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항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인천항
Port of Incheon.jpg
인천항 전경
소재지
국가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소재지인천광역시 중구 항동7가
좌표좌표
상세
개항1883년(고종 20년) 1월 1일
관리자인천항만공사
종류무역항
통계
웹사이트http://www.icpa.or.kr

인천항(仁川港)은 인천광역시 중구에 있는 서해안 제1의 무역항구로 수도권 지방의 해상 관문이다.

역사[편집]

국가로써 존속 시기[1][편집]

일제 강점기 당시 인천항

옛 지명은 미추홀(彌鄒忽)이며 고구려 점령당시에는 ‘매소홀(買召忽)’로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룬뒤에는 ‘소성(邵城)’으로 바뀐다.

신라는 삼국통일이후 이용되던 세 갈래의 뱃길 가운데 인천 연안을 이용하는 북부연안항로가 난파나 조난의 위험이 적었다. 이 항로가 빈번히 사용된 것으로 짐작된다.

고려 시대에는 개경의 관문역할을 하면서 발전하였다. 고려의 연방제 체제에서는 지역 행정에 중심지 수주(樹州) 지방이었다.

조선의 인천[편집]

조선 태종이 인천(仁川)이라고 명명하며, 조선의 자급자족적인 토지경제와 바다를 봉쇄하는 해금정책(海禁政策) 때문에 200년간은 자급자족적인 농어촌 사회로 존속한다.[1]

조선 초기 제물포로 불리던 군사 요충지였으며, 왜란과 호란을 겪은 17세기를 전후하여 국방의 요충지로 떠오른다.[1] 1883년(고종 20년) 조일수호조약 (제물포조약)에 의하여 부산항과 원산항에 이어 조선에서 세 번째로 강제 개항되었다. 1911년부터 10년 계획으로 제1독이 축조되었으나, 이후 1974년에는 인천내항 전체를 선거화하였고, 현대식 갑문이 건설되면서 5만톤급 대형 선박이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연간 하역능력은 972만 8,000톤으로 증가하였다.

문제점[편집]

수심이 얕은 서해안의 특성 상 초대형 선박이나 특수 선박이 드나들기 어려울 뿐 아니라 갑문을 지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수심이 깊고 항구가 넓은 광양항이나 부산항에 비하여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학계에서는 외항선의 왕래가 빈번하던 고려 시대까지 해안가에서 바다로 뻗은 잔교가 존재하여서 선박이 접안하였던 것으로 본다.

각주[편집]

  1. “인천항역사”. 인천지방해양수산청. 2020년 3월 16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