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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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희제
明仁宗.jpg
명나라의 제4대 황제
재위 1424년 ~ 1425년
황후 성효소황후
부황 영락제
모후 인효문황후
이전 황제 영락제
다음 황제 선덕제

홍희제(洪熙帝, 1378년 8월 16일 ~ 1425년 5월 29일)는 중국 명나라의 제4대 황제(재위 1424년~1425년)이다. 이름은 주고치(朱高熾)이다. 묘호는 인종(仁宗), 연호는 홍희(洪熙)이다. 홍무제의 손자이며, 영락제와 인효문황후 서씨(仁孝文皇后 徐氏)의 장남이다.

생애[편집]

1395년(홍무 27년)에 당시 연왕(燕王)이었던 아버지 주체의 후계자로서 연왕세자(燕王世子)에 책봉되고 정난의 변에서 아버지의 영지인 연의 영토를 지켜 아버지의 총애를 받았다. 영락제가 즉위한 이후에 황태자에 책봉되었다. 문무에 빼어났다고 하나 어렸을 때부터 병약 하였기에 아버지인 영락제는 흡족해 하지 않아, 황태자로써의 폐위를 고민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아들인 주첨기(명나라의 5대 황제 선덕제)가 영민하고 날렵하여 영락제의 총애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손자를 생각하여 홍희제의 태자 폐립 문제는 백지화 되었다. 그리고 영락제는 주첨기를 매우 총애하여 황태손으로 삼고 벌써부터 제왕학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또 홍희제는 비정상적으로 뚱뚱하여 성인이 되었을 무렵에는 스스로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영락제가 외정(外征)을 나가는 경우, 궁궐을 비우는 일이 많아 궁궐에서 황제를 대신하여 감국(監國)으로써 업무와 정사를 본 경험이 있었으므로, 황제가 되어 황태자 시절의 정치 능력을 발휘했다.

즉위 후[편집]

아버지 영락제가 많은 신하들을 숙청하고 공포정치를 펼친 데에 반해 홍희제는 정난의 변에 건문제의 편에 서 몰살을 당한 일가의 신원을 회복하고 재산을 반환하는 정책과, 영락제에게 간언하여 투옥된 하원길(夏元吉)을 석방하는 등 인정(仁政)을 베풀었다. 또한 영락제의 외정(外征)으로 인한 국고 손실을 막기 위해 홍희제는 대외 팽창 정책을 억제하고, 다시 난징(南京)으로 천도계획을 세웠으나 그가 죽음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았다 48세 젊은 나이에 비만으로 사망하였다.

법의 적용을 명확히 하고 궁형(宮刑)을 금지했으며 내치의 회복을 위해 힘썼으나 재위 8개월 만에 붕어하였으므로, 명나라에서 태창제 다음으로 재위기간이 짧은 황제가 되었다. 1425년 5월 29일에 붕어하였고 다섯 명의 귀비가 순장되었다. 능은 헌릉(獻陵)이다. 약 1년간의 짧은 재위 기간이었지만 선정을 베풀고 대내 안정을 확고히 하여 다음 황제인 선덕제(宣德帝)의 치세에도 큰 영향을 끼쳐 초기 명나라의 기틀을 잡아, 홍희제와 아들 선덕제의 치세를 인선의 치(仁宣之治,인종[仁宗]과 선종[宣宗]의 치세)라고 부른다.

가족[편집]

  • 황후 : 성효소황후 장씨(誠孝昭皇后 張氏)
    • 장남 : 황태자 주첨기(朱瞻基) - 명나라의 제5대 황제 선종 선덕제.
    • 3남 : 월정왕 주첨용(越靖王 朱瞻墉)
    • 5남 : 양헌왕 주첨선(襄憲王 朱瞻墡)
    • 장녀 : 가흥공주(嘉興公主)
  • 후궁 : 공숙귀비 곽씨(恭肅貴妃 郭氏)
    • 8남 : 등회왕 주첨개(滕懷王 朱瞻塏)
    • 9남 : 양장왕 주첨기(梁莊王 朱瞻垍)
    • 10남 : 위공왕 주첨연(衛恭王 朱瞻埏)
  • 후궁 : 정혜숙비 왕씨(貞惠淑妃 王氏)
  • 후궁 : 혜안여비 왕씨(惠安麗妃 王氏)
  • 후궁 : 공희순비 담씨(恭僖順妃 譚氏)
  • 후궁 : 공정윤비 황씨(恭靖充妃 黃氏)
  • 후궁 : 정정경비 장씨(貞靜敬妃 張氏)
  • 후궁 : 도희여비 이씨(悼僖麗妃 李氏)
  • 후궁 : 정정순비 장씨(貞靜順妃 張氏)
    • 6남 : 형헌왕 주첨강(荊憲王 朱瞻堈)
  • 후궁 : 현비 이씨(賢妃 李氏)
    • 차남 : 정정왕 주첨준(鄭靖王 朱瞻埈)
    • 4남 : 기헌왕 주첨은(蘄獻王 朱瞻垠)
    • 7남 : 회정왕 주첨욱(淮靖王 朱瞻墺)
    • 황녀 : 진정공주(眞定公主)
  • 후궁 : 혜비 조씨(惠妃 趙氏)
    • 2녀 : 경도공주(慶都公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