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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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Seoul Kimchi Making Sharing Festival 03.jpg
대한민국 대한민국서울특별시장
임기 2011년 10월 27일 ~
전임 오세훈

기본정보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출생일 1956년 3월 26일(1956-03-26) (59세)
출생지 대한민국 대한민국 경상남도 창녕군 장마면
정당 새정치민주연합
배우자 강난희
자녀 슬하 1남 1녀
학력 단국대학교 사학 학사
서명
박원순
웹사이트 박원순 트위터

박원순(朴元淳, 1956년 3월 26일 ~ )은 대한민국의 변호사, 시민운동가, 제35·36대 서울특별시장이다.

학력

생애

박원순은 1956년 3월 26일경상남도 창녕에서 2남 5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경복고등학교를 지원하였으나 탈락하고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하여 1974년 졸업하였다.[1] 이후 서울대학교에 입학 후 재학 중 1975년 유신체제 반대 학생 운동과 관련하여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되면서 대학에서 제적되었다.[2] 이후 단국대에서 사학을 전공하였다.

활동

인권변호사 활동

서울대 우 모 조교 성희롱 사건 변론

이 사건은 서울대학교 우 모 조교가 신 모 교수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고발한 사건이다. 박원순은 우 조교의 변호인단에서 활동했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제기된 성희롱 관련 소송이었다. 6년간의 법정투쟁이 이어졌고, 결국 1999년 6월 25일 신 교수가 우 조교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최종판결이 나왔다.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부천서 성고문 사건은 당시 부천경찰서(지금의 부천 소사경찰서)의 경장이던 문귀동이 조사과정에서 당시 22세이던 대학생 권인숙을 성적으로 추행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당시 공권력이 추악한 방법까지 동원하여 민주화운동을 탄압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으며, 권력에 굴복하여 불의를 용인한 사법부와 언론의 부도덕한 모습까지 보여줬다. 또한 전두환 군사정권의 언론 통제 수단인 보도 지침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 이 사건을 통해서 드러나는 등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박원순 변호사는 인권변호사 조영래 등과 함께 피해자 권인숙 씨의 변호인단을 맡았고, 조영래가 낭독한 변론요지서에도 작성인으로 연서하였다.

여성 국제 전범 법정

2000년 12월 열린 여성국제전범법정은 일본군의 전쟁범죄 특히 일본군 위안부 조직과 강제연행, 위안부 소내 강간·고문·상해·학대·살인 행위를 비판·검증하는 목적으로 세워진 민간 법정이다.

개정 첫날 남북한 공동검사단은 일본 왕을 군위안부 강제 성노동 착취 전범으로 기소하였다. 남북 공동검사단은 일본의 범죄사실을 1944년 미얀마 국경에서 임신된 채 발견됐던 박영심 할머니의 당시 중국, 미얀마 등지로 끌려 다니며 겪었던 참혹한 성노예 체험을 증언이 담긴 녹화 비디오 등 각종 증언, 증거자료를 통해 입증해내었다. 또한 이러한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일본의 공식사죄와 피해배상, 책임자 처벌, 피해자 명예회복, 생존자 귀환 및 유골 송환 그리고 역사교육 등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며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물었다.

대한민국측 검사로 참여한 박원순은 "한반도는 10만 명 이상이 군대위안부로 동원된 최대 피해국이었고 식민지 지배가 그 배경이었다. 과거를 기억할 수 없는 사람은 그 잘못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면서 일본 왕의 처벌과 배상을 주장했다.[3]

여덟개 피해국과 일본, 각국에서 1000여명이 참석한 이 법정에는 단 한명의 일본 정부 인사도 참여하지 않았으며 피고측 변호인으로 나온 이마무라 쓰구오 변호사는 "피고인들은 이미 오래전 사망했기 때문에 재판이 성립될 수 없으며 이들이 참석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유죄판결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공판이 진행되는 동안 구단회관 앞에는 일본 우익 단체의 가두선전차가 몰려들어 '일본군 위안부는 강제로 동원되지 않았다'는 현수막을 내걸고 국제법정을 비난하는 방송을 계속하기도 했다.[4][5]

사회운동가 활동

국회의원 후보자에 대한 낙선운동

박원순은 16대 총선을 앞둔 2000년 1월 12일 참여연대와 환경연합 등 420여개 시민단체와 함께 '2000년 총선 부패정치 청산 시민연대'(이하 총선연대)를 구성, 단체 상임집행위원장 자격으로 낙천·낙선 운동을 이끌었다.

