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낙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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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군 위치 관련[편집]

락랑군의 위치가 요동이었다는 것은 일설에 의한 것 아닙니까? NPOV로 보여지는데요. --Jaipur13 2006년 12월 25일 (화) 23:55 (KST)

문서 병합 요청[편집]

현재 낙랑군 문서의 내용은 극히 적고, 오히려 낙랑의 내용에서 낙랑군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낙랑'과 '낙랑군'의 구별이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두 문서를 따로 분리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 생각합니다. jtm71 2007년 4월 21일 (토) 12:30 (KST)

토론:낙랑에 의견을 모으고 있습니다.Q0v9z8 (토론) 2009년 8월 13일 (목) 17:18 (KST)

최리에 관해[편집]

고조선 멸망 후, 한나라로부터 봉작을 받은 최(最)라는 인물이 최리의 조상이라는 설이 있어 추가합니다.

낙랑군 문서의 위치 논란에 대하여[편집]

낙랑군의 위치에 대한 논란은, 엄밀하게 말해서 학계 차원에서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북한 학계 및 윤내현 교수의 주장을 제외하면 없습니다. 낙랑군의 위치에 대한 재야사학계의 주장은 요동설, 요서설, 하북설 등등 너무나도 다양하며, 대부분은 언급할 가치도 없는 주장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주장을 가리켜 "논란"이라 표현하는 것은 학문에 대한 모독입니다. 학계가 주장하는 낙랑군의 위치는 '낙랑토성·수백에 달하는 고분과 봉니·그외 엄청나게 많은 양이 발굴된 고고학 유물"에 의한 것입니다. 이러한 고고학 유물을 무시한 채 요동설, 요서설, 심지어는 난하 서쪽에 있다는 하북설을 주장하는 것은 인공위성이 지구를 돌고 있는 현대 과학에 맞서서 천동설을 주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나마 북한 학계 및 윤내현 교수의 요서설은 정식으로 논문도 제출되고 학계 차원에서도 검토는 받고 있으나, 요동설이나 하북설과 같은 것은 아예 검토 자체가 필요없는 소설입니다.

'인하 대학교 고고학 연구교수로 있는 문성재 박사의 2016년 6월 저서 한사군은 중국에 있었다" 에서 평양에서 발견되는 낙랑 고분 및 유물에 대한 설명을 보면

   평양지역 고분은 나무곽무덤   --> 귀틀무덤    --> 벽돌무덤 형태이나, 
   중국             나무곽무덤  --> 공심전 무덤 --> 벽돌무덤으로   형태가 상이하다,
   벽돌묘 역시 남사리 29호분과 청해상손가채 을구 흉노묘와 형태가 같은 북방계 묘임을 확인 
   둘째 기명전 발견 위치에 대해 분석 결과 중국내에서도 중국 남무지방에서 발견 되는것으로 평양지역 발굴은 교류에 의한 것이거나 조작일 일제에 의한 조작 
   가능성이 있음
   세째 장무이묘에서 출토된 전돌 명문의 경우 관향 + 성명, 성씨 + 존칭 , 존칭 +직함 + 성명에 전혀 맞지 않는 형태로 확실한 조작의 흔적이 나옴
        안악 3호 동수묘의 묵서가 영화 13년으로 틀려 있음
   네째 정백동 고분에서 출토된 죽간 논어는 진품으로 보이나 낙랑호구부에서 별자가 나온바 이는 100~200여년전 부터 사용된 일본어 이며, 논어에 나왔던 
        이체자가 없어 조작의 흔적이 나타남

   따라서 현재 평양에 보이는 진짜 중꾹계 유뮬은 경제적 교류에 의한 유물이라고 보는게 타당함
  
  또한 2016년 심백강 박사의 사고전서에 따른 한사군 위치, 단재 싵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등을 포괄적으로 문헌, 유물, 지리, 문화 등 인문학적 
  자료를 종합 분석 중립적 위치에서 본건을 논해야 하며, 2018년 새로운 논문과 인하대 복기대 교수가 수집 분석중은 논문의 결과등 새로운 학설과 
  논문을 포함 UPdate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 됩니다. 

이와 같은 주장들이 마치 "두 가지 주장이 양립하고 있는 것"처럼 서술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서술입니다. 위키백과:중립적 시각위키백과:독자연구 금지에 의거하면, 여러가지 주장이 있다고 해도 그 출처의 신뢰성에 따라 서술에 대한 차등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전문적인 학자가 자신의 학문적 생명을 걸고 발표하고 정립한 학술적인 주장·사실들과, 비전문가 및 재야학자가 사실상 자비로 출판한 예외적인 주장을 동급으로 취급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요동설, 요서설과 같은 예외적인 주장을 학술적인 주장과 양립하고 있는 것처럼 서술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주장들은 전문적인 주장에 대한 반대 차원으로 서술하였으며, 또한 전문적인 학자 차원에서 예외적인 주장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는 내용도 함께 서술하였습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16일 (월) 15:23 (KST)

"낙랑군의 위치에 대한 재야사학계의 주장은 요동설, 요서설, 하북설 등등 너무나도 다양하며, 대부분은 언급할 가치도 없는 주장에 불과합니다."는 귀하의 일방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그리고 위키백과는 "대한민국만의 관점" 즉, KPOV는 허용되지 않고 위키백과는 특정 국가의 입장만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낙랑군 요동설을 주장하는 북한학계의 입장도 낙랑군 문서의 어느 부분에서나 공평하고 동등하게 서술될 수 있습니다. 보다 자세한 것은 사용자토론:Aubelumiere#낙랑군 문서에서 북한의 입장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귀하의 잘못된 입장의 글이 향후 편집자분들에게 부적절한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해서 따로 답변을 남깁니다.--Lhrdrth (토론) 2014년 11월 15일 (토) 20:35 (KST)

3개월 준보호[편집]

계속되는 편집 분쟁으로 3개월 준보호를 걸어놓았습니다. 서로 토론을 통하여 자신의 편집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문서 편집에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알밤(토론) 2010년 2월 26일 (금) 23:42 (KST)

인터넷 검색 결과는 근거가 아닙니다.[편집]

위키백과에서 요구하는 근거는 누구나 살펴볼 수 있도록 출판된 서적이나 논문 혹은 공신력있는 기관이 게시한 인터넷 게시물 정도에 한합니다. 인터넷 검색 결과는 전혀 근거가 아니며, 최소한 국사학계, 혹은 그에 준하는 공신력과 권위를 갖춘 사람/단체의 공식 발표만이 근거가 됩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비롯한 각종 백과사전과, 국사학계에서 발표된 수많은 논문, 저서들은 아이피 사용자 175.112.9.221(토론) 님의 편집과 전혀 다른, 원래 문서와 같은 내용입니다. 177.112.9.221 님의 근거는 이러한 공신력있는 의견을 뒤집을 만큼 충분한 근거가 아닙니다.

175.112.9.221 님의 편집을 관철하고 싶으시다면, 정확한 근거를 주석을 통해 첨부하여 주십시오. 또한, 그러한 의견은 대립되는 여러 의견 가운데 하나로 취급되어야지, 전의 의견을 무조건 삭제하고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대체해서는 안됩니다. 그러한 대체가 가능하려면, 최소한 정식으로 국사학계에서 발표된 다수의 논문과 그에 대한 국사학계 전반의 동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정확한 근거를 통해 밝혀주십시오. 그렇지 않은 채 무조건적인 삭제와 내용 대체는 분명한 반달행위입니다. 자중하여 주십시오.--Xakyntos (토론) 2010년 7월 12일 (월) 20:56 (KST)


아무런 근거없는 일방적 위치 비정 삭제 요청[편집]

조선현이 평양직할시, 점제현이 평안도 온천군, 대방현이 황해북도 사리원, 열구현이 황해남도 은률군, 화려현이 함경남도 금야군, 부조현이 함경남도 함주군이라는 것은 식민사학계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으므로 삭제해야만 합니다. 도대체 아무런 근거가 없는 일방적 위치 비정을 사실인양 올려놓은 이유가 뭡니까?--Gfsieoor (토론) 2010년 7월 16일 (금) 12:01 (KST)

* 낙랑군 조선현의 위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조선현 내용 중 “조선현은 평양의 대동강 남쪽 낙랑토성지로 비정된다. 이 지역은 일제침략기에 일본인들의 손에 의해 많은 고분들이 조사되어 토기·목기·칠기 등을 비롯한 중국 계통 부장품들이 발견되었다. 특히 이곳 무덤에서 봉니(封泥)와 함께 발견된 명문(銘文)들은 낙랑군의 치소가 있었던 곳이라는 논증을 강하게 뒷받침한다.
* 점제현의 위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점제현신사비 내용 중 “② 점제현의 위치 : 낙랑군의 여러 현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가 없었는데 이 비의 발견으로 점제현이 지금의 용강임이 밝혀졌다.
* 대방현의 위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대방군 내용 중 “현재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 동남 문정면에 있는 속칭 당 토성(唐土城)은 그 유지(遺址)로 추정되고 있다.
보시다시피 백과사전은 분명한 근거와 자료를 들어 해당 지역이 낙랑군의 지경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오영찬 선생을 비롯한 많은 학자들의 논문에서도 큰 차이가 없이 비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증거가 아니라는 것입니까? 근거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증명하십시오. 그러면 삭제하실 수 있습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7월 16일 (금) 13:17 (KST)
"조선현은 평양의 대동강 남쪽 낙랑토성지로 비정된다", "현재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 동남 문정면에 있는 속칭 당 토성(唐土城)은 그 유지(遺址)로 추정되고 있다"는 식으로 확실한 근거없이 그냥 비정한 것이고 추정아닙니까?
이런 식이면 백과 사전에서 추정한 것은 전부 사실로 인정되는 겁니까?
그리고 오영찬 외 누가 그런 주장을 했는지 확실히 밝혀주시고, 다시한번 거듭 말씀드리지만 추정, 비정말고 낙랑군현들이 저 지역에 있었다는 확실한 물증이나 근거를 가져오세요.
님은 님의 주장에 대한 물증과 근거를 가져오시겠습니까? --가람 (담소 - 편지 - ?) 2010년 7월 16일 (금) 14:52 (KST)
이 무슨 어이없는 말씀이십니까? 저런 근거없는 위치 비정의 근거를 가져오라고하니 근거를 못댈망정 이런 식으로 주제를 회피합니까? 이건 올바른 토론의 자세가 아닙니다. 저는 낙랑군현의 위치 비정이 아무런 근거가 없으므로 삭제를 요청하는 것입니다.--Gfsieoor (토론) 2010년 7월 16일 (금) 14:59 (KST)
그리고 점제현 신사비는 조작된 것으로 확실히 밝혀졌습니다.단독북한 '점제현신사비'는 가짜다!
그리고 나머지 현은 아예 비정이나 추정한 내용조차 없네요?
도대체 이게 무슨 근거입니까?
일방적 비정, 추정말고 확실한 근거를 대세요. 아니면 관리자에게 삭제 요청들어갑니다.--Gfsieoor (토론) 2010년 7월 16일 (금) 14:41 (KST)
님이 식민사학계의 일방적인 주장이라 말씀하신 것부터 이미 백:중립성에 어긋나네요. 그러한 상황에서 관리자 분들이 삭제 요청을 응해주실까요? --가람 (담소 - 편지 - ?) 2010년 7월 16일 (금) 14:49 (KST)
식민 사학계말고는 아무도 낙랑군현 위치를 저렇게 지정하지 않으므로 올린 글로서 사실 적시이므로 중립성 위반이 아닙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일방적 위치 추정말고 확실한 물증과 문헌적 근거로서 입증하세요. --Gfsieoor (토론) 2010년 7월 16일 (금) 14:59 (KST)
'식민사학계'라는 발언 자체가 문제라는 겁니다. 여기서 님을 '재야사학주의자'라고 칭하지, '환Q(빠)'라고는 칭하지 않습니다. 현재, 대한민국 내에서 '정통사학계'라고 지칭되는 분야를 그렇게 낮춰서야 되겠습니까? --가람 (담소 - 편지 - ?) 2010년 7월 16일 (금) 15:01 (KST)

귀하께서는 근거 없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만, 많은 고분들이 조사되어 토기·목기·칠기 등을 비롯한 중국 계통 부장품들이 발견되었다. 특히 이곳 무덤에서 봉니(封泥)와 함께 발견된 명문(銘文)들은 낙랑군의 치소가 있었던 곳이라는 논증을 강하게 뒷받침한다.라는 문구는 명백한 근거입니다. 물론 점제현신사비도 근거지요. 적어도 귀하께서 말씀하시는 소위 식민사학은 근거라는 것을 분명하게 대고 있건만, 귀하는 아무런 근거도 대지 않으시는군요. 그런 식으로 세상이 바뀌리라 생각하신다면, 세상을 너무 쉽게 보시는 겁니다.

더불어, 점제현신사비 조작도 하나의 가설일 뿐,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아닙니다. 겨우 신문기사 하나를 가지고 백과사전을 수정해야 한다는 말씀이시라면, 역시나 세상을 너무 쉽게 보신다고 답해드릴 수밖에 없군요. 오영찬 선생이 쓴 《낙랑군연구》라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곳에 인용된 수많은 논문들은 모두 엄정한 추론과 근거를 통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근거 하나 대지 않는 귀하의 주장과는 격이 다릅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7월 16일 (금) 15:02 (KST)

식민 사학계말고는 아무도 낙랑군현 위치를 저렇게 지정하지 않으므로 올린 글로서 사실 적시이므로 중립성 위반이 아닙니다.

이런 발언 자체가 이미 중립성 위반입니다. 더불어, 정통국사학계는 분명한 근거와 추론을 제시하고 있으며, 그것은 해당 문서에 주석을 통해 모두 밝혀져 있습니다. 또한, 정통국사학계가 아닌 아마추어 또는 자칭 재야사학위키백과의 중립성 원칙에서도 2차적인 주장으로 분류됩니다. 위키백과:중립적 시각의 이 문구를 참조하세요.--Xakyntos (토론) 2010년 7월 16일 (금) 15:07 (KST)

문서의 구성이나 설명에 있어서 소수 의견다수보다 두드러져서는 안 됩니다. 사회적 저명성의 기준에 따른 적절한 비중 하에 관점들이 다루어져야 합니다.

추가합니다. 대방현의 비정에도 이렇게 분명한 근거가 있군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당토성 중 일부--Xakyntos (토론) 2010년 7월 16일 (금) 15:40 (KST)

특히, 이 성터에서 약 1㎞ 정도 거리에 있는 태봉리제1호고분(胎封里第一號古墳)에서 발견된 묘전(墓塼)의 ‘使君帶方太守張撫夷(사군대방태수장무이)’라는 명문으로 미루어보아, 이 무덤은 대방군 태수의 무덤이고, 연대는 288년경으로 보이며, 이로써 이 곳이 대방군의 치소(治所)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여러가지 유물과 유적에 의해서 이것은 바로 대방군의 중심적인 성터로 추측된다.

Xakyntos 귀하께, 저는 귀하와 말장난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분명히 위키백과 낙랑군 문서에 "조선현이 평양직할시, 점제현이 평안도 온천군, 대방현이 황해북도 사리원, 열구현이 황해남도 은률군, 누방현이 평안남도 성천군,화려현이 함경남도 금야군, 부조현이 함경남도 함주군"이라고 명기되어 있는데 이것이 아무런 유물학적, 문헌적인 확정적 증거가 없으므로 삭제해야된다는 당연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귀하는 그런 증거는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비정된다", "추정되고 있다", "추측된다"라는 일부 식민 사학계(귀하는 식민 사학계를 소위 "정통국사학계"라고 주장하지만 그건 귀하의 일방적인 주장일뿐입니다.)의 일방적인 추정만 증거랍시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합니다. 저는 "조선현이 평양직할시, 점제현이 평안도 온천군, 대방현이 황해북도 사리원, 열구현이 황해남도 은률군, 누방현이 평안남도 성천군,화려현이 함경남도 금야군, 부조현이 함경남도 함주군"이라는 유물학적, 문헌적인 확정적 증거를 요구합니다. 물론 각각의 현에 대해서 개별적으로 말입니다.(그러니까 예전 서라벌이 지금의 경주라함은 확실한 근거가 있으므로 아무도 아니라고 부정못합니다.) 이를 제시하지 못할 경우에는 각현이 그 지역이라는 위치 비정은 아무런 유물학적, 문헌적인 확정적 증거가 없는바 관리자에게 해당 부분 삭제를 요청할 것입니다.(지금 당장 하고싶은데 하는 방법을 잘몰라서 찾고 있습니다.)--Gfsieoor (토론) 2010년 7월 17일 (토) 12:29 (KST)

낙랑군치 조선현이 평양 일대라는 사실은 확정적인 근거가 있어서 귀하와 같은 일부 음모론자를 제외하면 아무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평양 일대에서 출토된 유물의 숫자는 천문학적일 정도이며, 그 가운데는 낙랑군, 조선현, 심지어 왕망 때 몇 년 정도밖에 사용하지 않았던 군명인 낙선군까지, 수많은 명문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확정적인 근거는 현재에도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 속에 수백 점 이상이 남아 있으며, 국사학계는 이러한 고고유물들을 토대로 낙랑군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사학계에서 추정된다라 말하는 것은, 진화론에서 추정된다라고 말하는 것과 조금의 차이도 없는 예의상 하는 수사입니다. 현대 과학에서 확정적이다라고 말하는 것조차도, 그 안에는 반대 근거가 나온다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역사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귀하가 낙랑군이 평양에 없다는 증거를 확실하게 가져온다면, 이 추정은 바뀝니다. 그러나 단지 추정된다라는 말이 틀렸다는 말이 되지는 않습니다. 역사학에서 말하는 추정수많은 증거와 토론을 통해 내려진 결론입니다. 심지어 경주가 서라벌이라는 것 역시 추정입니다. 경주가 서라벌이 아니라는 증거가 발견된다면 언제든 바뀔 수 있으니까요. 물론 이것은 역사학뿐만 아니라 수많은 과학도 그렇습니다.
틀렸다는 증거를 귀하께서 분명하게 제시하십시오. 그러면 바꿀 수 있습니다. 단지 추정된다는 것은 확실하다는 말이 아니므로 틀렸다 혹은 삭제하라고 주장하시는 것은 위키백과의 어떤 관리자도 용인하지 않습니다. 귀하의 중립성과 위키백과에서 말하는 중립성, 귀하의 확정적 증거와 위키백과에서 요구하는 증거는 전혀 다릅니다. 이런 투정을 부리실 시간이 있으시면 오영찬 선생이 쓴 《낙랑군연구》라도 한 번 읽어보십시오.--Xakyntos (토론) 2010년 7월 17일 (토) 14:13 (KST)
추신 : 백과사전도 위키백과에서 요구하는 증거 요건을 대부분 충족합니다. 그러므로, 열구현, 누방현, 화려현, 부조현 등은 백과사전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7월 17일 (토) 14:27 (KST)
하하하 확실한 근거도 못대면서 말장난이나 하시는 귀하께서 저를 이제는 드디어 음모론자로 몰고 가시는군요. 논리에서 안되니 이제 인신공격을 하시나요?
평양 일대에서 출토된 유물의 숫자는 천문학적일 정도이라고 했는데 그게 죄다 한나라 낙랑군의 것이라는 증거도 없고, 추정된다라는 말이 확정적인 수사라는 말도 처음 들어봅니다.
그리고 뭐 백과사전을 찾아보라고 해서 네이버에서 검색해보니 "그 위치는 황해도 은율군(殷栗郡)으로 추정되며", "위치는 지금의 평안남도 성천(成川) ·양덕(陽德) 지방으로 추정된다." 죄다 말미에 추정이 붙는 이런 식이군요.
귀하는 서라벌이 추정이라고 했는데 찾아보니 "경주4(慶州)’의 옛 이름."이라고 추정이라는 말은 그 어디에도 없고 확정적으로 나오네요. 더이상 식민사학계의 근거도 없는 일방적인 추정만 증거랍시고 제시하지마세요.
다시한번 말씀드립니다.
저는 "조선현이 평양직할시, 점제현이 평안도 온천군, 대방현이 황해북도 사리원, 열구현이 황해남도 은률군, 누방현이 평안남도 성천군,화려현이 함경남도 금야군, 부조현이 함경남도 함주군"이라는 유물학적, 문헌적인 확정적 증거를 요구합니다. 물론 각각의 현에 대해서 개별적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근거를 못대니 오히려 저보고 아니라는 증거를 제시하라고 하는데 이건 뭐 태양이 지구를 돈다는 천동설자에게 틀렸다고 하니 도리어 아니라는 증거를 제시하라는 식이군요.
하여간 좋습니다. 뭐 그런 식으로 나오시니 증거를 제시하죠.
증거 제시라고 할 게 뭐가 있습니까?
조선현이 평양직할시, 점제현이 평안도 온천군, 대방현이 황해북도 사리원, 열구현이 황해남도 은률군, 누방현이 평안남도 성천군,화려현이 함경남도 금야군, 부조현이 함경남도 함주군"이라는 유물학적, 문헌적인 확정적 증거를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귀하는 저의 요구에 그 어떠한 확정적인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으므로 방법을 찾는대로 해당 문구의 삭제를 관리자에게 요청할 것입니다.
더불어 이런 식의 말장난으로 일관할 것이면 더이상 의견달지마시기를 바랍니다. 상대하기가 피곤합니다.--Gfsieoor (토론) 2010년 7월 18일 (일) 00:32 (KST)
귀하야말로 말장난 하지 마십시오. 증거는 이미 수도없이 보여드렸습니다. 귀하야말로 낙랑군이 평안도 일대에 없다는 확정적인 근거를 대십시오. 그것을 대지 않는 한 그 어떤 관리자도 귀하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문서의 삭제 요구는 여기서 하면 되니 한 번 열심히 해보십시오. 위키백과:문서 관리 요청--Xakyntos (토론) 2010년 7월 18일 (일) 08:14 (KST)
귀하가 도대체 무슨 증거를 수없이 보여줬다는 건지 정말로 어이가 없다 못해서 기가 다 막히는군요. 귀하가 대방현이 황해북도 사리원, 누방현이 평안남도 성천군,화려현이 함경남도 금야군, 부조현이 함경남도 함주군이라는 증거를 단 하나라도 제시한 적이 있습니까? 예에서 3개를 뺀 것은 그나마 그 지역은 비록 일방적인 추정이라도 뭔가 제시하기는 해서 뺐는데 위 지역은 그나마 추정된 자료조차도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이런 아무런 근거없는 일방적 위치 비정이 올라오는 것은 위키백과의 공신력에도 치명적인 손상을 줍니다. 하여간 며칠 더 두고보고 확정적 증거 제시가 없으면 삭제 요구를 하겠습니다.(그런데 보호문서 편집 요청에서 틀을 달으라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네.)--Gfsieoor (토론) 2010년 7월 18일 (일) 11:46 (KST)
* 대방현/군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당토성 항목
특히, 이 성터에서 약 1㎞ 정도 거리에 있는 태봉리제1호고분(胎封里第一號古墳)에서 발견된 묘전(墓塼)의 ‘使君帶方太守張撫夷(사군대방태수장무이)’라는 명문으로 미루어보아, 이 무덤은 대방군 태수의 무덤이고, 연대는 288년경으로 보이며, 이로써 이 곳이 대방군의 치소(治所)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여러가지 유물과 유적에 의해서 이것은 바로 대방군의 중심적인 성터로 추측된다.
* 누방현, 화려현, 부조현 => 두산백과사전 EnCyber 누방현, 화려현, 부조현 항목을 참조하십시오. 백과사전 찾는 법은 아시겠죠? 만족하십니까?--Xakyntos (토론) 2010년 7월 18일 (일) 14:27 (KST)
덧붙여, 이런 아무런 근거없는 일방적 위치 비정이라는 사실부터 귀하가 증명하십시오. 낙랑, 대방, 점제현이라고 글씨까지 써 있는 유물들이 근거가 아니면 무엇이 근거입니까? 귀하는 그러한 유물들이 증거가 아닌 이유부터 대십시오. 귀하가 근거가 아니라고 하면 천문학적인 가치를 가진 고고유물이 갑자기 쓰레기가 되는 것입니까? 귀하의 말에는 그런 권위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귀하의 억지스러운 주장보다는 국사학계의 엄정한 추론과 고고학 유물들이 100만배 더 믿음직합니다만. 아니, 그보다 먼저 아래 위키백과의 지침을 좀 읽어보시지요. 귀하의 주장이 다수, 주류 의견입니까? 아니면 국사학계의 공식 발표가 다수, 주류 의견입니까? 이미 이것만으로도 귀하의 말씀은 위키백과에서 기각될 일입니다만.--Xakyntos (토론) 2010년 7월 18일 (일) 14:35 (KST)
문서의 구성이나 설명에 있어서 소수 의견다수보다 두드러져서는 안 됩니다. 사회적 저명성의 기준에 따른 적절한 비중 하에 관점들이 다루어져야 합니다.
Gfsieoor님, 위키백과에서는 증명된 사실을 출처로써 글이 쓰여진답니다. 추측은 확인이 가능하지 않답니다. --가람 (토론 · ) 2010년 7월 18일 (일) 14:45 (KST)

1[편집]

Gfsieoor 사용자에게 드릴 말씀을 최종적으로 정리하겠습니다.

  • 위키백과는 다음과 같은 것을 신뢰성 있는 출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출처는 전문가 검토(peer review)를 거친 학술지대학 출판부에서 출간된 도서, 대학교 수준의 교과서, 평판 있는 출판사에서 출간된 잡지, 정기간행물, 도서입니다.
낙랑군 문서의 모든 내용은 기본적으로 국편위에서 펴낸 한국사, 낙랑군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국사학계의 박사학위 소지자들의 논문 및 저서, 앞의 것들을 요약, 정리하여 구성된 권위 있는 백과사전 등을 출처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낙랑군 문서 중 지리 고증에 대한 내용은 오영찬 선생이 쓴 《낙랑군연구》를 저본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므로, 위키백과에서 요구하고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완벽하게 충족합니다. 귀하의 요구에 대해서 제가 드릴 말씀은 딱 하나입니다.
《낙랑군연구》를 읽어보십시오. 그곳에 필요한 모든 근거와 출처가 다 제시되어 있습니다.
귀하가 혼자서 아무런 근거없는 일방적 위치 비정이라 말씀하셔도, 그것은 전혀 신뢰성있는 발언이 아닙니다. 귀하가 모른다고 해서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거든요. 귀하 혼자서 근거가 없다고 말하신다고 해서 있는 근거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귀하께서 저 책을 읽어보시고, 근거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십시오. 귀하의 발언의 신뢰성과 저 책의 신뢰성은 지구와 태양의 거리만큼이나 차이가 납니다. 귀하의 “일방적인 근거 부정”은 위키백과에서 어떤 영향력도 없습니다.
  • 위키백과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내용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귀하가 낙랑군이 한반도에 없었다는 주장을 반영하고 싶으시다면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제시하십시오. 귀하는 출처를 제시하라는 adidas 님의 요구에 대해서 겨우 이런 답변을 하셨습니다.
일단 "한사군( 漢四郡 )은 서만주( 西滿洲 ) 지역에 있었다 "를 검색해보세요.
인터넷 검색 결과는 신뢰할 수 있는 출처도 아닐뿐더러, 귀하가 출처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낙랑군이 요서지방에 있었다는 주장은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 의해 반박당하고 있습니다. (송호정 교수의 《단군, 만들어진 신화》 참조) 소위 재야사학자라 불리는 이들의 주장은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 해당하지도 않습니다. 위키백과는 낙랑군 요서설과 같은 기존 통설에 완전히 반하는 주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출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단한 주장에는 대단한 출처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해당 주장을 하고 있는 일부 서적이나 웹사이트는 대단한 출처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아니, 그 전에 신뢰할만한 출처도 아닙니다. 대부분 전문가라 부르기 어려운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졌으며, 많은 부분에서 사실을 잘못 해석·인용하고 있다는 것이 주류 학계에 의해 밝혀지고 있으니까요. 낙랑군 요서설과 같은 주장이 제시하는 출처는 대부분 수상한 출처에 해당합니다. 낙랑군 요서설과 같은 주장은 주류 학계에 의해서 사료의 왜곡 인용이나 자료의 취사선택 등의 행위를 했다는 사실이 여러차례 밝혀진 바 있습니다. 즉, 아래의 수상한 출처에 해당합니다.
수상한 출처는, 사실 확인을 철저히 하지 않는다는 평이 있거나 편집자의 감독이 없는 출처입니다.
이상과 같이, 귀하의 주장은 신뢰할 수 있는 출처가 없다는 것이 저의 판단이며, 아마도 대다수 위키백과 사용자 및 관리자들의 판단도 저와 같을 것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귀하께 드릴 2가지 대답입니다.

《낙랑군연구》를 읽어보시고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를 통해 증명하십시오. 그러면 귀하의 주장대로 삭제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없으시다면 귀하의 주장은 기각됩니다.
귀하의 주장에 대해 위키백과에서 요구하는 신뢰할 수 있는 출처, 즉 “전문가 검토(peer review)를 거친 학술지, 대학 출판부에서 출간된 도서, 대학교 수준의 교과서, 평판 있는 출판사에서 출간된 잡지, 정기간행물, 도서”를 제시하십시오. 그러면 귀하의 주장이 정설로 실릴 수 있습니다. 할 수 없으시다면 귀하의 주장은 무용합니다.

이상입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7월 18일 (일) 21:09 (KST)

야스페르츠님 난독증이 심하십니까? 또 무슨 똑같은 내용을 이리도 길게 적으셨습니까? 글만 길게 적으면 만사가 다 통하는 줄 아십니까? 제 글을 그토록 이해못하십니까? 그러니까 귀하께서 그토록 주장하는 소위 "전문가 검토(peer review)를 거친 학술지, 대학 출판부에서 출간된 도서, 대학교 수준의 교과서, 평판 있는 출판사에서 출간된 잡지, 정기간행물, 도서"에서 자료를 가져와서 대방현이 황해북도 사리원, 누방현이 평안남도 성천군,화려현이 함경남도 금야군, 부조현이 함경남도 함주군이라는 확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시라는 겁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예에서 3개를 뺀 것은 그나마 그 지역은 비록 일방적인 추정이라도 뭔가 제시하기는 해서 뺐는데 위 지역은 그나마 추정된 자료조차도 가져오지 못해서 계속 요구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나머지 그 추정도 일방적인 근거없는 주장이고요.

저는 아무리 그 어떤 문서, 자료를 봐도 대방현이 황해북도 사리원, 누방현이 평안남도 성천군,화려현이 함경남도 금야군, 부조현이 함경남도 함주군이라는 확정적 근거가 없기에 이런 근거없는 공상 소설보다 못한 추리 소설에나 등장할 법한 문구들은 당연히 삭제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님이 그토록 공신력있다고 주장하는 그 자료들에서 근거를 제시하세요.그러면 제가 승복할 것 아닙니까?

즉, 귀하가 그토록 공신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그 오영찬이 쓴 "낙랑군연구"에서라도 누방현이 평안남도 성천군,화려현이 함경남도 금야군, 부조현이 함경남도 함주군이라는 확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시라는 겁니다. 근거 제시도 못하면서 왜이렇게 터무니없는 투정을 부리십니까?

귀하가 백과사전을 보래서 봤는데 서라벌같은 경우는 "경주의 옛이름"이라고 확정적 서술을 했는데 그 낙랑군현들은 전부 "추정된다", "짐작된다"라고 하는 식 아닙니까? 확정적 근거가 있으면 이런 "추정", "짐작"같은 모호한 단어를 썼겠습니까? 제발 상식적으로 판단하십시오. 도대체 이런 류의 글을 몇번 적어야합니까? 참 피곤합니다.

이글을 보고도 또 제 의견을 이해못해서 또 말장난을 한다면 이제부터는 대응하지않겠습니다. 하여간 며칠 더 두고보고 확정적 증거 제시가 없으면 삭제 요구를 하겠습니다. 관리자분도 충분히 공감을 하시리라 봅니다.--Gfsieoor (토론) 2010년 7월 19일 (월) 00:42 (KST)

일단, 귀하께서 말씀하신 이러이러한 근거를 통해 이곳으로 추정된다는 표현으로 바꾸자는 의견에는 저도 이견은 없습니다. 귀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저도 아무런 이견 없이 동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귀하는 식민사학계라는 명백하게 비하하는 호칭을 사용하며 그들만 그렇게 주장한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다. 아래 케골 님께도 답변했다시피, 식민사학계라는 표현은 자칭 재야사학자들 및 그들의 선동에 넘어간 일부 사람들만 사용하는 비칭입니다. 위키백과는 그러한 비중립적인 표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귀하께는 지극히 당연한 호칭일지 몰라도, 위키백과에서는 아닙니다. 입장을 바꿔서 제가 귀하, 혹은 자칭 재야사학자들에게 환빠, 혹은 사기꾼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그것을 위키백과에 싣자고 한다면 귀하나 위키백과의 사용자들이 그 말을 인정할까요? 최소한 호칭에 대한 중립성이라도 서로 인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토론 페이지는 몰라도 위키백과 본문에는 가급적 중립적인 호칭을 사용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귀하도 최소한 그런 노력은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두번째, 저는 분명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오영찬 선생의 《낙랑군연구》를 읽어보십시오. 벌써 몇 번째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곳에 모두 제시되어 있습니다. 귀하가 찾아보지 않고 내놓으라 주장한다고 해서 그것에 응해줄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가까운 도서관이라도 가보시기 바랍니다. 귀하의 억지를 상대하느라 제가 도서관까지 가서 그 책을 다시 찾아 근거를 제시해드릴 의무는 없습니다. 귀하가 어떤 문서, 자료를 보셨는지 몰라도, 낙랑군에 대한 전문가 검토(peer review)를 거친 학술지에는 해당 비정들이 모두 있습니다.
또한, 귀하께서 착각하고 계신 것이 하나 있는데, 위키백과는 신뢰할 수 있는 출처만 요구할 뿐, 그 출처의 추론 과정을 모두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두산백과사전 EnCyber 화려현 항목에 써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출처 요건을 모두 만족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를 통해 증명하십시오.
신뢰할 수 있는 출처인 두산백과사전 EnCyver에 화려현이 영흥군에 있다고 했다는 것으로도 이미 위키백과의 요구 조건을 모두 만족합니다. 귀하가 근거가 없다고 아무리 말해도 위키백과의 등재 조건(여기서는 삭제 조건이라 해야 할까요?)에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귀하가 두산백과사전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 한 그렇습니다. 혹은, 화려현을 다른 곳에 비정한 견해를 충분한 출처를 들어 제시할 경우 그것을 이설로서 병기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귀하는 어떠한 이설도 가져온 바 없습니다. 하다못해 영흥군에 없었다는 증거도 가져온 바 없습니다. 없다는 증거도 가져오시지 못하면서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인정하라는 말씀이신지요?
다시 정리하죠. 이러이러한 근거를 통해 이곳으로 추정하고 있다라고 수정하자는 말씀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없다는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시면서 추정에 불과하니 삭제해야 한다는 말씀은 말도 안됩니다. 없다는 근거를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통해 제시하시거나, 혹은 다른 곳으로 비정한 견해를 제시하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삭제 요구는 인정될 수 없습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7월 19일 (월) 09:31 (KST)
위키백과에 기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몇 가진 의견이 있어서 피력합니다. 비정이란 그 말 자체에서 근거가 부족하지만 가설로서 제기한다라는 뜻입니다. 신뢰받는 학자나 출판에 의해서 비정되는 내용이 알려졌다면 그 출처를 이용해서 백과사전을 기술할 수 있습니다. 단, 객관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으며, 가설로서 비정되었다는 표현을 사용해야 할 것 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관리자에게 최종적으로 판단을 요청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관리자는 각 토론의 중재자로 사실 여부를 가려 편집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토론은 바로 여기의 편집자들이 하는 것인데, 합당한 논리를 제시하여 설득을 시키고 대립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타협을 하는 것이 위키백과가 권장하는 방식입니다. --케골 2010년 7월 19일 (월) 00:51 (KST)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해당 낙랑군 문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확정적 근거가 없이 전부 추정된다라고 하는 사안에 있어서 마치 확정된 사실인양 "대방현이 황해북도 사리원, 누방현이 평안남도 성천군,화려현이 함경남도 금야군, 부조현이 함경남도 함주군" 이렇게 단정적으로 서술하여서 이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않고 해당 문서를 읽는 사용자들이 이것이 마치 아무런 이의가 없는 완전히 확정된 사실인양 오도할 가능성이 매우 크므로 해당 문구들을 삭제하거나 백번 양보하더라도 "대방현은 식민사학계 일부에서는 황해북도 사리원으로 추정한다" 이런 식으로 서술하는 것이 맞으므로 이의를 제기한 것입니다.
제 주장에 전혀 틀린 점이 없다고 생각됩니다.--Gfsieoor (토론) 2010년 7월 19일 (월) 01:09 (KST)
"대방현은 식민사학계 일부에서는 황해북도 사리원으로 추정한다"라는 기술에 찬성합니다. 또한 추정의 주체를 더 정확하게 기술하는 것이 독자의 판단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주장하는 학자의 실명을 거론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케골 2010년 7월 19일 (월) 01:11 (KST)
케골 님께 한말씀 올립니다. 대방현을 어떤 지역으로 비정한다 혹은 추정한다는 표현은 분명 사리에 합당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식민사학계 일부라 표현한다는 것은 명명백백한 비중립적인 표현입니다. 현재 주류 국사학계를 식민사학계라 비하하여 칭하는 것은 일각에서 유사역사학이라 부르는 자칭 재야사학계와, 그들의 선동에 넘어간 일부 사람들에 한합니다.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에 찬성한다는 말씀은 매우 문제있는 발언이 아닐런지요.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7월 19일 (월) 09:11 (KST)

이데올로기로 위키백과 편집에 대한 의견을 재단하시면 곤란합니다. 식민사학계라는 말에 더 주목을 해 보라는 말씀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제가 이를 사학계라고 오독을 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 문장에서 주류 사학계를 식민 사학계로 단정한 바 없고, 식민 사학을 했던 사람들이 실제 존재했다는 주장이 많기 때문에 전적으로 잘못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 좋은 방법으로 누가 이 비정을 제기하였는지 서술하자는 주장을 더 강하게 제기합니다. --케골 2010년 7월 19일 (월) 09:20 (KST)

이데올로기로 의견을 제시한 것이 아닙니다. 식민사학계라는 표현은 명백한 비칭이며, 그러한 주장이 많다고 해도 그 주장들 대부분은 신뢰할 수 있는 출처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한 주장을 펼치는 분들은 자칭 재야사학자들 뿐이며, 자칭 재야사학자들은 신뢰할 수 있는 출처라고 보기 어렵죠. 물론 그러한 주장에 동의하고 있는 일반인들은 아무리 많아도 신뢰할 수 있는 출처가 아닙니다.
또한, 그러한 내용은 식민사학 문서나 국사학 문서 같은 곳을 통해 제시되어야 할 내용이지, 이렇게 개별 문서에서 주류학계를 지칭할 때마다 제시될 내용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Xakyntos (토론) 2010년 7월 19일 (월) 09:39 (KST)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능화 : 민족사 왜곡과 식민사학 확립의 주도자 (이이화)'라는 책의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식민사학이라 불리는 사학의 학파가 실제로 존재하며 이이화 같은 널리 알려진 역사가도 이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이화 같은 분을 주류 사학자가 아니라고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식민사학이라는 지칭이 개별문서에서 사용되어서는 안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일반인들은 아무리 많아도 신뢰할 만한 출처가 아니라는 말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일반인들의 견해는 언론이나 출판을 통하여 알려지게 마련이고 이것들은 신뢰받는 출처임이 확실하고 이것을 이용하여 위키백과를 편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류사학을 식민사학이라고 비하하는 기술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 주류사학을 대신하는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면 국사학의 한 학파로 정확하게 지칭되기를 희망합니다. --케골 2010년 7월 19일 (월) 10:40 (KST)
식민사학이라는 존재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식민사학은 일제강점기 당시 분명하게 존재했고, 1970년대 이기백 선생에 의해 극복되기 전까지 국사학계에 멍에로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식민사학 문서에도 제시되어 있는 일반적인 사실입니다. 또한 이이화 선생과 같은 여러 학자들이 소위 식민사학의 잔재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도 위와 같은 맥락입니다. 이러이러한 부분은 식민사학의 잔재이니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죠. 적어도 소양있는 학자·전문가는 식민사학이라는 용어를 특정한 주장이 가진 문제점으로 언급하지, 역사학계의 특정 분야가 식민사학계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위의 Gfsieoor 사용자는 식민사학계라는 용어를 주류 국사학계를 직접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칭 재야사학자라고 하는 일부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용법이며, 분명한 비칭입니다. 말 그대로 이데올로기적인 호칭이죠. 케골 님도 이러한 의미로 사용되는 것에는 옳지 않다고 동의하시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자칭 재야사학자 및 일부 일반인들이 주류 국사학계는 식민사학계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케골 님의 말씀대로 이데올로기적인 것으로 이곳 문서에서 이야기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식민사학 문서나 역사학, 한국사 문서 등에서 이야기되고 정의되어야 하는 문제죠. 낙랑군 문서에서 식민사학계라는 호칭은 사용되어서도 안될뿐더러, 일각에서 주류 국사학계는 식민사학계이다라고 주장한다는 내용이 낙랑군 문서와 같은 개별 문서에서 언급되어야 할 어떠한 이유도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칭 재야사학자들이 식민사학계의 왜곡이라 주장하는 문서마다 같은 설명이 붙어야 합니다. 완전히 비효율적일뿐더러, 중립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7월 19일 (월) 11:05 (KST)

