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바쿠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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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바쿠닌
Михаил Александрович Бакунин

출생 1814년 5월 30일
러시아 러시아 프레무히네
사망 1876년 6월 13일
스위스 스위스 베른
직업 철학자, 혁명가

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 바쿠닌(러시아어: Михаил Александрович Бакунин, 1814년 5월 30일 ~ 1876년 6월 13일)은 러시아 출신의 아나키스트 혁명가이자 철학자이다. 바쿠닌에의하여 당시 유럽에서 산발적으로 나타나던 특정한 혁명적 좌파 세력이 자신을 아나키스트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자각하게 됐고, 이로서 아나키즘은 본격적으로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등장하게 되었다. 따라서 바쿠닌을 "아나키즘의 아버지"라 부르기도 한다. 그의 주요 이론은 아나코-집산주의였다.

생애[편집]

미하일 바쿠닌은 프레무히네의 1,200여명의 농노를 가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포병 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 활동하였으나 1835년 제대했다. 그는 독일 철학에 심취하여 철학 모임에서 활동하였다. 1840년 바쿠닌은 베를린에서 대학 강의를 들었다. 베를린에서 유학당시 본래 교수가 되려 했으나, 헤겔좌파를 만나고 이에 가담해 사회주의 운동을 시작한다. 그는 1842년 헤겔좌파의 일원인 아르놀트 루게가 발행하던 '독일 연보'에 '독일에서의 반동'이라는 글을 썼다. 이글에서 혁명주의자로서 그의 입장을 대변하는 문장이 글의 마지막에 등장한다. "파괴의 열정은, 또한 창조의 열정이다."[1] 그는 1844년브뤼셀을 거쳐 파리에 도착하여 독일인 망명자들을 만났다. 그는 카를 마르크스와 친교 관계를 맺었으며 이때까지는 매우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그는 많은 지식인들과 교류하였으며 특히 프루동과 친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스승 노릇을 하기도 했다. 그는 1847년 프랑스에서 추방되었다.

1849년 드레스덴의 폭동에 리하르트 바그너와 함께 참가하였으나 체포되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요새감옥에 수감된다. 그는 니콜라예프스크에서 일본과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탈출해 1861년 런던에 도착한다. 그는 마르크스를 만나 인터내셔널에 참가했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바쿠닌의 관계는 급속히 악화되었다. 그는 세르게이 네차예프와도 깊은 관계를 맺었는데, 네차예프는 자신을 바쿠닌의 후계자로 자처했다. 바쿠닌이 《자본론》을 러시아어로 번역할때 네차예프가 그 "하찮은 일"을 관두라고 권했다. 그러나 바쿠닌이 출판업자로부터 선금을 받아 불가능하다고 하여 네차예프는 출판업자에게 죽이겠다고 협박을 한다. 바쿠닌이 이 일을 알았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마르크스는 1872년에 네차예프의 편지를 구실로 바쿠닌을 인터내셔널에서 축출했다. 바쿠닌은 1875년 투쟁을 그만하겠다고 쥐라연맹에 통보하고 이탈리아로 떠났으나 그곳의 카를로 카피에로와 사이가 나빠져 자신의 친구인 포크트가 있는 베른으로 돌아왔다. 바쿠닌은 그곳에서 사망했다.

사상[편집]

바쿠닌은 프루동과 함께 대표적 아나키스트였다. 하지만 친교를 맺었던 프루동의 개인주의 아나키즘과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론보다 행동을 강조 했으며 파괴는 창조의 열정이라는 역설을 통해 파괴를 긍정하는 독특한 사상을 만들어 냈다. 그는 마르크스의 사적유물론과 자본론은 긍정 했지만 중앙집권을 지향하는 마르크스의 국가 권력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부정했으며 분권화된 집산주의와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고 상속 재산제와 국가의 폐지를 주장 했다. 그는 마르크스의 이론대로면 반드시 독재자가 나오기 마련이라고 생각했고, 그의 예언은 소련이라는 이름으로 실현되었다. 바쿠닌은 마르크스엥겔스보다도 극단적인 사람이었다. 인터내셔널이 분사 하기전 까지 마르크스와 사상적 대결로 인해 점차 청년기의 슬라브 범민족주의를 버리고 아나키즘과 생디칼리즘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게 된다. 20세기 아나키즘의 조류를 이루었던 조르주 소렐의 생디칼리즘과 표트르 크로포트킨의 사회주의 아나키즘의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는 <신과 국가>에서 무신론·권력 부정을 주장하여, 러시아의 니힐리즘에 영향을 주었다. 저서로 <노동 동맹과 사회 혁명> 등이 있다.[2]

