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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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의 명칭

동이(東夷)는 문자 그대로 '동쪽 오랑캐'를 의미한다. 자신을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한 고대 중국인들이 그들의 동쪽에 거주한 이종족의 주민을 낮추어 부르는 비칭이다. 처음부터 특정 종족이나 집단을 가르키는 용어가 아니었다. 청동기 명문이나 문헌 등 문자로 기록된 자료를 보면 '동이'가 가르키는 지역과 집단이 시대에 따라서 달랐음을 알 수 있다.

첫번째 동이는 황하 중류, 즉 지금의 서안낙양의 동쪽에 해당하는 하북성·산동성회하 유역 일대의 주민을 가리킨다. 학계에서는 이를 줄여 동방동이 또는 선진동이라고 부른다. 주로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기 전, 즉 선진 시기의 갑골문과 문헌에 등장한다. '동이'라는 용어가 온전히 나타나는 시기는 기원전 11세기 서주 시대이다.

두번째 동이는 중국 내륙의 동북쪽인 만주·한반도·일본 열도의 주민을 총칭한다. 이를 동북동이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후한서》와 《삼국지》 열전에 부여·읍루·고구려·동옥저··· 등이 동이로 기록돼 있다.

전한사마천이 작성한 《사기》와 후한의 반고가 작성한 《한서》에는 동이라는 편목도 없고 본문에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흉노전·조선전·남월전·서남이전 등 한나라와 교류 관계가 있었던 여러 종족에 대하여 개별적으로 편목을 설정하여 서술했다. 그러던 것이 남북조시대 범엽이 작성한 《후한서》와 진나라의 진수가 작성한 《삼국지》에 와서 동이전이 따로 구성된다.

이와 같이 '동이' 명칭의 지역적 변천은 중국적 질서의 팽창에 따른 고대 중국인의 주변세계에 대한 지식의 변화와 확대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한·중 학계의 공통적인 견해다.[1]

그럼에도 한국의 일부에서는 선진시기 산동 지역에서 활동했던 동이와 한대 이후 중국 동북 지역에서 활동했던 동이를 같은 계보로 연결지어 한국 민족의 웅대함과 선진성을 과시하며 한국 민족사의 무대를 광역화하는 모습을 보여왔다.[2]

이와 같은 경향에 대하여 현재의 이해관계에 따라 고대사를 해석한다는 비판이 줄곧 있어왔다.[3]

역사[편집]

지금까지 발견된 선진시대의 출토문헌에서 '동이'라는 명칭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현종하는 최고의 문자자료인 후기의 갑골문에 인방(人方)·시방(尸方) 등의 방국명이 보이고 서주시대 청동기 명문에 동시(東尸)·회시(淮尸) 등이 보이는데, 전래문헌에 보이는 이(夷)·동이(東夷)·회이(淮夷)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어 학계에서는 출토문헌에 보이는 '시(尸)'자를 '이(夷)'자로 보고 있다. [4]

전래문헌과 출토문헌자료를 토대로 동이 관련 내용을 검토해보면, 출토문헌에소는 서주 초기에 이미 '동시(東尸)'란 개념이 확립됐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진시황의 협서율 이후에 전래 문헌의 전사과정에서 '동이(東夷)'로 가차됐을 것으로 추정된다.[5]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이(夷)의 평이함이다. 대(大)와 궁(弓)으로 구성되었다. 동방에 사는 사람들이다."[6]라고 했다. 허신은 진 이래의 소전을 토대로 이(夷)의 자형을 분석하였기 때문에 사람이 활을 메고 있는 모습을 본뜬 글자로 '대(大)'와 '궁(弓)'으로 구성됐다고 잘못 이해한 것이며 이로 인해 후대에 각색된 것이다. 풍토문헌을 통해보면, '이(夷)'는 화살과 끈으로 구성된 글자로 '시(矢)'와 '끈(ㄹ)'으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동이가 활을 잘 쏘는 민족이란 기존의 학설은 수정돼야 한다. 즉, 동이(東夷)의 '이(夷)'는 '시(尸)'의 가차로, 상 후기 갑골문에 보이는 시방(尸方)과 서주 초기의 동시(東尸)이에서 알 수 있듯이 동방 사람들이 의자에 걸터앉는 풍습에서 그 우원을 찾아야 한다.[7]

