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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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 분쟁은 소수 민족인 위구르족을 중심으로 발생한 분쟁이다. 신장 지역이 중화인민공화국에 편입된 이후 중국의 각종 위구르 정체성을 부정하는 정책이나, 분리주의에 대한 강력한 제재 등을 이유로, 2011년 호탄 공격 등과 같은 테러가 발생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신장 분쟁이라 칭한다.

배경[편집]

신장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지역으로, 인구의 45%가 위구르족, 40%가 한족이다. 수도인 우루무치의 인구는 75%가 한족, 12.8%가 위구르족이다. 위구르인들은 그들의 조상이 이 지역의 토착민이었다고 믿는 반면, 중국 정부는 신장 지역은 한나라 시대인 기원전 200년경부터 중국에 속했던 것으로 간주한다. 중국의 법에 따르면 위구르족은 소수민족으로 분류되며, 이들의 신장 지역에 대한 특별한 권리를 부정한다. 마오쩌둥 시대에 정부는 수백만 명의 한족을 이 지역으로 이주시켰다. 현재 10만 명 이상의 위구르인들이 '재교육 캠프'에 수용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수많은 드론을 이용한 광범위한 감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규제[편집]

위구르인들은 종교적인 권리가 없다. 중국 정부는 그들에게 돼지고기 먹기, 강제 결혼과 음주 등 그들의 종교적 신념과 반하는 일을 하도록 강제했다. 반면 1980년대 이후 이슬람 사립학교는 신장을 제외한 지역에서 허용되었다. 위구르족과 달리 신장지역을 제외한 곳의 이슬람교도들은 종교적 신념을 일정부분 보장받고 있다. 모스크를 지을 수 있고, 그들의 자녀들도 이슬람교를 따르도록 할 수 있는 것 등이 그 예시이다. 2016년 위그르족은 인접 지역으로 이동할 때, 검문소를 지나야 하는 등의 제한을 받고, 남부 우루무치에서는 아파트 출입문마다 QR코드가 부착되어 있어 경찰이 주거지의 주민들의 정보를 쉽게 알 수 있었다. 2017년 해외의 위구르 활동가들은 중국 내에서 위구르인들이 라마단 금식 기간 중 식사를 거부해 무거운 벌금이나 '재교육' 프로그램을 받고 있으며, 메카 순례에서 돌아오면 구금되는 등의 규제가 시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재교육 캠프[편집]

2017년 이후, 정치적인 세뇌와, 강제 낙태, 강간, 고문 등이 발생하고 있는 "재교육 수용소"가 신장지역에서 운영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2018년 추정에 따르면 수십만 명의 수감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중국은 이 수용소가 정치적 세뇌를 위한 것이 아닌 직업훈련을 위한 인도적 장치라고 주장했다.

연표[편집]

20세기 이전[편집]

중국와 민족주의 위구르 역사학자들은 각자 그들의 집단의 권리를 과장하는 등 이 지역의 역사는 고도로 정치화되었다. 이 지역은 10세기에 중앙아시아에서 위구르족이 이주하면서 정착했다. 중국의 여러 왕조들이 신장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해왔지만, 오늘날과 같은 지역은 만주족이 이끼는 청나라가 서쪽으로 세력을 확대하면서 중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청의 통치는 '문화 다원주의'로, 이 지역에 한족 등이 정착하는 것을 금지하고, 지방 관리를 통한 간접 통치가 이루어졌다. 중국 내 다른 지역의 반란으로 인해 가중된 세금의 부담은 후이족 주도의 반란을 야기했다. 이후 다시 탈환된 신장지역은 1884년에 공식적인 지방으로 지정되었다.

20세기[편집]

1928년 신강성의 도독 양쩡신이 암살된 후, 그의 직위는 진수런이 계승한다. 1930년 쿠물 칸국의 막수드 샤가 사망하자, 진수런은 칸국을 폐지하고 군벌로서 이 지역을 장악했다. 이후 이루어진 부패, 중국 군대의 곡물과 가축의 수요에 의한 징집 등은 1933년 동투르키스탄 제1공화국을 수립한 쿠물 반란을 초래한 원인이 되었다. 1934년 소련의 도움으로 군벌 성스차이가 이 지역을 정복했다. 1937년과 같이 소련이 반란을 진압하는 대가로 신장의 천연자원을 제공하는 등, 성스차이는 소련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서 이 지역을 지배했다. 또한 "위구르"라는 용어가 민족의 정체성을 훼손하기 위한 이유로 "투르크"를 대신해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 역시 이 시기였다. 1942년, 성스차이는 소련을 버리고 중화민국과의 화해를 추진했다. 1944년, 일리반란으로 인해 동투르키스탄 제2공화국이 수립되었다. 반군 세력은 주로 주민의 지지를 받아 투르크계 이슬람교도들로 구성되었지만, 국가의 지속적인 존재는 소련의 지원에 의존했다. 중국 내전에서 공산당이 승리하자 소련은 중국인민해방군(PLA)이 이 지역을 재탈환하는 것을 도왔고 결국 신장은 1949년 중국에 흡수된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1955년에 설립되었다.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 사이에 6만~20만의 위구르족 및 기타 소수민족들이 중국을 탈출해 소련으로 이주하였다. 중-소 분열의 골이 깊어지자 소련은 중국을 비난하는 대대적인 선전전을 전개하여 소수 집단에게 이주와 반란을 부추겼으며, 소수민족의 분리주의 성향을 부추겨 중국의 주권을 약화시키려 했다.