박원순은 후보 공천반대 인사 선정 기준과 적용에 대해, "병역사항·재산변동·부패혐의, 선거법위반, 헌정질서 파괴와 반인권 행위, 의정활동 성실성, 법안·정책에 대한 태도, 반의회ˑ반유권자적 행위"등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선거법 87조는 선거일 20일 전부터 시작된 공식 선거운동기간 중 시민단체가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행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해 놓았다. 따라서 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은 명백한 선거법 위반이지만 총선연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낙천·낙선운동이 벌어졌던 2000년 16대 총선에서 대상자 132명 중 72.3%인 102명이 낙선했다.[6]

서울지방법원 민사 13부는 2002년 9월26일 이종찬 당시 민주당 상임고문이 "총선연대가 낙선운동을 벌이며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참정권을 침해했다"면서 박원순 등 총선연대 간부 4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연대해서 원고에게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7] 2004년 9월21일에는 이사철 전의원이 박원순 등 총선연대 간부 5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결과,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낙선운동은) 선거에서 공정한 경쟁을 통해 유권자들에게 평가받게 될 것이라는 이씨의 기대를 침해한 것이므로 정신적 고통을 보상하는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8]

아름다운 재단

2001년 아름다운재단을 설립해 1% 나눔 운동, 동아일보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돈쓰기" 공동캠페인, 인터넷 중앙일보와 공동으로 "따뜻한 세상 만들기" 온라인 캠페인, 작가들의 아름다운 나눔 인세 1% 기부운동 그리고 네이버와 기부포털사이트 해피빈 창립을 함께하여 기부문화의 대중화를 위한 활동을 하였다. 또한 아름다운재단을 통해 모인 기부금을 통해 한부모 여성 가장 창업을 지원하는 '희망가게 사업', 태평양제약과 함께 독거 노인들에게 생계비 등을 지원하는 '노인지원 기금 사업', 미숙아의 치료비를 지원하는 '다솜이 작은 숨결 살리기 사업' 등의 사회적 사업을 실천하였다.[9] 2002년 아름다운가게를 설립, 헌 물건을 기증받아 수선하여 되파는 형태의 재사용 나눔가게, 제3세계 저개발국 공정무역 윤리적 소비문화 운동, 재활용 디자인 사업, 국제구호를 위한 모급사업을 하였다.[10] 2006년 희망제작소를 설립하여 지역사회 운동, 청년 벤처 운동, 소기업 지원 운동을 했다.

2006년 그는 만해상,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부문을 수상하였다.[11]

국가정보원 명예훼손 혐의 소송 승소

박원순은 2009년 6월 위클리경향 인터뷰에서 "국정원이 시민단체와 관계를 맺는 기업 임원까지 전부 조사해 시민단체가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불법사찰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에 국가정보원은 "박 변호사가 허위 사실을 말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2억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12]

대한변호사협회는 "국정원이 개인을 상대로 명예를 훼손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변협 측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국민이 국가기관의 잘못을 비판할 자유가 헌법상 보장돼 있다"면서 "비판이 거짓이거나 악의라는 객관적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국정원 등 국가 권력기관이 개인을 상대로 거액의 손배소를 제기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13]

2010년 9월 15일 재판부는 박원순의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국가는 기본권의 보장 의무를 지는 존재이지, 누리는 주체가 아니다"라며 "국가가 국민의 비판에 소송으로 대응하려 할 경우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언로가 봉쇄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 14부(김인겸 부장판사)는 15일 대한민국이 박원순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국가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14]