바쿠닌은 신으로부터 내려오는 관념부터 군주의 의지 심지어 보통 선거를 통해 나오는 귄위든지에 관계없이 모든 형태의 국가주의적 위계적 시스템을 부정했다. 그는 신과 국가에서(Dieu et l'État, God and the State) 다음과 같이 썼다.[3]

인간의 자유는 신성함, 인간, 집단 혹은 개인 같은 어떠한 외부적 힘이 그에게 강요 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그 자신이 스스로를 인식한 자연적 법칙에 따르는 것이다.

바쿠닌은 비슷하게 모든 종류의 특권적 위치나 계급을 부정했고 이것이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야기하며 개인의 자유와 호환될 수 없다고 했다. 자유주의가 자유시장과 입헌 정치로서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과는 반대로, 바쿠닌은 국가와 자본주의는 어떠한 형태로든간에 노동자의 자유와 호환될 수 없다고 했다.

특권과 모든 특권적 위치의 특징은 인간의 지성과 마음을 죽이는 것이다. 특권을 지닌 자는 그 특권이 정치적인 것이든지 경제적인 것인지에 무관하게 지성과 마음이 타락한 자이다.

바쿠닌의 사상은 자유, 사회주의, 연방주의, 반신론, 유물론등의 상호적 개념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그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선구적인 비판을 했는데,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성공적으로 권력을 장악 한다면 일당 독재 체제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예측했다.

국가가 있기 위해선 반드시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지배해야 하며, 결과적으로 노예제가 등장할 수 밖에 없다. 노예제 없는 국가는 상상할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국가의 적인 이유다. ‘프롤레타리아가 통치계급이 된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의미인가? 모든 프롤레타리아가 정부의 수반을 맡는다는 말일까? 독일에는 4천만의 민중이 있는데, 그들 모두가 정부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말일까? 정말 그런 경우라면, 국가도 정부도 없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국가를 탄생 시킨다면, 당연히 지배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노예도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 이런 딜레마는 손쉽게 해결된다. 인민에 의해 선출된 소수의 대리자들이 인민의 정부를 꾸리는 것이다. 전국에서 보편 선거를 거쳐 당선된 이른바 민중의 대표와 국가의 통치자, 이것이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민주주의자들의 결론이다. 그러나 이것은 소수 지배계급의 독재라는 사실을 뒤편에 숨긴 거짓말이다. 이 거짓말이 더욱 위험한 이유는, 이것이 인민의 뜻을 대변한다며 등장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는 언제나 같은 결과를 내놓을 것이다. 특권을 가진 소수의 정부가 탄생할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 소수가 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다. 물론 그렇겠지만, 그들은 전(前)노동자일 뿐이다. 그들이 대표자나 통치자가 되는 순간 더이상 노동자가 아니게 되며, 국가 권력의 가장 높은 곳에서 노동자들을 내려다보게 될 것이다. 결국 그들은 더 이상 노동자를 대변하지 않게 될 것이고, 단지 민중을 지배하고자 하는 그들 자신의 욕구만을 대변하게 될 것이다. 이를 의심하는 사람은 인간의 본성을 잘 알지 못하는 자이다.

Statism and Anarchy[4]

사람들이 몽둥이로 맞고 있을 때, 그 몽둥이가 “민중의 지팡이”라고 불린다고 해서 행복해 하진 않을 것이다.