1990~2007[편집]

1996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범죄 반대 캠페인인 스트라이크 하드(Strike Hard)로 인해 수천 명이 체포되고 사형 집행이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인권 침해가 발생하였으며 종교의 자유도 감소되었다. 이러한 정책들과 정치적 소외감은 수많은 게릴라 작전을 수행하는 단체들의 발효에 기여했고, 이 단체들은 폭탄 공격과 정부 관리들의 암살같은 테러 행위까지 수행하였다. 1992년 2월, 우루무치 버스 폭탄 테러로 3명이 사망했다. 라마단 기간 동안 경찰이 분리주의자로 의심되는 30명의 사람들을 체포하고 처형한 결과 1997년 2월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중국 언론은 이를 폭동으로 묘사했다. 시위는 2월 5일 PLA의 진압으로 최소 9명이 사망하고 1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한 굴자 사태로 절정에 달했다. 1997년 3월 7일 베이징 시청 구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로 2명이 사망했다.

2007~2017[편집]

2007년 경찰은 투르키스탄 이슬람당(Turkistan Islamic Party, TIP) 테러 훈련소를 급습했다. 이듬해 중국 남방 항공 여객기에 대한 자살 폭탄 테러 시도가 좌절되었고, 카슈가르에서의 테러는 베이징 올림픽이 시작되기 나흘 전에 발생해 16명의 경찰관이 사망했다. 2009년 6월 25일부터 26일까지 밤 동안 광둥성의 사오 관 사건에서 2명이 사망하고 118명이 부상을 입었다. 보도에 따르면 이 사건은 1008년 7월 우루무치 폭동의 원인이 되었다. 2009년 9월 우루무치 소요 사태, 2010년 아크수에서의 폭탄 테러 등이 발생했다. 2011년 호탄 테러로 18명이 사망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피샨 인질 사태가 발생했다. TIP는 이러한 자신들이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일으켰다고 발표했다. 2012년 예청 테러, 2013년 키슈가르에서의 사태와 산산에서의 폭동 등이 발생했다. 2014년에는 갈등이 심화되어 더욱 많은 테러가 발생했다. 3월 1일, 테러리스트들이 쿤밍 기차역을 공격해 31명이 사망하고 141명이 부상을 입었다. 4월 18일, 위구르족으로 알려진 사람들이 억류되어 있을 때 베트남 국경 수비대와 총격전을 벌였다. 4월 30일, 두 명의 테러리스트들이 사람들을 칼로 지른 후, 우루무치 기차역에서 자살 조끼를 터뜨렸다. 테러리스트를 포함해 3명이 목숨을 잃었다. 5월 22일, 두 건의 자살 차량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반응[편집]

2018년 10월과 2019년 12월 중국 관영매체는 분쟁과 재교육 캠프의 필요성에 대해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이는 중국 SNS에서 상반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편집]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은 유엔, 미국, 유럽연합, 러시아, 영국 등에 의해 테러조직으로 인식되었다.

국제 연합[편집]

2019년 7월, 22개국이 유엔인권이사회 제41차 회의에 공동 서한을 내고 중국의 위구르 등 소수민족의 구금을 규탄하며 "위구르 등 신장 내 무슬림과 소수민족 공동체의 이동 자유 제한을 자제해달라"고 중국에 촉구햇다. 같은 회으에서 50개국은 중국의 신장 정책을 지지하는 공동 서한을 발표하여 "인권 문제를 정치화하는 관행"을 비판했다. 서한에는 "중국은 많은 외교관과 국제기구 관계자, 언론인을 신장으로 초청했다"며 "신장에서 보고 들은 것은 언론에 보도된 것과 완전히 상반된다"고 적혀 있었다. 2019년 10월, 23개국이 유엔에서 공동 성명을 발표하면서 중국은 "국가적, 국제적 의무와 인권 존중 약속을 지킬 것"을 촉구했다. 이에 대응하여 54개국이 중국의 산장 정책을 지지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위구르 인권정책법[편집]

미국 상·하원은 분쟁에 대응해 2019년 9월, 2019년 12월 각각 위구르 인권정책법을 통과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6월 17일 이 법안에 서명했다.

위구르족 추방[편집]

동남아시아를 통해 중국을 탈출한 위구르족 수백 명이 캄보디아와 태국, 말레이시아 등에서 다시 추방되어 유엔난민기구와 인권당체 등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미 국무부는 추방된 위구르인들이 "가혹한 처우와 정당한 절차 부족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추방조치를 국제법 위반이라고 규정했다.

기업의 참여[편집]

코카콜라, 폭스바겐, 나이키 등의 서구 기업들은 신장에서의 노동이 강제 노동에 해당하기 때문에, 신장 지역에서 생산된 제품을 구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중국 내부에선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