결식제로 운동

2010년 12월 8일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국회 본회의에서 2011년 예산안을 강행 처리하며 급식 관련 예산 285억 원을 전액 삭감해 새해가 시작되는 일주일 뒤부터 당장 급식 지원이 끊기는 아이들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 되자 박원순은 즉각적으로 '결식제로' 운동을 시작했다. 2010년 당시 결식제로 운동을 선언하며 박원순은 "어떻게 밥 굶는 아이들의 급식비까지 깎아버린다는 말입니까", "국가가 책임을 지지 못하면 국민이라도 나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밥 굶은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오늘부터 하루에 한 끼를 굶어 12월 중으로 4만원(한 끼당 5000원×8끼)을 내놓으려 한다", "대한민국 정부가 버린 아이들 우리가 먹입시다"라고 말했다. 국민 100만명이 참여해 400억원을 모으면 결식아동 겨울방학 급식비를 해결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다. 그의 제안으로 시작된 '결식아동 0 캠페인'은 개시한 지 일주일만에 2000여 명 이상이 동참해 1억원이 넘는 성금을 모았다.[15][16]

부경대학교 이상윤은, 박원순이 2011년 오세훈이 무상급식문제로 서울시장에서 물러나자 보궐선거에 나온 것은 2010년 12월에 한나라당이 2011년 예산안 처리과정에서 급식관련 예산 285억원을 전액삭감하자 나온 것으로 그런 점에서 자신의 결식제로운동의 연장선상이라 평했다.[17]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안철수의 불출마 및 박원순 지지 선언

안철수의 서울시장 선거 출마 여부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던 9월 4일에 주요 언론사들은 여론조사를 실시했고 모든 여론조사에서 안철수의 지지율은 50% 상회하는 압도적인 수치를 보였다. 공식적인 출마 선언을 하지 않고있던 안철수는 9월 6일에 '안철수와 관계 없이 출마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박원순과 만나 불과 17분 동안의 대화 끝에 박원순으로 단일화했음을 발표하였다. '누가 출마하느냐', '단일화가 되느냐' 등이 모두 선거지형에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기 때문에 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안철수는 "오늘 존중하는 동료이신 박원순 변호사를 만나서 그 분의 포부와 의지를 충분히 들었다. 우리 사회를 위해 헌신하면서 시민사회 새로운 꽃을 피운 분으로서 서울시장을 누구보다 더 잘 수행할 수 있는 아름답고 훌륭한 분"이라고 말했다. 단일화 조건이 있었느냐에 대해 안철수는 "아무런 조건도 없습니다. 제가 출마 안 하겠습니다. 방금 말씀하신 대로 꼭 시장 되셔서 그 뜻 잘 펼치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18]

박원순은 단일화에 대해 "두 사람 모두 시장직 자리를 원한 게 아니다. 진정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상식적으로 이해 안 되는 결론이 나온 것"라고 말했다. 박원순은 또 안철수에 대해 "아무리 신뢰관계가 있다해도 저보다 10배나 더 되는 지지도를 갖고 있던 분이 정말 아무 조건 없이 '더 잘 할 수 있다'고 하는 (내 말) 한마디로 양보한다는 게 사실 또 믿기 어려운 그런 일"이라며 "안 교수가 개인의 이익보다 사회의 어떤 공공적인 이익을 위해서 해왔던 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태도였다고 본다"라고 말했다.[19]

박원순, 한명숙, 문재인 등은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범시민 야권 단일후보를 통해 한나라당과 1:1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박원순-한명숙 두 사람은 범시민 야권 단일 후보 선출을 위해 상호 협력하고, 이후엔 선거 승리를 위해 모든 힘을 기울인다"라며 결의를 다졌다.[20]