Mikhail Bakunin, 1873, Statism and Anarchy[5]

권위와 자유사상[편집]

바쿠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모든 권위를 거부해야하는가? 내 생각은 결코 그렇지 않다. 부츠의 경우를 보자면, 나는 부츠 장인의 권위를 참고할 수 있다. 또한 주택, 운하, 철도등에 대해서 나는 기술자나 건축가의 의견을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특별한 지식에 대해서 나는 그런 종류의 학자들의 뜻에 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츠장인이나 건축가 또는 기술자들이 그들의 권위를 나에게 행사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지성, 인격, 지식들을 존중하며 경청할 것이지만, 한편으로 나의 비난과 비판의 권리는 언제나 남겨둘 것이다. 어떤 종류의 특별한 부분일지라도 나는 단독적인 권위에 자문하는 것에 만족 하지 않을 것이며, 여러 종류의 의견을 비교하여 나에게 적합해 보이는 것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떤 특별한 물음일 지라도, 무결한 권위가 없음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내가 그러한 사람들의 성실함과 정직함을 존중하고 말고에 상관 없이, 나는 어떠한 사람에게도 절대적인 믿음을 갖지 않는다.”[6]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므로 고정되고 불변한 권위는 없으며 지속적으로 상호교환 되고 일시적인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발적인 권위와 순종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고정되고 불변하며 보편적인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보편적인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어떠한 사람도 삶에 대해서 과학적인 실험을 하지 않고서는 세밀한 다양함을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실험의 결과물은 오직 사회적 삶을 통해서 나타날 뿐이다.”[6]

신학에 대한 반대[편집]

정치 철학자 칼 슈미트는(Carl Schmitt)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후대의 아나키스트들과 비교하면 프루동은 가부장적 권위를 존속 시키며 일부일처제의 원칙을 고수한 도덕주의적 쁘띠 부르주아였다. 바쿠닌은 일관되고 완전한 자연주의의 추구를 위하여 첫번째로 신학에 대항했다… 그에게 있어서 신과 죄악에 대한 신학적 교리는 무엇보다도 사악하고 부정적인 것이였으며, 인간을 죄인으로 낙인 찍고서 권력과 지배의 굶주림을 채우기위한 지배계급의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7]

바쿠닌은 신앙이란 단지 인간의 추상적인 사고능력과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했다.[8][9] 바쿠닌에 의하면 종교란 주입과 순응에 의하여 지속되는 것이다.바쿠닌의 생각에 종교가 생존하는 또다른 이유는 빈곤의 존재 때문이였다. 현실에서 착취에 대한 고통을 잊기 위해 내세에서 구원을 약속하는 종교에 집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바쿠닌에 의하면 압제자는 종교를 통하여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많은 종교적인 사람들이 천상에서의 행복에 대한 약속에 집착하여, 지상에서 벌어지는 불의에 대하여 순응하기 때문이다.[3]

바쿠닌은 압제자는 종교를 통하여 권위를 받는다고 주장했다. 종교적인 사람들은 대체로 사제의 진술에 순종하는데, 그들의 주장이 계시나 경전에서 비롯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많은 종교적인 사람에게 계시와 경전에 대한 순종은 전지전능한 존재에게서 비롯된 윤리적 기준으로 간주된다. 그렇기에 각각의 진술은 무오한 신에게서 비롯된 것이며 인간이 결코 비판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이런 종교적 사고방식에 따르면 인간은 무엇이 옳은지 스스로 알수 없으며, 오직 신만이 선악을 결정할 수 있는 자이다. “신의 사자”에 복종하길 거부하는 자는 지옥에서 고통받을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3]

바쿠닌에 의하면 신앙적 권력의 독점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은 모든 이가 신으로부터 동등하게 영감을 받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다수의 모순되는 가르침이 존재하게 되며 이것은 모순을 능가하는 무오한 신을 인정하는 것이 되어버린다. 따라서 바쿠닌에게 종교는 권위주의적인 것으로서 간주되었다.[3]

바쿠닌은 그의 저서 신과 국가에서(God and the State)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인간적인 이성과 정의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의 자유를 가장 결정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며, 필연적으로 인간을 명실상부한 노예상태로 이끌 것이다.” 따라서 바쿠닌은 볼테르의 다음의 유명한 아포리즘 “신이 없다면, 그를 만들어야 한다.” 을 다음과 같이 뒤집는다.

