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토론:Knight2000/지난 토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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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군 문서에 의견을 구합니다.

토론:한사군#불필요한 내용이 너무 많습니다.에 좋은 의견 부탁드립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1월 2일 (금) 18:10 (KST)[답변]

의병

의병 문서에 기여하신 내용 가운데 임진왜란 시기의 의병에 대한 다음의 서술에 대한 출처를 표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 의병은 농민이 주축을 이루었으나, 그들을 조직하고 지도한 것은 전직 관료와 사림 그리고 승려들이었다. 의병의 신분 구성이 다양하듯이 사상적 기반도 다양하였지만, 유교의 충의정신이 핵심을 이루고 있었다. 유교를 발전시킨 것이 국방을 소홀히 한 점도 있지만, 그 대신 국민들의 충성심을 배양하여 그 저력이 서서히 드러나게 된 것이다. 또한, 한국은 예로부터 향촌 공동체가 향토 방위를 떠맡아 온 오랜 전통이 있기 때문에 의병 부대의 조직은 매우 수월하였다.
  • 위 서술의 사실 여부를 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출처가 있는 문서를 원하는 것이니 양해 바랍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Jjw (토론) 2009년 1월 8일 (목) 21:10 (KST)[답변]

예. 글로벌백과이며, 지금 표시하겠습니다. --Knight2000 (토론) 2009년 1월 8일 (목) 21:23 (KST)[답변]

박팽년과 근빈박씨의 본관.

박팽년의 본관이 순천이라고 하고, 근빈의 본관은 선산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박팽년의 본관이야 '박팽년' 으로만 검색을 해도 여느 웹 문서 등지에서 바로 찾을 수 있으니, 이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틀린 것은 아닐 듯 합니다.

문제는 근빈의 본관인데, 경기도 양주에 있는 근빈의 묘소 비석에 '선산(善山)' 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습니다.(네이버 지식in을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만, 정확한 사진까지 게재되어 있어 링크로 걸어봅니다. [1] 그 외에도, 근빈의 그 소생인 덕원군의 후손이 근빈에 대해 제향을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2] 여기서 맨 위의 사진을 보면 정확히 '근빈선산박씨' 라는 글자가 눈에 띕니다. 또,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의 '덕원군' 페이지를 보면 '근빈 선산 박씨의 소생' 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둘이 누이간이라는 설이 생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나 순천과 선산 둘 중 어떤 본관이 분파가 되었거나, 아니면 근빈 박씨가 박팽년의 죄에 대해 연좌를 피하기 위해 본관을 바꿨던가 해야 할텐데.. 둘이 누이간이라는 것에 대해 정확한 증거자료도 없고, (실록에도 검색이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검색 능력이 부족한 점이 없지 않습니다만..;) 박은봉 이라는 사람이 지은 책에, 세조가 '결혼한 여자는 연좌하지 말라.' 라는 식으로 말을 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세조는 죽은 사육신의 처첩들을 비롯, 혈연관계에 있는 여성들을 모두 산간오지의 노비로 삼으라는 전교도 한 바가 있습니다. (링크가 잘못되어 지우고,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 상에서 검색할 수 있는 날짜를 첨부합니다. 1456년 (세조 2년) 6월 7일 2번째 기사, '이미 죽은 박팽년·유성원·허조와 연좌된 자들의 처벌규정을 정하다' 에서 참고했습니다.)

이렇게 여러 정황상으로 볼 때, 둘이 남매 사이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보다는, 그렇지 않음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더욱 많은 듯 한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보시고 의견 이야기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소심자 (토론) 2009년 1월 22일 (목) 00:59 (KST)[답변]

예. 고맙습니다. 책 저자에게 연락을 해서 고치도록 해야겠네요. 그리고 순천 박씨와 선산 박씨는 제가 조사했습니다. 박씨의 유래 문서에 보면, 선산 박씨신라 경명왕의 첫째 아들 박언침(밀성대군) 의 22세손 박선민(朴善敏)으로부터 분파했고, 순천 박씨는 신라 경명왕의 일곱째 아들 박언지(강남대군)의 아들인 박영규(朴英規)로부터 유래합니다. 박영규는 또는 견훤의 사위이기도 하죠. 신라 경명왕으로부터 분파했지만, 이미 수백년 전의 일이라 그 둘이 다시 합계되었다고 볼 근거는 없고, 또한 동기간으로 볼 근거는 더욱 없다고 봐야겠네요. --Knight2000 (토론) 2009년 1월 22일 (목) 08:10 (KST)[답변]
박씨의 유래에 대해서 잘 보았습니다. 두 사람이 남매라는 이야기가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인지, 그것에 대해서도 문득 궁금해집니다. 계속해서 찾아보고 싶네요. 좋은 정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즐거운 명절 보내시길 바랍니다.^^--소심자 (토론) 2009년 1월 23일 (금) 00:31 (KST)[답변]

네이버봇

네이버 측에서 로봇 규약을 어긴 경우가 있다면 e-mail 등으로 알려주실 수 있는지요? -- ChongDae (토론) 2009년 2월 4일 (수) 21:11 (KST)[답변]

http://offree.net/entry/Legend-of-Naver ← 이 페이지에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네이버 봇에 대해서는 거론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과 e-mail 등을 주고 받은 기록은 현재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런 통신을 하면 할수록 제가 비정상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기록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그들은 사람을 바보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Knight2000 (토론) 2009년 2월 4일 (수) 21:16 (KST)[답변]
블로그의 수집은 html 문서가 아닌 rss를 통해서도 이루어집니다. rss를 통한 수집의 경우에는 META tag 내용이 전달되지 않으므로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로봇 규약이라고 하면 robots.txt를 말합니다. meta tag는 검색 엔진에 따라 적용 유무가 다릅니다. 어쨌든 수정은 건의하겠습니다. -- ChongDae (토론) 2009년 2월 5일 (목) 10:27 (KST)[답변]
robots.txt 문서는 로봇 규약 가운데 일부일 뿐입니다. robots.txt는 사이트 하나에 1개만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http://www.abc.com/ 사이트와 http://www.abc.com/~xyz 페이지는 동일한 robots.txt의 적용을 받게 되죠. 이때 http://www.abc.com/~xyz에서 로봇 규약을 따로 정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 경우에 이용할 수 있는 것이 메타 태그입니다. --Knight2000 (토론) 2009년 2월 5일 (목) 19:52 (KST)[답변]

토론:다섯 Sola

중립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다만 Sola 자체에 대해 설명이 있다고 하지만, 그에 대해 다른 한국어 용어를 취할 수도 있음에도 원어를 그래도 남기고 있기에 문제 제기를 할 뿐입니다. 아니 그저 Sola에 대한 명시적인 설명만이라도 부탁드립니다. (역시 답변 남깁니다.) --Knight2000 (토론) 2009년 2월 7일 (토) 18:51 (KST)[답변]
유독 기독교 문서만 원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독교 문서가 아닌 경우에는 컴퓨터 과학의 약어(GNU 등)의 경우, 클럽이나 연예 그룹의 이름 등(H.O.T. 등)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름에서는 (1) 한글 대치어가 없거나 (2) 적절한 번역어가 없기 때문에 그러한 로마자 이름을 남기고 있습니다. 또한 알맞은 한글 발음이 있다면 핑클의 경우처럼 그 연예 그룹의 원래 이름(Fin.K.L)이 아닌 한글 발음대로 적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기독교 문서에서는 LXX와 같은 표현이 문서 안에 버젓이, 그것도 상당히 자주 쓰이어 일반인의 해독을 저해하고 있고(제 생각에는 LXX를 70으로 해독할 수 있는 일반인이 몇 명이나 될는지에 의문을 가집니다.), Sola의 경우는 “솔라”라는 음차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학계에서 원어를 쓴다”라는 이유로 원어를 고집합니다. 위의 GNU처럼 “GNU는 유닉스가 아니다.”와 같이 원어나 번역어나 모두 GNU로 시작해야 하므로 그냥 GNU로 표제어로 삼는 쪽이 낫다는 이유라면 이해하겠습니다. 아니면 동양사 역사학계에서는 한자를 많이 쓰므로 한자를 표제어로 삼겠다고 하면 어떨까요? 지금 기독교 관련 문서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역사학계에서 자주 쓰는 한자를 표제어로 삼겠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Knight2000 (토론) 2009년 2월 10일 (화) 17:29 (KST)[답변]

김운회에 관한 질문

한국사를 주로 편집하시니 아마 김운회 동양대 교수[1]에 대해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역사를 공부하고는 있으나 주로 서양사고, 한국사는 근현대사에 한정되어 있어 그 이전은 학부 1년생보다 딱히 나을 것이 없습니다. 김운회 교수의 경우, 제가 몇 번 편집의 근거로 삼은 박영규와 달리 '재야사학자'는 아니지만, 많은 주장이 저로서는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이 분의 주장들이 신빙성 있고 어느정도 인정받는 주장인지 아니면 허점과 오류 투성이인지 잘 판단이 되지 않습니다. 나이트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adidas (토론) 2009년 2월 9일 (월) 06:25 (KST)[답변]

김운회 교수는 재야사학의 주장을 받아들인 몇 안 되는 강당사학자입니다. 그 의견의 신빙성은 반반입니다. 예컨대 흉노가 한민족과 같은 민족(소위 ‘쥬신’)이라는 주장 등은 설득력을 얻기 힘들지만, 흉노가 한나라보다 훨씬 넓은 영역을 차지한 강대국이었다는 주장 등은 학계에서 정설로 인정받고 있습니다(실제로 흉노는 전한 초에는 한나라로부터 조공을 받았습니다.). 사안에 따라 각각 달라지므로 뭐라 꼬집어 이야기하기는 곤란합니다. 특히 쥬신에 관해서는 한족(중화)을 제외한 몽골리안 전반을 다루므로, 광의의 민족 개념을 대입하면 옳지만, 김운회 교수처럼 협의의 민족 개념에 대입할 경우에는 옳다고 보기 힘듭니다. --Knight2000 (토론) 2009년 2월 9일 (월) 12:40 (KST)[답변]
예전부터 궁금했던 것중 하나인데 '쥬신'에 대해 명확한 출처가 있나요? 아니면 본인들이 '추정'해서 지은 이름인가요? adidas (토론) 2009년 2월 9일 (월) 17:58 (KST)[답변]
고대 한국어의 발음은 현재로써는 모두 ‘추정’입니다. 일례로 ‘고주몽’이라고 하지만, 처음 표기는 ‘추모’(鄒牟)였습니다. 그래서 주몽이나 추모 등과 비슷한 발음이었으리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Knight2000 (토론) 2009년 2월 9일 (월) 18:37 (KST)[답변]
아울러 김운회 역시 광의의 재야사학자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 글 올릴때는 미처 조사를 하지 못했는데 알고보니 역사 전공이 아니라 국제통상학 전공이었습니다. adidas (토론) 2009년 2월 9일 (월) 18:22 (KST)[답변]
게다가 비교사(比較史) 또는 관계사(關係史)라는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은 분야에 대해 연구하고 있죠. 대충 보면 김운회 교수가 내세운 이론에 나타난 사건은 대부분 옳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뻗어나간 주장에 대해서는 판단하기가 힘듭니다. 또한 상고사로 가면 가설 수준의 주장도 있고요. --Knight2000 (토론) 2009년 2월 9일 (월) 18:35 (KST)[답변]
쥬신 어쩌구 하지만 소위 말하는 '환빠' 부류는 아닌 것 같습니다. 특히 백제사 부분에서는 공감가는 주장이 많아 놀랐습니다.(김운회에 대해 안지 얼마 되지 않음) adidas (토론) 2009년 2월 9일 (월) 18:42 (KST)[답변]
환단고기 또는 환빠와는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환빠는 환단고기를 절대 진리로 믿으며, 거기에 어긋나면 역사왜곡이나, 사대사학이니 하는 말로 매도합니다. 하지만 김운회 교수는 고고학이나 비교사학에 기반을 두고 논리를 전개합니다. 물론 고고학적 증거에 대한 해석에서 기존 학계와는 다른 해석을 하는 때가 많습니다. --Knight2000 (토론) 2009년 2월 9일 (월) 19:49 (KST)[답변]

