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제
| 명나라의 제3대 황제 | |
| 재위 | 1402년 ~ 1424년 |
|---|---|
| 황후 | 인효문황후 |
| 부황 | 홍무제 |
| 모후 | 효자고황후 |
| 이전 황제 | 건문제 |
| 다음 황제 | 홍희제 |
영락제(永樂帝, 1360년 5월 2일 ~ 1424년 8월 12일)는 명 왕조의 제3대 황제(재위 1402년~1424년)이다. 묘호는 태종(太宗)이었다가, 훗날 가정제 때 성조(成祖)로 고쳤으며, 시호는 계천홍도고명조운성무신공순인지효문황제(啓天弘道高明肇運聖武神功純仁至孝文皇帝)이다. 이름은 주체(朱棣), 명 태조 홍무제의 4남이며 어머니는 효자고황후 마씨이다.
조카 건문제의 제위계승 및 제후 숙청에 반발하여 정변을 일으켰다.
목차 |
[편집] 생애
[편집] 생애 초반
1360년 홍무제의 네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는 이른 아침부터 학자를 초청하였고, 한 번 읽은 책 내용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홍무 3년 (1370년), 북평에 봉해지지만 실제로 북평으로 향해 것은 홍무 13년인 (1380년), 21세 때이다.
1368년 명나라가 건국되자 연왕(燕王)에 책봉되고 성년이 되자 수도인 남경을 떠나 북평에 주둔하며 북방의 군사들을 총괄하고 중국 대륙에서 쫓겨난 북원의 동태를 감시하였다.
[편집] 정난의 변
이 부분의 본문은 정난의 변입니다.
1398년 홍무제가 죽자 2대 황제였던 손자 건문제가 자신을 비롯한 숙부들, 즉 홍무제의 아들들의 군권을 약화시키려는 정책을 펼치니, 건문제와 숙부였던 홍무제의 아들들 사이에서 불화가 일어났고 당시 홍무제의 아들들 중 가장 연장자이며 세력이 강대한 주체가 수반이 되어 1402년 군사를 일으키니 이를 '정난의 변'이라고 한다.
1402년 주체는 수도 난징을 점령하고 건문제에게서 제위를 찬탈하고 스스로 황제로 즉위했다. 그가 바로 제3대 황제 성조 영락제였다. 영락제의 즉위로 인해 정치의 중심은 다시 베이징으로 이동했다.
[편집] 정벌 사업
영락제는 북경으로 천도하여 홍무제의 신중책을 바꿔, 왕성하게 세력을 넓혔다. 북쪽으로 후퇴한 원나라의 잔당(북원, 명나라에서는 이것을 타타르라고 부른다)은 1388년 토곤 테무르의 왕통이 단절되었으나, 영락제는 원정을 감행해 이들을 제압했다. 만주에는 여진족을 복속시켜 위소제에 조직해 넣는 데 성공했다. 남쪽은 베트남의 진조에서 내란이 일어나자 이를 틈타 정복하였다.
거기에 해외의 동남아시아, 인도양까지 위신을 넓히기 위해 정화가 이끄는 대함대를 파견하여 일부가 메카,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도달한 대원정의 결과, 다수의 나라로부터 조공을 받는 관계를 맺었다.
[편집] 대량의 연좌제
한편, 당대의 대문장가인 방효유에게 자신을 찬양하는 글을 쓰라고 요구했는데 그가 오히려 비난하는 글을 쓰자 투옥, 고문한 뒤 회유하였으나 끝내 영락제의 찬양을 거부하였다. 영락제는 그의 십족(구족에다 방효유와 친분이 있는 모든 사람, 방효유의 문집을 애독하는 모든 사람 추가)을 차례로 처형하고, 집안 여성들은 노비로 분배했으며 제일 마지막에 방효유를 처형하였다. 방효유의 처와 자녀들은 자신의 집에서 음독자살하여 화를 면하였다.
방효유 등을 처형하게 된다면 충신이 사라질 것이라는 일부의 경고에도 그는 나의 패륜은 세월이 흐르면 비바람에 잊혀지겠지만, 나의 위업은 역사에 오래 기록될 것'이라 했다. 방효유 일족을 10만여 명을 처형하면서 십족을 멸한다는 고사가 생겨나기도 했다.
[편집] 생애 후반
그는 정화 등의 항해사를 서부에 파견하여 서역 등을 탐험하게 하였고, 이후 한나라와 당나라 이후 새로운 교역로(해상 교역)을 개척하게 한다.
몽골족과 교전을 벌여 영토를 확장했고, 동아프리카에 자신의 심복인 정화를 보내 외교활동을 펼쳤다. 그는 문화 사업에도 관심을 쏟아 명나라 학문을 종합한 《영락대전》(永樂大典), 《사서대전》, 《오경대전》, 《성리대전》을 편찬하였다.
[편집] 사후
그가 죽자 30여명의 궁인을 함께 순장하였다. 이 중 2명이 조선인 출신 공녀였고 그 중 1명은 강혜장숙여비(康惠莊淑麗妃) 한씨로 지순창군사 한영정(韓永矴)의 딸이자 조선에서 좌의정을 지낸 한확의 누이였고 소혜왕후의 고모였다.
[편집] 어여의 난
[편집] 가족관계
- 부황 : 태조 고황제
- 모후 : 효자고황후
- 황후 : 인효문황후 서씨(仁孝文皇后 徐氏)
- 후궁 : 왕귀비(王貴妃)
- 후궁 : 현인비(賢仁妃), 조선의 공녀
- 후궁 : 여미인(呂美人), 조선의 공녀
- 후궁 : 강혜장숙여비(康惠莊淑麗妃), 조선의 공녀,소혜왕후의 큰 고모
- 후궁 : 강목의공혜비(康穆懿恭惠妃)
- 4남 : 고희(高爔)
- 후궁 : 임순비(任順妃), 조선의 공녀
- 후궁 : 이소의(李昭儀), 조선의 공녀
- 후궁 : 최미인(崔美人), 조선의 공녀
- 후궁 : 공영왕미인(恭榮王美人)
- 후궁 : 경혜노미인(景惠盧美人)
- 후궁 : 정비(鄭妃), 조선의 공녀
- 후궁 : 송비(宋妃), 조선의 공녀
- 후궁 : 황비(黃妃), 조선의 공녀
- 후궁 : 여비(呂妃), 여미인에게 현인비 살해 혐의를 무고함
- 후궁 : 어비(魚妃), 여미인에게 현인비 살해 혐의를 무고함
[편집] 기타
그의 재능을 알아본 홍무제는 장남 주표의 사후 그를 황태자로 올리려 하였으나, 유학자들의 반대[1]로 실패하였다. 홍무제는 이를 심히 애통해했다고 한다.
[편집] 주석
- ↑ 적장자 승계라는 주자가례에 의한 반대
[편집] 바깥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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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임 조카 혜종 건문제 주윤문 |
1402년 ~ 1424년 | 후 임 장남 인종 홍희제 주고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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