박원순 펀드 발행

서울시장선거에서 선거자금이 넉넉지 못한 박원순은 지난해 6·2 지방선거 때 국민참여당 대표 유시민이 경기지사 후보로 나서면서 활용했던 '유시민 펀드'를 모방해 '박원순 펀드'를 발행하였다. '박원순 펀드'는 모금 하루 만에 목표액인 33억 원을 넘기며 52시간만에 조기 마감되었다. 모금된 펀드는 선거자금으로 쓰고, 12월 25일 이전에 원금과 이자(연리 3.58%)를 투자자들에게 돌려준다.[21]

박원순의 '희망캠프'는 "지난 26일 낮 12시부터 시작된 박원순 펀드 모금이 이날 오후 4시에 법정선거비용인 목표액에 도달해 오는 30일까지 예정됐던 모금을 일찍 마감했다"고 밝혔다. 최종 입금액은 38억 8500만 원이며, 입금에 참여한 시민들은 모두 5778명이었다. 1인당 평균 67만 원씩을 낸 셈이다. 목표액을 모으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총 52시간이었다. 펀드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사람은 모두 7211명에 총 약정액은 45억 2300만원이었으나, 이날 오후 4시 전까지 입금을 하지 못한 1433명은 펀드에 가입하지 못했다. 이날 오후 3시 기준으로 최소액인 10만 원을 입금한 사람은 모두 2868명으로, 전체 펀드 가입자의 절반 이상이 10만원의 소액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22]

야권 단일화 후보 선출

2011년 10월 3일 민주당 소속 박영선, 민주노동당 소속 최규엽, 무소속 박원순 세 후보는 단일화 후보 경선을 치렀다. 3만명의 선거인단 중 60%라는 투표율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하였다.[23] 박원순은 이 날 경선에서는 박영선 후보와 접전 끝에 패하였으나 TV토론 배심원단 조사, 일반 시민여론조사를 포함해 이날 실시된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집계한 결과 박원순 후보가 52.15%를 차지해, 45.57%를 얻은 민주당 박영선 후보를 이겼다. 한편 민주노동당 최규엽 후보는 2.28%를 얻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10월 3일 치러진 범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을 "한국 정치사에 중요한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으로 규정하며 "유모차를 밀고 투표장에 오는 시민들의 물결은 정치와 정당에 변화를 요구하는 물결이었다, 민주당은 이를 겸허히 수용하고 시대적 흐름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쇄신'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24]

손학규는 또 야권 단일화 경선에서 민주당 패배를 책임지고 대표직에서 사퇴의사를 밝혔으나 이후 철회했다. 손학규는 철회 의사를 밝힘과 동시에 박원순 후보의 입당 문제에 대해 "개인적으로 박원순 후보가 (민주당 입당) 문제에 대해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경선에 담긴 시민과 국민의 뜻이 존중돼야 한다"며 "더 큰 시야로 민주당이 민주진보진영 전체를 품어 진보진영의 용광로가 돼야 한다, 더 큰 민주당 안에서 서울시장 선거를 승리로 이끌고 통합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10월 5일 박원순은 민주당 입당 문제에 대해 이희호 이사장과 만난 자리에서 "사실 민주당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며 "민주당이 앞으로 다른 정당과 정치세력을 받아들여 더 커지는 과정을 거친다면 저도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입당한 당원은 아니지만 민주당과 생각과 활동을 같이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25]

'새로운 서울을 위한 희망캠프' 출범

2011년 10월 11일 박원순은 선거대책위원회 '새로운 서울을 위한 희망캠프'를 공식 출범시켰다. 범야권 단일화의 결과 민주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등 야3당이 참여하고 있으며 시민사회, 문화계 인사, 언론계 등이 총 집결하였다.

상임선대위원장은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맡았으며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노회찬, 심상정 전 진보신당의 지도 인사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이해찬, 한명숙 전 총리, 정동영, 이계안. 문성근 등이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여 선대위원장직을 맡았다.

범야권 통합후보 경선에서 경쟁한 민주노동당최규엽과 민주당의 박영선 역시 경선 당시의 약속을 지켜 선대위원장직을 맡았다.