2[편집]

Xakyntos 사용자는 그 어떠한 확정적인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자꾸 말장난식으로 했던 말 또하고 또하고 하면서 제 의견에 해악질을 그만 하십시오. 이기백이라는 자부터가 대표적인 식민사학자라고 일반적으로 지칭되는 자인데(아니라면 내가 얼마든지 명예훼손 등의 처벌을 감수하지요) 뭐가 그 사람으로부터 식민사학이 극복됐다는 겁니까? 이기백 식민사학자로 검색한 결과 링크

제발 좀 논리에 맞고 상식에 맞는 주장을 하십시오. 다시한번 입이 아프지만 말합니다. 귀하가 주장하는 그 공신력이 있다는 문서나 자료를 통해서 "대방현이 황해북도 사리원, 누방현이 평안남도 성천군,화려현이 함경남도 금야군, 부조현이 함경남도 함주군"이라는 확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세요. 저는 그 어떤 문서나 자료를 봐도 그런 증거들을 찾을 수 없기에 이의를 제기한 것입니다. 그러지못하고 다시 계속 말장난으로 논점을 흐린다면 그건 더이상 귀 사용자는 토론자로서의 자세를 포기한 것이며 저도 일절 대응하지않고 곧 해당 문구의 삭제나 수정을 요청할 것입니다.--Gfsieoor (토론) 2010년 7월 19일 (월) 12:25 (KST)

저도 다시 한 번,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 백과사전은 위키백과에서 말하는 공신력있는 자료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귀하가 백과사전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는 한, 귀하의 삭제 주장은 받아들여질 수 없습니다.
  • 이러이러한 근거를 통해 이곳으로 추정되고 있다는 형태로 수정하자는 말씀이라면 저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곳에 식민사학자 운운 하는 것은 용인할 수 없습니다. 귀하의 상식으로 이기백 선생이 식민사학자인지는 몰라도, 국사학계의 공신력있는 자료 및 중립적인 표현으로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귀하의 상식은 위키백과가 말하는 공신력있는 증거가 아닙니다. 물론, 인터넷 검색결과도 마찬가지입니다.
  • 명예훼손 운운은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위키백과에서 법적조치 운운하는 말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귀하의 현재 행동은 위키백과 차단 사유에 해당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위키백과:차단 정책#차단의 사유 참조)--Xakyntos (토론) 2010년 7월 19일 (월) 13:13 (KST)
정리하자면, 1) 위키백과에 올릴 수 있는 내용은 확인 가능한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2) 일반적으로 개인 블로그는 위키백과의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 포함되지 않는다.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 여기에서 출발하자면, 반론이 제기된 이상 논란이 되는 내용은 (위키백과에 남아있기 위해서는) 적절한 출처를 제시해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식민사학계'의 존재 여부도 마찬가지이고요. jtm71 (토론) 2010년 7월 19일 (월) 15:41 (KST)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낙랑군 위치가 사학계에서 통용되는 학설이 아니라고 주장하시는 분이 그 주장의 출처 및 자료를 가지고 와서 토론을 하는게 옳을까요? 정론이 맞다고 주장하시는 분이 가지고 와야할까요? 지극히 상식적인 행동을 하셨으면 합니다. 지금 Gfsieoor님의 주장은 지적설계론을 믿는 신자분이 진화론에 오류가 포함되어 있으니 진화론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꼴입니다. 이 위키백과는 일종의 백과사전이죠. 낙랑군문서를 보시면 알겠지만 제야사학자들의 주장도 짧게나마 소개되었습니다. 실제로 그런 주장이 있었기 때문이죠. 글을 작성하거나 수정할 경우,특히 역사관련 글들은 그를 뒷바침하는 사료가 필요한데 지금 Gfsieoor님의 주장은 제가 보기에도 일종의 말장난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런건 토론도 아닙니다. Gfsieoor님이 기존의 낙랑군 위치설을 부정하고 새로운 학설을 제시하시려면 최소한 학사수준의 논문이라도 제시하셨으면 좋겠습니다.All of One (토론) 2010년 7월 19일 (월) 15:51 (KST)

아이고 정말 이런 류의 반론에 대해서는 이제 지쳐서 저도 여기 딱 한번만 더하겠습니다.
정말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저는 앵무새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어떠한 문서나 자료를 샅샅이 뒤져봐도 그 어디에서도 "대방현이 황해북도 사리원, 누방현이 평안남도 성천군,화려현이 함경남도 금야군, 부조현이 함경남도 함주군"이라는 확정적인 증거를 보지못했는데 낙랑군 문서에서 이것이 마치 확정된 사실인양 표현해놓았으므로 이의 삭제나 수정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All of One님, 님께서 그러면 "추정된다" "짐작된다"라는 식민사학계의 일방적 추정말고 확실히 저 낙랑군현들이 바로 그 지역이라는 근거를 제시하십시오.
그러면 저는 일체 이의를 제기하지않고 승복할 것입니다. 정말 이번이 이런 류의 반박(사실은 말장난인)에 대한 마지막 제 의견입니다.
제가 귀하의 이런 류의 반박을 왜 말장난이라고 하느냐하면 말이죠. 누군가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일방적인 추정으로 "대한민국 부산은 낙랑군 조선현이다."라고 주장하길래 "그 어떠한 문서나 자료를 샅샅이 뒤져봐도 그 어디에서도 그런 근거는 없다. 그러니 이는 틀린말이다."라고 지극히 당연한 주장을 하니까 "그러면 대한민국 부산은 낙랑군 조선현이 아니라는 근거를 제시하라" 바로 이런 식입니다.
아니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 바로 그 근거인데 도대체 저보고 뭘 제시하라는 겁니까? 이런 예를 들어서 얘기를 해도 이해를 못하시면 정말 할말없습니다.
다시한번 정말 마지막으로 말씀드립니다.
"대방현이 황해북도 사리원, 누방현이 평안남도 성천군,화려현이 함경남도 금야군, 부조현이 함경남도 함주군"이라는 확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십시오. 그러지 못하고 자꾸 이런류의 말장난을 하시면 이건 토론자라고 부를 수도 없으며 당연히 저도 이런 식의 말장난에는 절대로 더이상 응하지않을 것입니다.--Gfsieoor (토론) 2010년 7월 19일 (월) 23:19 (KST)
동의합니다. 표에 있는 현재위치와 그 아래 문단에서 비정된 내용의 기술에 출처가 없습니다. 출처를 제시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주류사학계의 주장이라도 출처는 제시되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이것이 통설인지 아닌지도 판단하기 힘듭니다. 단 확정적인지 아닌지는 주관이 개입할 수 있습니다. 이런 요구사항은 만족시키기 힘듭니다. 신뢰할만한 출처를 제시하라는 요구가 합당합니다. --케골 2010년 7월 19일 (월) 23:21 (KST)
Gfsieoor 님이야말로 말장난 하지 마십시오.
  • 백과사전함경남도 영흥군에 화려현이 있다라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백과사전은 위키백과가 요구하는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 해당하며, 백과사전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키백과의 등재 요건이 됩니다. 귀하가 백과사전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 한, 저것만으로도 등재 요건은 모두 충족합니다. 귀하가 증거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애초에 상관도 없습니다.
  • 저는 분명, 오영찬 선생의 《낙랑군연구》에 각 지리비정에 대한 근거를 찾을 수 있다고 분명하게 제시해 드렸습니다. 그것을 찾아보시는 것은 귀하가 할 일입니다. 본인이 아무리 많은 문서, 자료를 뒤져보고 없다고 말해봤자 무용합니다. 《낙랑군연구》에 있다니까요. 근거가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제시해 드렸는데, 그것은 보지도 않고 다른 곳을 찾아봤는데 없다고 말씀하시면 뭘 어쩌라는 말씀이신지요. 출처와 근거를 제시해 드렸으면, 그것을 찾아보실 일입니다. 왜 제가 제시한 근거는 무시하시는 것입니까? 귀하가 찾아본 문서, 자료만 근거입니까? 제가 제시한 책은 근거가 아닙니까? 분명하게 해명하십시오. 귀하가 찾아본 문서, 자료가 무엇인지 밝혀 보십시오. 어떤 자료를 찾아보셨길래 정통 국사학계에서 일반적으로 비정되어 백과사전에까지 등재된 사실이 없다는 겁니까? 귀하가 찾아본 문서, 자료가 뭔지 저도 한 번 확인해봐야겠습니다. 뭔지 말씀해 보십시오.
  • 계속 확정적인 근거 운운하시는데, 저는 이미 이러이러한 근거에 의해 이곳으로 추정된다는 형태로 수정하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이미 끝난 사안을 가지고 계속 꺼내는 저의는 무엇입니까?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통해 이렇게 추정된다라고 수정하면 끝입니다. 수정론에 동의한지 이미 오래인데 무조건적인 삭제를 주장하시는 저의가 참으로 가상합니다. 안티를 주장한다고 해서 귀하의 말씀이 주류 국사학계보다 권위있는 말이 되지는 않습니다. 억지는 그만부리십시오.--Xakyntos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0:27 (KST)

개입.. 그리고 주의[편집]

Xakyntos님이 주장하시는 바나, Gfsieoor님이 주장하시는 바는 전혀 일치될 수 없는 견해이기 때문에, 두 논점을 절충해서 서술하는게 바람직하다고 보입니다. 즉, 한국 주류 사학계에서는 이러이러하게 보고 있다(이게 전체 논점의 80% 이상 차지해야겠죠.). 하지만 사학계 일부에서는 저러저러하게 보고 있다(이건 역시 소수 의견이기 때문에 비중이 낮아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주제인 주의. 식민 사학계 등의 발언을 말씀하시면서 상대방의 주장을 매도하는 Gfsieoor님께 주의를 촉구합니다. 밑에 사용자:비나리님께서 말씀하셨다시피, 식민 사학계라는 발언은 토론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그건 이 문서가 아닌, 사학계 인물 개개인과 관련하여 비판할 때 인용될 수 있는 말이지, 여기서는 그 발언을 하는 것은 논점에 어긋나는 말이자, 상대방의 논리를 고의적으로 비방하려는 목적을 내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다시 한번 그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주장을 계속한다면, 토론 방해 및 공격 등으로 보고 어떠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Erio-h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0:48 (KST)

논점의 절충이라는 부분은 동의합니다만 일부 문제가 있습니다.
  • 첫째, Gfsieoor 사용자는 제가 제시한 내용이 근거가 없기 때문에 삭제해야 한다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제가 절충안으로서 이렇게 추정된다라고 수정하면 된다고 계속 말하고 있으나 다분히 의도적으로 이 말은 무시한 채 삭제 주장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수정에 대해서도 언급은 있습니다만, 전체적인 논지는 삭제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이점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 둘째, Gfsieoor 사용자는 기본적으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해당 지리비정에 대해서 어떠한 견해도 제시한 바 없습니다. 초기 비로그인으로 한 수정은 명백한 반달행위에 해당하며, 근거제시 요구에도 인터넷 검색 결과를 제시할 정도로 비정상적인 편집으로 일관했습니다. Gfsieoor 사용자가 제시한 지리비정은 개별 현까지는 아예 이르지도 않으며, 낙랑군이라는 전체 행정구역의 위치에 대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견해는 이미 낙랑군#위치를 통해 분명하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즉, Gfsieoor 사용자는 현존하는 개별 현의 지명 비정에 대해서 오로지 삭제 요구만 하고 있을 뿐, 다른 위치로 비정한 것은 전혀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서 논점의 절충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나마 가능한 절충은 예를 들자면평양직할시 락랑구역 토성동 낙랑토성으로 추정(출처제시) 정도로 될 뿐이죠.
이상과 같은 문제가 존재한다는 점은 명확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1:03 (KST)

낙랑군 위치 비정에 대한 주류 사학계의 의견[편집]

저는 위키백과 편집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점이 있다면 지적해주십시오.

현재 야기되고 있는 요구사항은 아래와 같네요.

"대방현이 황해북도 사리원, 누방현이 평안남도 성천군,화려현이 함경남도 금야군, 부조현이 함경남도 함주군"이라는 확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십시오"

역사학에서 "확정적인 증거"와 같은 말은 웬만해서는 성립하기 힘들지요.

위 사항에 대한 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대방 - 황해도 사리원 비정 : 이병도, <한국고대사연구> 제2편 한사군문제의 연구 제1장 진번군고 125~126쪽, 박영사, 1976 (사실상 위치 증명은 이 논문을 통째로 ,읽는 것이 마땅합니다.)

누방 - 평남 성천군 비정 : 이병도, <한국고대사연구> 제2편 한사군문제의 연구 제2장 낙랑군고 149~150쪽, 박영사, 1976

화려 - 함남 금야군 비정 : : 이병도, <한국고대사연구> 제2편 한사군문제의 연구 제4장 임둔군고 207~208쪽, 박영사, 1976 (금야군은 본래 영흥군이어서 해당 논문에는 영흥을 중심으로 비정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부조 - 함남 함주군 비정 : 이병도, <한국고대사연구> 제2편 한사군문제의 연구 제4장 임둔군고 206~207쪽, 박영사, 1976 (이병도는 여기서 부조현을 함흥평야 방면에서 구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함흥평야 일대는 함주군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에 상통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주류사학계의 통설이며 그 출처입니다. 출처에 대한 근거는 제시는 되었는 바, 이 근거에 대해서 이병도가 "식민사학자"라는 공격은 "식민사학"에 대한 정의와는 별개로, 이병도 설에 대한 반론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비나리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0:31 (KST)

자료 감사드립니다. 해당 사용자가 직접 찾아야 할 자료를 수고롭게 찾아주시다니 고생하셨습니다. 저는 해당 사용자의 행동과 저의에 대해 일부 알고 있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자료를 제시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그런 수고를 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아무튼 비나리 님께서 수고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Xakyntos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0:52 (KST)
위키백과는 자존심을 세우는 싸움터가 아니고, 백과사전을 만드는 공동작업장입니다. 서로 격려하여 더 나은 백과사전이 만들어지도록 건설적으로 협동하는 태도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케골 2010년 7월 20일 (화) 01:05 (KST)
비정이라는 말 자체가 그것이 해당 지역인지는 확실하지않다라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즉 추론이나 추리를 통해서 그 지역으로 미루어 생각하여 위치를 지정한다라는 의미이지요.
그 어디에서도 확실하게 그 지역이다라는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는데 해당 낙랑군 문서에서는 해당 지역들을 마치 확실하게 그 지역인양 단정적으로 서술했으므로 해당 문구를 삭제하거나 백번 양보하더라도 "대방현은 일부에서는 황해북도 사리원으로 추정한다" 이런 식으로 서술하는 것이 맞으므로 이의를 제기한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제 의견에 전혀 틀린 점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자꾸 주류, 주류하시는데 좋습니다. 백번 천번 양보해서 소위 주류라고 인정하더라도 확실한 근거가 없는 추정에 의한 일방적인 위치 비정을 가지고 주류의 비정이니 이의를 제기하지말라는 식의 주장은 전혀 사리에 맞지않습니다.--Gfsieoor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0:57 (KST)

{{보호 문서 편집 요청}} 문서 보호를 해제해 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위의 제시된 출처를 삽입하며 비정한다는 표현을 사용하도록 수정합시다. --케골 2010년 7월 20일 (화) 01:03 (KST)

Gfsieoor 사용자의 삭제 요구는 위키백과의 정책 자체에 반하는 것입니다. 계속적인 삭제 요구를 하는 저의를 분명하게 밝히십시오. 벌써 몇 번째 말하지만, 어떤 곳으로 비정하는 신뢰할 수 있는 출처만 존재한다면, 위키백과의 등재 요건을 완벽하게 충족합니다. Gfsieoor 사용자의 삭제 요구는, 출처가 존재하는 명백한 사실을 삭제하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여러 사용자분들께서도 심도있게 생각해 보셔야 할 것입니다. 수정 요구와 삭제 요구는 엄연한 차이가 있습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1:09 (KST)
"확실한 근거가 없는 추정에 의한 일방적인 위치 비정"이라는 말씀이야말로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이병도설은 위 논문에서 여러 근거에 의해서 추정된 것이며, 이후 이 분야를 연구하는 역사학계의 역사가들에 의해서 이의가 제기되지 않았습니다. Gfsieoor님께서 연구를 통해서 이런 통설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지만 그것이 역사학계의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는 한 백과사전과 같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곳에 기재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Gfsieoor님께서는 해당 설에 대한 근거있는 반론을 가지고 와서 이의를 제기해야 할 것입니다. --비나리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1:11 (KST)
위의 출처에서도 비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왜 또 비정을 논박하는 출처를 제기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케골 2010년 7월 20일 (화) 01:18 (KST)
역사학, 아니 각종 학문에서 말하는 비정/추정이라는 것은 수많은 근거와 자료를 통해서 많은 논의를 거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확실한 근거가 없다는 말도 틀리며, 일방적인 비정이라는 말도 엄밀하게 따지자면 옳지 않습니다. 비정/추정된다라는 문구를 추가하는 것이야 당연히 합당한 요구입니다만, 학문적인 방법으로 비정/추정된 사안에 대해서 이견을 제시하려면 당연히 이를 논박하는 출처를 제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위키백과는 한 개인의 이의제기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독자연구니까요. 개인의 이의제기라 할지라도 그에 합당한 출처와 근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의제기가 되었다고 해도 그것은 주류 주장에 대한 이의제기라는 측면으로 다뤄질 뿐, 주류 주장을 삭제하거나 대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1:23 (KST)
그렇다면 역사학의 모든 사실들은 비정일 뿐이라는 말인가요? 비정이 곧 역사학의 사실이라는 말인가요? 모순이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해당 논문에서 비정이라고 표현하고 있다면 백과사전에서 추정한다고 기록하는 것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에 대한 반론이 있건 없건 간에 논문에서 주장한 바가 그것이기 때문이지요. "대방현은 일부에서는 황해북도 사리원으로 추정한다"라는 정도의 표현을 사용하자는 제안에 동의합니다. --케골 2010년 7월 20일 (화) 01:30 (KST)
제가 드린 이야기는 이병도의 비정이 "확실한 근거가 없는 추정에 의한 일방적인 위치 비정"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비나리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1:32 (KST)
저 역시도 즉시 문서 보호를 해제해 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그 어디에서도 전부 비정, 추정으로 해당 군현을 해당 지역으로 위치를 지정한 것인데, 다시 말씀드려서 확정적 근거가 없이 전부 추정, 비정된다라고 하는 사안에 있어서 마치 확정된 사실인양 "대방현이 황해북도 사리원, 누방현이 평안남도 성천군,화려현이 함경남도 금야군, 부조현이 함경남도 함주군" 이렇게 단정적으로 서술하여서 이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않고 해당 문서를 읽는 사용자들이 이것이 마치 아무런 이의가 없는 완전히 확정된 사실인양 오도할 가능성이 매우 크므로 해당 문구들을 삭제하거나 백번 양보하더라도 "대방현은 일부에서는 황해북도 사리원으로 추정한다" 이런 식으로 서술하는 것이 맞으므로 이런 방향으로의 삭제나 수정을 요구합니다.--Gfsieoor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1:13 (KST)
Gfsieoor 사용자는 삭제 요구를 중단하십시오. 귀하의 삭제 요구는 위키백과 정책에 명백하게 위배됩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1:16 (KST)
덧붙여 한말씀 더 올립니다. Gfsieoor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근거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도 분명한 문제입니다. 저는 해당 내용들이 존재하는 근거를 분명하게 밝혔으며, 어느 책에 존재하는지, 어디서 그것을 찾을 수 있는지까지 분명하게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Gfsieoor 사용자는 제가 제시한 출처는 무시한 채 근거가 없다는 주장만 계속 반복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여러 사용자분들께 여쭈고 싶습니다. 출처를 제시했는데 이를 무시한 채 근거가 없다는 주장을 하는 사용자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일까요? 출처 제시 의무와 출처 확인 의무는 엄연한 차이가 있습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1:13 (KST)
현재 양자간의 의견이 완벽하게 절충되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보호 해제 할 수 없습니다. 현재 버전으로의 보호는 편집 분쟁을 막기 위한 임시 버전일 뿐이지, 정확성을 보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Erio-h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1:14 (KST)
토론과 편집의 편의를 위해서 해제해 주는 것이 합당합니다. 출처 등 의견이 합치된 부분들을 먼저 반영하는 것이 생산적일 것 같습니다. 현재 여러 사람이 편집에 참여하고 있으므로 일방적인 되돌리기는 자제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케골 2010년 7월 20일 (화) 01:21 (KST)
아니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편집이 개시되면 필연적으로 어떤 사용자가 자신의 관점으로 기울어진 논점으로 집필하게 될 것입니다. 그건 당연하게 분쟁을 불러 일으키리라고 예상됩니다. 이는 위키백과:보호 문서 정책의 '강압적인 편집 싸움을 막기 위한 경우'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보입니다. 이 토론이 원만히 종결된 후에도 편집을 할 수 있습니다. --Erio-h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1:28 (KST)

자꾸 백과 사전을 얘기하시는데 찾아보니 누방현의 경우 "BC 107년에 중국의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위만조선(衛滿朝鮮)을 정복하고, 그곳에 4군(郡)을 설치하였는데, 낙랑군은 그 중의 중심지였다. 낙랑군에는 처음에 25현이 있었는데, 누방현은 그 중의 하나로서, 위치는 지금의 평안남도 성천(成川) ·양덕(陽德) 지방으로 추정된다." 이런 식입니다.

결론은 "추정"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확실하게 단정하지 못한 것입니다.그런데 "누방현이 평안남도 성천군" 이렇게 단정적으로 서술하여서 이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않고 해당 문서를 읽는 사용자들이 이것이 마치 아무런 이의가 없는 완전히 확정된 사실인양 오도할 가능성이 매우 크므로 해당 문구들을 삭제하거나 백번 양보하더라도 "누방현은 일부에서는 평안남도 성천군로 추정한다" 이런 식으로 서술하는 것이 맞으므로 이런 방향으로의 삭제나 수정을 요구하는 것입니다.--Gfsieoor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1:20 (KST)

두 번째 경고입니다. Gfsieoor 사용자는 삭제 요구를 중단하십시오. 귀하의 삭제 요구는 위키백과 정책에 명백하게 위배됩니다. 백과사전과 같은 명백한 출처가 존재하는 사실에 대해서 삭제를 요구하는 것은 위키백과 정책에 대한 정면도전입니다. 주의하십시오.--Xakyntos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1:25 (KST)
도대체 뭘 경고한다는 겁니까? 저는 지극히 정당하고 타당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류의 표현은 삼가하십시오.--Gfsieoor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1:28 (KST)
수정 요구는 타당합니다만, 삭제 요구는 타당하지 않습니다. 위키백과는 신뢰할 수 있는 출처만 존재한다면 등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귀하가 하는 삭제 요구는 출처가 존재하는 명백한 사실을 삭제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써, 위키백과의 정책에 대한 정면도전입니다. 수정 요구는 얼마든지 하십시오. 그러나 삭제는 귀하가 아무리 요구해봤자 인정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삭제 요구를 하는 저의가 궁금하군요.--Xakyntos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1:32 (KST)
"대방현은 일부에서는 황해북도 사리원으로 추정한다"라는 말씀은 Gfsieoor님이 해당 논문을 읽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다른 세 곳은 "비정" 또는 "비정"에 해당되는 문구가 있지만 해당 논문에서 대방의 경우는 "확인"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또한 역사학계가 동의하고 있는 사항에 대해서 "일부"라는 표현이 올바른 표현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일부"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싶다면 역사학계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논문을 제시하셔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비나리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1:21 (KST)
자꾸 주류 주류하시는데 그 주류가 소위 대학 강단을 말씀하신다면 강단의 윤내현, 박성수, 이현희 교수같은 분들은 아예 낙랑군을 한반도가 아닌 요서 지역에 위치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 주류라는 표현으로 일부의 추정에 확정적인 근거인양 오도되는 표현을 사용하지 마십시오.--Gfsieoor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1:28 (KST)
윤내현 교수와 같은 분들의 주장은 국사학계 대부분의 학자들에 의해서 반박되고 있습니다. 즉, 국사학계 내에서도 소수설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일부라는 표현은 오히려 윤내현 교수와 같은 부류에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귀하의 상식으로 국사학계를 재단하려 하지 마십시오.--Xakyntos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1:37 (KST)
소위 강단 사학계의 교수들 주장이 전부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자꾸 주류 주류 그러는데 그게 수적인 우위를 말한다면 수적인 우위를 가지고 그런 표현을 쓴다는 것도 우습고 주류라고 할만큼 압도적인 수적 우위인지도 의문스럽습니다.하여간 제 의견은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그 어느 문서, 자료를 봐도 "비정", "추정"된다고 했으니 확정적 사안인양 단정한 것을 삭제하거나 "추정된다"라는 식으로 표현을 수정하자는 것입니다.귀하는 아무리 알아듣게 얘기를 해도 똑같은 소리이니 앞으로는 귀하의 주장에는 일절 대응하지 않겠습니다.--Gfsieoor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1:45 (KST)
귀하께 벌써 세 번째로 말씀드립니다. 삭제 요구를 철회하십시오. 귀하의 삭제 요구는 위키백과의 정책에 대한 정면도전입니다. 수정 요구는 이미 아래 케골 님에 의해서 합당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사안입니다. 수정하는 방향에 대해서 건설적인 토론이 이미 진행되고 있는데 귀하는 계속해서 위키백과의 정책에 정면으로 반하는 삭제 요구를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몇 번째 이야기하는데도 귀하는 귀를 막고 계시군요. 주의하시지요.--Xakyntos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1:52 (KST)
윤내현은 중국고대사가 전공이고, 박성수는 독립운동사가 전공이지요. 백과사전에 기재하는 내용에 들어올만큼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이현희 교수도 근대사 전공으로 아는데, 이 분이 그런 주장을 했다는 것은 과문한 탓에 알지 못하겠네요. 또한 윤내현 교수의 주장은 서영수 교수 등을 통해서 이미 주류 사학계에서 반론이 끝난 사항입니다. (서영수, 고조선의 위치와 강역, <한국사시민강좌> 제2집, 1988, 32~34쪽) 이런 소수설에도 끼지 못하는 극소수 주장을 가지고 주류 사학계를 "일부"라고 부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비나리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1:42 (KST)
학문에는 "수적 우위" 같은 것이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병도 논문이 나온 이후에 해당 논문에 대한 이론이 논문으로 제기된 바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문제는 매우 단순한 것인데 왜 이렇게 토론이 길어지는지 의아합니다. 저는 Gfsieoor님의 요구 사항대로 해당 주장의 근거를 위키백과가 요구하는 형태에 맞게 제시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수정을 요구하겠다면 그에 맞는 근거를 가져오시면 가능하겠습니다. 근거는 없이 주장만 하셔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Xakyntos님과 케골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일부 항목에 대해서 "추정"이라는 문구를 삽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습니다. --비나리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2:00 (KST)
좋습니다. 그러면 단정적 표현 대신에 "추정"이라는 문구를 삽입하는 것으로 의견을 절충합시다.--Gfsieoor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2:03 (KST)

수정안 토론[편집]

추정에 대한 출처를 삽입하였으나, 열구현의 위치에 대한 출처가 없습니다. 출처가 없다면 삭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케골 2010년 7월 20일 (화) 01:51 (KST)

열구현의 위치 비정은 이병도, <한국고대사연구> 제2편 한사군문제의 연구 제1장 진번군고, 박영사, 1976, 126쪽에 있습니다. --비나리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1:55 (KST)
연혁에 이병도의 추정이 서술되어 있는 항목이 있습니다. 이것은 연혁이 아니므로 다른 곳에 출처와 함께 기술되어야 합니다. --케골 2010년 7월 20일 (화) 01:58 (KST)
연혁의 해당 내용은 이병도 박사의 추정이라고 서술되어 있으나 일반적인 학계에서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내용입니다. 각종 백과사전에도 전혀 등재되어 있지 않고, 《낙랑군연구》에도 이병도의 견해라고만 서술되어 있을 뿐 공식적으로 비정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연혁에 따로 서술한 것입니다. 해당 부분을 위치에 직접 옮겨 놓는 것은 문제가 좀 있습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2:01 (KST)
오영찬, 《낙랑군연구》, 사계절, 2006 이게 출처라고 이 토론이 시잘될 때부터 말해서 지금까지 몇 번을 반복했습니다. 해당 표는 제가 직접 작성한 것이며, 《낙랑군연구》를 보고 작성했습니다. 그러므로 엄밀하게 말해서 저 표의 직접적인 출처는 《낙랑군연구》입니다. 이병도 박사의 저 논문들도 모두 《낙랑군연구》에 인용되거나 출처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가능한 가장 최초의 출처를 다는 것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낙랑군연구》라는 책으로도 위키백과가 요구하는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 충족됩니다. 이 책으로 다십시오. 제발 다시 이 말을 하지 않게 좀 해주세요. ㅠㅠ--Xakyntos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1:58 (KST)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각 항목에 대해 원출처를 기록하는 것이 신뢰를 담보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출처가 제시되지 않은 항목에 대해서 원출처를 기술해 주십시요. --케골 2010년 7월 20일 (화) 02:01 (KST)
Xakyntos님의 말씀에 동의를 표합니다. 왜냐하면 이병도의 해당 논문들에는 저 표에 나오는 대부분의 지명들에 대한 비정이 있습니다. 오영찬은 그런 비정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치 미상"으로 표기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단순히 (추정의)출처만 밝혀서도 사용자들이 확정적 사실인양 오해할 소지가 충분하므로 위치 추정 뒤에 "~라고 추정"이라는 표현을 반드시 삽입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누방현 평안도 성천군으로 추정"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그나마 추정한 것도 없는 사안은 삭제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Gfsieoor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1:59 (KST)

표의 맨 위 항목에 비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케골 2010년 7월 20일 (화) 02:03 (KST)
아 그렇군요. 자세히 보지않고 의견을 올려서 정말로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케골님의 수정안에 찬성하겠습니다.--Gfsieoor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2:13 (KST)

조선현, 점제현, 수안군이 출처가 없습니다. 연혁에 있는 추정은 왼쪽 컬럼으로 옮기겠습니다. --케골 2010년 7월 20일 (화) 02:06 (KST)

Xakyntos님은 이미 그 출처가 오영찬, 《낙랑군연구》, 사계절, 2006이라고 밝혔습니다. --비나리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2:10 (KST)
즉 오영찬이 비정했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지 않고 인용을 했다면 원출처를 쓰는 것이 좋겠습니다. --케골 2010년 7월 20일 (화) 02:12 (KST)
연혁에 있는 추정은 그냥 옮기게 되면 주류 학계의 위치 비정과 이병도 개인의 위치 비정 사이에 차이가 없게 됩니다. 제 생각에는 위치 미상이라는 문구를 남겨두고, 추가로 이병도의 비정에 대한 문구를 서술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2:12 (KST)
저 부분은 이병도 이후 역사학계의 연구가 진전된 것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Xakyntos님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비나리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2:14 (KST)
수안현은 이병도 박사 개인의 비정인지라 저도 출처를 잘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낙랑군연구》에는 나옵니다. 점제현과 조선현의 경우는 이병도 박사가 비정하기 훨씬 이전인 일제시대에 발굴조사를 통해 확증된 것으로서 특정 출처를 대기에는 좀 모호한 감이 있습니다. 조선현과 점제현, 대방현 같은 경우에는 고고 유물에 의한 증명이 너무나도 명확한지라 《낙랑군연구》만으로도 충분한 출처가 된다고 생각합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2:15 (KST)
정정합니다. 《낙랑군연구》에는 수안현 관련 내용이 없습니다. 해당 내용은 이병도의 [한국고대사연구] '낙랑군고' 내용 중 (6)번 수성현 항목에 나타납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2:20 (KST)

직접 수정을 해주셔도 됩니다. --케골 2010년 7월 20일 (화) 02:17 (KST)

제 생각으로는 앞의 표 설명 부분에 "이 표는 오영찬, 《낙랑군연구》, 사계절, 2006에 의한 것이다"라는 주석을 달아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비나리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2:18 (KST)

케골님의 수정안에 찬성하는데 "비정되는 위치"라는 표현보다는 "추정되는 위치"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지않을까 삼가 의견을 올립니다.--Gfsieoor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2:22 (KST)

더 이상 의견이 없으시면 보호가 해제된 후에 반영하겠습니다. '낙랑군의 위치 및 성격에 대한 논란' 문단도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토론이 필요하면 진행해 주세요. --케골 2010년 7월 20일 (화) 02:32 (KST)

일단 이정도에서 합의가 된 것 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Xakyntos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2:39 (KST)
은률군 다음에 "추정"이라는 말은 불필요하므로 빼는 것이 좋겠습니다. --비나리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02:43 (KST)

보호를 해제 하겠습니다. --Erio-h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11:53 (KST)

위 분들들이 상대를 이해하고 타협을 이루시니 기쁘군요. 위키백과 편집자들을 더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케골 2010년 7월 20일 (화) 14:23 (KST)

수정안 제안[편집]

다음과 같은 수정안을 제안합니다. 본문이 잠겨 있으므로 이 문서를 수정한 후 반영하는게 좋겠습니다. --케골 2010년 7월 20일 (화) 01:39 (KST)

보호가 해제되어 수정안을 본문으로 옮겼습니다. --Xakyntos (토론) 2010년 7월 20일 (화) 14:25 (KST)

주석1과 주석1이 달린 본문의 내용이 잘못된 듯 합니다.[편집]

- 위키를 잘 몰라서 이런 식으로 의견을 표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규정과 달라도 너그러이 이해를...

1. 주석1의 출처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까? 오영찬의 <낙랑군 연구>(사계절, 2006년 1판1쇄)를 읽었는데, "낙랑군 소속 현"의 위치 비정에 관한 항목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혹시 권오중,<낙랑군 연구>의 오기입니까? 오영찬의 책이 맞다면 몇 페이지에 이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지요?

2. 주석1이 달린 본문은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최근에 발견된 낙랑군의 호구 조사 목간(기원전 45년)에는 모두 25개 현의 호구가 기록되어 있다. 아래 표는 목간의 기록을 중심으로 정리한 것이다.[1]"

  • 그러나 이 호구 조사 목간은 그 출처로 기재된 오영찬의 글에 반영될 수가 없습니다. 호구 조사 목간은 2005년에 평양에서 출토되었고 남한학계에서는 2009년에 논의가 된 것이나, 오영찬의 책은 2006년에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표가 목간의 기록을 중심으로 정리된 것이라면 오영찬이나 권오중(92년)의 책은 그 출처가 될 수 없습니다. 오영찬이나 권오중의 책이 이 표의 올바른 출처라면, "목간의 기록을 중심으로 정리했다"는 말과 상충됩니다.
  • 아마 작성자 님은 주석1의 출처가 된 연구 자료와 함께 목간에 대한 연구 자료도 참고하여 표를 작성하신 듯 합니다. 그러니 1) 주석1의 출처를 분명히 하고, 2) 주석1에 "호구 조사 목간"에 관한 연구 자료의 출처도 포함시켜야 하겠습니다.

3. 주석2의 가 나 다 라 는 어떤 의미입니까? —이 의견을 쓴 사용자는 218.148.241.131(토론 | IP 정보)이나, 서명을 하지 않아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1번은 오영찬의 《낙랑군 연구》가 맞습니다. 지금 책을 가지고 있지 않아 정확한 페이지는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만, 낙랑군의 치소와 토성 유적에 관한 챕터가 별도로 존재합니다. 그곳에 토성 유적 및 주요 낙랑군 유적을 토대로 낙랑군의 개별 현을 추정한 내용이 존재합니다. 2번 문제는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목간을 중심으로 작성했다는 말의 의미는, 표의 순서를 목간에 기록된 순서에 따라 작성했다는 의미로 목간 자체의 연구 결과와는 사실 무관합니다. 의미 전달이 불명확했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3번은 같은 주석을 여러번 달도록 주석명령어를 사용했을 때 생기는 링크로, 주석2가 달린 위치로 이동할 수 있게 하는 북마크입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8월 3일 (화) 18:44 (KST)


  • 말씀 감사합니다. 자꾸 귀찮게 굴어 죄송하네요. 조금만 말을 더 보태겠습니다.
  • 오영찬의 책 "2부 1장 1절 군현의 치소와 토성"에 낙랑군의 개별 현에 대한 언급이 있기는 합니다. p.93의 "<표4> 서북한 지역의 토성 유적"에는 [이름 - 위치 - 비고] 낙랑토성 - 평양특별시 락랑구역 락랑동 - 낙랑군치, 문성리 토성 - 황남 은율군 운성리 - ? , 지탑리 토성 - 황북 봉산군 지탑리 - 대방현, 청산리 토성 - 황남 신천군 청산리 - 소명현, 성현리 토성 - 평남 온천군 성현리 - 점제현, 소라리 토성 - 함남 여흥군 소라리 - 영동칠현 중 하나 이렇게 여섯 군데의 토성이 언급되어 있고 비고란에는 다섯 군데의 현명을 부기하고 있습니다.

1. 말씀하신 것처럼 "토성 유적 및 주요 낙랑군 유적을 토대로 낙랑군의 개별 현을 추정한 내용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위키에 작성된 표에 비해 소략하여 이 책을 "중심으로 구성"하였다고 기술하는 것은 무리일 듯 싶습니다.

2. 또한 두 표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오영찬의 책에서는 대방현을 황북 봉산군 지탑리에 비정하고 있으나 위키의 표는 황해북도 사리원시 당토성(唐土城)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같은 곳인지요? 마찬가지로 위의 책은 소명현을 황남 신천군 청산리에 비정하나 위키의 표는 '위치 미상'으로 추정합니다. 낙랑동 및 점제현비가 발굴된 성현리에 관한 기술만 위 책과 위키의 표가 일치하고 있습니다.

3. 참고로, 출처로 제시된 두산백과사전에서는 위치 미상으로 되어 있는 소명현을 오영찬과 마찬가지로 황남 신천군에, 사망현은 평남 중화군 상원면에 비정하고 있으니 이 정보도 포함시키면 좋겠습니다.

1. 해당 표를 제작하려는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오영찬의 책을 보면서였지요. 해당 책을 중심으로 해서 각종 백과사전을 참고해서 보충·수정하면서 만들었기 때문에 책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긴 합니다. 사실 공신력 문제도 있고 해서 최초 작성시 제가 중심으로 삼은 것은 두산백과사전입니다만 특별히 출처를 달아 놓지 않았었고, 추후에 다시 출처를 달면서 오영찬의 책만 달아놓았지요. 제가 작성한지 오래되어서 직접 무엇을 참고했는지 헷갈리는게 좀 많습니다. 이번에 아이피 사용자님이 하신 지적에 따라 제가 당시 참고한 것을 다 써 놓은 것입니다.
2. 당토성은 같은 곳이 맞습니다. 북한이 지적을 봉산군으로 바꾼 것이 1957년인데, 제가 옛지명을 잘못 알고 썼네요. 소명현을 빼 놓은 것은 왜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3. 나머지 현에 대해서도 두산백과사전을 출처로 해서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의견 감사드립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8월 4일 (수) 13:17 (KST)

2014년 1월 25일의 편집 요청[편집]

아래 사항을 낙랑군 문서에 추가 편집해주시기 바랍니다.

