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대한제국 황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대한제국의 황실에서 넘어옴)
이씨
李氏
대한제국 황실이 1908년 이후 쓰던 이화문
대한제국 황실이 1908년 이후 쓰던 이화문
국가 대한제국
조선
작위 대한제국 황제
대조선국 대군주
조선 국왕
덕수궁 이태왕
창덕궁 이왕
설립자 태조
최후 통치자 순종
설립일 1392년 8월 13일
폐위일 1910년 8월 29일
민족 한민족
본가 전주 이씨

대한제국 황실 또는 조선 왕실조선의 왕실이자 그 후신 대한제국 황실이다. 일제강점기이왕가로 격하되어 왕공족 지위를 가졌다. 전주 이씨 태조 이성계조선을 건국했다. 대한제국 초대 황제 고종의 저사는 순종, 의민황태자 영왕, 회은황세손로 이어졌다. 회은황세손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의친왕의 손자 이원(李源)을 사후양자로 입적했다. 황사손 이원전주이씨대동종약원의 황사손으로 봉무하고 있다.

역사

[편집]

광무 연호 이전 (1863년 ~ 1897년)

[편집]

광무 연간 (1897년 ~ 1907년)

[편집]

융희 연간 (1907년 ~ 1910년)

[편집]

이왕가 연간 (1910년 ~ 1945년)

[편집]

1914년

광복 이후 (1945년 ~ )

[편집]

대한제국 역대 종주

[편집]
※ 목조~환조의 즉위년은 천호직을 물려 받았을 때이다. 추존 왕의 재위년도는 대리청정기간 혹은 세자기간이다.
선원선계
1세 시조고
2세 이자연
3세 이천상
4세 이광희
5세 이입전
6세 이긍휴
7세 이염순
8세 이승삭
9세 이충경
10세 이경영
11세 이충민
12세 이화
13세 이진유
14세 이궁진
15세 이용부
16세 이린
17세 선조고
선원본계
1대 목조성목대왕(1255년 ~ 1274년)
2대 익조성익대왕(1274년 ~ 1311년)
3대 도조성도대왕(1311년 ~ 1342년)
4대 완창대군(1342년 ~ 1342년)
5대 환조성환대왕(1342년 ~ 1361년)
6대 태조고황제(1361년 ~ 1398년)
7대 정종순효대왕(1398년 ~ 1400년)
8대 태종광효대왕(1400년 ~ 1418년)
9대 세종명효대왕(1418년 ~ 1450년)
10대 문종성효대왕(1450년 ~ 1452년)
11대 단종돈효대왕(1452년 ~ 1455년)
12대 세조인효대왕(1455년 ~ 1468년)
13대 덕종의경대왕(1468년 ~ 1468년)
14대 예종소효대왕(1468년 ~ 1469년)
15대 성종공효대왕(1469년 ~ 1495년)
16대 연산위무폐왕(1495년 ~ 1506년)
17대 중종성효대왕(1506년 ~ 1544년)
18대 인종흠효대왕(1506년 ~ 1544년)
19대 명종경효대왕(1545년 ~ 1567년)
20대 선조달효대왕(1567년 ~ 1608년)
21대 광해숭업폐왕(1608년 ~ 1620년)
22대 원종장효대왕(1620년 ~ 1620년)
복위 광해숭업폐왕(1620년 ~ 1623년)
23대 인조순효대왕(1623년 ~ 1649년)
24대 효종정덕대왕(1649년 ~ 1659년)
25대 현종창효대왕(1659년 ~ 1674년)
26대 숙종원효대왕(1674년 ~ 1720년)
27대 경종선효대왕(1720년 ~ 1724년)
28대 영조현효대왕(1724년 ~ 1725년)
29대 진종소황제(1725년 ~ 1728년)
복위 영조현효대왕(1728년 ~ 1749년)
30대 장조의황제(1749년 ~ 1762년)
재복위 영조현효대왕(1762년 ~ 1776년)
31대 정조선황제(1776년 ~ 1800년)
32대 순조숙황제(1800년 ~ 1827년)
33대 문조익황제(1827년 ~ 1830년)
복위 순조숙황제(1830년 ~ 1834년)
34대 헌종성황제(1834년 ~ 1849년)
35대 철종장황제(1849년 ~ 1864년)
36대 고종광무황제(1864년 ~ 1919년)
37대 순종융희황제(1919년 ~ 1926년)

