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선(삼팔선, 三八線)은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기 위해 그은 군사분계선이다.
삼팔선과 한반도의 분할
미국 육군부 작전국의 초안
1945년 7월에 미국 육군부(현재의 미국 국방부) 작전국(OPD)에서 처음으로 연합국이 한반도를 분할 점령할 계획안을 마련했다. 이 안은 미국이 경기도 · 강원도(함경남도 원산, 안변까지 포함) · 충청북도 · 경상남·북도를, 소련이 함경남·북도(원산/안변 제외)를, 영국이 평안남·북도와 황해도를, 중화민국이 충청남도와 전라남·북도를 점령하는 계획이었다.
미국 합동전쟁기획위원회의 초안
미국 합동전쟁기획위원회(JWPC)는 육군부 작전국의 안을 수정하여 한반도 서해안의 북위 40도 10분를 경계로 하여 서쪽으로는 신의주, 동쪽으로는 함흥까지 미국이 점령하는 분할안을 구상했다. 그러나, 이 안은 현실적으로 군사적 점령이 불가능하다는 미국 군부의 반대로 채택되지 않았다.
3부 조정위원회의 최종안
삼팔선을 확정한 것은 미국 국무부, 육군부, 해군부 기관원의 협의체인 3부 조정위원회(SWNCC)였다. 소련군이 8월 폭풍작전을 개시한 후, 3부 조정위원회 위원장인 국무차관보 제임스 던(J. Dunn)은 1945년8월 11일에 육군부 작전국에 소련군의 남진에 대응하여 미국이 서울과 인천을 점령하도록 하는 군사분계선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미국 육군부 작전국의 본스틸(Charles H. Bonesteel, 이후 주한미군사령관 역임)대령과 미 육군장관 보좌관이었던 딘 러스크(Dean Rusk, 이후 케네디와 존슨 정부에서 국무장관 역임)중령은 작전국에 걸려 있던 내셔널 지오그래픽사의 벽걸이 지도에 38선을 그어본 후 38선 분할 점령안을 미국 합참과 3부 조정위원회에 보고했고, 이 안이 대통령에게 보고되어 '일반 명령 제1호'로 맥아더 사령관에게 전달되었다.
삼팔선 분할 점령안을 미국이 제안하자 소련은 별 이의 없이 이를 받아들였고, 1945년8월 23일 개성까지 내려갔던 소련군은 같은 해 9월 초에 삼십팔도선 이북으로 철수했다. 이 과정에서 미군정 관할의 양양군이 강릉군에, 연천군이 파주군에, 인제군이 홍천군에 병합되었고, 소군정 관할의 가평군과 춘천군은 화천군에, 포천군은 연천군과 철원군에 합병되었다.
휴전선으로 대체
한국 전쟁으로 1953년7월 27일에 설정된 군사분계선(휴전선)은 위도상 38도 분할선과 비슷한 위치에 있지만, 38도선을 기준으로 서쪽 경계가 남하하였고 동쪽 경계가 북상한 차이가 생겼다. 이에 따라 38도선 서남쪽의 황해도옹진 · 연백과 경기도개성 · 개풍 지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38도선 동북쪽의 강원도철원 · 화천 · 양구 · 인제 · 양양 · 고성과 경기도연천 지역은 대한민국이 차지하였다. 다만, 38선은 한반도 분단에 있어서 차지하는 상징성이 크고 분단의 직접적 원인이었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휴전선을 삼팔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