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어도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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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어도 제도(한자釣魚島 諸島) 혹은 센카쿠 제도(일본어: 尖閣諸島(せんかくしょとう))는 타이완오키나와 제도 사이에 동중국해 남서쪽의 무인도와 암초로 이루어진 제도로, 1895년부터 일본이 영유하고 있으며 중화인민공화국중화민국이 각각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댜오위타이 군도(중국어 간체: 钓鱼台群岛, 병음: Diàoyútái Qúndǎo 조어대군도[*]) 또는 중국어 간체: 钓鱼岛及其附属岛屿, 병음: Diàoyúdǎo jíqí fùshǔdǎoyǔ, 중화민국에서는 댜오위타이 열서(중국어: 釣魚台列嶼, 병음: Diàoyútái Lièyǔ)라고 부른다. 영어권에서는 피나클 제도(Pinnacle Islands)라고도 부른다. 대한민국에서는 대체로 '조어도 제도'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조어도/센카쿠 제도의 위치
(빨간 상자 안)
조어도/센카쿠 제도에 속하는 섬들의 위치
(위 그림 빨간 상자 안 확대)

목차

개요

조어도/센카쿠 제도는 일본의 행정 구역에는 오키나와 현 이시가키 시 (일본어: 石垣市(いしがきし))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중화인민공화국타이완 성, 중화민국은 타이완 성 이란 현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 전체 면적은 7 km²로, 모두 무인도이다.
  • 위치: 25°58' - 25°41'45" N, 123°27'45" - 124°41'30" E 부근
우오쓰리 섬(魚釣島)
(일본 국토교통성 제공)
  • 주된 섬이나 암초는 다음과 같다.
    • 조어도 / 우오쓰리 섬(일본어: 魚釣島(うおつりじま)) / 댜오위다오(중국어 정체: 釣魚台)
      동서에 약 3.5km, 남북에 약 2km 의 섬이고 면적은 3.82km²이다. 이 섬에서 가장 해발이 높은 곳은 362m이다.
    • 구바 섬(일본어: 久場島(くばじま)) / 황웨이위(중국어 정체: 黄尾嶼)
      면적은 0.91 km²이다.
    • 다이쇼 섬(일본어: 大正島(たいしょうじま)) / 츠웨이위(중국어 정체: 赤尾嶼)
      면적은 0.06 km²이다.
    • 기타코지마 섬/베이샤오다오(한자北小島: 중국 및 일본 명칭 같음)
      면적은 0.31 km²이다.
    • 미나미코지마 섬/난샤오다오(한자南小島: 중국 및 일본 명칭 같음)
      면적은 0.40 km²이다.
    • 오키노키타이와 암초(일본어: (おき)北岩(きたいわ)) / 다베이샤오다오(중국어 정체: 大北小島)
    • 오키노미나미이와 암초(일본어: (おき)南岩(みなみいわ)) / 다난샤오다오(중국어 정체: 大南小島)
    • 도비세(일본어: 飛瀬(とびせ)) 암초 / 페이라이다오(중국어 정체: 飛瀬島)

역사

최초로 이들 군도가 기록된 것은 1372년 중국 명나라의 선원들에 의해서였고, 공식적으로 '조어도'의 명칭이 나타난 것은 1863년에 작성된 세계지도(중국어 정체: 皇朝一统舆地全图)로, 푸젠 성에 속한 것으로 표시되었다. 1895년, 청일 전쟁 중 일본은 조어도를 포함한 대만을 침공·점령하여 통치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군에 의해 대만과 오키나와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일본의 항복 후 카이로포츠담 선언으로 대만은 중국에 귀속되었다. 하지만, 오키나와와 조어도/센카쿠 제도는 미국의 관리하에 놓여 있다가 1972년 일본에 주어졌다.

일본측의 견해

188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일본인이 세운 선창이나 공장이 있었는데 후에 무인도가 되었다. 청일 전쟁이 진행중이던 1895년 1월 14일 일본은 조어도/센카쿠 제도가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던 것을 확인해서 비공개로 일본에 편입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미국의 시정권에 속했다.

1969년 5월에 섬 주변에서 지하 자원이 있는 가능성이 확인되자 1971년 6월 11일에 중화민국이, 동년 12월 30일에 중화인민공화국이 각각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1972년 오키나와 현이 일본에 반환되었을 때 조어도/센카쿠 제도는 오키나와 제도와 같이 반환되었다고 주장한다.

1978년 일본의 우익단체가 우오쓰리 섬에 등대를 세웠다. 2005년 2월 일본 정부는 이 등대를 지도에 실어서 관리하기 시작했다.

생태계

1975년경부터 일본의 우익단체가 우오쓰리 섬(일본어: 魚釣島(うおつりじま))/댜오위다오(중국어 정체: 釣魚台)으로 염소를 데리고 들어왔다. 염소들이 섬에 방치되어 섬의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 이 때문에 염소를 없애고 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바깥 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