개인적으로는 환단고기는 신화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ㅎㅎ adidas (토론) 2009년 2월 9일 (월) 23:43 (KST)[답변]

예. 종교 관련 서적은 믿음이 없으면 신화집과 똑같은 가치를 가지게 됩니다. 반대로 신화집마저 그 속에 들어 있는 의미를 파헤치려 하거나 의심하는 사람이 학자이기도 하지요. --Knight2000 (토론) 2009년 2월 10일 (화) 08:15 (KST)[답변]
저 역시 나이가 비록 어려 제대로 모르지만 환단고기는 단순히 민족을 미화시키기 위한 소설이라 생각합니다. -- 윤성현 기여F.A 2009년 2월 10일 (화) 09:00 (KST)[답변]

환단고기에 나온 배달이나 환국의 영토 크기와 중심지의 위치로 볼 때 한반도는 당시에는 외곽지역으로(그나마 일본보다는 덜 외곽이지만), 아무튼 요즘 말로 하면 “촌구석”이었습니다. 환단고기의 중심지가 밝달호수(바이칼호로 비정)라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한반도는 완전히 깡촌입니다. ㅡㅡ; 그나마 중동이나 일본보다는 덜 촌구석이라는 점이 위안이랄까요. 환단고기가 사실이라면, 현대 한국은 고대의 환국과 배달이 망한 뒤에 촌구석에 있던 이들이 왕족 몇 명 받아들여 세운 작은 나라라는 말이 되는데... 그다지 기분 좋지 않네요. --Knight2000 (토론) 2009년 2월 10일 (화) 09:06 (KST)[답변]

개인적으로 언제나 느끼는 건데 환단고기를 보고 나서 느끼면은 "아니 그렇게 큰 영토를 가진 나라가 어쩌다가 이렇게 영토가 확 줄어들었지"라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뭐 이것은 저 역시 나이트님의 생각에도 공감합니다. -- 윤성현 기여F.A 2009년 2월 10일 (화) 09:10 (KST)[답변]

환단고기 설명대로라면, 한국어는 인도유럽어족의 한 갈래입니다. ㅡㅡ; 아니 모든 퉁구스어와 알타이어가 인도유럽어족과 같은 어족에 속하게 되지요. 환국 시대에는 환국과 인도나 중동이 모두 같은 나라였고, 같은 언어를 썼다니 말입니다. 물론 그쪽에는 사투리가 많았겠지만... ㅡㅡ; 이 부분을 듣고는(읽은 적이 없어요.) 팍 느낌이 오더군요. 이건 "바이블"의 "바벨탑 설화"을 베낀 거다. ㅡㅡ; 바이블대로라면 모든 언어가 셈어족의 한 갈래가 되거든요. --Knight2000 (토론) 2009년 2월 10일 (화) 09:16 (KST)[답변]

저는 고등학교 때 나름 진지하게 환단고기를 본 기억이 있는데, 지금 돌아보면, 환단고기의 배달국이니 머니 하는 것들이 다 아틀란티스 전설에서 따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거기에 성경의 신화도 좀 넣었을 것이고요. 물론 100% 소설은 아니고 일부는 한국 고래의 민간 전승 신화를 모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adidas (토론) 2009년 2월 10일 (화) 17:17 (KST)[답변]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비교사나 관계사 연구자가 적은 편입니다. 비교사는 한국사 또는 일본사가 1국사(1개 단일 국가의 역사)로 보는 관점이 해당 역사학계의 대세이기 때문입니다. 관계사는 “조공 관계” 또는 “예속 관계”라는 것이 있어서 그나마 일정 수준의 연구자가 존재하는 편이지요. 이때 1국사라는 개념이 상당히 위험합니다. 한국사나 일본사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았기 때문에 최소한 2국사가 되어야 함에도 각각의 역사를 일본의 “일본 1국사”와 한국의 “한국 1국사”로서 정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국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고구려사와 발해사는 한국사가 아닙니다. ㅡㅡ; 그와 마찬가지로 만주국의 역사는 일본의 역사가 아니게 되지요. ㅡㅡ;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와 일본사는 1국사라고 꿋꿋하게 주장하는 두 나라의 주류 사학자들... 정말 암울합니다. 김운회 교수는 그런 점을 파고들어서 나름대로 영역을 구축한 셈이지요. 물론 제대로 된 영역이 아닙니다. --Knight2000 (토론) 2009년 2월 10일 (화) 17:35 (KST)[답변]

분류:안동시 라고 추가하셨던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Supsupii (토론) 2009년 3월 5일 (목) 23:33 (KST)[답변]

예안(禮安)과 선성(宣城)은 둘 다 안동의 옛 이름입니다. --Knight2000 (토론) 2009년 3월 6일 (금) 01:14 (KST)[답변]

한국위키미디어협회 설립추진위원회

임원 추천에 대한 공지가 시작되었습니다. 다른 임원들을 추천하여 주시면 됩니다. 이번 임원은 발기인총회직전까지 준비를 위한 임시직이니 너무 부담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2] 여기] 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Signed by mhha (토론) 2009년 3월 15일 (일) 00:50 (KST)[답변]

진국 문서의 출처가 궁금합니다.

진국 문서에서 표를 통해서 삼한의 위치에 대한 '종래 학설'과 '신 학설'을 제시한 것의 출처가 궁금합니다. 종래 학설이라는 부분은 둘째치더라도, 신 학설이라고 제시하신 부분은 현재 아무도 주장하고 있지 않은, 생전 처음 보는 위치 비정입니다. 해당 학설을 주장하고 있는 출처를 알 수 있을까요??

그리고 Knight2000님의 사용자 문서 부분에서 삼한에 대한 내용에 살짝 부연 설명을 하자면, '마한=고구려설'을 부정한 것은 이병도가 아닙니다. 마한=고구려설은 조선 초기 권근의 《동국사략》, 한백겸의 《동국지리지》 때부터 비판받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안정복의 《동사강목》이나 정약용의 《아방강역고》에서 현재의 학설과 동일하게 고증한 이후로 사실상 완전히 사멸한 학설이 되었습니다. 이병도가 왈가왈부해서 결정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실증적이지 않다는 말씀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안정복의 《동사강목》에서 펼치고 있는 고증을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3월 18일 (수) 15:14 (KST)[답변]

고증과 실증이 다릅니다. 고증으로 실증을 대체할 수 있다면, 압록강의 위치에 대해서는 한단고기를 믿는 쪽이 절대적으로 유리합니다. 대한민국에 유리하다는 말이 아니라, 고증에 유리하다는 말입니다. ㅡㅡ; 마찬가지로 “마한=고구려설”은 실증되지는 않았습니다. --Knight2000 (토론) 2009년 3월 20일 (금) 16:26 (KST)[답변]
다만 그에 대한 반증도 없기 때문에 제 생각보다는 Xakyntos 님의 생각이 더 옳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래도 과거 조선의 학자들과 현대의 학자들이 고증을 통해 논증을 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그 문장에서 지적한 바는 “실증사학자 이 모가 아무런 실증도 없이 부정”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부분이었습니다. --Knight2000 (토론) 2009년 3월 20일 (금) 16:32 (KST)[답변]
진국 문서의 표는 {{글로벌세계대백과}}에서 따온 것입니다. --Knight2000 (토론) 2009년 3월 20일 (금) 16:26 (KST)[답변]
글로벌세계대백과를 살펴보니 언급은 되어 있지만 출처가 제시되어 있지 않군요. 관련 논문들이나 학계의 방향, 다른 백과사전들을 살펴보아도 해당 주장과 같은 내용은 전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모두 다 찾았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글로벌세계대백과의 해당 내용은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생각됩니다. --Xakyntos (토론) 2009년 3월 20일 (금) 17:59 (KST)[답변]
글로벌 백과가 완전히 믿기는 문제가 있는 주장이긴 하지만 나름 '백과사전'은 백과사전이니 해당 근거를 찾아보면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스스로 점점 궁색해지고 있습니다 ㅈㅅ...^^ adidas (토론) 2009년 3월 20일 (금) 18:48 (KST)[답변]
사실 글로벌백과 자체도 자체적인 모순을 보이고 있습니다. 표에는 신학설이라면서 괴이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으면서도 본문에서는 "변한" 항목에만 비슷한 내용이 나타날 뿐, 다른 부분에서는 전혀 설명되지 않고 있거든요. 이부분은 전적으로 글로벌백과의 오류이거나 무리수인 것 같습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3월 20일 (금) 19:07 (KST)[답변]
해당부분을 봤는데요, 아마 '신학설'을 제기한 곳은 글로벌사전이 아닐까 합니다^^... adidas (토론) 2009년 3월 20일 (금) 19:10 (KST)[답변]

틀:다른 뜻과 관련하여

틀토론:다른 뜻에 제 의견을 남겼습니다. 나이트2000 님의 의견을 기대합니다. Jjw (토론) 2009년 3월 25일 (수) 00:05 (KST)[답변]

틀토론:다른 뜻에 제 제안을 쓰기 전에 나이트2000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사용자:jjw/작업장을 보시고 의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Jjw (토론) 2009년 4월 4일 (토) 22:29 (KST)[답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마이크 햄프턴에 대하여