고문에는 김근태 한반도재단 이사장, 특보단에 최재천 전 의원. 선대본부장에 문용식 나우콤 이장, 정봉주, 천호선 전 의원 등이 참여했다.[26]

서울시장 당선

2011년 10월 26일 아침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졌다. 이날 아침, 박원순 후보자의 홈페이지 원순닷컴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사이버 테러가 가해졌는데, 박원순 지지 성향이 많은 젊은층들이 투표소를 찾기 어렵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나라당 의원의 보좌관이 벌인 일로 훗날 드러났다. 최종 투표율은 48.6%였으며 박원순은 전체 투표수 가운데 53.40%인 215만 8476표를 획득하여 당선되었다. 한나라당나경원 후보와의 득표율 차이는 7.19%의 차이로 서울 전체 25개 자치구 가운데 서초·강남·송파·용산구를 제외한 나머지 21개 구에서 모두 나경원 후보를 앞섰다.[27]

박원순은 이 날 새벽 시민들이 모여있는 서울광장에 나와 "깨끗한 축제 같은 선거를 통해서 시장이 되겠다는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흑색선전과 인신공격이 저를 향했습니다. 하지만 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진실이 거짓을 이겼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겼습니다."라며 당선소감을 밝혔다. 이어 그는 '용산참사와 같은 잔혹한 일이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게 하겠습니다. 우리의 고귀한 땅과 주택을 투기의 대상이 아닌, 삶의 휴식이 될 수 있는 고귀한 곳으로 만들겠습니다. 저는 서울이라고 하는 이 땅에서 굶는 아이들, 어르신들, 가정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헌법에 보장된 인간적 존엄성, 삶의 질과 인간으로 최소의 가치를 서울에서 실현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며 끝으로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라 시민들과 늘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함께 할 수 있는 지속적 관계를 만들겠다'고 외쳤다.[28] 박원순은 별도의 인수 기간 없이 10월 27일 초등학교 5·6학년 무상급식 예산 지원 결재를 첫 업무로 시작하며 서울특별시장 집무에 들어갔다.[29]

서울시장 재직시절

전두환 경호 시유지 회수

박원순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저 경호용으로 경찰에 무상으로 내줬던 시유지의 사용권을 회수하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윤종장 서울시 언론담당관은 그동안 "시사편찬위의 옛 부지를 문학창작촌으로 조성하면서 인근 전 전 대통령 사저로 일반인들의 접근이 많아질 것이라고 판단한 서울경찰청이 부지 일부의 사용을 요청했고, 두 차례 실사를 거쳐 공적 용도일 경우 무상으로 사용을 허가할 수 있도록 한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에 근거해 무상 사용 허가를 내줬다"고 설명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아직 서울시의 공식적인 요구가 없어 뭐라고 이야기할 단계는 아니지만, 관련 법률에 따라 경호 부지를 경찰이 마련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전직 대통령 경호는 보안상 문제도 걸려 있어 쉽게 결정할 사안이 아니므로 서울시와 협의해가겠다 "고 말했다.[30]

재건축 소형 평형 확대

2012년 2월 9일 서울시 도시계획위 소위원회는 개포지구 재건축 소형평형 비중을 50%까지 확대하도록 요구했다.[31] [32]

이와 같은 서울시의 재건축 소형 평형 확대 요구를 반발하는 주민들의 집회가 2월 29일 있었다. 이날 오후 2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집회에는 1500여명의 개포주공 주민들이 모였다. 개포주공 4단지 주민 이모씨는 "시장은 60평대에 살면서 우리는 계속 소형주택에 살라는 것이냐. 우리도 조금 더 큰 집으로 가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이를 완전히 무시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33]

박원순의 서울시장 취임 후 4개월간 서울 재건축 아파트 시가총액은 2조원 이상 감소했다.[34]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주택정책은 친서민정책이 아니다. 서울 서민을 결국 서울 밖으로 몰아내는 것이다."고 비판했다.[35]

반값 등록금

박원순은 대학생을 위한 주요 선거공약이었던 서울시립대의 2012년 고지서에 기재되는 명목등록금을 50% 삭감하는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2012년 서울시예산에는 반값등록금 지원예산을 포함하여 830억원 8000만원이 반영되었으며, 서울시립대 학생들의 연 평균 등록금은 238만 7500원으로 인하되었다. 박원순은 등록금 원리금 이자지원 등 조례 제정은 의회와 협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36]

서울시장 연임 성공

2014년 6월 4일에 치러진 대한민국 제6회 지방 선거에서 56.1%의 득표율로 새누리당 정몽준 후보를 물리치고 서울시장 연임에 성공하였다.

