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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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任) 또는 (林)씨는 중국과 한국의 성씨이다.

수풀 림 林[편집]

림(林)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823,921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10위이다. 본관은 나주(羅州), 평택(平澤), 부안(扶安), 조양(兆陽), 울진(蔚珍), 은진(恩津), 장흥(長興), 전주(全州), 진천(鎭川) 보성(寶城) 등 90본이 있다. 인구는 나주 임씨가 289,558명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평택 임씨 225,872명, 부안 임씨 76,154명, 예천 임씨 66,492명, 조양 임씨 42,844명 순이다. 두음법칙이 적용되지 않은 원래 발음은 (林)이기 때문에 영문 표기는 "Lim"으로 표기한다.

진천 임씨[편집]

진천 임씨(鎭川林氏)의 시조 임희(林曦)는 고려 혜종의 비(妃)인 의화왕후(義和王后)의 아버지로, 벼슬이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에 오르고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으로 상산백(象山伯)에 봉해졌다. 역사 인물로 임간은 우문관대제학(右文官大提學)과 대사성(大司成)을 역임하였으며, 임희정이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우찬성(右贊成)에 이르렀고 임지가 금자광록대부로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거쳐 추충보절동덕찬화공신(推忠保節同德贊化功臣)에 녹훈되고 후에 상장군(上將軍)에 봉해졌다. 2015년 인구는 2,691명이다.

나주 임씨[편집]

나주 임씨(羅州 林氏)는 전라남도 나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시조는 고려의 대장군 임비(林庇)이다. 임비(林庇)는 1281년(충렬왕 7년) 왕과 함께 원나라에 다녀온 공으로 시종보좌공신 2등에 책록되고 철권을 하사받고 대장군, 충청도 도지휘사 판재사사에 이르렀다. 임비의 9세손 임탁이 해남 현무를 지내다가 이성계조선을 개국하자 관직을 버리고 회진으로 돌아가 살면서 본관을 회진(會津)으로 하였으나, 회진현이 나주에 속해짐에 따라 본관을 나주로 바꾸었다. 나주 임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54명을 배출하였다. 2015년 인구는 나주 임씨 277,713명, 금성 임씨 6,305명, 회진 임씨 5,540명이다.

평택 임씨[편집]

평택 임씨(平澤林氏)는 경기도 평택시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시조 임팔급(林八及)은 당나라 사람으로 782년경에 신라에 와서 이부상서를 역임하고 팽성에 살았다고 한다. 태시조로 상나라 말기 사람 비간(比干)이 전해지는데, 비간의 아들인 비견이 장림산에서 은거하며 살던 중에 성을 임(林)으로 하여 임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경기도 팽성에 동도한 임팔급이 이 비견의 후손이라고 한다. 시조 이후 세계를 고증할 수 없어 고려 문하시중 임견미(林堅味)의 아버지인 임언수(林彦脩)를 1세조로 하는 계통과 조선 태종조에 형조판서에 오른 임정(林整)의 증조부인 임세춘(林世春)을 1세조로 하는 두 계통이 있다. 평택 임씨는 조선시대 문과급제자 20명을 배출하였다.[1] 2015년 인구는 225,872명이다.

부안 임씨[편집]

부안 임씨(扶安 林氏)는 전라북도 부안군을 본관으로 한다. 시조 임계미(林季美)는 고려 현종 대에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고 평원부원군(平原府院君)에 봉해졌고, 후에 보안백(保安伯)에 봉해졌다. 9대손 임숙(林淑)은 고려시대 순성보절좌리공신(純誠輔絶佐理功臣)와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에 올랐고 보안백(保安伯)에 봉해졌고 그를 중시조로 세계를 이어왔다. 부안 임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6명을 배출하였다. 2015년 인구는 76,154명이다.

조양 임씨 / 보성 임씨[편집]

조양 임씨(兆陽 林氏)는 전라남도 보성군 조성면을 본관으로 한다. 시조 임세미(林世味)는 본래 평택임씨(平澤林氏)로서 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 임언수(林彦脩)의 넷째 아들이다. 그는 고려 말 광정대부(匡靖大夫) 이부상서(吏部尙書) 등을 역임하고 조양군(兆陽君)에 봉해졌다. 보성 임씨, 임천 임씨, 전주 임씨 등이 조양 임씨에서 분파되었다. 2000년 인구는 42,844명이다.