나이트2000님, 작년 10월 19일에 이 문서에 '마이크 햄튼'을 '마이크 햄프턴'이라고 적었죠? 얼마 전에 어떤 사용자가 외래어 표기법이 맞지 않아 다시 '마이크 햄튼' 이라고 수정했습니다. 다시는 외래어 표기법에 맞지 않게 사람 이름을 적지 마세요.--Trainlove96 (토론) 2009년 3월 28일 (토) 10:12 (KST)[답변]

그 표기법은 무엇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까? 이미 수많은 Hampton 어휘에 대해 햄프턴이라고 쓰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국립국어원에서 밝힌 외래어 표기법에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hamp + ton의 구조이므로 hamp가 ‘햄프’로 전사됩니다. 여기에 ton을 붙이면 ‘햄프턴’이 옳습니다. 실제로 영어사전에서도 [hǽmptən]이라는 발음표기가 되어 있고요. 갑자기 왜 /p/ 발음이 없는 햄튼이 쓰이는지 이해하기 힘드네요. 그리고 노턴, 뉴턴 등의 경우에 비추어도 햄튼이 아니라 햄턴이 되어야 합니다. --Knight2000 (토론) 2009년 3월 28일 (토) 22:28 (KST)[답변]
표기법상으로 햄프턴 아닌가용?? adidas (토론) 2009년 3월 28일 (토) 22:52 (KST)[답변]
예. Hampton은 햄프턴...으로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햄튼으로 바꾸었다고 통보하는군요. --Knight2000 (토론) 2009년 3월 28일 (토) 23:01 (KST)[답변]
사실 햄튼인데요...--Trainlove96 (토론) 2009년 3월 29일 (일) 14:25 (KST)[답변]
햄튼이 아니라 햄프턴이 옳습니다. [hǽmptən]을 왜 햄튼으로 전사해야 하는지 이유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Knight2000 (토론) 2009년 3월 29일 (일) 14:28 (KST)[답변]

햄프턴으로 고쳤습니다. --Knight2000 (토론) 2009년 8월 22일 (토) 12:51 (KST)[답변]

위키백과 검색 결과 --Knight2000 (토론) 2016년 1월 30일 (토) 01:58 (KST)[답변]

반스타 증정

관리자 추천 반스타
오랜 기여와 좋은 활동을 하셨기에,
관리자로 추천하며 동시에 사전 찬성표를 던지는 의미에서
반스타를 드립니다.
WonRyong (토론) 2009년 5월 8일 (금) 14:59 (KST)[답변]

연사위니아

분류:조선의 군인 삭제토론 회부

분류:조선의 군인삭제토론에 회부했습니다. 의견 부탁드립니다. --WaffenSS (토론) 2009년 9월 12일 (토) 08:43 (KST)[답변]

안녕하세요. 혹시 밀양 박씨 정국군파이신지? --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99.243.29.189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아닙니다. Knight2000이라는 제 사용자명의 끝에 붙은 수를 잘 보세요. 어떻게 읽히나요? 그게 제 성씨 및 이름과 관련이 있습니다. 남들과 달리 2000년을 기념하는 의미는 전혀 없습니다. --Knight2000 (토론) 2009년 10월 6일 (화) 23:08 (KST)[답변]

아아, 공씨이시군요! 살아계시는 저의 진외증조모도 공씨이신데 반갑습니다^^ --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99.243.29.189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공씨가 아니라, "2"씨입니다. 그리고 글은 맨 아래에 [편집]을 클릭하여 덧붙여 주시기 바랍니다. --Knight2000 (토론) 2009년 10월 9일 (금) 07:57 (KST)[답변]

아아, 미안해요, 위키뉴비들이 원래 이렇잖아요.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기를ㅋㅋㅋ 맨끝에있는 수를 보라고하셔서... --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99.243.29.189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 맨끝이 아니라 끝이었는데요. 아무튼 다른 분도 그렇게 2000(이천)을 0 (공/영)으로 착각한 적이 있습니다. ^^a --Knight2000 (토론) 2009년 10월 10일 (토) 15:47 (KST)[답변]

블로그는 출처로 인정 안됩니다.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관련 보도 관련 내용을 블로그를 출처로 두시던데, 블로그는 출처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위키백과:사랑방/2009년 제7주#블로그는 출처가 안된다는 주장를 참고하세요. 게다가 인정된다 쳐도, 고재열씨의 해당 내용은 감상문에 가까운 글이지 기사문으로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121.124.4.51 (토론) 2009년 10월 13일 (화) 19:35 (KST)[답변]

출처로서 인정되지 않는다고 내용 자체에 대한 삭제 등은 (1개월 내에는) 없었으면 합니다. 다른 언론의 출처는 곧 제시하겠습니다. 출처는 삭제하고, {{출처}} 틀을 달겠습니다. --Knight2000 (토론) 2009년 10월 13일 (화) 19:44 (KST)[답변]
의견을 좋게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삭제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오마이뉴스나 한겨레 등 여러 매체에서 해당 내용을 보도했으니 그 쪽을 출처로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121.124.4.51 (토론) 2009년 10월 13일 (화) 19:46 (KST)[답변]
처음에는 그러려고 했다가, 정확한 내용, 예컨대 ‘a variant of CJD’ 등의 내용이 없더군요. 그래서 고재열 기자의 블로그를 출처로 제시했습니다. 일단 한 차례 찾은 내용이니 다시 찾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만, 정확히 그 내용이 있는지가 관건이겠죠. 없으면 내용을 고쳐야 하니까요. ^^a --Knight2000 (토론) 2009년 10월 13일 (화) 20:02 (KST)[답변]

교회 문서 삭제 기준 마련

백:교육을 참고하여 메뉴를 만들고 여러모로 프로젝트 문서를 바꿔 보았습니다. 프로젝트 회원 여러분 한번 보시고 고칠 점 있으면 과감히 수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프로젝트에도 자주 참여 바랍니다. adidas (토론) 2009년 12월 11일 (금) 02:57 (KST)[답변]

삭제 토론 개설

위키백과:삭제 토론/역사 관련 분류 에 참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문서의 최초 생성자에게 삭제토론을 열었음을 알리는 것은 의무이므로 이 메시지를 남깁니다.--Park4223 (토론 / 기여) 2010년 1월 8일 (금) 19:10 (KST)[답변]

틀:천년기 상자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던 틀이라 삭제 신청 했습니다. 참고하세요 :) --  모다   /토론/ 2010년 1월 9일 (토) 20:30 (KST)[답변]

디지털_SLR 에 쓰신글 보고 답 드립니다

제품스팩상의 각각의 무게을 원하시는것 같지않고 정확히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 알고싶으신것 으로 짐작됩니다만 ,, 무게는 일반적으로 만듬세 즉 마그네슘 합금 바디인지 경화플라스틱 바디인지에 큰차이가 있고 그다음 내부 구성물 즉 팬타프리즘인가 팬타미러 인가 등등에 따라 차이가 납니다. 또 셔터박스와 미러박스의 복잡합 등등의 카메라 성능에 연관되서 내부 부속이 증가하니 역시 미세하게 무게에 영향을 주지요. 즉 성능좋은 기기 즉 방진방적을 갖추고 시야율등등이 높고 연사 속도가 높은 카메라일수록 무게가 무거울수 밖에 없습니다. 일례로 마그네슘 바디에 중고급형인 캐논 7D 와 니콘 D300 그리고 포서즈라서 소형경량화를 추구하는 올림푸스의 E-3 도 무게는 840~860g 내외입니다. 보급기 처럼 플라스틱 바디는 500g 안팍이구요. 사실 DSLR 에서 문제는 바디무게 보다는 렌즈 무게가 더 영향이 큽니다. 왜냐하면 유리알의 무게가 엄청나거든요. 보통 렌즈 구경이 72mm 이상되고 비구면같은 특수렌즈 쓰면 800g 이상 나가게 됩니다 . 궁금하신 사항의 요점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스팩상의 무게는 일반적인 사항고 각 제품별 특징인것 같에 문서에는 적지 않았습니다 Compumundo (토론) 2010년 4월 11일 (일) 23:38 (KST)[답변]

고맙습니다. --Knight2000 (토론) 2010년 4월 12일 (월) 00:05 (KST)[답변]

삭제 신청 알림

Knight2000님!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에 기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유형별 전쟁 문서에 하신 기여는 위키백과에 어울리지 않거나 위키백과의 삭제 정책에 해당한다고 판단되어 삭제 신청되었습니다.

  • 유형별 전쟁 문서가 삭제 신청된 이유는 내용이 없어서입니다. 해당 문서의 삭제 신청 이유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해당 문서의 변경 내력을 확인하여 어떤 분이 삭제를 신청하였는지 확인하신 후 그 사용자와 토론을 시도해 주세요. 토론이 잘 해결되지 않는다면, 위키백과의 여러 편집자들과 함께 삭제에 대한 토론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 추가 설명 내용 위키백과를 편집할 때 궁금한 점이 있다면 길라잡이사용법을 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얼마든지 다른 사용자에게 질문해 주세요.

삭제 신청 알림

Knight2000님!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에 기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노무현만 아니면 된다 문서에 하신 기여는 위키백과에 어울리지 않거나 위키백과의 삭제 정책에 해당한다고 판단되어 삭제 신청되었습니다.