1. "낙랑군의 위치 및 성격에 대한 논란" 부분에 낙랑군 위치에 대한 여러 학설을 정리한 지도 추가

이 부분은 "낙랑군 문서 보호 요청"에서 보호 요청을 한 당사자도 해당 요청의 논의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지도 추가에 대해서는 저도 이견이 없습니다."라고 동의한 사항이니 지도를 추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2. 한사군의 위치와 대방군의 위치를 표시하는 지도 설명 부분에 원래 "추정"이라는 부분이 있었는데 마음대로 이 부분을 삭제한 문서 훼손에 대한 복원

이 부분은 낙랑군 토론 문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몇년 전에 치열한 논쟁과 토론을 거쳐서 추가된 부분인데 마음대로 삭제하면서 문서 훼손되었기에 복원한 것으로 해당 토론 페이지를 보시면 보호 요청한 사용자도 동의한 사항입니다. 따라서 해당 지도의 설명에도 "추정"이라는 부분을 추가해주시기 바랍니다.--Lhrdrth (토론) 2014년 1월 28일 (화) 18:47 (KST)

2. 귀하의 편집을 인정받고 싶으시면 낙랑군의 위치에 대해 학계에 통일된 견해가 없음을 증명하시면 됩니다. 이미 고고학 레벨에서 실증된 위치를 추정이라 표현하는 것은 명백한 비중립적인 편집입니다. 저는 적어도 한국사학계라고 하는 저명하고 공인된 출처를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만? 귀하가 추정이라 바꿔야 한다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토론 페이지에서 위키 사용자들끼리 왈가왈부한 것? 그것은 근거가 아니라 그냥 토론일 뿐입니다. 게다가 그 이후 위키백과는 위키백과:비주류 이론을 지침으로 세우면서 그러한 소수설이나 음모론에 대해서 대처하는 기준을 확립했습니다. 그러니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소수설을 부각시키기 위해 학계의 정설을 추정이라 표기하는 행위는 위키백과의 원칙과 지침에 따라 엄격하게 금지됩니다. 아래 인용문들을 참조하십시오.--Xakyntos (토론) 2014년 1월 28일 (화) 21:24 (KST)
그런 비주류 이론의 제안자나 지지자들이 자신의 이론이 세상에서 받아들여진 정도의 저명성보다 더 저명한 것으로 보이게 하려고 시도하는 행위, 예를 들어 삭제 토론에서 다중 계정을 사용하는 등의 행위는 엄격히 금지됩니다. 비주류 이론의 제안자 자신이 자신의 학설을 홍보하는 행위, 예를 들어 자비로 출판한 문헌을 출처로 제시하는 등의 행위는 금지됩니다. 위키백과는 광고를 하는 곳이 아닙니다. 덧붙여 연결하지 말아야 하는 바깥 고리, Conflict of interest (영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작성할 때의 유의사항 등도 참고하십시오. 중립적인 시각 정책에 따르면 위키백과의 각 문서가 모든 다수 의견과 중요한 소수 의견을 포함해야 합니다. 하지만, 각각의 의견은 위치에 걸맞지 않은 비중으로 실려서는 안 됩니다. 과학계에서 비판적인 검증을 받지 못했거나 거절된 가설은 수준 높은, 다른 믿을 수 있는 출처가 그 가설을 대안적인 것으로 언급했을 때만 위키백과에 수록될 수 있습니다. 극소수의 사람들만 지지하는 의견은 저명할 때만 그 의견에 관련된 주제를 다루는 문서에 실릴 수 있습니다.
해당 낙랑군 토론 문서의 "아무런 근거없는 일방적 위치 비정 삭제 요청"과 "낙랑군 위치 비정에 대한 주류 사학계의 의견" 등에서 많은 사용자와 그리고 관리자까지 치열하게 토의해서 합의된 부분을 낙랑군 문서에 사람들의 관심이 없는 틈을 타서 "추정"이란 표현을 일방적으로 삭제하고 문서 훼손한 장본인인 귀하가 무슨 자격으로 또 억지를 부립니까? 이는 분명히 명백한 반달 행위이므로 당연히 원 상태로 복원되어야하며 관리자분께서 보시면 알아서 잘 판단하시리라 믿습니다. 여러 사용자와 관리자의 합의로 추가된 "추정"이라는 부분은 당연히 복원되어야 하고 이 부분을 수정하고 싶으면 일단 복원된 상태에서 토론을 거치고 합의하에 수정되어야 절차에 맞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관리자께서는 일단 "추정"이라는 설명 부분을 복원시켜주시기를 바랍니다.--Lhrdrth (토론) 2014년 1월 28일 (화) 21:53 (KST)
낙랑군 문서의 주석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최소한 4명의 역사학자와 1개의 연구학회, 3가지 이상의 고고학 발굴 성과, 심지어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라는 대학 학과 차원의 출처가 15개 항목에 걸쳐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역사학계라는 공인된 출처에 의해 지지되는 정설을 위 사용자는 자신이 신봉하는 소수설에만 근거해서 추정이라는 표현으로 격하하고 소수설을 부각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위가 위키백과에서 과연 허용되는 것입니까? 진화론을 주류과학계의 추정이라 표현하는 것이나 위안부라는 전쟁범죄를 일각의 주장이라 표현하는 것과 대체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학자들이 학문적 생명을 걸고 밝혀낸 역사적 진실이 일개 음모론에 불과한 소수설을 존중하기 위해 추정이라는 표현으로 격하되는 것이 과연 공정하고 중립적인 일입니까? 여러 사용자와 관리자분들은 잘 판단하여 주시기 바랍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1월 28일 (화) 22:43 (KST)
자기 마음에 안드는 주장은 토론없는 불법적인 절차에 의한 반달이라고 신고해서 문서 보호까지 시키시는 분이, 다른 부분도 아니고 여러 사용자와 관리자의 합의로 추가된 사항을 아무런 토론 절차도 없이 낙랑군 문서에 사람들의 관심이 없는 틈을 타서 불법적인 반달을 자행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행태입니까? 자기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입니까?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에 안드는 주장에 무조건 음모론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황당합니다. 다시한번 관리자분께 말씀드리지만 여러 사용자와 관리자의 합의로 추가된 "추정"이라는 부분은 당연히 복원되어야 하고 이 부분을 수정하고 싶으면 일단 복원된 상태에서 토론을 거치고 합의하에 수정되어야 절차에 맞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관리자께서는 일단 "추정"이라는 설명 부분을 복원시켜주시기를 바랍니다.--Lhrdrth (토론) 2014년 1월 28일 (화) 22:59 (KST)

관리자는 문서의 내용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편집분쟁이 발생한 경우, 해당 문서의 내용은 분쟁 당사자들이 서로 조금씩 이해하고 양보하면서 합의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관리자는 문서의 내용에 대해 명백히 총의가 형성된 경우에는 직접 수정할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분쟁 중인 문서에 대해 어느 일방의 요구에 따라 문서를 편집하지는 않습니다. '지도 추가' 부분에 대해서는 두 분이 합의하신 것으로 보이지만, '추정'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관리자는 아니지만, 가급적 두 분이 원만히 합의하시기를 바랍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4년 2월 1일 (토) 18:39 (KST)

제가 보기엔 합의할 내용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해야 할 문제인 것 같네요. 제 의견은 분명 학계의 주류적 입장과 비주류적 입장이 있다면 위키백과의 출처 지침에 따라 편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토론을 보기엔 Xakyntos님의 의견이 더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백과사전은 대다수의 학자가 인정하는 학설을 우선적으로 취급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 Jjw (토론) 2014년 2월 2일 (일) 12:08 (KST)

저 역시 이 문제는 사용자 여러분의 의견을 통해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Jjw님의 견해가 정론임은 틀림없으며, Lhrdrth 사용자도 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주류 학계의 정설은 완벽하게 무시하고 오로지 국사교과서만 근거로 주류학계의 정설이 아니라는 식으로 공격하고 있는 것이 현 상황입니다. 하지만 국사교과서의 편향성 문제는 이전부터 한국사학자들에게 지적받아왔던 것이며, 정작 국사교과서에서 낙랑군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하면서도 4세기 초 미천왕 때에는 남으로 대동강 유역을 확보(2009년판 중학교 국사교과서), 미천왕 때에 낙랑군을 완전히 몰아 낸 고구려는 압록강 중류 지역을 벗어나 남쪽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2009년판 고등학교 국사교과서)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사교과서를 편찬하는데 있어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여러 한국사 서적에도 낙랑군은 명백하게 서술되고 있습니다. 기원전 108년에 한의 공격으로 고조선이 무너진 뒤,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는 한 때 중국의 세력이 들어오게 되었다.(중략) 두 나라의 압박으로 한 때 대동강 유역에 있던 중국 세력은 완전히 소멸되었다.(한국교육과정평가원 편 《한국의 역사》) 특히 국편위에서 출간하는 《신편 한국사》는 낙랑군의 역사를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으며 그 위치 또한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국편위가 한국사학계에서 가지는 권위는 일개 국사교과서 따위와는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당 사용자의 낙랑군 평양설은 국사교과서에도 실리지 않으므로 정설이 아니다라는 주장은 옳지 않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검토하여 사용자 여러분들께서 고견을 밝혀 주시길 바랍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2월 3일 (월) 00:32 (KST)
국사편찬위원회는 국가가 세운, 한국사에 있어서는 가장 믿을만하고 권위있는 곳입니다. 여기에서 낙랑군 위치가 평양이었다고 한다면, 이를 뒤집는 결정적인 근거가 나오지 않는 한 그것을 정설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뒤집을 근거가 있다면, 위백보다는 국사편찬위원회에 먼저 가서 정설 자체를 바꾸시는 편이 더 좋아 보입니다. --팝저씨 (토론) 2014년 2월 3일 (월) 01:24 (KST)
의견 감사드립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해당 분쟁 당사자는 대한민국의 주류 한국사학계 및 전세계의 역사학계를 싸잡아서 “만리장성이 한반도 내까지 왔다는 헛소리를 주장하는 것은 동북공정을 주장하는 중국과 그를 추종하는 식민사학계”라고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소위 강단사학계는 식민사학자들이 헤게모니를 잡고 있으며, 그로 인해 자신들의 주장을 탄압한다는 주장이죠. 즉, 위키백과의 지침에서 경계의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는 지지자들이 그들을 침묵하게 하려는 음모가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에 해당합니다.(위키백과:비주류 이론도 참조) 이런 말씀을 하는 사람들을 과연 정상적인 사람들과 동등하게 존중해야 할까요? 저는 참 의문이 듭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2월 3일 (월) 10:19 (KST)

이 문제는 해당 문서에서 보시면 아시겠지만 전에 이용자들이 관리자까지 개압한 상태에서 치열한 토론을 하여 합의하에 수정한 부분을 마음대로 문서 훼손한 부분에 대한 복원 요청입니다. 관리자에게 복원을 다시 요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수정은 원상태로 복원한 후에 토론으로 합의하에 해야합니다. 지금은 Xakyntos 사용자가 낙랑군 문서에 사람들의 관심이 없는 틈을 타서 합의한 부분을 마음대로 삭제한 문서 훼손에 대한 복원이 우선입니다. --Lhrdrth (토론) 2014년 2월 3일 (월) 14:02 (KST)

전혀 아닙니다. 저는 분명하게 해당 토론의 결과와 관계 없이 위키백과:비주류 이론을 비롯한 위키백과의 여러 지침을 근거로 추정이라 표기하는 부분을 삭제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애초에 훼손 자체가 아닙니다. 귀하야말로 일개 소수설을 근거로 명백한 한국사학계의 정설을 추정으로 격하하려는 시도를 중지하십시오. 이는 엄연한 위키백과의 지침을 위반하는 행위입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2월 3일 (월) 14:15 (KST)

우선 두 분 모두 일단 숨을 고르십시오. 그리고, 다음과 같이 편집할 것을 제안합니다. 두 분이 조정을 신청하시지는 않았지만, 일단 제안하겠습니다.

  1. 본문에 "낙랑군의 위치", 또는 "위치"(이하 위치) 문단을 만들 것.
  2. "위치" 문단에 "다수설", 또는 "정설"이라는 문단을 만들 것.
  3. "위치" 문단에 "소수설" 문단을 만들 것.
  4. "소수설" 문단에 "내용"과 "소수설에 대한 반박" 문단을 만들 것.
  5. 낙랑군 위치에 관하여 정설, 또는 다수설이 명확한 사료적 근거를 가진 경우, 추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 것.

이러면 백:비주류 이론에도 위배되지 않고, 정확한 정보 또한 제공할 수 있으리라 판단합니다. --팝저씨 (토론) 2014년 2월 3일 (월) 14:22 (KST)

이미 문서 본문에 해당 내용들이 모두 언급되어 있습니다. 낙랑군의 위치 및 성격에 대한 논란이라는 문단에서 위치에 대한 내용도 모두 언급되고 있는 사안입니다. 현 쟁점은 위 사용자가 어쨌든 논란이 있으니 본문 및 지도 설명에 추정이라는 문구를 삽입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고, 저는 엄연히 정설이 중심이 되어야 하므로 추정이라는 문구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2월 3일 (월) 14:28 (KST)
팝저씨님의 제안에 깊은 감사들 드립니다. 그러나 일단 마음대로 문서 훼손된 부분에 대한 복원이 우선입니다. 만약 이를 방치하면 위키백과의 수많은 토론과 합의로서 작성된 문서들도 악의적인 이용자의 불순한 의도로 마음대로 문서 훼손이 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곧 문서 복원을 요청할 것이니 관리자의 복원이 있을 것입니다. 이 부분을 수정하고 싶다면 일단 복원된 상태에서 다시 토론을 들어가야 마땅한 것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2월 3일 (월) 14:32 (KST)

X mark.svg미완료 보호가 종료되었으므로 자유롭게 편집하실 수 있습니다. --관인생략 토론·기여 2014년 2월 5일 (수) 18:36 (KST)

지도 이미지 삭제[편집]

낙랑군 위치에 관한 여러 주장
  1. 위 이미지는 출처가 불분명하여 사용이 불가하다고 판단됩니다. 해당 이미지의 원본이라 할 수 있는 지도는 제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한겨레 신문 기사에 제시된 지도가 위 이미지와 완벽하게 동일한데, 다만 위 이미지는 현재 차단된 Lhrdrth 사용자가 직접 제작한 것이라 밝힌 바 있습니다. (사용자토론:Lhrdrth 참조) 문제는 해당 사용자는 자작이라고만 밝히고 있을 뿐, 지도의 출처가 어디인지는 전혀 밝히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위키백과의 지침상 이러한 지도는 사용이 불가합니다.
  2. 또한, 해당 이미지는 명백하게 잘못된 내용을 담고 있어 더더욱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위 지도에서는 요하유역설을 북한학계의 통설이라 서술하고 있으나, 실제 북한 학계의 통설은 요서 지역에 낙랑군이 위치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해당 이미지의 원 출처로 추측되는 한겨레 기사에서 남한의 역사학자에 의해 직접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사항입니다. (하단에 인용함) 이렇게 자체적으로도 모순을 선보이고 있는 한겨레 신문 기사의 지도가 과연 제대로 된 출처라고 볼 수 있을까요? 물론 위 이미지는 한겨레 신문을 출처로 제시하고 있지도 않으니 더더욱 문제입니다만. 아무튼 이러한 사유로 위 이미지를 삭제하고 파일 삭제도 신청하도록 하겠습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2월 17일 (월) 20:26 (KST)
영남대 사학과 권오중 교수는 “목간이 나온 장소를 우선 감안하지 않고, 거리가 먼 요서 쪽에 낙랑군 위치부터 비정하는 것은 북한 학설의 비현실적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차단된 위 지도의 제작자 Lhrdrth 사용자는 해당 사용자 문서에서 명백히 자기가 만들었다면서 그 증거로 포토샵 파일까지 제출하겠다고 했습니다. 지금 해당 제작자가 차단된 틈을 타서 일방적인 편집을 하는 것은 매우 비겁하다 보여집니다. 제가 보기에는 명백히 자작이고 그 문제는 차단된 사용자가 돌아오면 다시 논의하십니다.
북한 학계의 통설은 요하 유역설이 맞습니다. 북한 사회과학원에서 펴낸 "평양일대 락랑무덤에 대한 연구 "239 페이지에서는 "기원 전후시기 평양일대에는 한 나라의 락랑군이 아니라 고조선의 후예들이 세운 락랑국이 있었으며 한 나라의 락랑군은 료동지방에 있었던 것을 잘 알 수 있다."라고 밝히고 있으니 지도의 설명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Gfsieoor (토론) 2014년 2월 17일 (월) 22:01 (KST)
무기한 차단당하시긴 했지만 혹시 몰라 답변해 드리지요. 명백한 자작을 논하시려면 귀하의 토론 문서에 떡하니 남아 있는 이 다중계정의 명백한 증거부터 어떻게 하시지 그러셨습니까? (사용자토론:Gfsieoor#파일:Nagrang theory.jpg) 귀하가 예전에 올렸던 이 사진이 저작권 위반으로 삭제되었는데, 4년 뒤에 전혀 귀하와관계가 없던 사람이 고대로 베껴서 자작이라고 올려 놓는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런지...
귀하가 그렇게나 좋아하시는 난하요수설에 따르면 지금의 요서는 과거에는 요동이었잖아요? 그럼 낙랑군은 요서에 있는 겁니까 요동에 있는 겁니까? 이 문제부터 해결하고 오세요. 그래도 북한은 이 문제를 알고 있어서 일관되게 지금의 요서 지방을 료동이라 쓰고 있는데 귀하는 이런 기초적인 것조차 헷갈려 하고 있으니 참...--Xakyntos (토론) 2014년 2월 18일 (화) 01:11 (KST)
해당 이미지의 삭제는 귀하가 제가 차단된 틈을 타서 합의된 사항을 일방적인 이유를 달아서 합의를 거치지않고 삭제한 것이므로 일단 되돌려놓습니다. 만약 여기서 저와의 합의가 끝나지않았는데도 다시 되돌린다면 "문서 훼손 반복과 토론이 지속되는 중에도 독단적인 편집을 강행"한 이유로 즉시 차단을 요청하겠습니다. 제가 귀하와 편집 분쟁하다가 저만 억울하게 차단을 먹었고 다시 편집 분쟁한다면 또다시 저만 차단을 당할 확률이 농후하다고 생각되기에 더이상의 편집 분쟁없이 즉시 차단 요청을 할 것이니 그리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귀하는 제가 올린 저 지도가 자작이 아니라고 자꾸 주장하는데 제 토론 문서에서 이 문제는 귀하가 트집을 잡아서 이미 충분하게 귀하를 설득시킨 사항이고 귀하도 지도를 잘못 봤다, 착각한 것은 사과드린다라고 귀하의 잘못을 분명히 인정한 바가 있는데 다시 새삼스럽게 트집을 잡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정당한 편집을 방해하는 행위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제 토론 문서에서 귀하에게 이미 밝혔지만 그 지도는 제가 직접 그린 그림으로 저작권에 아무런 저촉 사항이 없는 순수 저의 창작물입니다. 그 지도를 제작할 때 만든 원본 포토샵 psd 파일도 가지고 있으며(해당 파일은 이곳 관리자에게 증거 자료로 얼마든지 보낼 용의가 있음) 귀하가 제시한 한겨레의 그 지도를 가지고는 단 0.001%도 제작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두 지도의 그림 형태, 글씨체 등을 보면 금방 확인될 문제입니다. 만약 내용이 비슷하다고 무조건 표절이라고 주장할 것이면 귀하가 직접 제작한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만든 지도를 가지고 사용했고 아틀라스 한국사 지도를 베낀 귀하의 낙랑군, 한사군, 대방군 등의 일련의 지도이야말로 당연히 표절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힙니다. 귀하가 자꾸 제 지도를 가지고 이런 트집을 잡는다면 저는 귀하의 지도를 저작권 침해 및 표절을 이유로 삭제 조치를 하고 해당 파일 삭제를 관리자에게 정식으로 요청하겠습니다. 귀하가 왜 다른 유저에게 "반달에 해당하는 행위를 서슴없이 하는 것은 지나친 행동이고 반성없이 계속 반복하는 것은 이곳 편집자분들에게 해악과 민폐를 주고 있는 행위입니다."라는 비판을 듣는지 가슴을 손에 얹고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귀하가 제 지도를 가지고 계속 트집을 잡아서 다음과 같이 해당 파일을 제작할 당시 원본 포토샵 psd 파일의 캡쳐까지 증거물로 올리니 더이상의 억지 트집은 없기를 바랍니다. http://dfgww3.dothome.co.kr/nagranguncon.jpg
그리고 귀하는 낙랑군 위치에 대한 북한의 통설이 요하 유역설이 아니라 요서 위치라고 역지 주장을 하고 있으나 귀하가 권오중의 주장을 발췌한 신문 기사에서도 "손형종은 논문에서 “목간의 호구 통계가 얼핏 서북한에 낙랑군이 있던 것처럼 보이나 자세히 검토하면 요동반도 천산산맥 일대에 위치했다는 확고한 증거”라고 주장한다."라고 하여 북한은 낙랑군이 요동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동반도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정도는 귀하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설마 요서에 있다고 생각하시면 저로서도 참 황당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북한 학계가 펴내고 우리나라의 중심 출판사가 "북한의 우리 역사 연구 알기" 시리즈로 편찬한 "고조선 력사개관"의 250 페이지에 보면 "락랑군이 오늘의 료동지방에 설치되였다는 것은 ... 중략" 이라고 하여 분명히 낙랑군을 오늘의 요동 지방에 위치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낙랑군은 침략자였는가라는 기사에서 "북한 학계가 낙랑군이 요동반도에 있었으며"라고 하였고 또한 북한, 고조선 수도가 평양 아닌 이유 이 기사에서도 " 손영종은 “이 목간은 요동반도에 낙랑군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이는 북한의 공식 입장이기도 하다."라고 하여 낙랑군이 요동에 있었다는 것이 북한의 공식 입장 즉, 통설임을 명백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렇게 명백한 증거 자료들을 가지고 귀하의 트집에 해명을 했는데도 계속 제 지도를 가지고 문제를 삼으신다면 저는 위키백과:방해_편집 지침에 따라 총의 형성에 참여하지 않고 다른 편집자의 질문, 편집에 대한 설명 요청, 편집에 대한 반대 의견을 반복적으로 묵살하고 다른 편집자의 그들에 편집에 대한 설명을 반복적으로 무시하며 명백한 증거를 무시하는 등 방해 편집을 이유로 즉각 차단을 요청할 것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4일 (화) 13:59 (KST)
1. 이해를 못하시나본데, 자작 여부는 이제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자작을 하셨다면, 그 원본이 되는 신뢰할 수 있는 출처가 필요한데, 귀하의 저 지도는 그 출처가 전무합니다. 물론 저도 알고 귀하도 알고 있듯이, 저 지도의 출처는 한겨레의 지도입니다. 귀하가 한겨레의 지도를 원본으로 본인이 직접 그렸다라고 출처를 제시하시면 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저 지도에는 그런 출처와 관련된 사항이 전혀 없지요. 그러므로 당연히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출처를 확실하게 명기하십시오.
2. 물론 그렇다고 해도 한겨레의 지도 자체가 본문 내부의 기사 상으로도 모순되어 있다는 점에서 역시 신뢰할 수 있는 출처는 되지 못합니다. 그러니 귀하는 한겨레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제시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 한 저 지도는 사용이 불가합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3월 4일 (화) 17:49 (KST)
"만약 여기서 저와의 합의가 끝나지않았는데도 다시 되돌린다면 "문서 훼손 반복과 토론이 지속되는 중에도 독단적인 편집을 강행"한 이유로 즉시 차단을 요청하겠습니다."고 분명히 경고했는데도 귀하는 문서 훼손과 독단적인 편집을 했고, 저 지도가 자작이라는 점(자작인데 도대체 무슨 출처가 필요하다는 것인지), 지도의 내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까지 확실히 입증했는데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반달을 강행했기에 경고드린대로 귀하에 차단을 곧 요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차단 요청에는 이 이유뿐만 아니라 그동안 귀하가 부당하게 사실을 왜곡하여 저를 모략한 것등 재제를 받아야 마땅한 사유까지 추가될 것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4일 (화) 18:42 (KST)
귀하의 억지에 쐐기를 박는 의미에서 다시 증거 자료를 추가합니다.
출토옷감서찾은 낙랑공주 '최리왕 낙랑국'
위 링크의 기사에서 보면 우리나라 고대 복식사의 권위자 상명대학교 박선희 교수님께서도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군의 위치에 대하여 그동안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왔다. 낙랑군의 위치에 대한 학계의 견해는 기존의 대동강유역을 중심으로 본 평양설과 북한학자들에 의해 대두된 요동설, 그리고 요서지역에 위치할 것으로 보는 난하설로 구분된다."라고 하셔서 제가 작성한 지도의 학설이 전혀 문제가 없음이 다시 입증되고 있습니다. 이토록 수많은 증거 자료들을 제시하는데도 귀하가 계속 억지를 부리신다면 만약 이 위키백과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곳이라면 귀하의 이번 행위는 분명히 방해 편집으로 제재를 받을 사항입니다. 이제 그만 자중하시지요.--Lhrdrth (토론) 2014년 3월 4일 (화) 20:39 (KST)

출처 요구 토론[편집]

1. 한사군 지도 출처 예 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지도를 만들 때 아틀라스 한국사를 출처로 하여 만들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위키백과는 원칙적으로 명확한 출처가 있는 자료만을 인정하며, 출처가 불분명한 내용은 아무리 멋지게 만든 것이라고 해도 삭제됩니다. 귀하가 그린 지도가 바로 그것이지요. 출처가 전혀 없이, 그저 자작이라고만 써 있는 지도. 명백한 위키백과의 출처 제시 의무를 어긴 게시물입니다. 당연히 게시될 수 없습니다. 2. 그럼 먼저 한겨레 기사 상에서 명백하게 모순을 일으키고 있는 내용부터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자체적으로 심각한 모순을 내포한 지도를 출처로 한 내용은 당연히 신뢰할 수 없습니다. 물론 귀하의 자작 지도는 그런 최소한의 출처조차 없으니 더 문제지요.--Xakyntos (토론) 2014년 3월 4일 (화) 23:55 (KST)

귀하야 남이 만든 지도를 가지고 사용했으므로 당연히 출처 표시가 필요하겠지요. 그런데 해당 한반도 지도는 분명히 개작시 "저작자나 이용허락자가 정한 방법으로 저작물의 원저작자를 표시하여야 합니다"라고 분명히 저작권 부분을 명시했는데 출처도 정확한 주소도 없이 막연히 "위키백과 상의 한반도 지도"라고 해서 해서 저작권자가 요구하는 정확한 출처를 달지도 않았고 제가 보기에는 하여간 문제가 많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는대로 귀하의 지도에 대해서 문제점을 파악하고 문제가 드러나면 삭제 및 파일 삭제 요청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저의 지도 문제로 돌아와서 도대체가 공인된 학설을 토대로 직접 그리고 문구를 써넣은 저의 순수 창작물인 저의 지도를보고 출처를 표시하라는 것도 말이 안되고(출처가 자작아닙니까?) 자꾸 한겨레 기사 모순 운운하시는데 이게 도대체가 무슨 말인지 정말로 이해도 안가는군요. 저는 북한의 낙랑군 위치에 대한 통설이 요하 유역설임을 많은 증거 자료를 토대로 제시했습니다. 이건 그냥 마음에 안드는 편집은 무조건 저지하려는 억지라고밖에는 생각이 들지않습니다. 지도 자체의 내용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자꾸 한겨레 기사가 모순이라서 문제라는 이해도 안가는 황당한 억지 트집을 자꾸 잡으니.. 하여간 귀하와는 더이상의 토론이 무의미할 것같으니 경고한대로 차단 요청을 조만간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5일 (수) 00:12 (KST)
억지 트집이 아니라 위키백과의 원칙이 그렇습니다. 무슨 내용이던 신뢰할 수 있는 출처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죠. 그런데 보십시오. 귀하의 지도에는 아무런 출처가 없습니다. 자작이라는 말 말고 대체 무슨 출처가 있습니까? 자작은 출처가 아니라 그냥 귀하가 만들었다는 말에 불과합니다. 귀하가 혼자서 뇌내망상을 하면서 자기 멋대로 지도를 만들었는지 누가 압니까? 제가 이런 지적을 한다면 부정할 수 있는 근거가 저 지도가 올라와 있는 위키백과의 기록 상에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전혀 출처가 아닌 자작이라는 두 글자 말고는 말입니다. 하다못해 귀하가 위에다 나열한 학자들의 주장이라도 출처로 제시해야 마땅한 겁니다. 물론 위 학자들의 주장이 담긴 명확한 지도가 아닌 이상 제대로된 출처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Xakyntos (토론) 2014년 3월 5일 (수) 09:12 (KST)
자꾸 억지를 부리시는데 저 지도의 내용은 이미 제가 인용한 박선희 교수님의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군의 위치에 대하여 그동안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왔다. 낙랑군의 위치에 대한 학계의 견해는 기존의 대동강유역을 중심으로 본 평양설과 북한학자들에 의해 대두된 요동설, 그리고 요서지역에 위치할 것으로 보는 난하설로 구분된다."라는 말씀 하나로도 명백히 입증되고 한국은 대동강 유역설이 통설, 북한은 요하 유역설이 통설, 그외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견해를 따른 요서 위치설로 나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아닙니까? 일단 귀하가 말씀하신 위키백과의 그 원칙이란 것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한 주소를 링크해주십시오. 제가 확인해서 만일 자작이라도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박선희 교수님의 견해를 출처로 달겠습니다. 박선희 상명대 교수님께서는 고대 복식사 연구의 권위자이시고 비교민속학회 이사, 고조선학회 부회장이시므로 그분의 견해가 신뢰할 수 있는 출처라는 것은 귀하도 차마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데로 귀하가 다른 사람이 만든 한반도 지도를 가지고 수정한 지도들은 저작자가 요구하는 방식대로 출처를 달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수정바랍니다.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저작권 위반을 이유로 삭제 편집하고 관리자에게 해당 지도들에 대해서 삭제 요청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5일 (수) 14:04 (KST)
그 말씀이 저 지도 파일의 기록 어디에 있습니까? 저 지도 파일이 올라와 있는 위키 미디어 공용에는 자작이라는 두 글자 말고는 다른 근거가 없습니다만. 위키백과는 엄연히 위키백과:출처 밝히기라는 대원칙을 통해 항상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제시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위키백과를 이용하면서 저 대원칙조차 읽어보신 적이 없는 것입니까?
그리고 박선희 교수의 견해는 출처로 부적합합니다. 지도의 근거는 지도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적어도 구체적인 세부 지역이 명시되어 구체적으로 위치와 강역을 확인할 수 있는 논문 정도는 되어야지요. 역사학자나 고고학자, 역사지리학자가 아닌 일개 복식사학자가 일개 신문기사에서 말하는 지리 비정에 대한 발언은 출처로서의 가치가 없습니다. 저 지도를 올리고 싶으시거든 저 지도의 원본이 되는 지도논문을 출처로 제시하십시오. 물론 그 지도나 논문이 제대로 학계의 검토를 받은 것인지를 추가적으로 확인해야 할 겁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3월 5일 (수) 16:56 (KST)
쓸데없는 시비를 피하기 위해서 그러면 제 지도에 박선희 교수의 견해를 출처로 넣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지도의 근거는 오직 지도라는 귀하의 주장은 억지입니다. 박선희 교수는 분명히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군의 위치에 대하여 그동안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왔다. 낙랑군의 위치에 대한 학계의 견해는 기존의 대동강유역을 중심으로 본 평양설과 북한학자들에 의해 대두된 요동설, 그리고 요서지역에 위치할 것으로 보는 난하설로 구분된다."라고 견해를 밝히셨고 그 견해는 분명히 제 지도와 일치합니다. 대동강 유역, 요동, 요서 지역 정도는 구분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개 복식 사학자의 주장이라고 비하하는데 박선희 교수는 앞서 말씀드린대로 신뢰할 수 있는 출처로서 부족함이 없는 경력을 가지신 학자분이십니다. 제가 출처로 추가하는 박선희 교수의 견해는 낙랑군 문서에 이미 신뢰있는 출처로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귀하도 살펴보면 알겠지만 위키백과 문서들의 출처에는 신문기사의 내용이 태반입니다. 자기 마음에 안든다고 일개 신문기사라고 부정할 것 같으면 위키백과 문서들 태반이 해당 출처들을 삭제해야하나요?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하십시오. 그리고 고대 복식사 연구의 권위자이시고 비교민속학회 이사, 고조선학회 부회장쯤 되시는 분의 견해가 신뢰할 수 없다면 도대체 귀하가 신뢰할 수 있는 견해는 무엇입니까? 이제 귀하가 요구하는 출처까지 지도에 추가하는 만큼 더이상의 이의는 억지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앞서 말씀드린대로 귀하가 다른 사람이 만든 한반도 지도를 가지고 수정한 지도들은 저작자가 요구하는 방식대로 출처를 달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수정바랍니다.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저작권 위반을 이유로 삭제 편집하고 관리자에게 해당 지도들에 대해서 삭제 요청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 경고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5일 (수) 20:02 (KST)
저는 이미 귀하의 지도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남한 학자의 발언(권오중 교수)을 직접 인용했습니다. 그러니 박선희 교수가 아니라 이병도가 살아 돌아와도 귀하의 지도에 대한 출처로는 부적합합니다. 애초에 윤내현 교수가 베낀 북한 리지린의 주장 자체가 요서설입니다. 명백하게 북한학계의 주요 학자인 리지린의 요서설이 엄존하고 있는데, 어떻게 요서설을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권오중 교수의 지적과 리지린의 학설만으로도 귀하의 지도는 잘못된 정보를 담고 있는 것으로 게시 불가입니다.
게다가 박선희 교수의 발언에는 요서설이 재야사학계의 주장이라는 말은 전혀 없습니다만.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귀하의 지도에 대한 출처가 될 수 없음은 명백합니다. 솔직히 그만 하시죠? 귀하가 한겨레 기사의 지도를 베꼈음은 너무나도 명백한데 말이죠. 그냥 차라리 한겨레 지도를 보고 그렸다고 하는게 더 낫습니다. 출처로 사용조차 할 수 없는 박선희 교수의 발언보다는 말입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3월 6일 (목) 01:44 (KST)
정말 억지가 너무 심하신데 저는 북한의 낙랑군 위치에 대한 통설이 요하 유역설임을 위에서 여러 가지 자료로 이미 증명했습니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상황입니다. 물론 박선희 교수님의 발언에서도 증명됩니다. 그리고 귀하가 하도 억지를 부려서 불필요한 시비를 없애는 의미에서 지도에 박선희 교수의 견해를 출처로 넣었지만 대동강 유역, 요동, 요서로 낙랑군 위치의 학설이 나눠지는 것은 엄연한 사실아닙니까? 저는 박선희 교수의 견해도 참고하고 이런 견해들을 종합적으로 참고해서 제가 직접 지도를 그린 것입니다. 해당 낙랑군 위치 학설이 한겨레 기사가 단독으로 주장하고 특허라도 낸 것입니까? 이제 그만 억지를 부리십시오. 그리고 이제는 하다하다 박선희 교수가 분명히 요서설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다시 말도 안되는 트집을 잡는데 그렇게 일일히 억지를 부려서 꼬투리를 잡는다면 귀하가 그린 한사군 지도야 말로 엉터리입니다. 저작권 부분에서도 이미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기는 하지만 귀하의 그 지도는 임둔군, 낙랑군, 진번군이 바다까지 영역을 차지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안그래도 한사군 한반도설이 많은 비판을 받아서 사실인지도 불명확한데 이런 엉터리 중의 엉터리가 어디 있습니까? 당장 수정하십시오. 이것은 너무나도 명백한 오류므로 저작권 문제를 떠나서 귀하의 지도는 사용이 불가능한 것은 명백합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박선희 교수의 견해를 출처까지 달았고 내용상 아무런 문제가 없는 지도를 작성했고 이런 아무런 문제가 없는 지도를 낙랑군 위치에 대한 이견을 소개하는 섹션에 삽입하는 것은 편집상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6일 (목) 12:46 (KST)
귀하가 제가 작성한 지도의 "요서 위치설(민족주의 사학)" 문구 부분에 또 터무니없는 트집을 잡고 있는데 이는 사실 일일히 대응할 가치도 없는 사항이지만 그대로 방치하면 귀하 특유의 물고 늘어지기식의 끝없는 무한 루프 토론에 빠질 우려가 있으므로 지도의 출처 추가를 통해서 쓸데없는 트집을 사전에 방지합니다. 민족주의 사학자이신 정인보 선생님께서는 "정인보 문집의 현토, 낙랑, 제현 분포도" 지도에서 낙랑군현인 누방, 둔유현등의 위치를 요서 지역에 표시하는 바 지도 출처에 "정인보 문집의 현토, 낙랑, 제현 분포도"도 추가하겠습니다. 이로서 제 지도는 신뢰할 수 있는 출처도 있고 내용 그자체도 더욱 아무런 문제가 없어졌으니 더이상의 쓸데없는 트집은 삼가하시기를 바랍니다. 솔직히 지금 귀하는 방해 편집에 해당되는 그 모든 행위로 정당한 편집을 끝없이 방해하고 있으며 그래도 저는 위키백과 지침에 따라 차단 신청 전에 최고의 인내심을 발휘하여 귀하를 설득 중임을 아셔야 합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6일 (목) 13:18 (KST)
귀하의 억지에 다시 쐐기를 박는 의미에서 또다시 증거 자료를 추가합니다. 조법종 교수는 "이야기 한국 고대사" 47페이지에서 "북한 학계는 여기서 더 나아가 낙랑군은 랴오둥의 카이펑(蓋平) 일대에, 낙랑국은 현재의 평양 일대에 존재했다고 본다."라고 했습니다. 蓋平은 지금은 蓋州로 불리고 위치는 요하의 동쪽 그러니까 명백히 지금의 요동지방에 위치합니다. 이책은 2007년에 출간됐고 따라서 낙랑군 위치 요하유역설은 현재 북한의 통설임이 다시한번 명백해졌습니다. 1960년대의 리지린 선생의 주장을 가지고 제발 억지를 부리지마십시오. 저는 계속해서 북한의 낙랑군 위치 통설이 요하 유역설임을 명백한 증거 자료로 계속해서 입증하고 있으니 더이상의 억지 주장은 이제 삼가하시기를 바랍니다. 얼마나 더 입증하고 얼마나 더 증거 자료를 제시해야 억지 주장을 그만 하시겠습니까?--Lhrdrth (토론) 2014년 3월 6일 (목) 15:45 (KST)
일단 박선희 교수의 발언을 출처로 제시한 시점 이후에 저의 출처 요구가 편집 방해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이전의 요구는 명백하게 위키백과의 대원칙에 따른 합당한 요구였음은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덧붙여, 사실 엄밀히 말해서 귀하가 단 출처는 내용을 써 놓고 뒤늦게 출처를 끼워 맞추는 행위에 해당합니다. 지도든 뭐든 위키백과에 내용을 서술할 때는 무조건 신뢰할 수 있는 출처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내용은 서술하는 그 순간 이미 합당한 출처를 바닥에 깔고 시작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귀하는 아무런 출처도 없이 지도를 만들어 올렸고, 뒤늦게 출처에 대한 지적이 나오자, 원래 지도를 만들 때는 전혀 참고하지도 않았던, 하지만 어쨌든 지도의 내용에는 맞는 출처를 부랴부랴 찾아서 올리셨습니다. 이걸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걸까요? 원래 위키의 대원칙에 상당히 어긋나는 것인데 말이죠.
어쨌든 뒤늦게, 실제 출처는 아닐지언정 출처로 인정은 할 수 있는 것을 추가하셨으니 지도의 수록에 대해서 더 이상은 왈가왈부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주의하십시오. 지켜보고 있을 테니.--Xakyntos (토론) 2014년 3월 7일 (금) 10:23 (KST)
그럼 제가 만든 지도를 낙랑군 문서와 한사군 문서에 추가하는 것에 이의가 없으신 것으로 알고 추가 편집하겠습니다. --Lhrdrth (토론) 2014년 3월 7일 (금) 12:25 (KST)

지도 수정 요청[편집]

해당 지도의 대동강유역설의 설명에 남한 학계 통설이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 문구가 틀렸음은 이미 제가 수차례 증거를 들어 밝힌 바 있습니다. 국제 학계 통설이라 고쳐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을 시에는 다시 삭제토록 하겠습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3월 7일 (금) 14:39 (KST)

