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위 (북조)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386년 ~ 534년
 

Southern and Northern Dynasties 440 CE.png
440년 당시의 북위(파란색)
수도 성락, 평성, 낙양
정치
공용어 중국어
정부 형태 전제군주제
황제
386년 ~ 409년
532년 ~ 535년

태조 도무제
효무제
역사
 • 성립
•멸망
386년
534년
위진 남북조 왕조들의 계통도
후조·염위·전연·동위·북제의 수도였던 은 현재의 허베이 성 한단 시 린장 현허난 성 안양 시의 경계에 위치했다.
479년 당시의 북위.
중국의 역사
중국의 역사
신화와 고대
선사 시대
황하장강 문명
신화·삼황오제
기원전 2070?~기원전 1600?
기원전 1600?~기원전 1046?
기원전 1046?~기원전 256
  서주 기원전 1046?~기원전 771
  동주 기원전 771~기원전 256
    춘추 시대 기원전 771~453
    전국 시대 기원전 453~221
제국의 시대
기원전 221~기원전 206

기원전 202~서기 220
  전한 기원전 202~서기 8
  8~23
  후한 25~220

삼국 시대 220~280
  220~265
  촉한 221~263
  229~280
265~420
  서진 265~316
  동진 317~420 오호 십육국 시대
304~439
남북조 시대 439~589
581~618

618~907
무주 690~705

오대십국시대
907~960

916~1125

960~1279
  북송
 960~1127
서하
1038~1227
  남송
 1127~1279

1115~1234
1271~1368

1368~1644


1636~1912

현대의 중국
중화민국 (북양정부, 국민정부) 1912~1949
중화인민공화국
1949~현재

중화민국
(타이완)
1949~현재

v  d  e  h

북위(北魏, 386년~534년)는 중국 오호 십육국 시대선비족 탁발부에 의해 화북에 건국되어 남북조 시대까지 이어진 왕조이다. 국호가 위(魏)였기 때문에 전국 시대 위나라삼국 시대 조조위나라와 구별하기 위해 북위라고 불리고 있다. 또는 후위(後魏), 탁발씨(拓跋氏)가 지배했다고 하여 탁발위(拓跋魏), 원씨(元氏)가 지배했다고 하여 원위(元魏)라고도 한다.

역사[편집]

탁발부와 대나라[편집]

261년 탁발부의 탁발역미는 조조의 위나라에 조공을 바쳤는데, 이것이 훗날 국호를 위나라로 정하는 이유가 된다.

3세기 중엽 탁발부는 내몽골의 파언탑랍(巴彦塔拉) 지방에서 세력을 넓혔다. 삼국을 통일한 서진은 탁발부의 세력을 이용해 북방을 안정시키기 위해 지금의 산시 성 북부의 땅을 내어주어 살게 했다. 이에 따라 탁발부는 그곳에서 세력을 신장하였다.

315년에 족장 탁발의로는 서진의 관작을 받고 대나라(代)의 왕으로 봉해졌다.

대나라는 탁발십익건전진부견과의 싸움에 패하여 376년에 전진에게 멸망당했다.

북위의 성립[편집]

대나라가 멸망했으나, 383년에 전진이 비수 전투에서 패한 기회를 이용하여 탁발십익건의 손자 탁발규는 386년대나라를 재건하고 칭왕하여 자립했다. 이후에 황제를 자칭하고 국호를 (魏)라고 하니, 이 탁발규가 바로 초대 황제인 도무제이다.

도무제는 지금의 내몽골 일대로 북상해 고비사막계, 정령족, 흉노족 등 여러 부족을 토벌하여 평정하고 오르도스 일대를 지배하에 두었다. 이어서 남쪽으로 진출해 지금의 허베이 성 일대를 영유하고 있던 후연을 공격하였고, 397년에 수도 중산(中山)을 함락하고 후연을 멸망시켰다. 398년에 수도를 평성(平城), 즉 지금의 산시 성 다퉁으로 옮겼고, 그 부근 태행산맥 동쪽의 6주의 백성 46만명을 소개시켰다.

도무제는 중국 전통의 국가체제를 채용하여 탁발부 밑에 있던 여러 부족을 해산시키고, 족장이하 부족민은 모두 중국의 호적에 편입시켜 한족과 혼합시켰다. 더불어 한족 출신의 명족(名族) 인재를 등용하여 국정에 참여하게 하였다. 이로써 북조 귀족제의 기초를 형성하게 된다.

