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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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내전

적백 내전
날짜1917년 10월 25일 - 1922년 10월
장소
결과

볼셰비키의 승리

교전국

소련 볼셰비키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러시아 SFSR
사회혁명당 좌파

우크라이나 아나키스트 (1919-1920)

러시아 제국 백군
틀:접을 수 있는 목록 틀:접을 수 있는 목록 틀:접을 수 있는 목록 기타 참여국
히바 칸국의 기 히바 칸국
몽골의 기 몽골
오스만 제국의 기 오스만 제국
바스마시 운동
비볼셰비키
사회혁명당 좌파 (1918.3-)

우크라이나 아나키스트 (1920-1921)
지휘관
소련 블라디미르 레닌
레프 트로츠키
미하일 투하체프스키
클리멘트 보로실로프
세묜 부됸니
바실리 블류헤르
세묜 티모셴코
라브렌티 베리야
이오시프 스탈린
네스토르 마흐노
알렉산드르 콜차크
안톤 데니킨
라브르 코르닐로프
표트르 브랑겔
레오니트 유스포프
빅토르 포크로프스키
아나톨리 페필리야예프
알렉산드르 두토프
병력
300만 명 백군 240만 명
동맹군 25만 명
피해 규모
120만 명 사상 150만 명 사상

러시아 내전(러시아어: Гражданская война в России) 또는 적백 내전(赤白內戰, 1917년 10월 25일 ~ 1922년 10월)은 10월 혁명 이후에 볼셰비키페트로그라드를 장악하자, 옛 러시아 제국 영토를 둘러싸고 여러 당파와 교전 세력이 전투를 벌인 전쟁을 말한다.

볼셰비키의 붉은 군대와 미국, 영국 등의 자본주의 국가로부터 무기와 돈을 지원받는 러시아 자본가 군대이자 느슨한 반(反) 볼셰비키 연합체인 하얀 군대 간의 싸움이라는 것이 내전이라는 주장의 근거였다. 가끔씩 일시적으로 좌익 친혁명 세력들이 반혁명세력과 싸우기 위해 붉은 군대와 개별 전투에서 연합하기도 했다.

여기에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프랑스 제국,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영국), 미국, 오스만 제국, 핀란드, 일본 제국, 루마니아 등 자본주의, 제국주의 진영이 볼셰비키 정부를 제거하고, 공산주의자를 살해하며, 러시아를 자본주의 나라로 만들고, 공산주의 정부를 늘리는 것을 막고, 차르 같은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로 돌려놓아, 이익을 얻기 위해 참전하였다. 러시아 내의 어떤 소수민족은 독립을 기치로 무장하여 전쟁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이런 세력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녹색 군대", "우크라이나 무정부주의 검은 군대"가 포함된다. 또한 사병을 거느린 군벌도 내전에 개입했는데, 대표적으로 운게른 슈테른베르크가 여기에 포함된다.

전투가 가장 잦았던 시기는 1918년부터 1920년까지였다. 주요 군사 작전은 1922년 10월 25일 붉은 군대가 프리아무르 임시정부가 있던 블라디보스토크를 점령함으로써 종결되었다.

최후까지 남아있던 하얀 군대는 태평양 연안의 아야노마이스키 구에 주둔하던 아나톨리 페펠리야예프의 군대였다. 이들은 1923년 6월 17일에 분쇄되었다.

개요

니콜라이 2세의 퇴위와 1917년 2월 혁명의 격동을 뒤이어 러시아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10월에 또다른 혁명이 발생하여 볼셰비키가 지도하는 적위대 (주로 노동자와 전선을 탈영한 군인들로 구성)가 임시정부를 전복하고 페트로그라드를 장악하였다.

이후 적위대는 옛 러시아 제국의 주요도시와 곡창지대에서 압도 다수의 지지를 받는 데 성공했다. 1918년 볼셰비키는 제헌의회를 해산시키고 소비에트가 러시아의 새로운 정부라고 선언하였다.

볼셰비키는 집권하기 전부터 공약한대로, 독일 제국을 비롯한 추축국(오스트리아-헝가리, 오스만 제국 등)과 즉각 종전협상을 개시했다. 독일 제국은 레닌이 귀국하여 러시아에서 혁명을 일으킬 것을 기대하고 스위스에 머물던 레닌이 자신의 영토를 통과하는 것을 허용하였는데, 레닌의 정적들은 독일에 보답하기 위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1917년 12월 2일 브레스트리토프스크에서는 평화협상이 시작되었고, 러시아와 추축국간의 평화협상을 위한 일시 휴전이 성립되었다.

평화조건으로 추축국은 옛 러시아 제국 영토의 상당부분을 독일제국과 오스만 제국에 할양할 것을 요구했다. 이것은 러시아의 민족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을 동요시켰다. 레프 트로츠키는 추축국의 요구를 거부하고 일시 휴전상태의 지속하에서 무전쟁, 무평화"를 선언했다.

