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몽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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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한글박물관에 전시된 훈몽자회

훈몽자회》(訓蒙字會)는 조선 시대의 역관이자 중국어학의 대가인 최세진1527년(중종 22)에 어린학동들을 위해 쓴 한자 학습서이다.[1] 당시 사용된 한자학습서인 《천자문》 등은 고사와 추상적인 내용이 많아 어린이들이 배우기 어려운점이 있었는데, 이 책은 생활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물에 관한 글자들을 수록함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였다.[2] 수록된 한자는 모두 3,360자인데 그 뜻과 음을 훈민정음을 사용해서 달아 놓았기 때문에 훈민정음(한글) 보급에도 일조를 했으며 오늘날 이르러서는 훈민정음 고어(古語)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출판에 사용되었던 목판은 현재 부산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있으며 부산광역시의 유형문화재 제166호로 지정되어 있다.[3]

훈민정음을 만들던 당시에 한글 낱자들을 무엇이라 불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 책에는 ‘기역, 니은, ……’등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로 인해 최세진이 한글낱자의 이름을 지은 당사자로 추정은 되나 정확한것은 알 수 없으며, 다만 《훈몽자회》는 한글 낱자의 이름이 수록된 최초의 문헌이다.[4][5] 이 책에서는 훈민정음을 '반절(反切)'이라 칭하였고,[6] ' (여린 히읗)'을 실제 소리에서 없애고, 받침은 'ㄱ·ㄴ·ㄷ·ㄹ·ㅁ·ㅂ·ㅅ·ㅇ'의 8자로 한정했다.

이 책은 초종성 통용팔자(初終聲通用八字)로 '(기역/其役)·(니은/尼隱)·(디귿/池末)·(리을/梨乙)·(미음/眉音)·(비읍/非邑)·(시옷/時衣)·(ᅌᅵ으ᇰ/異凝)'을 들었고, 초성독용팔자(初聲獨用八字)로는 '(키/箕)·(티/治)·(피/皮)·(지/之)·(치/齒)·(/而)·(이/伊)·(히/屎)'로 규정하였다.

한자는 뜻과 관계없이 소리만 빌려서 해당 자모의 첫소리와 끝소리를 나타내도록 하였고, 알맞은 한자음이 없는 경우에는 새김으로 읽도록 하였다. (예를 들어 시옷에 해당하는 한자 衣는 원본에서 동그라미를 쳐서 뜻인 '옷'으로 읽게 하였고, 末도 귿(끝)으로 읽게 하였다)

판본[편집]

참고 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네이버 지식백과] 새로운 시작, 훈몽자회 (우리말의 수수께끼, 2002. 4. 20., 박영준, 시정곤, 정주리, 최경봉)...역관이자 한학자였던 최세진이 《훈몽자회(訓蒙字會)》라는 책자를 편찬한다. 이 책은 15세기 이후에 나온 책으로는 최초로 훈민정음에 대한 내용을 싣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2. [네이버 지식백과] 훈몽자회 [訓蒙字會] (두산백과)
  3. 부산광역시 고시 제2015-422호, 《부산광역시 지정문화재 및 문화재자료 지정 고시》, 부산광역시장, 부산시보 제1705호, 2면, 2015-11-18
  4. [네이버 지식백과] 한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정음을 만들던 당시에 한글 낱 글자들을 무엇이라 불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지금 부르는 ‘기역, 니은, ……’등의 이름이 문헌에 처음 나타난 것은 16세기에 나온 최세진의 ≪훈몽자회≫에서이다.
  5. [네이버 지식백과] 훈몽자회 [訓蒙字會]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언문자모’ 때문에 최세진은 한글 자모의 이름을 지은 작명부(作名父)로 간주되기도 하였지만, 여덟 글자만 받침으로 쓸 수 있다는 규정을 만든 장본인으로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언문자모’는 그 당시에 널리 행하여진 관습을 최세진이 적어놓은 데 지나지 않는다.
  6. [네이버 지식백과] 한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최세진(崔世珍)의 ≪훈몽자회 訓蒙字會≫에서는 ‘반절(反切)’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는데, 중국 음운학의 반절법에서 초·중·종성을 따로 분리하는 방법을 쓰기 때문에, 정음이 초·중·종성을 분리하여 표기하는 점에서 이와 비슷하다고 보아 붙인 이름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