저서

  • 세상을 바꾸는 천 개의 직업 - 문학동네, 2011년
  • 올리버는 어떻게 세상을 요리할까? - 이매진, 2011년
  • 마을회사 - 검둥소, 2011년
  • 마을, 생태가 답이다 - 검둥소, 2011년
  • 열혈청춘 : 우리시대 멘토 5인이 전하는 2030 희망 프로젝트 - 도서출판 휴(休), 2011년
  • 행복한 진로학교 : 7인의 멘토가 제안하는 직업찾기 발상전환법 - 시사IN북, 2011년
  • 원순 씨를 빌려 드립니다 - 21세기북스, 2010년
  • 아름다운 세상의 조건 - 한겨레신문사, 2010년
  • 마을이 학교다 - 검둥소, 2010년
  • 희망을 심다 - 알마, 2009년
  • 고속도로 통행권에 복권을 붙이면 좋겠네- 중앙M&B, 2007년
  • 야만시대의 기록 1.2.3권 - 역사비평사, 2006년
  • 세상은 꿈꾸는 사람들의 것이다 - 나남, 2004년
  • 역사가 이들을 무죄로 하리라 - 한국 인권 변론사, 2003년
  • 성공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습관,나눔 - 중앙M&B, 2002년
  • 한국의 시민운동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 당대, 2002년
  • 박원순변호사의 일본시민사회 기행 - 아르케, 2001년
  • 국가보안법 연구 1.2.3권 - 역사비평사, 1989년-1991년
  • 내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세기의 재판이야기 -한겨레 신문사, 1999년
  • NGO-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 -예담, 1999년
  • 한국의 과거청산연구 -역사가 살아야 민족이 산다, 한겨레신문사, 1996년
  • 일본의 전쟁범죄연구 -아직도 심판은 끝나지 않았다, 한겨레신문사, 1995년

상훈

  • 2014년 2014 매니페스토 약속대상 선거공약분야 최우수상
  • 2014년 세계도시 전자정부 평가 특별공로상
  • 2009년 제15회 불교인권상
  • 2007년 제21회 단재상 학술부문
  • 2006년 필리핀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부문
  • 2006년 제10회 만해대상 실천부문
  • 2003년 희망 이웃돕기 유공자 포상식 국민포장
  • 2003년 시민의 신문 올해의 활동가상
  • 2002년 서울지방변호사회 공익봉사상
  • 2002년 제15회 심산상 학술 및 시민운동 공로부문
  • 1998년 한국여성단체연합 제10회 올해의 여성운동상

논문

  • 일본 전쟁 범죄 처벌, 지금도 가능한가, 1993년
  • 동경전범재판, 그 능욕과 망각의 역사. 1994년
  • 세계 각국은 과거사를 어떻게 처벌했는가, 1995년
  • 부패방지의 제도적 개혁방안, 1997년
  • 한국시민사회의 제도적 개혁과제, 1998년
  • 도쿄역사여성법정 참가기, 2000년
  • 비영리단체의 재정 투명성, 2004년

역대 선거 결과

선거명 직책명 대수 정당 득표율 득표수 결과 당락
10.26 재보궐선거 서울특별시장 35대 (민선 5기) 무소속 53.4% 2,158,476표 1위 서울시장 당선
제6회 지방 선거 36대 (민선 6기) 새정치민주연합 56.1% 2,752,171표

