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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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진(王振, ? - 1449년)은 명나라대의 환관이다. 정통제 영종의 즉위 후에 정치를 독점했지만, 토목의 변으로 경호 무사들에게 피살당하였다.

생애[편집]

울주(허베이 성 울현)의 출신이다. 내시양성 기관인 내서당의 출신으로, 학식이 뛰어나고, 선덕 연간에 황태자(후의 영종)의 교육을 담당했기 때문에, 영종 즉위 후에 사례감의 장인 장앙태감이 되었고, 문서의 개편 등의 전횡을 행하였다.

정통제 7년(1442년)에 태황태후 장씨(성효소황후)가 승하하자, 그 전후의 조정의 유력자가 되었다. 양영, 양사기, 양부의 3인이 죽음으로 은퇴하면서, 점점 권세를 부려 수뢰로 재산을 축적하고 반대자를 탄압했다.

정통제 14년(1449년)에 오이라트가 샨시에 침입하면서, 영종에게 친정을 추천해 같이 종군 했으나 명군은 대패해 영종은 포로가 되었고 자신도 휘하 군사들에게 살해당했다.

토목보의 변이 발생한 이후 왕진의 가문은 처벌을 당하고, 재산도 몰수됐다.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