까?

역사학자 송호정(宋鎬晸.41) 한국교원대 교수는 최근 펴낸 단행본 「단군, 만들어진 신화」(산처럼刊)

"치우천황황제(黃帝)의 자손이라고 자부한 중국인들의 조상으로 황제, 염제와 같이 민족 시조로서 상징적 인식을 한 것이지 실재했다고 믿는 사람은 적어도 학자들 사이에는 없다"면서, 그럼에도 이런 치우를 한민족의 조상으로 간주 하는 것은 "신화와 전설을 실제 역사로 믿고 싶은 이들의 환상이요, 집착일 뿐이다" 라고 비판한다.

그러니 우리 하나민족의 조상이라고 한 것은 "신화와 전설을 실제 역사로 믿고 싶은 이들의 환상이요, 집착일 뿐이다. 그럼 송나라 화하족 조상이란 소리를 하고 싶은 것인가? 왜 이런 지 조상도 모르면 조용히 있으면 될 것을 신조야 나오너라, 내롱하는지? 나라를 부정하고, 민족을 부정하며, 조상을 부정하는 3부정을 전부 저지르고 이 한국의 최고의 지성이라고?

2002년 한국 응원단 "붉은 악마"의 마스코트가 치우천황이었기 때문...

1. 치우천왕이 맞지 천황은 환인님 칭호다. 서열은 제나 왕, 황보다 천왕이 더 높다. 천황-천왕-천군은 제천장으로 이 세상 오직 한 분, 하늘로 부터 印을 받는 사람이다. 황제라고 쓴 적이 없다. 후례자식이나, 황이면서 제라고 한다. 우리는 환웅 - 그리고 - 천왕이라고 나누어 썼지, 황제라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삼황오제, 옥황상제의 말을 만든 민족이라고 한다. 천왕은 하늘 천신이고, 황제, 염제는 일개 오제의 제후다. 이러한 명칭의 순위를 알아야 신화세계의 지배층의 서열을 알 수 있다.

치우천왕은 위서라고 하는 [환단고기]에 제14대 천왕, 좌우지천왕이라고 하나 부족명이 치우로 치우천왕이라고 한다. 불의 신으로 잘 알려진 우리조상이다. [티우]라고 하는 발음으로 전하는 티우, 티우즈 테이, 불의 신이라고 한다. 사람들의 7요일이 정말 서양태양력이라고 하지만 아니다. 화투도 화목, 화전이라고 해서 불의 싸움, 즉 해의 싸움으로 태양력 24절기의 역서를 그림으로 전한 치우천왕시 국사 자부선인의 작품이다. 산해경의 내용도 자부선인이 적은 것이고...

먼저 우리는 우리주위에 치우천왕은 이야기가 없나 봐야한다.

치우에 대한 기록은 《사기》, 《국어》, 《산해경》, 《상서》 『 태백일사』,『 규원사화』 등 국내 사서만이 아니라,『 사기』「 천관서」,『사기집해』 등 중국 기록에도 나타난다.

우리민속

독섬 (뚝섬)

이 ‘뚝섬’은 본래 치우의 사당을 모셨기 때문에 ‘치우기(旗)’를 뜻하는 ‘둑’(纛, 쇠꼬리나 꿩꽁지로 꾸민 깃발 ‘둑’. 치우기 ‘둑’자라고도 함)자를 써서 ‘둑도’(纛島), 곧 ‘둑섬’이라고 일컫던 것인데, 경음화되어 ‘뚝섬’이 된 것이다.

치우기 (좌독기) 조선군 최고사령관 조선왕의 인식기. 군기.. (조선의 군사)

이 오리지날 태극기는 삼극으로 좌로 도는 천, 하늘을 표상하는 좌로 도는 좌독기로 하늘, 천왕(천독)기입니다. 자부선인의 칠정운천도의 작품으로 우리나라 태극기의 원형이기도 합니다.

독은 우리말로 '왕"이고 천왕이 됩니다. 산해경의 "朝鮮天毒"은 바로 천왕이 계신 곳으로 우리가 신시(神市) 천신독불로 천왕, 천독이 바로 천왕계신곳입니다. 毒은 독(Poison) 독이 아니고 主母, 이 땅의 아비로 우두머리로 이 땅의 주인, 땅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둘의 땅의 도는 바로 화지도로 불 火의 신입니다. 그럼 간단하게 하나가 더 나옵니다. 독아비, 도깨비입니다. 우리 할아버지 도깨비, 치우천왕을 말합니다.

도깨비: 대표적으로 알려진 도깨비 이야기로는 도깨비 대왕이라고 하는 귀왕의 본래 전신 치우(戰神 蚩尤), 이야기로 사람을 홀린다는 허깨비, 사람과 친해지려 했다가 피를 보고 도망쳤다는 도깨비, 빈쌀독에 쌀을 채워넣거나 삼년이 지나도록 돈을 갚는다는 도깨비, 바늘을 무서워하는 도깨비 등이 있다.

