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위 효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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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 효문제(北魏 孝文帝, 467년 10월 13일 ~ 499년 4월 26일, 재위:471년 9월 20일 ~ 499년 4월 26일)는 중국 남북조 시대 북위(北魏)의 제7대 황제이다. 성명은 원굉(元宏)이고, 원래 성씨는 탁발씨(拓跋氏)이다. 묘호고조(高祖)이며, 시호효문황제(孝文皇帝)이다.

생애[편집]

효문제는 풍태후(馮太后)의 섭정 때 유교적인 예법을 채용하고, 균전제를 시행하면서 삼장제를 확립했다.

490년, 풍태후가 죽자 효문제의 친정(親政)이 시작되었지만 정책은 그대로 유지 계승되었다.

493년, 효문제는 수도를 평성(平城; 지금의 산시 성 다퉁)에서 뤄양(洛陽)으로 천도 후 대대적인 호한 융합 정책을 추진했다. 그는 선비족의 복장과 언어를 금지하고, 황실의 성씨를 원씨(元氏)로 고치고, 구품관인법(九品官人法)을 부분 채용하여 남조를 모방한 북조 귀족 제도를 만들었다. 선비족과 한족명족과의 통혼을 장려하면서 한족 문화와 동화하는 정책을 추진하여 북위의 문화는 크게 발전하였으나 일면 지금까지 내려온 선비족 고유의 소박한 상무 정신은 사치와 문약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에 반발한 일부 세력이 반란을 일으켰지만 효문제의 시기에 모두 진압되었다.

하지만 효문제의 사후 반발이 더 거세져 어린 효명제(孝明帝)을 대신해 섭정한 영태후(靈太后)는 정치를 하면서 불교에 심취해 전국에 사탑을 건립하여 재정을 어지럽혀, 국내에 도적이 봉기하고, 그동안 누적된 호한 융합 정책에 대한 선비족의 불만은 523년 육진의 난이 일어나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되어 북위 멸망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6진은 예전 수도 평성 주변을 방위하던 6곳의 군사 주둔지였는데, 이곳은 예로부터 선비족의 유력자가 배치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매우 중요시 되어 좋은 대우를 받았지만, 수도를 천도한 뒤 대우가 나빠지면서 주둔 군인의 불만이 쌓인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북위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

가계도[편집]

  • 황후(정비) : 폐황후 풍씨 풍청(廢皇后 馮氏 馮淸)
  • 황후(계비) : 유황후 풍씨 풍윤(幽皇后 馮氏 馮潤, 469년 ~ 499년) - 폐황후 풍씨의 동생
  • 황후(추존) : 문소황후 고씨 고조용(文昭皇后 高氏 高照容, 469년 ~ 497년)
    • 제2황자 : 황태자 원각(元恪) - (선무제)
    • 제5황자 : 광평문목왕 원회(廣平文穆王 元懷, 488년 ~ 517년) - (무목제)
      • 황손 : 평양왕 원수(平陽王 元修) - (효무제)
    • 황녀 : 장락공주(長樂公主, 489년 ~ 525년)
  • 황후(폐서인) : 폐 정황후 임씨(廢 貞皇后 林氏, ? ~ 483년) : 자귀모사제도로 사망
    • 제1황자 : 폐태자 원순(廢太子 元恂, 483년 ~ 497년)
  • 후궁 : 소의 풍씨 풍산(昭儀 馮氏 馮姍) - 폐황후 풍씨 동생
  • 후궁 : 귀인 원씨(貴人 袁氏)
  • 후궁 : 부인 나씨(夫人 羅氏, ? ~ 514년)
  • 후궁 : 부인 이씨(夫人 李氏)
  • 후궁 : 빈 조씨(嬪 趙氏)
    • 황녀 : 의양공주(義陽公主)
  • 후궁 : 대빈 정씨(大嬪 鄭氏)
  • 후궁 : 소빈 정씨(小嬪 鄭氏)
    • 제7황자 : 은왕 원조(隱王 元恌, 494년 ~ 500년)
  • 후궁 : 빈 왕씨(嬪 王氏)
  • 후궁 : 대빈 최씨(大嬪 崔氏)
  • 후궁 : 소빈 최씨(小嬪 崔氏)
  • 후궁 : 빈 위씨(嬪 韋氏)
  • 후궁 : 빈 노씨(嬪 盧氏)
  • 생모 미상
    • 황녀 : 난릉공주(蘭陵公主)
    • 황녀 : 회양공주(淮陽公主)
    • 황녀 : 화양공주(華陽公主)
    • 황녀 : 서하공주(西河公主)
    • 황녀 : 순양공주(順陽公主)
    • 황녀 : 시평공주(始平公主)
    • 황녀 : 제남공주(濟南公主)
    • 황녀 : 의양공주(義陽公主)
    • 황녀 : 고평공주(高平公主)
    • 황녀 : 남양공주(南陽公主)
전 대
헌문제
제7대 북위 황제
471년 ~ 499년
후 대
선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