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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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Marcus Aurelius Glyptothek Munich.jpg
로마 제국 16대 황제
재위 기간 공동 황제:161년 3월 7일 - 169년
단독 황제:169년 - 180년 3월 17일
타고난 이름 136년 이전-카틸리우스 세베루스
136년 이후-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
황제 이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전임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
공동 황제 루키우스 베루스
후임 황제 콤모두스
Logo-14.png 로마 황제 연대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는 로마 제국의 제16대 황제(121년 4월 26일 - 180년 3월 17일)이다. ‘철인황제(哲人皇帝)’로 불리며, 5현제 중 한 사람이다. 중국의 역사서 《후한서》에 기술된 ‘대진국왕(大秦國王) 안돈(安敦)’이 바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라고 한다. 그러나 그의 죽음을 끝으로 로마 제국의 전성기는 끝났으며, 군인 황제 시대가 도래하였다.

생애[편집]

입양[편집]

121년 4월 26일, 로마에서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와 도미티아 루킬라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3살 때 아버지가 죽자 3번 집정관을 연임한 할아버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베루스에게 입양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자질이 특출하였던 그는 하드리아누스의 눈에 띄었다.

정계에 입문하다[편집]

136년 하드리아누스가 자신의 후계자로 루키우스 케이오니쿠스 콤모두스를 공표하였고, 같은 해 마르쿠스는 루키우스 케이오니쿠스 콤모두스의 딸 케이오니아 아파비아와 약혼하여 일약 로마 정계 전면에 부상하였다.

입양과 결혼[편집]

그러나138년 콤모두스가 죽자 하드리아누스는 마르쿠스의 고모부인 티투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를 양아들로 맞아들여 새로운 후계자로 삼았는데, 나중에 그는 제위에 올라 안토니누스 피우스가 된다.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하드리아누스의 명령에 따라 마르쿠스를 자신의 양아들로 입적하였다.

이때 마르쿠스의 이름은 마르쿠스 아일리우스 아우렐리우스 베루스로 바뀌었다.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나중에 마르쿠스의 약혼을 파기시켜 자신의 딸 안니아 갈레리아 파우스티나와 약혼시켜 결혼시켰다.

단독황제[편집]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루키우스 베루스와의 공동 통치를 한 뒤에 단독 황제가 되었는데 161년 본국 이탈리아와 그 주변에 걸쳐 기근과 홍수가 일어났고 같은 해 파르티아가 동방에 칩입해 1개 군단이 궤멸당하고,카파도키아의 세베리아누스총독이 자결했고 아르메니아 왕국까지 점령당하는 사태가 일어난다.

이에 카파도키아 총독에 스타티우스 프리스쿠스를 임명하고 루키우스 베루스를 출정하게 하여 163년 동방의 남은 군단들을 이끌고 파르티아군을 격파한뒤 아르메니아 왕국의 수도 아르타크사타를 탈환했으며 165년까지는 유프라테스 강 건너편의 파르티아까지 진격하고 166년 티그리스 강 건너편의 파르티아 동쪽 깊숙히 쳐들어가 철저히 격파했다.

한편 168년부터는 게르만족과의 게르마니아 전쟁이 발발해 이 과정에서 169년 공동 황제 루키우스가 죽었고 170년 봄부터 클라우디우스 프론토가 이끄는 로마군은 다키아 속주에서부터 북상해 대규모 공세를 감행해 게르만족들을 패주시켰으나 이 과정에서 프론토가 전사하고 로마군 2만 명이 포로가 된다.

그리고 270년만에 북부 방어선이 뚫려 게르만족들이 쳐들어오고 그 영향으로 4개 군단을 더 창설하기도 했다. 뒤이어 아프리카 속주에서는 마우리타니아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히스파니아까지 쳐들어오는 사태가 벌어지자 동생 피디우스 빅토리우스를 파견해 이를 진압했다.

172년부터 본격적인 제1차 게르마니아 전쟁이 발발해 베오그라드에서 동시에 공세를 감행했으나 도나우 강 건너에서 근위대가 대패하고 근위대장 빈덱스가 전사했으며 173년부터는 각개 격파 작전으로 바궈 지지부진한 전쟁 끝에 174년 강화가 성립되었다.

오현제 시대의 종말[편집]

175년에는 시리아 총독 가이우스 아비디우스 카시우스가 마르쿠스가 죽었다는 잘못된 소식을 듣고 황제를 자칭하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해 부하들에게 암살당했다. 177년에는 지금까지의 5현제의 관습을 타파하고 친아들인 콤모두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결정하여 5현제 시대는 끝나게 된다

죽음[편집]

178년부터 다시 제2차 게르마니아 전쟁이 발발해 대공세를 펼치며 집정관 율리우스 베루스가 전사함에도 불구하고 마르코마니족, 콰디족, 야지게스족을 무찌르며 압도했으나 180년 3월 17일 도나우 강의 진중인 시르미움 근처에서 병에 걸려 급사하였다. 그의 시신은 하드리아누스 영묘에 안치되었으며, 원로원은 그를 신격화하였다.

저서[편집]

한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자신의 사색과 철학에 관한 내용을 토대로 쓴 《명상록》이라 불리는 에세이를 남겼다. 그는 정신적 스승이었던 에픽테토스, 세네카와 함께 스토아 학파를 대표하는 철학자이며, 금욕과 절제를 주장하였으며 수많은 명언을 남길 정도로 공부를 많이 하였다. 전쟁터에서 틈틈이 쓴 그의 <자성록> 12편은 로마 스토아 철학의 대표적인 책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는 언제나 인정이 많고 자비로워 백성을 널리 사랑하였으나 정책상 기독교도를 억눌렀다. 그의 유명한 저서인 《명상록》에는 철학인으로서의 그의 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읽어보기[편집]

바깥고리[편집]

전 임
안토니누스 피우스
제16대 로마 제국 황제
(공동 루키우스 베루스)
161년 - 180년
후 임
콤모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