남한 학계에서는 대동강 유역설이 통설이 맞으므로 수정하지 않겠습니다. --Lhrdrth (토론) 2014년 3월 7일 (금) 14:46 (KST)
그렇다면 삭제 대상입니다. 귀하가 단 출처는 기존 통설이라는 표현만 있을 뿐, 남한으로 한정짓는 문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수차례에 걸쳐 한중일은 물론이고 전세계 공통으로 낙랑군의 위치를 평안도,황해도 일대로 비정하고 있음을 보여드린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국제 학계 통설이라 고치기 바랍니다. 아니면 역사학계 및 고고학계 통설이라 고쳐 주십시오. 낙랑군 문제는 역사학계 하나만의 일이 아니며, 고고학계 역시 낙랑군 유적에 대한 비정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위와 같은 표현이 합당합니다. 그렇지 않을 시에는 문서 상에 노출되어서는 안됩니다. 고치겠다는 답변이 없을 시에는 문서 상에서 삭제토록 하겠습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3월 7일 (금) 14:56 (KST)
정말 계속 억지를 부리시는데 일단 귀하가 제시한 국제라는 범주가 불분명할 뿐더러 위키 백과에 올라온 지도 하나로 그것이 전 세계적으로 통하는 통설이라는 증거도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여간 쓸데없는 시비를 막기위해서 그러면 지도 출처에 남한의 통설이 대동강 유역이라는 자료를 추가하겠습니다. 해당 출처는 "송호정, 《단군, 만들어진 신화》, 산처럼, 2004"입니다. 이는 낙랑군 위키 백과에 국사학계의 의견으로 소개되고 있고 이는 아마도 귀하가 작성한 부분일 것으로 추정되므로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7일 (금) 15:12 (KST)
국사학계남한 학계를 구분할 줄 모르십니까? 한국사를 연구하는 학계를 국사학계라고 합니다. 이는 남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물론 제가 수차례 증거를 들어 보여드렸듯이 한중일 삼국은 물론 영미, 유럽권의 동양사학계, 한국사학계가 공통된 의견입니다. 이를 남한 학계라고만 표현하는 것은 명백하게 틀린 것입니다만? 이게 억지라고 주장하시려거든 귀하께서 한중일영미, 기타 유럽 등 국제 역사학계의 통설이 그렇지 않음을 증명하시면 됩니다. 방해 편집 운운도 통하지 않습니다. 명백하게 틀린 내용을 수정하라 요구하는 것이 왜 방해 편집입니까?--Xakyntos (토론) 2014년 3월 7일 (금) 15:47 (KST)
덧붙여, 하다못해 일본과 중국의 낙랑군 위치 비정이 남한과 같다는 것은 귀하도 똑똑히 알고 있을텐데 그럼 당연히 저 지도는 틀린 것 아닙니까? 일본·중국은 식민사학·동북공정이라 주장하시려거든 명명백백한 음모론이니 따질 가치조차 없습니다. 한중일 삼국만으로도 낙랑군 위치 비정이 남한 학계의 통설이라 표현하는 것이 틀린 것임은 명백하니 귀하의 지도는 삭제하겠습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3월 7일 (금) 15:52 (KST)
이성을 찾으십시오. 송호정이 남한학계의 주류가 아니면 누가 남한학계의 주류입니까? 그런 송호정의 의견은 남한학계의 통설이 당연합니다. 그리고 저는 귀하가 주장하는 국제학계란 것이 뭔지도 모르겠고 나는 남한학계의 통설이 대동강 유역설이라는 명백한 팩트를 가지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때 지금 귀하는 너무도 터무니없는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다. 남한학계의 통설이 대동강 유역설이 아니면 요하 유역설입니까? 양자강 유역설입니까? 제지도에 틀린 내용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일단 합의한 내용은 토론에서 제가 했듯이 합의점을 찾고 문서를 거기에 따라 편집하십시오. 이제는 정말로 방해 편집을 이유로 차단 요청 들어가겠습니다, 분명히 경고합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7일 (금) 17:22 (KST)
엄연히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세계 여러 동양사 및 한국사학계가 낙랑군을 평양 일대로 비정하고 있음은 명백한데 틀린 내용이 하나도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자칭 민족주의사학과 북한 학계를 제외하면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지지하는 학설입니다. 이를 남한 학계라고만 표기하는 것은 엄연히 틀린 것입니다. 제가 그 사실을 지적한 것이 벌써 한 달이 넘었습니다. 이는 억지도 아니고 방해 편집도 아닙니다. 애초에 틀린 내용에 대해 수정을 요구하는 것이 대체 왜 억지가 되며, 어떻게 방해 편집이 됩니까? 귀하가 먼저 그것을 증명하십시오. 차단 요청을 하실테면 해보시지요.--Xakyntos (토론) 2014년 3월 7일 (금) 17:49 (KST)
도대체 우리나라 위키 백과에서 우리나라에서 다뤄지는 학설(북한도 당연히 우리나라이므로)만 다루는데 무슨 말도 안되는 억지 트집입니까? 우리나라 위키의 우리나라 관련 역사 문제에서 왜 다른 나라의 학설까지 다뤄야하지요? 그리고 국제 학계 운운은 솔직히 이건 뭐 대응할 가치도 없는 억지지만 하도 기가 막혀서 상대해주는데 중국과 일본만큼은 낙랑군 평양설이 통설임은 인정합니다. 그런데 다른 나라들도 그렇다는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그걸 저더러 입증하라고 하시는데 그건 그런 의견을 제시한 쪽에서 입증해야 되는거 아닙니까? 그리고 증거라는게 기껏해야 다른 나라 위키백과 지도인데 그나라 위키백과가 그나라의 공식 사학계라도 됩니까? 그건 증거로서 너무나도 불충분합니다. 귀하는 한중일영미, 기타 유럽 등 국제 역사학계의 통설이라고 하셨는데 지구상에 나라가 한,중,일 밖에 없습니까? 영,미가 낙랑군 평양설이 통설이라는 증거를 제시하십시오. 물론 그 나라 위키백과가 그 나라의 공식 사학계가 아니므로 위키백과 지도는 증거가 안됩니다. 그리고 기타 유럽이라고도 하셨는데 유럽 국가인 폴란드, 스페인, 노르웨이, 아르메니아, 헝가리, 그리스 등이 낙랑군 평양설이 통설입니까? 그게 확인되지도 않는데 뭐가 기타 유럽 운운하십니까? 세계라고 하셨는데 아프리카의 말리, 이집트, 가나, 우간다도 낙랑군 평양설이 통설입니까? 중남미의 멕시코, 쿠바, 파나마, 브라질 등도 낙랑군 평양설이 통설입니까? 그리고 국제 학계의 통설이 되려면 지구상에 제가 알기로 160개 이상의 나라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나라들이 전부 낙랑군 평양설을 통설로 하고 있습니까? 제발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지마십시오. 솔직히 제가 이런 억지에까지 이런 글을 쓰면서 시간을 낭비해야되나 싶어서 정말 기가 막힙니다. 결론은 귀하가 말하는 소위 국제 사학계라는 것의 범주도 불분명하고 애당초 귀하의 주장 자체가 넌센스라는 것입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제 지도는 내용상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별다른 합리적인 반박이 없으시면 다시 추가 들어가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7일 (금) 19:46 (KST)
아직 모르시나본데, 이곳은 한국어 위키백과이지 한국 위키백과가 아닙니다. 엄연히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국가의 견해가 함께 같은 비중으로 다뤄지는 곳입니다. 단지 그 내용을 다루는 언어가 한국어일 뿐입니다. 이는 위키백과의 공식적인 정책입니다. 위키백과:위키백과에 대한 오해#위키백과는 특정 국가나 특정 집단을 대표하지 않습니다.도 읽어보시지 않은 것입니까? 대체 위키백과를 무엇으로 아는 겁니까? 위키를 하시려거든 최소한 위키백과의 대원칙 다섯 가지라도 좀 읽고 오십시오.
이처럼 위키백과는 한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 모든 국가의 이해관계가 모두 동등하게 다뤄지는 곳입니다. 그러니 하다못해 중국·일본의 통설만으로도 귀하의 남한학계 운운은 명백하게 틀린 내용입니다. 국제 학계로 수정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특정한 국가나 집단으로 한정짓지 않는 역사학계 및 고고학계라고 수정하십시오.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음은 역사학계는 물론 고고학계에서도 한목소리로 인정하는 사실이므로 귀하의 저 표현은 명명백백하게 틀렸습니다.
물론 국제 학계의 통설 역시 낙랑군 평양설입니다. 귀하가 떠벌인 모든 나라들의 한국사 및 한국학 연구는 모두 낙랑군 평양설을 정설로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혹은 한국사나 한국학이 아예 없는 나라들이죠. 그리고 한국학은 없더라도 거의 모든 나라가 동양사 자체는 연구하고 있으므로, 동양사의 중핵인 중국사 연구자들 역시 낙랑군 재평양설을 정설로서 받아들여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수많은 언어판 위키백과만으로도 충분히 증빙이 됩니다. 아니면 귀하가 아니라는 증거를 찾아보시던가요.--Xakyntos (토론) 2014년 3월 8일 (토) 01:16 (KST)
토론이 약간 과열되어서 제3자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한마디 거들겠습니다.
학계라는 것은 학자들끼리 교류하는 네트워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학계에서 다루는 내용은 학회지와 학술지에 모두 나오고, 이것들은 모두 위키백과에서 말하는 확인가능한 출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 학계든 아프리카 학계든 모두 위키백과 문서에서 인용될 수 있습니다. (인용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만일 한국학계의 주장과 중국학계의 주장이 배치된다면, 그 입장들이 둘 다 게재되어야 한다는 것이 위키백과의 백:중립성 정책입니다.
참, 그리고 위키백과 본문 자체는 확인가능한 출처가 아닙니다. (백:확인 가능#개인이 출판한 출처 (인터넷 또는 서적)) 그러므로 타언어 위키를 근거로 이용하고 싶다면, 해당 문서에 나오는 출처를 인용해야 합니다.
제안을 하나 하겠습니다. 학계라는 말을 많이들 하시는데, 막연한 “학계”라는 말보다는, 학회지나 학술지를 인용하시면 합의점을 빨리 찾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0k (토론) 2014년 3월 8일 (토) 02:41 (KST)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통설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어떤 개인 혹은 어떤 학술지를 출처로 기술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합의 가능할 것 같습니다. --케골 2014년 3월 8일 (토) 11:04 (KST)

여전히 치열한 곳이네요. 인신공격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자제해 주시니 좋아보이네요. 계속 그렇게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지도에 대한 출처가 지도안에 있는 픽셀 단위로 제시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정도의 유사성으로는 저작권 문제는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지도에 영역을 나타내는 것이 창작성이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위키백과 문서내의 서술과 일치하는 지도가 있으면 전체적인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점을 고려하여 논의를 문서 자체의 유용성에 대해 촛점을 맞추어 진행하시면 어떨까요? --케골 2014년 3월 8일 (토) 11:00 (KST)

그러면 10k님이나 케골님께서 일단 절충안을 제출해주십시오. 이 토론 문서를 봐서 아시겠지만 Xakyntos 사용자와는 더이상의 합의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집니다. 두분다 관리자님이시므로 관리자님의 절충안에 따라 파일을 수정한다면 더이상의 쓸데없는 분쟁은 없을 것입니다. 제가 이 문서에서 얼마나 이 사용자를 설득했는지는 확인이 되실 것이고 이제는 솔직히 피곤합니다. 그리고 Xakyntos 시용자가 위에서 확인되듯이 저보고 "귀하가 떠벌인"이라고 하여 인신공격적 발언을 했는데 주의나 제재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8일 (토) 13:46 (KST)
그럼 일단 제가 10k님이나 케골님의 제안에 따라 "어떤 개인"을 출처로 하여 요서 위치설은 "정인보", 대동강 유역설은 "송호정", 요하 유역설은 "손영종"이라고 표시를 하는 것이 어떨까 제안합니다. Xakyntos 사용자의 국제학계라는 말은 앞서서 제가 반론했듯이 도대체 국제학계의 범주 자체가 불분명하고 국제, 즉 세계가 낙랑군 평양설을 통설로 한다는 증거 그자체가 없으므로 말이 안되기 때문에 고려 대상 그자체가 안됩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8일 (토) 14:04 (KST)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개인을 출처로 하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 한다면 파일 출처란에 기입해야할 사항이 너무 많아지는 것 같아서

출토옷감서찾은 낙랑공주 '최리왕 낙랑국'

위 링크의 기사에서 보면 우리나라 고대 복식사의 권위자이시자 고조선학회 부회장이신 상명대학교 박선희 교수님께서는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군의 위치에 대하여 그동안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왔다. 낙랑군의 위치에 대한 학계의 견해는 기존의 대동강유역을 중심으로 본 평양설과 북한학자들에 의해 대두된 요동설, 그리고 요서지역에 위치할 것으로 보는 난하설로 구분된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견해를 출처로 하고 지도에는 "요서 위치설", "요하 유역설", "대동강 유역설"로만 문구를 기입하는 것이 좋을 것같습니다. 그러면 출처상으로도 전혀 이상이 없고 내용상으로 전혀 이상이 없이 완벽하게 될 것 같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8일 (토) 17:58 (KST)

학계 운운하는 내용을 삭제하는 것이라면 저도 동의하겠습니다. 명백하게 틀린 내용인 남한 학계라는 내용은 인정될 수 없으니까요.
덧붙여, 귀하도 알고 저도 알고 있는 한겨레 기사의 지도를 출처로 제시했으면 애초에 이렇게 복잡하게 논쟁을 벌일 필요도 없었던 일입니다. 귀하가 괜히 자존심 내세우느라 한겨레 기사가 아닌, 그리고 실제로 지도를 제작할 당시에 전혀 출처로 참고하지 않았던 출처를 뒤늦게 찾아다 덧붙여 넣느라 토론이 이렇게 산으로 간 것 뿐입니다. 앞으로는 출처에 좀 더 신경 쓰시길 바랍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3월 8일 (토) 19:27 (KST)
그러면 앞에서 밝힌대로 박선희 교수의 견해를 출처로 하고 지도에는 어느 학계 통설이라는 문구를 삭제하고 "요서 위치설", "요하 유역설", "대동강 유역설"로만 문구를 기입하여 만든 지도를 추가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분명히 이에 Xakyntos 사용자께서도 동의하신다는 의견을 밝히셨습니다. 그러나 앞서서 합의해놓고 또 번복하신 전례가 있기 때문에 해당 토론에 절충안을 제안해주신 관리자신 10K님이나 케골님의 확인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의 낙랑군 위치 학설 지도는 여러가지 의견을 종합적으로 참조하여서 그린 것이고 Xakyntos 사용자께서는 한겨레 기사의 모순성(저는 도대체 뭐가 모순인지 아직도 납득이 가지않습니다만)을 이유로 그 기사와 지도의 내용을 불신한다는 발언을 하셨는데 쉽게 해결이 되었겠습니까?--Lhrdrth (토론) 2014년 3월 8일 (토) 20:21 (KST)
위키백과는 한번 올린 파일을 올린 사람 마음대로 삭제도 할 수 없고 해서 일단 이 파일을 사용해도 되는지 의견을 Xakyntos 사용자께 묻고 싶습니다. 이 파일의 사용에는 동의하십니까?
http://dfgww3.dothome.co.kr/nagrangun2.jpg
--Lhrdrth (토론) 2014년 3월 8일 (토) 21:00 (KST)
두분께서 합리적인 토론으로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시니 조만간에 좋은 합의에 도달할 것 같습니다. 이번 토론을 통해서, 위키백과의 좋은 토론의 선례를 남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큰 기여가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여기 저기 너무 많이 끼어들어서 오해가 생긴 것 같습니다만, 케골 님은 관리자시지만, 저는 일반인입니다. Xakyntos님은 아시겠지만, 저는 단지 위키백과의 분쟁해결 정책, 특히, 어떻게 하면 분쟁을 예방하고, 일단 생긴 분쟁은 관리자 개입없이 잘 해결될 수 있을까에 관심이 있어서 여기저기 종종 둘러볼 뿐 입니다. 제가 여기 내용들을 둘러보고 든 생각은, 제3자의 절충안이 아니더라도, 두분이서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하실 것이란 점입니다. 단지, 오랜기간 논쟁끝에 두분이 약간 짜증이 나셔서 토론이 지연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마 제3자와 함께 페이스 조절을 하면 다시 원활한 토론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봅니다.
제 생각에, 지금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학계”라는 말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학계라는 말은, 학계가 아닌, 예를 들어 언론계라든가, 업계라든가 정치계에서 학자들의 견해를 인용할 때 쓰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문서와 특히 이 문서를 편집하시는 분들이 인용하는 문서들은 대부분 학계의 문서 뿐이고, 여기는 학계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학계라는 말은 “사람들”이라는 말과 다를 바 없는 말이고, 아주 막연한 말일 뿐입니다. 제 생각에, 여기 계신 분들의 경륜이라면, 막연한 “학계의 주장”이라는 말보다는, “xx나라 xx교수의 주장”이라고 말씀하셔도 서로 소통하는데 지장이 없고,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논점을 분명히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물론 출처는 꼭 밝혀 주세요)
그리고, 지금 여기서 논쟁이 계속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학계에서도 논쟁이 계속되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특히, 두분의 말씀을 보면, 남한, 북한, 중국 세 학계에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백:중립성 정책에 따르면, 위키 백과 본문에는 세 주장이 모두 나와야 합니다만, 현재 문서는 한 가지 학설로 통일된 것처럼 편집돼 있습니다. 이것은 명백히 중립성 정책을 위반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많이 찾아보지는 못했지만, 2007년에 목간을 해석한 논문 (제가 링크를 추가했습니다만)에서는 북한 학계의 학설들을 모조리 불신하고 있는데, 물론 한 학파에 속한 사람의 논문이므로 그렇게 주장할 수는 있지만, 위키백과의 문서는 그 입장을 그대로 반영해서는 안됩니다. 그 입장을 소개하면서, 북한 학계, 혹은 다른 나라의 학계의 학설들도 동등하게 소개하고, 최종 판단은 독자가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야 합니다. 제가 백:중립성 정책을 모두 여기서 소개하지는 못하지만, 아직 안보셨다면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절충안이 있으면 분쟁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될 거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리고, 가장 이상적인 상태는, 위키백과의 정책과 지침들이 그 절충안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위키백과 정책·지침들은 허술한 부분이 많아서, 도움이 안될 경우가 많습니다만, 지금의 문제는 백:중립성백:확인 가능 정책들을 통해서 어느 정도 실마리가 잡힐 것 같습니다. 혹시 이미 두 문서들을 보셨더라도, 다시 한번 보시고, 혹시 지금의 토론 내용 중에 결론을 낼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확인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백:확인 가능 지침에 신문기사에 대한 명백한 언급은 없는데, 이 부분은 해당 지침의 헛점이고, 이 점은 고쳐져야 할 것입니다. 정치 관련 문서에서는 신문기사를 출처로 이용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인데, 이 문서와 같은 학술 문서에서 신문기사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보통 신문기사에서 학술 관련 언급이 나올 때는 학자와 문헌이 같이 언급이 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런 경우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학자가 기고한 칼럼의 경우, 신문 칼럼은 엄밀한 출처를 요구하지 않고, 또 외부 초빙 칼럼의 경우 “이 칼럼은 우리 신문사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같은 단서 조항과 같이 게재되기 때문에 판단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신문의 학술 관련 기사를 얼마나 신뢰할지에 대해 통일된 의견이나 사례가 없으므로, 문제가 되는 신문기사를 케골 님 등 다른 분들과 함께 출처로 인정할 수 있을지 같이 논의해 보면 어떨까요? 어느 기사인지 링크를 제공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10k (토론) 2014년 3월 9일 (일) 14:36 (KST)
10k님의 좋은 의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지금 논의중인 문제는 위에서 보시면 아시겠지만 Xakyntos 사용자가 또다시 저의 제안에 합의를 하였습니다. 다만 이 사용자가 합의하고도 번복한 전례가 있어서 관리자이신 케골님의 최종 확인이 있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9일 (일) 15:22 (KST)
지도의 내용을 수정하여 추가하는 것에 다시 합의가 이루어졌고 관리자님도 바쁘신지 언제까지 확인을 기다릴 수 없으므로 수정한 지도로 다시 추가합니다. 추후에라도 관리자님의 확인이 있다면 좋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10일 (월) 12:56 (KST)

낙랑군 문서에 사용된 한사군, 대방군 파일의 저작권 표시 관련[편집]

해당 지도들을 제작한 Xakyntos 사용자는 그 지도를 제작하면서 가져다 쓴 https://ko.wikipedia.org/wiki/%ED%8C%8C%EC%9D%BC:Korean_Peninsula_topographic_map.png 이 지도의 저작자가 저작권란에

창작 – 저작물의 개작, 수정, 이차저작물 작성.

다음과 같은 조건을 따라야 합니다: 저작자표시 – 저작자나 이용허락자가 정한 방법으로 저작물의 원저작자를 표시하여야 합니다(그러나 원저작자가 이용자나 이용자의 이용을 보증하거나 추천한다는 의미로 표시해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분명히 조건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파일 설명란에 "위키백과 상의 한반도 지도를 밑바탕으로 직접 제작"이라고만 출처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히 해당 파일의 저작권자가 요구한 파일 사용의 조건에 어긋납니다. 우선 Ksiom이라는 원저작자를 아예 표시도 하지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저작권 위반이며, 설령 표시를 한다고 해도 "저작자나 이용허락자가 정한 방법으로"해야 합니다. 이는 파일 설명에 단순히 이름만 표시를 하느냐, 아니면 파일의 출처 링크를 포함하여서까지 표시를 하느냐, 아니면 개작한 파일에 원저작자의 이름을 삽입하느냐 등 여러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원저작자가 요구하는 "저작자나 이용허락자가 정한 방법"이란 것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이 파일을 저작권 문제없이 사용하려면 Xakyntos 사용자는 원저작자 Ksiom 사용자에게 이메일을 보내든지 하여 그가 원하는 표시 방법을 알아내고 그에 따라 원저작자를 표시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어쨌든 지금 상황으로는 명백히 저작권 위반이므로 저작자가 요구하는 방식대로 출처를 달기 바랍니다.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저작권 위반을 이유로 삭제 편집하고 관리자에게 해당 지도들에 대해서 삭제 요청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5일 (수) 20:33 (KST)

Xakyntos 사용자가 계속 이 문제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고의적으로 회피하고 있습니다. 이는 본 토론 문서 "이미지 삭제" 섹션에서 Xakyntos 사용자가 답변을 하고도 이 섹션에 대해서는 답변을 달지 않은데서도 확인됩니다. 계속 이 문제 제기에 대한 답변을 회피한다면 잘못을 인정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곧 해당 파일들을 저작권 위반으로 편집에서 삭제하고 파일 삭제 신청을 들어가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6일 (목) 12:53 (KST)
계속 이 부분에 대해서 답변이 없으신데 귀하 소개에 "소명" 의식까지 가지시고 이런 활동을 한다고 하셨고 낙랑군 문서를 포함한 일련의 문서에 대한 귀하의 집착을 보건데 귀하가 제작한 일련의 지도들을 삭제한다는 것은 차마 인간적으로도 못할 짓인 것 같아서 사실 처음부터 삭제까지 할 생각은 없었고(그랬다면 진작에 삭제를 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도 제가 삭제 편집을 하지 않겠고 따로 관리자에게 삭제 요구도 하지 않겠습니다. 하여간 저작권 표시 부분에 문제가 드러난 만큼 수정은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애당초 이 문제도 귀하도 처음에는 아무런 이의없다고 인정한 낙랑군 위치에 대한 학설을 그린 제 지도를, 제가 차단된 틈을 타서 귀하가 의도적으로 삭제하고 이후에도 방해 편집에 해당되는 행위로 그토록 집요하게 억지를 부리시지 않으셨다면 제가 이 문제를 애당초 제기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위키백과는 귀하 혼자만의 문서가 아닌 만인이 공유하고 편집할 수 있는 모두의 백과입니다. 앞으로는 귀하의 독단만을 지나치게 내세우셔서 지나친 편집 방해 행위를 하시는 일은 없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7일 (금) 12:23 (KST)
저작권 관련해서 안그래도 확인 중이니 신경쓰지 마십쇼. 그리고 계속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귀하의 지도는 엄연히 출처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삭제된 것입니다. 그것을 억지라느니 방해 편집이라느니 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행동입니다. 주의하십시오.--Xakyntos (토론) 2014년 3월 7일 (금) 14:24 (KST)
제가 애당초 삭제 편집을 하지않겠다고 했으나 귀하가 또다시 제가 만든 지도에 이의를 제기하는 행동을 하므로 저도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경고합니다. 내일 오전 12시까지 저작권 문제에 대해서 확실히 해결을 하십시오. 그렇지 않는다면 귀하가 https://ko.wikipedia.org/wiki/%ED%8C%8C%EC%9D%BC:Korean_Peninsula_topographic_map.png 이 파일을 가지고 만든 모든 지도 파일에 대해서 편집에서 삭제하도록 할 것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7일 (금) 15:18 (KST)
일단 귀하가 제작한 지도는 저작권 위반이 분명하므로 일괄 삭제합니다. 만약 되돌린다면 정당한 편집을 방해한 이유로 즉시 차단 요청들어가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7일 (금) 16:14 (KST)
참고로 귀하가 작성한 것으로 생각되는 대방군 문서의 "유적과 유물" 부분의 내용에 출처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는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달아야한다는 위키백과의 지침에 어긋납니다. 그래서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달 때까지 삭제합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7일 (금) 17:00 (KST)
그건 내가 쓴 것이 아닙니다. 삭제하시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십시오.--Xakyntos (토론) 2014년 3월 7일 (금) 17:50 (KST)
참고로 말씀드리는데 귀하가 원 저작자 Ksiom 사용자에게 이메일을 보내든지 하여 그가 원하는 표시 방법을 알아내고 그에 따라 원저작자를 표시해서 저작권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도
https://ko.wikipedia.org/wiki/%ED%8C%8C%EC%9D%BC:Hangunhyeon.PNG
이 파일은 사용이 불가합니다. 이유는 영역 표시가 터무니없는 엉터리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사군 자체가 워낙 정확한 설치 위치에 대한 이견도 많고 정확한 현의 위치도 모르므로 애초에 정확한 위치 자체를 표시한다는 것이 무리이므로 대충 위치가 맞다 생각되면 용인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귀하의 지도는 낙랑군, 진번군, 임둔군의 위치가 바다까지 영역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너무도 명백한 오류이므로 절대로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사용이 가능할려면 저작권 문제도 해결하고 아래의 지도와 같이 내륙까지만 영역을 표시하시기를 바랍니다.
http://www.coo2.net/files/sa090517-5.gif
--Lhrdrth (토론) 2014년 3월 7일 (금) 19:57 (KST)
출처를 인용하면 해결될 문제인 것 같군요. 그리고, 타원에 바다가 포함된다고 해서 그림 전체를 삭제하라는 것은 지나친 것 같습니다. 말씀하셨다시피 고대사 지도에서 영역표시는 대략적인 영역만을 표시할 뿐이므로, 보는 사람도 대략적으로 인식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타원에 바다가 포함되어서 미적으로 안좋을 수는 있지만, 지도 자체가 주는 정보에 비해 미적 결함은 미미한 것입니다. 내륙까지만 그린다면 수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오류를 더할 위험이 더 많습니다. 만일 다른 사용자가 더 정확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시면 아주 좋을 것입니다. 그 전까지는 현재 그림이 필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으므로 유지하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10k (토론) 2014년 3월 8일 (토) 02:24 (KST)
물론 출처를 인용하면 당연히 100% 해결됩니다. Xakyntos 사용자가 원저작자 Ksiom 사용자에게 이메일을 보내든지 하여 그가 원하는 표시 방법을 알아내고 그에 따라 원저작자를 표시하면 당연히 해당 파일들의 사용에 아무런 이의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도 영역 표시 부분에 있어서 전반적으로 10k님의 말씀에 동감합니다. 고대사 지도에서는 당연히 대략적인 영역만을 인식합니다. 그런데 보시면 아시겠지만 ::https://ko.wikipedia.org/wiki/%ED%8C%8C%EC%9D%BC:Hangunhyeon.PNG 이지도는 임둔군 영역에서 지나치게 바다쪽으로 영역을 훨씬 많이 표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략적인 영역을 인식하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심각한 오류입니다. 그러므로 이부분은 반드시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8일 (토) 13:52 (KST)
파일:Korean Peninsula topographic map.png 해당 그림파일을 보니, 그 아래에 이 문서는 GNU라이선스와 CC라이선스가 있어서 이용자가 원저작자만 표시하면 자유롭게 수정·재배포 할 수 있다고 나오는군요. 따로 이메일을 할 필요 없이, 원저작자 이름만 추가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해당 지도의 오류가 지나치기 때문에 없는 것이 있는 것보다 유리할지 아닐지는 함께 판단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바다로 조금 많이 치우쳤다 하더라도, 해당 군의 위치는 어느 정도 정확하게 전달이 되므로 삭제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봅니다. 나중에 다른 능력자가 나타나서 더 정확한 지도를 제공할 때까지는 유지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의 의견도 궁금합니다. --10k (토론) 2014년 3월 9일 (일) 14:41 (KST)
해당 파일의 라이센스 문제는 단순히 원저작자의 이름만 표시한다고 해결된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위키백과에 다양한 유형의 자료들이 추가되는 것이 위키백과의 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하므로 지도 추가 자체는 결코 반대하지는 않습니다만 저작권에 위반되는 자료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기에 신중을 기하자는 입장입니다. 만약 저작권이 확실하지 않은 자료를 썼다가 저작권자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는 등 위키백과가 추후 곤란을 겪을 우려도 있습니다. 이 파일의 경우는 분명히 저작권 부분에 "저작자나 이용허락자가 정한 방법으로 저작물의 원저작자를 표시"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파일 설명에 단순히 이름만 표시를 하느냐, 아니면 파일의 출처 링크를 포함하여서까지 표시를 하느냐, 아니면 개작한 파일에 원저작자의 이름을 삽입하느냐 등 여러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따라서 원저작자가 표시하기를 원하는 방법으로 출처를 표시해야만 합니다. 현재로서는 그것이 뭔지는 원저작자에게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알 수가 없으므로 가능하면 직접 확인하는 방법이 가장 좋고 그렇지않다면 위키백과 관리자분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그 결정에 따라 원저작자를 표시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어쨌든 지금 상태로는 저작권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으므로 사용이 불가하다고 판단됩니다. 그리고 지도의 위치 표시 문제는 임둔군의 경우 전체 영역의 무려 40%가량이 바다로 표시되어 있어서 행여 잘못된 정보를 제공할 우려가 크므로 이부분만큼은 수정이 되야한다고 생각됩니다. 다른 분들의 의견을 저도 기다리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9일 (일) 15:33 (KST)
이건 틀렸다고 할 만한 게 아닙니다. 중심지를 기점으로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를 '대충' 그린 것인데, 경계가 불명확할 때에는 이렇게 대충 그리는 게 보통입니다. 말로 표현하면 “낙랑군의 영역은 지금의 평양직할시의 중심을 기준으로 대략 100 km 가량(이거 아무 수치나 댄 겁니다 - 진짜 100 km 가량이라고 생각해서 적은 게 아니고)이다”라고 할 내용을 지도로 그린 겁니다. 세밀하게 그리는 것은 경계가 명확할 때에 가능한 겁니다.--Synparaorthodox (토론) 2014년 3월 10일 (월) 10:35 (KST)

Synparaorthodoxs님의 말씀이 틀렸다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만 저 경우는 바다쪽으로 너무 영역이 많아서 어쨌든 이부분은 수정을 하는 것이 낫지않나 판단됩니다. 바다가 임둔군의 영역이 아님은 명백한 사실 아니겠습니까? --Lhrdrth (토론) 2014년 3월 10일 (월) 12:49 (KST)

지나가던 사람입니다만 지금 본문 내용 등을 보면 낙랑군을 포함한 당시 4군이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도 정설이 없고 의견이 분분한 상황"으로 파악됩니다. 이것은 곧 대략적인 위치만 파악되었다는 것이므로 그렇다면 지금 그림과 같이 대략적인 추정되는 위치를 보여주면 백과사전으로서 충분한 설명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 문제로 제시하고 있는 바다를 많이 포함했다 안했다문제를 가지고 물고 늘어지는 것은 소모전을 이어가겠다라는 생각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당시 시대에는 '영해'라는 뚜렷한 개념이 잡히지 않았을 시절이기 때문에 바다를 포함하고 안포함하고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낙랑군 위치에서 중요한건 '육지 부분의 대략적인 영역'이지 '포함되는 바다'인건 아니잖습니까? 정리하자면 지금 Lhrdrth님이 주장하시는 것은 제3자가 보기엔 불필요한 소모전으로밖에 보이지 않다고 생각됩니다.--커뷰 (토론) 2014년 3월 10일 (월) 13:05 (KST)
불필요한 소모전을 벌이자는 의도는 아니었고, 알겠습니다. 3분이나 바다 영역 표시 문제에 대해서 괜찮겠다는 의견을 보여주셔서 저도 앞으로는 바다 영역 표시 문제에 있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10일 (월) 13:41 (KST)

저작권 표기를 완료했습니다. 한군현 지도, 현도군 지도, 한군현 지도2 모두 원본이 되는 배경 한반도 지도의 라이센스를 동일하게 표기하여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Unported의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4월 8일 (화) 14:05 (KST)

도대체가 말이 안되는 주장을 하고있는데 말입니다. 귀하가 지도들을 제작하면서 가져다 쓴 https://ko.wikipedia.org/wiki/%ED%8C%8C%EC%9D%BC:Korean_Peninsula_topographic_map.png 이 지도의 저작자가 저작권란에
창작 – 저작물의 개작, 수정, 이차저작물 작성.

다음과 같은 조건을 따라야 합니다: 저작자표시 – 저작자나 이용허락자가 정한 방법으로 저작물의 원저작자를 표시하여야 합니다(그러나 원저작자가 이용자나 이용자의 이용을 보증하거나 추천한다는 의미로 표시해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분명히 조건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귀하는 지금 이 조건을 하나도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동일 라이센스 표기만이 조건이 아니라 분명히 저작자표시 – 저작자나 이용허락자가 정한 방법으로 저작물의 원저작자를 표시하여야 합니다라는 조건이 있습니다. 심지어 https://ko.wikipedia.org/wiki/%ED%8C%8C%EC%9D%BC:HangunhyeonCE300s.PNG 이 파일은 저작권자의 이름조차 밝히지 않고 "배경 지도 저작권"이라고만 하고 있는데 뭐가 저작권 표기를 완료했다는 것입니까? 이는 명백한 저작권 위반이며 저작권 위반인 파일을 사용하는 것은 위키백과의 원칙에 위배되므로 당장 삭제하십시오. 도대체 귀하가 무슨 저작권 표기를 완료했다는 것입니까? 귀하가 계속 이런 억지 주장으로 정당한 편집을 방해하면 차단 요청들어갈 수밖에 없음을 밝힙니다.--Lhrdrth (토론) 2014년 4월 8일 (화) 14:42 (KST)
저작권 표시 지침에 맞춰 저작권을 표기하였습니다. 더 이상의 논란은 불필요합니다. 영문이라 읽기 어려우시거든, 지도의 파일 설명에 써 있는 것을 자세히 보시길 바랍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4월 8일 (화) 15:01 (KST)
저작권 문제만 해결된다면 귀하가 제작한 지도들의 사용에 절대로 반대하지 않습니다. 지금 귀하의 주장이 타당한지는 당장 확인될 문제가 아니므로 일단은 시간을 갖고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4월 8일 (화) 15:33 (KST)
하여간 이 문제는 귀하의 일방적인 주장만으로 쉽게 용인할 문제가 아닙니다. 저작권 문제가 있는 파일을 잘못 사용했다가 위키백과에 손실을 끼칠 수도 있는 문제이므로 일단 귀하의 주장이 맞는 것인지 저작권 문제가 없는지에 대해서 문서 보호 요청에서 관리자분들을 비롯한 여러 사용자들의 의견을 묻도록 하겠습니다. 거기서 문제가 없다고 결론나면 저도 그대로 용인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귀하도 이를 받아들이고 파일을 삭제하시기를 바랍니다.--Lhrdrth (토론) 2014년 4월 8일 (화) 15:57 (KST)

박선희 교수 주장의 수록 수준[편집]

1. 학계 전반에 걸쳐 지지를 받고 있는 오영찬 교수의 학설과 극소수의 재야사학자를 제외하면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박선희 교수의 주장은 당연히 그 수록 수준에 차등을 두어야 합니다. 해당 신문기사는 박선희 교수의 일방적인 주장만 담고 있을 뿐, 신문기사의 기고 내용만 가지고 “XXX로 드러나 XXX하다는 증거”라고 서술될 근거 자체가 전무합니다. 당연히 이러한 주장은 일설의 하나로 취급될 가치만 있을 뿐입니다. Lhrdrth 사용자의 생각에는 박선희 교수의 주장이 모든 것을 명백하게 밝힌 것인지는 몰라도, 학계에서는 전혀 그렇게 취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귀하처럼 단정적으로 서술하는 것은 명백하게 위키백과의 원칙에 어긋나는 잘못된 서술입니다. 2. 명백하게 잘못된 사실이 잠깐이라도 노출되는 것을 용납하는 것은 위키백과의 원칙에 어긋납니다. 당연히 토론을 거치려면 최소한 잘못된 사실은 아닌 상태가 노출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Lhrdrth 사용자의 되돌림이야말로 오히려 반달 행위에 해당합니다. 관리자의 조치가 필요한 것은 귀하입니다. 자중하시기 바랍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3월 22일 (토) 01:37 (KST)

박선희 상명대 교수님은 고대 복식사학계의 권위자이시고 백산학회 이사, 비교민속학회 이사, 고조선학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계시는 분으로서 일개 학예사에 불과한 오영찬과 비교될만한 분도 아니고 주장에 차등을 두어야 한다는 귀하의 발언은 전혀 고려의 가치가 없습니다.
그리고 박선희 교수님의 견해는 북한 학계의 연구와 일본 교도섬유대학의 과학적 분석 결과에 토대를 둔 것이므로 박선희 교수의 일방적인 주장만 담고 있다는 귀하의 주장은 잘못이며 이런 과학적 연구 결과를 토대로 대표적인 고대 복식사학계의 권위자가 치밀한 분석으로 내린 결론을 근거가 없다라고 주장하고 잘못된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귀하의 억지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평양 낙랑 구역 무덤에서 출토된 직물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고조선 고유의 것으로 드러나 낙랑군이 평양에 없었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제시되었다.'는 서술은 완벽하게 합당하므로 수정 불가입니다. 귀하의 이런 주장은 낙랑군 편집 역사에서 220.78.65.247 사용자께서도 명백한 편향성 편집이라고 지적하시고 정상으로 복구하셨으므로 자중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이 토론 과정이 합의도 되지않았는데도 기존의 서술된 내용을 한번만 더 일방적으로 되돌리면 문서 보호, 사용자 차단의 등의 조치를 요구할 것임을 분명히 경고해두니 유의하시기를 바랍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22일 (토) 12:44 (KST)
참고로 귀하가 작성한 명백하게 잘못된 사실이 현재 낙랑군 문서에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엄연히 한나라 때라고 시기를 명백히 밝히는 요사의 기록을 위나라 때의 기록과 혼동했다고 작성하는 등 지금 당장 수정해야할 사안이 한두개가 아님을 밝힙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22일 (토) 12:57 (KST)
방금 보니 Asadal 사용자께서도 귀하의 잘못된 편집을 되돌렸습니다. 귀하의 독단과 억지로 인한 되돌림으로 많은 분들이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니 더이상 낙랑군 문서를 귀하의 개인 문서처럼 귀하의 독단으로 마음대로 편집하는 일은 자중하기바라며 이는 명백한 방해 편집이고 제재 사유라는 것을 인지하시기를 바랍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22일 (토) 13:04 (KST)
제가 되돌린 것은 맞지만, 윗 글처럼 Xakytos 님이 방해 편집 또는 제재 사유라고 생각해서 되돌린 것은 아닙니다. Xakyntos 님의 주장이 다소 편향적인 면은 있지만, 대체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용자로 알고 있습니다. 해당 문단을 되돌린 이유는 오영찬 교수의 경향신문 기사가 출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Xakyntos 님이 출처가 없다고 잘못 생각하여 삭제하였길래, 제가 되돌린 것뿐입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4년 3월 22일 (토) 13:13 (KST)

저도 박선희 교수의 기사 내용을 읽어보았습니다. 학계의 권위 있는 논문이므로 위키백과에 해당 내용을 편집하여 올리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다수설인지 소수설인지를 따져서 적절한 비중으로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4년 3월 22일 (토) 13:08 (KST)

Xakyntos 사용자는 편집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자기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기존의 내용을 합의도 되지않은 상태에서 마음대로 독단적으로 편집하고 있으므로 이런 행위가 계속 되면 당연히 관리자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22일 (토) 13:16 (KST)
박선희 교수의 논문들을 봤는데, 특히 낙랑군 비단 관련 2009년 논문이 게재된 저널은 주류라고 하기는 부족해 보이는 단군학회에서 발간한 저널이더군요. 그래도, 해당 저널의 심사규정을 보면, 피어리뷰로 심사를 한다고 써 있으므로 (피어리뷰는 어려운 게 아닙니다) 위키백과에 출처로 인용되기에는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2009년 논문 자체를 볼 수는 없었지만 (가격 6500원) 초록을 읽어 보면 낙랑에서 발견된 비단이 고조선 누에의 고치로 만든 비단이었고, 한나라 비단보다 고급이었기 때문에 낙랑 지역이 한사군의 하나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상당한 헛점이 보이지만, 그래도 출처가 분명하고, 학술적으로 흥미롭기 때문에 위키백과에서 충분히 언급될 가치가 있는 연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이 논문만을 가지고 “낙랑이 한사군이 아님이 입증되었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10k (토론) 2014년 3월 22일 (토) 15:12 (KST)
Xakyntos 사용자가 방금 편집을 무단으로 되돌렸기에 당장 관리자에게 조치를 요구하려고 했으나 10k님께서 "박선희 교수는 평양 낙랑 구역 무덤에서 출토된 비단들이 모두 조선 누에 비단이고 중국 누에 비단은 전혀 발굴되지 않았음을 근거로 낙랑 구역이 낙랑군이 아님을 주장했다."라고 새롭게 편집을 하셨더군요. 뭐 완벽히 만족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정도면 제가 먼저 서술한 내용과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되므로 동의하겠습니다. 단, Xakyntos 사용자의 서술은 명백한 비중립성 편향에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내용이므로 만약 자신의 서술로 편집을 되돌린다면 이번에는 발견 즉시 관리자에게 조치를 요구하도록 하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22일 (토) 15:41 (KST)
1. Lhrdrth 사용자는 10k님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10k님의 편집은 제가 한 수정과 전혀 차이가 없는 수준이며, 명백하게 입증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귀하의 잣대라는 것이 문서의 옳고 그름은 관계 없고 보고 싶은 것만 취사선택해서 보고 있는 수준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군요. 게다가 저의 설명은 철저하게 무시하다가 다른 사용자가 개입하면 그제서야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은 보기 좋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정치적으로 행동 하시는 것, 참으로 위험한 행동입니다. 앞으로도 주목할테니 주의하십시오.--Xakyntos (토론) 2014년 3월 24일 (월) 09:20 (KST)
귀하의 서술은 명백한 고고학적 증거를 "판단"이라고 격하하고 "~라는 주장도 있다"라고 하여 마치 아무런 근거없는 일개 주장으로 격하하려는 의도가 명백해서 그 의도적인 비중립성 편향에 있어서 10k님의 편집과는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도대체 뭐가 한발 물러서고 정치적으로 행동한다는 말입니까?--Lhrdrth (토론) 2014년 3월 24일 (월) 12:53 (KST)
10k님의 말씀 못 보셨습니까? 10k님께서 보시기에도 상당한 헛점이 보인다고 말할 만큼, 해당 논문은 신뢰성이 형편없습니다. 이미 수도없이 말씀드렸다시피, 박선희, 윤내현 등의 주장은 학계에서 아무도 취급 하지 않습니다. 학계에서 전혀 검토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수준의 주장을 명백한 고고학적 증거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입니다. 주의하십시오.--Xakyntos (토론) 2014년 3월 24일 (월) 13:05 (KST)
다른 분들은 신뢰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수준 높은 논문을 신뢰성이 없다라고 격하하고 학계에서 전혀 검토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수준의 주장이라는 것은 전혀 고려의 가치조자 없는 귀하의 일방적 주장이고 그런 식이라면 제가 보기에는 이병도, 오영찬의 주장들이야말로 자의적인 해석과 오류에 입각한 신뢰성이 전혀없는 형편없는 주장에 불과합니다. 뭐가 언어도단이고 주의하라고 하시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24일 (월) 13:12 (KST)
다른 분들은 신뢰성이 있다고 판단’이라 말씀하시는데 그게 대체 누구인지부터 밝혀 주십시오. 하다못해 바로 윗 문단의 10k님 조차도 상당한 헛점이 보인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누가 대체 박선희 교수의 논문이 신뢰성 있다고 판단했다는 겁니까? 엄밀히 말해서 이 토론 전체에 걸쳐 박선희 교수의 주장에 대한 신뢰성 문제를 언급한 사람 자체가 저와 귀하, 10k님 말고는 없습니다. 그런데 대체 어떤 다른 분들께서 신뢰성이 있다고 판단하였습니까? 이것부터 좀 해명해 주시지요.--Xakyntos (토론) 2014년 3월 24일 (월) 13:55 (KST)