천상의 왕은 지상의 왕의 가장 큰 변명거리이니, 신이 존재한다면 그를 폐하라.[3]

사회혁명을 위한 계급투쟁[편집]

바쿠닌의 혁명적 프로그램을 실천하는 방법은 그의 원칙과 일치했다. 노동자와 농민들이 아래로부터 조직된 지역적 구조를 만들며, 각 지역의 상호적으로 연결하여 연방을 만들고 이로서 관념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10] 그들의 움직임은 그들의 생각과 행동으로서 미래의 새로운 사회의 구성 요소를 만들어 낼 것이다. 이것은 아나키즘 혁명에 대한 전략으로서 생디칼리즘을 이야기한 것이다. 노동조합이 직장을 점령하고 이를 기반으로 노동자들의 조건과 권리 그리고 소득을 향상시키고 방어할 수단을 제공하며 이로서 사회 혁명의 기초를 닦는 것이다. 생디칼리스트 조합은 직장을 점령하고 노동자 자주관리를 통하여 급진적으로 민주적인 구조를 제공할 것이며, 대규모의 경제적 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바쿠닌에 의하면 노동조합은 “빌딩과 자본만이 아니라 생산의 모든 도구를 점령해야 하는것이다.”[11]

바쿠닌의 혁명론은 생디칼리즘 조합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노동계급과 실업자들의 조직화를 강조했다. 한편 농민들은 그들의 토지를 얻고서 타인의 노동에 의해 살아가는 지주를 타도할 수 있을 것이다.[12] 하지만 그 시기에 노동조합은 공공연히 비숙련 노동자를 무시하곤 했다. 바쿠닌은 그러한 “잡것”들과의 조직화도 굉장히 강조했다. 바쿠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룸펜프롤레타리아, 빈곤과 착취에 고통받는 위대한 대중들” 그리고 “승리와 사회혁명의 시대를 가져다 줄것이다.”[13]

마르크스주의 비판[편집]

미하일 바쿠닌과 카를 마르크스 사이에서의 분쟁은 아나키즘과 마르크스주의의 차이점을 강조한다. 그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개념을 맹렬히 비판했다. 즉 맑스 레닌주의 같은 전위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하고서 프롤레타리아의 뜻을 대변한다는 미명아래 일당 독재의 권력을 위에서 행사하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14] 바쿠닌은 혁명은 반드시 인민이 직접적으로 이루어 내야 하며, “계몽된 엘리트”들은 눈에 보이지 않게 남아 행사함으로서 누구에게도 모든 공적인 권리와 의의를 박탈해서도 부과해서도 안된다고 주장했다.[15]그는 어떠한 형태의 정부이든지 간에 결국에는 억압을 유발하기 때문에 국가는 즉시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14] 이러한 분쟁에 대하여 자유지상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는 그 용어를 당의 독재가 아니라, 생산수단에 대한 노동자 통제(Workers' control)를 의미하여 사용했고, 사회가 사회주의의 원칙에 따라 재구성될때 까지는 국가가 유지될 것이라고 첨언했다.

그들은 오로지 독재를—물론 그들의 독재이다— 유지하며 민중의 뜻을 대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대답은 결코 그렇지 않다. 어떠한 독재도 자기영속 외에 다른 목적을 가질 수 없다. 이는 오직 민중이 견뎌내야 하는 노예제를 낳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자유는 오직 자유에 의해서만 탄생할 수 있다. 인민의 보편적인 반란과 노동자들의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자유로운 연합이 이를 이루어내야 한다.

Mikhail Bakunin, Statism and Anarchism[16]

우리는 사회주의 없는 자유란 특권이자 불의이며, 자유 없는 사회주의란 야만이자 노예제라고 확신한다.

Mikhail Bakunin, Federalism, Socialism, Anti-Theologism, 1867[17]

아나키스트들과 마르크스주의자들 모두 그들의 최종적인 지향점으로서 자유와 평등 그리고 계급과 정부가 없는 사회를 목표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점이 있지만, 그들은 이를 달성하는 법에 대하여 극심한 의견 충돌이 있다. 아나키스트들은 이를 달성하기 위해 민중의 직접행동과 사회혁명이 정점에 달함으로서 국가도 계급도 없는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프롤레타리아 독재같은 모든 종류의 중단 단계를 부정하고, 이는 오직 독재의 자기영속의 기초가될 뿐이라고 생각한다. 바쿠닌에게 있어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근본적인 모순은 다음과 같았다. “국가와 독재가 해방의 수단이기 때문에, 민중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그들은 먼저 노예가 되어야 한다.”[18]

하지만 바쿠닌은 1844년 마크르스와의 만남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글을 쓰기도 했다.

