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란: 두 판 사이의 차이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19번째 줄: 19번째 줄:
'''이지란'''(李之蘭, [[1331년]] ~ [[1402년]])은 [[원 간섭기|원(元) 간섭기]] [[고려]](高麗) 거류 [[여진족]] 출신으로 [[고려|고려 말기]]의 무관(武官)이고 [[조선|조선(朝鮮) 시대]]의 개국공신이자 무신(武臣), [[정치가]](政治家), [[시 (문학)|시인]](詩人)이며 만년에 [[불교]] [[승려]]가 된 인물이다. [[조선]]의 [[조선 태조|태조 이성계]]의 잠저시절 의형제를 맺었으며, 그 인연으로 후에 이씨 성을 사성받아 개명했다 한다.
'''이지란'''(李之蘭, [[1331년]] ~ [[1402년]])은 [[원 간섭기|원(元) 간섭기]] [[고려]](高麗) 거류 [[여진족]] 출신으로 [[고려|고려 말기]]의 무관(武官)이고 [[조선|조선(朝鮮) 시대]]의 개국공신이자 무신(武臣), [[정치가]](政治家), [[시 (문학)|시인]](詩人)이며 만년에 [[불교]] [[승려]]가 된 인물이다. [[조선]]의 [[조선 태조|태조 이성계]]의 잠저시절 의형제를 맺었으며, 그 인연으로 후에 이씨 성을 사성받아 개명했다 한다.


여진족 이름은 '''퉁두란'''(佟豆蘭)으로서, 성씨(姓氏)는 '''퉁'''(佟, 동)이고, 이름은 '''두란'''(쿠란투란티무르, 古倫豆蘭帖木兒, 고륜두란첩목아)이다. 자는 '''식형'''(式馨)이며 불교 법명도 '''식형'''(式馨)이고 시호는 '''양렬'''(襄烈)이며 [[청해 이씨]](靑海 李氏)의 시조이다. <ref name="이지란">《국어국문학자료사전》, 이지란(李之蘭), 이응백 김원경 김선풍 등 공저, 한국사전연구사(1998년판), <br/>「21세기에서 바라본 조선의 궁술」, 조선시대, 이중화 저, 김이수 역, 한국학술정보(2010년, 235~253p)</ref> [[중국]] [[남송]](南宋)의 무관(武官) [[악비]]<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Contents?contents_id=E0046047 한국학중앙연구원]</ref>(岳飛)의 6대손이다. 또한 그의 부인 강씨는 태조 이성계의 후처 [[신덕왕후]] 강씨의 이종조카가 된다.
여진족 이름은 '''[[퉁두란]]'''(佟豆蘭)으로서, 성씨(姓氏)는 '''퉁'''(佟, 동)이고, 이름은 '''두란'''(쿠란투란티무르, 古倫豆蘭帖木兒, 고륜두란첩목아)이다. 자는 '''식형'''(式馨)이며 불교 법명도 '''식형'''(式馨)이고 시호는 '''양렬'''(襄烈)이며 [[청해 이씨]](靑海 李氏)의 시조이다. <ref name="이지란">《국어국문학자료사전》, 이지란(李之蘭), 이응백 김원경 김선풍 등 공저, 한국사전연구사(1998년판), <br/>「21세기에서 바라본 조선의 궁술」, 조선시대, 이중화 저, 김이수 역, 한국학술정보(2010년, 235~253p)</ref> [[중국]] [[남송]](南宋)의 무관(武官) [[악비]]<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Contents?contents_id=E0046047 한국학중앙연구원]</ref>(岳飛)의 6대손이다. 또한 그의 부인 강씨는 태조 이성계의 후처 [[신덕왕후]] 강씨의 이종조카가 된다.


== 생애 ==
== 생애 ==

2015년 10월 9일 (금) 16:23 판

이지란
李之蘭
이지란 초상화
이지란 초상화
별명 본래 이름은 퉁두란(佟豆蘭(古倫豆蘭帖木兒[1] ))
자(字)는 식형(式馨)[2]
시호(諡號)는 양렬(襄烈)
작위는 청해백(靑海伯), 청해군(靑海君)
출생지 원 간섭기 고려 함경도 북청주 건주여진족 거촌
(現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북도 북청군)
사망지 조선 동북면 함주군 함흥목
(現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남도 함흥시)
부모 아버지 아라부카(阿羅不花)
배우자 혜안택주 윤씨(惠安宅主 尹氏, 초취부인)
군부인 강씨(君夫人 康氏, 후취부인)
종교 유교(성리학) → 불교
복무 고려 군사
조선 군사
복무기간 1371년 ~ 1400년
최종계급 문하시랑평장사
지휘 고려군
조선군
주요 참전 황산대첩
기타 이력 조선 개국공신 1등
조선 정사공신 2등

이지란(李之蘭, 1331년 ~ 1402년)은 원(元) 간섭기 고려(高麗) 거류 여진족 출신으로 고려 말기의 무관(武官)이고 조선(朝鮮) 시대의 개국공신이자 무신(武臣), 정치가(政治家), 시인(詩人)이며 만년에 불교 승려가 된 인물이다. 조선태조 이성계의 잠저시절 의형제를 맺었으며, 그 인연으로 후에 이씨 성을 사성받아 개명했다 한다.