자꾸 본의아니게 아사달님을 언급해서 죄송하지만 그분도 "학계의 권위 있는 논문"이라고 했습니다. 이게 신뢰성이 있다는 말이 아니고 뭡니까? 어쨌든 이 문제도 이제 해결이 됐고 귀하와의 의미없는 말싸움은 이제 그만하도록 하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24일 (월) 15:48 (KST)

낙랑군 평양설 문헌 보강 부탁합니다[편집]

낙랑군 평양설이 주류 사학계에서 통용되는 학설인 것 같은데, 현재 위키백과에는 문헌이 너무나 빈약합니다. 이병도의 책 하나만 나오고 있어서, 이 문서만 보면 평양설이 소수설인 것처럼 나오고 있습니다. 평양설 관련 문헌을 보강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0k (토론) 2014년 3월 22일 (토) 15:49 (KST)

이미 낙랑군 문서는 낙랑군 평양설의 입장에서 서술되고 있습니다. 이병도말고도 오영찬의 주장도 굉장히 많이 반영되고 있습니다. 낙랑군 평양설은 현재 여러가지로 많은 비판을 받는 학설이라 이정도면 충분히 고려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22일 (토) 15:57 (KST)
이건 좀 어폐가 있는 말인데, 낙랑군 평양설 문헌이라는 것은 사실 많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낙랑군이 평양이었다는 것은 이미 삼국시대 고구려인의 입으로도 언급되는 상식이자 명징한 사실이었고, 지금까지 쭉 이어진 당연한 지식입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무렵에 이루어진 고고학 발굴 조사를 통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로서 판명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이미 낙랑군이라는 큰 단위의 행정구역의 위치에 대한 고증은 완료되었기 때문에 이후에 낙랑군의 위치가 평양임을 밝히는 논문이나 문헌은 더 이상 나올 필요가 없습니다. 반면 학계에서 전혀 인정되지 않고 있는 요동설이나 요서설은 자신들이 정설에 도전하는 입장이니 온갖 증거를 들이대며 많은 문헌과 자료를 쏟아낼 수밖에 없는 입장이죠. 이는 주류 학설과 소수설·음모론이 서술될 때 항상 생기는 문제점입니다. 창조설을 주장하는 문헌들이 아무리 쏟아져 나와도, 진화론은 그 문헌들을 일일히 반박할 필요가 없는 것과도 같은 이치입니다.
정리하자면, 이병도 이후로 낙랑군이 평양이라는 사실은 확증되었기 때문에 이를 재검토하는 문헌은 원래부터 없습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3월 24일 (월) 09:27 (KST)
뭐 귀하의 개인적인 주장에까지 일일히 끼어들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고고학적 증거와 문헌 사료적으로 이미 사장. 폐기된 것이나 다름없어 가장 통설로 구성되는 국사 교과서에조차 직접적인 언급이 기피되는 낙랑군 평양설을 진화론, 그에 반박하는 정교한 학설들을 창조론에 비유하시다니 정말 황당함을 금치 못하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24일 (월) 12:58 (KST)
저야말로 귀하의 말도 안되는 주장에 일일히 대꾸하고 싶지도 않습니다만, 국편위, 국립중앙박물관 기타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의 모든 동양사·한국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낙랑군의 위치를 고작해야 국사교과서 하나를 가지고 사장 폐기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정말 헛웃음만 나오네요. 수도 없이 말씀드렸습니다. 귀하의 말씀대로 사장·폐기된 학설이라면 폐기되었다는 증거를 가져오시면 됩니다. 증거도 제대로 가져오지 못하면서 말로만 그렇게 떠들어봤자 웃음거리밖에 안됩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3월 24일 (월) 13:14 (KST)
제 토론 문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무리 증거를 보여드려봤자 무슨 음모니 사기니하면서 무시하실 것이 뻔하고, 귀하가 아무리 일방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셔도 낙랑군 평양설은 예전부터 현재까지 여러가지로 많은 비판을 받는 학설이고 제 생각에는 국사 교과서에서조차 언급이 기피되는 사장, 폐기된 학설에 불과합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24일 (월) 13:20 (KST)
귀하가 보여준 것은 부정설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입니다. 게다가 제가 그것들을 모두 하나하나 논파하였는데 누가 무엇을 어떻게 무시했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귀하께서 아무리 그렇게 생각하셔봤자 위키백과에서는 아무도 신경도 안쓰고 아무런 효력도 없습니다. 아무리 손가락 아프게 키보드를 두들겨봤자 토론 페이지만 늘어날 뿐입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3월 24일 (월) 13:57 (KST)

모두 하나하나 논파했다는데 저의 토론 문서에서 귀하와 저의 토론을 보신 분이라면 참으로 어이가 없으실 듯 합니다. 뭐 귀하가 말씀하신대로 이런 말싸움이야말로 "위키백과에서는 아무도 신경도 안쓰고 아무런 효력도 없습니다. 아무리 손가락 아프게 키보드를 두들겨봤자 토론 페이지만 늘어날 뿐입니다."이니 저는 이제 그만하도록 하지요.--Lhrdrth (토론) 2014년 3월 24일 (월) 15:51 (KST)

Xakyntos 님 편집의 문제점[편집]

굳이 거론하지 않으려 하였으나, 이번 편집 분쟁을 제3자적 입장에서 옆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어서 글을 적습니다.

1. Xakyntos 님의 편집은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 편집입니다. 자신의 관점과 맞지 않으면 설령 출처가 있더라도 그 출처까지 포함하여 모두 삭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2014년 3월 21일 (금) 11:04‎ Xakyntos (토론 | 기여)‎ . . (17,316 바이트) (-1,850)‎ . . (→‎성격: 출처 없는 내용, 제시된 출처에는 해당 내용이 전혀 없음) (편집 취소 | 감사)
편집 역사에 저렇게 기록한 뒤, 오영찬 이화여대 교수의 경향신문 기사 인용 문단 전체를 삭제했습니다. 제가 찾아보니, 제시된 출처에 해당 내용이 존재하고 있어서, 해당 문단을 복원하였습니다.
2. Xakyntos 님은 전체 문단 중 극히 일부분에 문제가 있으면, 해당 부분만 수정하지 않고, 자신의 견해와 맞지 않는 문단 전체를 삭제해 버립니다.
제가 복원한 인용 문단을 Xakyntos 님이 다시 삭제하였더군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삭제한 이유를 적어두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 2014년 3월 22일 (토) 15:19‎ Xakyntos (토론 | 기여)‎ . . (18,093 바이트) (-1,129)‎ . . (→‎성격: 기사를 자세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요동,요서 운운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교묘하게 내용을 변조한 편집입니다) (편집 취소 | 감사)
이 지적은 타당한 말일 수 있습니다. 즉, 해당 기사에 요동, 요서 운운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해당 문단을 되돌린 것은 전체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오영찬 이화여대 교수의 글을 복원한 것이지, 전체 글 중에서 극히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내용(Xakyntos 님의 말을 빌자면, 교묘하게 내용을 변조한 편집)을 복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해당 부분을 삭제하면 될 일인데, 그 부분이 포함된 문단 전체를 또 삭제해 버렸습니다. 그 와중에 명백히 출처가 존재하는 오영찬 이화여대 교수의 경향신문 기사 인용 부분 전체가 삭제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해당 부분을 되살려두었습니다. 10개 중에 1개가 문제가 있으면, 그 1개를 지적하면 됩니다. 그 1개를 빌미로 나머지 9개의 내용까지 모두 삭제하는 것은 좋은 편집이 아닙니다. 게다가 그 나머지 9개의 명백한 출처가 있는 내용이, 본인의 생각과 다른 내용일 경우, 오해를 받지 않도록, 더욱 신중하게 처리했어야 합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4년 3월 22일 (토) 17:00 (KST)
Xakyntos 사용자와 항상 분쟁이 있는 입장에서 해당 사용자의 문제점을 말이 나온 김에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아사달님을 저의 편으로 생각해서 이러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무슨 오해가 있을까봐 이 부분은 미리 명백히 밝혀둡니다. Xakyntos 사용자는 사용자토론:Xakyntos/2013년 여기와 저의 토론 문서, 그리고 여러 문서의 편집 과정에서 확인되듯이 지나치게 자신만의 독단을 절대시하면서 다른 사용자의 의견을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인양 무시하면서 마음에 안드는 편집에 대해서는 지나친 트집과 억지로 반달과 문서 훼손이라고 볼 수 있는 되돌림을 일삼고 있습니다. 지금 있는 저와의 편집 분쟁에서도 토론을 거치지않고 막무가내로 자신의 의견만을 주장하면서 반달을 일삼고 있는데 이런 행동은 자중하시기를 바랍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22일 (토) 17:36 (KST)
일단 오영찬 교수의 주장이 본인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밝힙니다. 해당 편집을 할 당시 원문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요동, 요서 운운하는 내용을 제멋대로 끼워넣은 악질 편집에 짜증이 나 있는 상태였던지라 그냥 통째로 되돌려버린 것입니다. 이에 대한 아사달 님의 지적은 타당한 것입니다. 다만 엄밀히 말해서 해당 내용은 성격이라는 소주제에 부합되지 않는 내용인데다 문장도 어울리지 않고, 신문기사를 그대로 베껴 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저작권 문제도 있습니다. 그래서 삭제한 뒤 적절한 위치로 옮기고 내용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을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간 계속 바빠서 이를 제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으므로 무조건적인 삭제로 비춰질 수 있었다는 점은 통감합니다. 이 부분은 주의토록 하겠습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3월 24일 (월) 10:30 (KST)
예, 이렇게 답변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전부터 Xakyntos 님의 해박한 역사 지식을 부러워하는 한 사용자로서, 이번 낙랑군 토론이 건설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위에 제가 지적한 내용은 어떻게 보면 사소한 사항일 수도 있는데, 제가 너무 크게 문제를 삼은 것 같아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기여와 토론을 기대하겠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4년 3월 27일 (목) 01:13 (KST)

위치 논란에 대한 주류 학계의 반론[편집]

1. 해마다 수도 없이 재생산되는 소수설에 대해서 주류 학계 차원에서 하나 하나 논박이 없다고 해서 주류 학계가 반박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판단일 것입니다. 이미 아래에서 서술했다시피, 진화론은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창조설의 무가치한 주장을 일일히 반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정상적인 사고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진화론 측의 무대응이 창조설에 대한 패배의 인정이라 판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2. 마찬가지로 특정한 경향을 띈 주장에 대해 대승적, 원론적 차원에서 주류 학계의 논박이 있었을 경우, 이는 논박의 시기와 무관하게 주류 학계의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한 생명력을 가집니다. 이에 대해 최신의 주장을 직접적으로 반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존의 원론적인 차원의 반박을 삭제하는 행위는 엄연한 중립성 위반이며 반달 및 방해편집에 해당합니다. 주의하여 주십시오.--Xakyntos (토론) 2014년 3월 25일 (화) 22:54 (KST)

"최신의 주장을 직접적으로 반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존의 원론적인 차원의 반박을 삭제하는 행위"는 백:중립성 위반, 백:방해 편집, 백:반달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해당 정책·지침들을 다시한번 잘 읽어 보세요) 출처가 없는 내용, 혹은 출처의 문헌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내용은 무엇이든 언제든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하는 것은, 그렇지 않으면 위 정책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굳어질까봐 하는 것입니다. 기분 나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10k (토론) 2014년 3월 26일 (수) 04:48 (KST)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습니다. 제가 말한 위반이라는 것은 확실한 출처가 존재하는 내용을 올바르지 않은 이유로 삭제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직접적으로 해당 행위를 명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포괄적인 의미로 보자면 해당 행위 자체가 출처가 확실한 내용을 올바른 근거 없이 삭제하는 것으로 판단될 수 있지 않습니까. 최근의 낙랑군 문서의 되돌림 분쟁을 보시면 아실 수 있겠지만, 위 사용자의 되돌림은 제대로 된 근거 없이 무조건적인 삭제로 해석하기에 충분한 행동을 보였습니다. 그렇기에 위반 사항이 될 수 있다고 서술한 것입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3월 26일 (수) 09:27 (KST)
낙랑군 문서 "낙랑군의 위치 및 성격에 대한 논란" 부분의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국사학계에서 고고학적인 증거를 근거 없이 무시하고 잘못된 문헌 사료의 취합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으로서 사실이 아니라 비판되고 있다."라는 서술이 왜 부적합한지 제 의견을 구체적으로 밝히겠습니다. 일단 Xakyntos 사용자는 낙랑군 평양설과 이에 반박하는 학설을 자꾸 진화론과 창조론에 비유하는 오류를 범하여 본질을 호도하는데 그점은 매우 유감입니다. 수많은 합리적인 비판에 직면하여 국사 교과서에도 직접적인 언급이 안되는 낙랑군 평양설을 만고불변의 진리인 진화론, 낙랑군 평양설을 비판하는 합리적인 학설을 창조론에 비유하는 것은 아무리 개인의 주장이라고는 하나 본질을 호도하는 의도적인 비약이므로 앞으로는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일단 10k님도 말씀하셨듯이 송호정의 저서는 2004년 출간으로, 이후에 제시된 학설이나 고고학적 증거에 대한 비판으로는 당연히 성립될 수조차 없습니다. 상황이 이럴진데 "특정한 경향을 띈 주장에 대해 대승적, 원론적 차원에서 주류 학계의 논박"이라는 이상한 논리 하나로 이후에 쭉 이어지는 합리적인 주장이나 고고학적 증거도 무조건 "고고학적인 증거를 근거 없이 무시하고 잘못된 문헌 사료의 취합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으로서 사실이 아니라 비판되고 있다."고 반박하는 것은 귀하가 제시한 중립성 위반에도 적용되며 방해 편집의 모든 사항에 해당됩니다. 예를 들어서 임둔태수의 인장이 찍힌 봉니가 요서에서 발견되고, 평양 낙랑 구역 무덤에서 출토된 비단들이 모두 조선 누에 비단이고 중국 누에 비단은 전혀 발굴되지 않은 고고학적 증거는 누가 봐도 명백한 사실인데 이 사실까지 "고고학적인 증거를 근거 없이 무시하고"라고 비판하는 것은 한마디로 말이 안됩니다. 그러므로 귀하가 계속 이런 서술을 주장하는 것이말로 명백한 방해 편집이며 이를 되돌리는 것은 반달에 해당됩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26일 (수) 12:35 (KST)
사용자토론:10k#낙랑군 문서의 논란 항목 편집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이미 처음 수정을 하였던 10k님께서도 저의 설명을 인정하고 동의하고 있습니다. 귀하께서 아무리 혼자서 국사교과서에 언급되지 않으니 폐기된 학설이라 주장해봤자 아무데도 통하지 않습니다. 제가 이미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신편 한국사》를 비롯한 교과서보다 훨씬 권위있는 서적을 증거로 제시한바 있습니다. 물론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의 견해도 명백하게 제시했죠. 하지만 귀하는 제가 제시한 증거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시는군요. 아니, 차라리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하시기라도 하면 모르겠는데, 아예 듣지도 못한 것처럼 무시하시는 것을 보니 참으로 가증스럽기까지 합니다. 귀하가 다시 한 번 국사교과서를 근거로 같은 주장을 반복할 시에는 거증의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하여 제제를 요청할 것입니다. 물론 금번 귀하의 주장은 최초 제기자이신 10k님께서도 인정하신 사안이니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마십시오.--Xakyntos (토론) 2014년 3월 26일 (수) 12:50 (KST)
국사 교과서가 가장 통설로 구성되며 따라서 가장 믿을만하다는 판단은 틀린 것이 아니라 생각됩니다. 이런 사실까지도 트집잡아서 제재를 요청한다면 귀하야말로 분란의 목적으로 제재 요청을 남용한 사유에 해당되어 제재가 가해질 수 있습니다. 10k님의 토론 문서를 보았는데 10k님은 "Xakyntos님이 어떤 원칙을 적용해 해결을 시도하셨는지 잘 몰라서 판단을 유보합니다만, 다시한번 따져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하셨지 인정하신 것이 아니더군요.그리고 전에도 저보고 "떠벌린다"는 식의 인신 공격을 했고 이번에는 "참으로 가증스럽기까지 합니다."라는 표현까지 하시는데 이런 표현은 명백한 인신공격에 해당되므로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더이상의 되돌리기는 무분별한 편집 논쟁으로 비춰질 수 있어서 일단 되돌리기는 멈추지만 귀하는 위에서 한 저의 주장에 대해서 전혀 반박이 없습니다. 합리적인 반박이 없다면 잘못을 인정하는 것으로 판단, 편집을 다시 복원하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26일 (수) 13:05 (KST)
10k님의 말씀은 귀하의 반달 행위에 대해 제가 한 행동을 판단하는 것을 유보한다는 것이지 이 사안이 아닙니다. 글을 읽으려면 똑바로 읽기 바랍니다. 그리고 10k님의 말씀 첫머리에 설명을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서술되어 있는 것은 또 무시하는군요. 10k님께 제가 되돌리게 된 사유를 설명하였고, 이를 인정하고 설명에 감사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고고학적인 증거를 근거 없이 무시한다는 말은 요동·요서설이 주장하는 낙랑군 유물 조작설 및 한나라 포로 유물설을 말하는 것입니다. 소수설의 고고학적인 근거를 무시한다는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제발 글을 똑바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반론의 구체적인 내용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시는 분께 더 이상 무슨 반박이 필요할까요? 귀하야말로 제발 내용 좀 제대로 파악하시고 정상적인 반론을 하십시오.--Xakyntos (토론) 2014년 3월 26일 (수) 13:13 (KST)
설명에 감사한다는 말은 예의를 차린 것이지 귀하의 주장에 동의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최신의 주장을 직접적으로 반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존의 원론적인 차원의 반박을 삭제하는 행위"는 백:중립성 위반, 백:방해 편집, 백:반달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해당 정책·지침들을 다시한번 잘 읽어 보세요) 출처가 없는 내용, 혹은 출처의 문헌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내용은 무엇이든 언제든 삭제될 수 있습니다."라는 10k님의 말씀은 틀린 점이 하나도 없으므로 귀하의 편집은 절대로 인정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고고학적인 증거를 근거 없이 무시한다는 말은 요동·요서설이 주장하는 낙랑군 유물 조작설 및 한나라 포로 유물설을 말하는 것입니다."라면 당연히 "고고학적인 증거를 근거 없이 무시하고"라는 표현은 그 부분에만 해당되게 위치를 옮기십시오. 왜 위치를 맨 마지막으로 잡아서 다른 문제없는 부분까지 도매급으로 싸잡아서 문제가 있는 양 상황을 호도하십니까?--Lhrdrth (토론) 2014년 3월 26일 (수) 13:24 (KST)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국사학계에서 고고학적인 증거를 근거 없이 무시하고 잘못된 문헌 사료의 취합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으로서 사실이 아니라 비판되고 있다." 이 서술의 위치를 "이덕일은 평양 일대에서 발굴된 낙랑군 관련 유물들이 모두 일제에 의해 조작되었고, 고구려에 의해 포로로 끌려온 한족들의 유적이라 주장하였다."라는 문장 바로 뒤로 위치를 옮기십시오. 그러면 이 서술이 낙랑군 문서에 포함되는 것을 그나마 동의하겠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이 서술은 절대로 낙랑군 문서에 포함이 불가합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26일 (수) 14:36 (KST)

낙랑군을 비롯해서 고대사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는 제 의견을 경청해 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한편으로, 두분이 지금 이 논란을 한시라도 빨리 마무리짓고 싶어하시는 것 같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만, 지식이 부족해서 원론적으로만 접근해야 하니 아쉬울 따름입니다. 다른 아쉬운 점은, 두분이 낙랑군 문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오랜기간동안 정력을 다해 토론을 하시는데, 토론 문서 말고, 낙랑군 문서 자체에는 전혀 진척이 없다른 점입니다. 제가 한가지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이 소제목은 길어졌으니, 아래에 새로 소제목을 개설하겠습니다.

건설적인 토론을 위해, 문장 삭제보다는 문헌 추가를 제안합니다[편집]

위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오랜 기간동안 현 토론 문서는 수백줄을 넘어서는 엄청난 길이로 길어졌는데 반해, 본 문서인 낙랑군 문서는 거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이정도로 오랫동안 심각한 다툼 없이 토론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두분의 인내심과 절제력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 기간동안 본 문서가 거의 성장하지 않은 것은, 토론 방법이 건설적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토론이 건설적이지 않은 것은, 본 문서에서 상대방의 편집 중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잘라내거나, 자기 입맛에 맞게 고치는 행위가 쌍방간에 반복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재 위키의 구조 속에서는, 충분한 출처를 이용해 편집하지 않으면, 이와 같은 비건설적인 편집은 계속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부탁/제안을 해 보겠습니다. 한번 보시고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안: 두분 각자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관련 책, 논문, 신문기사 등을 총 동원해서,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학설을 지지하는 문헌 근거와,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반대 학설을 반박하는 문헌 근거를 최대한 보강하는 것입니다. 이때, 주의할 점은 상대방이 문헌 근거를 명백하게 왜곡해서 인용하지 않는 한, 상대방의 편집 부분은 손을 대지 않아야 합니다. 또, 이를 위해서, 문헌 근거를 인용할 때는 아전인수를 피하고 최대한 정직하게 인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정말로 학계에서 통용되는 학설이라면 공신력 있는 문헌 (예를 들어, 한국역사학회지, 세계역사학회지 등)이 누적될 것이고, 소수 학설이라면 잘 알려지지 않은 문헌 위주로 정리될 것입니다. 물론 소수 학설이라고 해서 삭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공신력 위주로 분량이 조정되겠지요. 그렇게 많은 자료가 쌓이면, 아마 많은 분들이 정리에 도움을 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대체 제안: 만일 제 첫 제안이 마음에 안드신다면 다른 제안을 드리겠습니다. 이 문서는 현재로서는 희망이 없습니다. 토론문서만 길어지고, 그러면서도 토론 내용은 정리가 안되기 때문에, 시간이 가면 갈수록 새로운 토론자의 개입은 힘들어지고, 두분만이 남아서 계속 이 토론을 계속하실 것이고, 이때 본문서는 변화없이 남아있게 될 것입니다. 두 분은 역사에 대한 뜨거운 열의가 있는데, 그 열의를 여기서 소모적인 토론을 하느라 낭비하고 있습니다. 위키백과로서는 낭비입니다. 따라서, 두분이 이 문서의 토론 및 편집을 몇주간 중단하고, 다른 관심 문서를 편집하다가, 약속한 몇주 후에 다시 여기로 복귀하는 것입니다. 아마 그렇게 하면, 지금은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장이 몇주 후에는 별 가치가 없어보일 수도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첫번째 제안을 채택하셔서, 건설적인 토론 및 편집을 하는 쪽으로 합의가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현재의 토론이 진행되는 것은 쌍방에게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냉철한 판단으로 두분의 정력과 지식이 위키백과를 향상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10k (토론) 2014년 3월 26일 (수) 16:14 (KST)

예, 좋은 제안입니다. 저도 10k 님의 첫번째 제안에 공감합니다. 낙랑군 문서에 대한 두 분의 열정이 서로 의견 충돌 및 상호 차단 요청으로 변질되기보다는 현행 문서의 내용을 더욱 살찌우는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합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4년 3월 27일 (목) 01:07 (KST)
10k님의 제안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Xakyntos 사용자와 끝없이 분쟁이 있어서 하는 말이 아니고 객관적으로 봐도 이 사용자는 자신의 독단적인 판단만을 지나치게 절대시하여 자기 마음에 안드는 다른 사람의 의견은 일방적으로 가치없는 음모론이니 사기니하면서 터무니없이 비하하고 편집을 삭제하고 되돌림하여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용자와 끝없이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저는 이 사용자에게 최대한 인내심을 가지고 최대한의 설득으로 대처해왔다고 생각합니다. 10k님이 제기하셔서 현재 이 사용자와 편집 분쟁이 있는 부분만 봐도 "특정한 경향을 띈 주장에 대해 대승적, 원론적 차원에서 주류 학계의 논박"이라는 자신만의 희한한 주장을 내세워서 출처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예를 들어서 임둔태수의 인장이 찍힌 봉니가 요서에서 발견되고, 평양 낙랑 구역 무덤에서 출토된 비단들이 모두 조선 누에 비단이고 중국 누에 비단은 전혀 발굴되지 않은 고고학적 증거는 누가 봐도 명백한 사실인데 이 사실까지 "고고학적인 증거를 근거 없이 무시하고"라고 뭉뚱그려서 비판해대는 어처구니없는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다. 이 주장대로라면 추후에 아무리 확실한 증거가 나와도 계속 이런 식으로 사실을 호도하면서 억지를 부릴 것 아닙니까? 이는 "중립적 시각은 대상에 대하여 서로 충돌하는 확인 가능한 견해들을 다루기 위한 수단으로, 공표된 모든 관점을 공정하게 기술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어떤 관점도 실제보다 부각·축소되거나 “진실”인 것처럼 기술되어서는 안 됩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견해만이 아닌, 공표되고 의미 있는 여러 관점과 견해들을 독자들이 접할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라는 위키백과의 가장 대원칙인 중립성의 원칙에도 위배되는 명백한 편집방해 행위입니다. 그래서 이를 수정하라는 저의 정당한 요구도 현재 계속 묵살하고 있으니 이제는 참다참다 못해서 차단 요청을 들어가려고 했지만 이렇게 말씀하시니 차후 추이를 조금 더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27일 (목) 13:14 (KST)
예를 들어서 임둔태수의 인장이 찍힌 봉니가 요서에서 발견되고, 평양 낙랑 구역 무덤에서 출토된 비단들이 모두 조선 누에 비단이고 중국 누에 비단은 전혀 발굴되지 않은 고고학적 증거는 누가 봐도 명백한 사실인데 이 사실까지 "고고학적인 증거를 근거 없이 무시하고"라고 뭉뚱그려서 비판해대는 어처구니없는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다.
제발 글을 똑바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송호정 교수의 책이 말하는 고고학적인 증거를 근거 없이 무시한다는 것은 이덕일이 주장하는 낙랑군 유물이 일제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주장을 말하는 것입니다. 멀쩡히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도 존재하는 낙랑군 유물과 유적을 일제가 조작한 것이라 주장하면서 그에 대한 근거는 제대로 대지 못하는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을 말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애초에 요서설의 근거랍시고 내놓는 임둔태수 봉니는 학계에서 신경도 안씁니다. 편지를 보낸 수신지에서 발견된 것이라는 설명으로 아주 간단하게 끝나는 것이니까요. 요서에서 딱 하나 발견된 임둔태수 봉니는 철썩같이 믿으면서 평양에서 쏟아져 나온 수백점이 넘는 봉니는 제대로 고고학적인 비판 하나 없이 그냥 일제가 조작한 것이라 말하면 끝입니까? 그렇기에 낙랑군 유물 조작설을 고고학적인 증거를 근거 없이 무시한다라고 평가하고 있는 것입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3월 28일 (금) 15:46 (KST)
지금까지 고대 한국의 양잠기술은 서기 전 12세기 말경 箕子에 의해 중국으로부터 수입된 것이라는 견해가 정론처럼 통용되었다. 그 까닭은 문헌자료인 󰡔漢書󰡕와 󰡔後漢書󰡕에 기재된 서로 다른 내용을 무분별하게 해석한 결과이다. 중국에서 사직물 생산은 서기전 2700년경부터였다. 고조선은 건국 초기인 서기전 2209년경부터 중국과 계속 우호적인 정치적 관계를 맺어왔다. 이 시기에 중국은 500년 이상 축적된 양잠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중국과 계속 교류를 하면서도 양잠기술을 수입하지 않고 있다가 서기전 12세기경에 와서야 비로서 箕子로부터 양잠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실제로 고조선은 신석기시대부터 양잠기술을 발전시켜왔다. 그러므로 기자에 의하여 고조선에 양잠기술이 전달되었다는 󰡔후한서󰡕 「동이열전」에 나오는 기록은 기자의 치적을 높이기 위해 윤색된 것이었다. - 박선희 교수 기사 중 발췌 -
물론 박선희 교수의 주장 역시 학계에서 아무런 영향력도 없는 자의적인 주장일 뿐입니다. 위 인용문만 보아도 아주 확실하게 알 수 있죠. 기자조선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역사학자들은 아무도 기자조선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럼 대체 어느 나라의 정론이 기자에 의한 양잠기술 수입이라고 주장하는 것일까요? 고조선이 서기전 2209년경부터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 왔다구요? 고조선 문서나 좀 보십시오. 고조선이 중국과 최초로 외교적 관계를 맺은 것 자체가 기원전 4세기 말입니다. 중국의 기록에서 고조선이 최초로 등장하는 때가 기원전 7세기의 일인데, 대체 서기전 2209년에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은 것은 어느 나라입니까? 《환단고기》 말고 그런 기록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기본 전제부터 《환단고기》와 같은 위서를 토대로 논지를 전개하는 주장을 대체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저 같은 아마추어도 쉽게 반박 가능한 이런 주장이 대체 어떤 영향력이 있는 것입니까?--Xakyntos (토론) 2014년 3월 28일 (금) 15:56 (KST)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귀하의 일방적인 생각이고, 요서 봉니에 대한 소위 주류 사학계의 반박도 하나도 없고 박선희 교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설마 귀하의 생각을 주류 사학계의 반박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귀하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근거로 위키백과를 편집하려면 그냥 귀하가 직접 위키백과를 하나 만드셔서 운영하십시오. 하여간 이런 상황에서 2004년 송호정의 책을 출처로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이후의 고고학적 증거까지 소수설(귀하의 주장에 따르면)이라는 굴레를 뒤집어씌워서 무조건 근거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위에 제가 언급한 중립성의 원칙에 명백히 위배됩니다. 따라서 해당 문구를 삭제하시거나 최소한 문구의 위치를 수정하십시오. 거듭 경고합니다. 사실 송호정의 주장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모든 반론에 대한 비판으로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사용한다는 그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고 중립성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므로 원칙적으로는 해당 문구 자체를 삭제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니 문구의 위치를 수정하라는 저의 요구는 이미 많은 것을 양보한 것입니다. 지금 귀하의 억지가 어느정도인지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에 대해 Xakyntos는 고고학적인 증거를 근거 없이 무시하고 잘못된 문헌 사료의 취합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으로서 사실이 아니라 비판하고 있다."라는 문구를 위키백과에 넣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고 그러니 이 얼마나 우습고 황당한 일입니까?--Lhrdrth (토론) 2014년 3월 28일 (금) 16:23 (KST)
이보십시오. 이후의 고고학적 증거인지 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안했다니까요. 대체 글을 어떻게 읽으면 전혀 상관도 없는 것을 끌어들여서 이해할 수 있는 겁니까? 송호정 교수가 말하는 고고학적 증거라는 건 소수설이 주장하는 임둔군 봉니 같은 게 아닙니다. 낙랑군 평양설을 입증하는 고고유물을 말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근거 없이 무시한다는 말의 주어는 이덕일과 같은 재야사학자들이고, 목적어는 평양에서 발굴된 낙랑군 유물입니다.자칭 재야사학자라는 이들이 평양에서 발굴된 낙랑군 유물들을 일제의 조작이라 주장하는 것을 비판하는 내용이에요. 애초에 임둔태수 봉니니 낙랑 누에니 하는 건 언급조차 안하고 있는데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도대체 어떻게 읽으면 주어와 목적어를 정 반대로 뒤집어서 이해할 수 있는 겁니까?--Xakyntos (토론) 2014년 3월 28일 (금) 21:05 (KST)
일부러 그러시는 것은 아니겠고 자꾸 제글의 논점을 놓치시는데 송호정의 주장이 "이덕일과 같은 재야사학자들이고, 목적어는 평양에서 발굴된 낙랑군 유물입니다."에 해당되는 것이라면 문구의 위치를 거기에 맞게 옮기시라는 겁니다. 그 문구가 맨 마지막에 있어서 다른 주장들도 도매급으로 비판 대상으로 보이지 않습니까? 이해가 안되십니까?--Lhrdrth (토론) 2014년 3월 28일 (금) 21:15 (KST)
다른 주장들까지 도매급으로 비판 대상으로 삼은 것 맞는데요? 귀하가 하도 위치를 가지고 왈가왈부 하길래 전체적으로 주장, 근거, 반론 순으로 정리한 겁니다. 그리고 이미 위에 설명했고 10k님도 납득한 바, 낙랑군 요서설과 같은 소수주장에 대한 전체적인 반론으로 송호정 교수의 반론은 충분한 생명력과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귀하가 아무리 아니라고 주장해봤자 창조설을 일일히 반박하지 않는 진화론과 마찬가지의 상황이니 삭제 운운하면 반달 행위로 처벌될 뿐입니다. 자중하십시오.--Xakyntos (토론) 2014년 3월 28일 (금) 21:21 (KST)

그런데 이문제는 10k님이나 제가 주장한 논지가 맞지만 방금 정리된 결과를 보니 해당 문구의 위치를 옮긴다면 거기에 따라서 문서 내용 전반에 걸쳐서 다시 수정의 필요가 있어보이고 이는 자칫 문서 전체의 내용에 필요 이상의 혼란을 줄 수 있는 문제로 판단되어 대의를 위해서 이대로 수록하는 것을 부득이 인정하도록 하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28일 (금) 21:23 (KST)

토론 시 지켜야 할 예절[편집]

낙랑군 문서의 내용보다는 토론 참가자들이 토론 시 지켜야 할 예절에 대해 언급하고 싶습니다. 비록 자신의 견해와 다르고, 때로는 일부 무리한 주장을 하는 사용자가 있다고 할지라도, 가급적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차분히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것이 좋은 토론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Xakyntos 님의 해박한 역사 지식을 존중하고, 또한 Lhrdrth 님의 고대사에 대한 관심과 위키에 대한 열정을 높게 평가하지만, 두 사용자가 서로 상대방에 차단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에 대해 '불필요한' 행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토론 상대방에 대해 차단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은 건설적 토론과 무관하며, 오히려 불필요한 논란만 키워서 문제를 악화시킬 소지가 큽니다. 토론 상대방에 대해서 (명백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급적 차단 가능성은 언급하지 마시고 논의를 진행해 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4년 3월 30일 (일) 11:39 (KST)

분쟁을 이용한 편집[편집]

현재 주로 분쟁이 일어난 두 사용자의 편집을 기반으로 한 편집이 있습니다. 비록 한 쪽이 차단되었다 하나, 설복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일방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여 문서를 편집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앞으로 계속 이런 상황이 발생할 시 문서의 편집 제한을 요청할 것입니다. 물론 분쟁이 일어나기 한참 전으로 되돌린 이후에 말이죠. --Neoalpha (토론) 2014년 7월 16일 (수) 01:03 (KST)

두 사용자가 누구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으나(저를 지칭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편집 제한을 요청하신다고 해도 편집 제한 시기는 "2014년 7월 16일 (수) 00:03"판으로 하심이 옳다고 봅니다. 차단된 Xakyntos 사용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도 좋지만 낙랑군 문서가 해당 사용자의 개인 문서도 아니고 편집에 적절한 출처와 근거가 있는 이상 그 이전 부분으로 편집이 되돌아갈 이유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한가지 부탁드리자면 현재 낙랑군 토론 문서의 길이가 상당히 길어져서 한 페이지에서 전부 내용을 보는데 복잡한 측면이 있어서 해당 토론 문서의 페이지를 좀 나눴으면 하는데 혹시 그런 방법을 아시면 조치를 해주십사 부탁드리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16일 (수) 13:59 (KST)

본인의 수정은 분쟁이 일어난 Xakyntos 사용자와 Lhrdrth 사용자의 편집과 관련이 없고 기반으로 하지도 않았으며 공신력 있는 출처와 근거를 제시하였습니다. 이는 토론에서 Neoalpha 사용자가 인정한 바가 있습니다. 참고하여 주십시오.--182.212.6.95 (토론) 2014년 7월 16일 (수) 18:20 (KST)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해당 사용자 토론이 갱신된 바, 토론은 종결되지 않았으며, 토론이 마치 종결된 것 처럼 본인을 기망한 IP사용자인지 Aubelumiere사용자인지를 사용자를 기망한 것에 대한 제제를 신청할 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Neoalpha (토론) 2014년 7월 16일 (수) 18:57 (KST)

《수경주》 문제[편집]

그 땅은 지금 고구려의 수도이니, 내가 번사(番使 : 고구려 사신)에게 물었더니, 성(城)이 패수 북쪽에 있다 한다. 그 강이 서쪽으로 흘러 옛 낙랑군(樂浪郡) 조선현(朝鮮縣), 즉 한무제가 설치한 낙랑군의 치소를 지나 서북쪽으로 흐른다. 그러므로 《지리지》에 ‘패수가 서쪽으로 증지현(增地縣)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하였다. 옛날과 지금의 이러한 증거들을 살펴볼 때 차이가 있으니, 모두 《수경》이 잘못 고증한 것이다.
其地今高句麗國治, 余訪蕃使, 言, 城在浿水之陽, 其水西流逕故樂浪朝鮮縣, 卽樂浪郡治, 漢武帝置. 而西北流. 故地理志曰, 浿水至增地縣入海. 考之古今, 於事差謬, 蓋經誤證也.

위 인용문은 북위 시기 역도원이 저술한 《수경》의 주석입니다. 낙랑군의 위치를 구체적으로 서술한 후세(낙랑군 축출 이후) 최초의 문헌으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과 낙랑군 조선현이 같은 곳이라는 사실을 전하고 있으며, 주석의 대상인 패수의 흐름 또한 현재의 대동강과 일치합니다. 그런데 이 서술에서 해석 여하에 따라 고구려 사신이 한 발언이 성이 패수의 북쪽에 있다는 내용에서 끝나는 것인지, 아니면 패수의 흐름 전체를 설명하는 문장이 모두 고구려 사신의 말인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후자의 해석은 문맥상 틀린 것으로 여겨지며, 이 때문에 Lhrdrth 사용자는 후자의 해석에 따른 제 편집을 삭제하겠다고 통보 후 삭제하였습니다. 사용자토론:Xakyntos#낙랑군 문서 역도원 부분의 귀하의 편집의 문제점 그러나 해당 삭제에 대해서 저는 후자의 해석이 옳지 않음을 인정하고, 전자의 해석으로도 그 가치는 전혀 변화가 없으므로 그에 따라 수정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해당 사용자는 이를 묵살했습니다. 이에 따라 징계 기간이 끝난 뒤 위 내용을 근거로 아래와 같이 편집을 수정하였습니다.

낙랑군의 위치에 대한 후세 최초의 언급은 북위 시기의 역도원(酈道元)이 저술한 《수경주》(水經注)에 기록된 것이다. 《수경주》는 《수경》에 역도원이 주석을 단 것으로, 《수경》에는 패수가 동쪽으로 흘러 바다에 들어간다고 기록하고 있어 논란이 되었다. 이에 역도원은 고구려 사신에게 패수의 흐름을 직접 확인하고 《수경》의 기록이 틀렸다고 판단했으며, 고구려의 수도 평양과 한나라 때의 낙랑군이 같은 곳이라고 고증하였다.