가계도

[편집]

역대 황실 수장은 굵은 글씨로 처리

흥선대원군의 가족

[편집]

고종황제의 본가[1]

[편집]

고종 황제의 가족

[편집]

의친왕의 가족

[편집]
  • 의친왕 이강
  • 의친왕비 김덕수
    • 서5녀(양적녀): 이공 (이해경, 1930 ~ ) - 의친왕비 입적·의친왕 저서 집필
    • 서1자: 이건(모모야마 겐이치, 1909 ~ 1991) - 1947년 일본 귀화
    • 전 서자부: 마쓰다이라 요시코 - 이방자의 외사촌. 1951년 이혼
      • 손자: 모모야마 타다히사(1932년생)
      • 손자: 모모야마 킨야(1935년생)
      • 손녀: 모모야마 하루코(1938년생)
    • 서자부: 마에다 요시코
    • 서2자: 이우 (1912 ~ 1945) - 영선군의 양자
    • 서자부: 박찬주 (1914 ~ 1995) - 박영효의 손녀
    • 서3자: 이방(이해진, 1914 ~ 1951)
    • 서4자: 이창(이해직, 1915 ~ ?) - 은전군파 이헌용의 양자
    • 서1녀: 이영(이해완, 1915 ~ 1981) - 계동궁 이기용의 양녀
    • 서5자: 이주(이해일, 1918 ~ 1982) - 인평대군이인용의 양자
    • 서2녀: 이진(이해원, 1919 ~ 2020) - 계동궁 이기용의 양녀
    • 서6자: 이곤(1919 ~ 1984) - 의친왕 가 후계자·사동궁 종주
      • 손자: 이준(1961 ~ ) - 의친왕 가 종손·사동궁 종주
    • 서3녀: 이찬(이해춘, 1920 ~ 2009) - 계동궁 이기용의 양녀
    • 서4녀: 이숙(이해숙, 1920 ~ ?) - 계동궁 이기용의 양녀
    • 서7자: 이광(이해청, 1921 ~ 1952) - 계동궁 이기용의 양자
    • 서8자: 이현(이경길, 1922 ~ 1996)
    • 서9자: 이갑(이해룡, 1938 ~ 2014)
    • 서6녀: 이장(이희자, 1940 ~ )
    • 서10자: 이석(이해석, 1941 ~ )
      • 손녀: 이홍(1974 ~ )
      • 손녀: 이진(1979 ~ ) - 도예작가
    • 서11자: 이환(이해선, 1944 ~ )
    • 서7녀: 이용(이해란, 1944 ~ )
    • 서12자: 이정(이해준, 1947 ~ )
    • 서8녀: 이현(이해련, 1950 ~ )
    • 서9녀: 이민(이창희, 1950 ~ )

의민황태자(영친왕)의 가족

[편집]

주요 인물

[편집]

고종 광무 태황제

[편집]

조선왕조 제26대 국왕이자 대한제국 초대 황제 광무황제(고종)이다.

순종효황제

[편집]

광무황제와 명성황후 사이에서 태어난 적남으로 1875년 왕세자에 책봉되었다. 대한제국 성립과 함께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광무황제가 퇴위당한 뒤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융희황제(순종)로 경복궁에서 즉위하였다. 한일 병합 늑약의 조인으로 대한제국 황제의 신분을 실질적으로 잃고 그 지위에 상당하는 명시적 이왕(李王)의 칭호를 일왕 히로히토로부터 받았다.