주석

  1. “[서울시장 야권 단일후보 박원순]시민운동 16년 '당밖의 남자'… 安風타고 제도권 정치에 일격”. 동아일보. 2011년 10월 4일 03:00:00. 
  2. 머니투데이(2011.10.11) 기사 참조
  3. [기자의 눈]이영미/'군위안부'와 소화 동아일보
  4. 여성국제전범법정, 히로히토 전 일본천황 등 8명기소 동아일보
  5. 도쿄 여성국제점범재판 日우익 심장부서 '위안부 심판' 한국일보
  6. [경향, '낙선' 낙인 찍히면 '巨物도 去物로'][1]
  7. [한겨레, '낙선운동' 총선연대 1천만원 배상판결][2]
  8. [한겨레, 이사철 전의원, 총선연대 상대 승소][3]
  9. 아름다운 재단 연혁 아름다운 재단
  10. 아름다운 가게 사업소개 아름다운가게
  11. 김종우 기자 (2009년 1월 1일).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부산일보. 2010년 4월 10일에 확인함. 
  12. 국정원, 박원순 변호사 상대 손배소송 패소 - 조선일보
  13. '대한민국'서 내 이름 빼라… 국정원 '박원순 소송' 취하 네티즌 청원 봇물 경향신문
  14. '피고' 박원순, '원고' 대한민국에 승소 경향신문
  15. “박원순 변호사 '결식 제로' 운동… 나흘 만에 500명 호응”. 노컷뉴스. 2010년 12월 18일. 
  16. '결식제로' 캠페인 일주일만에1억 모금”. 미디어오늘. 2010년 12월 23일. 
  17. [[이상윤|이, 상윤]] |저자고리= 값 확인 필요 (도움말). 《안철수 등의 한판승부 - 박근혜 벗기기》 (한국어). 높은새. ISBN 9788993989045. 
  18. "아무 조건 없습니다" 안철수 깨끗한 양보 한겨레 2011년 9월
  19. 박원순 "안철수 결단에 놀라…주변사람 모실 것" 미디어오늘 2011년 9월
  20. 안철수-박원순 '아름다운 합의' 17분 미디어오늘 2011년 9월
  21. '박원순 펀드' 돌풍… 하루 만에 33억원 경향신문
  22. 박원순 펀드 '돌풍'…사흘만에 목표액 38억여원 넘겨 한겨레 20110928
  23. 박원순, 서울시장 단일후보로 확정 "10월 26일 새 시대의 첫 차 타고 떠날 것" 국민참여경선 투표율 59.59% '흥행 대박' 오마이뉴스 11.10.03
  24. '사퇴 철회' 손학규 "박원순은 민주당 후보" 오마이뉴스
  25. 박원순 "손학규 결단에 감사...전화위복 됐다" 오마이뉴스
  26. 박원순 선대위 명단 뉴시스
  27. 박원순, 7.2%p 차로 나경원 이겨 뷰스앤뉴스
  28. "오늘 선물 드리겠다...서울광장은 시민의 것" 오마이뉴스
  29. 박원순 시장, 초등 5·6학년 무상급식 결재로 업무 시작 한겨레
  30. [한겨레, 박원순, '전두환 경호' 시유지 회수 검토][4]
  31. [5] 한국경제, "市 입장 반영해 수정안 제출하면 처리" 개포 주민에 '소형 비율' 떠넘긴 서울시, 2012-03-08
  32. [6] 매일경제, 개포 아파트값 '박원순 쇼크' 현실화, 2012-03-06
  33. [7] 파이낸셜뉴스, "시장 바뀔 때마다 재건축 정책 달라져" 개포주공 주민 뿔났다, 2012-02-29
  34. [8] 경향신문, 박원순 시장 취임 후 서울 재건축 ‘시총 2조원’ 증발, 2012-02-28
  35. [9] 연합뉴스, 권도엽 장관 "박 시장 주택정책 친서민 아냐", 2011년 11월 25일
  36. 박원순 시장 "서울시립대 반값 등록금 실시할 것"

바깥 고리

전 임
오세훈
권영규(직무대리)
제35·36대 서울특별시장(민선)
2011년 10월 27일 ~
후 임
(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