그래서 독도는 뚝섬과 같이 獨島가 아닌 도깨비섬으로 毒島라고 한 이유입니다. 이 도깨비, 치우천왕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도깨비 이야기로, 귀신이라고 하나, 불방망이 들고 다니는 친한 할아버지고 우리말로 다른 족이 들어노는 것을 막아줍니다. 한편으로 고마운 할아버지입니다. 달마굴 소림사 뒤편의 굴은 원래 치우굴로 치우천왕 되시기 전 득도하신 동굴로 그 곳이 소림사가 된 이유도 전쟁의 신인 치우가 그곳에서 도를 닦아 득도하고 내려와 이 땅을 다스렸기 때문입니다.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은 잠시 절에 있는 삼성각은 단순하게 "환인-환웅-단군"으로 아는데, 아니고,삼성은 "환인-환웅-천왕(치우)"로 단군 왕검이 대체되기 전까지 천왕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단군 왕검이 들어간 후에는 삼성각에서 별도로 치우사당을 모셔서 좌독기로 솟대를 잡아, 모신 것이 신교(무당)이 했던 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례의식을 일제는 샤먼이라고 하여, 모조리 없애는 개말살을 시켜놓았습니다. 이유는요? 모르겠네요, 누가 하듯이 자신의 조상도 모르겠다고 하라고 했는지..

치우천왕의 이야기가 나오는 규원사화, 환단고기를 죽자고 싫어하는 사람들.. 고려팔관잡기 등에는 전부 치우천왕이 삼황의 한 분으로 우리조상이라고 다 나왔있었습니다. 역사책이란 역사책을 잃어버린 우리 후손의 문제입니다.

고로, 지 조상도 모르는 자가 무슨 단군신화라고 그렇게 했으면 되었지, 그 위 배달신화까지.. 그만 하세요. 그건 아니지요. 역사서를 부정하고 나라를 부정하는 것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조상을 부정하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까닭이겠지. 좋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고조선 초기 내용도 삭제가 되어야 합니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6일 (목) 10:31 (KST)

재팬서기는 위서다.[편집]

1. 《일본서기》에 따르면 일본의 천황은 기원전 660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대의 역사학자들 가운데 그 누구도 그것을 사실이라 인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일본에 나라다운 나라가 들어선 것은 2세기 무렵에 고분시대가 되어서부터이며, 그 이전의 기록은 그저 신화로 치부할 뿐입니다

아무리 외쳐도, [재팬서기]는 위서입니다. 재팬의 덴노는 덴노일 뿐입니다. 일왕, 왜왕이라고 하는 보통 학자와는 달리, 하느님, 우리조상, 환인 천황의 칭호를 훔쳐쓴 사람을 [덴노]라고 하지 않고, 꼬박꼬박 [천황]님이라고 하고 이를 덴노라고 하면 제노포비아라고 일본인을 공포의 대상으로 하라? 왜요? 제노포비아는 [외국인 공포증]으로 왜 재패니즈를 보면 무서워해야하는지요? 전혀 이해하기 힘든 말을 합니다.

이것을 인정하라고 한 이병도와 금서룡의 이론은 단 1가지입니다. 뭐 재팬이 기원전 660년에 건국했다고 하든 뭐든 상관이 없어요. 안그래요. 조기다가 나라다운 나라가 들어선 것은 2세기 무렵, 고분시대가 되어서부터이다. 아니지요, 나라다운 나라는 도요토미 히테오시 전국통일이지, 그전에는 덴노가 힘이 없고, 덴노가 다시 일어난 것도, 메이지 유신이지요. 그걸 모르면서 꼬박꼬박 [재팬서기]노 진본데스네. 소 데스까 하라고요? 왜요?

설명했지만 일본이라는 한자는 귀하가 생각하는 그러한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직접 쓰지 못하는 태양을 도문을 모르는 어린 아이들이나 해, 해 그러지, 하나의 나를 감히 천왕을 자기라고 하면, 역적으로 죽겠지요. 그래서 아니다.

일본서기(日本書紀) 조작

천황의 칭호는 하나민족의 시조할아버지 칭으로 백(하양)의 하늘왕을 천국의 할아버지로 우리는 할아버지 다정하게 부를 수 있지만, 남은 그렇게 헌신짝처럼 쓸 용어가 아닙니다. 환웅천왕도 천황을 쓰지 않은 동방예의지국이니까요.

고조선 초기 내용들: 기원전 4세기 중반에는 연나라와 관련된 사료인 《전국책》에서 조선이 연나라 동쪽의 유력한 세력으로 언급된다. 적어도 이 무렵에 고조선이 고대 국가로 성장하여 전국 시대(戰國時代) 중국의 국가와 대등한 외교 관계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4세기 말에는 연나라와 분쟁이 일어나 고조선 측이 선제 공격을 꾀하였다가 중단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중국은 종주국인 주나라가 쇠퇴하고 각 지의 제후들이 왕을 칭하고 있었는데 연나라가 기원전 323년에 왕을 칭하자 고조선의 군주도 ‘왕’이라 칭했다고 한다.