의민황태자

[편집]

광무황제와 순헌황귀비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 영친왕 은(垠)은 1907년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명목 상 일본 유학을 강제로 떠났고 일본 교육을 받았다. 소위 한일 병합으로 명시적 왕공족 이왕세자에 봉해졌다. 1917년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제29기로 졸업했다. 이듬해 일본 황족 나시모토미야노 모리마사 왕의 제1왕녀 마사코(이방자)와 결혼하였다. 1926년 융희황제가 붕어하자 황실수장 자리와 소위 이왕의 자리를 계승하였다. 이왕 부부는 도쿄의 아카사카 저택(현재 아카사카 프린스호텔 별관)에서 생활했다. 황태자 은(垠)은 실질적 일본 군인 신분으로 우쓰노미야 연대장 등을 거쳐 종전시에는 중장까지 승진하였다. 패전 후 황태자 부부는 1947년 왕공족폐지로 신분을 잃고 일본 국적도 상실하게 된다. 이승만 정권은 황태자 부부의 귀국을 허가하지 않아서 일본에서 지내다가 1963년 비로소 귀국했다. 자녀는 장남 이진(생후 8개월 만에 급사)과 차남 이구가 있다. 이구는 사후 의민황태자(懿愍皇太子)로 추존되었다.

창덕궁 이왕세자 구 (회은황세손)

[편집]

황태자 은의 차남 이구(李玖)는 1931년 12월 29일 도쿄에서 태어났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건축학을 배웠다. 1958년 우크라이나계 미국인 여성 줄리아 멀록과 결혼 후 미국에 귀화하였다. 1963년 한국에 귀국하여 사업가로 활동하였으나 신한항공이 1979년에 도산하였다. 1982년 부인 줄리아와 이혼하였다. 이후 다시 일본으로 갔고 2005년 7월 16일 심장마비로 자신이 태어난 도쿄 아카사카 프린스호텔에서 서거하였다. 향년 75세. 대한제국에서 공식 봉호를 받은 적이 없으므로 전주 이씨 종친회에서 회은황세손이라는 사호를 올렸다.

황사손 이원

[편집]

이원(李源)은 이갑(의친왕·함개봉의 아들)과 이경숙의 아들이다. 2005년 회은황세손 이구가 후사없이 사망하자 사후양자로 출계하여 황사손이 되었다.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의 황사손으로 봉무하고 있다.5대 제향 제주(祭主)로서 환구단대제, 종묘대제, 사직단대제, 조경단대제, 건원릉대제 등과 왕릉제향을 주재(主宰)하고 있다. 2012년 사단법인 대한황실문화원을 설립하여 이사장을 맡고 있다.

덕혜옹주

[편집]

1912년 고종 광무 태황제와 귀인 양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925년 도쿄 학습원에 유학하고 1930년 일본 옛 쓰시마번 번주의 후예 백작 소 다케유키(宗武志)와 결혼하여 딸 마사에(正惠)를 낳았다. 덕혜옹주는 결혼 전부터 정신 질환이 나타나고 있었는데 결혼 이후 더욱 악화되었다. 1955년 소(宗)씨 가문으로부터 이혼당하고 1962년 귀국했다. 소 마사에는 와세다대학[주석 1]을 졸업하고 일본인과 결혼 후 고마가타케 산에 자살하러 간다는 유서를 남기고 실종되었다.

의친왕 이강과 그 자손들

[편집]

의친왕

[편집]

광무황제와 귀인 장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의친왕은 1910년 소위 한일 병합 이후 왕공족 제도 시행으로 ‘이강(李堈) 공’으로 불리게 된다. 독립신문에 자신의 독립성명문이 보도되었고 조선민족대동단(대동단)과 상해로 망명을 시도하던 중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강제송환 되었다.[주석 2] 1947년 사동궁이 적산(敵産) 취급을 당한다는 허위사실을 믿고 헐값에 매각하였다. 변호사를 선임했지만 도리어 공갈협박을 받았고 고소를 취소하였다. 고종의 자녀들 중 유일하게 6·25 전쟁을 겪었다. 선원록에 따르면 12남 9녀를 두었다. 서9자 이갑의 장남 이상협(이원)은 영친왕의 아들 이구의 사후 양자로 출계하여 황사손이 되었다.