출토문헌에 나타난 동시(東尸: 東夷)는 동방의 여러 이족 집단에 대한 범칭으로 사용됐고, 회시(淮尸) 혹은 남회시(南淮尸)는 회하 유역에 거주하는 이족 집단에 대한 범칭으로 사용됐다. 상 후기 갑골문에서 인방(人方)·시방(尸方)·동(東) 등 동방의 이족 집단에 속하는 14개의 방국이 확인됐다. 서주시대 청동기 명문에서는 회이 관련 방국들이 많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은 방국들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동방의 이민족에 속했던 수많은 부족이나 방국들이 점차 중국 역대 왕조에 귀화하여 중화문화의 일원이 되거나 그 주변 지역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세력을 결성하였을 것이란 추론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8] 결국 춘추전국 시대에 이르면 산둥반도의 래이(萊夷)나 장시 성의 회이(淮夷) 등의 작은 세력으로 축소되었다. 한나라가 건국된 이후 동이는 모두 중국에 흡수되어 소멸되었으며, 이후의 동이는 만주·한반도·일본 열도의 종족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한나라 이후의 동이는 이전의 동이와 문화적·혈연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9]

한나라 이후의 동이는 특별한 문화적·혈연적인 관계를 구분하지 않고 방위의 개념으로써 동쪽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오랑캐들을 한꺼번에 서술하였다. 그로 인해 문화적·혈연적인 계통상 차이가 큰 예맥족·한족(韓)·말갈족·족(倭) 등이 모두 동이로 서술되었다. 또한 말갈을 당나라 이후 동이에서 북적으로 바꿔 부르는 등, 방위를 제외하면 해당 종족들을 특별하게 구분하여 부르는 기준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나라 이후의 중국 역사서에서는 대체로 한민족의 기록은 〈동이전(東夷傳)〉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동이가 한민족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되고 있다.

당나라 이후 중국의 역대 정사들은 주변 국가를 오랑캐로 취급하는 인식에서 발전하여 주변 국가들을 외국(外國)으로서 열전에 편성하였다.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여러 제왕들을 비롯하여 상나라까지 동이 출신으로 기록하기도 한다. 당시의 동이를 9개의 종족으로 구분하여 구이(九夷)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후한서》〈동이전〉에서는 이들 구이를 견이(畎夷)·우이(于夷)·방이(方夷)·황이(黃夷)·백이(白夷)·적이(赤夷)·현이(玄夷)·풍이(風夷)·양이(陽夷)로 구분하고 있으나 그 외에도 다양한 구분법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九라는 글자가 단순히 많다는 의미를 가져 구이는 동이의 수많은 종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은 용법이다.[10]

동이의 용례[편집]

동이는 동쪽 오랑캐를 가리키는 일반명사로도 사용되었으며, 한국의 옛 나라들은 자국의 동쪽에 위치한 국가나 부족을 동이라 불렀던 흔적이 남아 전해진다. 중원고구려비에는 신라를 동이라 칭하고 있으며, 조선 시대에는 일본을 동이라 칭하기도 했다. 일본 역시 헤이안 시대부터 아이누 민족을 이(夷) 또는 에조(蝦夷)라 칭하며 오랑캐로 취급하였다. 헤이안 시대에 아이누 족을 공격하는 직책을 맡은 대장은 세이이타이쇼군 (정이대장군, 征夷大将軍)에 임명되기도 했다.

문헌[편집]

후한서(後漢書)》 이후 중국의 역대 정사들은 열전 부분에서 〈동이전〉이나 기타 이민족의 열전을 편성하고 그 안에서 동이의 역사를 독자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동이전에 기록된 종족들은 한민족에 해당하는 여러 종족을 비롯하여 왜·말갈·유구 등이며, 주로 한민족의 기록이 중심이 되었다.

