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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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 章, 莊, 蔣)은 한국의 성씨이다.

베풀 장 張[편집]

(張)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992,721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9위이다.

남송(南宋)의 홍호(洪皓)가 엮은 〈송막기문 松漠紀聞〉에서 고구려계 국가인 발해의 유력한 귀족 성(姓)으로 (高)·(張)·(楊)·두(竇)·오(烏)·(李) 6성을 언급하였다.[1][2]

덕수 장씨절강 장씨를 제외한 나머지 본관은 대부분 고려 때 창성된 토착 성본이라는 것이 통설이며, 선계 미상의 본이 많다. 고려사에 나오는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본관은 고려 개국 전후에 등장한 흥덕 장씨이다. 인구는 시조가 각기 다른 인동 장씨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전체 장씨 성본 중에서 조선시대 가장 많은 과거 급제자를 배출한 성본은 상장군계 인동 장씨이다. 전라남도 완도군 출신의 장보고(張寶高)는 처음 이름이 궁복(弓福)이었고, 그가 당나라에 건너간 뒤에 중국식 성인 장(張)으로 성을 삼았던 사실로 볼 때, 장보고가 최초의 장(張)씨 성을 가졌던 인물로 파악된다.[3]

  • 흥덕 장씨(興德 張氏) 시조 장유(張儒)는 후백제 상질현(尙質縣 : 現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출신으로 고려 초 광평시랑(廣評侍郞)을 지냈다. 그는 후삼국 시대 난을 피하여 오월국(吳越國)으로 건너가 중국어를 배웠고, 고려 태조가 삼국을 통일한 뒤에 환국하여 고려 광종 때 예빈성(禮賓省)에 있으면서 중국 사신을 접대하는 일을 맡았다. 장유의 아들 장연우(張延祐)는 고려 현종 때 거란군이 침입해오자 왕을 호종하였고, 중추원사(中樞院事), 호부상서(戶部尙書)를 역임하였으며, 뒤에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에 추증되었다.[4] 흥덕 장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4명을 배출하였다. 문과 및 무과, 그 외 과거 급제자 모두 합해 총 38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였다.[5] 2015년 인구는 흥덕 장씨 37,423명, 흥성 장씨 21,973명으로 총 59,396명이다.
  • 안동 장씨(安東 張氏) 시조 장정필(張貞弼)은 고려 태조를 도와 고창군에서 견훤을 토벌하여 병산대첩의 전공을 세워 삼중대광보사벽상공신 태사에 오르고 고창군에 봉해졌다. 안동 장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4명을 배출하였다. 문과 및 무과, 그 외 과거 급제자 모두 합해 총 71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였다.[6] 2015년 인구는 39,939명이다.
  • 인동 장씨(仁同 張氏)는 고려 때 만든 성본으로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는 상장군계 인동 장씨장계(張桂)계를 시조로 하는 직제학계 인동 장씨가 있다. 2015년 인구는 666,652명이다. 그 중 상장군계 인동 장씨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상장군계 인동 장씨의 시조 장금용(張金用)은 고려 초 삼중대광(三重大匡) 신호위상장군(神虎衛上將軍)을 역임했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50명을 배출하였다. 문과 및 무과, 그 외 과거 급제자 모두 합해 총 409명의 과거 급제자와 음서제 출신 음관 104명를 배출하였다.[7] 옥산화벌(玉山華閥)로 알려져 있다.[8]
    • 직제학계 인동 장씨의 시조 장계(張桂)는 고려 충렬왕 때 진현전직제학(進賢殿直提學)을 거쳐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에 이르렀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7명을 배출하였다. 문과 및 무과, 그 외 과거 급제자 모두 합해 총 31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였다.[9]
  • 목천 장씨(木川 張氏) 시조 장빈(張彬)은 고려 때 목천군(木川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하던 당시, 백제 유민들이 순응하지 않고 백제 재건운동을 벌이자 왕건이 이 지방민에게 우(牛; 소), 상(象; 코끼리), 돈(豚; 돼지), 장(獐; 노루) 등의 성을 주었는데 후손들이 뒷날 우(于), 상(尙), 돈(頓), 장(張)으로 성씨를 바꾸었다고 한다. 고려시대 인물로 장윤문(張允文), 조선시대 무신으로 장윤(張潤)이 있다. 2015년 인구는 15,740명이다.
  • 결성 장씨(結城 張氏) 시조 장갑(張甲)은 고려 때 호장으로 그의 증손 장하(張夏)가 고려 말기 한성판윤을 지내고 결성군에 봉해졌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5명을 배출하였다. 문과 및 무과, 그 외 과거 급제자 모두 합해 총 74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2015년 인구는 24,921명이다.
  • 단양 장씨(丹陽 張氏) 시조 장순익(張順翼)은 고려 때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냈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3명을 배출하였다. 문과 및 무과, 그 외 과거 급제자 모두 합해 총 68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2015년 인구는 44,334명이다.
  • 구례 장씨(求禮 張氏) 시조 장악(張岳)은 고려 인종(仁宗)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봉성군(鳳城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2015년 인구는 구례 장씨 15,571명, 봉성 장씨 1,670명이다.
  • 덕수 장씨(德水 張氏) 시조 장순룡(張舜龍)은 본래 위구르계 사람으로 고려 충렬왕고려에 귀화하여 첨의참리(僉議參理),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등을 지내고 덕성부원군(德城府院君)에 봉해졌다. 덕수 장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3명을 배출하였다. 2015년 인구는 24,185명이다.
  • 태원 장씨(太元 張氏) 시조 장문한(張文翰)은 조선 명종 21년(1566년)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거창현감(居昌縣監)을 지냈다.
  • 절강 장씨(浙江 張氏) 시조 장해빈(張海濱)은 조선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명나라 유격장군 오유충(吳惟忠)의 휘하 병사로 조선에 왔다가 울산의 증성(甑城) 싸움에서 유탄을 맞아 귀국하지 못하고 군위에 정착하여 살았다고 전한다. 2015년 인구는 3,987명이다.

