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성씨)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任) 또는 (林)씨는 중국과 한국의 성씨이다.

수풀 림 林[편집]

림(林)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237,145가구, 762,767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10위이다. 본관은 나주(羅州), 평택(平澤), 부안(扶安), 조양(兆陽), 울진(蔚珍), 은진(恩津), 장흥(長興), 보성(寶城) 등 90본이 있다. 인구는 나주 임씨가 236,877명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평택 임씨 210,089명, 부안 임씨 63,589명, 예천 임씨 58,403명, 조양 임씨 31,924명, 울진 임씨 15,334명, 강릉 임씨 14,303명 순이다. 임씨는 크게 고려 대장군 임비를 시조로 하는 나주 임씨와 당에서 동래하여 신라에서 이부상서를 역임한 임팔급(林八及)을 시조로 하는 평택 임씨로 나뉘어진다. 나주 임씨를 제외한 대부분의 임씨는 평택 임씨에서 분관된 것으로 보인다. '임'이라는 발음은 두음법칙이 적용된 발음으로, 원래 발음은 (林)이기 때문에 영문 표기는 "Lim"으로 표기한다.

나주 임씨[편집]

나주 임씨(羅州 林氏)는 전라남도 나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시조는 고려의 대장군 임비(林庇)이다. 임비(林庇)는 1281년(충렬왕 7년) 왕과 함께 원나라에 다녀온 공으로 시종보좌공신 2등에 책록되고 대장군, 충청도 도지휘사 판재사사에 이르렀다. 임비의 9세손 임탁이 해남 현무를 지내다가 이성계조선을 개국하자 관직을 버리고 회진으로 돌아가 살면서 본관을 회진(會津)으로 하였으나, 회진현이 나주에 속해짐에 따라 본관을 나주로 바꾸었다. 2000년 인구는 73,556가구, 236,877명이다.

평택 임씨[편집]

평택 임씨(平澤林氏)는 경기도 평택시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시조 임팔급(林八及)은 당나라 사람으로 840~900년경에 신라에 와서 이부상서를 역임하고 팽성에 살았다고 한다. 태시조로 상나라 말기 사람 비간(比干)이 전해지는데, 비간의 아들인 비견이 장림산에서 은거하며 살던 중에 성을 임(林)으로 하여 임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경기도 팽성에 동도한 임팔급이 이 비견의 후손이라고 한다. 시조 이후 세계를 알 수 없어, 고려 말 세자전객령(世子典客令) 겸 연희궁부사(延禧宮副使)를 지낸 임세춘(林世春)을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는 전객령계(典客令系)와, 역시 고려 말에 삼중대광(三重大匡) 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이 된 임언수(林彦脩)를 1세조로 하는 충정공계(忠貞公系)로 나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조선시대 문과급제자 20명을 배출하였다.[1] 2000년 인구는 65,015가구, 210,089명이다.

부안 임씨[편집]

부안 임씨(扶安 林氏)는 전라북도 부안군을 본관으로 한다. 시조 임계미(林季美)는 고려 현종 대에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고 평원부원군(平原府院君)에 봉해졌고, 후에 보안백(保安伯)에 봉해졌다. 9대손 임숙(林淑)은 고려시대 순성보절좌리공신(純誠輔絶佐理功臣)와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에 올랐고 보안백(保安伯)에 봉해졌고 그를 중시조로 세계를 이어왔다. 부안 임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6명을 배출하였다. 2000년 인구는 63,589명이다.

은진 임씨[편집]

은진 임씨(恩津林氏)는 충청남도 논산시를 본관으로 한다. 시조는 임자미(林自美)로서 고려 숙종 대의 인물이다. 본래 평택 임씨였으나 시진군(市津君)(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에 봉해져 이를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기세조는 고려시대 조청랑(朝請郞), 태상박사(太常博士)를 지낸 임성근이다.

