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화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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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화양이(尊華攘夷)는 중국을 존중하고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뜻으로, 중화사상의 일부 관념이다. 줄여서 화이론(華夷論)이라고도 한다.

개요[편집]

이 말은 원래 오경(五經) 가운데 하나인《춘추(春秋)》에서 나온 말로, 공자(孔子)가 주(周)나라를 존중해야 한다고 한 존주론(尊周論)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성리학에서는 이를 춘추대의(春秋大義)라 하여 중요한 명분으로 삼았다.

배경[편집]

조선이 유교(儒敎)를 국가 이념으로 받아들이고 나서 존화양이론은 조선의 대외 외교 정책의 하나였다.

이러한 예는 17세기, 서인(西人)들을 중심으로 인조(仁祖)가 취한 친명배금 정책에 드러난다. 이에 대해 고려 말에는 최영(崔瑩)이 요동정벌론으로 존화양이론에 반대하였고 17세기에는 광해군의 중립외교와 실학자들의 북학론이 존화양이를 반대하여 맞섰다. 그 뒤 1866년(고종 3년)의 병인양요1871년신미양요를 거치면서 보수적 유생들을 중심으로 다시 존화양이가 아닌 조선의 왕을 존중하고 서양인들을 물리치자는 존왕양이론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위정척사파(衛正斥邪派)가 중심이 된 이 사상은 기존의 존화양이에서 완전히 벗어나 존화양이와는 다른 개념으로 조선의 왕을 존중하고 '서양인'들의 압력에 직접적으로 대응하자는 자주적인 사상으로 발전하였다. 이를 존왕양이론(尊王攘夷論)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인물은 최익현(崔益鉉), 이지호(李贄鎬), 이항로(李恒老), 김평묵(金平默), 기정진(奇正鎭), 이강년(李康秊) 등이다.

존왕양이 사상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서양 오랑캐'를 배척하자는 뜻으로 세운 척화비(斥和碑)에도 잘 나타나 있다. 존왕양이는 '왕을 존중하고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뜻이다. 여기서 '오랑캐'는 물론 '서양인'을 지칭하는 어휘이다.[1]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1] 두산백과 존화양이론(尊華攘夷論) 일부 참조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