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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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禹, 于)는 중국 및 한국의 성씨이다.

하우씨 우 禹[편집]

우(禹)씨는 하나라 공족의 성씨라고 한다. 우임금의 하우씨와 관련이 있으며, 하나라에서 계출된 모금도 유(류)씨와 범(판)씨와 종성이다.

우(禹)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194,713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40위이다. 대본은 단양이며, 이외에도 예안(禮安)·영천(榮川)·강주(剛州) 등 13본이 있다.

단양 우씨(丹陽 禹氏)의 시조 우현(禹玄)은 1014년(고려 현종 5년) 진사에 급제하여 정조호장(正朝戶長)을 지냈고,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에 추증되었다.

6세손 우중대(禹仲大)가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고, 장남 우천규(禹天珪)는 남성전서(南省典書), 둘째 우천계(禹天啓)는 판서(判書), 셋째 우천석(禹天錫)은 문하시중(門下侍中), 넷째 우천우(禹天佑)는 군기윤(軍器尹), 다섯째 우천성(禹天成)은 낭장(郞將)에 올랐다.

우천규(禹天珪)의 아들 우탁(禹倬)은 성균좨주(成均祭酒)로 치사하였으며, 시호는 문희(文僖)다.

문하시중(門下侍中) 우천석(禹天錫)의 증손 우현보(禹玄寶)가 고려조에 단양부원군(丹陽府院君)에 봉해지고, 판삼사사(判三司事)에 올랐으며, 조선조에는 추충보조공신(推忠輔祚功臣)이 되었다. 우현보의 장손 우성범공양왕의 부마이다.

조선조에는 문과 급제자 35명을 배출하였다.

어조사 우 于[편집]

우(于)씨는 주요 4가지 계통이 있다. 주나라 희성, 순우(淳于)씨 계통, 북위 효문제 계통, 소수 민족 회족(아랍인), 토가족, 기타 계통이 있다. 명나라 때 관리에게 사성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우(于)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3,359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140위이다. 본관은 목천(木川) 단본이다.

조선 성종 때 지리지인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하던 당시, 목천 지방의 백제 유민들이 백제 부흥을 도모하자 우(牛; 소), 상(象; 코끼리), 돈(豚; 돼지), 장(獐; 노루) 등의 성을 내렸는데 후손들이 뒷날 우(于), 돈(頓), 상(尙), 장(張) 등으로 성을 회복하였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목천 우씨(木川 于氏) 시조 우방녕(于邦寧)은 고려 인종의종 때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지냈다.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 우방재(于邦宰)의 아들 우학유(于學儒)는 의종 때 무인으로서 이의방(李義方) 등이 반란을 모의할 때 군대를 통솔해 달라는 권유를 거절하였다가 정중부가 집권한 후 신상이 위태로웠으나 집권층인 이의방의 누이와 결혼하여 무사하였으며 1179년에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에 올랐다.[1]

우술유(于述儒)는 1186년(명종 11) 형부시랑(刑部侍郞)을 역임하고, 신종이 즉위하자 1197년 수사공 좌복야 판형부사(守司空左僕射判刑部事)가 되었으며, 1199년 중서평장사(中書平章事)로 치사(致仕)했다.

이후 우승경(于承慶)이 승진을 거듭하여 재상의 반열에 오르고 추밀원사를 거쳐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다.

기록[편집]

  • 고구려 고국천왕 때 우씨왕후는 우소(于素)의 딸이고, 서천왕 때 우씨왕후는 연나부의 대사자 우수(于漱)의 딸이다.
  •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왕이 우(羽)씨을 사성했다는 기록이 있다.
  • 고대에 는 지역에 따라 , 처럼 발음되는데 한국에서는 발음을 기초로 한자를 적는 사례가 있었다.

각주[편집]

  1. 『고려사』 권100, 열전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