  • 노무현만 아니면 된다 문서가 삭제 신청된 이유는 저명성입니다. 해당 문서의 삭제 신청 이유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해당 문서의 변경 내력을 확인하여 어떤 분이 삭제를 신청하였는지 확인하신 후 그 사용자와 토론을 시도해 주세요. 토론이 잘 해결되지 않는다면, 위키백과의 여러 편집자들과 함께 삭제에 대한 토론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제2회 위키백과 컨퍼런스

Knight2000님! 한국어 위키백과에서는 2010년 7월 경에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인근에서 열릴 제2회 위키백과 컨퍼런스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컨퍼런스의 장소, 시기와 성격 같은 컨퍼런스와 관련된 다양한 토론이 진행되고 있으니 많은 참여를 부탁드리며, 발표자참가자로서 서명해 주신다면 컨퍼런스의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관인생략 토론·기여·메일 2010년 6월 7일 (월) 19:22 (KST)[답변]

자사

안녕하세요, Knight2000님!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에 기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귀하께서 자사 문서에 해 주신 편집은 문제가 있어서 문서를 편집하시기 전의 상태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이전의 편집 내용은 편집 역사에 기록되어 있으니 다시 한 번 편집 내용을 확인해 주세요.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위키백과 도움말을 참고하시거나 다른 사용자에게 질문해 주시면 됩니다. 연습이나 실험은 연습장에서 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Jyusin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Jyusin 님,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먼저 밝혀 주십시오. 현재 문제가 있다고만 했을 뿐 그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그 문제가 무엇입니까? --Knight2000 (토론) 2010년 8월 21일 (토) 12:03 (KST)[답변]
9월 30일까지 답변이 없을 경우, 제가 처음 했던 편집으로 되돌리겠습니다. --Knight2000 (토론) 2010년 8월 21일 (토) 12:09 (KST)[답변]
'자사'를 '공자사'로 쓴걸 본적이 없습니다. 위키백과는 통례에서 어긋난 신조어를 만드는 곳이 아닙니다.--Jyusin (토론) 2010년 8월 21일 (토) 22:09 (KST)[답변]
통례는 아니지만, 일반적인 표현은 아니라는 사실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자사가 항상 공급을 가리키는지는 의문이네요. --Knight2000 (토론) 2010년 8월 22일 (일) 18:24 (KST)[답변]

참고로 어떤 명칭이 통례(Common Practice)가 되려면, 그 명칭의 쓰임 자체가 통례이지만, 그러한 명칭이 나오는 과정도 통례여야 합니다. 그런데 자사의 경우는 쓰임은 통례이지만, 그러한 명칭의 쓰임(명칭이 나오는 과정)은 오히려 예외적인 상황이라서, 전체적으로는 통례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전례(General Practice)라고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Knight2000 (토론) 2010년 8월 22일 (일) 18:29 (KST)[답변]

이집트 신화 기여

저도 더 이상 손 못대고 있던 이집트 신화 신들 바깥 고리 수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참에 백:신에는 참여 않해보실레요? 이집트 신들 문서가 많이 빈약해서 (토트나 마트, 라 빼면 시체라는...) 채우는 노력이 좀 필요할 것 같아요. --토트 Ratio • Sapientia • Veritas 2010년 9월 16일 (목) 04:16 (KST)[답변]

권유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제가 기여한 부분은 특정한 지식을 갖고 참여한 것이 아니라, 내용을 읽고 그에 따른 분류를 추가했을 뿐입니다. 따라서 참여하고 싶어도 그쪽 방면의 지식이 없어서 지금처럼 분류를 나누는 수준에 멈출 듯싶습니다. --Knight2000 (토론) 2010년 9월 16일 (목) 12:34 (KST)[답변]

저 문서는 표제어에 문제가 있지 않나요? 많이 쓰이지도 않고.. 어쨌든 삭제 신청 하였습니다. --S7 Ta.】【Con. 2010년 9월 18일 (토) 17:40 (KST)[답변]

한국어가 아닌 넘겨주기 생성을 자제해 주세요. 위키백과:넘겨주기 문서 참고하세요. Irafox (토론) 2010년 9월 18일 (토) 17:53 (KST)[답변]

저에게 자제를 요청하기보다 검색 알고리듬의 개선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알고리듬이 개선되지 않는 한 계속 만들 생각입니다. --Knight2000 (토론) 2010년 9월 18일 (토) 17:54 (KST)[답변]

관리자 선거 알림

Knight2000님! 한국어 위키백과에서는 현재 2010년 10월 7일 (목) 11:45 (KST) 부터 2010년 10월 21일 (목) 11:45 (KST)까지 Ha98574관리자 선거가 진행되고 있으니 많은 참여를 부탁드리며, 찬성 또는 반대로서 서명해 주신다면 관리자 선거의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관리자 후보를 직접 검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Irafox (토론) 2010년 10월 17일 (일) 19:05 (KST)[답변]

해당문서를 삭제토론에 올렸습니다. 주기여자로써 토론 참석을 부탁합니다. --어쏭(소통의 공간) "11 P.M Sleep, 6 A.M Wake up" 2010년 10월 18일 (월) 14:11 (KST)[답변]

삭제 알림

Knight2000님!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에 기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사용자 (전자 통신) 문서는 위키백과에 어울리지 않거나 위키백과의 삭제 정책의 삭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되어 삭제 신청되었습니다.

사용자 (전자 통신) 문서가 삭제 신청된 이유는 필요 없는 넘겨주기 문서입니다. 해당 문서의 삭제 신청 이유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해당 문서의 변경 내력을 확인하여 어떤 분이 삭제를 신청하였는지 확인하신 후 해당 문서 상단에 {{삭제 신청 이의}}를 추가하고, 그 사용자와 토론을 시도해 주세요. 토론이 잘 해결되지 않는다면, 위키백과의 여러 편집자들과 함께 삭제에 대한 토론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위키백과를 편집할 때 궁금한 점이 있다면 길라잡이사용법을 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얼마든지 다른 사용자에게 질문해 주세요. 만약 기여하는데 연습할 공간이 필요하다면, 연습장을 우선 이용하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사용자 문서에 이용자 (정통망법)이라는 이름으로 링크 생성했습니다.) --Alphanis (토론) 2010년 10월 31일 (일) 17:33 (KST)[답변]

내선일체 출처 요구

해당 내용을 증명할 만한 확인가능한 출처를 요구합니다. 위키백과 문서의 신뢰성을 위해 출처를 필수적이니 꼭 남겨주시기 바랍니다.--어쏭(소통의 공간) "11 P.M Sleep, 6 A.M Wake up" 2010년 12월 4일 (토) 20:52 (KST)[답변]

고도리

그냥 고스톱으로 넘겨주기하면 될 듯 싶은데요? 지금의 내용은 낱말의 뜻 풀이로 위키낱말사전으로 옮기고요. -- ChongDae (토론) 2010년 12월 29일 (수) 16:55 (KST)[답변]

개정안에 관해서

저에 대해서 반박을 안하시고 계시니 일단 OK 라고 하는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까?--Alto (토론) 2011년 2월 4일 (금) 21:52 (KST)[답변]

오라녜

그냥 오라녜 공(en:Prince of Orange) 문서를 만들고 넘겨주기하면 될 듯 싶은데요? -- ChongDae (토론) 2011년 2월 17일 (목) 10:32 (KST)[답변]

오라녜 만 있는 게 아닙니다. --Knight2000 (토론) 2011년 2월 17일 (목) 10:52 (KST)[답변]

개정안 관련

혹시 현재 다른 반론 의견은 없으신가요?--Alto (토론) 2011년 2월 27일 (일) 15:46 (KST)[답변]

개정안의 취지에 대해서와 이미 증명된 현행안의 부당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공감된다고 생각하시나요?.--Alto (토론) 2011년 2월 28일 (월) 11:26 (KST)[답변]

개정안의 취지가, “너무 과도하게 한글맞춤법의 외래어표기법 규정에 의존하는 사례를 줄이자.”라면 찬성입니다. 다만 논의되는 것처럼, 일본어의 어두에 오는 が / か (가/카) 혼용과 같은 문제는 오히려 반대입니다. 일본어 낱말 어두의 か는 로마자로는 ka로 표기되지만, 한국어 발음으로 볼 때 “카”보다는 오히려 “가”에 더 가깝습니다. 어두의 か의 발음이 약해지는 현상이 일본어에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일본어에서 か를 ka로 표기하는 것은 ‘발음의 전사’가 아닌, “기계적 표기”, 다시 말해 그 실제 발음은 안 따지고, 무조건 기계적으로 か를 ka로 표기했다는 것인데, 그것을 다시 한국어로 “카”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번역에서 중역(번역의 번역. 예컨대 영어 -> 일본어 -> 한국어의 경우)이 문제이듯이, 언어의 발음 표기에서도 “전사된 낱말의 전사”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어두의 か 는 발음이 약해지는 현상이 일본어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한국어 발음이 が 와 구분되는 경우도 있고, 구분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무조건 구분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입니다. 일본어를 옮긴다면, 그것의 발음을 IPA로 표기하고, 그것을 다시 한국어로 옮기는 방법을 취해야 합니다. 그게 가장 정확한 표기입니다. --Knight2000 (토론) 2011년 2월 28일 (월) 14:50 (KST)[답변]
ka/ga문제나 기계적 표기나 정확히 표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개정안은 그런 문제를 떠나서 단순히 "많이 쓰는 쪽으로 가자"의 취지로 애초에 정확성이니 음성학이니 언어학 관련 문제들을 배제하고 있는 것입니다.--Alto (토론) 2011년 2월 28일 (월) 16:41 (KST)[답변]
Altostratus 님이 주장하는 바가 “언중이 사용하는 표기로 적자”인가요? 그것은 외국어가 아닌 외래어에 해당하는 사항입니다. --Knight2000 (토론) 2011년 3월 2일 (수) 00:55 (KST)[답변]
왜 외래어에만 해당되는 건가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외국어가 아닌가요?--Alto (토론) 2011년 3월 2일 (수) 10:38 (KST)[답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Leonardo DiCaprio /liənardou dɨˈkæpri.oʊ/ )의 경우, 외국어라면 그 표기가 옳습니다. 문제는 외국어 이름의 경우 “외국어”로 적느냐 “외래어”로 적느냐의 문제이지요. 저는 외국어 이름(인명/지명/책이름 등)의 경우 널리 알려진 이름이라면 통용표기도 허용해야 한다는 쪽입니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면, 그 발음 그대로를 적어주는 게 낫다는 쪽(외국어의 IPA를 보고 한글로 그대로 옮기는 것)이고요. --Knight2000 (토론) 2011년 3월 2일 (수) 13:22 (KST)[답변]
"외국어라면 그 표기가 옮다"라는 것에 대해 근거를 대주세요. 널리 알려졌으면 통용 표기로, 그렇지 않으면 외래어 표기법으로 가게 될껍니다. 지금 개정안에서는 그렇게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Alto (토론) 2011년 3월 2일 (수) 13:31 (KST)[답변]
이번 개정안 이름이 뭔가요? 개정안 이름을 먼저 생각해 보세요. 왜 이름은 "외국어 표기"라고 해 놓고서 외래어 표기법에 얽어매려고 하나요? 그 외국어가 외래어로 정착되었다면 모르겠는데, 그럴 경우는 오히려 통용표기를 하겠다고 하고 있고, 정작 아직 외래어로 불릴 만큼 쓰임이 많지 않은 외국어는 외래어 표기법으로 표기한다고요?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근거를 대느냐 마느냐 논의 이전에 “외국어의 한글 표기”라는 점을 먼저 생각해 주십시오. 외래어 표기법은 널리 알려진 외국어를 “한국어”로써 받아들여 “외래어”로 적자는 발상입니다. 원론적으로 “외국어의 한글 표기”와는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외래어 표기법을 최우선시하는 관행을 타파할 수 있으리라 여겨 찬성해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지금에 와서는 다른 점이 없다는 거죠. 오히려 적용하지 말아야 할 경우에 외래어 표기법을 적용하고 있으니 답답할 뿐입니다. --Knight2000 (토론) 2011년 3월 2일 (수) 13:42 (KST)[답변]
이전까지의 외국어는 원칙적으로 전부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했었는데요. 그리고 외래어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개정안에 적혀있지 않나요.--Alto (토론) 2011년 3월 2일 (수) 13:51 (KST)[답변]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경우는 아직 외래어가 아니라 외국어죠. 반대로 이미 한국어 사용자에게 널리 알려진 경우는 외국어가 아니라 외래어입니다. 문제는 “이름”입니다.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으면 외래어인데, 동시에 여전히 외국어입니다. 앞의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경우는 외국인의 이름이므로 외국어 고유명사로 보느냐, 외래어 고유명사로 보느냐에 따라 한글 표기가 달라집니다. 현재 외래어 표기법은 외국어와 마찬가지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로 표기하도록 하고 있죠? 반대로 통용표기에서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고 쓰고 있고요. 저에게 선택하라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선택합니다. 둘 다 일리가 있지만, 우선 나한테 편하니까요. 이 이름은 영어권에서도 문제가 있었는지, 디캐프리오 부분에 IPA를 밝혔더군요. --Knight2000 (토론) 2011년 3월 2일 (수) 15:10 (KST)[답변]