여진족 이름은 퉁두란(佟豆蘭)으로서, 성씨(姓氏)는 (佟, 동)이고, 이름은 두란(쿠란투란티무르, 古倫豆蘭帖木兒, 고륜두란첩목아)이다. 자는 식형(式馨)이며 불교 법명도 식형(式馨)이고 시호는 양렬(襄烈)이며 청해 이씨(靑海 李氏)의 시조이다. [3] 중국 남송(南宋)의 무관(武官) 악비[4](岳飛)의 6대손이다. 또한 그의 부인 강씨는 태조 이성계의 후처 신덕왕후 강씨의 이종조카가 된다.

생애

1610년대 후금(後金) 제국(훗날의 청(淸) 제국) 황제인 천명제 누르하치의 조상이기도 한 건주여진족의 천호(千戶)인 아라부카(阿羅不花)의 아들로, 아버지의 벼슬을 이어받아 천호(千戶)가 되었고 1371년 고려 공민왕(高麗 恭愍王) 때 부하들을 이끌고 고려귀화하였다. 북청에 있다가 이성계(李成桂)의 휘하로 들어가 이(李)씨 성을 받았다.

1392년 고려 공양왕(高麗 恭讓王) 때 지문하부사 판도평의사사가 되었고 이어 명(明) 제국으로부터 청해백(靑海伯)에 봉해졌다가 그 해 이성계조선을 건국하자 개국공신 1등에 책록되고, 청해군(靑海君)에 봉해졌으며 참찬문하부사가 되었다. 이듬해 경상도 절제사가 되어 왜구를 막는 데 힘썼으며, 1398년에는 명 제국을 도와 건주위 정벌에 공을 세워 문하시랑찬성사에 제수되었고 이어 판형조사의흥삼군부사중군절제사에 보직 변경 임명되었다. 그 해 조선 태조 이성계가 보위에서 물러나 은퇴한 후에도 후계로 즉위한 조선 정종 이방과를 섬기며 관직을 지내고 1399년 문하시랑평장사에 보임되었으며 정종이 퇴위하고 그 후계로 1400년 조선 태종 이방원이 즉위한지 얼마 안 되어 그 해 문하시랑평장사 직위를 끝으로 관직을 사퇴하고 함흥으로 낙향하여 이성계를 시종하는 일을 맡았다. 이와 동시에 그는 과거 군관 시절에 여러 전쟁터에서 많은 인명들을 죽인 것을 속죄하기 위해 에 들어가서 자신의 자(字)이기도 한 식형(式馨)이라는 법명(法名)으로 불교 승려가 되었다. 사후 태조의 사당에 함께 모셔졌다.[3]

이성계와의 관계

  • 이지란(李之蘭)은 혜안택주 윤씨(惠安宅主 尹氏)와 1번째 혼인을 하였고 조선 태조(朝鮮 太祖)의 2번째 왕후인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 康氏)의 친정 조카딸인 군부인 강씨(君夫人 康氏)와 2번째 혼인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태조 이성계는 그의 처고모부(妻姑母夫)이기도 하다. 이성계(李成桂)보다 4살 위인 이지란(李之蘭)은 이성계의 처조카사위(이성계이지란의 처고모부(妻姑母夫)이자 의형(義兄))가 되는 동시에 의형제(義兄弟)를 맺은 이성계의 의제(義弟)이기도 하다.

전해오는 시조

초산(楚山) 우는 호(虎)와 패택(沛澤)에 잠긴 용(龍)이 /

토운생풍(吐雲生風)하여 기세(氣勢)도 장(壯)할시고 /

진(秦)나라 외로운 사슴은 갈 곳 몰라 하노라

  • 《화원악보(花源樂譜)》에 이지란의 시조 한 수가 전한다. 풀이해보면, 초산에 우는 범과 패택(잡풀이 무성한 연못)에 잠긴 용이 / 구름을 토하고 바람을 만드니 그 기세가 장할시고 / 진나라 외로운 사슴 갈 곳 몰라 하노라.
  • 해석하면 초에서 일어난 범과 같이 날래고 사나운 항우와 폐택에서 일어난 유방이 / 맞붙어 천하를 차지하려고 싸우는 그 기세는 기상이 장하구나. 이런 와중에서 나라를 잃게 되어 외로운 사슴의 신세가 된 진의 자영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노라.
  • 이 시조는 진의 붕괴 이후의 새 통일 국가에의 형성을 지향하던 중국의 역사에서 제재를 빌어와 고려말의 모습을 이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여기에서 항우유방은 곧 이성계 일파의 기세를 비유한 것이고 이에 쫒기어 갈 바를 몰라하는 자영은 멸망해 가는 고려 왕조를 비유하고 있음을 쉽게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또 종장의 '외로운 사슴'이라는 표현에서 측은함을 엿보이게 하고 진의 자영으로 표현된 고려에 대한 동정심과 애처로움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3]

이지란이 등장한 작품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같이 보기

참고 자료

  • 「조선평전」, 우리 역사가 된 귀화인 이야기, 신병주 저, 글항아리(2011년, 441~448p)
  • 「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 성씨」, 여진족 이지란(청해 이씨), 박기현 저, 역사의아침(2007년, 94~104p)

주석

  1. 당시 여진어로 두란은 쌍둥이, 터무르는 중세 몽골어로 철을 뜻하는 말인 티무르의 다른 음이다.
  2. 불교 법명이기도 함
  3. 《국어국문학자료사전》, 이지란(李之蘭), 이응백 김원경 김선풍 등 공저, 한국사전연구사(1998년판),
    「21세기에서 바라본 조선의 궁술」, 조선시대, 이중화 저, 김이수 역, 한국학술정보(2010년, 235~253p)
  4. 한국학중앙연구원

바깥 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