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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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 태(宇文泰, 507년 ~ 556년)는 북위, 서위의 정치가. 북주의 기초를 닦은 인물로서, 559년묘호는 태조(太祖), 시호는 문제(文帝)로 추증되었다.

생애[편집]

우문태는 선비족으로 출신지는 무천진(현재의 내몽고 자치구에 있었던 북위의 군사기지)이다.

우문태는 6진의 난에 참가하였다가 하발악에게 귀순하여 두각을 나타내었다. 하발악의 사후, 하발악이 가지고 있던 기반으로 관중지방에서 세력을 과시했다.

534년 북위의 승상 고환을 제거하는 음모를 꾸미다가 실패한 효무제는 관중의 장안으로 도망쳐 당시 관서 대도독이었던 우문태의 보호를 받았다.

이로 인해 북위는 동서로 분열했다. 고환은 업에서 효정제를 옹립하여 동위가 되었고, 우문태가 문제를 옹립하여 서위가 되었다. 이 때 우문태는 서위의 승상으로 승진했다.

우문태는 새롭게 24군제를 창시했는데, 이 제도는 군의 조직을 주국 → 대장군 → 개부(開府)의 계열로 내려오게 한뒤, 그 정점에 우문태가 있게 한 것이다. 이 제도는 후에 부병제의 근간이 되었다.

서위는 우문태가 실권을 장악했기 때문에, 황제는 우문태의 꼭두각시였다. 그래서 비록 국력은 동위에 비해 떨어졌지만 그의 군사적 능력이 뛰어나 여러차례 동위를 압도하는 전과를 올릴 수가 있었다.

553년에 남조 양나라후경의 난에 의해 혼란해진 사이를 틈타 촉을 빼앗아 영토를 확장했다. 또한 강릉을 함락해 양 원제를 살해한 뒤 소찰을 세워 후량을 건국하게 함으로써 남조에 타격을 주는 데도 성공한다.

우문태의 사후 승상을 물려받은 우문각은 556년 공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제위에 올라 북주를 건국했다.

가족[편집]

아내[편집]

정궁[편집]

  • 문황후(文皇后) 원씨(元氏) - 우문각의 어머니

후궁[편집]

  • 선황후(宣皇后) 질노씨(叱奴氏) - 우문옹, 우문직의 어머니
  • 요부인(姚夫人) - 우문육의 어머니
  • 달보간씨(達步幹氏) - 우문헌의 어머니
  • 왕씨(王氏) - 우문초의 어머니
  • 장녀필(張女畢) - 우문달의 어머니
  • 권백녀(權白女) - 우문검의 어머니
  • 오륙혼현옥(烏六渾現玉) - 우문통의 어머니

아들[편집]

  • 명제(明帝) 우문육(宇文毓)
  • 송헌공(宋獻公) 우문진(宇文震)
  • 효민제(孝閔帝) 우문각(宇文覺)
  • 무제(武帝) 우문옹(宇文邕)
  • 제양왕(齊煬王) 우문헌(宇文憲)
  • 위랄왕(衛剌王) 우문직(宇文直)
  • 조참왕(趙僭王) 우문초(宇文招)
  • 초효왕(誰孝王) 우문검(宇文儉)
  • 진혹왕(陳惑王) 우문순(宇文純)
  • 월야왕(越野王) 우문성(宇文盛)
  • 대비왕(代奰王) 우문달(宇文達)
  • 기강왕(冀康王) 우문통(宇文通)
  • 등문왕(滕聞王) 우문유(宇文逌)

[편집]

  • 우문황후(宇文皇后) - 서위 문제의 아내
  • 양양공주(襄陽公主) - 두의의 아내
  • 의안공주(義安公主) - 이휘의 아내
  • 순양공주(順陽公主) - 양찬의 아내
  • 평원공주(平原公主) - 우익의 아내
  • 영부공주(永富公主) - 사웅의 아내
  • 서하공주(西河公主) - 유창의 아내
  • 의귀공주(義歸公主) - 이기의 아내
  • 의도공주(宜都公主) - 양예의 아내
  • 우문씨(宇文氏) - 하발위(하발악의 아들)의 아내
  • 우문씨(宇文氏) - 약간봉(약간혜의 아들)의 아내

참고문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