  • 후한서》(後漢書)제85권 〈동이전〉은 부여·읍루·고구려·동옥저··한민족의 원류를 형성한다고 여겨지는 여러 종족들을 다루어 한국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후한서에서 구이라 하면 견이(獻夷), 어이(於夷), 방이(方夷), 황이(黃夷), 백이(白夷), 적이(赤夷), 풍이(風夷), 양이(陽夷)를 칭하고, 이확(爾霍) 이순(李巡)의 주(註)에는 현도(玄莵), 낙랑(樂浪), 고려(高麗), 만식(滿飾), 부유(鳧臾), 소가(素家), 동도(東屠), 왜인(倭人), 천비(天鄙)를 칭한다.[11]
  •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제30권 '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夷傳)은 동예, 부여, 고구려, 옥저, 를 동이에 해당하는 항목에서 서술하고 있다.
  • 진서》(晉書)97권 〈사이전〉(四夷傳)에는 동이 항목에서 부여국, 마한, 진한, 숙신씨(肅慎氏), 왜인(倭人) 등을 서술하고 있다.
  • 송서》(宋書), 《남제서》(南齊書), 《양서》(梁書), 《위서》(魏書), 《주서》(周書), 《수서》(隋書) 등 남북조 시대의 사서들에도 각기 〈동이전〉, 〈이만전〉(夷蠻傳), 〈동남이전〉(東南夷傳) 등이 편성·기록되어 있다.
  •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의 〈동이전〉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특이사항으로는 이전의 정사에서 일반적으로 동이로 취급되던 말갈이 북적으로 바뀌어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박선미; 박재복; 왕칭; 데이빗 코헨; 이영문; 이청규; 심재연; 이유포. 《중국 산동 지역의 동이》. 동북아역사재단. 44~45쪽. ISBN 9791157071609. 
  2. 신용하, 《古朝鮮國家形成의 社會史》, 지식산업사, 2010
  3. 박선미; 박재복; 왕칭; 데이빗 코헨; 이영문; 이청규; 심재연; 이유포. 《중국 산동 지역의 동이》. 동북아역사재단. 45쪽. ISBN 9791157071609. 
  4. 박선미; 박재복; 왕칭; 데이빗 코헨; 이영문; 이청규; 심재연; 이유포. 《중국 산동 지역의 동이》. 동북아역사재단. 63쪽. ISBN 9791157071609. 
  5. 박선미; 박재복; 왕칭; 데이빗 코헨; 이영문; 이청규; 심재연; 이유포. 《중국 산동 지역의 동이》. 동북아역사재단. 79쪽. ISBN 9791157071609. 
  6. 夷, 平也。从大从弓。東方之人也。
  7. 박선미; 박재복; 왕칭; 데이빗 코헨; 이영문; 이청규; 심재연; 이유포. 《중국 산동 지역의 동이》. 동북아역사재단. 63, 79쪽. ISBN 9791157071609. 
  8. 박선미; 박재복; 왕칭; 데이빗 코헨; 이영문; 이청규; 심재연; 이유포. 《중국 산동 지역의 동이》. 동북아역사재단. 79~80쪽. ISBN 9791157071609. 
  9. 이성규, 〈선진문헌에 보이는 '동이'의 성격〉, 《한국고대사논총》1, 1991
  10. 김시황,〈구이(九夷)와 동이(東夷)〉,《동방한문학》17, 1999
  11. 박성봉, 고경식 공역 원문부《삼국유사》(제2판, 서문문화사, 1993) 90쪽. “후한서에 의하면 견이(獻夷), 어이(於夷), 방이(方夷), 황이(黃夷), 백이(白夷), 적이(赤夷), 풍이(風夷), 양이(陽夷)를 칭하고 이확(爾霍) 이순(李巡)의 주(註)에는 현도(玄莵), 낙랑(樂浪), 고려(高麗), 만식(滿飾), 부유(鳧臾), 소가(素家), 동도(東屠), 왜인(倭人), 천비(天鄙)를 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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