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카를로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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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 카를로스 1세
스페인의 군주
재위 1975년 11월 22일 ~
왕비 소피아
왕가 부르봉 왕가
부친 바르셀로나 백작 후안 왕자
모친 부르봉-양시칠리아의 마리아 메르세데스 공주
출생일 1938년 1월 5일(1938-1-5) (71)
출생지 이탈리아의 국기 이탈리아 로마
종교 로마 가톨릭교회
자녀 루고 공작 부인 인판타 엘레나
팔마데마요르카 공작 부인 인판타 크리스티나
아스투리아스 공 펠리페
이전 왕 알폰소 13세

후안 카를로스 1세(Juan Carlos I, 1938년 1월 5일~, 이탈리아 로마 출생, 재위 1975년 11월 27일 ~ ) 는 현 에스파냐(스페인)의 국왕으로 본명은 후안 카를로스 알폰소 빅토르 마리아 데 보르본(Juan Carlos Alfonso Víctor María de Borbón)이다.

목차

[편집] 망명생활

1931년 스페인에 공화제 정권이 들어서면서 조부(祖父)인 알폰소 13세를 비롯한 스페인 왕가 일족이 로마에 망명해 있었던 때에 바르셀로나 백작 후안과 마리아 메르세데스 백작부인의 장남으로 로마에서 태어났다. 1948년 당시 스페인 총통이었던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설득으로 아버지와 함께 고국으로 돌아와 1955년 육군에 입대, 1961년, 콤플루텐세 대학교를 졸업하는 등 프랑코 사후,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

[편집] 프랑코 사후 민주화정책실시

1975년 11월 22일, 프랑코가 사망하자 그의 유언에 따라 즉위한 후안 카를로스 국왕은 기존 프랑크 군사정부의 기조를 계승하여 독재 체제를 취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민주화운동을 주도하였다. 후안 카를로스 국왕은 1976년 후안 곤살레스 수상의 지도하에 양원제를 수립했으며, 1977년 41년 만에 총선거를 실시하여 국민들이 스스로 상·하원위원들을 선출하도록 했다. 1978년에는 신(新)헌법을 승인시켜 입헌군주제를 확립시켰으며, 프랑코 독재정권당시 구속되었던 민주인사를 석방하였다. 물론 프랑코가 금지했던 정당 활동도 허용하였다. 이러한 민주화정책들은 프랑코의 군사독재로 얼룩졌던 에스파냐에 민주주의를 심는 성과를 거두었다. 1981년, 군의 일부 보수우파세력이 의회를 점거, 내각 각료와 의원 350여명을 인질로 하여 프랑코 시대 체제로의 복고(復古)를 요구하였으나 이를 끝까지 거부, 민주주의를 유지시키는 동시에 신속히 반항 세력을 회유하여 투항시켰던 쿠데타 미수 사건으로 국민들의 절대적 신뢰를 얻게 되었으며 신실하고 모범적인 공무 수행으로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20세기 군주 중 한 사람이 되었다.

[편집] 가족

왕비는 그리스 공주 출신의 소피아(Sofía)로 그리스 국왕 파블로스 1세의 딸이며 콘스탄티노스 2세 국왕의 누이이다. 슬하에, 맏딸 엘레나(1963년생), 둘째 크리스티나(1965년생), 아스투리아스 공(왕태자)인 펠리페(1968년생)를 두었다.

아스투리아스 공 펠리페2004년 5월, 뉴스 앵커 출신의 언론인 레티시아 오르티스(Letizia Ortiz)와 결혼하였으며 2005년 10월 31일, 첫째딸 레오노르(Leonor)를 낳았다.

스페인해군은 전략 투사함(Buque de Proyección Estratégica)이라는 계획하에 건조할 신형 경항공모함의 이름으로 후안 카를로스 1세를 예정하고 있다.

[편집] 2007년 이베로-아메리카 정상회담

2007년 11월 10일, 칠레 산티아고에서 개최된 제 17차 이베로-아메리카 정상회담 도중 발언을 하려던 베네수엘라우고 차베스 대통령에게 “입 닥치지 못하겠느냐?”(스페인어: ¿Por qué no te callas?, "포르케 노 테 카야스")라고 일갈하였다. 이 발언은 얼마 안 가 스페인 전역에서 이동전화의 벨소리로도 유행하였다. 또한 스페인의 한 의류 제작자는 그의 말을 인쇄한 티셔츠를 제작하였다.[1]

[편집] 참조

  1. "입닥쳐", 스페인서 휴대전화 호출음으로 인기 :: 네이버 뉴스
전 임
알폰소 13세
(재위 1886 - 1931)
스페인의 군주
1975년 11월 22일~
후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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