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청년전지공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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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청년전지공작대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는1938년 중국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이다. 광복군(光復軍)을 결성하기 위한 전단계로서의 한국청년들의 초모공작대로서 중국 류저우(柳州)·충칭(重慶)·시안(西安) 일대에서 맹렬히 활약하였다.[1]


기능과 역할[편집]

주요 참여 인사는 나월환(羅月煥)·김동수(金東洙)·박기성(朴基成)·김천성(金天成)·김유신(金有信)·김찬원(金贊元)·백정현(白正鉉)·이하유(李何有)·이재현(李在賢), 안봉순, 문응국 등이다. 일제가 1937년 7월 7일 루거우차오(蘆溝橋) 사건을 일으켜 중일전쟁이 확대되고 있을 때 조선혁명자연맹(朝鮮革命者聯盟)에서 이 공작대를 조직, 청년을 뽑아 부대를 편성하였다. 주로 시안을 본거지로 삼아 일본군의 기밀 탐지, 일본군 내에 있는 한적사병(韓籍士兵)을 초모해 선무공작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이 공작대는 충칭에서 재조직, 강화되면서 1940년 9월 17일 광복군으로 정식 편제되었다. 1939년 10월 충칭에서 한국청년전지공작대(일명 복무대라고도 함.)는 류저우시대의 청년공작대원까지 선택적으로 수렴해 30여 명 규모로 조직되었다. 류저우나 충칭에서 조직, 운영되던 청년공작대 또는 복무대는 하나의 정공대(政工隊)의 모습을 띠고 발전해 광복군으로 구체화되었다. 이에 가담했던 한국청년들은 전장에 나가 중일전쟁의 확전을 막고 침략자를 박멸분쇄하는 것이 공통적인 염원이었다. 30∼40여 명의 공작대원 중에는 10여 명의 중국 중앙군관학교(中央軍官學校) 출신의 인재도 포함되어 있었다. 주요한 책임 간부진은 대장에 나월환(뒤에 광복군 제5지대장), 부대장에 김동수, 군사조장 박기성(歐陽軍), 정훈조장 이하유, 예술조장 한유한(韓愈韓, 韓亨錫), 공작조장 이재현 등이었다. 그 뒤 1941년 1월 1일 나월환 대장이 전대원을 이끌고 임시정부에 합류해 광복군 제5지대로 편성되었다. 이들은 중국 전시간부 훈련반에서 1년간 훈련을 받고 뤄양(洛陽)·정저우(鄭州) 등지에서 징모 제5분처가 되어 광복군 활동에 기여하였다. 1942년 3월 지대장 나월환이 부하에게 살해되자 송호성(宋虎聲)이 보임되었다가 같은 해 5월 제2지대로 재편성되었다. 기관지로 『한국청년(韓國靑年)』이 있다.

참고문헌[편집]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이현희, 독립기념관, 1990)

『독립유공자공훈록(獨立有功者功勳錄)』 5(국가보훈처, 1988)

『대한민국임시정부사(大韓民國臨時政府史)』(이현희, 집문당, 1982)

『독립운동사』 4(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한국청년(韓國靑年)』 1-1 『大公報』(1939.10)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