기원전 4세기 말에서 3세기 초, 연나라가 세력을 확대하면서 고조선은 연나라의 공격을 받아 광대한 영토를 상실하고 세력이 크게 위축되었다. 사료적 가치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을 받았던 위략에 따르면 연나라의 장수 진개(秦開)의 침입으로 고조선은 2,000여 리의 땅을 빼앗겼으며, 만번한(滿潘汗)을 경계로 하게 되었고, 연나라가 고조선으로부터 빼앗은 지역에는 요동군(遼東郡)이 설치되었고 장성도 쌓았다고 한다. 이때 고조선이 상실하였다는 지역은 랴오닝 성 일대로 보이며, 일반적으로 대한민국의 역사학계에서는 이 패배로 고조선이 요동 지방을 상실하였다고 본다.

기원전 221년에 진(秦)이 중국을 통일하고 기원전 214년에 만리장성을 건설하자 고조선의 부왕(否王)은 진의 침입을 두려워하여 복속하였다. 그러나 직접 조회(朝會)하는 것은 거부한 것으로 보아 표면적인 복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왕의 뒤를 이은 준왕(準王) 시기 진나라에 내란이 발생하고 뒤이어 유방과 항우가 전쟁을 벌이는 등 중국이 혼란에 빠지자 중국 유민들이 대거 고조선으로 이주하였다. 기원전 202년에 중국을 통일한 전한은 연·진 시기의 장성이 멀어서 지키기 어려웠기 때문에 이를 포기하고 요동의 옛 장성을 수리하고 패수(浿水)를 경계로 삼았다고 한다.

- 전부, 연나라 고조선 군주(???) 천군은 황제위급이에요. 착각도 자유지만, 그 당시는 고조선이 없었다면서, 무슨 고씨조선 군주가 있는지, 고씨조선이 누구조선인지도 말도 안하고 마치 속국의 '왕'이라고 칭했다. 그런 사실 없슴. 고조선이 없었다. 대부여시절이다. 대부여 단제라고 한다.

진개가 들어와 고조선이라네. 대한민국 역사학계(???) 왜나라 역사학계가 아니고? 이 패배로 고조선(???) 날조된 소설이라고 하면서 계속 고조선이라고 하는 이유는? 번한조선?이면 말이 되지만.. 앞에 무슨 조선이라고 해야지 알지, 고씨조선이라고 했다가 발조선, 슈신조선인지, 어딘지 알지를 못하니, 왔다갔다.. 요동상실했다고 본다. 했으면 했지, 본다는 무슨. 기원전 202년에. 표면적으로 복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뭐가 보여요? 언제 보고 왔나요? 복속이면 그 제도가 다 다를텐데.. 무슨 본다, 보인다. 보여라, 복속될 것이다 무당 굿하는 소리는 본다. 보인다. 보여라 보일 것이다. 그리하여, 임나일본부가 보일 것이다... 무슨 최면걸어서.. 뭐하려나.. 이것을 패배라고 해요. 복속, 속국의 왕 (단군의 전부 단제라고 했지, 왕은 삼한조선의 칸(干)의 위주로 했어요. 그래서 한문을 알라고 한 것이지요. 군은 천군, 그 좋아하는 텡구르, 텡그리. 뒤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늘 천이 중요하다고 해도 못 알아들어요.

임나일본부가 다음나오는데 이건 고대사가 아니겠지요. 손 대지 마세요. 재팬서기는 위조된 날조서류종이니까.... 주류의 의견입니다.

저 고조선 초기 3개 항목은 고조선 내용이 아니지요. 기원전 2,333년 - 기원전 425년의 1,908년간의 이야기가 아니므로, [고조선]항목에서 삭제해야 합니다. 다른 넣을 것이 없으면 사회구조, 정치사회 등의 일반 단군건국신화의 역사적 의의를 넣던가, 아니면 치우천왕이야기 등 하도 많아서 한마디로 할 수 없겠지요.

송호정의 "신화의 단군조선사", "단군,만들어진 신화" 에서 분명 신화로 고조선사는 기원전 2,333년-기원전 425년 가공의 사실이라고 했고, 그 안에, 선진문물의 위만조선이 들어와서 개화시켜주고, 그나마 한 무제에 도륙당해 한의 휘하에서 식민지가 되었다.고 했는데, 그 때부터 식민지였다. 그럼 우리는 뭐냐? 빵떡이라는 이야기. 이야기가 이렇게 되면, 일제가 또 정한론이라고 일어서면 제노포비아, 제노포비아. 덴노 덴노.. 오오오. 하라고 하는 것은 민족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런 역사면 때려치우자. 뭐하라 이 고생할까.. 그냥 돈 벌러 나가서 놀자.. 놀자.. 고마와 같습니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6일 (목) 11:47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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