디카프리오를 선호하신다면 그렇다면 얘기가 좀 더 편해지겠네요. 만약 해당 표제어가 말씀하신 이미 한국어 사용자에게 널리 알려진 "외래어 고유명사"라면 개정안에 따라 표기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외국어 고유명사"라면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할 것입니다.--Alto (토론) 2011년 3월 2일 (수) 15:16 (KST)[답변]

아, 그러니까 외국어 표기에서는 외래어 표기법이 빠져야 한다니까요. 외래어 표기법은 기준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걸 꼭 따를 이유가 없지요. 더구나 그 대상이 외래어가 아닌 외국어이니 따를 이유가 더 없지요. --Knight2000 (토론) 2011년 3월 2일 (수) 15:22 (KST)[답변]
맨 마지막 순위의 "외래어 표기법"을 제거해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Alto (토론) 2011년 3월 2일 (수) 15:23 (KST)[답변]
따르더라도 비슷한 용례가 있는 경우에 한정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A라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면, 그의 풀네임은 어디에도 없습니다(처음 나온 것!). 이때 B라는 사람에게서 성을, C라는 사람에게서 이름을 가져와 짜맞추는 식이라면 인정하겠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IPA를 따와서 한글로 전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Knight2000 (토론) 2011년 3월 2일 (수) 15:28 (KST)[답변]
"그의 풀네임은 어디에도 없습니다"를 아직 한국어 화자에게 "외래어로서 정착되지 못했다"라고 이해하겠습니다. 짜맞춰서 표기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IPA에 따라 표기해야 한다는 의미이신 것 같은데 그 정도 쯤 되면 "외래어로서 정착되지 않았다"로 봐도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맨 마지막 순위 "외래어 표기법"이 아닌 나머지 상위 수준에 대해서는 인정하시는 거죠?--Alto (토론) 2011년 3월 2일 (수) 15:33 (KST)[답변]
예. 그렇습니다. --Knight2000 (토론) 2011년 3월 2일 (수) 15:40 (KST)[답변]

를 좀 도와주세요. :-) --거북이 (토론) 2011년 3월 2일 (수) 17:42 (KST)[답변]

개정안 토론에 남기신 중립성 관련 의견

그건 근거 문제가 아닌 토론 과정에서 나온 의견 중 하나에 대한 얘기로 개정안과 크게 상관이 없는 것 같은데 그 문제는 Hijin2908님 사용자토론란에 남기는 건 어떨까요.--Alto (토론) 2011년 3월 16일 (수) 16:03 (KST)[답변]

신규식의 생일

[3]에서 음력으로 날짜를 고치셨는데, 출처 등을 알 수 있을까요? -- ChongDae (토론) 2011년 6월 30일 (목) 13:25 (KST)[답변]

한국으로 귀화한 사람이 아닌 경우도 많지 않나요? 부모나 그 조상이 미국인인 경우도 해당되니깐요. "~로 귀화한 사람"은 본인 자신이 국적을 취득한 경우로 제한해야 할듯 싶네요. -- ChongDae (토론) 2011년 7월 22일 (금) 17:51 (KST)[답변]

그건 분류 편의상 그렇게 했는데, 해놓고 보니 거꾸로네요. 다시 말해, 분류:한국으로 귀화한 사람-분류:미국계 한국인의 순서가 아닌, 분류:타국계 사람-분류:미국계 사람-분류:미국계 한국인-분류:한국으로 귀화한 미국 원국적자의 순서가 되어야 하죠. 또한 분류:다른 나라로 귀화한 사람-분류:한국으로 귀화한 사람-분류:한국으로 귀화한 미국 원국적자의 분류 및 분류:다른 나라로 귀화한 사람-분류:다른 나라로 귀화한 미국 원국적자-분류:한국으로 귀화한 미국 원국적자 분류도 필요합니다. --Knight2000 (토론) 2011년 7월 24일 (일) 07:24 (KST)[답변]

이동시

삼성1호-허베이 스피릿 호 원유 유출 사고를 이동하셨는데요. 넘겨주기 문서도 처리해주셔야 합니다.--1 (토론) 2011년 9월 13일 (화) 19:55 (KST)[답변]

처리 중입니다. --Knight2000 (토론) 2011년 9월 13일 (화) 19:55 (KST)[답변]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Knight2000 (토론) 2011년 9월 13일 (화) 20:00 (KST)[답변]

안녕하세요.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에 기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기여하신 한국식 성명 강요 문서가 삭제 토론에 회부되었습니다. 토론은 위키백과:삭제 토론/한국식 성명 강요에서 진행될 예정이니 토론에 꼭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해당 문서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편집할 수도 있으나, 삭제 토론 틀을 토론 종료 전에 제거하지 말아주세요. 또한 토론에 참여할 때에는 기본적 예의를 지켜 주세요. --Synparaorthodox (토론) 2012년 4월 14일 (토) 12:27 (KST)[답변]

위키백과 공동편집 행사 참석 요청

안녕하세요. 다음주 토요일(6월 2일) 오후 2시에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어르신들을 모시고 공동편집 행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어르신들께서 역사에 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역사에 관심있는 위키백과 편집자 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공동편집 행사에 도우미로 참여해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위키백과:함께 편집하기를 참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땅콩샌드 (토론) 2012년 5월 27일 (일) 09:57 (KST)[답변]

경어체와 평어체

위키백과 문서 본문을 서술하실 때에는 경어체(입니다, 합니다, 있습니다 등)보다 평어체(이다, 하다, 있다 등)로 서술하는 것이 좋습니다. -- Min's (토론) 2012년 7월 20일 (금) 23:35 (KST)[답변]

습관이 그대로 글쓰기에 드러났나 봅니다. 앞으로 좀 더 주의하겠습니다. --Knight2000 (토론) 2012년 7월 21일 (토) 13:39 (KST)[답변]

과거에 이러한 편집을 하셨던데,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2월 혁명이라는 것이 혹 현재의 en:Revolutions of 1848 in the Austrian Empire 문서를 의미하는 것인가요? 영어판을 비롯한 다른 언어판서는 2월 혁명이라는 어떠한 언급도 없는데, 무엇을 참고하여 2월 혁명이라고 표기하신 것인가요? 만약에 이 문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면, 어느 문서를 의미하는 것인지 가르쳐주실 수 있으신지요? --가람 (논의) 2013년 6월 8일 (토) 17:36 (KST)[답변]

체코슬로바키아 문서 역사 항목에 보면, “1948년 2월의 무혈 쿠데타를 통하여 공산당이 정권을 잡았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2월 정변을 2월 혁명으로 부릅니다. 정확하게는 “체코슬로바키아 공산혁명”입니다. 러시아 10월 혁명처럼 “무혈혁명” 가운데 하나입니다. --Knight2000 (토론) 2013년 6월 9일 (일) 00:03 (KST)[답변]
그 말인 즉슨, 1948년 체코슬로바키아 쿠데타가 ‘2월 혁명(혹은 정변)’이라는 것이군요? --가람 (논의) 2013년 6월 10일 (월) 02:09 (KST)[답변]
예, 맞습니다. 문서 내용을 보니 1948년 체코슬로바키아 쿠데타가 2월 혁명입니다. --Knight2000 (토론) 2013년 6월 10일 (월) 23:54 (KST)[답변]
그에 맞춰서 2월 혁명 문서를 수정하였습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가람 (논의) 2013년 6월 11일 (화) 00:07 (KST)[답변]

로고교체 참여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위키백과:사랑방/2013년 제23주#로고 교체에 참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아드리앵 (토론 · 기여) 2013년 6월 9일 (일) 15:44 (KST)[답변]

외래어 표기법 제4항을 참고바랍니다. 일본의 지리이름의 경우, 하나의 한자로 이뤄진 이름의 경우엔 '산'을 겹쳐쓰며, 이미 쓰시마 섬 등에 적용되어 있습니다. -- Min's (토론) 2014년 3월 29일 (토) 11:03 (KST)[답변]

하나의 한자로 되어 있다고 그렇게 한다면, 나중에 복잡해질 텐데요. --Knight2000 (토론) 2014년 3월 29일 (토) 11:23 (KST)[답변]
'에산 산'이라고 할 '이유'가 없다고 명시하셨길래,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린 부분입니다. 그런데 어떤 점이 복잡하다는 의미이신가요? -- Min's (토론) 2014년 3월 29일 (토) 11:25 (KST)[답변]
그저 개인적인 우려일 뿐입니다. 반대는 아니므로 에산 산 표기를 존중하겠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해 반대하기는 그러네요.) --Knight2000 (토론) 2014년 3월 29일 (토) 11:28 (KST)[답변]

아래 두글에서 3자의견을 받고 있습니다. 참여부탁합니다.