지금까지 배운한 마르크스는 여전히 나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앞서있다. 나는 정치 경제학에 대해선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으며, 아직까지 형이상학적 관점을 완전히 치워버리지 못했다… 그는 나에게 감상적인 이상주의자라고 불렀는데 아마 그의 말이 맞을 것이다. 나는 그를 자만심이 많고 믿을 수 없으며, 교활한 사람이라고 불렀는데 이 또한 맞을 것이다.[19]

바쿠닌은 마르크스의 경제 분석이 유용하다고 생각해서 자본론을 러시아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이어서 마르크스는 1848년 드레스덴 봉기의 반항자들에 대한 글을 썻다. “그들은 유능하고 냉철한 지도자, 러시아 망명자인 미하일 바쿠닌을 발견했다.”[20] 마르크스는 바쿠닌이 시베리아의 유배지에서 탈출한 이후인 1864년 엥겔스에게 바쿠닌과의 만남에 대해여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16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전혀 쇄약해진 모습도 없이 더욱 성장한것 같더군”[21]

연방[편집]

바쿠닌의 연방이란 자유로운 엽합과 연방에 기초한 사회의 조직체를 의미하는 것이다.[22]그렇기에 사회란 개인과 생산적인 협회, 코뮌의 절대적인 자유에 기초해야하며 모든 개인, 모든 연합, 모든 코뮌, 모든 지역, 모든 민족이 완전하게 자율적으로 결정할 권리를 갖고서 그들의 바람에 따라 행해지는 것이다.[23]

자유[편집]

바쿠닌에게 자유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타인과의 평등한 자유에 기반한 구체적인 현실이다. 적극적 자유의 의미에서 자유는 다음과 같은 것으로서 구성되어 있다. “교육과 과학의 연마 물질적 풍요에 의하여 인간의 재능과 능력을 최대한 개발하는 것” 이러한 자유의 개념이란 “오직 사회를 통해서만 현실화될 수 있는 대단히 사회적인 자유이며” 결코 고립된 것이 아니다. 소극적 자유의 의미에서 자유란 “모든 신성함과 집단 그리고 개개의 권위에 대한 개인의 반란이다.”[24]

유물론[편집]

바쿠닌은 초자연적인 영역에 대한 종교적 개념을 거부하고 자연 현상에 대한 유물론적 설명을 옹호했다. “과학의 임무는 사건의 관계를 관찰함으로서 물리적 그리고 사회적 세계의 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법칙을 확립하는 것이다.”[25] 하지만 바쿠닌의 유물론은 관념과 문화를 포함한 인간사의 비경제적 측면을 강조 했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와는 다르다.

혁명의 가능성[편집]

