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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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가정에서 쓰는 아날로그 시계(사진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캔버라의 가정집의 시계)
일반적인 가정에서 쓰는 아날로그 시계(사진은 오스트레일리아캔버라의 가정집의 시계)

시계(時計)는 시각·시간을 알려 주거나 시간을 측정하는 도구 혹은 기계를 말한다. 시계에는 자연적이나 기계로 움직이는 것과 건전지 등을 넣어서 움직이는 시계 등이 있으며, 일상적으로는 벽걸이시계, 손목시계, 탁상시계 등이 많이 사용된다. 이외에도 시계에는 뻐꾸기시계, 모래시계, 물시계, 해시계 등이 있다.

목차

[편집] 역사

[편집] 해시계와 측정 도구

해시계는 고대 사회에서 널리 이용된 시계였다. 해시계는 햇빛 때문에 생겨난 그림자로 시간대를 알려주는 다소 원시적 수준의 도구에 불과했다. 하지만 잘 개량된 해시계는 태양시를 비교적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었다. 물론, 시간을 측정하려면 오랫동안 지켜봐야 했고, 날이 흐리거나 밤일 경우엔 시간 측정 자체가 불가능했다. 결국 이런 해시계의 한계는 다른 시계를 발명할 필요를 느끼게 하였고 좀 더 높은 수준의 물시계 따위가 등장한다.

또한 촛농이 녹아 초가 타는 것으로 시간을 쟀던 양초시계는 특정한 길이의 시간을 재는데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그리고 작은 구멍사이로 모래가 빠져나와 윗층의 모래가 아랫층의 모래까지 가는 시간으로 특정한 길이의 시간을 재는 모래시계 또한 당시로서는 정확했고 유용한 도구였다.


[편집] 물시계

물시계는 해시계와 함께 매우 오래된 시계이다. 가장 단순한 형태를 가진 물시계는 그릇에서 새어나오는 물로 측정했다. 이러한 물시계를 가장 처음 쓰인 곳으로는 기원전 16세기 바빌론과 고대 이집트가 유력하다. 인도중국 또한 매우 오래전부터 물시계를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일반적으로 그리스로마 또한 정확하고 복잡한 물시계를 사용했다고 본다. 그리고 이들이 사용한 물시계는 다시 비잔티움 제국이슬람으로 전파되어 더욱 발전하게 된다. 고대 중국에서도 독자적으로 물시계를 발전시켰으며 이러한 기술은 후에 한국일본에 가지도 전달된다.

어떤 지역에서는 물시계가 독자적으로 발전하였지만, 어떤 곳에서는 다른 곳에서 기술을 전달받은 곳도 있었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은, 산업혁명 이전에는 굳이 시간이 정확하게 몇 시인지 알 필요는 없었다는 점이다. 산업혁명 이전 시대에는 시계는 단순히 연설이나 교회의 설교 따위에 필요했고, 물시계는 이러한 역할을 비교적 정확하게 해냈다. 이렇듯 이전 사회에서는 현대 사회 만큼 정확성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주로 시간의 길이를 측정하는데 쓰였다. 하지만 17세기 무렵 유럽에서 진자의 운동을 통한 시계를 발명한 것은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편집] 중세의 시계

797년,(801년 일수도 있음) 아바스 왕조의 5대 칼리프하룬 알 라시드는 아불 아바스라는 아시아 코끼리와 함께 샤를마뉴를 만났다고 한다. 이 때 기계식 시계를 가지고 참석했다고 전해지는데, 이것은 최초의 기계식 시계가 아시아에서 만들어졌을 수도 있음을 나타낸다.

중세 유럽에서 종교 학회에서는 정확하게 짜여진 일정을 맞출 수 있는 시계가 필요했다. 이러한 일을 하는데 해시계, 물시계, 초시계 등 다양한 시계들이 동원되었다. 시간의 흐름이나 시각을 정확하게 알릴 때에는 손으로 치는 이나 물체를 떨어트려 울리는 종 따위를 사용하기도 했다.

[편집] 근대와 그 전후한 시기의 시계

근대로 넘어가면서 시계는 발전을 하여 마침내 진자운동을 통한 시계가 발명되었다. 또한, 산업혁명을 전후한 시기에는 시계가 급진적인 발전을 하게되었으며 서서히 대중적은 물품으로 보급되기 시작한다. 그 이후 시계는 다양하게 개량되었다.

[편집] 한국의 시계 역사

한국에서도 큰 시계의 발전이 있었다. 특히 조선 세종장영실 등이 만든 해시계 앙부일구와 물시계 자격루를 발명한 것은 커다란 진전이었다. 자격루는 매우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며 자동적인 시계로 정확도도 높았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 자격루는 오래 사용되지 못하고 현재는 중종 때 다시 만든 자격루의 일부만이 남아있다.

[편집] 앙부일구

앙부일구는 조선 세종 때 장영실 등이 처음 만들었다. 솥뚜껑처럼 생겼다하여 앙부일구(仰釜日晷)라 이름 붙였다. 앙부일구는 계절과 시간을 모두 알 수 있는 매우 유용한 시계였으며 고대의 단순한 해시계보다 훨씬 세련되고 정교했다. 또한 조선 후기까지 쓰였으며 간편하게 휴대한 수 있는 크기로 만든 휴대용 앙부일구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밤이나 흐린 날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해시계 특유의 단점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현재는 매우 적은 앙부일구만 남아 대한민국 보물 845호가 된 것도 있다.

[편집] 자격루

자격루는 조선 세종 때 김조와 장영실이 만든 자동시보장치 물시계이다. 김조와 장영실이 합작하여 만든 이 자격루는 흐린 날씨와 밤에서도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물시계 특유의 장점과 자동적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해시계의 장점 모두를 지니고 있었다. 처음 자격루는 경복궁 남쪽에 있는 보루각에 설치되었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시간도 고려한 매우 정교한 시계였다. 자격루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으나 《세종실록》에는 그 작동원리가 비교적 자세하기 기록되어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자격루의 모든 원리가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다. 또한, 1455년에 보루각 폐지와 함께 자동적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장치 또한 사용이 중지되었는데 정확한 까닭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그 당시 기술 한계로 고장난 것을 고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추측만 한다. 현재 경복궁에 있는 자격루는 최초로 만든 자격루가 아니라 중종 때 새로 만든 것이다.

[편집] 개화기

개화기와 그 전후한 시기에는 서양의 다양한 시계가 들어오게 된다. 따라서 일반 서민 계층에도 시계가 보급되어 시계는 매우 대중적인 물건이 되었다. 이 때부터 십이 간지로 시간을 나누던 전통적인 방식(자시, 축시, 인시, 묘시, 진시, 사시, 오시, 미시, 신시, 유시, 술시, 해시로 총 12시로 나뉜다.)보다는 서구식 방식이 쓰이기 시작한다. 또한, 기차 등과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에는 단 몇 분 차이에 놓치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에 시간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해 졌고, 이로써 시계는 필수적 물품이 되었다. 일부 신사 계층에서는 회중시계를 주머니에 차 멋을 내는데 쓰기도 했다.

[편집] 현대

현대 대한민국에는 다양한 시계가 쓰이고 있다. 특정 시간에 사람을 깨우는 알람시계, 전자식으로 돌아가는 전자시계, 간편하게 차고 휴대할 수 있는 손목시계 등이 있으며, 휴대 전화기 따위에는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도 있어 매우 유용하게 사용된다. 다른 물품들도 그러하듯이 시계도 명품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으로 롤렉스, 오메가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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