순창 임씨[편집]

순창 임씨(淳昌 林氏)는 전라북도 순창군을 본관으로 한다. 시조 임중연(仲沇)은 고려 충숙왕 때 우상시, 밀직부사, 첨의찬성사가 되어 순창군에 봉해졌으며 왕을 대신하여 동정성(東征省)을 다스렸다고 한다. 2000년 인구는 937명이다.

조양 임씨 / 보성 임씨[편집]

조양 임씨(兆陽 林氏)는 전라남도 보성군 조성면을 본관으로 한다. 시조 임세미(林世味)는 본래 평택임씨(平澤林氏)로서 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 임언수(林彦脩)의 넷째 아들이다. 그는 고려 말 광정대부(匡靖大夫) 이부상서(吏部尙書) 등을 역임하고 조양군(兆陽君)에 봉해졌다. 보성 임씨, 임천 임씨, 전주 임씨 등이 조양 임씨에서 분파되었다. 2000년 인구는 31,924명이다.

진천 임씨[편집]

진천 임씨(鎭川林氏)의 시조 임희(林曦)는 고려 혜종의 비(妃)인 의화왕후(義和王后)의 아버지로, 벼슬이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에 오르고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으로 상산백(象山伯)에 봉해졌다. 역사 인물로 임간은 우문관대제학(右文官大提學)과 대사성(大司成)을 역임하였으며, 임희정이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우찬성(右贊成)에 이르렀고 임지가 금자광록대부로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거쳐 추충보절동덕찬화공신(推忠保節同德贊化功臣)에 녹훈되고 후에 상장군(上將軍)에 봉해졌다. 2000년 인구는 2,823명이다.

맡길 임 任[편집]

임(任)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53,637가구에 172,726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44위이다. 본관은 풍천(豊川), 장흥(長興), 곡성(谷城) 등 8본이 있으며, 풍천 임씨장흥 임씨의 인구가 가장 많다. 림(林)씨와 달리 본래 발음이 (任)이기 때문에 영문 표기는 "Im"으로 한다. 고대 역사 인물로 백제 의자왕 때 좌평이었던 임자(任子)가 있다.

장흥 임씨[편집]

장흥 임씨(長興 任氏)씨는 전라남도 장흥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시조 임호(任灝)는 중국 소흥부 출신으로 중국에서 이부상서를 지내고 국난이 일어나자 망명하여 정안(장흥) 천관산 아래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의 아들 임의(任懿)는 고려 숙종 때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냈으며, 임의의 아들 임원후(任元厚)는 고려 인종의 왕비인 공예왕후의 아버지로 고려 의종문하시중을 지냈으며, 정안부원군에 봉해져서 본관을 장흥으로 하였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는 8명이다.[2] 2000년 인구는 7,652가구, 24,523명이다.

풍천 임씨[편집]

풍천 임씨(豊川 任氏)는 황해도 송화군 풍천면을 관향으로 하는 성씨이다. 시조는 임온(任溫)은 중국 소흥부(紹興府) 자계현(慈溪縣)에서 고려로 건너와 정착해 시원을 이루었고, 6세손 임주(任澍)에 이르기까지 황해도 풍천(豊川)에서 살게 되면서 풍천 임씨가 비롯되었다고 하나, 현재 전해지고 있는 임도(任徒)‧임천유(任天裕)의 비석과 지석에는 임주의 세계가 정확히 기록되어 있고 경주 불국사에 소장된 『경상도선생안(慶尙道先生案)』에도 그 선조가 중국에서 왔다는 기록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에 후대에 모화사상의 영향으로 시조가 중국에서 동래한 인물로 날조된 것으로 보인다. 6세손 임주(任澍)는 고려 충렬왕 때 경상도안찰사(慶尙道按察使), 조봉대부(朝奉大夫), 감문위대장군(監門衛大將軍)을 지내며 가문의 기틀을 다졌다. 풍천 임씨는 임주의 아들대에서 충숙왕 때 삼사판사 임자송(子松)과 민부전서 임자순(子順)의 두 갈래로 크게 나뉜다. 풍천 임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는 155명을 배출하며, 인구 대비 최고의 과거 급제율을 보였다. 2000년 인구는 30,974가구, 99,986명이다.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