바쿠닌은 룸펜프롤레타리아프롤레타리아의 혁명의 가능성에 대하여 마르크스와 비교하자면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둘 모두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에 중요한 역할을 할것이라고 생각 했지만 마르크스에게는 프롤레타리아는 혁명을 이끌 수 있는 독점점인 행위자였다. 반면 바쿠닌에게는 농민뿐만 아니라 룸펜프롤레타리아도(실업자, 범죄자, 성노동자등) 특정한 때에 봉기를 일으킬 수 있는 존재였다.[26] 바쿠닌은 “자본에 대한 더욱 파괴적인 혁명의 힘을 위하여 노동자들의 통합을 고려 했다. 바쿠닌에게 있어서 혁명의 원형은 농민의 환경에서도 찾을 수 있으며 교육받은 실업 청년에게서도, 사회의 주변부에 있는 모든 계급들, 도둑과 강도들, 가난한 대중들 그리고 사회의 여백에서 벗어나거나 이로부터 제외된 자들 혹은 아직 산업 노동의 규율에 포섭되지 않은자들… 즉 마르크스가 ‘룸펜프롤레타리아’라고 규정한 모든 이들이였다.”[27] 바쿠닌은 목숨 이외에 잃을게 없는 이들을 누구 보다도 열렬한 혁명적 힘을 가진 자들로 보았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https://theanarchistlibrary.org/library/mikhail-bakunin-the-reaction-in-germany
  2.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
  3. God and the State, Michael Bakunin, 1882
  4. If there is a State, there must be domination of one class by another and, as a result, slavery; the State without slavery is unthinkable — and this is why we are the enemies of the State. What does it mean that the proletariat will be elevated to a ruling class? Is it possible for the whole proletariat to stand at the head of the government? There are nearly forty million Germans. Can all forty million be members of the government? In such a case, there will be no government, no state, but, if there is to be a state there will be those who are ruled and those who are slaves. The Marxist theory solves this dilemma very simply. By the people’s rule, they mean the rule of a small number of representatives elected by the people. The general, and every man’s, right to elect the representatives of the people and the rulers of the State is the latest word of the Marxists, as well as of the democrats. This is a lie, behind which lurks the despotism of the ruling minority, a lie all the more dangerous in that it appears to express the so-called will of the people. Ultimately, from whatever point of view we look at this question, we come always to the same sad conclusion, the rule of the great masses of the people by a privileged minority. The Marxists say that this minority will consist of workers. Yes, possibly of former workers, who, as soon as they become the rulers of the representatives of the people, will cease to be workers and will look down at the plain working masses from the governing heights of the State; they will no longer represent the people, but only themselves and their claims to rulership over the people. Those who doubt this know very little about human nature. Statism and Anarchy
  5. when the people are being beaten with a stick, they are not much happier if it is called "the people's stick".
  6. "What is Authority?" by Mikhail Bakunin
  7. Carl Schmitt (2005). Political Theology. University of Chicago Press. pg. 64
  8. https://www.marxists.org/reference/archive/bakunin/works/1871/paris-commune.htm
  9. Michail Bakunin: Political Theology of Mazzinni; (1871); from the book: Michael Bakunin: Selected Writings published in 1973.
  10. Mikhail Bakunin, 《Works of Mikhail Bakunin 1871》, Marxists.org, 2009년 9월 8일에 확인함 
  11. Mikhail Bakunin, 《Works of Mikhail Bakunin 1870》, Marxists.org, 2009년 9월 8일에 확인함 
  12. https://www.marxists.org/reference/archive/bakunin/works/1870/letter-frenchman.htm
  13. On the International Workingmen's Association and Karl Marx, Mikhail Bakunin, 1872
  14. Woodcock, George (1962, 1975). Anarchism, 158. Harmondsworth, England: Penguin Books. ISBN 0-14-020622-1.
  15. 《Was Bakunin a secret authoritarian?》, Struggle.ws, 2009년 9월 8일에 확인함 
  16. They insist that only dictatorship (of course their own) can create freedom for the people. We reply that all dictatorship has no objective other than self-perpetuation, and that slavery is all it can generate and instill in the people who suffer it. Freedom can be created only by freedom, by a total rebellion of the people, and by a voluntary organization of the people from the bottom up. Statism and Anarchy
  17. Mikhail Bakunin (1867). “Federalism, Socialism, Anti-Theologism”. Marxists.org. 
  18. while state and dictatorship is the means, and so, in order to free the masses of people, they have first to be enslaved! Mikhail Bakunin, 《Works of Mikhail Bakunin 1873》, Marxists.org, 2009년 9월 8일에 확인함 
  19. Quoted in Brian Morris, Bakunin: The Philosophy of Freedom, 1993, p14
  20. New York Daily Tribune (October 2, 1852) on 'Revolution and Counter Revolution in Germany'
  21. Quoted in Brian Morris, Bakunin: The Philosophy of Freedom, 1993, p29
  22. https://www.marxists.org/reference/archive/bakunin/works/1866/catechism.htm
  23. https://www.marxists.org/reference/archive/bakunin/works/1866/catechism.htm
  24. Man, Society, and Freedom, Mikhail Bakunin, 1871
  25. Selected Writings
  26. "Marxism and Anarchism: The Philosophical Roots of the Marx-Bakunin Conflict – Part Two" by Ann Robertson.
  27. Nicholas Thoburn. "The lumpenproletariat and the proletarian unnameable" in Deleuze, Marx and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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