북위의 발전[편집]

도무제의 뒤를 이은 명원제유송을 공격해 하남을 빼앗았고, 명원제를 이은 태무제호하, 북연, 북량을 차례로 멸망시킴으로써 439년에 화북을 통일하였다. 서역에서 조공을 바쳐오는 나라만 해도 20여개국에 이르니 북위의 국세는 크게 울려퍼졌다. 이때부터 중국은 남북조 시대로 들어서게 되었다.

태무제는 내정을 정비하면서 또한 유송에 대한 공격을 재개해 회남과 강북을 빼앗았다. 그런데 이때 도사 구겸지가 도교 교단을 확립하였고 이어서 한족 출신 관료 최호와 손을 잡고 태무제에게 진언하여 폐불을 단행하게 하였다.(삼무일종의 폐불 첫 번째) 이 시기에 선비족의 한인 동화와 도시 귀족화가 진행되면서 서서히 북위 내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효문제 때 풍태후가 섭정하면서 유교적인 예법을 받아들이고 균전제를 시행하였으며 또한 삼장제를 확립했다. 풍태후 사후에 친정을 시작한 효문제는 493년에 수도를 평성에서 낙양으로 천도하였다. 그는 선비족의 복장과 언어를 금지하고, 성씨도 중국풍으로 바꿔 탁발씨를 원씨(元氏)로 고치고, 선비족과 한족과의 혼인을 장려하면서 한족 문화와 동화하는 정책을 추진하여 북위의 문화는 크게 발전하였으나 반면 지금까지 내려온 선비족 고유의 소박한 상무정신은 사치와 문약으로 인해 바뀌게 되었다.

북위의 쇠퇴 및 멸망[편집]

효문제 사후 어린 효명제를 대신해 섭정한 영태후는 정치를 하면서 불교에 심취해 전국에 사탑을 건립하여 재정을 어지럽혔다. 그로 인해 국내에 도적들이 봉기하고, 그동안 누적된 한화정책에 대한 선비족의 불만은 523년에 일어난 6진의 난을 초래하여 북위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

6진은 원래 북위의 수도 평성을 지키던 6곳의 군사기지로 이곳엔 왕실 계통의 유력자들이 머물면서 국경을 지켰기에 대우가 좋았다. 하지만 급진적인 한화정책과 수도의 이전으로 인해 대우가 소홀해지면서 그 불만이 누적되어 6진의 난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영태후는 효명제를 독살하고 황제를 두 번이나 바꿔 세우지만 6진의 난의 진압과정 중 대군벌으로 성장한 지금의 산시 성 삭현 지방의 흉노족 출신 이주영이 군사를 일으켜 영태후에 맞서 효장제를 옹립했다. 이주영은 528년에 낙양을 함락한 뒤 영태후와 영태후가 세운 황제를 황하에 빠뜨려 죽이고, 승상 이하 대신 천여 명을 처형하니 역사에서는 이를 하음의 변이라고 한다.

이주영은 6진의 난을 평정하고 진양(晉陽)에서 조정과 효장제를 마음대로 휘둘렀으나 이주씨 휘하의 장군 고환이 그 폭정을 비판하여 이주씨와 대립하고 532년 낙양에 들어와 이주씨에 의해 세워진 절민제를 폐위하고 효무제를 세웠다. 고환은 이주씨 일당을 각지에서 격파하여 정권은 그에게로 넘어갔다.

그러나 효무제는 이번엔 고환의 전횡을 싫어해 낙양을 탈출해 장안으로 도망쳐 우문태에게 의지하자, 고환은 효정제를 옹립하고 534년 수도를 으로 옮겼다. 같은 해 우문태는 효무제를 살해하고 문제를 즉위시키니 이로써 북위는 동서로 분열하게 되었다. 역사상 이것을 동위, 서위라 부른다.

동위의 정권은 모두 고씨의 손에 있어, 고환의 아들 고양이 재상이 되어 550년에 효정제로부터 제위를 빼앗아 북제를 건국했다. 서위에서도 정권은 우문씨가 차지하여 우문태의 아들 우문각556년에 공제를 폐위하고 다음 해 북주를 건국하니 이로써 동서 양위는 멸망했다.

모사자귀제도[편집]

북위에선 외척의 내정간섭을 막기 위해 실시한 모사자귀제도라는 잔혹한 제도를 실시했다. 이것은 후궁에게서 아이를 얻으면 생모를 죽이고, 아이는 따로 키우는 상황이 발생했다.