청자 철채퇴화삼엽문 매병 분류 정리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제 주시문서 목록에 Knight2000 님이 최근 기여하신 청자 철채퇴화삼엽문 매병이 있어서 살펴 보니 분류:고려청자의 상위 분류가 함께 있어서, 상위 분류를 다 지웠습니다. --Eggmoon (토론) 2014년 5월 9일 (금) 15:22 (KST)[답변]

위키백과:편집 지침#분류를 참고하기 바랍니다. “어떤 분류의 상위 분류가 존재할 때, 이 상위 분류를 달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분류:기하학 분류에 속하는 문서에는 분류:수학 분류를 붙이지 않습니다.”, 이렇듯 제가 지운 상위 분류를 앞선 안내 이후에 되살리셨기에 다시 안내해 드립니다. 해당 상위분류는 다시 삭제했습니다.--Eggmoon (토론) 2014년 5월 12일 (월) 11:07 (KST)[답변]

도자기 문서에서 기법과 문양 사이를 띄어쓰기한다는, 위키백과 안의 약속이 아직 없으므로, 우선 이전 모습으로 되돌리고 토론을 해야 합니다. 이동 신청은 제가 하겠습니다. 위키프로젝트토론:문화유산에서 토론을 열어 주세요.--Eggmoon (토론) 2014년 5월 12일 (월) 10:40 (KST)[답변]

너무 과감하신 것 아니신지요? 지금 살펴보니 분류:고려청자의 대부분을 Knight2000 님 생각대로 모두 띄어쓰기해 놓으셨군요. 기존 문서가 띄어쓰기되어 있지 않았으니, 그 상태가 기존 총의가 되겠지요? 제대로 수순을 밟으려면 모두 되돌리고 토론을 해야 하지만, 너무 많아 번거롭거니와 혹시 Knight2000 님 뜻대로 총의가 확정될 수도 있는 것이니 우선 지금의 모습을 용인하겠습니다. 어쨌든, 반드시 토론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기존 총의는 위키프로젝트:문화유산에 정리해 놓겠습니다.--Eggmoon (토론) 2014년 5월 12일 (월) 11:02 (KST)[답변]
과감하지만,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청자 철채 퇴화삼엽문 매병의 경우 청자철채퇴화삼엽문매병라고 해 두면, 그 읽는 방법도 혼란스럽거니와, 의미 전달도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몇몇 문서의 제목은 띄어쓰기가 되어 있고, 몇몇 문서의 제목은 그렇지 않아서 통일성도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형태로 통일시킨 것이기도 합니다. --Knight2000 (토론) 2014년 5월 12일 (월) 23:53 (KST)[답변]
마침, 관련 총의를 정하고 있으니, 우선 과감하게 옮기실 것이 아니라 토론을 먼저 하시지요. 이전 총의에 따른 이름은 ‘청자철채퇴화삼엽문매병’이 아니라 국가문화재 작명 방식을 우선하여 ‘청자 철채퇴화삼엽문 매병’으로 쓰는 것입니다. 거의 모든 도자기 문화재의 명칭이 띄어쓰기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문제는 문화재청이 만든 작명 순서인 ‘종류>시문기법>기년명>문양>형상(장식․모양)> 기형(용도․기능)’를 따르면서 기법과 문양을 굳이 띄어쓰기할 이유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 부분을 띄어 쓰나, 붙여 쓰나 해당 도자기를 이해하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Knight2000 님의 과감한 되돌리기는 기존 총의와 의견 교환 없이 이루어졌으니, 이곳이나 위키프로젝트토론:문화유산에서 토론을 먼저 개진해 주시기 바랍니다. --Eggmoon (토론) 2014년 5월 13일 (화) 00:15 (KST)[답변]
아는 사람은 띄어 쓰나 붙여 쓰나 이해하는 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은, 심지어 읽기조차 제대로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 띄어쓰기를 하는지부터 이해하신 뒤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는 것이 제 생각”이라는 말을 해 주십사 부탁드립니다. 또한 이것은 도자기에 한정된 문제가 아님을 이해해 주십사 부탁드립니다. --Knight2000 (토론) 2014년 5월 15일 (목) 19:30 (KST)[답변]
맞습니다. 도자기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고, 문화재 명칭 전반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러니, 기존 총의를 이해하시고 토론을 한 연후에 편집에 임하셔야 한다고 말씀 드린 것입니다. 제 질문을 다시 한번 명확히 드리지요. 도자기 뿐만 아니라 문화재의 명칭을 위키백과에서 정함에 있어서 대원칙을 국가지정문화재 명명 방식을 따르기로 한 것을 아시는지요? 2년 넘게 매우 지난하게 토론하여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Knight2000 님도 국가지정문화재의 명명 방식을 용어 및 순서 그대로 위백의 도자기 명칭을 정하는 데 적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시문기법과 문양 사이를 띄어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계십니다. 만약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명칭을 정한다면 한글로 다 풀어주거나, 서로 다른 문양이 둘 이상 겹쳐 있으면 그 사이도 띄어쓰고, 결국 모든 항목 사이를 다 띄어써야 하는 걸까요? 다른 부분은 문화재청의 작명 방식의 띄어쓰기를 그대로 따르면서, 즉 2개 이상의 문양이나 유개매병 같은 것은 띄어 쓰지 않으면서 유독 기법과 문양 사이는 반드시 띄어 써야 하는지 그 이유를 묻는 것입니다. 제 견해를 정리하자면, 어차피 도자기의 종류와 기법, 문양, 형상, 기형 등은 전문가들의 용어가 반영될 수밖에 없으며, 우리는 그들이 정한 그대로 쓸 수밖에 없습니다. 도자기뿐 아니라 여타 문화재도 그러하지요. 그것은 동의하시나요? 전문가들의 작명 방식은 앞서 안내한 문화유산 프로젝트에 상세하게 있습니다. 그러니 전문가들이 결정한 명명 방식을 따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요? 잘못된 띄어쓰기가 아니라면 말이지요. 각론으로 들어가서 이미 노출한 문제점을 하나 지적합니다. 청자 퇴화문두꺼비모양 벼루 문서를 봅시다. 일단 ‘퇴화’는 기법인데, Knight2000 님이 최근 자신의 띄어쓰기를 적용한, 다른 청자 문서와 달리 그 방법을 누락하셨으나 실수라 칩니다. Knight2000 님의 띄어쓰기 방식은 문화재청 작명 방식을 그대로 따르면서 오직 기법과 문양 사이를 띄어쓰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경우 ‘청자 퇴화 문 두꺼비모양 벼루’가 됩니다. 매우 이상한 이름 아닌가요? ‘퇴화’는 명확히 시문기법입니다만, 딱히 부를 만한 무늬가 없는 경우 그냥 퇴화 기법이 무늬로 시전되었다는 의미로 ‘퇴화문’이라 하는 식의 국가문화재 명명 방식을 따르면, 퇴화 기법이 시전된, 다른 도자기(청자 퇴화선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청자 퇴화점문 나한좌상, 청자 퇴화화문 주전자 및 승반)와 아무런 이질감이 없습니다. 그 부분을 띄어 쓴다고 ‘모르는 사람’이 해당 도자기를 이해하는 데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될는지 회의적입니다. 이해는 표제어 설명을 하는 첫 문장에서 도와주면 됩니다. 백과사전답게 말이지요. 명칭을 부여할 때에는, 큰 효용 없는 띄어쓰기를 굳이 할 이유가 없습니다.--Eggmoon (토론) 2014년 5월 15일 (목) 23:48 (KST)[답변]
Eggmoon 님의 말씀대로라면, 그 자체로 띄어쓰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반증이 됩니다. 왜냐하면, 문화재에 관심이 있는 저조차도 전문적인 지식이 없다보니, 청자 퇴화문 두꺼비모양 벼루의 띄어읽기에 실패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퇴화문”을 “퇴화 문”으로 띄어읽어야 함에도 “퇴화문”으로 읽었으니, 그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Knight2000 (토론) 2014년 5월 17일 (토) 08:55 (KST)[답변]
문화재청 작명 방식의 띄어쓰기로도 충분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 “퇴화문”을 “퇴화 문”으로 띄어읽어야 함’은 Knight2000 님의 독자적인 띄어쓰기 안인데, 기존 방식의 띄어쓰기를 그대로 따르면서 굳이 기법과 문양 사이를 또 띄어 써야만 이해에 도움이 된다는 말씀에는 전혀 동의하기 어렵군요. 붙여 쓰나 띄어 쓰나 비전문가들의 이해가 어렵기가 매한가지이니(Knight2000 님의 방식대로 한번 더 띄어 써 봐야 해당 표제어를 이해하는 데 큰 효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굳이 띄어 쓸 필요 없이 전문가들의 명칭을 받아 쓰고, 표제어 설명에서 백과사전답게 풀어 쓰면 되지 않을까요? --Eggmoon (토론) 2014년 5월 18일 (일) 02:00 (KST)[답변]
국어사전에 등재된 문화재 이름은 왜 띄어쓰기가 된 상태로 등재될까요? 그게 이해하는 데 큰 효용이 없다면, 문화재청이 정한 방식대로 국어사전에 등재되는 게 맞지 않을까요? --Knight2000 (토론) 2014년 5월 19일 (월) 23:17 (KST)[답변]
국어사전에 등재된 문화재는 매우 제한적이지요. 개별적 문화재는 거의 국어사전에 등재되지 않습니다. 또한, 위키백과는 백과사전이지 국어사전이 아닙니다. 그리고, 제가 언제 띄어쓰기 하지 말자고 했습니까? 국가지정문화재 작명 방식에 따른 기존 총의도 띄어쓰기가 충분히 반영된 작명 방식입니다. 제 질문은 ‘청자 철채퇴화삼엽문 매병’과 ‘청자 철채 퇴화삼엽문 매병’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전자가 기존 방식이고 후자가 Knight2000 님의 독자적인 띄어쓰기 안인데, 후자가 전자에 비해 얼마나 해당 문화재 이해에 큰 효용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 모로 생각해 봐도 기존 방식에 비해 그 효용이 미비하며, 명분은 전혀 없으니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Eggmoon (토론) 2014년 5월 20일 (화) 08:32 (KST)[답변]
(1) 제 방식이 독자연구라면, 위키백과 총의 자체도 사회적인 지침으로 작용하는 독자연구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써야 한다면, 국가지정문화재 작명 방식을 “그대로” 써야 하지, 그것을 위키백과에서 임의로 수정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효용이 미비하여 명분이 없다면, 굳이 총의를 위키백과에서 따로 정할 명분도 없습니다. 그냥 문화재청에서 지정한 방식을 그대로 쓰면 되기 때문입니다. 위키백과에서 따로 정한다는 것은 “총의”라는 이름의 새로운 “독자연구”일 뿐입니다. --Knight2000 (토론) 2014년 5월 21일 (수) 00:35 (KST)[답변]
(2) 이해는 표제어 설명을 하는 첫 문장에서 도와주면 된다고 하셨지만, 이것 역시 몇몇 문서는 띄어쓰기가 되어 있고, 몇몇 문서는 안 되어 있었습니다. 일단 전부 띄어쓰기를 하든, 아니면 국가지정문화재 작명 방식대로 하든, 어느 한쪽으로 통일시켜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일관성이 없었고, 제가 작업을 시작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Knight2000 (토론) 2014년 5월 21일 (수) 00:35 (KST)[답변]

