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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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洪)씨는 성씨의 하나이다. 홍(洪)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558,853명으로 조사되어, 한국의 성씨 인구 순위 21위이다.

연원[편집]

중국[편집]

(洪)씨는 중국 돈황(墩煌)(감숙성 서북부)의 강씨(姜姓) 염제신농씨의 후손인 공공씨(共工氏)후손이 원수를 피해 공(共)자에 수(水)자를 붙여 홍(洪)자를 만들어 성씨(姓氏)로 삼은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크게 염제황제 계통으로 나뉘며, 후대에 5가지 계통이 추가되어, 7~8가지 계통이 된다고 한다. 그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된 홍씨는 강성(姜姓)계 돈황홍씨(墩煌洪氏)이며, 돈황홍씨 외에 후대에 나온 홍씨들은 그보다 더 이후에 등장한 것이므로 동일혈족이 아니다. 강성 돈황홍씨는 남양홍씨 당홍계의 기원으로 보고있다. 하여, 강씨와 홍씨는 먼 친척 및 혈족 관계가 된다. 그 외에 강씨에서 갈라진 성씨인 고씨(高), 노씨(盧), 여씨(呂), 구씨(丘), 방씨(方) 등 도 홍씨와 다 같은 혈족이다.

한국[편집]

(洪)씨의 본관은 남양(南陽), 풍산(豊山), 홍주(洪州), 부계(缶溪), 의성(義城), 회인(懷仁) 등이 있다.

남양 홍씨[편집]

남양은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일대의 옛 지명이다.

남양 홍씨 당홍계[편집]

남양 홍씨 당홍계의 시조는 고려 개국공신으로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를 지낸 홍은열(洪殷悅)이다.

남양홍씨 당홍계의 원류는 고대 중국의 삼황오제 염제신농씨의 후손인 공공씨(共工氏)를 기원으로 한다. 공공씨는 본성이 강씨(姜氏)이며 남양홍씨 당홍계 홍씨는 중국에서는 '돈황홍씨'(墩煌洪氏)라고 불린다. 세계 홍씨의 가장 오래된 기원이자 원류이다. 그로부터 그의 후대인 고구려 27대 왕인 영류왕 때 당나라 8학사 중 한 사람인 홍천하(洪天河)가 유학(儒學)을 가르치고 문화(文化)를 널리 개척했으며, 고구려가 망하고 삼한 통합(三韓統合)에 따라 신라(新羅) 선덕여왕(善德女王) 때 유학(儒學) 발전에 공(功)을 세워 문무왕(文武王) 때 당성백(唐城伯)에 봉해져셔 남양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후의 계대(繼代)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고려 개국공신이며 삼중대광태사인 홍은열(洪殷悅)을 기세조(起世祖)로 하여 대를 잇고 있다.[1] 2000년 인구는 117,638가구, 379,708명이다.

남양 홍씨 토홍계[편집]

남양 홍씨 토홍계의 시조는 고려 고종(1213년) 때 금오위별장을 지낸 홍선행(洪先幸)이다. 그의 선계는 문헌이 실전되어 정확하게 상고할 수 없으나, 남양(오늘날 화성시)에 대대로 살던 토착 성씨로 전해진다.[2] 2000년 인구는 9,250가구, 30,662명이다.

홍주 홍씨[편집]

홍주 홍씨(洪州 洪氏) 시조 홍규(洪規)는 홍주(洪州) 사람으로 왕건후백제를 정벌할 때 고려 개국에 공을 세우고 삼중대광(三重大匡)을 역임하였다. 홍규의 딸은 고려 태조의 제12비인 흥복원부인(興福院夫人) 홍씨(洪氏)이다. 흥복원부인은 태자(太子) 왕직(王稷)과 공주(公主) 한 명을 낳았다.[3]

사학계는 927년(태조 10년) 왕건이 후백제의 운주(運州)를 격파하였을 때 운주(運州)의 성주(城主)였던 긍준(兢俊)을 홍규와 동일인으로 해석한다.[4] 운주(運州)는 1012년(현종 3) 홍주(洪州)로 개칭되었다. 홍주 홍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4명을 배출하였다.[5] 2000년 인구는 302가구, 935명이다.

의성 홍씨[편집]

의성 홍씨(義城 洪氏) 시조 홍유(洪儒)는 고려의 개국공신으로 태사를 지냈으며, 처음 이름이 홍술(弘述)이나 고려 태조 왕건으로부터 홍(洪)이라는 성과 이름을 하사받았고, 사후 태조묘정에 배향되었다. 태조의 제26비 의성부원부인(義城府院夫人) 홍씨(洪氏)의 아버지이다. 2000년 인구는 68가구, 206명이다.

풍산 홍씨[편집]

풍산 홍씨(豊山 洪氏)의 시조 홍지경(洪之慶)은 1242년(고려 고종 29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국학직학(國學直學)을 지냈다. 시조의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면 신성포 오산당에 있다.[6] 풍산 홍씨는 조선 후기 세도 가문으로서 명성을 날렸으며, 대표적인 인물로 홍봉한, 홍인한, 홍낙성, 홍국영 등이 있다. 2000년 인구는 11,222가구, 36,420명이다.

부계 홍씨[편집]

부계 홍씨(缶溪 洪氏) 또는 부림 홍씨(缶林 洪氏)는 홍란(洪鸞)을 시조로 하고 고려 중엽 직장(直長)을 지낸 홍좌(洪佐)를 기세조로 한다. 홍좌의 10세손 홍귀달(洪貴達)이 좌참찬에 이르렀고, 홍귀달의 현손 홍호(洪鎬)가 대사간에 이르렀다. 2015년 인구는 15,301명이다.

회인 홍씨[편집]

회인 홍씨(懷仁 洪氏) 시조 홍연보(洪延甫)의 증손자 홍윤성(洪允成)이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을 도와 정난공신 2등이 되고, 예종 때에는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으며, 인산부원군(仁山府院君)에 봉해졌다.[7] 2000년 인구는 39명이다.

기타 본관[편집]

기타 홍씨[편집]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홍(烘)씨 57명, 홍(䜤)씨 38명, 홍(弘)씨 18명, 홍(㤨)씨 10명, 홍(哄)씨 9명, 홍(紅)씨 9명으로 조사되었다.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