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 (성씨)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렴(廉, 閻)씨는 중국 및 한국의 성씨이다. 염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69,387명으로 조사되었다.

청렴할 렴 廉[편집]

중국의 렴(廉)씨는 초나라, 위구르족 계통이 있다.

한국의 염(廉)씨의 득성조(得姓祖)는 염사치이다. 《위략(魏略)》과 《해동역사(海東繹史)》에 근거하면 서기 25년경 진한(辰韓)의 우거수(右渠帥)였던 염사치가 살기 좋다고 하는 낙랑(樂浪)으로 무리를 이끌고 이주한 후 공을 세워 성씨와 관모(冠帽) 및 전택(田宅)을 하사 받았다. 후한서를 상고하면 건무중(서기25~55년)에 한의 염사 사람 소마시가 래헌하니 광무(서기24년)가 염사읍의 군에 봉하고 염사는 본래 읍명이었는데 이로 성을 삼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파주 염씨[편집]

파주 염씨(坡州 廉氏)의 시조 염형명(廉邢明)은 고려 태조 왕건의 후삼국 통일에 공을 세워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에 책봉되고 대사도(大司徒)를 지냈다.

2세손인 염위(廉位)가 군기승(軍器丞), 3세손인 염가칭(廉可偁)이 병마사(兵馬使), 4세손인 염현(廉顯)이 우보궐(右補闕), 5세손 염한(廉漢)이 병부상서, 6세손인 염덕방(廉德方) 태부소경(太府少卿), 7세손인 염신약(廉信若)이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오르면서 고려시대에 문벌 귀족으로 성장하였다.

염형명의 13대손인 염제신(廉悌臣)이 고려 충목왕 때 도첨의평리 및 찬성사를 지내고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에 봉해졌다. 염제신의 아들 염흥방도 재상을 지냈다.

본관은 봉성(峰城)으로 하였다가 곡성(曲城)으로 개관하였으나 곡성현이 서원(瑞原)으로 개칭됨에 따라 서원(瑞原)을 본관으로 삼았고, 조선 연산군 때 서원(瑞原)이 파주(坡州)로 개칭되어, 파주를 관향으로 하게 되었다.

마을 염 閻[편집]

염(閻)씨는 주나라 계통이라고 한다.

한국 염(閻)씨는 문헌에 신라 신무왕 때 장수 염장(閻長)과 고려(高麗) 태조(太祖) 원년에 의형대령(義刑臺令)을 지낸 염장(閻長)이 기록되어 있다. 출신은 확실하지 않다.

기타 염씨[편집]

염사치(廉斯鑡)는 염씨가 아니고 진한 토착인으로 염사(염사지역) 치(우두머리)을 줄인 별칭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염지(念之)는 조선시대 한국에 귀화한 항왜이다. 정유재란 무렵 항왜들은 조선에서 성을 사성받거나, 새로운 성을 취하는 경우가 있었다. 어떤 성으로 변성했는지 전하지 않는데, 염(念)씨는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성이다.

인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