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제
| 명나라의 제6, 8대 황제 | |
| 재위 | 1435년 ~ 1449년 1457년 ~ 146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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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후 | 효장예황후 효숙예황후 |
| 부황 | 선덕제 |
| 모후 | 효공장황후 |
| 이전 황제 | 선덕제 경태제 |
| 다음 황제 | 경태제 성화제 |
정통제 / 천순제(正統帝 / 天順帝, 1427년 11월 29일 ~ 1464년 2월 23일)는 중국 명나라의 제6, 8대 황제(재위 1435년 ~ 1449년, 복위 1457년 ~ 1464년)이다. 이름은 주기진(朱祁鎭)이다. 명 왕조 사상 첫 복위를 한 황제로, 정통(正統)의 연호를 사용하였다가, 복위 후에 천순(天順)으로 개원하였다. 명나라는 일세일원제(一世一元制), 즉 한 황제마다 하나의 연호만을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나 명나라 황제 중, 유일하게 복위하여 연호를 개원하였으므로 혼란을 피하기 위해 묘호인 명 영종(明英宗)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선덕제(宣德帝)의 장남이며, 경태제(景泰帝)의 이복형이다. 어머니는 효공장황후 손씨(孝恭章皇后 孫氏)이다.
목차 |
즉위 [편집]
1435년 선덕제가 죽자, 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명나라 황제가 되었다. 영종의 나이가 어렸으므로 황제의 조모인 태황태후 장씨(太皇太后 張氏, 성효소황후)가 섭정을 하고 양사기(楊士奇)를 비롯한 현명한 신하들의 섭정에 의해 안정된 정국을 이끌어 나갔다. 그러나 영종의 총애를 업고 환관 왕진(王振)이 전횡을 일삼기도 하였으나, 영종은 이를 눈감아 주었다. 이후 명나라는 환관의 전횡과 폐단으로 여러 차례 파국을 맞게 된다.
토목의 변 [편집]
환관 왕진의 전횡과 더불어 명나라 초기의 안정적인 조정은 해이해지기 시작했고, 1449년에는 몽골계 부족인 오이라트(Oirāt)가 세력을 형성하고 무역의 확장을 위해 명과 교섭하였으나 여러 차례 결렬되자 오이라트족의 족장 에센은 명나라 변방에 침입하였다. 이에 환관 왕진(王振)은 영종에게 직접 친정(親征)을 간청했으나 이부상서와 병부상서는 친정을 만류했다. 하지만 영종은 왕진의 건의를 받아들여 오이라트족을 친정하고자 50만의 군대를 이끌고 북진했으나, 50만 명의 군사중에는 문신(文臣), 귀족(貴族) 등 전쟁과 무관한 이들을 포함시켜 군대의 규모를 과시하였다.
전투에서 비정예군이 오이라트족에게 대패하였음에도 여러 군신들의 말을 듣지 않은 채 왕진이 국정을 농단하였다. 이들의 패전 소식은 북경(北京) 조정에 큰 충격을 주었고, 남경(南京) 천도설이 나왔지만 병부시랑 우겸(于謙)이 "남쪽으로 도망하여 멸망한 송(宋, 960년 ~ 1279년)의 예를 못 보았느냐며 북경은 천리이므로 사수하여야 한다" 라고 강력히 주장하여 조정을 안정시켰다.
한편 에센족은 명군의 수급로를 차단하고 연승하였으나 환관 왕진은 이 와중에도 신하들의 충고를 무시하는 등 전횡을 일삼다가 피살당하였으며, 결국 에센군은 토목보를 포위하여 명나라 황제 영종을 잡아갔다. 중국 역사상 외적과의 전쟁 중 황제가 포로로 잡혀 간 것은 명나라 영종이 처음이다. 이 사건을 토목의 변이라고 한다.
황제를 포로로 잡아간 에센족은 전세의 유리함을 알고, 명과의 교섭을 시작하려 하였으나 북경 조정은 영종의 이복동생인 주기옥(朱祁鈺)을 새로운 황제로 옹립하니 대종 경태제(代宗 景泰帝)이다. 에센족은 포로로 잡은 영종이 협상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자 아무런 조건 없이 1450년에 명나라 조정에 송환했다. 하지만 이미 이복동생인 대종이 즉위하여 황제가 되었으므로 영종은 태상황(太上皇)이 되었으나 궁에 유폐되었다.
탈문의 변 [편집]
경태제가 영종을 유폐시키자 조정은 영종(정통제/천순제)을 중심으로 하는 파와 경태제를 중심으로 하는 파로 나뉘었다. 경태제는 본래 황태자였던 영종의 아들 주견심을 폐하고, 자신의 아들인 주견제를 황태자로 책봉하였지만 그는 병으로 죽고 만다. 1457년에 병을 앓는 도중 영종을 중심으로 하는 일파가 정변을 일으켜 경태제는 폐위되었고, 폐위된 지 한 달 후에 급사하였다. 영종은 천순제라는 이름으로 복위에 성공했다.
가족 [편집]
황후
후궁
- 신비 만씨(宸妃 萬氏)
- 혜비 왕씨(惠妃 王氏)
- 숙비 고씨(淑妃 高氏)
- 덕비 위씨(德妃 韋氏)
- 안비 양씨(安妃 楊氏)
- 무비 유씨(無妃 柳氏) - 시호 없음.
자녀
- 헌종 주견심(憲宗 朱見深) - 효숙예황후 주씨
- 덕장왕 주견린(德章王 朱見潾) - 신비 만씨
- 허도왕 주견순(許悼王 朱見淳) - 혜비 왕씨
- 수회왕 주견주(秀懐王 朱見澍) - 숙비 고씨
- 숭간왕 주견택(崇簡王 朱見澤) - 효숙예황후 주씨
- 길간왕 주견준(吉簡王 朱見浚) - 신비 만씨
- 흔목왕 주견치(炘穆王 朱見治) - 신비 만씨
- 휘장왕 주견패(徽莊王 朱見沛) - 덕비 위씨
- 중경공주(重慶公主) - 효숙예황후 주씨
- 가선공주(嘉善公主) - 혜비 왕씨
- 순안공주(淳安公主) - 생모 미상
- 숭덕공주(崇德公主) - 안비 양씨
- 광덕공주(廣德公主) - 신비 만씨
- 의흥공주(宜興公主) - 덕비 위씨
- 융경공주(隆慶公主) - 숙비 고씨
- 가상공주(嘉祥公主) - 무비 유씨
| 전 임 아버지 선종 선덕제 주첨기 이복동생 대종 경태제 주기옥 |
1435년 ~ 1449년 | 후 임 이복동생 대종 경태제 주기옥 장남 헌종 성화제 주견심 |
| 홍무제 | (효강황) | 건문제 | 영락제 | 홍희제 | 선덕제 | 정통제 | 경태제 | 천순제(복위) | 성화제 | 홍치제 | 정덕제 | (흥헌황) |가정제 | 융경제 | 만력제 | 태창제 | 천계제 | 숭정제 | (도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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