이 부분을 제외한 다른 부분에 대한 제 편집이야 논란의 여지가 있다손 쳐도, 이 부분은 명백한 1차 사료에 근거한 서술로서, 이를 아무 근거 없이 삭제하는 행위는 명백한 반달 행위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Lhrdrth 사용자는 이를 아무 근거 없이 무시하고 삭제로 일관했습니다. 해당 편집을 삭제하는 사유로서 Lhrdrth 사용자가 한 말은 이것 뿐입니다.(사용자토론:Lhrdrth#낙랑군, 고조선 문서)

그외에 역도원의 주장은 위만조선 수도=고구려 장수왕 시절 평양이라는 근거없는 출처에 의한 역도원의 명백히 잘못된 오류이고 이런 정도의 주장을 일일히 수록한다면 저도 끝도 없이 수록할 수 있습니다.

위만조선의 수도와 고구려의 평양이 같은 곳이라는 사실은 역사학계의 정설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Lhrdrth 사용자는 이를 근거없는 출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Lhrdrth 사용자의 머리 속에서는 그것이 근거 없는 것일지는 몰라도, 위키백과의 정의에 따르면 해당 사실이 정설임은 명명백백합니다. 물론 Lhrdrth 사용자의 발언 어디에도 역도원의 해석이 오류임을 입증하는 근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Lhrdrth 사용자 혼자 오류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위키백과가 그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역도원의 수경주와 관련된 논의는 조선시대 실학자들도 수없이 언급한 것이며, 현대 역사학계에서도 낙랑군 조선현의 위치를 직접적으로 전하는 사료로서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아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언급처럼 말이죠. 하지만 Lhrdrth 사용자는 이러한 가치를 아무런 근거도 없이 폄하하며 이런 사소한 것까지 실으면 본인도 자신의 입장에 맞는 소수설들을 끝도 없이 수록하겠다고 사실상 협박까지 하고 있습니다. 이런 행위를 어디까지 용납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북위 사람 역도원(酈道元)은 ≪수경 水經≫이라는 지리서에서 전하는 패수의 흐름에 관한 기사에 의문을 품고, 마침 그 무렵에 북위의 수도를 방문했던 고구려 외교사절에게 패수의 흐름에 대해 질문하였다. 이를 통해 얻은 지식에 의거해 그는 패수에 관한 기술을 ≪수경주≫에 남겼다.

이에 의하면 고구려 수도는 패수의 북쪽에 있었으며, 그 곳에서 패수는 서쪽으로 흘러 옛 낙랑군 조선현 자리를 지나 서쪽 바다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당시의 패수는 대동강을 지칭하며, 그 무렵 고구려의 수도는 지금 평양시 동쪽의 대성산성 아래에 있는 안학궁터 일대였다.

이곳에서 패수는 서쪽으로 흘러 오늘의 평양시를 지나게 되는데, 강의 남쪽 남평양 지역에 한대(漢代)의 중국계 유적과 유물이 집중적으로 존재한다. 낙랑군 조선현의 위치는 이 곳이 분명하다.

정리하겠습니다. Lhrdrth 사용자는 《수경주》와 관련된 내용을 아무 근거 없이 삭제하였으며, 위와 같은 근거로 해당 삭제는 명백하게 잘못된 행위임을 밝힙니다. 해당 내용은 위키백과에 등재될 가치를 충분히 지니며, Lhrdrth 사용자의 해명과 관계 없이 낙랑군 문서의 해당 항목에 수록하여 줄 것을 요청합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1:19 (KST)

귀하의 해당 편집의 문제점은 제가 이미 낙랑군 문서 역도원 부분의 귀하의 편집의 문제점에서 지적했듯이
"余訪蕃使 言城在浿水之陽 其水西流逕故樂浪朝鮮縣 卽樂浪郡治 漢武帝置 而西北流 故地理志曰 浿水至增地縣入海"
"그래서 나는 고구려 사신을 방문하여 물어보았더니 그는 말하기를 "고구려 도성이 패수의 북쪽에 있다."고 하였다. 그 강은 서쪽으로 흘러 옛 낙랑군 조선현을 지난다. 조선현은 낙랑군의 치소로서 서한의 무제가 설치한 것이다. 패수가 서북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한서 지리지에 말하기를 패수는 서쪽으로 증지현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고 하였고..."
원문과 올바른 해석은 분명히 이러하고 고구려 사신은 "고구려 도성이 패수의 북쪽에 있다."라고 밖에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Xakyntos 귀하는 위키백과에 " 당대 고구려 사신에게 역도원이 직접 패수의 위치를 질문하자,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과 한나라 때의 낙랑군이 같은 곳이며 패수가 낙랑군 조선현을 관통하여 흐른다는 대답을 받은 것이 그 내용이다."라고 말도 안되는 왜곡을 해놓았습니다. 이것이 의도적이든 한문 해석 능력의 부족에 기인한 것이든 간에 위키백과에서 마땅히 삭제되어야 함은 당연한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역도원의 주장은 위만조선 수도=고구려 장수왕 시절 평양이라는 근거없는 출처에 의한 역도원의 명백히 잘못된 오류이고 이런 정도의 주장을 일일히 수록한다면 저도 끝도 없이 수록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귀하가 역도원 주장을 실은 이유가 고구려 사신이 스스로 위만조선 수도=고구려 장수왕 시절 평양이라고 말했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제가 이미 그부분은 사실이 아님을 밝혔기 때문에 실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귀하는 역도원의 이런 주장을 "낙랑군 위치에 대한 후세의 최초 언급"이라고 하시는데 그 근거가 도대체 뭡니까? 귀하가 그 수많은 사서의 내용을 일일히 확인이라도 하셨습니까? 이부분도 근거가 없고 이정도면 왜 역도원 주장이 실려서는 안되는지 납득을 하셨으리라 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3:41 (KST)
귀하는 또다시 위증을 하였습니다. 저는 이미 “위만조선 수도=고구려 장수왕 시절 평양이라는 근거없는 출처”라는 말 자체가 귀하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라고 명백하게 말씀드렸습니다. 귀하가 혼자 그렇게 믿는 것이야 알바 아니지만, 그 믿음을 가지고 역사학계의 정설을 아무 근거 없이 무시하는 것은 엄연한 반달 행위에 해당합니다. 물론 역도원의 명백히 잘못된 오류라는 말씀도 귀하 혼자만의 생각일 뿐, 그에 합당한 근거라고는 하나도 대지 않았다고 이미 위에 서술했습니다. 토론의 상대방이 이미 지적한 논점을 전혀 읽지도 않은 채 토론에서 엉뚱한 논점만 파고드는 행위는 방해 편집으로 보기에도 충분한 행위입니다. 귀하가 또다시 지금처럼 논점을 흐리고 토론에 성실히 임하지 않는다면, 그에 합당한 징계를 요청할 것입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3:46 (KST)
무슨 위증이라는 말입니까? 역사서도 "위만조선 수도=고구려 장수왕 시절"이라고 서술하고 있지도 않고 이 사실은 너무도 명백하여 심지어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주류 강단 사학자들 중에서도 평양=왕검성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0321392
위 링크에서 보듯이 조법종 우석대 사학과 교수는 "낙랑군은 종래 기원전 108년 위만조선 붕괴 직후 그 도읍인 왕검성(王險城)에 설치된 것으로 인식됐으나 관련사료 검토를 통해 위만조선은 그 1년 뒤인 기원전 107년에 붕괴됐으며, 따라서 왕검성 함락 1년 전에 설치된 낙랑군은 왕검성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고 주장한다."라고 분명히 의견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래 링크의 사진을 보면 조법종 교수는 왕검성을 한반도 평양은 커녕 아예 한반도 북부라고 주장합니다. 설마 조법종 교수를 재야니까 학설의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지는 않겠지요?
http://www.ppyoo.com/db/data/file/essay/1174375744.jpg
자 이토록 논란이 많은 부분을 우리학계의 명백한 정설이라고 말하는 것은 심히 우습습니다. 명백한 사실호도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귀하는 "고구려 사신이 스스로 위만조선 수도=고구려 장수왕 시절 평양이라고 말했다는 것"을 이유로 해당 부분을 편집했지만 말했듯이 그것은 완전 거짓말이고 결국 수경주 부분은 수경이라는 명백한 사서의 기록을 자기 추측으로 마음대로 부인한 역도원의 한낱 망상일뿐입니다. 그런데도 이부분을 수록해야 됩니까?--Lhrdrth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4:01 (KST)
종래 기원전 108년 위만조선 붕괴 직후 그 도읍인 왕검성(王險城)에 설치된 것으로 인식됐으나
1. 이 문장 하나로 끝나는 문제입니다. 조법종 교수는 정설에 대해서 새로운 학설을 주장하는 입장일 뿐, 그의 주장이 논란이 많은 부분이라고 말하는 것은 귀하 혼자만의 생각일 뿐입니다. 종래에 인식이라는 말 자체가 학계의 중론이라는 것인데 말입니다.
2. 저는 이미 “저는 후자의 해석이 옳지 않음을 인정하고, 전자의 해석으로도 그 가치는 전혀 변화가 없으므로 그에 따라 수정할 것을 요청”이라 말한 바 있습니다. 귀하가 말한 부분이 오류임을 인정했고, 그것과 상관없이 역도원의 주석은 여전히 가치를 지닌다고 서술하였습니다. “수경이라는 명백한 사서의 기록을 자기 추측으로 마음대로 부인한 역도원의 한낱 망상”이라는 것은 귀하 혼자만의 망상일 뿐입니다. 적어도 저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설명이라도 근거로 제시했죠. 귀하가 저 역도원의 추론이 오류라는 근거로 제시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3. 게다가, 역도원의 추론은 수경의 본문에 대한 주석이지, 낙랑군의 위치가 아닙니다. 역도원은 낙랑군의 위치에 대해서 단순 사실만을 서술한 것이며, 역도원의 추론이 맞건 틀리건 그것은 수경 본문에 나오는 패수에 대한 것이지, 낙랑군의 위치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완벽한 허수아비치기의 오류에 해당하며, 여전히 논점을 이탈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아무런 근거도 없이 말이죠.--Xakyntos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4:56 (KST)
http://www.ppyoo.com/db/data/file/essay/1174375744.jpg
위의 지도 못보셨습니까? 조법종 교수는 분명히 왕검성을 평양이 아니라고 보는데 무슨 독단적인 해석입니까? 역도원 문제는 앞서도 누누히 말했듯이 귀하는 "고구려 사신이 스스로 위만조선 수도=고구려 장수왕 시절 평양이라고 말했다는 것"을 이유로 해당 부분을 편집했지만 말했듯이 그것은 완전 거짓말이고 따라서 실을 이유가 없습니다. 엄연히 정사인 수경의 기록이 있는데 역도원같은 불확실한 근거에 의한 추론의 오류를 범한 자의 일방적 주석을 근거 자료라고 실을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5:36 (KST)
또 논점을 이탈하셨습니다. 저는 이미 고구려 사신의 발언이라 해석한 것이 틀렸다고 인정했다고 벌써 몇 차례나 말했습니다. 귀하가 이를 무시하고 논점을 고의로 흐리고 있다는 것을 재차 지적하는 바입니다. 귀하의 이런 행동은 귀하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뿐입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6:01 (KST)
그 부분에 대한 오류가 있음을 귀하가 인정했고 후세 최초의 언급이라는 부분은 근거 자체가 없고,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엄연히 정사인 수경의 기록이 있는데 역도원같은 불확실한 근거에 의한 추론의 오류를 범한 자의 일방적 주석을 근거 자료라고 실을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6:31 (KST)
불확실한 근거가 아니라고도 이미 말씀드렸으며, 해당 추론이 오류라는 증거 역시 귀하는 단 하나도 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미 저는 해당 추론이 옳건 그르건 낙랑군 위치 문제는 별개임을 밝힌 바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서술 역시 해당 수경주의 내용이 현재의 평양과 대동강을 가리키고 있음을 명백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미 위에서 여러 차례 언급한 논점들을 모조리 다 무시하고 혼자만의 생각에 근거해서 판단하는 행위는 독자연구이자 방해 편집이라고 벌써 몇 번이나 경고하였습니다. 이런 행동을 하면 할수록 귀하에게만 불리할 뿐입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6:41 (KST)

이미 조법종 교수의 예를 들어서 논란이 많다고 증거를 보여드렸고 사서들도 "위만조선 수도=고구려 장수왕 시절 평양"이라고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뭐가 독자 연구라는 말씀입니까?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엄연히 정사인 수경의 기록이 있는데 역도원같은 불확실한 근거에 의한 추론의 오류를 범한 자의 일방적 주석을 근거 자료라고 실을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애당초 귀하가 주장한 "고구려 사신이 스스로 위만조선 수도=고구려 장수왕 시절 평양이라고 말했다는 것"을 귀하 스스로 오류라고 인정한 이상 저 부분은 실릴 목적 자체가 사라진 것입니다. 귀하의 편집대로 수록은 절대로 불가합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6:59 (KST)

위에 이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내용을 보여드렸습니다. 고구려 사절의 발언과 아무 상관 없이 역도원 본인의 발언만으로도 수록 가치는 충분하다고 벌써 4번째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토론 상대방의 논점을 계속 무시하고 방해 편집을 하는 것은 귀하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뿐입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8월 2일 (토) 08:28 (KST)
저의 답변은 안읽으시는 것입니까? 귀하가 주장한 "고구려 사신이 스스로 위만조선 수도=고구려 장수왕 시절 평양이라고 말했다는 것"을 귀하 스스로 오류라고 인정한 이상 저 부분은 실릴 목적 자체가 사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역도원의 발언이 "후세 최초의 언급"이라는 근거가 뭐냐고 묻는 질문은 왜 자꾸 회피합니까? 이것이야말로 토론 상대방의 논점을 계속 무시하고 방해편집을 하는 행위가 아니고 무엇입니까?--Lhrdrth (토론) 2014년 8월 2일 (토) 09:21 (KST)

편집 내용의 구체적 사항에 대한 자진납세;[편집]

  • 편집 목표
    • 간결, 일원화, 중립, 문법, 지금까지의 수정전쟁 집대성;;;;;;;;;;;
  • 중복내용
  1. 개요에 새로 추가된 내용은 하위 항목의 논란의 내용을 그대로 복붙한 것이고 중복되기에 삭제했습니다.
  2. 논란의 개요에서는 '하지만'을 '반면에'라는 부사로 수정하여 '이를 부정하여'라는 표현은 중복되므로 보다 간결하게 수정하였습니다. ... 기타 자잘한 중복되는 표현·문장들도 이런 식으로 수정했습니다.
  • 비문법
    • 수정전쟁이 거듭되다보니 많은 문장이 매끄럽지 못해서;; 전체적으로 조금씩(혹은 대대적으로;) 손봤습니다만 특히 '낙랑은 어느 나라 역사입니까?'를 인용한 부분은 신문 기사 자체가 비문에 오타가 있어서;; 수정하는데 애먹었습니다orz
  • 난잡한 문단
  1. 거듭된 수정전쟁으로 내용이 여기저기 난립해있어서 다음과 같은 순서로 논란 항목을 구성하였습니다. 1. 개요 2. 중국과 한국 정사의 기록 3. 조선인들의 낙랑군 인식 4. 낙랑군 패수 5. 남한학계, 북한학계 6. 낙랑군의 고고학 유물에 대해서
  2. 이 과정에서 중복되는 표현들은 수정하거나 일원화하였습니다.
  3. 3. 조선인 내지 근대 역사가들의 낙랑군 인식은 해당 주장의 옳고그름을 떠나서 역사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기에 모두 적었습니다.
  4. 5. 남한학계, 북한학계에서는 나름 모든 설을 싣되 현재의 통설이 무엇인지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리고 단순한 통설이 아니라 학계에서는 그야말로 확실시 하고 있으므로 '지배적인'이라는 표현을 추가했습니다. 물론 이 학설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현재의 한중일 학계에서의 낙랑군재한국설의 입지는 사실 그대로 표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편으로 그래서 재야사학자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이고요. 낙랑군재요서설은 비중이 극히 적긴 하지만 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므로 '극소수설'이란 표현으로 단순한 주장이 아니라 학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 내용 보강
  1. 당서와 신당서의 해당 구절 추가
  2. 요사 등 사료의 보다 구체적인 위치 추가
  3.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고 말한 실학자들 추가
  4. 낙랑군 패수 관련 내용 추가
  5. '일제강점기 ... 확실시하고 있다'에는 '현재에 걸쳐서'와 유물, '중심이라는' 등의 표현을 추가했습니다. 일제강점기만 있으면 그때만 발굴한 줄 알고 분단 이후에는 안 나왔다고 혼동을 줄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낙랑군은 평안도, 황해도, 강원도, 함경도 (그리고 요동??)까지 넓은 영역을 아우르고 있었는데 오직 평양 그 좁은 곳에만 있었다는 인식을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표현도 보다 명확히 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저 증거들이 현재의 통설을 뒷받침하는 주된 재료이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통설이 맞는지는 차치하고 저 증거들이 학계에서 가지는 권위가 무엇인지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다만 '정확한'이란 표현은 수사어구이므로 배제했습니다. 아닐 수도 있는 거고;;
  6. SBS 내용에 '사진', '실물 검증 한계' 등의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해당 방송에서 사진만 보고 하는 판단의 한계를 언급하며 '모두 조작된 게 확실하다'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검증해보자'라는 결론으로 끝맺습니다. 실제로도 유물 검증은 실물로 하지 오직 사진만으로는 절대 안합니다. 방송을 안 보고 문장으로만 스킵하는 독자들이 있기 때문에 주요 내용을 보강했습니다. '강력한' 등의 표현은 사실도 아니고 역시 수사어구이기에 배제하였습니다.
  • 내용 복구
  1. 지도엔 기원전 106년이라고 되어 있으나 현도군이 설치된 것은 bc107년이므로 혹여 혼동의 여지가 있기에 다시 복구하였습니다.
  2. 낙랑군재평양설은 현재 학계의 압도적인 통설이라는 지위가 있기에 없는 것을 없다고 할 수는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한반도 북부라는 표현도 복구하였습니다.(낙랑군재평양설이 정말 사실이 아닐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이 설이 학계의 통설이라는 상황은 사실이므로 (불만이 있더라도) 그대로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3. 백제와 고구려는 낙랑왕에 책봉된 적이 없어서 복구하였습니다.
  • 수정 내용
  1. 현재 한중일 사학계에서는 한사군의 위치가 단순 추정의 지위를 넘어서고 있으나 극소수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보다 중립적인 '말하는'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2. 평양이 여러 곳에 산재했다는 설은 현재 낙랑군 문서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삼국사기에도 평양이 여러 개 언급되는 등 소개의 가치가 없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아래와 같은 이유로 낙랑군 문서와는 별 인연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정사(와 기타 대부분의 사서)는 낙랑군-장수왕평양-서경이라는 사실을 해당 사료에서 직접적으로 밝힙니다. 중국의 정사에서는 평양이 고구려의 수도라고 최초로 언급되는 게 주서입니다. 이전까지는 고구려의 수도를 소개하지 않습니다. 북주는 6c의 나라고 편찬 시기는 7c 초입니다. 이때는 장수왕 평양이 정말 확고한 시기입니다. 항목을 넣어야 한다면 평양문서에서 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3. 북한의 지도...는 정말 한참을 고민했는데 현재 북한 학설이 소개되어 있는데 굳이 지도까지 추가해야 하는지는 의문이 듭니다. 예를 들어 을미사변은 한국인의 범죄라거나 난징학살의 범인은 중국인이라거나... 하는 떠돌아다니는(?) 주장들의 내용은 (혹할 정도로) 치밀하고 방대합니다만 그것을 위키에 모두 소개하지는 않습니다. '중립'이라는 게 상당히 어렵긴 한데 북한의 학설 역시 존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 비중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그렇다고 무시한다는 것이 아니고 연구 성과는 남한에서도 인식하고 흡수할 것은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 수정전쟁이 무서워서 쓸데없이 글자가 많아져서 미안합니다orz) 보다 정확히 말해서 북한이 그려놓은 지도 자체가 아무 근거가 없습니다. 거칠게 말해서 '평양에 낙랑군은 없으니까 요동에 낙랑군이 있다' 라는 논지로 그려놓은 지도입니다. A의 참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A에 대한 증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B가 틀리니까 A가 맞다는 논리는 애당초 성립하지 못합니다. B의 거짓을 증명했다면 그것은 그저 B가 틀렸다는 것일 뿐 A가 맞다는 증명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사실 이것이 사학계 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학계에서 소수설 내지 취급받지 못하는(?) 소수설의 태생적 한계이기도 한데 상당량의 소수설이 그 존재 가치를 다수설에서 찾는 아이러니를 갖고 있습니다. 다수설이 없어도 소수설이 혼자 존립할 수 있을 때 그 설은 인정받습니다. 낙랑군 문서의 수정전쟁이 거듭됐던 근원도 거기에 있지 않나 합니다. 낙랑군재외한반도설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그 자체로서의 존립 근거가 필요합니다. 안타깝지만 해당 지도에는 그게 없습니다..ㅠㅠ
  4. 이익은 기존 문서에서는 단순히 요동을 주장했다고 적혀있었는데 이덕일이 사료 전체가 아니라 일부만 언급해서 왜곡한 것입니다. 이익은 낙랑군은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다는 수준ㅇ_ㅇ으로 낙랑군을 기술하였습니다ㅋ "수성 증지는 낙랑군의 속현이고 양평은 요동군에 속했으니 이는 모두 압록 이동과 상관 없다. ... 낙랑군치는 조선현이니 그 읍거가 비록 요동에 있었지만 평양에서 서쪽 지방은 모두 그 속현이었다. ... 지금의 평안·강원도 두 도가 모두 낙랑의 지경 안이었다. - 성호사설 3권 천자문. 대개 사군 때에 평안도가 낙랑이 되었고 강원도가 임둔이 되었다가 ... - 성호사설 2권 천자문. 강원도는... 한사군 때에는 임둔이었고... 낙랑에 소속되었으니 낙랑은 곧 평안도이다. - 성호사설 8권 인사문" - 출처:한국고전종합DB.
  5. 수경 문제... 는... 정말 격렬했기에 역시 조심스럽습니다만... 일단 낙랑군 문서이므로 낙랑군 패수에 관한 사항만 적되 그것을 정사에 있는 그대로 모두 보여주는 게 어떨까 합니다. 역도원의 주석은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으니 해석은 배제한 채 역시 주석으로만 추가하고요. 토론의 방향이 어쩌다보니 평양의 정확한 비정으로 흘러가버리긴 했습니다만;;; 사실 수경의 수록 문제는 패수가 동쪽으로 흐르냐? 서쪽으로 흐르냐?가 관건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각 주장을 수록하고 그 문장의 참거짓 여부는 독자에게 맡기는 것이 좋지 않나 합니다. (이런 연유로 실학자들의 주장 역시 모두 수록하였습니다) 수경주의 신뢰성을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만 수경주는 수경과 동급...이라기보다 더 중요한 서적으로 평가받습니다. 중국에서도 원문을 수경만 따로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수경주를 제공합니다. 아마 수경의 문장을 인용하신 분께서도 수경주에서 따오시지 않았나 합니다. 정사 삼국지에서 본문만큼이나 배송지의 주석을 소중히 하는 것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입니다. 그렇다고 역도원이 참인 주장을 했다고 말한다기보다는 그저 수록할 가치는 충분하다는 뜻이니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6. 낙랑군재요서설의 고고학적 증거는 산재해있는 문장을 종합하여 중복되는 표현·수사어구를 삭제하고 현황을 정확히 기재했습니다. 기존에는 '여러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라는 문장이 있었습니다만 신문기사와 복기대의 해당 논문에도 나와있듯이 한반도 밖에서는 낙랑군 내지 한사군 관련한 유물이 임둔태수장 봉니를 제외하고는 전혀 없습니다.(사실 임둔태수장 봉니도 애당초 낙랑군 유물이 아니었을 뿐더러 봉니는 문서수발에 많이 쓰였으므로 강력한 증거가 되지 못합니다ㅠㅠ) 해당 논문에서 봉니를 제외하고 검토했다는 유물은 요서·요동의 기원전 10c? 고조선?동이? 문화에 관한 유물입니다. 이것조차 이후 한화된다고 쓰여있고 고조선이 망할 즈음엔 중국 유물만 다량 발굴되고 고조선? 문화 관련 유물이 별로 안 나옵니다ㅠㅠ 복기대의 논문은 (결론은 좀 다르게 내지만) 이것만 본다면 오히려 고조선이 쫓겨났다는 것을 스스로 말하는 논문이라는;;; 다만 땅 밑에 묻혀있는 추가 유물이 발굴될 수도 있는 것이므로 바로 '없다'는 표현으로 단정짓지 않고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란 표현을 썼습니다. '특히, 전혀' 따위의 수사어구는 배제했습니다.
  7. 박선희의 연구는 오영찬의 연구와 흡사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그곳으로 이동했습니다. 평양에서 고조선 고유의 비단이 나왔다는 것은 그마만한 토착문화가 있었다는 것까지는 설명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곳에 낙랑군이 없었다고까지는 연결할 수 없습니다. 오영찬은 한인과 고조선인 간의 융화를 거론하고 있고, 평양에서 고조선 고유의 유물이 발굴되는 것은 이미 일제시대 때부터 그랬습니다. 낙랑군재평양설의 핵심은 '왜 평양 일대에서는 다른 한반도와는 달리 유독 한나라 유물들이 넘쳐나고 한사군 직책이 쓰여진 봉니와 인장들이 나오는가?'입니다. 박선희의 연구는 여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도 주지 않습니다. 참고로 낙랑국은 1c 초반에만 존재하던 나라라서... 더욱 낙랑군재평양설을 부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ㅠㅠ
  • 질문

현재 낙랑군 문화가 따로 분리되어 있는데 아예 낙랑군 문서로 합치는 게 어떻겠습니까...? 출처는 조만간 찾아 붙여보겠습니다. 귀틀무덤에 대한 내용이 역사, 논란부분에 중첩적으로 나타나는데 이것도 어떻게 하나로 합쳐서 간결화하려고 합니다. 현재 북한 학계의 연구는 결론을 제외하고 남한 학계에 흡수되어 있습니다. 무덤 연구 같은 경우가 좋은 예인데 관련 내용을 조만간 역사 부분에 추가, 정리해볼까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그리고 의견으로 낙랑군재외한반도설은 주로 신문기사를 인용하는데 아무래도 현재의 통설과 같은 급의 '학설'로 취급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최대한 1차 사료나 전문서적, 학술논문 등을 인용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 소회

그동안의 수정전쟁이 너무나도 격렬하고 요동(!)쳐서 무섭고 두렵습니다만 어느 정도 집대성할 필요는 있다 싶어 정리해보았습니다... 어느 정도씩 불만은 있으시더라도 크게 노여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ㅠㅠㅠ 글이 너무 방대해진 점도 죄송합니다... 요약도 없는 저를 부디 용서해주시길orz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3일 (화) 12:00 (KST)

기여에 감사드립니다. 다만 기존의 내용을 너무 일방적으로 수정하신 점이 있고(이는 저의 편집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의 편집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한 합의가 없었으며 특히 위키백과의 원칙을 잘못 이해하시는 것 같은데 토론:낙랑군#.낙랑군 문서의 위치 논란에 대하여에서도 확인되듯이 위키백과는 "대한민국만의 관점" 즉, KPOV는 허용되지 않고 위키백과는 특정 국가의 입장만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낙랑군 요동설을 주장하는 북한학계의 입장도 낙랑군 문서의 어느 부분에서나 공평하고 동등하게 서술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북한의 주장을 대거 삭제하고 특히 Aubelumiere님께서 추가하신 북한에서 주장하는 낙랑군 위치 지도를 삭제하신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 생각되어 일단 하신 편집을 모두 이전으로 되돌렸습니다. 토론 후 합의하에 수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합니다.--Lhrdrth (토론) 2015년 2월 3일 (화) 14:57 (KST)
으음... 그렇다면 북한의 지도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어떻습니까? 정말 주력한 부분은 표기법 준수와 견결화인데.........orz 고견을 바랍니다. 그리고 보시면 아시겠지만 북한의 주장을 '대거' 삭제한 것은 없습니다;; 토론문서이므로 크게 개의치는 않습니다만; 본항목 페이지에까지 '대거', '특히', '명백한' 같은 감정적ㆍ과장적 표현과 수사어구가 꽤 있어서 손봐야겠다고 느꼈던 것인데... 조금 무섭네요ㅠㅠㅠ 다만 북한 관련해서 삭제한 것은 지도... 하나가 있는데 특정 국가의 입장만을 대변해서는 안된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주장을 깎아내리는 표현은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중립적시각 문서에도 버젓이 나와있지만 '각각의 시각들을 다루는 비중은 각각의 중요도에 따라야 합니다. 문서의 구성이나 설명에서 소수 의견이 다수 의견보다 두드러져서는 안 됩니다.' 이는 비주류 이론에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물론 북한 학계이기 때문에 전세계가 따 시킨다? 뭐 이런 것은 아닙니다. 그 논증방법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다수의견들에게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것입니다. 예시를 들어놨습니다만 일본에서는 한국과 관련한 여러 사학적 논점에 대한 다양한 학설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위키에서는 그 모든 것을 공평하게 등재하지 않습니다. (낙랑군은 평양에 없다는 논증이 아니라) 그 지도를 북한에서 왜 그렇게 비정했는지or그렸는지에 관한 납득 가능한 논증이 있다면 지도 등재를 대찬성합니다. 혹시 그런 것이 있습니까? 그리고 북한 지도와는 별개로 다른 뚜렷한 언급 없이 그저 되돌리기만 하셨다는 것은 좀... 그렇습니다. 권고사항에 불과합니다만 이런 문서도 있습니다...... 상처받았습니다ㅠㅠㅠㅠ 많은 조언을 바랍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3일 (화) 19:08 (KST)
워낙 많은 부분을 수정하셨기에 일단 되돌리기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점 불쾌하셨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제가 술님(닉네임이 너무 기셔서 앞으로 이렇게 줄여서 부르겠으니 양해바랍니다.)의 편집에서 문제를 삼고싶은 부분은 앞에서 말씀드린 부분 외에도 자신의 개인적인 주장이 들어간 부분은 부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위키백과에 수록되는 내용은 신뢰할 수 있는 출처가 있는 자료이지 개인적인 주장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컨데 박선희 교수에 대한 내용을 "평양에서 고조선 고유의 비단이 나왔다는 것은 그마만한 토착문화가 있었다는 것까지는 설명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곳에 낙랑군이 없었다고까지는 연결할 수 없습니다."라는 개인적인 의견으로 다른 곳으로 옮기셨는데 박선희 교수가 그렇게 주장했다는 사실만 객관적으로 수록하면 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SBS 다큐멘터리에 관한 부분에도 "다만 이는 실물을 검증하지 않았다는 한계가 있다"라는 개인적인 의견을 추가하는 부분은 부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낙랑군이 한반도 밖에 있었다는 설의 고고학적 증거를 임둔태수 봉니뿐이라고 하셨는데 삭제하신 다른 부분에 또다른 고고학적 증거가 있으니 삭제하심은 부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낙랑군 요서설을 극소수설이라고 하셨는데 예로 드신 윤내현, 복기대 두분외에도 박선희 박성수 교수같은 강단 사학자분들도 주장하시므로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일단 제가 술님의 편집에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이정도이고 이점을 참고하셔서 적절한 편집 부탁드리며 향후 편집이 다소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은 제가 나름대로 수정을 가하도록하겠습니다. 그리고 서두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역사학계에서는 이를 랴오둥 반도 부근으로 본다"라는 부분을 삭제하신 것은 비중이 크므로 제가 대거 삭제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으니 양해바랍니다.--Lhrdrth (토론) 2015년 2월 3일 (화) 19:49 (KST)
KPOV(대한민국만의 관점) 비허용 부분은 사용자토론:Aubelumiere#.낙랑군 문서에서 북한의 입장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 여기를 더 참조해주시기를 바랍니다.--Lhrdrth (토론) 2015년 2월 3일 (화) 20:02 (KST)
말씀 감사합니다. 흐음... 그렇다면 hrdrth님께서는 '1. 박선희 2. SBS 3. 고고학적 유물 4. 극소수설라는 표현 5. 수정전쟁 전으로의 개요 복구'의 다섯 가지 부분만 맘에 안 드셨다는 것이군요.. 으음... 일단 첫째, 제가 편집했었던 문서의 문단 구성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낙랑군재평양설, 낙랑군재요동설, 낙랑군재요서설, 낙랑군재하북주장?의 4가지로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박선희의 주장은 그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저 낙랑군재평양설만을 부정하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박선희의 주장은 결론과 논증이 연결되지 않습니다. '평양에 토착문화가 존재했다'라는 사실은 이미 일제시대의 유물 발견 때부터 인식하던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고유 비단의 발견은 박선희가 최초(?)지만 한반도 고유 문화의 발견은 박선희가 최초가 아닙니다. 이미 권오중, 오영찬의 연구가 90년대이고, 북한은 진작부터 했습니다. 낙랑군재평양설이 독자적으로 성립할 수 있었던 이유는 평양 일대에서 다른 한반도와는 달리 한반도 고유 문화 뿐만이 아니라 유독 한나라의 유물들이 넘쳐나고 한사군 직책이 쓰여진 봉니와 인장들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 대한 부정이 있어야 하는데 박선희가 써진 신문기사... 에서는 그것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영찬의 연구와 합쳐서 표현했던 것입니다. 혹시 박선희의 논문에서 다른 것을 발견하신 것이 있으십니까? 둘째, SBS의 '실물을 검증하지 않았다는 한계'는 개인적 의견을 추가한 것이 아니라 방송에서 나왔던 말이었습니다. 오해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ㅠㅠ 셋째, 기존 문서에서는 '금성현과 그 근처 차오양 시 등 여러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라고 적혀있었습니다. 그래서 실제 주석으로 달린 논문을 찾아서 읽어봤습니다만... 낙랑군 유물을 분석한 것이 아니라 모두 고조선의 이른 시기 유물을 분석한 것이었습니다;; 신문 기사에서도 복기대가 스스로 "제 욕심 같아선 저쪽 태집둔 토성터 전부를 파보고 싶어요. 봉니 못지않은 고조선의 중요한 유물이 나올 가능성이 있어요. 다만, 돈이 문제겠죠." 라고 합니다. 한사군 유물이 아닙니다. 물론 제가 미처 몰랐던 것일 수 있으니 혹시 임둔군 태수 봉니를 제외하고 한반도 밖에서 발견된 한사군 유물이 있습니까? 넷째, 극소수설은 학설로도 치부하지 않는 쪽과 학설로 취급하고 싶은 양자의 입장을 모두 배려한 표현이었습니다. 학설로도 취급하지 않는 분들은 아예 언급 자체를 빼버리거나 단순한 주장으로 격하하고 싶어합니다. 반면에 주요한 학설로 취급하고 싶으신 분들은 어떻게든 비슷한 지위로 놓고 싶어 하시죠. 그래서 학설이란 표현을 쓰되 현재 사학계 내에서의 위치를 반영하기 위해 '극'이란 표현을 추가했습니다. 물론 말씀대로 윤내현, 복기대, 박성수 등의 교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의 대학교는 300가 넘는다는 것입니다. 현재 국가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에서도 낙랑군의 위치는 그냥 평양으로 기본으로 전제하고 얘기합니다ㅠㅠ 아마도 Lhrdrth님께서도 이 점을 비분강개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어쨌든 이것이 작금의 현실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극소수설'이란 표현으로 양자간의 일종의 타협?을 바랐습니다. 다섯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역사학계에서는 이를 랴오둥 반도 부근으로 본다'는 주장은 논란 항목에 고이고이 모셔져 있습니다. 논란 항목의 개요에서 모두 언급되고 이후 상세 내용에서도 다시 한번 언급되어 있습니다. 문서 서두에서까지 적는 것은 지나친 중복이라서 삭제하였습니다. 다른 뜻은 없습니다orz 마지막으로 중립적 시각은 국내 뿐만이 아니라 모든 국가끼리의 관계라는 것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한 학계에서도 북한 학계의 연구를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무덤과 고고학 연구는 상당량 흡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중립적 시각은 제가 위키백과 지침을 링크해드렸듯이 그것이 절대우선인 것이 아니라 다른 지침들과 연계됩니다. 현재 북한 학계의 낙랑군재요동설은 국제학계에서는 외면받고 있습니다. 그것이 단순히 북한이기 때문에 무시받는 것이 아니라 그 주장에 대한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북한이 그렇게 지도를 그린 것에 관한 자체로서의 존립 근거가 있는지 여쭈어 본 것입니다. 혹시 가지고 계신 자료가 있으십니까? 그 자체로서의 논리가 확립되어 있다면 오히려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등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비정에 대한 구체적 근거가 없다면 삭제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일단술먹고'라고 불러주시면 좋겠습니다. 걍 술은 뭔가 허전하지 않습니까?ㅋ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3일 (화) 20:55 (KST)
거듭 말씀드리지만 위키백과에서는 편집자 개인의 단순한 의견, 주장은 실릴 수 없으므로 모든 의견에는 반드시 신뢰할 수 있는 출처가있어야만 합니다. 그 출처를 다신다면 저로서도 편집에 반대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해당 북한의 낙랑군 위치 주장 지도는 북한에서 발행한 "조선단대사(고구려사1)"의 119쪽에 실려있으니 참조하시기 바라며 복기대 교수의 주장은 물론 직접적인 낙랑군 유물을 가지고 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해당 지역 각 발굴 유적 문화층의 시기를 분석하여 한 주장이므로 고고학적 증거로 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국사 교과서에서는 사실상 낙랑군 평양설이 부정되는 입장으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낙랑군 재평양설이 국내 주류 학계에서도 절대적인 주류학설은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다만 대한민국에서는 낙랑군 재평양설이 다수 학설이고 다른 학설들은 소수 학설이므로 극소수설라는 표현보다는 그냥 다수설, 소수설 이정도로 표현을 하는 것이 더 낫지않겠나하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제가 누누히 말씀드린 위키백과는 "대한민국만의 관점" 즉, KPOV는 허용되지 않는 원칙을 감안할 때 북한의 주장이 논란 항목 외의 문서 서두에도 소개되는 것은 무방하다고 판단됩니다. 만리장성 항목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우리나라 사학계는 인정하지않는 만리장성 지도도 중국의 주장이라는 소개하에 엄연히 실려있습니다. "위키백과에서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의견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역사학계의 의견에 비해 더 우월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 나라 역사학계의 의견에 대해 출처를 제시하고 중립적으로 편집하는 것이 위키백과에 맞는 서술 방식입니다."라는 아사달님의 의견을 보셨듯이 그러므로 북한의 주장도 같이 언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뭐라고 일단술먹고님의 편집을 막무가내로 반대할 권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해당 낙랑군 문서에 실린 내용들은 하나같이 치열한 토론끝에 수록된 것이므로 삭제 및 수정에 많은 신중을 기해야한다는 취지에서 드리는 말씀이니 절대로 기분 나빠하지마시고 양해해주시기바랍니다.^^ 앞으로 낙랑군 문서를 포함한 여러 자료에서 좋은 기여를 해주시기를 바랍니다.--Lhrdrth (토론) 2015년 2월 3일 (화) 23:47 (KST)
으음. 일단 편집분쟁사태를 방지하고자 기존의 토론, 고조선토론, 개인토론문서까지 모두 다시 읽어 본 후에 편집을 했었습니다.(그래서 내 아까운 시간들이...!orz) 당연히 '편집자 개인의 단순한 의견, 주장'이 실려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본항목문서를 편집할 때 제 개인 의견은 삽입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SBS 방송에 대해 '실물을 검증하지 않았다는 한계가 있다'는 문장을 보고 하신 말씀 같은데 그 출처에 달린 방송을 직접 보았습니다... 진빠지는 편집분쟁은 하고 싶지 않아서요... 그 방송에서 실물을 검증했습니까? 복기대 교수의 논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논문에서 분석했다는 유물은 고조선?동이?다른 집단?의 몇 세기 유물입니까? 무엇보다 '직접적인 낙랑군 유물을 가지고 한 것은 아니지만'이라고 스스로 인정하셨습니다..... 미처 확인하지 못하신 것일 수도 있으니 다시 여쭈어봅니다. 다른 고고학적 증거가 있습니까? 국사 교과서에는 한반도북부설(낙랑군이 평양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니까;;)을 부정하는 문장이 정말로 서술되어 있습니까? 단순히 낙랑군에 대한 서술이 사라졌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국사 교과서에는 마한 소국들의 이름은 아예 언급조차 안 되니까요... 그리고 사실 윤내현 등의 주장을 '설'이라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틀린 표현입니다...;; 학계 내에서는 이제 논의도 안된다는 거... 지금까지의 토론으로도 이미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 제가 편집할 때의 목표는 지금까지의 토론을 종합하여 '어떤 누구의 희망도 배제한 채(혹은 양자의 희망을 융합하여ㅋ) 오직 사실만 서술'이었습니다. 혹여 제가 미처 더 확인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제가 편집했던 것과 '다른 사실'이 있다면 그것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도가 남았는데... 이것을 삭제한 이유는 말씀하신대로 한국의 관점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관점(음?)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낙랑군한반도설이 전세계에 공인(?)되어 있다는 것은 그 길고 길었던;;; 토론으로 이미 검증되었다고 봅니다. 북한만이 유독 아니라고 할 뿐이죠... 그래서 말씀하신 대로 중립적인 시각은 지켜야 하기에 소개도 하고 깎아 내리는 표현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또한 몇 차례에 걸쳐 언급되었던 비중, 비주류 이론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상호 양자를 조화시키다 보니 북한의 지도는 삭제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결코 한국적 시각에서 내린 판단이 아닙니다. 다만 조금이라도 북한 지도의 등재 여지를 찾고자 북한에서 그렇게 비정한 합당한 이유를 여쭈어본 것입니다.(그 지도가 어디에 실려있냐가 아니고요;) 딱히 그런 것을 찾을 수 없다면 중립적 시각과 비주류이론의 상호 조화를 위하여 지도는 삭제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4일 (수) 03:46 (KST)
여기 토론 문서에도 제가 여러 자료를 올렸는데 북한 고대사학계의 입장은 낙랑군 요동설이니 참조를 하시고 북한 사회과학원에서 발간한 "평양일대 락랑무덤에 대한 연구" 등의 서적을 보면 나름대로의 사서 해석과 고고학적 증거로 그렇게 주장을 합니다. 그리고 낙랑군 논란 문단에 복기대 교수, SBS 다큐멘터리, 박선희 교수의 주장이 실리는 것은 주류, 비주류 이론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원래 그 섹션이 낙랑군 위치에 관한 논란을 다루라고 편성된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클릭)에서 나름 상세하게 자료를 가지고 제가 주장을 했는데 국사 교과서는 명백히 낙랑군 재평양설을 부정하는 입장입니다. 참조하십시오. 사실 북한 낙랑군 위치 주장 지도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다른 분이 올린 것인데 그분께서도 상당히 치열한 논쟁끝에 올리신 것이라 만약 삭제하신다면 후에 치열한 편집 분쟁이 발생할 것 같습니다. 저도 누누히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 지도가 올라가는 것과 북한 사학계의 주장이 문서 어디에서 실리던 대한민국망의 관점 배제 차원에서 위키백과 정책 위반이 아닌 것도 맞고요. 만약 삭제하시고 후에 이에 대한 편집 분쟁이 일어난다면 제가 이 문제에 있어서 일단술먹고님의 편은 들어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일단 제생각은 이렇습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이 낙랑군 문서의 내용은 하나같이 여러 편집자가 치열한 토론끝에 올린 것이므로 완벽히 틀린 내용이 아니라면 가급적 삭제나 일방적인 대폭 수정보다는 그냥 놔두거나 부분적 수정이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Lhrdrth (토론) 2015년 2월 4일 (수) 14:33 (KST)
한가지 더 첨언하자면 일단술먹고님같이 낙랑군 재평양설이 맞다고 생각하시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북한의 주장이나 윤내현, 복기대 교수 등의 주장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해서 낙랑군 문서에서 당장 삭제하고 싶을 겁니다. 그리나 위키는 어느 개인의 것이 아닌 만인의 것이므로 자신의 마음에 들지않는 내용이라도 그것이 위키백과의 원칙에 어긋나지않는 범위내에서 합당하게 실려있다면 그 수록을 존중해야 된다고 봅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지금 낙랑군 문서에서 당장 삭제하고 싶은 부분이 한두군데가 아닙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지금술먹고님의 편집은 그 수정폭과 삭제 범위가 너무 크고 너무 본인의 주장에만 치우친 점이 있어서 매우 당황스럽니다.--Lhrdrth (토론) 2015년 2월 4일 (수) 16:23 (KST)
북한학계의 입장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그 지도를 그렇게 비정한 합당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중립적 시각과 비주류 이론의 상호 조화를 위하여 일단 북한 지도는 삭제하되 그 주장은 소개해두고 앞으로 이에 대한 유력한 증거가 나오면 다시 토론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논란 섹션은... 해당 소제목의 이름 자체가 논란입니다. 그런데 거듭된 수정전쟁으로 비문, 과장ㆍ감정적 표현, 중복, 중구난방 등의 문제가 많아서 내용물이 아니라 기름기만 빼면서 나름의 순서를 정해 편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해당 출처들을 확인해보았고 추가 사실들을 발견하여 기재한 것입니다. 고교 국사 교과서는... 님께서 올리신 자료에서는 낙랑군의 비중이 줄어든다는 것 밖에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야스페르츠님이 올리신 자료에서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입장은 여전히 낙랑군 한반도설이었습니다. 다시 여쭈어봅니다. 고교 국사 교과서에는 정말로 '낙랑군 한반도설을 부정'한다는 문장이 실려있습니까? 고교 교과서에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수많은 나라들도 안 나옵니다. 그럼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그 나라들을 모두 부정하는 것입니까? 아마... 그것은 아니라고 답변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감정적 표현이나 중복되는 문장 따위를 삭제하고 싶은 거지 딱히 내용물을 삭제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다른 말로 하면 질소 포장을 빼고 싶었습니다ㅋ 낙랑군 문서는 특히 세 분의 애정이 컸던 것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름 신중하게 접근했습니다. 극소수설이라는 표현은 양자를 모두 배려한 표현이었는데 걸리신다면 기존의 '주장'이란 표현으로 남겨두겠습니다. 제 편집이 양측 모두에게 어느 정도씩 불만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 속에 명백히 틀린 사실이 있거나, 앞으로 새로운 증거가 나온다면 그때 또 토론을 하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6일 (금) 19:47 (KST)
국편위는 낙랑군 평양설을 부정하는 입장이 맞고 그것은 야스페르츠 사용자도 인정한 부분이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북한 측 지도를 굳이 삭제하시고자 한다면 일단 지금은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리고 새로 하신 편집 중에 박선희 교수의 주장과 복기대 교수의 주장이 빠졌는데 그걸 다시 집어넣는 것이 어떨까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그리고 패수 위치에 대한 논란도 그냥 패수가 서쪽, 동쪽으로 흐른다라고만 하면 많은 분들이 내용을 잘모르므로 "대동강은 서쪽 바다로 흘러들어 가기 때문이다."이라는 전제 설명을 넣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됩니다.--Lhrdrth (토론) 2015년 2월 6일 (금) 21:20 (KST)
박선희 교수는 평양 지역에서의 고조선 고유의 비단이 출토됨으로 그지역이 낙랑군이 아니라 주장하셨으므로 그 주장을 객관적으로 논란 부분에 싣는 것이 타당해보이며 복기대 교수는 임둔 봉니가 아니라 다른 유적 유물들을 분석하여 낙랑군이 요서 지역에 있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임둔봉니에 대한 출처가 국제신문 기사인데 백산학보 논문으로 하신 것도 오류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즉, "박선희는 평양 낙랑 구역 무덤에서 출토된 비단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고조선 고유의 비단으로 드러난 것을 근거로 평양이 낙랑군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이 부분과 " 특히 낙랑군 요서설의 주요 근거로는 1993년에 랴오닝 성 금성현에서 발견된 임둔태수 봉니가 있으며[26] 복기대는 임둔태수 봉니가 발견된 금성현과 그 근처 차오양 시 등 여러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낙랑군이 요서 지역에 위치했다고 주장하였다.[27]" 이부분은 그대로 유지하였으면 하는 것이 저의 의견입니다.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Lhrdrth (토론) 2015년 2월 6일 (금) 21:41 (KST)
우왕... 님 혹시 봇이에요?ㅋㅋㅋ 낙랑군문서에 거의 실시간으로 글을 다시네요ㅋㅋㅋㅋㅋ 다른 것도 좀 합시다ㅋ 덕분에 어제 하루종일 여러 논문 찾아가며 공부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고조선의 고고학은 그다지 좋아하는 분야가 아니라서 더 애먹었네요orz ① 야스페르츠님이 인정하셨단 말입니까? 덕분에 또;; 그 토론들을;; 읽어봤는데 인정한다는 문장은 없던데요-_- 사람 낚지 맙시다; ... 몇 년 전부터 같은 말씀을 반복하시는데;;(이젠 좀 피곤;; 이건 업무 방해임ㅋ) 국편위 고교 교과서에서 낙랑군이 (서술의 비중이 줄어들었다는 게 아니라) 한반도에 설치되지 않았다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문장을 보여주세요. 그럼 간단합니다. ② '대동강은 서쪽 바다로 흘러간다'란 문장을 굳이 넣을 필요가 있을까요? ... 우리나라가 서해, 남해, 동해에 둘러싸여 있고... 북조선 김씨왕조의 수도를 서쪽으로 관통하는 강이 대동강이라는 건 다들 압 겁니다요. 혹시 모르니 대동강 앞에 '평양의'라는 표현만 추가하겠슴다 ③ 박선희의 논문 〈복식으로 본 고조선문명과 고대사 체계의 재정립〉을 읽어봤는데... 오히려 그 주장 전체를 삭제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낙랑군 관련 직물 연구는 박선희가 한 게 아니라 조희승 등 북한의 연구를 그대로 소개한 것에 불과했고; 세형동검문화 등 북한의 고고학 연구 역시 덧붙이고 있더군요;; 그리고 그 직물들이 낙랑국 것이라고 주장한 부분은... 순환 논증이었습니다;;;;
이익과 신채호가 한사군과 다른 최리의 낙랑국이 대동강 유역에 위치했을 것으로 밝혔다. p.118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15년조(서기전3년)에 고구려 대무신왕의 아들 호동이 옥저에 놀러 갔다 낙랑국의 최리왕을 만나 나눈 대화가 있다. p.119
최리왕이 다스렸던 낙랑국은 가장 이른 기록이 서기전 28년에 보이고 있어 p.120
다시 서기 44년에 낙랑국은 동한 광무제의 도움으로 재건되어 p.120
서기 300년 대방국과 함께 신라에 투항할 때까지 존속했다. p.120
위의 내용으로부터 낙랑국은 적어도 서기전 1세기 경에 건국되어 서기 300년까지 존속했으므로... 대동강유역에는 최리왕의 낙랑국이 위치해있었기 때문에 한사군의 낙랑군이 대동강유역에 위치했다는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 p.120-122
... 그런 말 하지도 않은 이익을 덧붙이고, 대무신왕 15년은 기원후 32년입니다... 이런 오류를 싣고도 그냥 넘어갔다는 것은 해당 학회의 수준마저 의심하게 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논리가... '평양에 낙랑국은 있으니까 이런 기록들은 낙랑국에 대한 기사고 그래서 낙랑국은 서기전1세기부터 300년까지 존속했다'입니다. ...... 광무제가 낙랑국을 재건했다는 말도 틀렸습니다. (漢光武帝遣兵渡海伐樂浪取其地爲郡縣薩水已南屬漢.《삼국사기》〈고구려본기〉14권 대무신왕 27년조) 분명히 군현을 삼았다고 적혀있습니다; ④ 복기대의 〈臨屯太守章 封泥를 통해 본 漢四郡의 위치〉도 다시 정독해봤습니다. 일단 임둔태수 봉니를 주요 소재로 한 논문은 국내에선 이게 유일한 듯 하니 출처는 틀리지 않습니다. 국제신문은 이 논문 일부를 복붙하고 복기대와의 인터뷰를 덧붙인 겁니다. 말씀하신대로 태수 봉니 말고도 여러 유적을 분석하는데 주로 봉니 발견 이전 층(기원전 8-3c 정도)과 발견층(기원전 2c-기원전후) 시대를 비교하더군요. 그런데 논문 내에서 분명히 기원전 5-4c부터 중국계 성터, 지배층의 무덤이 늘어난다고 해놓고서는 이거는 중국 유민들의 유적, 유물이라고 의도적으로 무시해버리고는 바로 봉니발견층의 유물과 비교합니다. 그러고는 기원전 2-1c에 기존의 토착문화가 급격히 한화했으니 한사군은 이곳에 설치됐다고 결론냅니다. ...... 아니 연나라 유적, 유물들은 어디로 가버린 것입니까?;;; 혹시나 답을 찾을까 복기대의 다른 논문도 찾아본 결과 현재 이 논리는 스스로 폐기한 것 같습니다. 그보다 더 뒤인 2004년에 쓴 〈기원전 7~4세기 요서지역의 정치적 변화에 관하여〉《문화사학》에서 복기대는 기원전 4세기 이후 요서는 고조선에서 연나라의 땅이 된다고 합니다.(1091-1097쪽 참조) 그러니 님께서 말씀하신 문장은 삽입할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⑤ 솔직히 말씀드린다면 박선희, 복기대의 해당 논문과 저자에 관해서 님께서 수회에 걸쳐 볼드체로 강력히 미시길래 논문에 대한 어느 정도의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모두 구해서 읽어보고는... 어째서 아예 독자연구 수준으로 무시받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논문 보면서 알았는데 임둔태수장 봉니 출토지와 발표 해[年]는 수정하겠습니다. 다음에 좋은 자료가 새롭게 나온다면 그때 다시 토론합시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8일 (일) 15:54 (KST)
박선희 교수나 복기대 교수에 대해서 님께서 개인적으로 무슨 의견을 가지시든 그것은 상관하지않겠습니다. 다만 저는 그 자료들이 낙랑군이 평양에 없었다는 고고학적 주요 근거로서 신뢰할 수 있는 출처가 있으므로 낙랑군 문서의 논란 부분에 마땅히 추가되어 해당 문서를 이용하시는 분들께서 보다 풍부한 자료들을 접하시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됩니다. 님 개인적으로 그자료들이 쓸모없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위키백과의 등재 여부에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님 개인적 의견말고 왜 이 자료들이 실릴 수 없는지 납득할만한 근거를 대지 못하고 있으므로 이 자료들을 즉시 논란 부분에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저도 개인적으로 이병도의 황당한 추정으로 실려있는 낙랑군현 위치 비정 자료들을 모조리 삭제해도 됩니까? 또한 Xakyntos 사용자는 "“국사 교과서가 낙랑군을 비롯한 한사군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서술됐다는 것”은 부정할 이유가 없죠."분명히 스스로 인정을 했습니다. 제대로 확인도 안하시고 "낚았다"라는 표현을 쓰시는 것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불쾌합니다.--Lhrdrth (토론) 2015년 2월 8일 (일) 19:22 (KST)
...불쾌하셨다면 미안합니다. 근데 좀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낙랑군에 집착하시는 것 같습니다. 다른 걸 도저히 할 수가 없게 하시네요;; ... '“국사 교과서가 낙랑군을 비롯한 한사군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서술됐다는 것”은 부정할 이유가 없죠.'라는 그 님의 발언이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낙랑군을 한반도에 설치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발언입니까? ... 하아... 말 그대로입니다;; 국사 교과서에서는 낙랑군의 비중을 부정적으로 줄이고 있다는 겁니다. 문장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꾸준히 요구 드렸습니다. 고교 국사 교과서에서 낙랑군이 한반도에 설치되지 않았다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문장을 보여주세요. 이런 것 없이 4년 전부터 하신 말씀을 똑같이 반복하고 계시는 것이라면 편집방해에 해당됩니다. 기타 정책과 지침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원하시는 듯 하니 님의 사용자 토론 문서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적절한 답변을 해주시거나 여의치 않다면 스스로 편집을 되돌리시기를 권유드리겠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8일 (일) 23:37 (KST)