상대주의 입장에선 모두다 독자연구 맞습니다. 그렇지만, 오랜 기간 많은 참여자가 참여하여 그예 결정한 총의조차 독자연구라 치부할 수는 없지요. 위키백과의 모든 총의는 ‘잠정적 합의’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만들어내기 위한 ‘높은 수준의 참여와 오랜 토론’을 무시해도 좋은 것은 아닙니다. 도자기에 관한 총의는 국가지정문화재 작명 방식을 그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그 방식과 Knight2000 님 방식의 차이는 그야말로 한끝 차이입니다. 위키프로젝트:문화유산#문화재 명칭 관련 총의 하단에 있는 유물별 명명 방식 중 도자기 편을 관심 갖고 살펴 주세요. 국가지정문화재 작명 방식대로 정리합시다. 같이 해요.--Eggmoon (토론) 2014년 5월 21일 (수) 00:48 (KST)[답변]

총의가 갖는 참여와 토론을 무시하는 게 아닙니다. Eggmoon 님, 토론에서도 거론되었듯이, 위키백과 외부의 전문가들의 논의를 꼭 따라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외국어의 한글 표기에 대한 총의”에 대한 토론이 시작된 원인이기도 합니다. (현재 그 토론은 흐지부지된 상태입니다.) 그리고 “한국어”라는 입장에서 보면, 국가지정문화재 작명 방식은 표준어에 배치되는 부분이 상당수 존재합니다. 다만, 그것이 그 분야의 특수한 경우이기에 인정되는 것일 뿐입니다. (비슷한 것으로 법률명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Eggmoon 님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굳이 제가 나서서 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Knight2000 (토론) 2014년 5월 24일 (토) 01:34 (KST)[답변]
Knight2000 님이 말씀하신 대로 ‘전문가들의 논의를 꼭 따라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만, 전문가도 아닌, 평범한 위백 사용자가 전문가들이 만들어놓은 용어를 바꿀 능력이 없습니다. 또, 표준어에 배치되는 부분이 상당수 존재하더라도, Knight2000 님 말씀대로 문화재 명칭은 ‘그 분야의 특수한 경우이기에 인정’할 수밖에 없지요. 굳이 나서서 하고 싶지 않으시는 점은 아쉬우나, 정히 그러하시다니 앞으로 동참을 청하지 않겠습니다.--Eggmoon (토론) 2014년 5월 25일 (일) 01:30 (KST)[답변]

원사웅에 관한 토론

여기 글을 남기라고 하셔서 여기 남깁니다.

  • (1)(4) 윤두수와 원균이 인척관계이냐는 사안에 대해서는, “실록에 따르면, 윤두수가 원균의 인척이라고 말했으나, 실록을 제외한 다른 사료에서 인척관계를 증명할 증빙을 찾을 수 없다.” 정도로 정리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도 그렇고요. 진짜로 증빙이 있다면, 이순신빠들이 지금까지 가만히 있을 리 없지요. --123.111.182.4 (토론) 2014년 5월 25일 (일) 22:19 (KST)
  • (3) 원사웅의 전사 및 곤장 맞는 부분은 저도 납득하기 힘듭니다. 그리고 1646년 공신회맹록에서 승계를 논의했고, “승계 논의는 본인의 사망 등의 경우에 한다”는 사실을 남기면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방금 검색해 보니 오마이뉴스에 관련기사가 있습니다만, 오마이뉴스의 역사 관련 기사는 부정확한 경우가 많아서... 좀 그러네요. 한편, 공신회맹록에 등록되었다고 해서 봉록을 더 받거나 하지는 않았으리라 여겨집니다. 인조 때의 공신인 이괄이 난을 일으켰을 만큼 공신에 대한 대우가 열악했는데, 전대도 아니고, 전전대의 공신에게 봉록을 지급되었으리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123.111.182.4 (토론) 2014년 5월 25일 (일) 22:19 (KST)

제가 로그인하지 않는 이유는, 이 주소( 123.111.182.4 )가 PC방 주소이기 때문입니다. 사용자토론:Knight2000 토론란에 글 남겨 주시면 됩니다. --123.111.182.4 (토론) 2014년 5월 25일 (일) 22:19 (KST)

  • 참고 1 - 김완의 해소실기는 전라좌수영도 공격을 당해 군량을 빼앗겼다고 하고 있는데, 당시 이순신의 관할이 전라좌수영이었습니다. 신빙성이 의심되는 사료라고 봐야 합니다. --123.111.182.4 (토론) 2014년 5월 25일 (일) 22:19 (KST)
  • 참고 2 - 이순신의 녹둔도 전투는 전술적 승리, 전략적 패배입니다. 일단 포로를 구출했으니 전략적으로는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기병을 모두 잃어버리고 보군도 상당히 잃어서 녹둔도에서 방어진을 유지할 수 없게 되어 진채를 뒤로 물려야 했습니다. 이는 영토를 잃게 된 상황이라서 전략적 패배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모든 게 “성웅 이순신”이기 때문에 전술적·전략적 승리라고 하는 게 한국의 사학계·군사학계입니다. 그만큼 이순신이 관련되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토의가 되지를 않습니다. 원균에 대한 사후의 서술이 부정적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에는 그러한 면도 작용했으리라 여겨지고 있습니다. 즉, 이순신의 반대자로서 원균이 부각되어, 이순신을 높이기 위해 고의적으로 원균을 깎아내린 면도 크다고 봐야 합니다. 그에 대비하여, 임란 초기의 신립은 문경새재에서 퇴각하던 날(4월 24일) 이미 일본군은 문경새재에 도달한 뒤였습니다. 즉, 일부는 상주를 점령하고, 일부는 문경새재에 도달했는데, 신립은 경계에 실패하여 적전 도주를 해 버린 셈이지요. 그 뒤로도 경계에 성공하여 일본군을 발견했다는 보고를 했음에도 신립은 무시하다가, 궁병으로 쓰라고 모아준 병력으로 기병돌격을 하다가 패배를 당합니다. 이는 명령거부(기마궁병으로 기병돌격한 것)에 패전책임까지 져야할 중대사안임에도 원균에 비하면 아주 비난을 받지 않습니다. 당시 한양에서 모은 병력은 “활을 쏠 줄 아는 사람”을 모아서 이동의 편의와 속도를 위해 “말”에 태워 보낸 것입니다. --123.111.182.4 (토론) 2014년 5월 25일 (일) 22:19 (KST)
  • (1)(4) 제 의견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으셨는데요 님께서는 윤두수가 원균의 인척을 내세울 이유가 없다고 하셨지만 저는 그 상황상 오히려 윤두수가 원균을 자신과의 친분을 내세워 옹호한 것이다라는 의견을 표현했습니다. 이 경우라면 오히려 원균과 윤두수의 인척설에 더 힘이 실리게 되고 또한 전에도 말했지만 원균과 윤두수의 인척관계는 따지고 보면 사소한 것입니다. 원균과 윤두수가 인척관계라고 자칭할 정도면 개인적으로 상당한 친분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고 윤두수는 사료에서 보면 줄곧 원균에게 우호적이었습니다. 다른 증빙이 없기는 하지만 굳이 그 사실을 넣을 필요는 없다고 보입니다. 아니면 윤두수가 원균과 친척관계를 자칭할 정도로 원균과 친분이 있음을 의미한다는 문장도 같이 넣던지요 전에도 말했지만 그 상황에서 윤두수가 원균의 친적이라고 얻을 이득이 없는점과 원균과 윤두수의 관계가 아예 없을 수 있는 가능성이 제로가 아닌점 마지막으로 원래 윤두수와 원균이 상당히 친분이 있는 점으로 볼때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볼수는 없다고 봅니다.
  • (3) 원사웅의 사망연도는 생몰년도 미상으로 하고 1646년에 공신회맹록에서 사망시의 이야기가 나오는 승계가 나온 것으로 보아 1646년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도로 정리하면 어떨까요? 그리고 봉록이야기를 갑자기 왜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약간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 참고1 해소실기에서 전라 좌수영이 공격을 당했다는 부분을 명시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도 전라 좌수영 부분을 찾기는 했는데 님이 말하신 것과 좀 상황이 모순되서요 제가 미처 찾지 못한 부분인지 확인하고자 합니다. 제가 찾아낸 부분은 이 부분이고 다른 곳에서는 전라 좌수영이 언급된 부분을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 같은 달 15일에 풍세(風勢)가 불리하여 온천도(溫川島 칠천도)로 진을 옮겼는데, 16일 5경 초에 적도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포를 쏘며 야경을 하니, 아군은 창황(蒼黃)하여 닻을 올리고 재빠른 자는 먼저 온천도를 나오고, 둔한 자는 아직 나오지 못하였는데, 적은 이미 주위를 둘러싸 포위하였습니다. 전라 좌수영의 군량선(軍糧船)을 이미 먼저 빼앗겼는데, 주장(主將)은 조치를 잘못하여 여러 전선이 붕괴되어 절반은 북으로 진해(鎭海)로, 절반은 거제(巨濟)로 달아났습니다.

이 부분이라면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상황묘사와 날짜를 보면 이는 칠천량해전 당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이순신은 백의종군 중이었고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로서 삼도의 수군을 전부 이끌고 출전하였으니 전라좌수영의 배가 있어도 이상한 것이 아니며 설령 전라좌수영의 배가 아니라 군량이라 해석해도 이는 마찬가지입니다.

  • 또한 해소실기가 개인적인 공훈에서는 과장된 면이 있을수 있으나 다른 사료에서도 칠천량해전을 전투상황을 비슷하게 묘사하고 전개과정이 체계적이고 상세한 것을 보아 최소한 칠천량해전 부분에서는 신뢰성이 있다고 판단됩니다.


  • 참고2 저는 이순신의 녹둔도전투에 대해서는 아무런 편집을 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거의 없고요 다른 토론자와 착각하신거 아니신가요?
  • 참고3 전부터 느낀건데 토론이 좀 겉도는 것 같습니다 해당 주제에 집중해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사료를 보실 때 너무 지엽적인 부분에만 집중하시는 것 같습니다. 윤두수의 친족 언급이나 해소실기의 경우 너무 한 문장만 보고 판단하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 저도 오마이뉴스는 거의 신뢰하지 않습니다. 보통 그 기사를 보고 1차 사료를 추적하여 확인합니다.

