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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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씨는 중국과 한국의 성씨이다. 한국, 중국, 베트남 등 동아시아와 북미 등에 약 2941만명이 있다.

중국의 황씨[편집]

황(黃)씨는 고대로부터 유래된 성씨로 삼황오제(三皇五帝)시대로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전욱고양씨(顓頊高陽氏)는 황제(黃帝)의 손자이다. 전욱고양씨(顓頊高陽氏)가 칭(称)을 낳고 칭은 권장(卷章)을 낳았다. 권장(卷章)의 아들 중려(重黎)는 제곡고신씨(帝嚳高辛氏)때 화정(火正)의 벼슬에 맡았고 축융(祝融)이라고도 불렸다. 중려(重黎)가 공공씨(共工氏)의 반란을 소탕하지 못하여 그 벌로 죽자 중려(重黎)의 동생 오회(吳回)가 그 후임을 맡았다. 오회(吳回)가 육종(陆终)을 낳았는데 이 육종(陆终)의 아들이 혜련(惠连)이다. 요순(堯舜)시대에 요제(堯帝, 요임금)는 혜련(惠连)에게 홍수를 다스리게 한다. 홍수를 다스린 공으로 혜련(惠连)에게 삼호(参胡)지역을 상으로 준다. 삼호(参胡)지역은 현재의 분양(汾阳)으로 산서성(山西省) 서부 태원(太原) 분지 서단의 도시이다. 이 일은 요제(堯帝)가 다스린지 96년째 통치시기에 있었던 일이다. 요제는 삼호의 지명을 황나라(黃國)로 바꾸고, 혜련(惠连)에게 황운(黃云)이라는 성과 이름을 하사하였다.

한국의 황씨[편집]

황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697,171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16위이다.

  • 장수 황씨(長水黃氏) 시조 황경(黃瓊)은 통일신라 경순왕의 부마로 시중을 지냈다. 1세조 황석부의 증손자 황희(黃喜)가 조선 세종영의정에 올랐다. 2015년 인구는 170,988명이다.
  • 평해 황씨(平海黃氏)는 고려 때 금오위장군 태자검교를 지낸 황온인(黃溫仁)을 1세조로 한다. 5세손 황희석이 조선개국공신 2등에 올랐다. 2015년 인구는 168,374명이다.
  • 창원 황씨(昌原黃氏)는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를 지낸 회산군(會山君) 황석기(黃石奇)를 파조로 하는 공희공파(恭僖公派), 시중을 역임한 황충준(黃忠俊)을 파조로 하는 시중공계, 황양충(黃亮沖)을 파조로 하는 호장공계의 3파가 있다. 2015년 인구는 271,986명이다.
  • 우주 황씨(紆州黃氏) 시조 황민보(黃旻甫)는 우주에 토착한 사족의 후손으로 중윤(中尹)에 추증되었고, 그의 아들 황공세(黃公世)는 검교신호위대장을 역임한 후 우주에 세거하였다. 우주는 전라북도 완주군의 옛 지명이다. 10세손 황거중(黃居中)이 조선개국 원공공신으로 공조전서를 역임하였다. 황헌(黃憲)은 1548년(명종 3) 우의정에 올라 위사공신(衛社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2015년 인구는 25,335명이다.
  • 회덕 황씨(懷德黃氏) 시조 황윤보(黃允寶)는 고려 때 지문성부사를 거쳐 호부전서에 이르렀고 좌명공신으로 회천군에 봉해졌다. 시조 묘는 대전광역시에 있다. 4세손 황자후(黃子厚)가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중추원사(中樞院使)에 이르렀고, 황자후의 아들 황유(黃裕)는 조선 태종의 서녀 숙안옹주(淑安翁主)의 부마로 회천위(懷川尉)에 올랐다. 2015년 인구는 8,385명이다.
  • 황주 황씨(黃州 黃氏) 황주량(黃周亮)이 1004년(목종 7)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시어사(侍御史)·어사중승(御史中丞)·호부상서 등을 거쳐 1034년(덕종 3)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임명되고, 참지정사(參知政事)·문하시랑평장(門下侍郎平章事)를 역임하였다. 1043년(정종 9) 추충진절문덕광국공신(推忠盡節文德匡國功臣)으로 특진, 수태보 겸문하시중 판상서이부사의 지위에 올랐다. 한림원과 사관(史館)의 요직을 역임하며 세 차례나 지공거(知貢擧)를 맡기도 하였고, 거란과의 전쟁 후에는 『칠대실록(七代實錄)』36권을 주관하여 편찬하였다. 상서좌승(尙書左丞)으로 재임시 이가도(李可道) 등을 도와 개경에 나성(羅城)을 쌓았다. 사후 정종묘정(靖宗廟庭)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경문(景文)이다. 황주량 이후 세계를 알 수 없어, 조선(朝鮮)시대 부사(府使)를 역임한 황응성(黃應星)을 1세조로 한다.
  • 제안 황씨(齊安黃氏) 시조 황을구(黃乙耉)가 고려조에서 문과에 급제하여 소윤과 이조 참의를 역임한 후 제안군에 봉해졌다. 2015년 인구는 3,098명이다.
  • 상주 황씨(尙州黃氏) 시조 황석주(黃石柱)가 고려 때 시중(侍中)을 지내고 4세손 황을구(黃乙具)가 소윤(少尹)을 지내고 상주(尙州)에 거주하기 시작하여 상주를 본관으로 하였다. 7세손 황효원(黃孝元)이 좌익공신(佐翼功臣) 3등에 책록되었고, 1457년 상산군(商山君)에 봉해졌으며, 1470년(성종 1) 우참찬에 이르렀다. 2015년 인구는 7,685명이다.
  • 덕산 황씨(德山黃氏) 시조 황언필(黃彦弼)이 고려조에 도첨의정승을 지내고 덕풍군에 봉해졌다. 상계가 실전되어 장흥고사를 지낸 황재(黃載)를 1세조로 하여 계대하고 있다. 2015년 인구는 3,857명이다.
  • 항주 황씨(杭州黃氏) 시조 황공(黃功)은 명(明)나라 항주(杭州) 출신으로서 기산 지휘사ㆍ중도유수 등을 지내고, 1645년(인조 23) 명나라가 망하자 심양에서 소현세자와 함께 조선에 귀화했다. 그후 후손들은 경기도(京畿道) 가평군 하면 마일리에 정착 세거하면서 선조의 출신인 항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2015년 인구는 156명이다.

인물[편집]

역사 인물[편집]

근현대 인물[편집]

함께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