이에 대해 독일군은 1918년 2월 18일 다시 동부전선의 공세를 재개하여 볼셰비키 정부를 위협하였다. 독일군은 11일간에 걸친 작전에서 저항을 거의 받지 않았다. 볼셰비키의 입장에서는 정식 평화협정에 서명하는 것이 유일한 선택으로 보였다.

왜냐하면 러시아군은 해체 상태였으며, 새롭게 창건 중인 적위대는 이를 저지할 만한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닥쳐올 반혁명 세력의 저항이 평화협정에서 양보하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레닌은 전 세계적인 혁명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이러한 양보가 일시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볼셰비키는 평화조약에 동의했고,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1918년 3월 6일 비준되었다. 볼셰비키는 이 조약이 단지 전쟁을 끝내기 위한 필요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독일 제국에 광대한 영토를 할양하였으며, 여기에 짧은 기간 동안 독일의 괴뢰 완충국가가 세워졌다.

이들 국가들은 핀란드,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그루지야,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등이었다.

독일 제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자, 새롭게 창립된 소비에트 연방은 이들 영토의 일부분을 회복하였으나, 어떤 국가들은 계속 독립을 유지하거나 제2차 세계대전 시까지 다른 국가에 점령되어 있었다.

붉은군대의 창설

10월 혁명이후 러시아 제국군은 해체상태였으며, 지원제의 적위대가 볼셰비키의 주된 무력이었다. 또한 이것은 전러시아 노동자-병사-농민 소비에트 대회의 결의로 창설된 체카의 무력에 의해 보강되어 있었다.

1918년 1월, 적위대가 주요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국방인민위원 레프 트로츠키는 보다 전문적인 전투병력을 보유하기 위해, 적위대의 조직개편을 단행하여, "노동자와 농민의 붉은군대"로 재조직하였다. 붉은군대는 매 부대에 당의 명령을 받는 정치장교가 배치되어 부대의 사기와 충성심을 감독하였다.

1918년 6월, 노동자만으로 조직된 혁명군의 병력이 너무 적었기 때문에, 소비에트 정부는 징병제를 도입하였다. 당시 러시아 인구에서 농민이 압도 다수를 차지 하였고 그에 따라 주요 징집 대상은 농민이었다. 징병제에 대한 농민의 반대에 대처하기 위해 볼셰비키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였다. 각 부대에 노동자 출신 병사들을 최대한 섞어 놓음으로서 군대 대 농민의 혁명 의식을 고양시키려 노력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 탈영자들을 찾아서 다시 입대시키는 임무를 맡은 위원회를 조직하여 탈영자들을 재입대 시키고자 노력하였다. 전직 러시아 제국군의 장교들은 "군사 전문가"로서 이용되었다.

제국군 장교 출신 붉은군대 장교들의 충성을 보장받기 위해 이들에게 정치위원 한 명씩을 붙여 이들을 감시하게 하였으며 때로는 이들의 가족을 인질로 삼기도 했다. 전쟁이 시작될 무렵, 4분의 3의 붉은군대 장교들이 전직 제국군 장교들이었다. 전쟁이 끝날무렵에 83%의 붉은군대 사단이나 군단의 사령관들이 전직 제국군 출신이었다. 내전 도중 배신한 제국군 장교 출신들도 상당수 있었지만 배신하지 않고 붉은군대에 복무한 제국군 장교 출신들이 더 많았다.

주요 참전 세력

제헌 의회 구성을 위한 선거에서 볼셰비키와 다른 혁명 지지세력은 과반수 획득에 실패하였다. 시베리아 지역 등 혁명의 여파를 많이 받지 않은 광범위한 변방 지역들에서 10월 혁명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선출되었고, 거기에 더해서 (10월 혁명 전 분열되기 전의 사회혁명당은 농촌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정당이었다)혁명을 지지하는 좌파 사회혁명당과 혁명을 반대하는 기존 사회혁명당이 선거 명부에서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볼셰비키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전러시아 노동자-병사-농민 소비에트 대표 다수에게서 지지를 받았고, 러시아의 핵심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를 포함한 주요 공업도시들과 유럽 쪽 러시아 곡창지대의 노동자 농민들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볼셰비키가 노동자 근로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한 쿠데타 세력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10월 혁명 바로 다음날부터 혁명에 대한 저항이 시작되었지만, 혁명 이후 며칠 동안의 케렌스키의 재집권 시도를 제외한다면 초창기 반혁명 세력의 저항은 미미하였다. 러시아의 핵심지역(주요 공업도시들과 주요 곡창지대들)의 혁명에 대한 지지가 확고한 데다 반혁명 세력의 주요 후원자 중 하나였던 자본가들은 사기저하되고 파편화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더해 혁명을 반대하는 사회주의 정당인 사회혁명당과 멘셰비키가 그동안 받고 있었던 신망을 많이 잃어버렸다는 것도 초기 저항이 미미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볼셰비키 정부에 대한 저항이 격화된 때는, 외국 제국주의 국가들(1차 세계대전에서의 연합국 진영)이 본격적으로 개입하고 좌파 사회혁명당과의 연립정부가 무너진 1918년 여름 이후였다. 기존 사회혁명당에서 떨어져 나와 10월 혁명을 지지했던 좌파 사회혁명당은 혁명 직후 볼셰비키와의 연립정부에 참여하고 제헌의회 해산에도 찬성했으며 보안기구인 체카 조직에도 같이 참여했을 정도로 친혁명적인 정당이었다. (초창기에 체카에는 좌파 사회혁명당 요원들도 있었다) 하지만 좌파 사회혁명당은 볼셰비키가 추진하던 독일과의 휴전 협상을 반대했으며 계속 (혁명전쟁이란 명분으로)전쟁을 치르고 싶어했다. 결국 1918년 3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강화 조약이 체결되자 강하게 반발한 좌파 사회혁명당은 볼셰비키 정부를 전복시킬 쿠데타 모의를 시작했으며, 7월 러시아 주재 독일 대사 미르바흐 백작 암살과 체카 수장 제르진스키 억류를 시작으로 쿠데타를 시도했다. 좌파 사회혁명당과의 결별과 더불어 제국주의 외세의 개입이 본격화 되면서 내전은 격화되었다.

