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정책의 점진적 방법으로 관·공립 보통학교를 확장했다. 1906년 3월 이토(伊藤博文)는 시정의 개선을 위해 500만원(실수금 450만원)을 가져왔다. 그 사용계획을 보면 학교의 신축·수리비로 보통학교 34만원, 중학교 16만원, 도합 50만원을 교육시설에 투자했다. 그 결과 1906년 관립 9교, 공립 13교, 1907년 공립 28교, 1908년 공립 9교 등 관·공립 보통학교를 설치하였다. 이렇게 통감부가 관·공립 보통학교를 신축·확장한 것은 한국에 대한 수습책과 아울러 점진적 동화정책을 사용하기 위함에서였다. 곧 한말(韓末)의 아동들로 하여금 그들의 식민지정책에 무조건 복종케 하는 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