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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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희
출생 1984년 1월 18일(1984-01-18)
대한민국 충청남도 아산군 온양읍(지금의 아산시 온양동)
사망 2007년 4월 16일 (23세)
미국 버지니아주 블랙스버그 버지니아 폴리테크닉 주립 대학교
국적 대한민국
신장 183cm
체중 75kg
종교 기독교
혐의 연속살인
범행동기 경제적 불평등[1], 피해망상[2]
현황 사망 (자살)
피해자 수 61
사망자 수 32
부상자 수 29
범행기간 2007년 4월 16일 오전 7시 15분-2007년 4월 16일 오전 9시 15분
주무기 글록 19, 발터 P22

조승희(1984년 1월 18일 ~ 2007년 4월 16일)는 2007년 4월 16일 미국 버지니아 폴리테크닉 주립 대학교에서 발생한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이다. 국적은 대한민국으로, 미국 영주권 보유자였다.

생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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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생애[편집]

조승희는 1984년 1월 18일충청남도 아산군 온양읍(지금의 아산시 온양동)에서 태어나[3], 어릴적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거주하다가 조승희가 7살때는(1991년 3월) 서울신창초등학교에 입학한후 에 8살이 되면서(1992년 8월)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가게되었고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하면서 미국 영주권을 취득하게되었고 미시간주에 거주하다가 버지니아주로 이주하게된다. 조승희는 학교에서 모범생인데다 공부도 잘했으며 심지어 운동도 잘하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중고등학생때는 학교내에서 장난의 수준을 넘는 학교폭력을 당했다. 19세 때는(2003년) 정상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버지니아 폴리테크닉 주립 대학교로 입학을하게된다. 동년 10월버지니아주의 센터빌로 등록되어 있었으며, 학내 기숙사인 하퍼 레지던스 홀(Harper Residence Hall)에서 거주했다. 그 후에(2005년 12월) 조승희는 문제가 많았고 스트레스를 받다가 왕따를 당한 원인은 피해망상이라는 진단을 받고 정신과 입원치료를 받게 되었다. 조승희는 악물치료를 받아야 했고 교회도 가게 되었다. 버지니아 폴리테크닉 주립 대학교에 따르면, 조승희는 이 학교 영문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이후 지속적인 학교폭력에 불만을 품고 범행을 결심했다.

조승희의 범행[편집]

조승희는 사건이 일어나기 한달 전 권총 2정(글록 19, 발터 P22)와 실탄 5000여발, 망치과 방탄조끼와 장갑과 복면을 구매 하고 사격 연습을 했다. 기숙사에서 컴퓨터 게임에 푹 빠졌고 폭력적이었다. 2007년 4월 16일 오전 7시 15분경에 1차 총격으로 웨스트 앰버 존스턴 지숙사홀에서 2명을 살해 한다. 범인 조승희는 두 사람을 죽인 후 앞으로 시작될 사건에 대한 미국의 방송국인 NBC에 메모와 사진과 소포 등으로 보낸다. 오전 9시 01분쯤에 대학교 우체국으로 들어갔고 조승희는 자물쇠사슬로 이용해 학교의 출입문을 폐쇄한 후 2차 총격으로 강의실을 돌아가며 탄창 5~6개를 이용해 무차별적으로 살해하기 시작했다. 오전 9시 15분쯤에 미지막 총격으로 노리스 홀로에서 학생들과 교사들을 연속으로 죽였다. 그는 학생 25명과 교사 5명을 살해하고 권총으로 머리를 쏜 후 희생자의 시체에 섞인뒤 사망을 했다. 사건 이후 현지 경찰은 그가 글록 19, 발터 P22 두 정의 권총을 소지하고 기숙사에서 최초의 두 명을 총으로 쏘아 죽였으며, 2시간 반 후 수업 중이던 강의실 몇 곳을 오가며 총을 무차별적으로 난사한 뒤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은 32명이 사망, 29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집계되었다. 경찰은 총기 지문 확인을 통해 그가 범인이라고 밝혔다.

논란[편집]

2015년부터 디시인사이드 야구갤러리에서 장난으로 일종의 '콘셉트'를 잡고 노는 행위를 시작으로 '조승희 장군', '조장군니뮤' 또는 '제너럴 조'라는 등의 별칭이 생겼는데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누리꾼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4] 이들은 조승희가 벌인 총기 난사 사건을 단순히 인종차별이 기원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 조승희의 주요 범행 동기는 경제적 불평등(빈부 격차) 때문이였고, 그가 보낸 '선언문'에는 괴롭혔다는 말만 나올뿐 직접적으로 인종 차별이 언급되지 않았다.[1]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문현웅 (2017년 4월 14일). “<디테일추적>"'제너럴 조'가 그립습니다"… 유나이티드 항공 사건 터지자 사람들이 '조승희' 찾는 이유는”. 조선일보. 2017년 7월 29일에 확인함. 
  2. 차민아 (2007년 4월 19일). "조승희 씨 피해망상증에 시달려". MBN. 2017년 7월 29일에 확인함. 
  3. 총기난사 조승희씨 본적 '아산시'
  4. 강지남 (2016년 4월 11일). “총기난사범 조승희 도 넘은 우상화”. 신동아. 2017년 7월 29일에 확인함.