Ronain (토론) 2014년 5월 26일 (월) 11:27 (KST)[답변]

참고는 그냥 참고만 하시라고 쓴 내용입니다. 녹둔도 전투는 이순신 관련 서술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예시입니다. Ronain 님이 그 글을 썼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료를 지엽적으로 본다는 평은 종종 듣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료를 볼 때 중시하는 것은 사실관계입니다. 즉, 해당 내용 각각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먼저 살핍니다. 그와 관련하여 오기인지 아닌지를 조사해 나가지요. --Knight2000 (토론) 2014년 5월 26일 (월) 22:46 (KST)[답변]
그러면 제 의견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시는 가요? Ronain (토론) 2014년 5월 26일 (월) 23:04 (KST)[답변]
일단 해소실기 부분은, Ronain 님이 주석을 다시면서 링크해 주신 부분을 따라갔습니다. 그 페이지 내용을 읽다가 제가 착각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Knight2000 (토론) 2014년 5월 28일 (수) 18:29 (KST)[답변]
윤두수의 발언은 앞서 말했듯이 실록 이외에는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또한 윤두수의 발언에 대한 근거조차 실록에는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두서없이 “인척이다”라는 말로 끝입니다. 삼국지의 유비가 황제의 후예라는 것이 훗날 두고두고 까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유비의 발언 이외에는 오늘날 남은 사료가 없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유비는 촉한을 세운 뒤 족보조차 정리하지 않았고, 사관조차 두지 않았습니다. --Knight2000 (토론) 2014년 5월 28일 (수) 18:29 (KST)[답변]
원사웅 사망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리고 봉록에 대한 이야기... 조선에서는 관직을 그만두거나 죽은자에 대해서도 그 부인에게 봉록을 내리는 일이 있었는데, 요즘으로 치면, 유가족 혜택 비슷한 것이며, 이는 유교에서 부부일심동체라는 사상에서 부인에게 벼슬을 내린 것에서 유래합니다. 원균의 부인이 빈한하게 살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는 것은 봉록이 제대로 지급되지 못했다는 뜻이 되기에 봉록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Knight2000 (토론) 2014년 5월 28일 (수) 18:29 (KST)[답변]
* 비유가 적절하지 못합니다. 유비가 황실의 후손을 자처하여 얻을 이득은 있지만 윤두수가 원균의 인척을 자청하여 얻을 이득은 없습니다. 그 상황에서는 오히려 피해로 돌아올수 있습니다. 윤두수와 원균의 인척관계는 다음과 같은 서술을 각주로 달아 정리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실록에는 윤두수가 원균과의 친척관계를 자칭하였으나 그외의 증빙자료는 찾아볼수가 없다. 원균의 부인이 파평 윤씨이고 윤두수가 해평 윤씨여서 윤두수가 뭔가 착각을 한게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다. 다만 윤두수가 원균의 친척을 자칭할정도로 친분관계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위 내용과 다른 식으로 서술하기를 원하시면 말씀해주세요

* 파평 윤씨의 경우는 저도 어떤식으로 적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족보를 정확하게 확인하지는 않았으나 일단 종친회 쪽을 뒤져보니 원균의 직계후손을 자칭하는 인물이 몇 있었습니다. 이경우 자녀가 없다는 말이 말이 되지 않나 생각했는데 사료를 다시 확인하니 이런 경우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상전(上典)이 정유년에 전망(戰亡)하였는데 난리중이라 간단히 임시로 진위(振威) 땅에 장사지냈는데, 그 후에 다만 첩의 자식 하나밖에 없는데다 가계(家計)는 판탕(板蕩)되어 영폄(永窆)하지 못했다고 하며, 부인 윤씨는 올해 96세로 충청도 홍주 땅에 유랑하다가 지난 9월 16일에 죽어 장차 발인(發引)하여 같은 현 경내의 다른 산에 자리를 옮겨 정하여 이번에 천장(遷葬)하려 하는데, 일로(一路)의 상여꾼과 조묘군(造墓軍), 이장에 쓸 여러 물품을 전혀 변출(辨出)할 수 없어 하늘에 사무치도록 걱정될 뿐만 아니라 상전이 녹훈(錄勳)하기 이전에 죽었기 때문에 아직 예장(禮葬)하는 은전이 행해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작고한 선무공신 덕풍부원군 이순신, 상락부원군 김시민, 개백군 기효근이 천장할 때의 전례에 의거하여 은전을 시행하도록 본부의 등록을 상고(相考)하여 수거(收擧)해 아뢰어 처치해 주십시오.

이 상소는 적혀있다시피 윤씨를 모시던 노비가 적은 것입니다. 유랑했다는 구절로 보아 자식과의 인연이 끊어져서 다른 곳으로 떠돌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연락이 끊긴지 오래되어 자녀가 없다는 표현을 쓴게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다른 의견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그런데 이 부분은 원사웅의 생몰년도가 불확실해진걸로 해결된게 아닌가요? 다만 이경우에도 원균집안의 대가 끊기지 않았으니 자손들이 불효막심한건 마찬가지가 되나요? 저는 솔직히 이 부분을 어떤식으로 서술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Ronain (토론) 2014년 5월 28일 (수) 21:41 (KST)[답변]

윤씨를 모시던 노비가 적은 글에 따르면, “저의 상전(上典)이 정유년에 전망(戰亡)하였는데 난리중이라 간단히 임시로 진위(振威) 땅에 장사지냈는데, 그 후에 다만 첩의 자식 하나밖에 없는데다 가계(家計)는 판탕(板蕩)되어 영폄(永窆)하지 못했다”라는 부분은, 정유년에 누군가가 전사(戰死)하여 진위(振威) 땅에 가매장하였으나, 전사한 사람(원균?)의 자식이 첩실 소생 하나뿐이고 재산을 탕진하여 이장을 못했다는 뜻입니다. 이 경우 원사웅이 살아있더라도 그 어머니인 부인 윤씨의 이장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왜? 앞서 재산을 탕진했다고 했으니까요. 여기에서 하나 더 알 수 있는 것은, 원균 가문의 재산을 원균이나 원사웅이 아닌 부인 윤씨가 피난 도중에 탕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녹훈되지 못했다고 적고 있어서 공신회맹록의 내용과도 배치됩니다. 배치되지 않는다면, 공신 책봉은 되었으나 봉록은 받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상소의 전체적인 서술로 볼 때, 조작이 아니라면, 원사웅은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Knight2000 (토론) 2014년 5월 28일 (수) 23:26 (KST)[답변]
유비가 처음 거병할 때 매우 빈한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황족을 자처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상황이지요. 십상시의 난 등으로 황족이 무더기로 죽어나가는 상황인데, 아무 힘도 없는 유비가 황족을 자처하여 위험을 자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유비가 황족이라서 사람들이 모였다고 하는데, 사실 유비보다는 미방,미축 형제가 옆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인 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미씨 일족은 1억 냥 이상의 재산을 가진 한나라의 3대 거부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이때 그러한 주장들-유비의 황족 자칭, 윤두수의 원균 인척 자칭-은 공통적으로 그들의 말 이외에는 제3의 증빙이 없습니다. --Knight2000 (토론) 2014년 5월 28일 (수) 23:36 (KST)[답변]
여기서 말하는 상전은 원균이 맞습니다. 상소를 올린 주체가 원릉군 원균의 호노(戶奴)인 백종입니다. 그리고 또 사료를 이상하게 해석하시네요 상전이 녹훈하기 이전에 죽었다는 말은 원사웅이 아니라 원균에 대해서 한말입니다. 뒤에 작고한 선무공신 이순신 등의 예에 따라 행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보면 쉽게 알수 있고 줄곧 원균을 상전으로 칭해왔는데 원사웅을 말한 거라면 다른 칭호를 썼겠죠 그리고 점점 신뢰도에 의심이 가는게 이 상소에서는 자식이 첩의 소생 하나뿐이라고 하는데 알려진 원균의 아들은 첩에서 난 한명(이름은 모름)과 원사웅입니다. 원사웅은 정실부인의 아들인줄 알았는데 첩의 자식이었나요? 아니면 원래 첩의 자식이었는데 양자형식으로 받아들인건가요? 지금 충훈부등록에 기록된 내용과 다른 사료의 기록들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습니다. 일단 원사웅이 정실부인의 자식인지부터 확인해야겠는데요
원균이 녹훈된 때는 선조 때이고, 윤씨 부인이 죽은 때는 인조 때입니다. 신뢰성 문제의 근본원인은 선조실록/수정실록의 신뢰도가 다른 왕의 실록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데 있습니다. 다른 왕 때처럼 신뢰도가 어느 정도 확보되었다면, 윤두수 발언도 “아, 그럴 수도 있겠다”라면 넘길 것입니다. --Knight2000 (토론) 2014년 5월 29일 (목) 00:19 (KST)[답변]
윤씨부인이 인조때 사망한 것과 원균이 선조때 녹훈 받은 것은 별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Ronain (토론) 2014년 5월 29일 (목) 00:27 (KST)[답변]
녹훈이 되면, 벼슬에 나가지 않아도 봉록이 나옵니다. 매우 어렵게 살았다고 하니, 인조 때 윤씨부인에게 줘야할 봉록을 주지 않은 듯싶습니다. 즉, 선조 때 녹훈되었으나 인조 때는 봉록이 지급되지 않아 윤씨부인이 곤궁하게 살았다는 뜻입니다. --Knight2000 (토론) 2014년 6월 5일 (목) 01:05 (KST)[답변]
네 알겠습니다. 님은 '실록에 따르면, 윤두수가 원균의 인척이라고 말했으나, 실록을 제외한 다른 사료에서 인척관계를 증명할 증빙을 찾을 수 없다. ' 정도로 정리하시길 원하시는데 저는 이부분에 '다만 자칭한 걸 보면 상당한 친분관계는 있었을 것이다' 라는 문장을 추가하고 싶다는 입장입니다. 님은 이 문장을 추가하는데 반대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실록에 기록된 것이 오류일거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Ronain (토론) 2014년 5월 29일 (목) 00:04 (KST)[답변]

어떤 서술이든 저는 찬성합니다. 그러한 견해가 있음은 모두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Knight2000 (토론) 2014년 5월 29일 (목) 00:19 (KST)[답변]
그러면 윤두수 인척관계는 그렇게 서술하도록 하겠습니다. Ronain (토론) 2014년 5월 29일 (목) 00:27 (KST)[답변]

토론:탄화 수소에서 제목의 띄어쓰기에 대한 이의

자세한 내용은 해당 토론에 적혀 있지만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아 유일하게 이의를 제기하신 분께 글 남깁니다. 해당 토론에서 지적하신 이산화 탄소의 경우, 중간에 띄어쓰기 한 것은 대한화학회에서 영단어 carbon dioxide에 있는 띄어쓰기를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며, 탄화수소의 경우에는 영어로 hydrocarbon이므로 띄어쓰기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답변 부탁드립니다. --제0자 (토론) 2014년 9월 28일 (일) 18:07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