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호 (183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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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호
출생 1839년
사망 1914년

조경호(趙慶鎬, 1839년 ~ 1914년)는 흥선대원군의 사위이다. 본관은 임천(林川), 자는 회경(會慶), 호는 구당(鷗堂)이다. 부인은 흥선대원군의 딸이며, 처8촌인 이재극은 그의 사위이다.

생애[편집]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의 직책을 역임하였다. 1883년 음력 3월 16일 한성부판윤에 임명되었다.[1]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이후에 일본 정부가 그에게 남작 작위를 부여하였으나 거절하였다. 조선 후기의 시인으로 추사 김정희의 조카사위이기도 한 조면호가 조경호의 형이다.[2]

각주[편집]

  1. 1883년~: 《고종실록20년 3월 16일: 以趙慶鎬爲漢城府判尹
  2. 한국매화연구원, 조선 후기의 매화시
전임
박영효
제1739대 한성부판윤
1883년 음력 3월 16일 ~
후임
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