주요 명신 및 명장[편집]

역대 황제[편집]

북위 황제와 연호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능호
- - 헌명황제
(獻明皇帝)
(북위 도무제 추숭)
탁발식(拓跋寔) - - -
제1대 북위 태조
(北魏太祖)
(북위 열조(北魏烈祖))
도무황제
(道武皇帝)
탁발규(拓跋珪) 등국(登國) 386년 ~ 396년
황시(皇始) 396년 ~ 398년
천흥(天興) 398년 ~ 404년
천사(天賜) 404년 ~ 409년
386년 ~ 409년 성락금릉
(盛樂金陵)
제2대 북위 태종
(北魏太宗)
명원황제
(明元皇帝)
탁발사(拓跋嗣) 영흥(永興) 409년 ~ 413년
신서(神瑞) 414년 ~ 416년
태상(泰常) 416년 ~ 423년
409년 ~ 423년 운중금릉
(雲中金陵)
제3대 북위 세조
(北魏世祖)
태무황제
(太武皇帝)
탁발도(拓跋燾) 시광(始光) 424년 ~ 428년
신가(神䴥) 428년 ~ 431년
연화(延和) 432년 ~ 435년
태연(太延) 435년 ~ 440년
태평진군(太平眞君) 440년 ~ 451년
정평(正平) 451년 ~ 452년
423년 ~ 452년
제4대 -
(남안은왕(南安隱王))
탁발여(拓跋余) 승평(承平) 452년 452년 -
- 북위 공종
(北魏恭宗)
(북위 문성제 추숭)
경목황제
(景穆皇帝)
탁발황(拓跋晃) - - -
제5대 북위 고종
(北魏高宗)
문성황제
(文成皇帝)
탁발준(拓跋浚) 흥안(興安) 452년 ~ 454년
흥광(興光) 454년 ~ 455년
태안(太安) 455년 ~ 459년
화평(和平) 460년 ~ 465년
452년 ~ 465년 운중금릉
(雲中金陵)
제6대 북위 현조
(北魏顯祖)
헌문황제
(獻文皇帝)
탁발홍(拓跋弘) 천안(天安) 466년 ~ 467년
황흥(皇興) 467년 ~ 471년
465년 ~ 471년
제7대 북위 고조
(北魏高祖)
효문황제
(孝文皇帝)
원굉(元宏) 연흥(延興) 471년 ~ 476년
승명(承明) 476년
태화(太和) 477년 ~ 499년
471년 ~ 499년 장릉(長陵)
제8대 북위 세종
(北魏世宗)
선무황제
(宣武皇帝)
원각(元恪) 경명(景明) 500년 ~ 504년
정시(正始) 504년 ~ 508년
영평(永平) 508년 ~ 512년
연창(延昌) 512년 ~ 515년
499년 ~ 515년 경릉(景陵)
제9대 북위 숙종
(北魏肅宗)
효명황제
(孝明皇帝)
원후(元詡) 희평(熙平) 516년 ~ 518년
신귀(神龜) 518년 ~ 520년
정광(正光) 520년 ~ 525년
효창(孝昌) 525년 ~ 528년
무태(武泰) 528년
515년 ~ 528년 정릉(定陵)
비정통 - -
(소황제(少皇帝),
유주(幼主))
원쇠(元釗) - 528년 -
- 북위 숙조
(北魏肅祖)
(북위 효장제 추숭)
문목황제
(文穆皇帝)
원협(元勰) - - -
- - 효선황제
(孝宣皇帝)
(북위 효장제 추숭)
원소(元劭) - - -
제10대 북위 경종
(北魏敬宗)
효장황제
(孝莊皇帝)
원자유(元子攸) 건의(建義) 528년
영안(永安) 528년 ~ 530년
528년 ~ 530년 정릉(靜陵)
제11대 -
(장광왕(長廣王))
원엽(元曄) 건명(建明) 530년 ~ 531년 530년 ~ 531년 -
- - 선황제
(先皇帝)
(북위 절민제 추숭)
원우(元羽) - - -
제12대 북위 열종
(北魏烈宗)
절민황제
(節閔皇帝)
(전폐황제(前廢皇帝),
광릉왕(廣陵王))
원공(元恭) 보태(普泰) 531년 ~ 532년 531년 ~ 532년
제13대 - 후폐황제
(後廢皇帝)
(안정왕(安定王))
원랑(元朗) 중흥(中興) 531년 ~ 532년 531년 ~ 532년 -
- - 무목황제
(武穆皇帝)
(북위 효무제 추숭)
원회(元懷) - - -
제13대 북위 현종
(北魏顯宗)
효무황제
(孝武皇帝)
(출황제(出皇帝))
원수(元脩) 태창(太昌) 532년
영흥(永興) 532년
영희(永熙) 532년 ~ 534년
531년 ~ 534년 운릉(雲陵)

참고[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