줄 장 蔣[편집]

(蔣)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21,508명으로 조사되었다.

아산 장씨(牙山 蔣氏)의 시조 장서(蔣壻)는 송나라의 신경위대장군으로, 금나라의 침입을 당하게 되자 고려 예종고려에 망명하여 아산을 본관으로 하였다고 한다.[10]

인물로는 조선 세종 때 과학자인 장영실(蔣英實), 소설가 장정일(蔣正一)이 있다.

글 장 章[편집]

장씨(章氏)는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왕 강태공의 후손이며, 춘추시대 장국(鄣國)의 국성이다. 장국(鄣國)은 제나라 왕족인 장 목공(鄣 穆公) 강호(姜虎)가 세운 제나라 제후 국가이다.

장국의 개국군주 강호(姜虎)를 시작으로 14대 동안 이어져 왔으며, 후손들이 鄣의 우부방을 떼고 장씨(章氏)를 성씨로 삼았다. 즉, 장씨(章氏)는 강씨(姜氏)에서 갈라져 나온 성씨이다.

거창장씨(居昌 章氏)의 시조 장종행(章宗行:忠獻公)은 장국(鄣國) 왕실의 후손으로, 중국 송(宋)나라 건주(建州) 사람으로 고려에 귀화하였는데, 충렬왕 때 봉익대부(奉翊大夫)·판도판서(版圖判書)·예문관대제학 겸 춘추관사(藝文館大提學兼春秋館事)를 지냈고 안향(安珦)의 사위로 장씨보(章氏譜)에 기록되어 있다. 그의 아들 두민(斗民)은 충숙왕 때 광정대부 판삼사사(匡靖大夫判三司事)를 지냈으며, 충혜왕이 원(元)나라에 갈 때 배행하였고, 공민왕 때에는 상장군이 되어 홍건적을 물리치고 아림군(我林君)이 되었다.

장(章)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5,764명으로 조사되었다.

씩씩할 장 莊[편집]

(莊)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445명으로 조사되었다.

  • 금천 장씨(衿川 莊氏)의 시조 장보(莊甫)는 고려 명종 때 무신으로 병부원외랑을 지내다가 거제현감으로 좌천되어 후에 귀양가서 졸하였다고 한다. 1세조 장숙(莊俶)은 조선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황해도 토산현감(兎山縣監)을 지냈다. 2015년 인구는 217명이다.
  • 전주 장씨(全州 莊氏)는 장석황(莊錫滉)이 1882년(고종 19년) 문과에 급제하였는데, 『국조방목(國朝榜目)』에 거주지가 평양(平壤)으로 되어 있다. 2015년 인구는 20명이다.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