일단 무슨 편집을 되돌리기를 원하시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십시오. 그리고 국사교과서의 낙랑군 기술 문제는 제가 전에 링크해드린 부분에서 국사교과서의 개정 과정을 예로 들고 국편위의 입장까지 나름대로 방대하게 예를 들어서 충분히 입장을 밝혔습니다. 국편위에서 출판한 국사교과서를 살펴보십시오.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라고 직접적으로 기술한 부분은 어디에도 안나옵니다. 그리고 국사교과서의 낙랑군 기술 문제가 지금 편집에서 논쟁이 되는 부분도 아닌데 계속 이부분을 지적하시는 이유도 잘모르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5년 2월 9일 (월) 00:08 (KST)

그리고 제가 다른 걸 도저히 할 수가 없게 한다니요? 북한 지도 삭제, 서두에서 북한의 주장 부분 삭제, 요동지역에 대한 서술의 삭제를 저는 현재 모두 수용했습니다. 그런데 님께서 삭제하신 박선희, 복기대 교수부분은 심지어 Xakyntos 사용자도 수록을 인정했고 특히 복기대교수 부분은 Xakyntos 사용자가 직접 수정, 서술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이 본인이 보기에 황당한 주장이라는 이유만으로 삭제를 하려고 하시니 제가 납득이 가겠습니까? 박선희 교수는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학과 교수이시고, 복기대 교수는 인하대 융합고고학과 교수이십니다. 한가지 여쭙겠습니다. 이분들의 주장이나 논문을 단칼에 엉터리라고 판정하시는데 혹시 지금 학계에 종사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그 직책을 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Lhrdrth (토론) 2015년 2월 9일 (월) 00:19 (KST)

귀하의 사용자 토론 문서에 말씀 남겨드렸으니 확인 바랍니다. 자꾸 같은 말씀을 반복하시는데... 네. 국사 교과서에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라고 직접적으로 기술한 부분은 어디에도 안나옵니다. 그런데 국사 교과서에는 마한, 변한, 진한의 각종 소국, 삼국사기에 나오는 각종 소국들도 이름이 안 나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탐라국조차 이름이 안 나옵니다. 이 모든 것의 존재를 국편위는 부정하고 있단 말씀입니까? 이 논증이 중요한 이유는 님께서는 낙랑군한반도설이 이젠 학계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는 걸 자꾸 부정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 증거와 출처를 제시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그런 것도 없이 같은 말씀만 반복하시는 건 방해편집입니다. 방해편집은 토론과정에서도 성립합니다. Xakyntos사용자는 님이 제시한 출처를 확인하지 않은 듯 하고;; 무엇보다 님의 방해편집에 질려서 아예 위키를 떠나간 상태입니다. 저 역시 위키에 건설적인 기여를 하고 싶어도 낙랑군 토론문서만 갱신하고 있습니다orz 박선희와 복기대가 누구고 어떤 지위에 있는지는 상관 없습니다. 그들의 주장이 현재 학계 내에서 어느 정도의 비중을 갖고 있냔 말입니다. 님께서는 그들의 비중이 학계 내에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증명하면 됩니다. 하물며 복기대는 기존의 논리를 수정했는데도 자꾸 예전 논문 내용을 싣겠다는 저의가 뭡니까? 그리고 신상을 물어보는 것 역시 정책 위반일텐데 말입니다? 그럼에도 답변드리자면... 그냥 술 좋아하는 지나가던 선비입니다. 이제 낙랑군 논문은 그만 다운받아 보고 싶군요;;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9일 (월) 01:33 (KST)
저는 나름대로 그 자료들과 증거들을 앞서서 보여드린 링크 등에서 충분히 보여드렸는데 자꾸 증거와 출처를 제시하지않는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시면 저로서는 도대체 뭘 더 어떡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누누히 말씀드리지만 논란 부분에 복기대 교수 등의 주장을 싣는 것은 비주류 이론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원래 그 섹션이 논란을 다루라고 편성된 것입니다. 논란을 다루라는 부분에서 논란을 다룬 것이 뭐가 잘못이란 말입니까? 그리고 Xakyntos사용자가 제 방해편집에 질려서 위키를 떠났다고 하시는 부분은 인신공격으로 받아들일 소지가 있는 상당히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생각되고 따라서 개인적으로 상당히 불쾌합니다. 그리고 복기대 교수가 기존의 주장을 폐기했다는 것도 님의 일방적인 추측아닙니까? 복기대 교수가 직접 그런 입장을 밝히거나 님께서 직접 질문하셔서 그런 답변을 받아오신다면 해당 부분 삭제에 얼마든지 동의하겠습니다. 그리고 님께서 혹시 학계에 계시냐는 질문을 드린 것은 상술한 바와 같이 매우 단호한 입장으로 두분 교수의 주장을 배척하시기에 궁금해서 여쭤본 것으로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5년 2월 9일 (월) 01:50 (KST)
국사 교과서와 관련해서 제가 원하는 것은 단하나입니다. 님께서 스스로 국사 교과서에서 낙랑군한반도설을 부정하는 서술이 있다고 하셨으니 그것을 보여달라는 것입니다. 님께서는 낙랑군한반도설이 현재 확고하다는 것을 부정하며 (대학교도 아닌;) 고교 교과서를 근거로 드셨으니까요. 논란 섹션은 학계에선 논란이 없는데 논란을 키우는 게 문제입니다. 님의 희망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희망을 이 문서에 투영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현재 학계에선 낙랑군의 위치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다는 것을 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솔직히 정말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교양이 깊으시니까요) 그러므로 논란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자는 것입니다. 복기대와 박선희의 주장은 (단순히 소수설이 아니라) 학계에서 전혀 주목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섹션에 실릴 정도의 비중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나름 박선희의 연구(???)는 적당한 위치로 이동시켰습니다. 복기대는 확인 가능한 논문을 제시해드렸습니다. 2001년 논문에선 토착문화->(연나라 없이) 한나라라고 했지만 2004년 논문에선 연나라가 요서를 지배했다고 서술합니다. 확인하시면 되잖습니까? 그리고 낙랑군 문서에는 모든 분들의 피와 땀과 애정이 서려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 토론 문서를 여러번씩 읽어봤습니다. 그 중에 특히 두 분의 분쟁과 차단의 역사(?)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인신공격을 하려던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측이 불쾌하다면 그것은 잘못이니 사과드리며 오해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님이 낙랑군 문서에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명확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훌륭한 증거가 나왔을 때 해도 늦지 않습니다. 결정적 유물이 발굴되면 님께서 직접 일어나지 않으셔도 세상은 바뀔 것입니다. 지금은 이래도 결국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것입니다. 그때까지만 잠시 때를 기다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9일 (월) 02:36 (KST)
누누히 말씀드리지만 국사 교과서 낙랑군 기술 문제에 있어서 그 자료들과 증거들을 앞서서 보여드린 링크 등에서 충분히 보여드렸습니다. 그리고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 부분은 지금 논쟁에도 해당되지않으니 이제 이부분은 그만 언급되었으면 좋겠고, 님께서 "복기대와 박선희의 주장은 (단순히 소수설이 아니라) 학계에서 전혀 주목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섹션에 실릴 정도의 비중이 없습니다."라고 주장하시는 한 이 부분은 무한공전의 루프 상태로 돌아갈 것 같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이부분은 심지어 Xakyntos사용자도 수록을 인정한 부분이고 낙랑군 논란 부분에서 이른바 재야사학자도 아닌 강단사학자이신 분들이 특히 고고학적인 증거를 언급하시는 부분은 위키백과의 사용자들에게 보다 풍부하고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유익한 부분이라 사료됩니다. 더구나 이부분은 그동안 특별한 반대없이 유지되어 오던 부분인데 말입니다. 저는 낙랑군이 평양에 확실히 있다, 또는 없다라고 주장하지않습니다. 다만 여러 논란이 있는 가운데 객관적으로 문제가 없는 자료들을 추려서 위키에 등재함으로서 그 사실들이 위키백과의 원칙에 어긋나지않게 수록되어 보다 풍부하고 다양한 정보들을 제공하기를 희망하는 것입니다.--Lhrdrth (토론) 2015년 2월 9일 (월) 02:56 (KST)
확인하시면 아시겠지만 박선희 교수의 주장 부분은 "저도 박선희 교수의 기사 내용을 읽어보았습니다. 학계의 권위 있는 논문이므로 위키백과에 해당 내용을 편집하여 올리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다수설인지 소수설인지를 따져서 적절한 비중으로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아사달님께서도 말씀하셨고 따라서 적절한 비중으로 적절한 부분에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꼭 이 부분을 삭제하셔야만 하겠습니까? 이미 논쟁이 있었고 적절한 수준으로 타협되어 실려있는 부분입니다.--Lhrdrth (토론) 2015년 2월 9일 (월) 03:11 (KST)
님의 사용자토론문서에 있는 것 중 합의를 보지 않으신 것까지 합쳐서 여기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2015년 현재 낙랑군한반도설은 확고히 자리 잡아서 더 이상의 논란이 없습니다. 이것은 4-5년 간의 토론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님께서는 고교 국사 교과서에서 낙랑군의 서술비중이 줄어든다는 것은 앞서의 링크된 부분으로 증명하셨지만 낙랑군한반도설을 부정하는 문구가 삽입되어 있다는 주장은 증명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자연히 복기대와 박선희의 주장은 '지배적인 혹은 제도권의 학설에서 아주 크게 빗나가는 학설'이고 이를 비주류이론이라 합니다. 그런데 복기대는 2004년 논문에서 기존의 논리를 수정했으므로 논외고(같은 말씀 반복하지 마시고 논문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박선희의 주장이 실린 논문은 학계의 권위 있는 논문이 아닙니다. 이전에는 이 출처를 신문으로만 봤을 뿐 실제 논문은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해당 논문을 실제로 확인함으로써 문제를 발견한 것입니다. 고조선단군학회에 대해서는 이전에 말씀드렸고, 학계에서는 이 학회의 논문은 별로 인용하지 않습니다. 박선희 자신이 님께서 여러번 볼드체로 강조하셨듯이 그 학회의 부회장입니다.(지금은 어떤지 모르겠군요) 박선희의 주장이 수록되기 위해서는 더 심화된 검증을 통과해야 하며, 믿을 수 있는 독립된 출처가 그 주제를 진지하고 비중 있게 다룬 경우로 한정됩니다. 만일 비주류 이론을 언급하는 것이 그 학설에 부적절한 비중을 실어 준다면, 그 학설에 대한 언급은 제한된 수준에서만 가능하거나, 아니면 아예 불가능합니다. 즉 풍부하고 다양한 정보의 제공은 '비주류이론, 신뢰할 수 있는 출처, 확인 가능'의 제약을 받습니다. 님께서는 이것이 아니라는 같은 주장만 반복하지 마시고 증거를 제시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① 낙랑군한반도설이 학계 내에서 여전히 논란중이라는 것을 증명하거나 ② 박선희의 그 옷감은 낙랑국의 것이라는 주장이 믿을 수 있는 독립된 출처에서 그 주제를 진지하고 비중 있게 다루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시면 됩니다. 저는 님께 도움이 되고자 박선희의 연구도 완전 삭제한 것이 아니라 적절한 비중으로 소개하고 있었으며, 더한 등재를 위하여 이 두 가지를 꾸준히 요청드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증거 제시가 없다면 님의 주장은 정당한 권원 없이 소수 의견에 지나친 비중을 둘 것을 고집하는 방해편집에 해당됩니다. 다음으로 '수경 원문에는 낙랑군은 평양에 없다'라는 문장이 없다고 스스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추가하신 내용들은 독자연구가 됩니다. 사실 수경주에 대한 내용이 좀더 보강되어야 합니다. 님께서는 윤내현의 해석만을 놓고 강하게 주장하셨지만 그렇게 해석하지 않는 학자들이 더 많습니다. 즉 수경주가 옳다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절대다수라는 겁니다. 그런 문구 삽입 없이 그저 각 사료의 원문 공개만으로 그치는 것이 오히려 걸립니다. 그러나 협업정신을 존중하여 '대동강은 서쪽으로 흐르는 강이다'는 사실 적시만 해당 문단 말미에 삽입하는 형태로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스브스와 관련해서는 '강력한' 증거라는 주장은 출처가 어디입니까? 출처가 없다면 역시 독자연구에 해당됩니다. 사실 제가 편집하기 이전 문서에는 감정적, 과장적 표현이 너무 많았습니다. 이는 중립적 시각에 위배됩니다. 님이 판단하기에는 강력한 증거일지 몰라도 그것이 강력한지 아닌지는 독자들이 판단할 일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만 해도 딱히 그것들이 강력한 증거라곤 생각치 않습니다. 어차피 검증이 불가능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말씀하신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이 유물은 진짜가 아니다."는 PD가 한 말입니까? 방송에서 전문가들이 한 말입니까? 해당 출처가 방송의 소개문이라면 신뢰할 수 없는 출처입니다. 근데 '특히 이 두 유물이 조작 또는 조작되었을 가능성을...' 이라고 소개문에도 나와있군요. 그 방송에서는 탄소 연대 측정을 합니까? 성분 분석을 합니까? 실물과 사진을 비교합니까? 실물을 실사합니까? 어느 부분이 다각도로 조사 검증했다는 말씀입니까? 그 방송에서는 오직 사진만 현대의 다양한 분석기법(사실 이것조차 다른 신뢰할 수 있는 출처로 확인되지 않은 사항입니다;)으로 분석합니다; 참, 방송에 (복기대 말고) 고고학이나 고대사 전공 교수님들은 나오지도 않더군요. 그런데도 그 유물을 검증, 조사했다고 말씀하실 수가 있습니까?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9일 (월) 09:11 (KST)
계속 말씀드린 대로 박선희, 복기대 교수 부분은 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던 강단 사학자들의 논문을 근거로 논란 부분에 수록되어 있으므로 문제가 없습니다. 비주류 이론에도 해당되지 않고 신뢰있는 출처도 있습니다. 따라서 수록에 문제가 없는 부분입니다. 이미 다른 사용자들의 토론으로 합의까지 거친 부분입니다. 이런 것을 가지고 내용이 엉터러다, 아예 비중조차 줄 수 없다라고 주장하셔서 삭제를 하시는 것이야말로 방해 편집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SBS 다큐멘터리는 그 내용을 보시기전에 그 해당 출처의 소개글이라도 좀 보시기를 바랍니다. 님이 검증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자유인데 제 토론 문서에도 예를 들었지만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이 유물은 진짜가 아니다. 심지어 낙랑군의 속현 중의 하나로 있었다는 점제현을 입증해준다는‘점제현신사비(秥蟬縣神祠碑)’ 또한 그 의심스러운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그들은 낙랑군을 입증할만한 증거가 부족한 듯하자 역사조작을 자행한 것으로 보인다. 두 유물의 진위 여부 : 이 프로그램은 특히 이 두 유물이 조작 또는 조작되었을 가능성을 현대의 다양한 분석기법 및 관련 전문가들을 동원하여 파헤칠 것이다." 이 부분만 봐도 낙랑군 문서에 실린 내용은 문제가 없습니다. 수경 문제도 님께서 역도원 부분까지 아시니 강의 흐름 문제가 왜 이슈인지 잘아실 것 아닙니까? 좋습니다. 님께서 지적하시는 SBS 다큐멘터리 부분의 "강력한"이라는 부분을 삭제하고, 그리고 수경에서 님께서 문제가 삼으시는 부분을 님의 의견을 반영하여 수정을 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지금까지 님의 주장을 최대한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님께서도 님의 주장만 밀어붙이시지말고 박선희, 복기대 교수 부분에 있어서 적절한 타협점을 제시해주십시오. 박선희 교수 부분을 옮긴 것도 님이 일방적인 주장이 근거가 아닙니까?--Lhrdrth (토론) 2015년 2월 9일 (월) 13:10 (KST)
참고로 님께서 북한 지도 삭제, 서두에서 북한의 주장 부분 삭제, 요동지역에 대한 서술의 삭제를 하셨는데 이것은 제가 일단은 수용을 해드렸지만 토론 문서들을 꼼꼼히 읽어보셨다니 아시겠지만 이것은 Aubelumiere님께서 하신 편집 부분으로 나중에라도 이부분이 삭제되었음을 그분이 아신다면 다시 엄청난 편집분쟁이 발발할까 저어됩니다. 상당히 많은 부분이 삭제된 것도 맞으므로 이부분을 왜 삭제해야만 했는지를 님께서 그분 토론 문서에서 직접 입장을 밝히시는 것이 혹시라도 있을지모르는 편집분쟁을 막거나 최소화할 수 있는 방편이지 않을까 생각되니 고려해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5년 2월 9일 (월) 13:22 (KST)

제가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일단술먹고님께서 박선희, 복기대 교수의 주장을 그토록 삭제하고자 하신다면 일단 삭제를 수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물론 두 주장이 당연히 실려야한다는 입장이고 특히 박선희 교수 주장 부분은 이미 사용자들간의 합의로 수록된 부분이라 다른 분들의 반발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일단술먹고님께서 상당히 고심해서 상대측의 입장도 고려해서 편집을 하시는 분으로 보이므로 제가 이부분도 수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임둔봉니 출처부분은 백산학보 논문보다는 국제신문 기사로 해주시는 것이 더 낫지않나 생각됩니다. 이것으로 일단술먹고님과의 이번 논쟁은 일단락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또다시 소모적인 논쟁으로 치달음에 이것은 결코 바람직하지않다는 판단을 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낙랑군 문서를 비롯해서 위키백과에 좋은 기여 부탁드리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5년 2월 10일 (화) 03:09 (KST)

말씀하신대로 수정하였고, 박선희의 연구는 좀 있어 보이게 출처를 엄한 신문기사보다 실제 논문으로 수정하였습니다. 혹여 스브스 관련으로 불만인 점이 있으시다면 아예 스브스 내용 전체를 삭제해주세요. 애당초 해당 출처 자체가 신뢰할 수 있는 출처는 아니더군요. 앞으로 어떤 분이시든 새로운 논제가 생긴다면 언제든 토론합시다.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뭐든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10일 (화) 22:07 (KST)


aubelumiere 본인입니다. Lhrdrth 님과의 합의 후 편집됐던 부분이 대폭 바뀌었더군요. 위키백과에 크게 신경쓰지 않으려 했으나 북한 측이 주장하는 지도 및 내용들이 삭제되어 글을 남깁니다. 귀하의 역할은 신뢰 가능한 출처에 따라 편집하는 것이지 북한 측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모르겠다며, 즉 신뢰할 수 없다는 자의적인 해석으로 위키백과 규칙 상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편집을 되돌려놓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Lhrdrth 님께서 말씀해 주셨듯이 말입니다. 반복합니다. 위키백과에서 편집할 때는 독자적인 생각이 반영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편집자로서 자료가 제대로 된 출처를 가지고 있으며 표기되어도 문제가 발생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인데 스스로 학자가 되어 내용을 연구하고 개인의 입맛에 따라 부적절하다는 구실로 아무 문제가 없는 편집에 해를 가하다니요. 귀하의 편집은 중립성을 지키지 않은 것이 자명합니다. 글 일일이 적어놓을 시간적 여유가 없어 짧게 씁니다만 이후 귀하의 편집이 계속된다면 저로서는 다른 방법을 강구하겠습니다.--Aubelumiere (토론) 2015년 2월 21일 (토) 12:48 (KST)

전세계에서 공인된 학설이라니요.. 설마 탈탈 털린 야스페르츠의 국제 학계 통설과 맥을 같이 하고 계신겁니까?
"낙랑군한반도설이 전세계에 공인(?)되어 있다는 것은 그 길고 길었던;;; 토론으로 이미 검증되었다고 봅니다. 북한만이 유독 아니라고 할 뿐이죠..."
이게 삭제 이유입니까? 야스페르츠가 이 주장을 했죠. 그러나 Lhrdrth 님, 아사달 님, 야스페르츠와 행했던 토론과 Lhrdrth 님과 Asadal 님께서 말씀하셨던 것과 같이
"백:아님#국가에서도 보시듯이 "위키백과는 특정 국가나 특정 집단을 대표하지 않습니다. 위키백과는 모든 국가와 집단에 대해서 중립적 시각을 원칙으로 운영되므로, 특정 국가나 특정 집단의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위키백과는 모든 국가와 집단에 대하여 대등한 관점으로 서술합니다."라는 공식 정책도 있습니다. 따라서 낙랑군 문서에서는 어느 부분에서나 낙랑군이 요동에 있다는 북한의 입장이 공평하게 서술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간단히 논박됩니다.--Aubelumiere (토론) 2015년 2월 21일 (토) 13:00 (KST)
장황한 토론글은 모두 읽어주셨기를 바랍니다. 현재 주요한 정책과 지침은 백:중립, 백:비주류, 백:방해, 백:훼손, 백:비난, 백:예절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위키백과는 특정 국가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중립적 시각이란 모든 국가의 입장에서 서술해야한다는 말입니다. 현재 북한을 제외하고 전세계는 낙랑군한반도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미 기존의 길고 길었던 고조선, 만리장성, 낙랑군, 각 사용자 토론 문서에서 증명되었습니다. 대체 어디가 '탈탈 털렸었다는' 말씀이십니까...? 북한의 주장은 전세계적인 입장에서 비주류 이론이므로 믿을 수 있는 독립된 출처가 그 주제를 진지하고 비중 있게 다룬 경우로 한정됩니다. 만일 비주류 이론을 언급하는 것이 그 학설에 부적절한 비중을 실어 준다면, 그 학설에 대한 언급은 제한된 수준에서만 가능하거나, 아니면 아예 불가능합니다. 소수 의견에 지나친 비중을 둘 것을 고집하시는 것은 방해편집입니다. 님께 요청드리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북한의 주장이 전세계에서 비주류이론이 아님을 증명 ② 평양 이야기가 현재의 '낙랑군 문서'에 수록될 가치가 있을 만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증명. 저는 언제나 일방적으로 편집하고 싶지 않아서 항상 증거 제시를 요청드리고 있습니다. 일단은 기존의 문서로 돌려놓겠습니다만 그 증거들을 확인하면 지체없이 님의 희망을 반영하여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21일 (토) 19:45 (KST)
누누히 말씀드리지만 대한민국 위키백과가 아닙니다. Aubelumiere님의 편집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만약 Aubelumiere님께서 일단술먹고님을 방해편집으로 사관요청하신다면 저는 객관적으로 Aubelumiere님의 편에 설 수밖에 없습니다. 제발 님만의 주장말고 다른 사람의 주장도 받아들이시고 적절한 타협점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Lhrdrth (토론) 2015년 2월 21일 (토) 19:57 (KST)
그리고 북한은 지금 평양 지역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실효적 지배를 하면서 거기서 수많은 유물을 발굴하고 고고학적 증거, 문헌학적 해석 등을 통해서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낙랑군이 요동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굳이 위키백과가 KPOV를 허용하지않는 것을 배제한다고해도 북한측의 주장은 상당한 비중으로 해당 문서에 실리 가치가 있습니다. --Lhrdrth (토론) 2015년 2월 21일 (토) 20:05 (KST)
아래에 이 문제와 관련해서 다른 두분의 견해를 다시 올립니다. 부디 더이상의 편집분쟁없이 위키백과의 원칙에 맞는 선에서 원활하게 문제가 해결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위키백과에서 KPOV는 인정되지 않으며, 특정 국가의 입장이 아닌 중립적 입장에서 서술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낙랑군 문서에서 예전에 Xakyntos 사용자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역사학계의 입장을 무시하는 의견을 낸 적이 있었는데, 그건 위키백과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발언이었습니다. 위키백과에서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의견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역사학계의 의견에 비해 더 우월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 나라 역사학계의 의견에 대해 출처를 제시하고 중립적으로 편집하는 것이 위키백과에 맞는 서술 방식입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4년 9월 13일 (토) 21:15 (KST)
"마찬가지로 우리 나라의 입장에 치우져 해당 내용을 서술하는 것 또한 허용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역사인데 우리나라 입장을 강조하면 안되냐고 주장하셨는데, 네 안됩니다."- 위키백과 관리자 이강철님의 견해
--Lhrdrth (토론) 2015년 2월 21일 (토) 20:18 (KST)

북한 지도와 북한 측 주장을 싣는 문제는 Aubelumiere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애초 일단술먹고님께서 이 부분에 대해서 삭제 편집을 하셨을 때 저도 Aubelumiere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을 가지고 삭제 편집은 틀렸다고 말씀드렸으나 결국 삭제되어 마음이 편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올린 링크에서도 위키백과에서 오래 활동하신 아사달님을 비롯, 관리자분 그외 다른 사용자들도 이 부분을 확인하신바가 있습니다. 제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편드는 것이 아닌 위키백과 지침상 Aubelumiere님의 편집이 문제가 없고 맞기에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Lhrdrth (토론) 2015년 2월 21일 (토) 16:37 (KST)

"이번에도 주관적인 판단을 내리신 겁니다. 주류인지 비주류인지 귀하가 판단을 내리는 것은 곧 중립적 시각을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전 세계가 인정하고 말고는 귀하가 판단할 게 아닙니다. 해외 국가들은 그 주장을 실을 뿐이지, 이와 관련하여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독도만 봐도 그렇지요.) 귀하가 인정했듯이 모든 국가의 입장에서 중립적으로 서술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으므로 이 지도가 추가되어 있어도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남북한의 학계의 이론이 다르고 전 세계적으로 어느 한쪽이 더 알려졌다 해서 "어느 한쪽이 주류이고 비주류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분명 오류가 있을텐데요? 그리고 북한이라는 국가 내에서는 북한의 학설이 주류이고 남한의 것이 비주류인데 말이죠. 그나저나 북한은 "비주류를 주장하는 소수의 학자 또는 단체"가 아니고 "국가"인데 말입니다. 따라서 백:비주류 이론보다는 백:아님#국가를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죠. Lhrdrth 님과 Asadal 님, 또 이강철 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다수의 의견은 이러합니다.

저 또한 귀하의 논증를 요청합니다.

1.북한의 학설이 비주류임을 증명 (막연히 해외에서 북한이 아닌 한국의 학설이 널리 배포되어 있음이 아니라)
2.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의 학설을 인정하고 북한의 것을 배척
3. '북한=국가'라는 명제가 틀리고 '북한=(비주류 이론을 주장하는 소수 학자 및 단체)임이 옳다는 것
"널리 배포되어 있으니까"는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북한이라는 "국가"는 사회, 문화적으로 단절되어 있으니까요. 그리고 탈탈 털렸다는 건 있지도 않은 국제 학계 통설을 창조해 낸 야스페르츠에 대한 일화이므로 개의치 않으셔도 됩니다.--Aubelumiere (토론) 2015년 2월 21일 (토) 20:38 (KST)
백:비주류 이론을 가져왔습니다. 귀하가 문제 삼는 부분은 이것 맞죠?
  • "어떤 분야의 일반적인 내용을 다루는 문서에 그 분야의 학계에서 널리 지지받지 못하는 학설을 필요 이상 중점적으로 서술하면 안되며"
남북한 학계는 완전히 별개입니다. 그리고 국제 학계는 존재하지도 않고요.