이건

[편집]

이건(李鍵)은 의친왕 이강과 수관당 정씨 사이에서 태어난 서장남으로 고종의 서장손자이다. 대한제국 한성부에서 태어나 일본 육군사관학교일본 육군대학교를 졸업하였고, 일본 제국 육군에 입대하여 대좌에 이르렀다. 1930년 공위를 세습 받아 ‘이건 공 전하’로 불렸다. 1931년 영친왕비 이방자(李方子)의 외사촌 마쓰다이라 요시코(松平誠子/佳子)와 결혼하였다. 1947년에 ‘모모야마 겐이치(桃山虔一)'로 개명하고 일본에 귀화하였다.

이우

[편집]

이우(李鍝)는 의친왕 이강과 수인당 김흥인 사이에서 태어난 서차자이다. 일제강점기 조선 경성부에서 태어났다. 1917년 흥선대원군의 장손 이준용이 사망하자 당숙의 양자로 입적되어 운현궁의 4대 종주가 되었다. 운현궁을 상속한 후 공위를 세습 받아 ‘이우 공 전하’로 불렸다. 일본 육군사관학교와 일본 육군대학교를 졸업하였고, 일본 제국 육군에 입대하여 계급이 중좌에 이르렀다. 일본 정부에 의해 일본 황족과의 결혼을 강요받았지만 조선인과 혼인하기 위해 저항하여 박영효의 서손녀 박찬주와 결혼하였다.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원자 폭탄에 피폭되어 8월 7일 사망하였다. 1945년 8월 15일 경성운동장에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사시로 흥영군에 추봉되었다. 유해는 흥원에 안장되었다.

이곤

[편집]

이곤(李錕)는 의친왕 이강과 수인당 김흥인 사이에서 태어난 서6자이다. 큰 형 이건이 일본으로 귀화하고, 둘째 형 이우부터 다섯째 형 이주는 종친 양자로 출계하였다. 이곤은 의친왕의 후계자가 되어 의친왕 가 종주·사동궁 사자(嗣子·상속자)가 되었다. 의친왕과 의친왕비의 장례식에 상주가 되었다. 6.25 전쟁 이후 생활고에 시달렸다. 1951년 토건업자 등과 공모해 인장을 위조, 명동 소재 옛 이왕실 소유 토지와 주택을 700만환에 매각했다가, 사기 혐의로 체포되었다. 징역 3년을 구형 받았으나 6.25 전쟁 전까지 국가에서 지급한 보조금을 받지 못해 생활고를 겪고 있다는 점이 고려되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5년을 언도받고 풀려났다. 1960년 ~ 1962년 제2공화국 장면 정부 때 국회도서관 사서로 재직했다. 1964년 국회의원 황호현의 천거로 국회사무처 공무원으로 임용되어 1974년까지 재직하였다.

이준

[편집]

이준(李準)은 의친왕 가 종주 이곤의 장남으로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의친왕 가문의 종손이자 사동궁(寺洞宮) 사손(嗣孫)이다. 1998년 ~ 1999년까지 희망의한국신당 중앙위원직, 2000년 ~ 2001년까지 자유민주연합 상임행정위원을 역임을 하였다. 자민련 탈당 이후 외국계 전자회사에서 상무이사, 전임이사, 부 이사장 직위를 거쳐 이사장으로 근무하였다. 2022년 의친왕기념사업회를 설립했다. 5대 제향(조경단·환구대제·종묘대제·사직대제·건원릉제), 의친왕 제향, 각 능 제향 활동을 하면서 황실 전통문화 계승 및 보존에 힘쓰고 있다. 또한 의친왕과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연구·보존·전시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왕공족

[편집]

대한제국 황실의 일원으로 왕공족에 편입된 인원은 모두 24명이다.

같이 보기

[편집]

각주

[편집]
  1. 위 가계는 대한제국 황실 혈통도 기준
  1. 이방자의 저서에서는 메이지대학이라고 되어있고 그것이 널리 알려져 있으나 잘못된 정보이다.
  2. 대동단 신문조서에서 "상해 망명 시도는 기억에 없는 일이고 조선민족대동단 제2회 독립선언서 서명은 도용되었다."라고 하였다.

외부 링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