오직 10월 혁명으로 집권한 공정부에 대항한다는 명분으로 또는 독일과의 전쟁을 계속해야 된다는 명분으로 귀족, 공화주의자, 보수주의자, 중산층, 반혁명분자, 왕당파, 자유주의자, 장군, 비볼셰비키 사회주의자 등의 상이한 집단이 모두 참여하는 느슨한 반볼셰비키 연맹이 맺어졌다. 하지만 비볼셰비키 사회주의자들의 경우 얼마 못 가 볼셰비키는 물론이고 다른 반혁명 세력들로부터도 탄압받게 되면서 느슨한 연맹은 분열됐다. (그럼에도 비볼셰비키 사회주의자들은 볼셰비키에 반대하는 태도를 버리진 못했다)

반혁명 세력은 제국주의 외세와 반혁명 소수민족 정부들의 지원을 받고 러시아 제국군 장군 출신인 라브르 코르닐로프, 안톤 데니킨, 알렉산드르 콜차크, 니콜라이 유데니치, 표트르 브랑겔, 레오니드 유스포프 등이 지휘하는 하얀 군대(혹은 백군 白軍)이라고 불리는 군사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들은 내전기간 내내 옛 러시아 제국의 상당부분을 점유하게 된다. 1920년니콜라옙스크 사건으로 독립군과 붉은 군대은 일본군하얀 군대을 전멸시켰다.[1][2]

한편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의 군대인 "녹색군대"는 내전 초기에 우크라이나에서 활약하였다. 이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무정부자들의 군대인 "검은 군대" (정식명칭은 우크라이나 혁명봉기군)였다.

검은군대는 유대인들과 우크라이나 농민들이 지휘부를 구성하고 있었으며, 데니킨의 하얀군대의 모스크바 진공을 막고, 코삭을 크리미아로부터 축출하였다.

제1차대전에 참전한 연합국 쪽 자본주의 국가들은 독일과 단독강화를 맺으려는 볼셰비키에 대해 적대감, 또한 있을지도 모르는 독일-러시아 동맹에, 볼셰비키가 연합국에 대한 제정 러시아의 채무를 모두 무효화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감으로 러시아 내전에 개입했다. 또한 공산주의 혁명이 자국에 전파되는 것을 저지할 목적도 있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하얀군대를 지원하였다.

대부분의 외세개입은 브랑겔이 크림 반도에서 패함과 동시에 1920년에 끝났지만, 1923년까지 여러 사건이 계속되어 내전은 1923년에야 완전히 끝났다.

출처

  • Vladimir N. Brovkin. Behind the Front Lines of the Civil War: Political Parties and Social Movements in Russia, 1918–1922.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4. ISBN 0-691-03278-5
  • David Bullock. The Russian Civil War 1918–22. Osprey Publishing, 2008. ISBN 978-1-84603-271-4
  • T.N. Dupuy. The Encyclopedia of Military History (many editions) Harper & Row Publishers.
  • Peter Kenez. Civil War in South Russia, 1918: The First Year of the Volunteer Army,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1.
  • Peter Kenez. Civil War in South Russia, 1919–1920: The Defeat of the Whites,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7.
  • W. Bruce Lincoln. Red Victory.
  • Evan Mawdsley. The Russian Civil War. New York: Pegasus Books, 2007.
  • George Stewart. The White Armies of Russia: A Chronicle of Counter-Revolution and Allied Intervention.
  • David R. Stone. "The Russian Civil War, 1917–1921," in The Military History of the Soviet Union.
  • Geoffrey Swain. The Origins of the Russian Civil War.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