예천 임씨[편집]

예천 임씨(禮泉 林氏)는 경상북도 예천군을 본관으로 한다. 시조 임춘(林椿)은 고려 건국공신의 후예로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할아버지 중간(仲幹)과 상서(尙書)를 지낸 아버지 광비(光庇)의 아들로, 20세 전후에 무신란으로 가족을 이끌고 수도 개경에서 예천군 천서리(川西里)로 피신하여 예천임씨의 시조가 되었다. 임춘의 아들 충세(忠世)가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역임하였다고 한다. 2015년 인구는 66,492명이다.

은진 임씨[편집]

은진 임씨(恩津林氏)는 충청남도 논산시를 본관으로 한다. 시조는 임자미(林自美)로서 고려 숙종 대의 인물이다. 본래 평택 임씨였으나 시진군(市津君)(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에 봉해져 이를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기세조는 고려시대 조청랑(朝請郞), 태상박사(太常博士)를 지낸 임성근이다. 2015년 인구는 11,451명이다.

순창 임씨[편집]

순창 임씨(淳昌 林氏)는 전라북도 순창군을 본관으로 한다. 시조 임중연(仲沇)은 고려 충숙왕 때 우상시, 밀직부사, 첨의찬성사가 되어 순창군에 봉해졌으며 왕을 대신하여 동정성(東征省)을 다스렸다고 한다. 2000년 인구는 937명이다.

울진 임씨[편집]

울진 임씨(蔚珍林氏)는 경상북도 울진군을 본관으로 하다. 시조 임우(林祐)는 1214년(고려 고종 원년) 등과하여 은천광록대부 중부상서를 지냈으며, 채읍으로 울진군에 봉해졌다고 한다. 임우의 첫째 아들인 임이직의 후손들은 울진파를 구성하고 있고, 차남인 임상직의 후손들은 고성파를 구성하고 있다. 2015년 인구는 4,996가구 23,782명이다.

길안 임씨[편집]

길안 임씨(吉安林氏)는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을 본관으로 한다. 《고려사》에 의하면 임박(林樸, 1327년 ~ 1376년)이 1360년(공민왕 9) 과거에 급제하고, 홍건적에게 개경이 함락되자 사적(史籍)·예서(禮書) 등을 땅에 묻어 보전했으며, 성균좨주(成均祭酒)와 대사성(大司成) 등을 지냈다.

조선 중기 이정귀(李廷龜)가 서문을 쓴 해서지방(海西地方)의 《명위보(明衛譜)》에서 의하면, 시조 임동방(林彤芳)은 신라 개국공신 28인 중 1명이고, 중조(中祖)는 복성군(福城君) 임세(林世)이며, 55세손 임박(林樸) 이후 진사공파(進士公派; 開城)와 사직공파(司直公派; 靑松)로 분파되었다고 한다. 임박(樸)의 아들 조가 고려 말 북원(北元)과 국교를 반대하다 유배된 후 가세가 기우러져 조선조에는 뚜렷한 인물을 배출하지 못하였다. 2015년 인구는 길안 임씨 374명, 안동 임씨 7,431명이다.

맡을 임 任[편집]

임(任)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조사에서 191,261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43위이다. 본관은 풍천(豊川), 장흥(長興) 등이 있다. 두음법칙이 적용되는 림(林)씨와 달리 본래 발음이 (任)이기 때문에 영문 표기는 "Im" 또는 "Yim"으로 한다.

장흥 임씨[편집]

장흥 임씨(長興 任氏)는 전라남도 장흥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고려 예종조에 평장사(平章事)에 오른 임의(任懿)의 아버지 임호(任顥)를 시조로 한다.[2] 임의의 아들 임원후(任元厚)는 고려 인종의 왕비인 공예왕후의 아버지로 고려 의종문하시중을 지냈으며, 정안부원군에 봉해졌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는 8명이다.[3] 2015년 인구는 장흥 임씨 32,198명, 관산 임씨(冠山 任氏) 5,386명이다.

풍천 임씨[편집]

풍천 임씨(豊川 任氏)는 황해도 풍천군을 관향으로 한다. 시조 임온(任溫)의 6세손 임주(任澍)가 고려 충렬왕 때 어사대부, 감문위대장군(監門衛大將軍)을 역임하였다. 임주의 아들 삼사판사 임자송(任子松)과 민부전서 임자순(任子順)의 두 갈래로 크게 나뉜다. 풍천 임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는 155명을 배출하였다. 2015년 인구는 143,881명이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