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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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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嚴)은 중국한국의 성씨이다.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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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嚴)씨는 중국 백가성 제27위이다.

후한 광무제의 친구였던 엄광(嚴光; 엄자릉(嚴子陵))은 회계(會稽) 여요(餘姚; 현 절강성(浙江省) 위야오시(余姚市)) 출신이며 장(莊)씨였는데,[1] 광무제가 집권한 뒤에 관직을 거절하고 초야에 묻혀 살자 광무제는 장광을 그리워하여 그의 아들 이름을 유장(劉莊)이라고 지었다. 명제가 집권한 뒤 황제의 이름을 피휘하여 엄(嚴)씨로 바꾸게 하였다.

전국시대 한나라 대신 엄수(嚴遂)는 양나라 출신이다. 전한 무제 때 문인 엄조(嚴助) 등이 있다. 그 외 소수민족 시버족, 투족, 이족에서도 나타난다.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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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嚴)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144,425명으로 조사되어 성씨 인구 순위 50위이다.

영월 엄씨(寧越 嚴氏)의 시조 엄림의(嚴林義)는 당 현종 때 파락사(波樂使)로서 고려에 동래하여 내성군(奈城郡)에 안주하였다고 한다. 그의 아들 엄태인(嚴太仁)은 영월에 살면서 군기공파(軍器公派), 엄덕인(嚴德仁)은 한양으로 이주하여 복야공파, 엄처인(嚴處仁)은 함경도로 이주하여 문과공파조(文科公派祖)가 되었다.

고려조에 엄수안(嚴守安)이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에 이르렀고,[2] 엄공근(嚴公瑾)은 판전의시사(判典儀寺事) 보문각제학(寶文閣提學)을 역임하였다.

11세 엄유온(嚴有溫)이 조선의 개국공신으로서 좌군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를 역임하였고, 그의 증손녀가 성종의 후궁인 귀인 엄씨이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30명을 배출하였다. 16세 엄흔(嚴昕)이 중종 때 홍문관전한(典翰)을 지냈고, 엄흔의 현손인 엄집(嚴緝)은 숙종 때 우참찬(右參贊)에 이르렀다. 엄집의 손자 엄숙(嚴璹)이 영조 때 대사헌(大司憲)에 올랐고, 엄숙의 손자 엄도(嚴燾)는 순조 때 대사간(大司諫)을 역임하였다. 25세 엄석정(嚴錫鼎)은 고종 때 이조판서를 지냈다. 엄진삼(嚴鎭三)의 딸이 고종 후궁 순헌황귀비(純獻皇貴妃)가 되었고, 엄귀비의 아들이 황태자가 된 영친왕(英親王)이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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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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