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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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봉 왕가
작위 프랑스 왕
에스파냐 왕
바르셀로나 백작
나바라 왕
파르마 공작
나폴리 왕
시칠리아 왕
양시칠리아 왕
앙주 공작
설립자 로베르 드 프랑스
최후 통치자 루이 필리프
로베르토 1세
프란체스코 2세
현재 수장 후안 카를로스 1세
앙리 도를레앙
분가 오를레앙
부르봉 파르마
부르봉 양시칠리아

부르봉 왕가(프랑스어: Maison capétienne de Bourbon)는 카페 왕조의 한 계열로 루이 9세의 마지막 아들 클레르몽의 백작 로베르 드 프랑스(Robert de France)로부터 시작되었다. 부르봉 왕조라고도 부른다. 부르봉(Bourbon)의 어원은 켈트어로 ‘진흙(Borvo, 혹은 Borbo)’을 뜻한다.

부르봉 왕가의 탄생과 발전

부르봉 왕가는 루이 9세의 6번째 이자 막내아들인 로베르 드 프랑스(Robert de France)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샤로래(프랑스어: Charolais)의 영주 장 드 부르고뉴(프랑스어: Jean de Bourgogne)와 아니에스 드 부르봉(프랑스어: Agnès de Bourbon)의 외동딸 베아트리스(프랑스어: Béatrice)와 결혼을 함으로써 부르봉(프랑스어: Bourbon)의 영주가 되었다.

부르봉 영지는 1327년 부르봉가의 루이 1세(프랑스어: Louis Ier de Bourbon)를 위하여 공작령으로 승격되었다. 부르봉가의 루이 2세(프랑스어: Louis II de Bourbon) (1337-1410)는 1371년 안 도베르뉴(프랑스어: Anne d'Auvergne)와 결혼을 하였다. 이 결혼으로 영지를 확장시켰다.

광신도적인 수도사 자크 크레망(프랑스어: Jacques Clément)이 앙리3세를 암살하자 발루아 왕가에는 왕위를 이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살리카 법이라고 불리는 당시 통용되었던 계승법으로 사망한 앙리3세의 22촌인 앙리4세가 왕위를 계승했다.

역사

부르봉 왕조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인 1789년까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물러난 1815년에서 7월 혁명이 일어난 1830년까지 지속되었다. 에스파냐에서는 1701년부터 통치하고 있는데, 1874년부터 1875년까지, 1931년부터 1975년까지는 공화정으로 인하여 다른 나라로 도피하였다. 그 뒤 후안 카를로스 1세입헌 군주제 에스파냐으로 즉위하였다. 이외에도 부르봉 왕가는 나바르, 프랑스, 스페인, 양시칠리아, 룩셈부르크, 안도라, 루카, 파르마와 같이 유럽의 여러나라를 다스렸고, 여러 분파로 나뉘었다.

부르봉 정통 왕가

프랑스의 왕

에스파냐의 왕 및 바르셀로나 백작(1714년부터)

나바라의 왕

오를레앙 왕가

프랑스의 왕

오를레앙 왕가의 수장

부르봉파르마 공가

파르마 공작

파르마 공국은 사르데냐 왕국이 주도한 리소르지멘토로 사르데냐 왕국에 합병된다.

부르봉 나폴리 왕가

나폴리와 시칠리아의 왕

나폴리 왕국시칠리아 왕국은 오래전부터 동군연합을 이루어왔다. 페르디난도 1세는 1806년부터 1815년까지는 나폴리의 왕을 차지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보나파르트 왕가가 나폴리 왕위를 차지하였기 때문이다.

부르봉 양시칠리아 왕가

1816년에는 나폴리 왕국이 시칠리아 왕국을 합병시키고 양시칠리아의 왕이 되었다. 따라서 왕가의 이름도 부르봉 양시칠리아로 변하였다.

양시칠리아의 왕

양시칠리아 왕국은 사르데냐 왕국이 주도한 리소르지멘토로 사르데냐 왕국에 합병된다.

부르봉 양시칠리아 왕가의 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