--Aubelumiere (토론) 2015년 2월 21일 (토) 20:48 (KST)

일단 우리 분명히 합시다. 우리는 당연히 남한의 시각을 강조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또 당연하지만 북한의 시각도 강조해서는 안됩니다. 모두 중립적 시각 하에서 적절한 비중으로 실려야 합니다. 그래서 북한의 지도는 (개요의 중복된 내용과 함께) 삭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북한의 주장이 전세계에서 주류인지 비주류인지는 제가 판단한 것이 아닙니다. 기존의 토론에서 확인했었던 내용입니다.(괜히 또 같은 내용을 증명하라고는 안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Aubelumiere님께서는 '한국의 학설이 막연히 널리 배포된 것'이라고 스스로 말씀하심으로써 현재 전세계에서 낙랑군한반도설이 통용된다는 것은 인정하셨습니다. 다만 '북한이라는 "국가"가 사회, 문화적으로 단절되어서' 그런 것일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묻습니다. 그 사회, 문화적으로 단절되어 있다는 북한의 학설을 님께서는 어찌 아셨습니까? 남한의 학계에서는 북한의 연구를 어찌 알고 오영찬이나 동북아역사재단 같은 곳에서 그 성과를 흡수하여 연구할 수 있었습니까? 즉 님께서는 사실을 왜곡하셨습니다. 중국과 일본 사학계는 남한과 별개로 움직이고 있으며 이는 다른 서양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도 낙랑군한반도설이 통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북한에서는 낙랑군요동설이 주류이론이 맞습니다. 하지만 전지구적인 시각(그야말로 중립적 시각)에서 본다면 북한의 주장은 비주류 이론입니다. 그래서 적절한 비중 하에 기존의 문서에서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국가와 단체는 다르다는 말씀입니까? 단체의 뜻은 '여러 사람이 모여서 이루어진 집단'입니다. 국가는 3요소(혹은 4요소)가 더 필요하기는 하지만 역시 '사회 집단'입니다. 이것은 '트럭 통행 금지' 표지판을 보고 탱크가 '나는 트럭이 아니니까'라고 말하며 전진하는 것과 같습니다. Aubelumiere님께서 하실 일은 간단합니다. 북한의 낙랑군요동설이 다른 나라 사학계에서 상당히 비중있게 다뤄지는 사례만 제시하시면 됩니다. 그런 것이 없다면 그 지도를 수록하는 것은 백:중립적 시각백:비주류 이론의 위반이며, 그럼에도 소수 의견에 지나친 비중을 둘 것을 고집하신다면 백:방해편집에 해당됩니다. 덧붙여서 평양도 끼워넣으셨던데 이건 주제를 새로 개설해서 말씀하시든 어떻게 해서 역시 합당한 증거 제시를 바랍니다. 그러지 않으신다면 백:문서 훼손까지도 포함됩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21일 (토) 22:15 (KST)
"북한의 낙랑군요동설이 다른 나라 사학계에서 상당히 비중있게 다뤄지는 사례만 제시하시면 됩니다."는 전혀 고려될 문제가 아닙니다. 현재 평양 지역의 유물을 발굴하고 고고학적 성과를 발표하는 북한 사학계의 입장을 낙랑군 문서에 있는 그대로 소개하는 것은 중립적 시각의 원칙 등에 입각하여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삭제하는 것이 방해편집, 문서훼손에 해당될 것입니다.--Lhrdrth (토론) 2015년 2월 22일 (일) 00:12 (KST)
언제 북한만의 입장을 강조하던가요? 내용 대부분이 남한의 학설인데 KPOV니까 세부 항목을 모두 수정하는 건 어떠십니까?
말꼬리 잡고 늘어지는 건 정치계에서나 볼 법한 일인데요, 먼저 모순인 게 세계를 기준으로 하는것에 갑자기 남한 학계의 동북아 역사재단은 왜 나옵니까? 그리고 단절되어 있는 건 초등학생도 알고 있는 사실인데 말이죠..
"위키백과에서" 주류, 비주류 이론의 여부 전 세계적인 저명성에 입각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학계 내에서 적절한지 판단하는 것이라니깐요. 귀하도 국제 학계 통설 주장자입니까? 혹시 야스페르츠 본인인지 궁금하군요. 글을 다시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애초에 논리를 전개하려면 저명성에 관해서 들고오시든지 하셨어야죠. 근거는 저명성과 관련된 것이면서 주장은 위키백과의 백:비주류 이론이라니..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기존 문서는 저와 Lhrdrth 님의 편집입니다. 확인 바랍니다. 현재 편집 또한 적절한 비중 하에 서술되어 있습니다. 문서 대부분이 재평양설을 말하는 것만 봐도 알수 있죠.
언어 유희는 제발 부탁드리건대 지양하십시오. 말꼬리 잡고 늘어지면 저도 똑같이 그럴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말한 '소수 학자 및 단체'의 의미를 파악 못하시나요? 한정어의 수식 방향이 어디인지 모르시나요?
귀하의 편집은 현재의 것에 비해 KPOV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마치 e^-의 에너지 준위가 n=1하고 그 이상과의 차이와 그에 따른 이온화 에너지와 전기 음성도의 차이와 같이 말이죠. 왜냐하면 현재 편집은 문서의 일부 중 앞부분이라도 중립적 시각을 위해 추가해놓았으니까요. 나머지 대부분은 한국 학계 통설이죠.
정리하면 귀하가 주장하는 건 저명성에 관한 것이고 근거로 제시한 백:비주류 이론은 완전히 틀렸습니다.
  • 백:비주류 이론은 어떤 학계 내에서 그 여부를 판단하는 것으로 북한의 학계는 지구 상의 어느 학계에도 소속되지 않을 뿐더러 남한, 중국, 일본의 학계와 상하관계가 아니므로 적용이 불가능합니다.
  • 현재 편집은 저명성에 입각하여 비중 있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경고합니다. 귀하가 위키백과의 지침을 자의적으로 해석, 왜곡하여 행하는 편집은 백:중립적 시각백:비주류 이론의 위반임이 너무나 자명하며 백:문서 훼손, 백:방해 편집은 귀하가 이 편집을 토론 없이 강행할 경우 발생하는 일입니다. 일반적인 편집 분쟁은 제시하신 지침에 해당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으름장을 놓는 행위는 협업 정신을 위반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될 수 있습니다.--Aubelumiere (토론) 2015년 2월 22일 (일) 00:21 (KST)
공격적인 언사들은 배제하고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해보겠습니다. 현재 낙랑군한반도설은 전세계에서 통용되고 있으며 어떠한 사학계에서도 한사군의 위치에 대한 논란이 없다는 것은 Lhrdrth님이나 Aubelumiere님께서 대체로 인정하시는 것 같습니다. 유독 북한만이 낙랑군요동설을 주장하고 있으며 그것이 그저 덮어놓고 무시받은 것은 아니다라는 것까지 인정하고 계신다고 봅니다.(북한은 자유 왕래가 단절되어 있는 것이지 학술 발표 자체가 단절된 것은 아닙니다. 저와 Aubelumiere님께서 북한 학설을 아신다는 것 자체가 증인 아닙니까?) 백:저명성은 관련되는 것이 없습니다. 서로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백:중립적 시각에서의 비중의 정도와 백:비주류 이론의 적용범위가 아닌가 합니다. 특히 관건은 "각각의 시각들을 다루는 비중은 각각의 중요도에 따라야 합니다. 문서의 구성이나 설명에서 소수 의견이 다수 의견보다 두드러져서는 안 됩니다. 사회적 저명성의 기준에 따른 적절한 비중 하에 관점들이 다루어져야 합니다. 다른 정책과 지침을 충족하여 기술하였더라도 일부의 시각만이 과도하게 반영된 경우에는 다른 방향의 관점의 내용이 균형있게 보태지기 전에는 중립적 시각의 위배가 될 수 있다."는 조항이 아닌가 합니다.
Lhrdrth님과 Aubelumiere님께서는 비주류 이론은 국가 간의 관계에는 성립하지 않고, 한편으로 현재의 분량이 중립적 시각에 부합하므로 북한의 지도 등재 및 개요에 논란이 있다는 내용을 삽입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저는 현재 전세계 어디에서도 낙랑군한반도설의 논란은 없고 유독 북한만이 낙랑군요동설을 주장하고 있으므로,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중립적 시각의 비중에도 맞추기 위하여, 북한의 주장은 논란 문단에 그대로 보존하고 개요에서의 과도한 내용과 북한 지도만 삭제하자는 것입니다. 한편 이와는 별개로 비주류 이론은 국가 간의 관계에도 성립한다고 볼 수 있으므로 북한의 주장은 비주류 이론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중립적 시각 정책과 상관 없이 비주류 이론 지침에 따르면 됩니다.
제 생각에는 정책과 지침의 적용 범위를 서로 달리 해석하는 문제 같으므로 이것은 다른 고대사에 교양이 있는 사용자들의 의견을 청해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22일 (일) 18:48 (KST)
누누히 말씀드리지만 위키백과는 한국 사학계의 입장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사학계의 입장도 공평하고 동등하게 서술될 수 있습니다. 특히 평양 지역의 고고학적 발굴을 직접 담당하는 북한 사학계의 입장은 충분히 실릴 가치가 있습니다. 자꾸 북한 사학계의 입장은 일방적으로 근거가 없다고 하시면서 전혀 적용의 예가 안되는 비주류 이론을 잘못 해석하시고 해당 부분의 삭제만을 주장하시는데 이정도면 도대체 어떻게 더 설득드려야 납득을 하실지 솔직히 난감하기까지 합니다. 일단술먹고님께서 주장하셔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복기대, 박선희 교수 주장 부분의 삭제도 제가 수용하지않았습니까?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이문제는 일단술먹고님께서 잘못 판단하시고 계신 부분입니다. 다시한번 생각하시고 적절한 타협점을 찾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5년 2월 22일 (일) 19:57 (KST)
네. 말씀대로 북한 사학계의 입장처럼 다른 나라 사학계의 입장도 공평하고 동등하게 서술해야 합니다. 현재 낙랑군요동설을 주장하는 곳은 요동은 딱히 발굴하지 않는 북한 뿐입니다. 그러니 그 사실을 공평하고 동등한 시각에서 서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낙랑군 문서에 중국, 일본, 미국, 영국 등의 주장과 지도도 올려두어야 할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낙랑군지도만 올려두고 북한의 지도는 중립적 시각과 비중에 입각하여 삭제하되 그 주장은 논란 부분에 그대로 두자는 것입니다. 전 북한의 주장을 아예 들어내자고 한 적이 없고 기존 판을 보존하자고 했는데, 이런 식의 거짓 주장은 지양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것은 정책과 지침 즉 중립적 시각과 비중의 적용 범위를 서로 달리 해석하는 문제이므로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다른 고대사에 교양이 있는 사용자들의 의견을 청해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덧붙여 비주류이론의 적용 범위까지도 말입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23일 (월) 07:37 (KST)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만리장성 문서에도 중국측의 주장 지도가 올라가 있습니다. 중국측이 만리장성이 한반도 안까지 들어왔다는 주장은 한국 사학계에서는 인정이 되지않으나 KPOV 배제 차원등에서 실리는 것입니다. 이를 한국 사학계에서 보면 비주류라고 해서 삭제할까요? 계속 설득을 드려도 비주류 이론을 잘못 해석하시고 이런 주장을 하시는데 솔직히 이제는 피곤합니다. 이제 그만 하시죠. 처음부터 저는 설득드릴만큼 드렸고 각종 지침, 다른 분들의 견해까지 예를 들어드렸는데 초지일관 같은 입장이시면 토론이나 대화가 되지않습니다. 그리고 계속 말씀드리지만 북한은 평양 유역의 유물을 직접 발굴하는 당사자로서 그 주장이 충분히 낙랑군 문서에 비중있게 실릴 가치도 있습니다. 미국, 영국이 정확히 어떤 입장인지도 모르지만 Aubelumiere님 말씀대로 그들은 연구하지않고 그냥 다른 주장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독도 문제처럼 말이죠. --Lhrdrth (토론) 2015년 2월 23일 (월) 14:14 (KST)
중립적 시각과 비중 정책에 따르면 현재 만리장성 문서는 과도하게 한국측의 시각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다만 한국어 위키백과의 주요 사용자가 한국인이라서 그냥 지나칠 뿐인데, 중립적 시각 정책을 논하는 분께서 만리장성 문서를 예시로 꺼내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저는 두 가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① 중립적 시각 정책 ② 비주류 이론 지침. 누가 잘못(?) 해석한 것인지 해결을 위하여 다른 사용자에게 의견을 청해보자는데 그것도 안된다는 겁니까? 그리고 북한이 만주의 유물을 직접 발굴하고 있습니까? 낙랑군요동설의 증거를 어떻게 평양에서 찾습니까?;; 그리고 뭔 연구하지도 않고 그냥 받아들입니까? 무엇보다 북한의 주장은 아예 소개조차 안 합니다. 독도와 같은 급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현재 북한의 주장을 이다지도 비중있게 취급하시는 건 현재 님들 밖에 없습니다. 비주류이론 추종자들도 북한의 주장은 잘 언급 안하고 요서설을 주장한다는 거 아시잖습니까;; ............ 저 역시 피곤하니 그냥 이렇게 하죠. 해당 토론 부분에 대해서는 사:Xakyntos님이 차단되기 이전 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어떻습니까? 북한 주장은 논란 항목에 그대로 보존, 북한 지도는 예전과 같이 논란 항목에 삽입, 개요도 예전으로 되돌아가 논란 항목의 불필요한 중복 내용 삭제. 이 정도면 어떻습니까?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24일 (화) 02:18 (KST)
사:Aubelumiere님께서 제안을 일축하셨습니다... 님께서는 어차피 이전 판에 합의를 본 바 있으니, Aubelumiere님의 백:방해 편집으로 보이는 행위에 동조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24일 (화) 09:23 (KST)
Aubelumiere님이 방해편집이 아닙니다. 맞는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북한 지도를 비롯한 지금 논쟁 부분은 제가 일단술먹고님과 합의를 한 것이 아니고 해당 부분을 다시 보시면 아시겠지만 당사자분이 안계신 상황에서 필사적(?)으로 해당 부분의 삭제를 주장하시는 일단술먹고님과 끝없는 논쟁을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일단 말리지는 않겠다"라고 말씀드리면서 결국 이런 편집 분쟁이 있을 것을 우려한 바가 있습니다. 이렇게 다시 편집 분쟁이 발생한 이상 저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서 다른 사용자들의 의견을 요청하셨는데 어차피 이 문서가 모든 사용자들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수결=총의도 아니고 지금 이부분은 위키백과 정책 해석의 차이점이므로 이 부분에 대해서 잘아시는 중재위원회에 중재를 요청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Lhrdrth (토론) 2015년 2월 24일 (화) 13:37 (KST)

전 그냥 규정을 가져올테니 판단은 귀하의 몫입니다. 굵은 글씨라도 주의 깊게 읽어주세요. "각각의 시각들을 다루는 비중은 각각의 중요도에 따라야 합니다. 문서의 구성이나 설명에서 소수 의견이 다수 의견보다 두드러져서는 안 됩니다. 사회적 저명성의 기준에 따른 적절한 비중 하에 관점들이 다루어져야 합니다. 다른 정책과 지침을 충족하여 기술하였더라도 일부의 시각만이 과도하게 반영된 경우에는 다른 방향의 관점의 내용이 균형있게 보태지기 전에는 중립적 시각의 위배가 될 수 있다."

어느 시각이 다른 어떤 시각보다 더 과도하게 반영됐는지 알려주시겠어요?
  • 단, 이 규정과 위키백과의 내용에 대한 기존 규정이 혹시 충돌한다면, 기존의 규정이 우선합니다. - 백:비주류 이론
충돌할 것이 아닌데 굳이 이견이 생긴다면 위의 지침으로 백:비주류 이론은 간단하게 해결됩니다.
  • 어떤 분야의 일반적인 내용을 다루는 문서에 그 분야의 학계에서 널리 지지받지 못하는 학설을 필요 이상 중점적으로 서술하면 안 되며 - 백:비주류 이론
국제 학계는 없습니다. 아직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반박 안하셨어요.

<귀하의 발언>

  • 현재 전세계 어디에서도 낙랑군한반도설의 논란은 없고 유독 북한만이 낙랑군요동설을 주장..
모순입니다. 전세계 어디에서도 없다면서 북한이 주장하는데 말이죠. 대한민국 일부 학자들도 간과하셨구요.
백:저명성이라 한 적이 없는데요. '저명성'이라 했으니 재차 확인 바랍니다.
  • 별개로 비주류 이론은 국가 간의 관계에도 성립한다고 볼 수 있으므로 북한의 주장은 비주류 이론
성립 안한다고 분명히 지침을 가져와 여러 차례 말했는데 귀하는 근거 없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 북한의 주장은 논란 문단에 그대로 보존하고 개요에서의 과도한 내용과 북한 지도만 삭제하자는 것입니다.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합니다. 위에서 충분히 논박되었다고 봅니다. --Aubelumiere (토론) 2015년 2월 22일 (일) 19:46 (KST)

음... 다른 사용자들의 의견을 청해보자는 의견에도 이런 말씀을 하실줄은 몰랐습니다. 일단 저는 현재 판이 북한의 소수 시각이 과도하게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존 판에선 논란 부분에 북한의 주장을 실어놨었는데 현재 판은 그것을 개요에도 붙여놓음으로써 마치 전세계적으로 낙랑군에 대한 논란이 있다는 식으로 비춰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전세계 어디에서도 낙랑군요동설이 비중있게 다뤄지지는 않습니다. 즉 한국, 북한 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의 시각도 반영하자는 것입니다. 국제 학계라는 말은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네요. 각 나라들은 각각의 사학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 사학계들이 서로 교류합니다. 마치 과학계처럼요. 그런데 그렇게 학술 교류를 할 때 북한의 주장은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을 과학계처럼 그대로 표현하자는 것입니다. 현재 낙랑군의 위치에 대한 논란은 없습니다. 단순히 다른 주장을 하는 학자가 있으니까 바로 논란이 있다는 것으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그 주장이 신뢰할 수 있는 독립된 출처에서 비중있게 다뤄질 때에야 논란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국내는 물론이거니와 국외에서도 낙랑군한반도설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고, 낙랑군요동설에 대해서는 비중있는 논박 자체가 없습니다;; 이것은 이미 기존의 토론에서 모두 확인되었던 내용입니다. 그러니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는 것입니다. 현재 관건은 정책과 지침 즉 중립적 시각과 비중의 적용 범위를 서로가 달리 해석하는 문제이므로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다른 고대사에 교양이 있는 사용자들의 의견을 청해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덧붙여 비주류이론의 적용 범위까지도 말입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23일 (월) 07:37 (KST)

제발 좀 학계가 어떻게 돌아 갔었는지를 보세요. 옛날처럼 대륙백제도 근거 없다 매도하실 것 같은데 말입니다. 윤내현이 누군지는 아세요? 과거에 이 교수가 불러 일으킨 일을 정녕 모르시나요? 북한의 주장은 있는데 논란은 없다... 이 표현처럼 이번에도 논설문에서 흔치 않은 역설이라는 요소를 추가시켜 문학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입니까?

북한의 학계와 남한의 학계는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해도 전세계 전세계적으로 볼때 북한의 주장은 백:비주류 이론에 저촉된다고요?

백:비주류 이론의 적용 범위는 간단하거든요. (몇 번째로 쓰는지 기억도 안나는군요.)어느 학계 내. 다른 지침이 이 지침보다 앞선다. 이거 외면할 수가 없는데 말이죠. 더 이상 이 지침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부탁드립니다.

이탈리아 역사학계가 우리나라 역사학계에 끼어드나요? 우리나라는요?

"전세계 어디에서도 낙랑군의 위치에 대한 논란은 없습니다" , 낙랑군요동설에 대해서는 비중있는 논박 자체가 없습니다.

뭐요? 국어사전까지 가져와서 논란의 의미를 상기시켜 드릴까요? 위키백과 낙랑군의 "위치에 대한 논란"도 수정하시죠 그럼? 북한 역사학계는 존재하지도 않고 박선희, 복기대, 신채호, 윤내현은 이름 없는 사람인가요? 귀하가 말하는 "전세계 어디에서" 남한과 북한은 포함되지 않죠? 역설법은 그만하셔도 돼요. 충분히 아름다움을 느꼈으니까요. 위키백과 낙랑군 문서에 버젓이 "위치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그만하고 학계의 과거 동향부터 파악해 주세요. 논란이 없다는 건 귀하 입맛대로, 귀하 마음대로 결론지은 것으로 명백한 독자 연구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을 소지가 다분합니다. 해당 발언을 당장 취소하세요.

중립적 시각은 소수 시각이 다수 시각보다 더 과도하게 표현됐을 때의 얘기죠. 뭐가 더 과도하게 표현됐는데요? 보기만 해도 대한민국의 시각이 더 자세하게 표현되지 않았습니까? 서두에만 조금 중립적으로 작성한 것이 그렇게 문제가 될 줄은 몰랐네요. 전체적으로 봤을때는 북한 주장의 비중이 훨씬 적은데 말입니다.

비주류 이론은 어떤 학계 내에서 판단되는거라고 누차 말씀드렸는데요? 저명성을 가져와 중립적 시각에 입각하세요. 더이상 보기 싫습니다 비주류 이론은. 분명 논파됐는데 중립적 시각에 덤으로 아전인수 해오는 건 제발 지양합시다. 수소 원자번호가 83이상이라 주장해놓고 결론은 베타 붕괴해서 e^-가 방출된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이후에는 중립적 시각을 집중적으로 논의하죠. 또한 백:아님#국가도요. 한쪽 주장만 밀어붙일 게 아니라 모든 지침을 다 고려해서 최선의 해답을 내놓자는 겁니다. 일단은 다른 분들께서 의견을 내놓으실 것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Aubelumiere (토론) 2015년 2월 23일 (월) 23:38 (KST)

님께서는 반어법과 조롱을 즉각 중단하고 토론에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대륙백제는 갑자기 왜 나옵니까? 해당 토론에 집중해주세요. 님께서는 백:예절을 어기고 계십니다. 그리고 위키백과의 각종 정책과 지침을 정독해주세요. 일부에서 주장한다고 바로 논란이 있다고 확인되는 게 아닙니다. 그 주장이 다른 독립된 출처에서 비중있게 다뤄질 때에야 논란이 있다고 확인할 수 있는 겁니다. 현재 북한의 주장은 그 주장자를 빼고는 세계 어디에서도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으며, 신채호는 현재의 생존자가 아니라 근대의 인물입니다. 그리고 님께서 스스로 말씀하신 윤내현, 복기대 등은 낙랑군요동설이 아니라 낙랑군요서설 주장자입니다. 즉 국내에서도 북한의 주장은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윤내현이 과거에는 대단했을지 모릅니다만 현재 윤내현의 주장은 학계 어디에서도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주축이 된 학회에서만 활동하고 있습니다. 위키백과는 최신 정보를 기재하는 곳입니다. 과거에는 논란이 있었을지 모르나 2015년 현재는 논란이 없다고 기존의 그 길고길었던 토론으로 밝혀졌습니다. 만리장성, 고조선, 낙랑군, 각 사용자 토론문서를 모두 정독하시기 바랍니다. 전 두 가지를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① 중립적 시각 정책 ② 비주류 이론 지침. 그런데 사:Lhrdrth님께서 다른 사용자에게 의견을 청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신 것 같아 좀 저어됩니다. 그래서 일단은 해당 토론 부분에 대해 사:Xakyntos님이 차단되기 이전 판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제안합니다. 북한 주장은 논란 항목에 그대로 보존, 북한 지도는 예전과 같이 논란 항목에 삽입, 개요도 예전으로 되돌아가 논란 항목의 불필요한 중복 내용 삭제. 이 정도면 어떻습니까?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24일 (화) 02:18 (KST)
팽팽하게 대립한 상태로 현재까지 이어진 겁니다.. 또한 일부 강단사학계에서도 재평양설 반대하는 사람도 있어요. 개정 한국사 교과서도 Lhrdrth 님께서 몇번 언급하셨는데 직접적으로 위치를 평양이라 말하지는 않습니다. 반대하는 학자들의 주장을 고려했다는 걸 알 수 있는데도 논란이 없다고요? 도대체 뭘 보고 그렇게 판단하시죠? 어디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가져오시죠?

논란 없다고 독자 연구하는 건 상당히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군요. 그리고 주제 파악 좀 부탁드리는데요, 제가 귀하한테 재요서설, 요동설, 평양설에 대해서 정리해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고 신채호가 근대 인물이라 가르쳐 달라 한 적도 없습니다. 제가 한 말은 재평양설에 논란이 없다고 한 귀하의 독자 연구를 간단하게 반박한 겁니다. 주요 논제 중 하나가 귀하의 궤변인 "재평양설은 논란이 없다" 아니었나요?

윤내현에 대해서 잘 모르면 알아보고 온 후에 토론하시죠. 낙랑군과 뗄래야 뗄 수가 없는데 모른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고조선 연구와 노태돈 등의 학설도 참고하십시오.

귀하는 백:아님#국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하셨죠. 결국에는 논쟁을 균형 있게 해결하기 보다는 밀어붙이려는 속셈이 보입니다. 충돌 하던 지침은 여전히 충돌합니다. 귀하의 주장은 이 부분에서 대책이 미흡하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백:예절을 가져와 훈계하기에 앞서 상대 토론자에게 폐를 끼친 행위에 대한 고찰을 요구합니다. 토론 중 같은 내용을 수 차례나 반복하여 설명해도 지침과 상황에 대한 자의적 해석과 문서에 대한 독자 연구를 아직까지 자행하고 있다는 건 상대 토론자를 분개하게 만드는 겁니다. 저도 이런 소모적인 논쟁을 지속해야 하는지 의문이며 상당히 피곤합니다. Lhrdrth 님께서도 분명 같은 생각이실 겁니다.

귀하의 제의를 수락할 마음은 없음을 분명히 합니다. 따라서 논쟁이 해결되지 않은 이상 편집을 강행할 경우 어떻게 되실지는 아시리라 믿습니다. 귀하께서 위키백과의 정책과 본 토론을 정독하시고요, 본인의 잘못된 해석이 아직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전 이 시점에서는 그만두겠습니다. 진전이 없는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아마 다른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분들이 오시면 그때나 토론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겠죠. --Aubelumiere (토론) 2015년 2월 24일 (화) 03:03 (KST)

님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사항이 기존의 고조선, 낙랑군, 만리장성, Aubelumiere, Lhrdrth, Xakyntos사용자 토론문서에서 이미 해결됐었던 얘기들입니다. 기존의 토론문서를 확인하지 않고 같은 말씀을 반복하시는 것은 백:토론지침, 백:방해 편집의 위반입니다. 같은 내용을 여기서 반복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원만한 해결을 위하여 귀하의 사용자 토론 문서에서 이에 대해 다시 한번 설명드리겠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24일 (화) 09:23 (KST)
모두 1년 전에 내가 참가하고 예의주시했던 문서라서 귀하보다 맥락을 잘 파악하고 있는데요? 좀 모르면 알아보기라도 하시든가 '사실 호도'를 설명이라 물타기하지 마시죠. 내 토론 문서에 몇마디 일방적으로 올려놓으면 해결, Xakyntos 사용자와의 1년 전 토론을 들먹이며 멋대로 해결, Lhrdrth님의 토론 문서에서도 논파됐으면서 뭐가 해결이죠? 귀하가 글만 올리면 무조건 해결입니까? 도를 넘었네요 진짜.'백:방해 편집'좀 읽고 오세요. 아무 곳에 갖다붙이지 마시고요. 편집 분쟁 중에 그 여부를 파악하는거지 논쟁 중에는 아닙니다. 규정조차 모르면 어떡합니까? 참말로 토론할 마음이 싹 사라지는군요.--Aubelumiere (토론) 2015년 2월 24일 (화) 10:13 (KST)
일단 귀하께서는 낙랑군한반도설이 전세계에 퍼져있고, 북한의 주장은 어디에도 소개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동의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그것은 북한의 주장이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으나, 그것은 님의 왜곡된 주장임이 밝혀졌으므로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그러자 님께서는 아직까지도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말씀을 바꾸셨습니다.

하지만 이는 기존의 토론에서 이미 밝혀졌던 사항입니다. 님께서 국어사전 얘기를 하셨으니 국어사전에서 논란이라는 단어를 복붙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여럿이 서로 다른 주장을 내며 다툼"(네이버) 네. 논란이란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다툼'이 존재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낙랑군한반도설에 대한 다툼이 있습니까? 외국에서 북한의 낙랑군요동설을 언급하고 그것을 논박하는데 지면을 할애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전세계적으로 낙랑군의 위치에 대한 논란이 없습니다. 이는 남한 국내도 마찬가지입니다. 님께서는 박선희, 복기대, 신채호, 윤내현을 예시로 드셨습니다만 신채호는 이미 사망한 사람으로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그럼 박선희, 복기대, 윤내현이 남는데 현재 이들의 주장을 비중있게 논박하는 자는 '현재' 학계에 아무도 없습니다. 위키백과는 백과사전입니다. 최신의 정보를 싣는 곳입니다. 현재 어디서도 박선희, 복기대, 윤내현의 주장을 비중있게 인용하지 않습니다. 한국사 '고교' 교과서 말입니까? 고교 교과서에 낙랑군은 한반도에 없다고 한다'or'없다고 하는 학설이 존재한다'라는 문장이 있습니까? 기존에 증명되었던 것은 낙랑군의 서술 비중이 부정적으로 줄어든다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고교 교과서에는 마한, 진한, 변한의 각종 소국들의 이름, 삼국사기에 나오는 각종 소국들의 이름이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고교 교과서는 이들 나라가 한반도에 존재했었다는 것을 부정한다는 말씀입니까? 기

존의 그 길고 길었던 토론의 상당부분을 이 부분에 할애했었는데 토론에 임하시기 전에 먼저 그 내용들을 숙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팽팽하게 대립한 상태로 현재까지 이어진 겁니다'라고 주장하고 싶으시다면 말씀으로만 그렇게 주장하실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증거를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낙랑군요서설or요동설이 학계 내에서 여전히 논란중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는 '독립된' 출처에서 그 주제를 '진지하고 비중 있게' 다루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논란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시라는 말씀입니까? 논문 사이트와 학술 서적에서 낙랑군이라 검색하고 읽어보시면 됩니다. 낙랑군재외국설을 주장하는 자신들 빼고는 아무도 그 주장을 진지하고 비중있게 다루지 않습니다.

하여 제가 님께 제안했던 것은 현재의 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는 것이었습니다. 중립적 시각 정책과 비주류 이론 지침에 따라서 말입니다. 중립적 시각은 어떤 특정한 시각이 과도하게 반영되는 것을 금지합니다. 님께서 편집한 판은 다른 나라들의 입장은 무시하고 현재까지도 논란이 진행되고 있다는 식의 북한만의 입장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비주류 이론 지침이 국가 간의 관계에도 성립한다면 그 지침에 따라 해결해도 됩니다. 이는 정책과 지침의 적용 범위를 서로 달리 해석하는 문제이므로 다른 사용자들의 의견을 구해보자고 하였습니다. 혹은 여기까지 갈 것도 없이 '논란 항목의 북한 주장은 그대로 보존, 북한 지도는 논란 항목에 삽입, 개요만 삭제의 안'을 제시해드렸습니다. 하지만 님께서는 현재 각종 정책과 지침을 무시하고 계십니다. 마음을 가라앉히시고 며칠간 생각해보신 후에 답변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24일 (화) 10:24 (KST)


진짜 악의적인 목적으로 궤변을 일삼는 거라면 제발 좀 그만하시죠. 결국에는 "고조선, 낙랑군, 만리장성, Aubelumiere, Lhrdrth, Xakyntos 사용자 토론 문서에서 이미 해결됐었던 얘기들입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떠들어놓고 결국에는 이겁니까? 무시하는 건 귀하입니다. 백:비주류 이론은 국가 간의 관계에 성립 안한다고요. 중립적 시각은 어느 시각이 다른 시각보다 더 과도하게표현되는 걸 금지하는 것이고요. 중립적 시각에 대한 해석이 이의가 있을지는 몰라도 비주류 이론은 제발 고만 좀 갖고 와서 떠드세요. 마음을 가라앉히게 하려면 귀하가 상대방의 말에 귀를 귀울이는 것 밖에 없습니다. 각종 정책과 지침을 멋대로 무시, 악의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을 하는 건 귀하입니다.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아직까지도 저런 말도 안되는 궤변을 주장하신다면 어느 누구도 토론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증거가 이거라고 또 말씀드립니다. 한국사 교과서 서술방식의 흐름을 보라고 Lhrdrth 님께서도 언급하셨습니다. 과거에는 평양이라 직접적으로 말했는데 현재 개정된 교과서는 그런 게 없다고요. 논란이 없으면 평양이라고 하지 왜 평양이라는 언급이 없죠?
  • 그렇다면 고교 교과서는 이들 나라가 한반도에 존재했었다는 것을 부정한다는 말씀입니까?

독자 연구 그만하시죠. 한국사 비중에서 주류를 차지하고 있지 않으므로 생략했다는 걸 귀하도 알면서 마음대로 결론짓지 마세요.

현재 만리장성 길이에 대한 중국과 한국의 입장에 대한 견해가 달라도 지금은 조용하니까 이에 대한 논란도 없는거네요? 자 빨리 가서 만리장성 문서를 수정하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하시면 바로 사관 가도록 하죠.
그리고 뭔가 대단히 착각하고 있나본데 논란이 없다는 건 "완전히 해결됐다는 걸 의미하죠" 시점을 따지는 게 아니라 해결 유무를 따지는 겁니다. 이런 간단하고 자명한 사실을 고의적으로 간과해서 시점이라고 억지를 부리고 계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좀 그만하시죠.
의견 요청 하시려면 진작에 하셨어야죠. 말로만 의견 요청한다 해놓고 본인의 입장을 밀어붙여 목적을 달성하려 한겁니까? 결국에는 제가 했네요.
  • 님께서 편집한 판은 다른 나라들의 입장은 무시하고 현재까지도 논란이 진행되고 있다는 식의 북한만의 입장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는 그들의 입장을 가지고 있는게 아니라 우리나라의 입장을 받아들인다니까요. 아니 진짜 이 부분에 대해서도 수 차례 설명해도 도대체 글을 읽는 겁니까 마는 겁니까?

낙랑군의 위치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다른데, 처음 설치될 때는 위만 조선의 옛 땅을 중심으로 하여 대체로 지금의 평안남도 일대와 황해도 지역의 일부가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낙랑군의 속현은 11현이었다. 북한 학자들은 위만조선의 중심지가 요동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 왕검성도 평양이 아닌 대릉하 동쪽지역으로 보고, 낙랑군의 위치도 요하 부근이었다고 주장한다. -- [네이버 지식백과] 낙랑군 [樂浪郡] (한국고중세사사전, 2007.3.30, 가람기획)
→ 견해가 다르고 논란이 있죠? 현재 토론이 행해지든 아니든 논란이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니고 아직까지 진행형입니다. 공신력 있는 자료를 가지고 왔으니 이제부터 논란은 있는 것으로 논의가 끝난 겁니다. 귀하의 발언은 백:독자 연구 금지 위반으로 한번만 더 이런 발언을 한다면 백:비주류 이론, 백:아님#국가와 더불어 사관 가겠습니다.
  • 이 토론 문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비주류 이론" 및 "논란이 없다"는 애초 지엽적인 문제로서 논의가 이미 끝난 것이므로 앞으로의 논의 방향은 백:중립적 시각과 "북한의 입장에 대해 어느 정도의 비중을 둘 것인가"입니다. 후에 오신 분들께서는 참고 부탁드립니다.

--Aubelumiere (토론) 2015년 2월 24일 (화) 11:26 (KST)

... 방해편집은 토론과정에서도 성립합니다. 그리고 제가 님의 사용자 토론문서에 남긴 말씀은 싹 다 지우시고는 원본(?)을 살짝 바꿔서 복붙해 넣으셨네요...... 제가 거듭해서 인신공격과 조롱, 반어법은 멈추어달라고 요청드렸었는데 '좀 모르면 알아보기라도 하시든가', '들먹이며 멋대로', '도를 넘었네요'와 같은 사족은 또 붙이셨네요... 위키백과는 싸움터가 아닙니다......... 의견요청 틀은 잘 붙이신 거 같습니다만.... 굳이 저에 대한 인신공격은 계속 하셔야 하는 겁니까....... 지금 이게 정말로 토론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그리고 그 사관이라는 말씀은 왜이렇게 반복하시는 겁니까... 정말 성실히 토론에 임하시겠다는 겁니까? 싸우시겠다는 겁니까? .............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24일 (화) 11:32 (KST)
살짝 고친게 어딘지 말씀해 주실래요? 반박하는 과정에서 잘못 추가한 부분을 후에 보고 삭제했습니다만. 뭐가 방해 편집인지 설명하십시오. 어떤 행동을 해서 백:방해 편집을 위반했죠? 그리고 누차 말씀드리지만 이러한 과열에는 배경이 있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토론란에 남기도록 하죠. 싸우자는 게 아니라 옳지 않은 것임을 똑같은 내용을 여러 번 강조해도 변화가 없어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저도 잘못하고 있고 귀하 또한 잘못하고 있습니다.--Aubelumiere (토론) 2015년 2월 24일 (화) 11:42 (KST)
님의 사용자문서에 글을 남기면 모두 삭제해버리시니 본항목 문서와는 전혀 관련없지만 여기에 남기겠습니다... 차후에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님께서는 중간에 과열됐던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건설적인 기여를 목표로 했던 것이 아니라 저에 대한 공격을 목표로 오신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님의 사용자 토론 문서에 공격적인 언사들과 무례한 행동들을 자제해달라고 요청드렸었습니다만 님은 여전히 그러지 않고 계십니다... 그리고 동반으로 사관을 가고 싶으시다는 말씀까지 남기시네요... .................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절차를 알려주세요. 처음부터 님께선 편집과 토론이 목표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24일 (화) 11:54 (KST)
그런 것이 없다면 그 지도를 수록하는 것은 백:중립적 시각과 백:비주류 이론의 위반이며, 그럼에도 소수 의견에 지나친 비중을 둘 것을 고집하신다면 백:방해편집에 해당됩니다. 덧붙여서 평양도 끼워넣으셨던데 이건 주제를 새로 개설해서 말씀하시든 어떻게 해서 역시 합당한 증거 제시를 바랍니다. 그러지 않으신다면 백:문서 훼손까지도 포함됩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먼저 이런 식의 위협을 가하신 분은 귀하입니다. 차후에 토론란에다 글을 남길 것이지만 오히려 제 입장에서는 먼저 들어온 공격이었습니다. 분명 건설적인 토론을 지향한다 하셨지만 이러한 표현은 협업 정신 위반에 해당합니다. 제가 볼 때는 "처음부터 님께서는 편집과 토론이 목표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바로 뒤에 약간 흥분해서 글을 남기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흥분하지는 않았죠. 현재와 같은 상황의 배경은 지침에 대한 잘못된 해석과 타 사용자의 계속되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되는 부분을 아직까지 의견을 굽히지 않고 주장한 것 등이 있습니다.--Aubelumiere (토론) 2015년 2월 24일 (화) 12:03 (KST)

두분이 흥분하여 토론이 지나치게 과열되는 느낌이 있는데 두분 모두 흥분하시는 감정은 충분히 이해하나 감정을 좀 정리하십사 부탁드리고, 이문제에 대해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Aubelumiere님의 편집이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끝없이 소모적인 논쟁이 이어지니 앞서 말씀드린 듯이 차라리 중재위원회에 중재를 요청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Lhrdrth (토론) 2015년 2월 24일 (화) 13:45 (KST)

그리고 한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더이상의 토론은 여기말고 저나 Aubelumiere님, 또는 일단술먹고님의 토론 페이지로 이동해서 하는 것이 좋지않을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나올만한 논쟁은 다나왔고 더이상의 논쟁은 이른바 다람쥐 쳇바퀴돌듯 소모적인 논쟁으로 돌입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낙랑군 토론 문서가 그동안의 논쟁이 너무 많아서 내용도 엄청나고 용량도 아주 큽니다. 소모적 논쟁으로 진입한 지금 더이상의 논쟁은 낙랑군 토론 문서에서 함은 부적절해보입니다.--Lhrdrth (토론) 2015년 2월 24일 (화) 15:12 (KST)

중립성 문제[편집]

대부분의 학자 지배적인 설등 애매한 발언은 중립적이지 않습니다.토론을 거치지 않고 지우지마십시오Koryozaidan (토론) 2017년 6월 13일 (화) 19:04 (KST)

그런데 왜 대부분, 지배적 등의 발언 말고 다른 것을 지우시나요? 그에 대한 해명이 없으시면 되돌릴 수밖에 없습니다.--Xakyntos (토론) 2017년 6월 13일 (화) 19:15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